개강이다. 시간 강사라는 특성상 한 여름을 일 없이 지내다 간만에 강의를 했더니 몸과 마음이 무척 피곤하다. 처음 보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유창한 척 말을 하자면 내가 마치 약장수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첨단 기술이 나날이 눈부시게 발전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글쓰기는 여전히 필요한 역량이라고 그러니 수업에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을 하고 있자면, 정말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마 이 피로감에는 한동안 하지 않았던 강의를 다시 재개하면서 느끼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처음 보는 학생들과 새롭게 한 학기를 시작하려니 느끼는 피로감도 있을 것이고, 이전에 했던 강의 자료를 새로 배정받은 학과에 맞게 다듬고 고치는 과정에서 느끼는 피로감도 있을 것이다. 사실 시간 강사를 하기 전에는 선생이라는 직업이 꽤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들을 학생들에 맞춰 설명하는 게 다라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수업이라는 게 얼마나 많은 사전 작업을 요구하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누군가 나에게 선생이라는 직업이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나는 어떤 대답을 해주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서로 서먹서먹하기만 하고, 별다른 관심도 보이지 않던 아이가 학기가 끝날 즈음 밝은 얼굴로 인사하며 자신이 노력한 결과물을 보여줄 때면 꽤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그렇지는 않아서, 간혹 수업에 관심이 없거나 노력에 비해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을 마주할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내가 만약에 조금만 더 재밌게 수업을 했더라면, 혹은 조금만 더 잘 설명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이 아이에게 지금 이 순간의 의미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혹은, 이 아이의 미래가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책임감. 혹은 사명감. 아마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느낄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좋은 선생도 많이 만났지만, 나쁜 선생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개중에는 폭력을 가하는 사람도 있었고, 말도 안 되는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해할 수 없다. 왜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에게 욕을 하고 폭력을 가하고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려 안달이었던 걸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보다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던 게 내 인생에는 더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 참 다행이라고 느낀다. 나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하면 안 되는 일에 대해 알려주고, 귀찮은 질문들에도 꼬박꼬박 웃으며 대답해준 좋은 선생님들. 내가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스스로를 계속 가다듬으려 애쓰는 건 그분들의 영향이 클 것이다. 만약 그때 그 순간 그 사람들이 해준 말과 행동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 또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그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자꾸만 돌이켜보게 된다.
물론 나는 아직 완벽한 선생님은 아니다. 그냥 조금 친절하고, 조금은 유머러스한 그런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적어도 나로 인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은 믿을 수 있고, 때로는 기댈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실 이건 내가 선생이라서,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내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은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그게 지금의 내가 가진 소박한 꿈이 아닐까 싶다.
세상엔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나쁜 선생도 있고 좋은 선생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소수의 사람들을 전체로 오해하곤 한다. 어떤 직업이든 직업윤리에 충실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닌 사람도 있는 것임에도,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잣대 삼아 타인에 대해 판단하길 즐긴다. 당장 인터넷 뉴스의 댓글만 보더라도,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알까. 자신들의 인식이,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행동을 미치게 될지. 인간은 모두 사회적 동물이기에, 크건 적건 타인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쯤 선해질 수 있지 않을까. 삭막해진 세상에서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이야기를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