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큰손녀는 대구할매 집에 와 며칠씩 지내길 즐긴다. 휴가 때 온가족이 내려왔다가도 엄마 아빠를 졸라 굳이 혼자 남아 며칠을 더 묵는다. 이런 손녀가 기껍고 기특한 할배 할매는 단 며칠이라도 알차고 보람차게 보내도록 갖은 프로그램 궁리를 하며 계획을 짜느라 법석을 떤다. 경주 가서 문화재순례 스탬프를 찍자. 미술관과 박물관 체험프로그램도 신청하자. 제 생일을 미리 당겨 사촌동생들과 생일파티도 열어줘야겠다.
그러나 정작 손녀는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소위 집순이라며 제 엄마가 귀띔한다. 그렇다면 문방사우를 꺼내 한자로 이름쓰기를 가르쳐 볼까? 같이 놀 장난감 빨대블럭과 젠가도 사 두었다. 그런데 손녀에겐 계획이 다 있었다. 제 놀이감을 챙겨가지고 오는 야무지고 빈틈없는 아이.
2년 전 여름방학 때였다. 500 피스 퍼즐상자를 가방에서 꺼냈다. 아빠 어렸을 때 할머니랑 퍼즐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저랑 같이해요. 혼자 해보니 맞추기가 꽤 어려워요. 좋지 좋아 같이하자 나 이런 거 무지 좋아해. 조손이 엎드려 퍼즐 조각을 맞춘다. 실로 제 아빠 어렸을 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같이 놀았다. 유달리 게임에 진심인 나는 밤을 새워서라도 완성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때를 떠올리며 손녀와 같이 퍼즐 조각을 맞춘다. 비교적 쉬운 조각은 손녀에게 넌지시 던져준다. 맞추며 기뻐하며 손뼉치는 손녀가 흐뭇하다. 함께 끼워맞추며 도란도란 얘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장 마지막 퍼즐 조각은 손녀가 맞춰 끼워 완성하게 했다. 뿌듯해하며 사진 찍어 제 엄마와 아빠에게 보낸다. 어렵게 맞추었으니 액자에 넣어줄까 했더니 쿨하게 부순다. 서울 가져가서 다시 또 맞출 거라며 가방에 넣는다. 맞춘 후 며칠을 전시해두고 보는 나와는 다른 성격에 속으로만 놀란다. 손녀 떠난 후 나는 서점에 가는 남편에게 1천 피스 퍼즐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사고 맞추고를 반복하며 한동안 퍼즐에 푹 빠졌다. 퍼즐 상자를 세어보니 20개도 넘는다. 직소퍼즐로는 고흐의 명작시리즈도 많으나 제일 예쁘기는 미국의 유명한 달력작가 제인 우스터 스콧의 퍼즐이다.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그녀의 모든 퍼즐을 사모았다. 초등학교 친구들에게도 사보냈다. 허리 아파하는 나를 남편이 책망하자 마침표를 찍었다.
올여름 방학에는 또 다른 취미거리를 가져왔다. 이름도 생소한 양모니들펠트. 할머니랑 같이 할 거라며 여러 개를 샀단다. 처음 보는 거라고 했더니 열심히 설명해 준다. 실뭉치를 돌돌 말아 바늘로 콕콕 찌르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요. 주로 강아지나 곰인형 같은 거 만들 수 있어요. 그림설명서가 있어도 실습으로 보여주며 꼼꼼히도 설명한다. 따라하다가 바늘에 찔려 피도 봤다. 작품(?) 얘기를 조곤조곤 나누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집에 있는 두 마리 강아지, 베리와 아키를 모델로 만들자며 사진 찍어 비슷하게 만들었더니 할머니 솜씨가 좋네요하며 칭찬도 아끼지 않는 속깊은 손녀 덕에 취미가 또 하나 늘었다. 같이 양모펠트공방을 찾아 구경하며 수강신청을 고민해봤다. 이번 추석에 손녀는 어떤 새로운 취미거리를 가져올까. 몹시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