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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달꽃’과 ‘덴동어미전’

등록일 2023-10-11 19:33 게재일 2023-10-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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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며칠 사이 두 권의 소설을 읽었다. 250쪽 내외 분량의 짧은 소설이라 단숨에 읽을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둘 다 여성 소설가의 작품에 여성이 주인공인데다 경상도 사투리를 활용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달꽃’은 지난 8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작가 이화리는 경주에서 나고 자라 경주를 문학의 뿌리로 삼은 작가다. 20년 전 잠깐의 인연이 있어 아주 가끔씩 소식을 주고받기도 하는 사이다. 작품활동을 왕성하게 하진 않지만 글이 야물고 내공이 깊다. 신간이 반가웠다. ‘촌년’ 작가라고 밝힌 그녀는 ‘촌이야기’를 ‘촌말’로 쓰겠다고 작가의 말을 대신했다. 작심하고 경주를 배경으로 경주 사투리를 사용하겠다는 거다. 130년 전쯤 전 경주 안강, 현곡 등을 배경으로 경주의 이야기를 경주의 말로 쓴 ‘달꽃’은 여성만의 신체적 생리적 능력을 이야기한다. 터부시되어온 여성의 달거리를 인간의 존엄과 우주적 신성으로 드러냈다. 또한 여성에게만 강요했던 순결 이데올로기를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꾸짖고 달래고 어루만진다. 방언학자 이상규는 발문에서 “통상 터부시되어온 달거리와 경상도 방언의 고유성을 오묘하게 복원시킨 소설”이라며 여성들에겐 위안과 감사를 경주인들에겐 토착적 언어의 선물이 될 것이라며 치하했다.

일부러 찾아 읽은 ‘덴동어미전’은 경북대 도서관에 소장된 ‘소백산대관록’이라는 필사본 속에 있는 내방가사 ‘화전가’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화전가는 경북의 여성들이 짓고, 필사하고 낭송하는 문학인 내방가사 중 흔한 유형의 가사다. 그 중 ‘경북대본 화전가’는 구성이 독특하고 내용과 묘사가 특히 뛰어나서 문단에서 크게 평가하는 작품이다. ‘소백산대관록’이 1938년 필사되었는데, 작중 1886년(고종 23년) 괴질에 대한 언급이 있어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도 130여 년전쯤으로 거슬러 짐작할 수 있다. 경북 영주 순흥을 배경으로 ‘덴동어미’라는 등장인물이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담의 장편가사이다. 이방집 무남독녀로 태어난 그녀가 네 번의 결혼과 재혼을 반복하며 살아온 굴곡진 이야기를 화전놀이라는 여성들만의 유희 장소에서 수다로 풀어낸 대서사시이다. 이 가사의 배경이 영주 순흥이고 덴동어미가 이곳 출신인데다 화전놀이에 참여한 여성들이 영주 인근에서 결혼하여 온 여성들이라 이 지역의 사투리가 주로 쓰였다. 덴동어미가 30여 년을 예천, 상주, 경주, 울산, 영해를 떠돌아다니는 동안 그 지역의 방언들이 사용되기도 했으나 주로 경북 북부지역의 사투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경상도 사투리 구사가 예사롭지 않은 박정애 작가 역시 경북 청도 출신이었다.

경북 출신의 여성 소설가가 경북의 사투리로 쓴 130여 년 전의 여성이야기라는 점에서 두 소설은 많이 닮았다. 주인공 여성들의 인생유전이 남달랐음에도 그들을 따뜻하게 보듬고 스스로 당당하고 서로 격려하는 장면 또한 닮은꼴이다. 사투리는 눈으로 읽기보다 소리내어 읽어야 맛이 사는 글말이다. 나직히 소리내어 읽으니 나는 아예 소설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곳 그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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