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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서예잔치, 눈부신 筆墨의 비상

등록일 2023-09-26 19:24 게재일 2023-09-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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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이 시시각각 움직이며 온갖 모양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은 청청한 산과 들의 언저리로 넓게 펼쳐진 가을하늘의 캔버스에 구름은 유유히 흘러가며 시나 소설을 쓰는 듯 알듯 말듯한 몸짓으로 세상을 내려다 보면서 사연을 전하고 있다.

그러다가 전북 진안군에 이르러 마이산 주변을 지날 때는 말(馬)의 귀(耳)같은 암마이봉·숫마이봉을 흡사히 닮은 두 개의 구름 봉우리 형상으로 변신하기도 하니, 과연 빛과 바람으로 빚은 자연의 수묵화가 따로 없을 정도다.

어쩌면 하늘에서 펼쳐지는 바람의 붓질 같은 구름의 천변만화는, 화선지 위에서 각양각색으로 피어나는 붓과 먹의 무진한 변화의 조화로움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추분 무렵 차츰 물들고 변해가는 초목과 열매는 정갈한 가을볕을 받아 저마다의 빛과 색을 더해 익어 가듯이, 날을 거듭할수록 붓놀림과 서예 궁구의 내공이 깊어지는 손길은 결 고운 단풍잎 마냥 심오하고 유장한 필묵의 원숙함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문자나 예술이 자연에서 나왔듯이, 붓글씨 역시 자연을 닮아감은 당연한 교효작용이며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구름의 암시(?)를 받으며 도착한 곳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개막식이 열리는 전주의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형 애드벌룬이 빨간 색상의 현수막을 드리우며 반기고, 분수 옆 국제관 입구에서부터 바닥에 깔린 레드카펫은 행사의 규모와 품격을 말해주는 듯 했다. 지난 1997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14회째 맞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서예를 매개로 전세계 서예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교류와 화합의 마당과 주제에 걸맞는 작품 전시·국제학술대회·부대행사·전북 14개 시군 ‘2023 서예, 전북의 산하를 날다’ 주제의 연계전시행사 등을 대대적으로 다채롭게 펼치는 세계서예잔치다.

40여 개국 3천2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는 ‘생동’(Vividness)으로, 출품작가들의 개성과 독창성, 창의력, 미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며 작품세계에 빠지다보면 어느새 예술적 쾌감과 감동의 희열에 젖어 들게 될 것이다. 특히, 10미터 이상 높이의 사방 벽면을 가득 메운 강건한 필력의 다채로운 대형작품은 관람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하고, 천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천 편의 시를 동일한 크기(10x10cm)의 전주한지에 써서 모자이크처럼 만든 ‘천인천시’ 10곡병풍은, 세밀함을 살리면서도 전체를 아우르는 조화로움 등으로 실로 서예작품의 표현방식과 영역, 장법(章法)과 구도가 무궁무진함을 일깨워준 역작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외국인 작가와 참여국가의 대사가 쓴 영어, 아랍어 등 각기 다른 언어로 쓰여진 작품은 다양성의 조화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서예와 예술은 이렇듯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소통하며 화합의 마당으로 모여들게 한다. 서예의 대중화와 실용성을 더 높이는 다양한 기획과 참여로 뉴노멀 시대에 서예문화의 선도적인 역할과 지속가능한 빌전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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