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염무(顧炎武)는 천하와 나라가 망하는 것을 구분하고 ‘나라를 지키는 것은 그 군주와 신하가 민생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 되지만 천하를 지키는 것은 지체가 낮은 필부에게 책임이 있다(天下興亡 匹夫有責)’고 했다. 고염무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중원을 지배하던 혼돈의 시기에 활동하던 사상가다. 당시 관리와 귀족들은 청나라의 점령과 악행에 분노했다. 반면 일부 식자층에선 명나라의 멸망에 대해 보다 본질적인 문제점을 찾기 위해 인문학적 성찰을 시작했다. 그 화두의 중심이 고염무의 ‘천하흥망 필부유책’이었다. 중국 사회의 자각운동의 시작이었다.
영국 출신의 마이클 브린 전 외신기자 협회장은 ‘조작 여론조사가 먹히는 요지경 나라’라는 책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법이 아닌 야수가 된 인민이 지배한다’고 설파했다. 한국은 민심에 따라 정권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민중에 대한 경고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죽인 이도 무지한 민중들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조익순 전 고려대교수는“과거 조선은 양반들 때문에 망했으나 지금은 민중이라는 탈을 쓴 좌익 빨갱이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그리스, 로마와 같은 한때 세계 최강의 나라들이 멸망한 이유도 바로 내부로부터의 붕괴 때문이었다고 했다. 정신적 타락과 사회질서의 붕괴로 자기결정 능력을 상실한 것이 그 근본 원인이었다고 분석했다.
독일의 한 경제신문은 최근 “오염처리수가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음에도 많은 한국인이 공포에 떨고 있고 야당인 민주당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광우병, 사드 전자파,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으로 우리 사회가 심한 홍역을 앓았다. 좌파 세력의 선동이 원인이다. 그 피해는 엄청나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지지율이 줄곧 30%대에 머물고 있다. 좌파와의 싸움을 밀어부치고 타협하지 않는 정치력 탓이 크다. 하지만 좌파 세력들의 선동 및 시위와 무관하지 않다. 나치 독일의 선전가 괴벨스는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했다.
중국 축구를 응원한 포털 다음과 드루킹 사건에서 보듯 네티즌과 정치세력에 의한 여론조작이 심각하다. 거짓과 진실이 혼재된 상황 속에 거짓 정보를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필부들에겐 더욱 어렵다. 필부는 부하뇌동하기 마련이다. 절제되지 않고, 무책임한 민중과 민심은 자칫 망국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거기에 집단 광기까지 더해진다면 위태롭기 짝이 없다. 한때 TV를 바보상자라고 칭한 적이 있다. 민중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돌려놓고 무디게 만들어 놀이와 유흥에 빠지도록 했다. 정치인에게 민중의 각성은 위험하다.
여론조사 전성시대다. 하지만 정치 여론조사는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 없다. 침묵하는 다수의 여론은 반영되지 않는다.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이유다. 그저 추세만 확인하는 데 그치는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민심은 천심’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민심은 곧 정의’라는 믿음이 허망하게 깨지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