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는 쉽게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못하는 말. ‘원래 모든 사람은 부족한 점이 있어. 부족하다는 사실에 너무 얽매이면 안 돼. 네가 가진 것들에 귀를 기울여야지.’ 친구에게든, 같이 문학을 하는 사람이든, 혹은 학생에게든,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준다. 그게 세상을 사는 꽤 좋은 마인드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만 바라보면서 사는 삶이라니, 너무 지치지 않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런 건 그저 타인의 질투어린 시선이나 동경어린 시선 속에서만 있는 것이고, 그 시선에서 살짝 벗어나보면 모든 사람은 잘난 점 한 두 가지와 부족하고 미진한 여러 가지 결여를 제각기 가진 ‘사람’에 불과하다. 불완전하고, 어딘가 비틀려있고, 혹은 자신이 저지를지 모를 실수에 불안해하는 사람.
그러니 너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어차피 모든 사람은 제각각 모자라고, 약간은 바보 같고, 혹은 비틀린 구석이 한 두 가지쯤은 있기 마련이라고. 단지 서로 모자란 부분이 다르고 바보 같은 구석이 달라서 네가 눈치 채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게 온전히 타인을 위한 말인가 하면, 그렇진 않다. 오히려 나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타인에게 해주며 내 모자란 마음을 채우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늘 내 부족한 부분들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어느 나라든 그렇겠지만, 한국은 유독 나이에 따라 요구되는 것들이 많은데 나는 그런 것들을 잘 충족시키며 살아오진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때가 되면 대학에 진학하고, 때가 되면 면허를 따고, 때가 되면 군대를 가고, 때가 되면 취직을 하고,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한 번도 제 때에 해보거나, 잘 이뤄낸 적이 없는 것 같다. 대신 나름의 경력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적도 있지만, 그것들이 과연 등가로 비교될 수 있는 것들일까?
딱히 자기 비하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은연중에 타인에게 그런 시선을 느낄 때가 있다. 30대 중반이 된 이후로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 아직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거나,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할 때면 뭔가 결격사유를 가진 사람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을 느끼기도 한다. 처음엔 이게 나의 자격지심이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그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이렇게 사람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나의 삶을 제대로 평가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그저 필사적으로 자신이 이뤄낸 것들을 평가받고 싶은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해낸 결혼을 너는 못했지. 내가 이룬 정규직을 너는 못했지. 내가 해낸 것들을, 너는 해내지 못했지 하고.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삶을 과대평가하고 싶은 사람들. 예전엔 그런 사람을 만날 때면 ‘성격 참 이상하네’하고 생각하곤 넘겨버리곤 했었지만, 최근에는 그런 사람들이 세상의 절대 다수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들도 자신의 결점이 두려운 건 아닐까. 그래서 자신의 결점을 바라보는 대신에 어떻게든 자신이 이뤄낸 요구들을 생각하고, 타인의 단점을 들춰내면서, 자신의 결점을 바라보기를 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의 결점을 바라보는 건 슬프고 괴로운 일이지만, 타인의 단점을 들춰내는 건 꽤 즐겁고 나름의 쾌감을 주는 일이니까. 그리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이 꽤 괜찮은 삶을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곤 하니까. 그 과정에서 누군가 조금 우울해지게 되더라도,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니까.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을 동원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은 걸까, 아니면 극심하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인걸까. 스스로든 채울 수 없는 자족감을 채우고자 타인의 삶을 멋대로 재단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적어도 건강한 마음은 아닐 것 같다. 어쩌면 그것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에 시달리는 똑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도 나도, 결국엔 똑같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시달리는 사람들인 셈이다.
우리의 결여와 결점들은 누구의 시선에서 결정된 것들일까. 우리가 구태여 비슷한 수준으로 모든 일들을 잘 처리하면서, 타인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너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건 대체 누구에 의한 것일까. 내가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삶도 꽤 괜찮은데. 좀 부족한 거 있어도 제법 살만한 인생인데. 고민이 많아지는 30대 중반의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