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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기념하는 방법

등록일 2023-10-10 19:06 게재일 2023-10-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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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10월 9일은 577돌 한글날이었다. 전국적으로 우리 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공유하기 위한 각종 행사가 개최되었다. 우리 대학에서도 국어문화원이 중심이 되어서 한글날을 기념하는 학술대회와 한글을 소재로 한 다양한 체험활동을 진행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필자는 매년 반복되는 한글날의 각종 이벤트를 무심히 넘기거나 어학 전공자들의 전유물로 생각했다. 공휴일이란 편안함이 더 크게 다가왔던 탓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글날에 우리 문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글 창제 및 반포를 기념하는 한글날은 필연적으로 ‘대한민국’이란 정체성을 생각하게 만들지만, 우리나라의 세계적 위상이 몇 년 사이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한류가 있었지만, 최근의 상황은 K-팝, K-푸드, K-콘텐츠 등 다양한 K-컬처에 세계인이 주목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BTS’가 상징하는 K-팝과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K-콘텐츠가 앞에서 끌고 K-푸드, K-뷰티 등이 뒤따르는 K-컬처는, 국가적 지원을 동력 삼아서 더욱 그 규모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마냥 자부심을 느끼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지난 8월 140여개국 4만명의 대원이 참석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K팝 콘서트’로 마무리되었다. 알다시피 잼버리는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 등으로 일부 국가 대원이 중도에 퇴소하고, 태풍의 영향으로 야영지에서 조기 철수를 결정하는 등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다. 세계적 대회의 파행을 막고자 K-컬처를 대안으로 내세운 정부의 방침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잼버리 정신’과 한참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자랑스러워야 할 K-팝이 이렇게 소비되는 것에 찜찜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영어 중심주의는 어떤가?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에 솟아있는 거의 모든 아파트의 이름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영어다. 우리나라에 유학을 온 외국인 대학원생들은 한국어를 몰라도 학위를 받는 것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문해력’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심심한 사과’ ‘사흘’이란 단어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은 한자어나 순우리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관습적으로 알고 있다고 믿었던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왜, 생겨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을 따져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말을 몰라도 일상에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심심한 사과’‘사흘’과 같은 단어가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삶의 구조에 있다.

한글날을 제대로 기념하기 위해서는 이념과 문화를 구분해야 한다. 이념이 당위적으로 한글의 우수성(혹은 K-컬처)을 홍보하는 행위의 근간이라면, 문화는 대중의 정신과 사고에 미치는 한글의 중요성을 제도적으로 구축하는 행위이다. 이제라도 한글이 상징하는 문화가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1년에 한 번, 일회성 이벤트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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