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갑자 중 오십일곱 번째는 경신(庚申)이다. 천간(天干)의 경금(庚金)과 지지(地支)의 신금(申金)은 모두 금(金)의 기운으로 단단하고 거대한 바위며, 강직한 쇳덩어리며, 가을기운이다. 동물로는 원숭이다.
경신일주는 자존감이 강하고 고집이 세며 의협심이 남다르기 때문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다. 무슨 일이든 한 번 결정하면 즉시 시행하여 밀고 나가는 뚝심이 있다. 추진력이 좋아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내려는 성향이 강해서 자수성가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혈기왕성하고 사회생활에서도 중심에 서서 크게 권위를 떨치며 성공하는 일주로 재물복도 좋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강한 기세에 내가 최고라는 자만심으로 안하무인이 되기 쉬우니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지나친 행동으로 남의 눈 밖에 나서 왕따 당하기 때문에 잘나갈 때 더욱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항상 마음을 수행해야 한다.
경신은 양에서 음으로 넘어온 기운이며, 열매를 맺고 낙엽이 지는 쓸쓸한 가을에 해당한다. 금(金)의 속성이 있어 차갑고 단단하고 견고한 성질을 가진다. 그러기에 쇠는 용광로를 통해 화려하게 재탄생하는 창조적인 힘을 겸비하고 있다. 모든 일에 경쟁의 논리로써 일을 추진해 내는 강한 힘이 있다. 승부욕이 뛰어난 혁명가의 기질도 겸비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고독하고 외로운 일주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신화에서 철을 잘 다루는 불과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있다.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 에 난 아들이다. 신이 다리를 저는 데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그가 태어났을 때 너무 못생겨 헤라가 올림포스에서 내던졌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제우스와 헤라의 부부싸움에 헤라 편을 들다 제우스가 걷어차서 렘노스섬에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 테티스와 에우리노메의 보살핌을 받으며 대장장이 기술과 제련기술을 연마했다고 한다.
헤파이스토스는 어머니 헤라에게 황금의자를 선물했다. 의자에는 잠금장치가 있어 거기에 앉은 헤라는 일어날 수 없었다.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을 약속하고 올림포스로 데려왔다. 모자는 화해하고 올림포스에서 살게 되었다. 헤파이스토스의 아내 아프로디테(일명 비너스)는 사랑을 상징하는 신이다.
헤파이스토스는 아름다운 아내 아프로디테보다 대장장이 일에만 몰두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전쟁의 신 아레스와 밀회를 나눈다. 이 사실을 아폴론이 헤파이스토스한테 귀띔해준다. 그는 밀회장소에 청동을 가늘게 짠 보이지 않는 그물을 만들어 움직일 수 없게 하여 여러 신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준다.
그는 제우스의 황금 옥좌, 왕홀, 제우스의 벼락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아킬레우스의 갑옷, 포세이돈의 삼지창, 헤라클레스의 갑옷,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의 화살 등도 만들었다. 신이든 인간이든 만들어 달라고 하면 뚝딱뚝딱 만들어 주는 그리스신화의 최고 대장장이 신이다. 그는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최초로 여성 판도라를 만들기까지 했다. 마치 인공지능(AI)같은 존재다. 창조가 문명의 발전을 이루는 것이었다.
경신일주의 남자는 자신의 강하고 독단적인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럽고 여유로운 배우자를 만나면 평탄하다. 자신의 색정과 독선적인 성격을 자제하지 않는다면 해로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여성은 본인이 가정을 꾸려가는 여장부 스타일이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솔직담백하지만 무뚝뚝하고 무심한 성격이 많다. 이를 잘 받아주는 남자를 만나야 순탄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경신일주의 신(申)은 동물로 원숭이다. 재주 많고 심술궂은 원숭이는 말도 잘하고 성격도 쿨하고 화끈하며 놀기도 잘한다. 남으로부터 인정과 칭찬받는 것을 좋아한다. 자유분방하지만 배짱 하나는 좋은 편이다. 자기과시를 너무 하다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있으니 경거망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
옛날에 경신일에 하는 경신기도(庚申祈禱)가 있었다. 도교(道敎)에서는 이날 아무런 형체도 없이 사람의 몸에 기생하는 삼시충(三尸蟲)이 사람이 잠든 사이에 외출한다고 믿었다. 외출한 삼시충이 곧장 하늘로 올라가 상제에게 그 동안의 죄상을 고해바치는 것이다. 상제는 죄질에 따라 벌을 주는데, 벌은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밤새도록 술 마시고 놀았다고 한다.
경신일에는 잠을 자지 않아야 하는데, 이상한 것은 이날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잠을 안자고 견디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밤새도록 악기를 연주하거나 염불하는 관습이 행해졌다. 도교신앙에서 비롯된 경신수야(庚申守夜)는 원래 중국 송나라에서 행해지던 풍속을 고려도 받아들였는데, 왕으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고려 때는 60일에 한 번씩 일 년에 여섯 번 밤샘 축제를 벌였던 것이다.
조선에서도 성종17년(1486년) 11월19일 경신 날에 왕이 대신들과 함께 자정이 넘도록 잔치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경신연회가 없어진 것은 영조 33년(1759년)이었다. 밤샘을 금지시키는 대신 등불을 밝히고 근신하면서 밤을 새우도록 명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보면 경신일에 밤을 새우는 전통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지금도 수행자들 사이에서 간간히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전통이란 참으로 끈질기다. 도교적 전통에서 시작된 경신수야는 고려를 거쳐 조선 영조 때까지 600년 가까이 이어져왔다. 시작은 종교적 이유였지만, 나중에는 온 백성이 즐기는 풍속이 되었다. 생활에 지친 백성들은 일년에 여섯 번은 고된 삶에서 해방이 되는 그들만의 축제로 생각했을 것이다. 마치 크리스마스이브에 기독교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까지 덩달아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을 본능적으로 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