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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부러웠던 광경

강길수 수필가 7월이 왔다. 7월을 맞으며 떠오른 참 부러웠던 장면이 있다. 바로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 광경이다.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국빈 방문이라는 상징성도 있었지만, 그보다 미국 상하 양원 의원들이 연설 듣는 모습이 내 맘엔 놀랍고도 참 부러웠다. 미국이 괜히 세계지도국이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전 대통령들의 같은 곳 연설 장면을 볼 때도 비슷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올해가 더 가슴에 와닿았다.이달 17일은 제헌절이다. 하여, 우리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 장면이 떠오른 것일까. 당시 언론 기사엔, 44분 연설에 26번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나도 그 심야에 중계방송을 다 보았었다. 미 상하 의원 535명이 모두 참석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티브이 화면에 나오는 의원들의 얼굴, 얼굴들 모습에 하나같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배어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국익 앞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마음을 저절로 들게 했다.이 글을 쓰려고, 2017년 11월 8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국회 연설 동영상을 찾아 시청했다. 연설 중 19회 박수는 있었으나, 기립박수는 한 번도 없었다. 화면에 비치는 우리 의원들 표정은 얼굴 따로, 마음 따로인 것만 같았다. 내 마음 상태 때문인가 싶어 윤 대통령의 연설 장면을 다시 보았다. 하지만, 결론은 같았다. 미국 의원들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애국심, 헌신 같은 느낌을, 우리 의원들의 표정에서는 거의 엿볼 수 없었다.국민인 내 눈에 비친 우리 정치권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하는 사람을 눈 닦고 보아도 찾기가 어렵다. 국익보다 진영이나 사익만을 추구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입으론 국민만 들먹인다. 우리 겨레의 역사에 ‘사색당파’라는 말이 우연히 생긴 게 아님이, 오늘날 우리 정치권 행태에서도 드러난다. 나라보다 가문과 당파의 이익이나 권세를 앞세웠던 부끄러운 역사가 지금도 유전되고 있는 것일까.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던 6·25 한국동란 때 유엔군은 기꺼이 참전, 국군과 함께 목숨 바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2014년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6·25 전쟁의 한국군과 유엔군의 총피해자는 77만2천608명(한국군 62만1천479명, 유엔군 15만1천129명)이다. 이중 전사자가 17만5천801명(한국군 13만7천899명, 유엔군 3만7천902명)이나 된다.북한군 남침, 중공군 개입, 민간인 피해 등을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에 있다. 6·25 전쟁만 보아도 확실히 그렇다. 만일 누가 북한 체제가 더 좋다면 그는 탈남(脫南)하여 북한에 가면 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함께 살며 국민이 주권자인 나라 대한민국이 1인 독재 체제 북한같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부디 우리 정치권이 나랏일 앞에서 ‘포스트 사색당파’란 오명을 벗어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이 장미 만발한 지난봄, 우리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 날의 ‘부러웠던 광경’이 제헌절 품은 7월에 정치권과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다.

2023-07-10

세상은 반대에 끌린다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1990년대 중반에 SBS에서 방영했던 ‘LA 아리랑’이라는 시트콤 드라마를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난다. LA 한인타운에서 살아가는 한국계 이민자들의 삶과 애환을 코믹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드라마는 신(scene)이 전환될 때마다 LA 한인타운의 풍경들을 잠깐씩 비춰주는데, 가로수로 야자수가 심어진 모습, 번화한 거리에 한글 간판이 붙어 있는 모습들이 이국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친숙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이 드라마는 ‘아메리칸 드림’의 1990년대 버전에 가까웠던 것 같다.드라마에서는 거의 재현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자리 잡기까지 이민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결코 작지 않았다. 아시아계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가시적·비가시적 차별이 존재하며,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아시아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가 증가하기도 하였다. 흑인이나 히스패닉(중남미계 미국 이주민)의 경우 인구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관계로 이들을 조명하는 문화적 시도들도 많은 반면, 아시아계 이주민에 초점을 맞춘 문화콘텐츠는 매우 드물었다.그런데 최근 들어 한국계 이민자의 삶을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영화 ‘미나리’, ‘라이스보이 슬립스’나 캐나다에서 대흥행한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지금까지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계(넓게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 찾기의 문제에 주목하였다.지난 6월 14일 개봉한 장편 애니메이션 ‘엘리멘탈’ 또한 아시아계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는 땅, 불, 바람, 물이라는 네 가지 원소들이 모여 살아가는 ‘엘리멘트 시티’를 배경으로 불 종족 여성 ‘앰버’가 겪는 이중적 억압의 문제를 너무 무겁지 않게 이야기한다. 작중에서 불 종족은 다른 세 종족에 비해 사회문화적으로 차별받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이루어 살아간다. ‘엘리멘탈’이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인종차별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인종집단 내부의 억압과 차이의 문제도 함께 다룬다는 것이다. 앰버는 ‘불’이라는 인종적 정체성에 의해 자신이 대표되는 것을 힘겨워한다. 앰버의 아버지는 그녀가 잡화상을 물려받길 원하지만, 앰버는 이민 1세대인 부모가 힘겹게 일궈낸 것들을 존경하면서도 그것을 물려받아 지켜내는 일에 커다란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민족주의적 관점으로만 바라본다면 그들은 동포인 동시에 영원한 타자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이민자 개개인의 목소리와 욕망은 소거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이산(離散)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존중과 함께 그들을 타자가 아니라 사회에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부여하는 동료 시민이자 이웃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급속히 다문화 사회로 진입해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엘리멘탈’ 포스터에는 “세상은 반대에 끌린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낯선 것, 다른 것, 이질적인 것들이 세상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2023-07-10

대구축산물도매시장의 운명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구축산물도매시장은 대구시 북구 검단동 고속도로 변에 위치해 있다. 대구시민에게 소고기와 돼지고기 및 부산물을 공급한다. 축산물 유통구조 개선 및 신선한 축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대구시가 1969년 설립했다. 신흥산업이 1970년 달서구 성당동에 개설된 시립 도축장때부터 운영을 맡아왔다. 도축장은 도시지역 확대와 주변의 주택지화에 따라 악취 공해 및 교통 혼잡을 유발했다. 1981년 4월 서구 중리동으로 신축 이전했다. 2001년 5월 다시 현재의 검단동으로 이전했다.53년 역사의 대구축산물도매시장이 마침내 문을 닫는다. 대구시가 위탁운영 기간이 끝나는 오는 2024년 3월 폐쇄키로 한 것. 전국 70개 도축장 중 유일하게 행정기관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동안 시설 노후화에 따라 개보수 비용이 급증하고 대구시가 인건비 등으로 연간 14억 원의 시비를 부담해 왔다. 인근에 첨단신도시인 금호워터폴리스가 내년 6월 준공될 예정인데다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도축장은 이전이나 폐쇄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하루 어미돼지 200마리를 처리했던 대구 도축장이 문닫으면 경북도내에서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부족, 경북 양돈농가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경북 도내 도축장시설 증설이 과제로 떠올랐다. 도축장 폐쇄 시 직원과 중도매인 등 종사자들의 대책도 필요하다. 대구의 대표적 먹거리 명소인 막창 골목도 원료 수급에 비상이다. 묘안을 찾아야 할 판이다. 대구시는 폐쇄될 도매시장 부지(3만7천579㎡)에 도시철도 4호선 차량기지를 설치할 계획이다. 입지를 찾지 못해 애태우던 4호선 차량기지 문제가 일시에 해결됐다. 대구시는 꿩 먹고 알 먹기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7-10

의대 광풍의 그림자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의대 광풍(狂風)이 거세다. 사교육 1번지, 대치동 학원가에서 시작된 ‘초등생 의대 진학반’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과학기술과 첨단산업을 이끌어야 할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휴학·자퇴·재수를 서슴지 않는다. KAIST를 비롯한 4대 과학기술원과 포스텍의 재학생 중 매년 200여 명이 자퇴 후 상당수가 의대에 가고 있다.이러한 ‘의대 블랙홀’은 심각한 문제이며 원인 분석과 대책이 시급하다. 의대 광풍의 원인은 무엇보다 고소득·안정성에 있다. 공대는 SKY대라도 취업이 쉽지 않지만, 의대는 지방대라도 취업 걱정은 없다. 공대는 고소득자가 되려면 석·박사가 필수지만, 의대는 비인기전공이라도 고소득이 보장된다. 특혜나 다름없는 의사면허증이 사회의 공정성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의대 광풍에도 의사가 없다”는 아우성은 ‘불편한 진실’이다. 의사들이 힘들고 위험한 필수진료과(외과·내과·소아과·산부인과)를 기피하고 돈이 되는 전공(피부과·성형외과·이비인후과)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최근 지방의 한 종합병원은 연봉 10억을 제시했는데도 심장내과 의사를 구하지 못했다. 의사들은 신입생 증원, 간호법, 의사면허취소법 등을 반대하고 있으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환자를 인질로 삼아 파업도 불사함으로써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물론 존경받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평생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헌신·봉사하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상태에서도 환자 곁을 떠나지 않았던 장기려 박사, 94세 임종하는 그 순간까지 소외된 환자들을 보살폈던 한원주 원장과 같은 ‘한국의 슈바이처들’이 지금도 촌각을 다투는 생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오직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 덕분에 의사들이 존경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처럼 의사들에게는 두 얼굴이 있다. 우리는 의대 광풍에서 ‘빛’이 되어야 할 의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본다. 의사가 존경받으려면 돈과 명예가 아니라 희생과 헌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의사는 성직자와 같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필수진료과를 기피하고 돈이 되는 전공에 몰리는 의사들의 행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의대 광풍은 반드시 멈춰야 한다. 정부는 의사들의 파업에 굴복하여 18년째 동결된 정원(3천58명)을 대폭 확충하여 붕괴된 필수의료체제를 조속히 복구해야 한다. 기득권이 강화되어 특권층이 되어버린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의사는 생명을 맡긴 환자의 믿음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 의사에게는 전문성 못지않게 소명의식이 중요한 이유다.의사의 행복과 소명의식은 적성과 자질에서 나온다. 고소득과 명예에 현혹되어 의대 광풍에 휘둘리는 부모의 욕심은 자녀의 불행을 초래한다. 부모와 선생님의 권유로 2015년 명문 Y대 의대에 들어갔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서 올해 초 자퇴하고 다시 J대 수학교육과에 입학한 B군의 사례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23-07-10

보부상이 거닐던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미역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 가는 고개/ 대마 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가는 고개/ 반평생을 넘던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 서울 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오고 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자고 넘네/ 꼬불꼬불 열두 고개 주물주도 야속하다/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전해져 내려오는 민요에서 언급된 이 고개는 경북 북부 울진과 봉화를 넘나들며 전국의 장시를 다니던 보부상들이 남겨놓은 옛길이다. 현재 산림청에서 조성한 첫 숲길이자 과거 동해안과 내륙의 물류가 오고 가던 창구이기도 했다. 12령이라 불렸으며, 울진·죽변·흥부에서 시작하여 북천 두천리(말재)를 지나 바릿재와 샛재를 거쳐 봉화로 이어진다. 조선 후기에는 전국적 단위를 형성하여 성장하던 보부상들이, 일제강점기 이후로는 등짐장수·지게꾼·선질꾼이라 불리는 지역 단위의 행상인들이 주로 이 고개를 애용하였다. 이들은 많게는 100명까지도 모여 함께 고개를 넘었으며, 샛재 성황사에 상업의 번성과 안녕을 비는 제를 올렸고, 성황사 내 중수 현판에 그 기록을 남겼다. 과거에는 여러 주막도 있고, 서낭당도 있어서 밥을 먹거나 하루 쉬어가기도 했던 12령 길은 현재 교통로로서의 가치는 거의 상실했다. 불영계곡 옆 36번 국도가 개설되어 물류의 통행로가 변화하기도 했고, 무장공비 사건으로 소수 남아있던 마을을 이전하기도 했다. 지금은 2007년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이 조성되고 일반에 개방되면서 우리 문화재 유지·보수를 위한 보호 임업 자원이자 관광명소로서 그 가치를 높여가고 있다.예부터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함께 성장해 온 나무로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솔’은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지는데, 늘 푸른 모습이 절개와 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인기가 있었다. 또한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어 활용도가 높아 생활 전반에 쓰임이 많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에 솔잎을 매달아 경계 삼았고, 죽으면 관의 재료로 활용하였다. 때로는 나무 속살로 구황을 위한 죽을 끓이고, 때로는 송화 다식·송편·송기떡·송엽주 등 먹거리로 만들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소나무의 여러 쓰임에 익숙해져 있다.이러한 소나무 중에서 소위 명품으로 인식되는 것은 황장목·춘양목이라고도 불리는 금강소나무다. 금강소나무는 단단한 심재가 유난히 많아 황색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에 황장목으로도 불린다. 다른 미송에 비해 천천히 자라는 반면 강도가 2배 이상 강하고, 줄기가 30미터 이상 가늘고 곧게 자라고, 나이테의 폭이 좁아 무늬가 아름답고, 조직이 치밀하여 뒤틀림이 적고, 천연방부제 성분이 배어 나와 잘 썩지 않는다. 특히 해충의 피해에 강하며, 내구성의 변화도 거의 없어서 기와가 올라간 무거운 한옥의 지붕도 잘 견디므로 궁궐과 같은 목조 건축물의 자재로써 인기가 매우 높았다. 조선 후기에는 왕실에서 금강소나무로 만든 관곽묘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60처의 황장봉산이라는 보호구역을 설정하여 입산을 금지하기도 했다. 숙종때 처음 실시되었던 조선의 봉산제도는 용도에 맞게 생산임지·공익임지·준보전임지로 나누는 현재의 제도처럼 선재와 건축재를 위한 봉산, 지정학적 요충지로서의 봉산, 관곽재를 위한 봉산, 수도(한양) 인근의 봉산으로 나눠 관리하였다. 봉계석은 대개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여 음각으로 새기고 산지기 이름과 경계를 표시하였다. 현재 대부분의 금강소나무 숲이자 과거 황장봉산은 강원도와 경상 북부를 잇는 태백산맥에 집중되어 있다.한편으로 금강소나무는 춘양목으로도 불린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80년대 초까지 건축과 땔감용으로 많이 벌목되었는데 주요 공급처인 서울에 공급되기 전 춘양역에 모아서 보냈기에 춘양목이라 불렸다. 일제강점기에는 강릉에서 베어진 금강소나무가 호산항에 집결되어 일본으로 반출되기도 했다. 금강소나무는 일제강점기·한국전쟁·산업 발전 시기를 거치는 동안 보호보다는 활용에 더 치중되었고 손쉽게 벌목되었다. 일본이 ‘신궁산림 200년 계획’을 세워 매년 봄 200~300년 후에 쓸 나무를 심고 보호하는 것에 비해 뒤늦게 금강소나무 숲을 보호하기 시작했다.현재 울진에 가면 국유림 금강소나무 숲길-보부상길·오백년소나무길·화전민옛길·대왕소나무길·보부천길-이 있다. 옛 보부상들이 무거운 등짐을 지고 넘어 다녔던 그 길을 지금은 500년 이상 자리를 지킨 금강소나무를 보기 위해 거닌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7-10

표류하며 뒤집히는 삼각형

패션모델계에서 시작한 영화는 호화 유람선으로 무대를 옮긴다. 잠잠했던 유람선은 바다의 기상에 따라 흔들리고, 해적의 습격을 받아 침몰한다. 그리고 난파된 유람선에서 탈출한 8명의 사람들은 섬에 표류된다. 장소에 따라 모두 세 개의 장으로 구셩된 영화는 1부 ‘칼과 야야’, 2부 ‘요트’, 3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3개의 구성을 관통하는 것은 ‘돈’이다. 돈을 축으로 계급과 인종, 성차별과 권력의 관계를 담는다. 숱한 상징과 은유가 있지만 깊거나 복잡하지 않다. 그래서 표면적이고 직접적이다. 1부인 ‘칼과 야야’에서는 패션모델계에서 남녀 모델의 차별을 다룬다. 모든 신체적 조건까지 세분화되어 평가되며 표정조차도 대중 브랜드와 명품 브랜드에 따라 바뀐다. 차별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등급에 따라 위치가 달라진다. 패션쇼 무대 정면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낙관주의를 가장한 냉소주의’라는 제목이 있지만 맥락도 없고, 의미도 와닿지 않는다.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한 장치. 화려하게 드러나는 것들의 치장을 지적한다. ‘평등’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지만 무대 밖에서 펼쳐지는 상황은 돈에 의해 자행되는 불평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칼과 야야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누가 돈을 내느냐의 문제로 다투는 장면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2부인 ‘요트’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거의 모든 것들이 집중되어 있다. 호화 요트는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이자 첨예한 계급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장소다. 부유한 탑승객과 이들을 시중드는 승무원, 노동자라는 3개의 계급만이 존재하고, 그들이 속한 계급 내에서도 역할에 따라 지위가 나뉜다. 요트라는 한정된 공간은 계급에 따라 역할이 다르고 그들의 활동공간이 철저히 나뉘는 장소로 작용한다.이곳에서도 ‘평등’은 재등장한다. 1부 패션쇼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타이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문장이 단순히 있어 보이기 위한 보편적인 평등을 장식적으로 사용했다면, 2부에서는 보편적인 평등이 주는 위선과 조롱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평등을 말하고 그 평등함은 보편적인 혜택과 지위를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계급에 따라 ‘평등’이 주는 무게감이 다르며, 상황에 따라 폭력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한정된 공간, 단순한 장소는 돈을 향한 욕망과 계급을 달리하는 ‘평등’이라는 표면적인 언어가 주는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견고했던 계급의 삼각형은 서서히 닥쳐오는 폭풍우와 함께 흔들린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폭풍우와 함께 조금씩 흔들리던 요트 위에서 배멀리로 인한 구토의 대향연(?)이 펼쳐지면서 우아함과 존엄을 잃고 무너지고 뒤집어 지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그려진다.폭풍이 지나간 후 해적의 습격으로 배는 침몰하고 섬에 표류한 8명의 생존자들과 함께 3부가 시작된다. 견고했던 계급의 삼각형이 흔들리고 뒤집어 지면서 요트라는 기존의 세계가 붕괴되고 섬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다다른다. 이제 이곳에서의 8명의 생존자들이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의 계급이 전복되어 또 다른 계급을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섬에서 필요한 생존에 관한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사람은 청소부 에비게일이다. 이를 통해서 에비게일은 무리의 중심에 서게 되고 사람들에게 역할을 나눠주면서 새로운 위계질서를 만든다. 이전에 각자가 몸담고 가지고 있던 부와 명예, 사회적 지위는 무용지물이 되고 오직 생존과 연결된 것들만이 가치를 지니면서 새로운 계급이 만들어진다.흔들리고 전복된 삼각형은 사람만 바뀌었을 뿐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다만 부와 명예에 따라 나눠졌던 계층이 오직 생존을 위한 기술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흔들고 굴려보고 뒤집어 보아도 삼각형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 모든 것들은 직설적이고 단순하게, 조롱과 함께 발칙하게 그려진다. ‘올해 가장 웃긴 영화,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라는 광고문구는 이해되지 않는다. 단 한차례도 웃질 못했다.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3-07-10

주민에게 피해를 떠넘길 순 없다

김진국 고문 나랏일이 공깃돌보다 가볍다. 1조 7천억 원이 넘는 사업이 하루아침에 이리저리 뒤집히고, 생겼다 사라진다.공자는 “군자가 신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배움에도 단단함이 없다”(君子不重 則不威 學則不固)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도 옥포해전에 앞서 부하들에게 “망동하지 말고 태산처럼 침착하고, 무겁게 행동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라고 당부했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을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민주당은 특위까지 만들어 조사에 나섰다. 그러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노선 검토뿐만 아니라 도로 개설 사업 추진 자체를 전면 중단하고, 이 정부에서 추진됐던 모든 사안을 백지화하겠다”라고 발표했다. 무슨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일을 이런 식으로 하는지 기가 찬다.2017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이후 추진돼 오던 사업이 그냥 사라졌다. 지역 주민들은 얼마나 황당할까.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책임을 다 떠안아야 하나. 결국은 정치 싸움 탓이다. 야당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땅 때문에 고속도로 노선을 바꿨다며 정치 공세에 나섰고, 원 장관은 “그러면 다 하지 말자”라고 어깃장을 놓았다.사실 다 있을 수 있는 일들이다. 고속도로 노선이 갑자기 바뀌었는데, 바뀐 종점 부근에 대통령 부인 일가의 땅이 축구장 5개 크기가 될 정도로 많다고 한다. 그러면 당연히 의문을 품을 만하다. 야당 정치인이라면 문제를 제기하고, 조사해야 마땅하다. 사실 옥신각신하는 여야 공방을 보면서 필자도 그 인과관계를 깔끔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정치적으로 호불호에 따라 어느 쪽을 편들 수는 있겠지만, 의문이 말끔하게 해소된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물론 정부나 집권당이 걱정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취임 이후 야당은 한 번도 협조한 적이 없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특히 대통령 부인은 야당이 공격을 집중하는 표적이다. 한번 문제를 제기하면 합리적인 해명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일부 네티즌은 무속 문제 등을 제기하며 사진을 조작하는 등 가짜뉴스도 만들었다. 심지어 13년이 지난 천안함 피격사건조차 아직 의혹을 제기하는 세력이 있으니 말해 무엇하겠나. 해명을 해봐야 내년 총선까지는 의혹을 끌고 갈 것이라는 걱정이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그렇지만 국정을 계속 이런 식으로 끌고 가야 하는지 걱정이다. 야당은 온갖 의심과 의혹을 부풀리고는 합리적 조사와 정리, 대안 만들기는 회피하고, 정부·여당은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수조 원짜리 국가사업을 기분에 따라 마구 뒤집고…. 다 할 말은 많겠지만, 정치인들의 진흙탕 싸움에 죽어나는 건 국민이다. 차라리 일론 머스크와 마크 저커버그처럼 이종격투기라도 하는 게 국민에게 피해는 덜 주지 않겠나.원 장관이 백지화하겠다는 건 사태를 수습하는 속임수에 가깝다. 그 정도의 충격적 요법이 아니면 야당의 공세를 막아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욕하면서 같은 길을 간다. 국민의 공포, 두려움, 혐오감을 창과 방패 삼아 정치적 이익, 총선 의석을 지키려는 것이다.문제는 절차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양서면으로 그어졌던 노선을 갑자기 강상면으로 바꾸려면 합당한 과정을 거쳤어야 옳다. 그렇게 바뀐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먼저다. 나들목이 아니라도 서울 가는 시간이 단축되는 건 사실이다. 억지 해명은 오히려 의혹을 부풀린다. 또 해명대로 아직 결정되지 않은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라면, 왜 다른 대안들을 추가로 검토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사업 백지화로 의혹을 해소할 수는 없다.야당도 무조건 과거 노선으로 돌아가자고 할 건 아니다. 원래 노선과 대안 노선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따져봐야 한다. 전략환경영향 평가 결과를 보면 대안 노선이 우수한 이유를 많이 설명해놓았다. 김 여사 가족 땅이라고 무조건 피해 갈 수는 없다. 공청회를 열든 여론 수렴을 거쳐 노선을 정리하고, 사업은 다시 진행하도록 정치권이 합의하는 게 옳다. 애먼 주민들에게 피해를 감당하라고 할 수는 없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7-09

기후위기상황서 인류의 생존전략, ESG경영

유성찬 (협동조합) 지속가능사회연구소 소장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포항시민연대 공동대표 2007년쯤 필자가 한국환경공단의 관리이사(현 경영본부장)로 재직중이었을 당시에 필자에게 경영전략에 대해 조언을 하고자 찾아온 경영학박사 한 분이 있었다.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기업에서 경영전략을 수립해본 경험이 있는 그 이는 공공기관의 새로운 경영전략이 필요하다면서, 일이 즐거운 기업, 여성친화적 기업, 평화적 노사관계, 인권을 중시하는 기업 등 요즘 기업문화에서 대세를 이루는 경영방침들을 조언해 주었다.이후 한국환경공단을 포함하여 모든 공공기관들은 당시 기획재정부가 추진한 공공기관에 대한 경영성과평가로 인해 경영전략들이 현대화, 고도화되기 시작하였다.그래서 필자도 그 경영학박사로부터 배운 학습효과로 나름대로 좋은 경영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노사관계와 관련하여 노동조합과 함께 한국환경공단의 새로운 노사문화정립을 위해 추진했던 활동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다시 2019년 한국환경공단으로 돌아와 상임감사 역할을 맡아 일을 할 때에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코로나19가 창궐하여 팬데믹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팬데믹의 원인이 기후온난화로 인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득세였다는 세계적인 과학자들의 주장과 뉴스가 넘쳐났다.이 무렵에 비로소 공공기관에서는 ESG경영이라는 화두가 본격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E(환경-Environment), S(사회적 가치-Social), G(투명성 또는 지배구조-Goverance)라는 의미를 가진 ESG경영방법론이 바로 그것이다.평생고용, 안정적, 평화적 직장문화를 추구하는 유교자본주의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 지구온난화, 기후위기에서 비롯된 지구환경문제, 인류파멸을 막아야 하는 경영방법론으로 ESG경영방침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또한 ESG경영방법론은 세계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으뜸의 방침으로 등장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전(全)사회적이고도 사회경제적, 국가제도적인 정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경쟁하는 정글, 적자생존의 시장경제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한 자본주의라면 당연히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ESG경영문화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위계질서보다는 직원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여성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기업문화, 직원들의 자존감을 살려주는 회사분위기, 중소기업의 이익도 챙겨주는 동반성장과 공유경제, 청년들의 벤처정신을 살리는 진취적인 기업, 직원들의 가족에서부터 지역사회의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업시민 등의 의미를 갖는 ESG경영전략은 시장경제사회를 ‘사람이 사람다운 기업문화’로 변화시켜 나가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ESG경영에 기반한 미래사회의 사회상에 대해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첨언하여 ESG경영전략의 태동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의 연합체인 유엔(UN)은 인류의 평화적 생존을 위해 2000년에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s·Millennium Development Goals)라는 의제를 채택하였다.그 의제의 핵심적 목표는 지구상의 빈곤인구를 2015년까지 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밀레니엄개발목표는 성공을 하지 못했고 연장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후위기가 지구를 덮쳤다. 지구의 온도가 1.5℃ 더 상승하면 인류는 파멸할 것이라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5년 파리기후협약이 지구촌사회에서 체결된다.그리고 현존하는 우리 세대의 삶을 지속가능하면서, 우리의 후손들인 미래세대의 삶도 지속가능하도록 유지되는 새로운 발전목표가 필요하다는 데에 유엔은 결론을 내렸다.즉, 2000년 밀레니엄 시대까지는 지구온난화가 에너지의 절약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막연히 계획을 하였다가 2015년 파리기후협정 이후부터는 탄소중립(넷제로)문제가 인류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생존전략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그래서 유엔은 다시 밀레니엄 개발목표(MDGs)를 업그레이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2015년 유엔총회에서 발표하였던 것이다.17개의 목표 중 주요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모든 형태의 빈곤퇴치, 지속가능한 농업, 성(gender)평등, 깨끗한 물, 값싼 청정에너지, 양질의 노동과 경제성장, 불평등의 감소, 지속가능한 도시 및 공동체, 기후변화와 대응, 합리적인 수자원 활용, 토양 및 삼림보호, 평화와 정의로운 제도,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범지구적인 연대가 그것이다.그리고 유엔이 지구를 지키는 생존전략으로 제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공공기관과 시장경제, 기업문화에 적용시킨 경영방법론이 ESG경영이다. 그렇기에 기후위기 상황에서 인류의 생존전략 또한 ESG경영인 것이다.

2023-07-09

웃으면 복(福)이 와요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말이 있다. 또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웃는 문으로는 만복이 들어옴)’라는 말도 있다.웃어야 할 때 웃지 못하는 것은 삼류, 웃을 때 웃을 수 있는 것은 이류, 힘들 때 웃는 것은 일류이다. 웃을 준비가 돼 있는 사람, 아무리 어려워도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복(福)이 들어온다.그러나 얼굴을 찡그리고 매사 부정적인 사람, 그래서 마음의 문이 닫힌 사람에게는 복(福)이 들어오기 어렵다.‘나이 사십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태어날 때는 부모가 만든 얼굴이지만, 그다음부터는 자신이 얼굴을 만드는 것이다.웃음은 정신과 신체 건강에 도움이 된다. 웃음의 의학적·건강학적인 효과는 무수히 많이 있다. 웃음은 스트레스를 극복하게 해주는 ‘항 스트레스 효과’가 있다.인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개 자율신경 중 교감신경을 지나치게 항진시켜 문제를 일으키는데, 웃음은 부교감신경을 항진시켜 교감신경의 항진을 상쇄시키고 교감신경자극으로 인한 긴장을 이완시켜준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경 내분비계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cortisol)과 에피네프린(epinephrine)이 분비된다.그런데 웃음은 코티솔과 에피네프린의 양을 줄이고 엔돌핀(endorphin), 엔케팔린(enkephalin)을 대량 분비시킨다. 적대감, 분노 등을 누그러뜨리고, 뇌에 쾌감을 줘 스트레스받을 일도 스트레스가 되지 않게 한다.웃음은 건강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면역기능을 증진하고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면역기능이라고 하면 한마디로 우리 몸의 군대이다. 국가도 군사력이 강해야 다른 나라가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우리 몸도 면역력이 강해야 병에 잘 걸리지 않고 설사 병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병과 싸워 이겨 회복이 빨라진다.웃음 특히 입이 쫘악 벌어지는 호탕한 웃음은 비록 짧은 순간이라도 항체 생성 효과, 즉 면역력 증가 효과가 3일 이상 지속된다.따라서 하루에 한번이라도 크게 웃는다면 의사를 멀리 할 수 있다. 반대로 스트레스를 받아 한번 얼굴을 찡그리면 하루 동안 면역기능이 훨씬 낮아진다는 사실이 의학적으로 증명되어 있다.웃음은 대인관계에도 윤활유 역할을 한다.‘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속담처럼, 내가 먼저 웃으면 상대방도 잘 대해 준다. 밝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에겐 호감이 간다.미소가 만연한 얼굴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고 신뢰감도 상승한다. 밝게 웃는 사람에게는 유대감도 깊어지고 그 밝은 에너지는 주위로 잘 전이되어 좋은 사람이 모인다.이렇듯 웃음은 인간관계에도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된다. 미인계(美人計)보다 미소계(微笑計)가 한수 위이다.웃음은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이 웃으면 웃을수록 좋다. 물론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흔히들 ‘웃을 일이 있어야 웃지’라고 하지만, ‘웃어야 웃을 일이 생긴다’고 말하고 싶다. 웃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진짜로 웃을 일이 생긴다.안면 피드백 이론(Facial feedback theory)에 의하면, 우리의 감정은 얼굴 표정에 영향을 받는다.우리는 표정을 통해 우리의 감정을 조절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기분이 좋을 때만 웃는 것이 아니라 웃음으로써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다.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웃을 수 있을까. 웃을 여유조차 없는데 어떻게 웃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그러나 가장 심하게 고통받는 순간 우리는 웃어야 한다. 웃음은 몸과 마음이 아플 때 견딜 힘을 주는 엔돌핀, 엔케팔린 같은 뇌신경전달물질이 많이 분비된다.또 행복호르몬인 도파민(dopamine), 세로토닌(serotonin) 분비까지 증가한다. 웃음은 마약성 진통제보다 더 강력한 천연진통제이고 어떤 항우울제보다 더 강력한 천연항우울제인 셈이다.억지로 웃어도 효과가 있다. 억지로 웃어도 얼굴의 근육들이 움직여 뇌에 신호를 보내면 뇌는 웃는 일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후속 일들을 처리한다.우리의 뇌는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 실제와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억지웃음도 효과가 있음이 의학적으로 증명돼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 그냥 속으로 ‘김치’라고 말하며 ‘입 꼬리를 살짝 올려만 주어도 된다’. 웃자, 웃자, 매일 웃자. 월요일은 원래 웃고, 화요일은 화사하게 웃고, 수요일은 수수하게 웃고, 목요일은 목숨 걸고 웃고, 금요일에는 금방 웃고, 토요일에는 토실토실 웃고, 일요일에는 일어나자마자 웃자.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얼굴 찡그린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어려울수록 힘들수록 마음의 여유를 갖고 웃을 수 있는 마음, 그리고 웃어야 한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은 뇌과학적으로 증명된 진리(眞理)이다.웃음이야말로 삶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해주는 지혜로운 행동이다. 역경(逆境)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2023-07-09

엘리베이터 스피치(Elevator Speech)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기업을 경영하는 CEO의 대표적인 애로사항은 ‘시간 부족’이라고 한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아니고는 CEO가 일반 직원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어 일반 직원이 업무에 대한 아이디어나 의견이 있어도 CEO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상급자를 통해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평균적으로 1단계 거칠 때마다 약 20~40%의 정보가 왜곡되어 3단계만 거치면 70%가 거짓 정보로 전달된다고 하니 직접 의견을 전할 수 있는 기회 엘리베이터 스피치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일반 직원이 CEO를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는 우연히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가는 시간이 있다면 이때가 가장 좋은 기회인데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사전에 준비하지 않으면 놓치는 것은 물론 무능함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례로 우연히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게 되었는데 사장님이 “김 과장! 에너지 절감 프로젝트는 어떻게 잘 돼가나?”라고 물었을 때, 첫 번째, 당황하여 시선은 바닥에 둔 채 머릿속엔 단어들만 둥둥 떠다니며 우물쭈물 어버버하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지정된 층에 도착하고, 전해지지 못한 대답은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김 과장의 능력 없음만 사장님의 기억에 남게 되는 유형.두 번째 유형,“계획 중에 있습니다만,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고, 생산성도 달성해야 하고, 해외법인도 지원해야 하고, 인당 생산성, 전력 원단위, 실수율 하락….”까지 말하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장님이 내려 버린다면? ‘에너지부는 아직도 문제가 많구먼!’ 에너지부 직원 전체가 무능력으로 전락하게 되는 순간.세 번째 유형, “현재는 에너지 절감에 대한 직원들 의식이 바뀌지 않은 점도 있고, 과제 수행 밀착도도 그리 높지 않지만 지속적인 변화관리와 성공 체험을 하면 의식변화와 함께 3분기 말에는 1차 목표에 도달하고, 김 대리가 현장 배치되는 8월부터는 과제의 내용을 좀 더 밀도 있게 진행하면 에너지 절감 프로젝트는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답변하고 회장님이 의문 가는 사항 한 가지 정도 질문에 “예, 아니오”단답형 대답을 하고 문이 열리면 김 과장의 앞날도 파릇파릇 잔디를 밟게 될 것이다.이처럼 자신의 업무에 대하여 평상시에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기회가 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일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는 의외로 보이지 않는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참고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시간을 초과해서 답변하는 것보다는 준비가 안되면 차라리 일찍 대답을 종료하고 그다음 상황을 살피는 게 시간을 초과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위에서는 상황 설정을 엘리베이터에 두고 이야기했지만 우리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서부터 내릴 때까지 약 60초 이내의 짧은 시간 안에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게 내 머릿속의 생각들을 늘 정돈해 두자.

2023-07-09

자전축이 기울다니요

유영희 작가 지난 6월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서기원 교수 연구진이 엄청난 논문을 발표했다. 지구물리학 연구 회보에 발표한 논문에서 연구팀은, 1993년부터 2010년까지 인류가 퍼 올린 지하수가 2조1천500t이라고 추정하면서, 이렇게 인위적으로 대량의 물이 이동하면서 지구 자전축이 기울었다고 한다. 연구에서는 이 정도 양이면 해수면이 6.24mm 상승할 만하다고 덧붙인다.이 뉴스에 이어서, 며칠 전에는 환경 단체 ‘멸종 저항’이 스페인 전 지역의 골프장의 홀컵을 시멘트와 채소 모종으로 메웠다는 기사가 나왔다. ‘멸종 저항’은 지구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2018년 영국에서 결성된 단체인데, 유명한 청소년 기후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멸종 저항’은 ‘스페인 전역에서 437개의 골프장에 매일 대는 물은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합한 인구가 사용하는 양보다 많다’고 주장하면서 유례없는 가뭄에도 인구의 0.6%만이 즐기는 운동을 위해서 물을 이렇게 많이 사용한다고 비판한다. 더 찾아보니, 이 단체는 2022년에도 프랑스에서 골프장 홀을 시멘트로 메운 일이 있었다. 기사로 추측하건대, 올해는 시멘트로 막기만 한 것이 아니라 채소 모종도 심은 것을 보면 운동 방법이 진화한 것 같다.시멘트로 골프장 홀 컵을 메우는 직접 행동으로 ‘멸종 저항’이 벌금을 물거나 체포되지 않았을지 걱정은 되지만, 그 홀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많은 물을 쓰는지 안다면 이들의 직접 행동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미국 골프 협회(GCSAA)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 골프장은 매일 물 1억7300만 리터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약 58만 명의 미국인이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한국 통계를 보면, 2020년 전국의 1만 여개 홀에서 거의 45만 리터를 썼다니, 하루 약 300 리터를 쓰는 한국인 기준으로 150만 명이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지구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나 역시 소박하나마 물을 덜 쓰고 오염을 줄이려고 나름대로 애써왔다. 1회용품은 안 쓰거나 재사용하는 것은 물론, 2년 전부터 비누로 머리를 감고 있고, 수십 년간 손빨래를 했다. 세탁기가 물 사용량도 많고 합성세제 때문에 물을 오염시킨다고 해서다.그러나 아무리 수질 오염에 생활하수의 비중이 60%에 달한다고 해도 개개인의 실천에는 한계가 있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질 정도로 지하수 퍼내는 일을 줄이는 것, 골프장의 물 공급을 제한하는 것은 대대적인 정책으로만 가능한 일인데, 이런 소소한 개인의 실천은 자기만족이 될 가능성도 있고, 손가락에 병이 나거나 다른 사정이 생기면 손빨래를 계속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그렇다고 개인의 실천을 멈출 수는 없다. ‘멸종 저항’ 같은 정치적 직접 행동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자기 생활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생수 덜 사먹기, 세탁기나 에어컨 덜 쓰기를 하는 것도 여러 사람이 함께하면 의미가 있다. 인간이 자전축을 기울였으면 인간이 멈출 수도 있다.

2023-07-09

초복(初伏)

우정구 논설위원 내일(11일)이 초복이다. 사마천 사기에 의하면 진나라 덕공2년(기원전 676년) 음력 6∼7월에 복날을 만들어 개를 잡아 열독(熱毒)을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왕은 잡은 고기를 더위에 지친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며 기운을 차리게 했다고 한다.복날의 엎드릴 복(伏)자는 사람 (人)과 개(犬)가 합쳐진 글자다. 사람이 더위에 지쳐서 개처럼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매년 7월에서 8월 사이에 찾아오는 삼복(三伏)은 초복, 중복, 말복으로 나뉘나 이 시기가 가장 더운 때다. 초복은 대략 7월 11일부터 20일 사이로 소서와 대서 중간이다. 본격적 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시기다.이때는 대개 학교가 여름방학에 들어가고 직장인들도 여름휴가에 들어가 잠시나마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게 된다. 낮 기온은 33도 이상인 날이 많고 밤에는 25도 이상 올라가는 열대야가 자주 등장한다.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체력 소모가 많아 예로부터 체력 보강을 위한 고칼로리 보양식을 먹어왔다. 복날이 바로 보양식 먹는 날이다. 옛날에는 보신탕을 주로 먹었으나 요즘은 삼계탕이 대세다. 육개장, 장어, 추어탕, 흑염소 등도 찾는 이가 있다. 복날 음식은 대체적으로 이열치열의 음식으로 구성된 게 특징이다.문헌 기록을 보면 복날은 우리의 선조들도 술과 음식을 준비해 계곡이나 산을 찾아 더위를 식혔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는 개를 잡아 파를 넣고 푹 삶은 것을 개장이라 했고 이를 삼복에 좋은 음식으로 꼽았다고 적혀 있다.지금은 보신탕 집이 거의 사라지고 삼계탕과 냉면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초복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여름철 건강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할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7-09

죽음의 죽음에 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태곳적부터 인간은 불멸을 꿈꾸었다. 인류의 가장 오랜 서사시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주인공 길가메시는 친구인 엔키두의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고통받는다. 필멸(必滅)해야 하는 존재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을 모색하다가 그는 우트나피쉬팀에게 영생의 비법을 알아낸다. 하지만 우르크를 목전에 둔 지점에서 뱀에게 영생의 불로초를 도둑맞고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대략 4,500년 전에 지어진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죽음은 중요한 주제였다. 죽음과 불멸에 가장 친숙한 사람은 진시황일 것이다. 죽고 싶지 않았던 그도 죽음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가 횡행하면서 대략 680만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구촌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일으키는 병은 결핵과 말라리아로 알려져 있다.그런데 결핵이나 말라리아 혹은 코로나19보다 훨씬 많은 사망자를 낳는 질병이 있다. 그것은 노화 관련 질병이다. 세계 전역에서 하루 평균 15만 명이 죽는데, 그 가운데 10만 명 이상이 암이나 심혈관-뇌혈관 질환 같은 노화 관련 질환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민주주의의 보급으로 전쟁과 기아, 테러로 인한 사망자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따라서 21세기 인류의 가장 큰 적은 전쟁이나 기아가 아니라 노화와 노화 관련 질병이다.몇몇 미래학자들은 인체의 노화를 되돌리고 노화를 예방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기회가 가시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공학자인 호세 코르데이로와 데이비드 우드는 노화는 질병이며,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공언한다. 그들은 2045년이면 ‘죽음’이 선택사항이 될 수 있다는 담대한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수천 년 전 20∼25세였던 인류의 평균수명은 오늘날 80세를 넘어서고 있으며,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나도는 요즘 그들의 주장이 공허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히드라나 홍해파리 혹은 플라나리아 같은 불멸의 생명체에서 인류가 영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내고자 수많은 사람이 항노화(抗老化)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그들이 노화를 막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넘어서려는 생명공학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여기서 문제는 죽음이 오기 전까지, 그러니까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핵심적인 과제로 대두된다. 오래 사는 것도 부족해서 영생불사(永生不死)하는 존재로, 그러니까 인간이 신의 반열로 올라설 때 그 인간은 무엇을 지향하면서 기나긴 삶의 시간대를 보낼 것인지, 하는 문제가 급선무로 등장하는 것이다.1762년 출간된 장 자크 루소의 ‘에밀’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양심의 가책 (苛責)과 육체적 고통을 제외하면 인간의 여타 괴로움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육체가 문제없다면, 남는 것은 오로지 정신, 즉 양심의 문제일 터, 그것만이 문제로다!

2023-07-09

문화예술과 관광을 즐기는 청도로

김하수 군수 문화는 지역을 지탱하는 힘이며 지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준다.국가가 되려면 영토와 국민, 주권의 3요소가 꼭 필요한 것처럼 지역이 바로 서고 오랜 역사를 간직하려면 지역을 관통하는 흐름을 주장하는 문화가 꼭 필요하다.문화는 예술과 분리되지 않고 한 몸을 이룬다.어느 지역을 이야기할 때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와 예술을 거론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청도는 삼한 사회의 이서국(伊西國)이 있었던 곳으로 경치가 아름답고 미풍양속으로 많은 문인과 학자, 예술가를 배출한 유서 깊은 고향이다.고대부터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였던 화랑도 정신과 대한민국의 근대사에서 빠지지 않는 새마을운동 등 큰 줄기의 문화와 지역 특성이 있는 문화예술이 존재한다.삼국통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신라 화랑도의 세속오계는 승려 원광에 의해 운문면의 가슬갑사에서 일생을 두고 경계할 금언을 청한 화랑 귀산과 추항에게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사군이충(事君以忠)과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유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등의 세속오계는 무궁한 세월이 흐른 현대에도 그 가치가 빛을 발하고 있다.또 하나의 문화가 근대사의 한 획을 그은 새마을운동이다.청도읍 신도리를 발상지로 하는 새마을운동은 근면과 자조, 협동을 중심으로 가난에서 벗어나 잘살아보자며 농촌경제발전과 농가소득 증가를 목표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세계적인 운동으로 발전해 새마을운동을 배우고 그 정신을 습득하고자 많은 나라가 지속으로 찾는 운동이 되었다.여기에 청도 하면 떠오르는 정월 대보름의 도주 줄다리기와 달집태우기, 소싸움, 청도읍성 밟기 등 문화예술을 자랑한다.도주 줄다리기는 화양읍이 정월 대보름에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로 줄다리기를 통해 그해의 흉과 복을 점치기도 했다.도주 줄다리기는 고을 단위의 줄다리기로는 그 규모가 매우 크고 역사가 오래며 도주줄이나 영남줄, 읍내줄, 화양줄로도 불린다.특히 2025년 말까지 준공될 400석 규모의 청도아트홀(공연장)은 군민의 문화 욕구를 어느 정도 해결하며 지역의 문화예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다.이 같은 문화예술에 관광이 더해지면 그 시너지 효과를 무시하지 못하며 방문객들에게 각인된 관광자원은 긴 세월을 두고 지역에 경제적인 파급 효과를 제공하는 보고가 된다.맑은 물과 맑은 공기, 푸른 산의 청정자연을 자랑하는 청도는 1시간 거리에 1천300만 명이라는 관광수요자원을 가진 요충지로 지역이 가진 관광자원을 잘 활용하고자 방안들을 마련하며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청도는 중앙에 있는 용각산을 중심으로 산동과 산서로 나뉘고 산동과 산서는 지형적 특색에 따라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운문산이 있는 산동에는 운문사와 운문댐, 가지산, 억산 등과 자연 풍광을 자랑한다.또 산서지역은 유호 연화와 낙대폭포, 자계서원과 비슬산 참꽃 군락지, 성곡댐 등이 있다.이러한 자연을 이용해 날로 증가하는 산림 생태·휴양 수요에 대응하고자 지난해 6월 23일 청도자연휴양림을 개장해 최대인원 136명을 동시에 수용하며 지친 몸과 마음에 힐링을 제공하고 있다.또 청도국립숲체원과 운문산자연휴양림에서 산림 체험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올해 개최된 K-웰니스 푸드투어리즘 페어에서 산림치유 부문 대상을 받는 등 자연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며 수익성을 창출하고 있다.청도 나들이 투어버스를 운행해 지역의 사계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주민들과 관광객이 함께 선정한 ‘청도 관광 9경’은 주민과 관광객의 취향과 눈높이를 존중해 지역의 대표 관광 명소로 육성할 계획이다.청도 관광 9경은 청도읍성과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공원, 청도신화랑 풍류마을, 운문사, 섶다리한옥마을, 낙대폭포, 유등연지, 와인터널, 청도레일바이크 등이다.청도의 관광은 자연에만 그치지 않고 먹거리로도 연계된다.봄에는 한재의 미나리와 지역을 뒤덮는 복숭아꽃, 여름이면 특산물인 복숭아, 가을에는 청도 반시, 겨울에는 반시를 이용한 감 말랭이, 감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청도다.이처럼 지역의 문화예술을 계승·발전시키고 새로운 관광자원을 개발해 나간다면 여러 세대가 함께 생활하며 웃음꽃을 피우는 청도가 결코 꿈은 아니다.

2023-07-09

가진 건 이것 밖에

할아버지와의 끈은 그의 딸과 연결된다. 학부형으로 알게 된 그의 딸과 나는 속 이야기까지 터놓을 만큼 가까운 관계였다. 하지만 그의 딸은 작년 가을 고등학생 아들과 구순이 다 되신 친정 부모님을 두고 먼저 먼 산 노을처럼 져버렸다. 할아버지와 그녀의 아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마지막 길을 함께한 유일한 남은 자였다.그녀가 떠난 후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가정을 외면하지 못했다. 가끔 반찬을 해서 방문할 때면 눈까지 글썽이면서 나를 반기는 그들의 눈빛이 짙어서 또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걸음은 계절이 여러 번 갈마들 동안 이어졌다.찬바람이 부는 어느 날이었다. 저녁 무렵 반찬 몇 가지를 들고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 깜깜하고 자그마한 공간에 텔레비전 한 대와 노부부가 마주앉았다. 속옷 바람으로 나를 맞던 할아버지는 불을 켜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다리와 몸에 멍이 보였다. 연유를 묻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갑자기 눈이 잘 안 보여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졌다는 것이다.집으로 돌아온 나는 할아버지의 눈이 마음에 걸렸다. 다음 날 무작정 할아버지를 모시고 안과로 갔다. 수술비를 걱정하는 듯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염려하는 마음도 동반되어 나의 차에 올라탔다. 할아버지의 눈은 양쪽 모두 백내장이 많이 진행되어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수술 날짜를 예약하면서 나는 할아버지의 보호자란에 사인을 했다. 가족이라고는 미성년자인 손자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뿐이라 사인을 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어 준다는 것은 그만큼의 넓이를 책임져야 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는 누군가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자격에 대해 물음표를 던져 보았다.한 쪽 눈을 먼저 수술하는 날, 이른 아침 들어선 내게 할아버지는 표정으로 할 수 있는 미안함을 다 표현했다. 수술비가 걱정되어 차마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냈던 할아버지는 병명을 알게 되고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짐을 내려놓은 듯 가벼워 보였다. 몇 번을 머리까지 숙여가며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사흘 후, 다른 한 쪽 눈을 수술했다. 할아버지는 불편한 눈으로 아침 일찍 어딜 다녀왔는지 분주해 보였다. 이미 준비를 마치신 할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나는 진짜 보호자처럼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렸고 수술에 대한 설명도 함께 들었다.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은 모두가 홀가분했다. 나는 할아버지를 댁까지 모셔드렸다. 할아버지는 잠깐 들어가 커피 한 잔 하고 가라며 나를 붙잡았다. 그냥 가려다가 잠깐 들어가 앉았다.종일 애를 태우고 계셨던 할머니가 나를 반겼다. 내가 앉기도 전에 할머니는 밥통을 열었다. 밥통에서 기름기 가득 묻은 봉지를 하나 꺼냈다. 할아버지가 폐지를 팔고 받은 돈으로 아침 일찍 시장까지 가서 사 온 몸통이 드러난 옛날 통닭이었다. “내가 가진 거라곤 나이 밖에 없고 줄 게 없어서…” 할아버지는 말을 흐렸다. 김경아 작가 할아버지가 주신 통닭은 그저 감사의 표현만은 아니었다. 할아버지 또한 나를 자식만큼이나 의지하고 깊은 마음을 가지고 계셨으리라. 통닭의 온기가 날아갈까 밥통 안에 두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할머니의 마음과 할아버지의 정성에 목이 메어왔다.나는 이 가정을 통해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답을 찾았다. 이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움켜쥐는 것에 욕심내지 않았다. 베푸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표현할 줄 알았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게 되었다.수술을 잘 마친 할아버지는 눈이 잘 보여 이제 다시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무슨 인과 연으로 이들을 끊지 못하는지 알 수 없지만 들여다보고 올 때면 언제나 뜨끈한 옛날 통닭의 온기처럼 내 가슴도 뜨거워진다. /김경아 작가◇ 김경아 작가 프로필 ·수필 오디세이 신인상 ·포항소재 문학상 최우수상(2020) ·포항 스틸에세이 금상(2022) ·청송객주 문학대전 장려상(2022) ·울산 산업문화 축제 최우수상(2014) 외 다수 수상

2023-07-09

바람을 쐬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여름 들판을 바람이 달려간다. 초록 물결을 일으키는 저 투명 강아지들. 칠월의 열기를 휘젓고 벼들을 춤추게 하는 바람의 유희로 들판 가득 생기가 넘친다. 이 들판에 부는 바람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방향과 계절에 따라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된바람 등이 있고, 세기와 온도와 느낌에 따라 미풍, 강풍, 태풍, 돌풍이 있는가 하면 실바람, 남실바람, 산들바람, 건들바람, 소소리바람, 삭풍 등도 있다. 그 하나하나의 바람에도 또 무수한 스펙트럼이 있는 것이니 우리의 감관에 와 닿는 바람의 느낌을 이루 다 헤아릴 수는 없다.자연의 바람 말고도 우리 삶에는 여러 가지 바람이 있다. 멀리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풍류(風流)가 있고, 현대사회를 풍미하는 여러 종류의 바람도 있다. 춤바람, 치맛바람이 물의를 일으키던 때도 있었고 황금만능, 출세지향, 한탕주의 바람은 지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 중에서도 풍류는 민족 고유의 정서와 지혜를 내포한 ‘현묘지도(玄妙之道)’라는 근원을 가지고 있지만, 조선시대에 와서는 양반계급의 음풍농월(吟風弄月)이나 음악을 뜻하는 의미로 축소되었다가 지금은 거의 유명무실한 말이 되었다. 하지만 한류(韓流)라는 새로운 바람이 일어 세계를 휩쓸고 있으니 그 역시 풍류의 현대적 변용이라 할 것이다.“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일찍이 서정주 시인이 노래했듯이 우리 삶에서 바람을 빼면 그야말로 바람 빠진 풍선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신바람이란 말이 그렇듯 바람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고 활력인 것이다.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는 폴 발레리의 유명한 시구도 그런 의미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바람과 삶의 바람은 둘이 아니다. 자연의 바람이 가이아(Gaia)의 숨결이자 생태계의 호흡이라면 인간사회의 바람 역시 그 일환일 터이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행위가 바람일진대 기왕이면 신선하고 훈훈한 바람이면 좋을 것이다.들판을 가로지른 고가 철로 그늘에 웃통을 벗고 앉아 바람을 쐰다.‘바람을 쐰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불어오는 바람을 몸에 맞다’와 ‘기분 전환을 위하여 바깥이나 딴 곳을 거닐거나 다니다’가 그것이다. 나는 지금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셈이다. 땅 위에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바람이 불어 생태계의 모든 생물들이 수시로 바람을 쐰다. 그것은 곧 활력을 충전하는 일이다.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바람과 친밀하게 살아온 것 같다. 사계절이 뚜렷한데다 삼면이 바다이고 지형도 다채로워서 바람의 스펙트럼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말에는 ‘바람’이나 ‘風’자가 들어간 말이 많고, 감성의 결과 폭도 그만큼 세세하고 풍성하다. 고인 물은 썩는 것처럼 공기도 환기가 안 되면 혼탁해진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서는 창을 열어야 하고, 바람을 쐬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음습하고 혼탁한 세상은 침체할 수밖에 없고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을 새바람에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주 산과 들과 바다로 나가 바람을 쐬어야 한다.

2023-07-06

계절 따라 꽃은 피는데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시골집 골목에 주황색 종 모양의 능소화가 6월 중순부터 활짝 피었다. 옛날엔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고 ‘양반꽃’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지금은 아무 담장이나 나무에 등나무처럼 달라붙어 귀태를 뽐내는 여름꽃이라 금등화(金藤花)고도 한다. 노란 금계국이 피어 퍼드러졌던 큰길 지나 마을 입구엔 정갈한 무궁화도 피고 있다.뜨거운 열기와 장맛비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들의 잔치를 보고 싶어 이른 봄에 보았던 노란 유채꽃 들판에 이제 하얀 메밀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호미반도 해안길을 달렸다. 연오랑세오녀 공원을 지나 발산리를 지날 때쯤, 노란 꽃나무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작은 꽃들이 떨어질 때 황금비가 오는 것 같다고 ‘Golden rain tree’라고 하는 모감주나무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가보니 벌써 노란 꽃들이 소복이 떨어져 있다. 7월 개화라는데 이른 폭염 때문인지 벌써 만개가 되었던가, 그야말로 황금비가 내린 모양이다. 꽈리 모양 열매 속에 들어있는 까만 씨앗으로 염주를 만든다고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발산리 군락지는 병아리꽃나무 군락지와 함께 천연기념물 제371호이다.대동배를 지날 때쯤 갑자기 소나무숲이 붉게 변했다. 사태가 심각하여 내려보았더니 낮은 산꼭대기까지 모든 소나무가 죽어있는 것이다. 재선충병이다. 숲속으로 조금 들어가면 군데군데 녹색 비닐로 덮은 훈증 무덤이 보인다. 고사한 소나무를 잘라 방제하고 묶어둔 것이다. 소나무 불치병인 재선충병은 1900년대 일본에 극심한 피해를 주었고 우리나라는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최초로 발견된 후 최근 1년에 약 40만 그루를 고사시키고 있다. 1mm 정도 작은 벌레가 솔수염하늘소에 기생하여 나무껍질 속에 파고들어 고사시키는 치명적인 병이다. 이미 전국에 퍼졌고 올해는 2배 정도 급증할 것이라는 예측 보도가 있다.더운 날 병든 숲을 본 아픈 마음에 냅다 호미곶으로 달려 구만리 언덕을 넘으니 넓은 벌판이 그래도 마음을 식혀준다. 해바라기밭 길가에 주차하고 작은 원두막에 앉았다. 15만평 넓은 메밀꽃밭이 펼쳐지는데 지난번 봤던 그 하얀 소금밭은 어디 가고 검은 소금이 조금 뿌려진 듯한 늦은 6월의 메밀꽃밭이 보였다. 밭두렁 길을 걸어가며 메밀꽃 송이를 따보니 벌써 씨앗은 여물고, 멀리 꾸부정한 소나무가 ‘왜 이리 늦었냐!’고 나무라는 듯하다.십여 년 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따라 평창군 봉평마을에 갔을 때 해맑은 가을의 메밀밭을 걸어서 문학 산책을 하고 왔던 기억이 새롭다. 허 생원은 밤길을 동행하게 된 왼손잡이 동이에게서 아들의 흔적을 보았지….흰 눈 내린 듯한 여름 꽃밭을 보지 못한 아쉬움에 ‘상생의 손’으로 가서 갈매기 날개짓 따라 푸른 바다 해안길 숲속에 있는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詩碑)를 읽는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다음 가을, 메밀꽃 필 무렵에는 청포를 입고 하얀 모시 수건에 청포도 한아름 싸 와서 병들어 가는 호랑이 꼬리를 낫게 해 달라고 빌어봐야겠다.

2023-07-06

국해(國害)의원

홍석봉 대구지사장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여야의 대치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해결기미는 좀체 보이지 않는다. 각종 이슈를 서로 선점하며 상대방 헐뜯기에 여념이 없다. 상대편 주장은 무조건 배격하고 자신들의 할 말만 한다. 정치권의 후쿠오카 원전 오염수 공방이 폭염 속에서도 열기를 더하고 있다. 과학자들의 견해도 아예 무시한다. 마침내 이것도 괴담이 됐다.여당인 국민의힘은 전 정권 탓하기에 열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수 의석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뻔한 법안을 들이밀며 또 해보라고 정부여당의 속을 뒤집는다. 논란을 빚는 민주유공자법을 단독처리하는 등 입법 폭거는 단골 행사가 됐다. 나라 빚이 폭증, ‘천조국’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국회는 ‘나몰라라’다. 재정준칙 논의는 민주당의 어깃장으로 올해만 열번째 불발됐다. 민생 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야당은 대통령 가족의 비리 들추기에 골몰한다. 독을 품고 현 정부 흠집 내기를 한다. 언제 파국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꽉 막힌 정국의 현주소다.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 체포동의안 부결,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김남국 코인 논란 등으로 위기에 빠졌다. 당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 혁신위가 출범했다. 혁신위가 내놓은 첫 작품이 불체포특권 포기다. 하지만 당내에선 모두 왼고개를 튼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논의조차 않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자신에 대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모양새가 우습게 됐다. 민주당은 앞서 이 대표와 노웅래 의원 등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다. 송영길 전 대표는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이 입법부의 행정 견제 역할을 포기하자는 항복문서라며 반발한다. 반면 여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서를 받고 은근히 즐기는 시선이다. 대조적이다. 혁신위의 2호안인 ‘꼼수 탈당’ 근절도 같은 운명이 될 공산이 커졌다. 따가운 눈총을 받고도 바룰 생각은 전혀 없다. 여야가 서로 내로남불이다. 갈등을 조장하고 증폭시켜 사회 혼란만 초래하고 있다.얼마 전 국회에서 장애인 학대와 차별 해결을 호소해 여야의 박수를 받은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시각장애인 김 의원의 대정부질문은 고성과 호통, 정쟁만 난무하던 기존 모습과는 딴 판이었다. 난장판 국회에 대한 경고였고 반성하라는 메시지였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국회의원의 상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금새 잊었다.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가 국회의원 급여가 국민소득을 고려하면 세계 1위라고 했다. 파렴치한 범죄와 부패범죄를 저질러도 구속되지 않는다며 국회의원 특권폐지를 외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과 특혜가 180여 가지다. 국회의원들이 당리당략과 권위주의에 매몰돼 세계 10위의 경제대국과 K-컬처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빛나는 성취를 갉아먹고 있다. 국민들은 그들을 국해(國害)의원이라고 부른다.민생과 국익은 안중에도 없다. 거대 양당 대표는 만나는 것조차 피하고 있다. 국민들은 정치를 걱정한다.

2023-07-06

지게부대

우정구 논설위원 지게는 우리나라 전통의 운반 도구다. 지금은 시골에서조차 보기 힘들지만 60∼70년대 만해도 도시지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운반수단이다.이런 한국 고유전통의 운반수단인 지게를 짊어지고 전쟁을 치른 부대가 있었다고 하면 상상이 될까. 그러나 6·25 전쟁에서 지게를 짊어지고 총탄이 오가는 전쟁터를 누빈 부대원이 수 만명 실제로 존재했다. 그들을 두고 역사가들은 숨은 영웅이라 불렀다.지게부대원은 탄약과 연료, 식량보급품 등을 지게에 매고 산악지대에서 전투 중인 부대로 물자를 보급했다. 45kg 정도의 보급품을 지게에 지고 하루 16km 이상의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는 부상자를 운반하는 일도 빈번하게 했다.워싱턴 DC의 한국전쟁기념공원에는 지게부대가 탄약을 운반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다부동 전투에서 총탄을 뚫고 식량과 탄약을 실어나르는 지게부대를 보고 유엔군은 “전투의 절반을 그들이 했다”고 극찬했다.이들 부대의 정식명칭은 한국노무단(Korea Service Corps)이다. 미군들은 지게가 A를 닮았다고 A프레임 군대(A Frame Army), 혹은 A특공대라 불렀다. 그들은 군번이나 계급장도 없이 전쟁에 참여한 민간인들로 10대 소년부터 6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미국국립문서 기록관리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중 지게부대원 2천64명이 전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지난 7일 6·25 영웅 백선엽장군 동상이 세워진 날 그 옆에 다부동 전투 참전 주민위령비가 세워졌다. 위령비에는 “다부동 전투에서 산화한 지게부대원에게 바칩니다”라는 글이 실렸다. 알려져 있지 않은 숨은 영웅을 기리는 비(碑)여서 감회가 더 깊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7-06

달빛이 환한 밤

정미영 수필가 달빛이 환한 밤이다. 철길숲을 산책하다가 우두커니 앉아 있는 무궁화호 객차를 찬찬히 바라본다. 내 시간의 퇴적층에 기적 소리가 아스라이 얹혀 지는 것 같다. 문득, 처음 기차를 탔던 유년 시절의 추억이 바람결에 풀썩거리며 뛰쳐나온다.그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동대구역에서 화본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나의 부모님은 서둘러 치료를 받아야 하는 친할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한동안 나를 외가에 보내야만 했다. 혼자 외가에 남겨진다는 속상함 때문에 기차를 탔다는 설렘은 잠시였다.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내 손에 가족사진 한 장을 들려주었다. 낡고 빛바랜 흑백 사진이었다. 내 손을 잡고 손가락을 꼽아 보이며, 딱 요만큼만 참고 있으면 데리러 오마, 약속했다. 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한테 가자고 떼를 쓰며 울었다.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보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아버지의 등에 업혀 있었다. 아버지의 등은 넓고 따뜻했다. 산길을 따라 아늑한 외가에 도착했을 때, 외할머니는 향나무 아래에 있는 샘물을 긷고 계셨다. 그러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달려오면서 그만 넘어지셨다. 아버지가 급히 일으켜 드렸으나, 외할머니는 자신의 상처를 돌보기에 앞서 나를 끌어안으셨다. 물에 젖은 치맛자락으로 내 얼굴의 땀을 연신 훔치며, 나를 안아 주셨다.외할머니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 앞에 앉았다. 외할머니는 가마솥에 쌀을 안치고, 솔가지를 아궁이 속에 넣어 불을 지피셨다.“영아, 맛난 밥상 차려주마. 정서방은 얼릉 밥상 받고 밤늦기 전에 내려가야제.”아버지는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외가를 나섰다. 나는 울면서 아버지를 따라가겠다고 했고, 그런 나를 아버지는 애써 외면하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따라가겠다는 나대신 이번에는 달빛이 아버지의 등에 업혀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외할머니 곁에서 며칠을 지내는 동안 차츰 내 울음은 그쳐졌다. 생각 밖으로 하루하루 내 생활은 분주했다. 외양간 송아지를 보러 일찍 일어났고, 강아지와 고양이를 쫓아다니다가 넘어지기도 했다. 장독대 옆의 무궁화꽃 그림자가 마당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콩밭 매는 외할머니 옆에서 실컷 흙장난을 했다. 고추밭 고랑 사이사이를 호미로 헤집고 다니다 보면, 금세 시간이 흘러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다 잠이 들고는 했다.그렇게 잘 지내다가도 이따금씩 산 아래에서 사람이 올라오면 내 아버지가 왔나 싶어 냅다 뛰어나갔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아닌 것에 실망하여 눈물을 글썽였다. 부모님이 보고 싶고, 집에 가고 싶을 때는 외할머니와 달에게 소원을 빌었다. 아버지가 지금 당장 나를 데리러오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집으로 데려다줄 아버지가 빨리 올 수 있게 해달라고 달에게 두손 모아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언젠가는 외할머니에게 달이 뜰 때까지 기차역에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달빛이 내 몸을 환하게 물들일 때까지 플랫폼을 서성거렸다. 하지만 기차가 도착해 플랫폼에 사람들이 내려도, 그토록 보고 싶은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면 외할머니는 “오냐. 불쌍한 내 강아지. 너그 아비 곧 올끼라.” 내 눈물을 닦아주며 등을 쓸어주었다.철길숲의 철로 주변 꽃들이 바람결에 한들거린다. 내 마음 깊이 아로새겨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편린이 모기작모기작 꽃잎을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어린 자식의 눈물 젖은 얼굴을 바라봐야 했던 아버지의 가슴은 오죽 답답했을까? 세월이 흘러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며칠간 자식들을 보지 못하면 걱정이 되었다. 기약 없이 자식을 떼어놓아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 헤아려보니, 내 가슴이 먹먹하다.오늘은 달빛이 환한 밤이다. 유년 시절의 추억들이 달빛에 흐벅지게 물든다.

2023-07-05

무신일주

육십갑자 중 마흔다섯 번째는 무신(戊申)이다. 천간(天干)의 무토(戊土)는 높고 큰 산이며, 바위산이다. 지지(地支)의 신금(申金)은 광물이며, 가을의 결실을 나타낸다. 동물로는 황금 원숭이다.무신일주는 가을 산 속에 광석을 품고 있는 형상이며, 기암괴석이 있는 바위산이다. 넓은 평야에 오곡백과가 여물어 가는 풍경이다. 화려했던 시절은 저물고 고독과 서러움이 다가오는 시기이다. 한 곳에 소속되길 원하며, 친구와 주변사람과 어울려 지내기를 좋아하고 인정이 풍부하다. 대체적으로 성격이 우직한 편으로 타인의 마음을 잘 헤아려 대인관계가 원만한 게 특징이다.대화하는 것을 좋아해서 술자리나 모임을 즐기는 편이다. 먹을 복이 좋아 명예보다 재물 인연이 많다. 학문보다 돈에 관심이 많다. 큰돈을 꿈꾸는 재능이 많은 사업가형 타입이다. 기본적으로 스케일이 크고 배포가 남다르다. 거기에다 허세와 허풍도 있다. 잘 나갈 때는 통이 크다는 말을 듣지만 실속은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포용력과 변함없이 한결같은 마음이 있어 집단 내에서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하지만 태평하고 낙천적인 성격에다 다양한 것에 호기심이 많아 여러 가지 일을 펼치기를 좋아한다. 허나 독단적인 성격과 배운 지식이 얕기에 자기 재능을 충분히 발휘 못하고 실수가 잦은 편이다. 충고를 싫어하며 단독으로 쉽게 결정하는 것이 결점이다.한나라 유안이 지은 회남자 수무훈편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어떤 사람이 원숭이를 잡아 요리해서 이웃사람들을 불러서 대접했다. 이웃사람들은 개장국인 줄 알고 맛있게 먹었다. 다 먹고 나서 그것이 원숭이 고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먹은 것을 모두 토해버렸다. 이웃사람들은 정말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치에 맞는지를 알고 행동해야 한다. 모르고 먹으면 약이 되지만 알고 먹으면 독이 되는 경우다.무신일주의 남자는 듬직하고 과묵해 보이는 외모를 가진 경우가 많다. 이성에게도 인기가 많으며, 아내에게 잘해주는 형이다. 배우자 복도 괜찮은 편이다. 여색을 밝히는 편으로 주의가 요망된다. 여자는 얼굴이 둥글둥글한 귀여운 상으로 피부가 깨끗하다. 자식을 낳고 나면 배우자 관계가 소홀해질 수 있어 고독하게 된다. 남녀 모두 이성에 관심도 많고, 싫증도 잘 낸다. 외도하기 쉬운 성격으로 조심해야 한다.무신일주의 신(申)은 동물로는 재주 많은 황금 원숭이다. 지혜와 재주가 갖추어져 있다. 머리가 좋고, 특히 창의적이며 상상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다. 호기심이 강하고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기에 무언가를 연구하여 창조하려는 욕구가 강하여 실행에 옮기는 경우가 많다. 기획능력이 탁월하여 윗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받아 늦게 꽃을 피우고 향기를 발한다.역마의 기질이 있어 돌아다니지 않으면 몸에 병이 난다고 하여 바쁘게 사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교류가 많은 관계로 타인으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인정욕구가 남다르다. 정도 많아 남에게 주는 것을 좋아하고 어울리기 좋아한다. 문제는 남의 일에 참견하고 끼어들어 곤란을 겪을 경우가 있다. 보는 것마다 관심을 가지며 재주도 좋아 잘 배우며 그만큼 실수도 잦다.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바로 잡지 않으려는 고집이 단점이다.무신일주는 항상 여유 있고 넉넉해 보이지만, 감정적인 면이 강하여 남 밑에서 지시를 받는 걸 견디지 못한다. 또한 버릇이 없고 제멋대로 하는 성격으로 남의 충고를 싫어한다. 또한 물상으로는 큰 산에 매장된 광맥이다. 산에 매장된 좋은 금맥도 캐내어 제련을 해야 훌륭한 제품으로 생산되듯, 탁월한 재능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조력자를 두고 일을 펼치면 수월하게 성공할 수 있다. 그 과정은 험난하지만 기다리고 참을 줄 아는 것이 중요한 덕목으로 작용한다.그와 같은 사례로 줄탁동시(5550啄同時)가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하려면 안쪽에서 부리로 알을 쪼아야 한다. 어미닭은 밖에서 보고 같이 쪼아준다. 알이 갈라지면서 병아리가 수월하게 밖으로 나온다. 만일 어미 닭이 기다리지 못하고 급하게 알을 쪼면 병아리가 죽을 수도 있다. 반대로 병아리가 나오려고 안에서 열심히 쪼아대는데 어미닭이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병아리는 죽고 만다.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 자신이다.인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조력자를 만나는 것도 행운이요 기회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 그러므로 평소에 기량을 키워나가는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망설임이 없이 짊어지고 일어서야 하는 것이다.청소년 성장소설로 유명한 헤르만 헤세(1877~1962)의 ‘데미안’이 있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가치관이 변화한다. 거기에는 주변인물에 의한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주인공 싱클레어는 꿈속에 나타난 새를 그려 친구이자 조력자인 데미안에게 보냈다. 데미안의 답신은 이러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아브락사스는 유대교에서 선의 신을 의미하는 야훼와 악마의 신인 사탄을 합친 개념이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싱클레어는 아직 선과 악을 초월하여 자유로운 내적 자아를 찾지 못한 채 금욕과 절제를 통해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에 친구 데미안은 밖에서 알을 쪼는 조력자로 등장한다.사람은 저마다 성격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개인 고유의 특성이기에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고작 수십 년 밖에 되지 않는 인간의 수명, 그 중에서도 단기간에 겉으로 드러난 성향과 언행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마치 고정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면 금방 수긍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다른 행동을 보이고 있을 테니까. 이렇듯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은 그날그날 누구를 만나는가, 어떤 기회와 마주치는가에 따라 들쑥날쑥 변모한다.

2023-07-05

울릉도 탐방기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주 우리 대학 신문방송사 울릉도-독도 특별취재팀에 동행했다. 울진의 후포항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로 입도하여 다시 독도를 다녀오는 3박4일 일정이었다. 취재 일정이 전국적인 비 예보와 겹쳐 출발 전날까지도 마음을 졸였지만, 출발 당일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5시간 동안 배를 타고 힘겹게 도착한 울릉도는 쌓인 피로를 한 방에 날릴 만큼 아름다웠다. 울릉도는 화산 활동으로 조성된 섬이라 평지가 거의 없고 아찔한 도로가 많았다. 가파른 경사의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돌아 나가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숲과 바다의 자태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다. 에메랄드빛 바다의 풍경과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수평선은 잠시나마 현실의 고민을 잊게 했다.그렇게 울릉도의 풍광에 취해갈 때쯤 산의 절반이 깎여 노출된 황토색이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인 비행장 건설 현장이었다. 비행장이 건설되는 지역의 한 평당 가격은 엄청나게 올랐다고 했다. 더 많은 사람이 울릉도를 찾기 위해 비행기가 꼭 필요한 것은 5시간 배를 타고 오면서 이미 절감한 사실이다. 공항이 완성되면 울릉도민의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세계의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될 것이다.하지만 자연을 개발하여 문명을 만들어냈던 근대화의 방식이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찜찜한 마음을 거두기 어려웠다. 지금은 세계적인 기후 위기 속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장되는 시기다. 경제성장=근대화의 논리로 전개된 한국의 지난 50년 역사의 결과,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나? 더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빈부격차, 가족주의 등 여러 가지 문제가 함축된 것으로, 그간의 성장 논리가 만들어낸 결과이다.취재의 하이라이트 독도에 가기 위해 여객터미널에 도착하자 수많은 태극기가 눈을 사로잡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독도와 반일 감정의 연쇄 고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태극기=반일=독도의 단단한 연결고리를 눈앞에서 확인하니 찜찜했던 마음은 꽉 막혀버렸다. 우리는 왜 특정 순간에만 이렇게 애국자가 될까. 대체 애국이란 무엇일까?최근 대통령은 일본과의 불편한 과거를 정리하고 발전적 미래로 나아가자고 외친 바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식민지 경험을 과감하게 털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일 과거사 정리를 위해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기본이다. 하지만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근본은 경제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과거 일본의 조선 침략도, 대통령의 과거 청산 논리도 모두 경제성장이란 전제 위에 서 있다. 그 논리를 어떻게 넘어설지가 관건이다.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울릉도-독도는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국가와 국가, 인간과 인간의 경계 짓기가 근대의 방식이라면 그 경계를 거두는 것이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2023-07-05

‘발바닥이 아픈데 이게 디스크인가?’

김영준 포항 약전부부한의원장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진 현대 사회에 디스크라는 질환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 되었다. 디스크, 즉 추간판탈출증은 말 그대로 척추 간에 있는 추간판이 튀어나와서 신경을 자극하는 증상을 말한다.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추간판에 큰 압력이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디스크가 변형되면서 증상이 생기는 것이다. 신경이 자극되어 증상이 생기므로 대퇴부, 하지부, 족부로 감각 이상이나 통증 등을 겸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여러 가지 다른 질환들과 오인되는 경우가 많다.이러한 디스크의 증상에 대한 상식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하지부나 족부의 통증을 무조건 디스크나 협착증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한의원에 내원하는 환자들 중에 이런 발의 통증을 디스크가 아니냐고 묻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발을 디딜 때 발바닥이 쩌릿하고 통증이 느껴지고 종아리 쪽도 아픈 것 같다는 것이 주로 호소하는 증상이었다.이런 경우 발바닥을 직접 눌러서 압력을 가했을 때 통증이 더 심해지는지를 확인함으로써 이것이 상부의 신경 자극 증상인지 발바닥 자체의 문제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발을 손으로 눌렀을 때나 발바닥을 땅에 디뎠을 때 통증이 심해진다면 이는 디스크가 아닌 발바닥 자체의 문제인 족저근막염(발바닥근막염)일 가능성이 높다.족저근막염은 말 그대로 족저, 즉 발바닥에 있는 근막에 염증이 생긴 질환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디디는 첫 발에 통증이 심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으며 주로 발뒤꿈치가 아픈 경우가 많다. 원인으로는 평소 하지 않던 운동을 장시간 하게 되거나 불편한 신발을 신고 오래 서 있었던 경우, 장시간 운전을 한 경우 등으로 발바닥 근막에 장시간 장력이 가해져서 미세 손상이 생기고 이에 염증이 생기게 된다.사실 발바닥은 몸 전체의 체중을 감당하는 부위이므로 비교적 튼튼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튼튼한 만큼 한번 탈이 나면 회복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족저근막염이 생겼을 때는 2개월 이상 치료하는 것이 권장되는 편이며 6개월 정도는 발바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유의하는 것이 좋다.종아리 쪽 근육을 침, 부항 등으로 풀어주면서 발바닥의 염증을 줄여주는 치료를 한다.평소 발바닥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테니스 공을 발바닥에 대고 3~5분 정도 굴려주는 방법이나 수건을 발바닥에 걸어서 몸쪽으로 당겨 발바닥과 종아리를 함께 스트레칭 해주는 방법도 좋다.보통 발바닥에 무리가 많이 가는 상황에서는 종아리 쪽 근육도 함께 긴장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스트레칭을 할 때 종아리도 같이 해주는 편이 좋다. 발바닥에 자극이 심한 슬리퍼나 샌들, 하이힐 등을 신지 않아야 하고 모래나 자갈이 많은 등 요철이 심한 곳을 장시간 걷는 것을 피해야 한다.중년 이후에는 발바닥의 지방 패드가 적어지면서 족저근막염의 발생 가능성도 높아지므로 더욱 평소 발 건강 관리에 유념하는 것이 좋겠다.

2023-07-05

국가브랜딩, 살려야 한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미국의 한 일간지 US News World Report가 세계국가순위를 발표한다. 삶의 질, 사회적 역동성, 문화적 자산, 기업친화성 등 10개 분야에서 객관적으로 취합한 자료를 합산하여 해마다 공표한다. 작년에는 스위스, 독일, 캐나다에 이어 미국이 4위, 일본은 6위, 중국이 17번째에 올라있었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괄목한 발전을 보여온 대한민국은 20위였다. 기업이 물건을 잘 만들어야 하지만, 업체와 상품의 이미지를 효과있게 긍정적으로 알려내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오늘처럼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할수록 마케팅과 브랜딩이 점점 각광을 받는 까닭이기도 하다. 국가도 마찬가지다.해외에서는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세계인들의 마음속에 대한민국은 어디쯤 자리잡고 있을까. 경제력이 성장하였다고 평판이 그대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세계무대에서 선진국의 위치에 근접했다는데, 세계인이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는 어디쯤 와 있을까. 세상은 한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기업이 좋은 물건을 팔아도 업체가 하는 일과 상품의 가치를 알리는 일은 특별한 경영수단을 필요로 한다. 이름하여, 브랜딩(Branding). 대한민국이 여러 가닥에서 좋은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세계인의 마음에 다가가는 일에는 또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도 브랜딩에 나서야 한다. 나라들 사이에서 교류와 통행이 활발해지면 관광과 여행은 국가경영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산업영역이 된다. 대한민국을 세계인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고 마음을 사로잡을 ‘국가브랜딩’이 더없이 긴요해진다.우리에게도 법정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있어 지구인들이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과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어가는 데에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세월이 흐르면서 위원회가 명맥을 간직하고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아 국가가 나라를 효과적으로 알려내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외형적인 국가경쟁력과는 또 다르게 나라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일은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사이몬앤홀트(Simon Anholt)가 개발한 ‘좋은나라지표(Good Country Index)’는 나라들이 다른 나라들을 위하여 끼친 기여도를 평가하여 순위를 매긴다. 2022년 발표에 일본이 34위, 한국 37위, 미국 46위, 중국 69위 등이었다. 세계와 함께 호흡하며 상생과 공존의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우리의 모습이 세계인의 인식 가운데 긍정적이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새겨질 수 있도록 전문적이며 적극적인 브랜딩에 착수해야 한다. 효과적인 이미지 개발을 위하여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취지와 기능을 살려내어 제 역할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나라가 더 많을 일을 하여 좋은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한 만큼, 세계인들에게 이를 잘 알리고 전하여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를 올려내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만드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알리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대한민국이 더욱 발전하고 성장해야 하지만, 더없이 멋진 나라로 알려내야 한다.

2023-07-05

마이스터고의 비상(飛上)

홍석봉 대구지사장 마이스터고는 전문 기능·기술 자격의 최고 수준을 뜻하는 독일의 ‘마이스터’(Meister)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2010년 전국 20곳의 학교가 문을 열었다. 산업계에 맞춤형 인력 제공이 목적이다. 고교 구분은 특목고에 해당한다. 학생은 전국 단위로 선발하며 일반고보다 먼저 신입생을 모집한다. 교과성적 반영비율은 최소화하고 학생의 적성, 성장가능성을 고려, 취업을 원하는 인재를 모집한다. 학비는 무료다.마이스터고는 매년 우수 신입생이 대거 지원했다. 마이스터고는 ‘한국형 기술 명장’을 꿈꾸며 ‘취업 명문’으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위기도 있었다. 경북 울진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의 경우 탈원전 정책 여파로 신입생 모집에 애로를 겪었다. 기업체의 고졸 인력 채용이 줄면서 신입생 지원이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반도체 등 분야에서 세계 각국의 인재 경쟁이 불붙었다. 기업과 국가들이 인력 확보 전쟁에 돌입하면서 마이스터고가 주목받는다. 삼성과 SK까지 반도체 ‘인력’ 쟁탈전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 AI(인공지능) 등도 인기다. 반면 기계와 농업 등은 취업률 저조 등으로 외면당해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보인다.대구전자공고와 경북소프트웨어고등학교가 4일 교육부의 마이스터고 신규지정 공모에 선정됐다. 두 학교는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분야의 전문 교육을 통해 각종 대회와 취업에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현재 마이스터고는 전국에 총 57개가 있다. 그중 대구에 5개, 경북 8개가 있다.마이스터고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기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스터고 출신 제2의 장영실을 기대해본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7-05

살아있는 깊은 밤

탄탄 스님 용인대 객원교수 죽지도 않았는데 죽었다는 헛소문이 내 인생에서 도합 세 번쯤 있었다. 그 첫 번째는 돌도 되기 전이었다는데 내겐 기억이 없다. 다만 자라면서 집안어른들에게서 종종 들었을 뿐이다. 그 두 번째는 스물이 훨씬 넘어서였다. 중학교 동창들 사이에서 내가 죽었다는 소문이 났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나머지 세 번째는 미국에 살다가 귀국하여서 종적을 감추고 지인들과의 소식이 뜸했을 때였다. 나이 사십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였다. 난 여태껏 살아오면서 세 번이나 죽었던 사람이었다.죽지도 않았는데 죽었다는 소문이 어찌어찌하여서 났었는지는 통 모를 일이지만, 산 자에게 언제인가 죽을 날은 반드시 온다. 산 자가 누군가를 위해 살고 있다는 말은 한갓 말장난일 뿐이다. 삶은 그저 자기를 위한 것일 뿐이다. 산 날이 죽은 날이 되거나 죽을 날이 산 날보다 가까워져서 점점 나의 삶이 짧아짐을 느낄 때 과연 이 세상 어느 누가 기꺼이 남을 위한 행복을 빌어줄 수 있겠는가?가끔씩 나는 상상한다. 죽지 않는 불사신처럼 죽음의 강을 건너지 않고, 대학병원 입원실에서 서성이지 않고, 세상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홀로된 고독감에 몸부림치지도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해 본다. 사력을 다해 살기 위해서 사는 우리는 정말 죽음이라는 인생의 마지막 큰 숙제 앞에서 과연 얼마나 의연할 수가 있겠는가? 죽음이라는 것은 산 자들로서는 영원히 풀 수 없는 난제이다. 결국 죽어봐야 죽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숨을 쉬고 살아 있다는 것, 살이 썩지 않았다는 것, 죽을 병에 걸린 줄 알았는데, 돌팔이 의사의 오진으로 버젓이 살아 있는 것, 이 깊은 밤에 듣는 가장 슬픈 음악도 어쩌면 오히려 잔잔한 기쁨이 되어 행복을 선사받는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내 돈을 떼어먹은 괘씸하기 짝이 없는 자조차 용서할 수도 있는 것이다.세파의 험난한 이 빗줄기도 언제인가는 그칠 것이며 풍찬노숙의 날도 비껴가리라는 어줍잖은 희망을 가진 적이 있다. 그 빗속의 풍찬노숙이 나에게 위안의 말 한마디를 건넨 적이, 나를 용서한 적 있었던가.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 개똥밭을 구르고 있지만 살아 있어서, 살 수만 있다면, 살고 있으니 이토록 신명이 나는 것을…. 깊은 밤이다.

2023-07-04

100개의 우주

전재영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게 되면서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의 분할통치를 받게 된다. 비록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나름 평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어떤 필름 하나가 비밀스럽게 돌고 있었다.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증명하는 촬영 장면들이 담겨 있는 필름이었다. 그 필름은 묘한 감정과 수많은 질문들을 불러일으켰다. “연합국이 승리했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 수많은 사람들이 다 속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미국의 SF작가 필립 K. 딕이 1962년에 발표한 한 소설책의 도입부 줄거리이다. 대체 역사 장르에 속한 이 소설은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어쩌면 우리도 우리 삶의 일부분을 이런 형태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필터 버블을 들 수 있겠다. 페이스북과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는 진보적 성향의 콘텐츠만 보여주고 보수적 성향의 콘텐츠는 걸러내 버림으로써, 정보를 편식하게 하고 균형 있는 사고를 할 수 없게끔 만든다. 버블에 가둬두고, 나에게 지금 보이는 것이 전부인양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성향의 콘텐츠를 계속 접하게 되는 것은 강화학습으로 이어져 자신의 생각을 더욱 더 확고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버블에 사실 꽤 익숙해져 있다. 한국에서 유난히 인기 있는 MBTI를 보자. 우리를 버블 안에 가둬두고 “넌 이런 사람이야”라고 규정하는 것에 왜 사람들은 그렇게 열광하고 당연시 여기는 것일까? 우리는 그렇게 창조되지 않았는데 말이다.“세상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우주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빅테크의 알고리즘은 각 개인에게 맞춤화된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자신들의 플랫폼이 100명에게 각기 다른 100개의 우주를 제공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사실, 그 우주는 우리를 가두는 버블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더 위험한 것은, 개개인의 우주에 주입되는 콘텐츠는 개개인의 성향에 맞게 준비되지만, 사실 그 과정 중에 인간의 행동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요소들 또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PSY-OPS이며, Cambridge Analytica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8천7백만 명의 페이스북 사용자 프로파일과 온라인 광고를 이용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 영국의 Brexit, 기타 브라질, 필리핀, 케냐 등 여러 선거에서 투표자의 행동에 불공정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어쩌면 우리는 프랑스의 양치기들이 사용하던 표현, ‘개와 늑대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해질녘, 낮도 밤도 아닌 모호한 시간의 경계에서,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죽이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그런 시간 말이다. 해질녘, 모든 것이 다 그냥 붉게만 보이는 그런 시간 말이다.지금 우리 개개인의 우주에 빅데이터와 AI가 걷잡을 수 없이 들어오고 있다. 붉게 물든 하늘 감상에 마냥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깨어 있는 시선이 필요할 때이다.

2023-07-04

우리 고유의 대중음악, 시조창의 매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푸른 하늘을 유유히 가르는 백로의 날갯짓이 악보로 흐르는 듯하다. 댓잎에 바람소리와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자연의 음률처럼 들리고, 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어울림조 합창 마냥 정겹기만 하다. 도시의 온갖 사람들 소리나 자동차 소리, 공장의 기계음 따위의 소음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아늑함과 천연스러움이 있다. 소리나 음악, 가락 등은 인간의 감각기관인 귀로 듣고 느껴져 마음의 자극이나 반응을 일어나게 하기에, 지역적인 정서와 문화의 양식에 따라 많은 갈래와 흐름으로 생겨나 유지, 발전되어 왔다.시조창도 그렇게 파생되어 오랜 세월동안 불리워져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시절단가(時節短歌)이다. 시조는 신라향가에 기원을 둔 우리 민족 고유의 정형시다. 즉 평시조를 기준으로 3·4조의 음수율을 가지고 3장6구 12음보의 45자 내외로 이뤄진 독특한 정형시의 양식으로, 함축적이고 절제된 언어의 노래 가사로서 문학인 동시에 음악인 셈이다. 이러한 시조시에 가락과 장단을 붙이고 감정을 더해 부르는 노래가 시조창이다. 악기 없이 장구나 무릎장단의 부분적인 연주 속에 슬프고 애타는 느낌을 주는 3음의 계면조(界面調)와 맑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 5음의 우조(羽調)로 되어 있으며, 연결성이 발달한 청아한 소리의 음계가 특징적이다. 또한 특유의 기백과 독창적인 소리예술로 풍류와 멋을 더해 전라도를 중심으로 즐겨 부르던 완제(完制)시조는 우리나라 고유의 대중음악이라 할 수 있다.이처럼 우리의 전통가락이자 민족혼이 담긴 시조창을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려는 노력과 움직임이 있어서 고무적이다. 코로나19의 장막이 걷히면서 전국적인 시조창 경연대회가 5, 6월부터 줄을 잇고 있다. 지난 6월 중하순 경에는 성주군과 포항시에서 ‘전국 시조창 경연대회’가 성황리에 열렸고, 7월 중에는 울산광역시와 안동시 등에서 시조창 경연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맵시 고운 한복을 입고 의관을 정제한 전국의 남녀 창자(唱者)들이 독창적인 창법으로 시조창을 즐기며 열띤 경합을 벌이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를 애써 지키고 가꾸는 그 이상의 유익함이 크다 할 것이다.여리고 강하다가 낮거나 높게 끊어질 듯 꺾이다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시조창의 매력은, 느림의 미학으로 일컫는 전통성악의 특이한 음률의 발성과 음악적 경험으로 시조의 품격과 인성을 드높이며 물아일체의 경험과 심신의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유장한 가락으로 율려(律呂)의 다변성을 절묘하게 발성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시조창은, 자연을 닮으려는 정신의 흔적이며 동양전래의 자연관에 근거한 시간성을 형상화한 음악형식이 아닐까 싶다.우리 선조들의 얼과 지혜가 응축된 멋과 가풍(歌風), 질박한 정서가 담겨있는 정악(正樂)이 결코 나이가 들거나 특정계층에서만 누리는 편견에서 벗어나 생활 속 문화가 되고, 풍류가 한류(韓流)가 되는 새로운 콘텐츠 개발과 저변확대에도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시조와 시조창은 면면히 이어온 우리 정신의 뿌리요 숨결이기 때문이다.

2023-07-04

챗GPT, 너 미쳤어?

챗GPT에 대한 기사와 칼럼들이 이미 수없이 쏟아져 나왔는데,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글을 보태보려 한다. 지난주에 강의하는 대학 두 곳의 성적 입력을 마쳤다. 400여 편의 중간, 기말고사 과제 리포트를 읽어보면서 챗GPT가 학생들의 글쓰기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걸 알았다.개강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 윤리를 강조할 때 표절, 중복제출, 사적 정보 무단인용 등을 경계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챗GPT도 언급했는데, 인공지능이 써주는 글을 그대로 가져올 경우엔 F학점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어느 정도 참고하거나 지식을 수집하는 데 활용하는 건 괜찮다고 했다. 챗GPT가 가진 백과사전의 기능만큼은 긍정했기 때문이다.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에서 21세기의 영원성 개념은 과거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20세기 근대의 영원이 공간을 오랫동안 점유하는 ‘지속성’이었던 데 비해 오늘날 영원의 개념은 짧은 순간에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찰나성’이다. 학생들에게 바우만의 주장을 예시로 들어 챗GPT 같은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벼움, 유동성, 속도가 지배하는 ‘액체 현대’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학생들의 과제를 읽어보았다. 대부분 학생들이 자기 힘으로 작문을 했지만, 챗GPT의 힘을 빌린 경우도 더러 눈에 띄었다. ‘GPT체’는 확연히 구분된다. GPT가 써준 걸 자기 문체로 바꾼 경우에도 티가 나는데, 그대로 긁어온 건 너무 심했다. D와 F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자비를 베풀었다. 채점을 하면서 생각 두 개가 떠올랐다. 먼저 인공지능 시대에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기술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신뢰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았다. 다음은 좀 웃긴데, ‘챗GPT 이 녀석 순 엉터리에 거짓말쟁이군’ 하는 거였다.학생들이 챗GPT를 참고해 쓴 것으로 보이는 문장들에는 사실관계에 대한 오류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주로 작가의 생몰년이나 활동시기, 작품명 등이다. 그래서 직접 챗GPT에 “백석 시인에 대해 알려줘”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백석(白石)은 대한민국의 현대 시인으로, 김수영(金壽永)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1920년에 경상북도 칠곡에서 태어났으며, 1937년에 동국대학교 문과를 졸업한 후 작문학과를 전공하였습니다. 백석은 한국 전통 시문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시는 자연과 인간, 사랑, 삶의 고뇌 등을 다루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시는 자연과 조화로운 미적 표현과 진솔한 감정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며, 많은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눈물’, ‘벗’, ‘소나기’, ‘고향의 봄’, ‘해바라기’, ‘밤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이 있습니다. 그의 시는 단순하고 은유적인 언어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며, 대중적인 시인으로서 폭넓은 인기를 얻었습니다.”이걸 읽고 나서 “챗GPT, 너 미쳤어?”라고 외쳤다. 백석이 누군가? 한국 현대시 100년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럼에도 본명, 생년, 학력, 출생지, 작품명까지 전부 다 틀리게 말했다. 게다가 김수영, 황순원, 이원수, 조세희 등 다른 문인들에 관한 피상적이고 파편적인 정보들을 조잡하게 취합해 늘어놓기까지 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리라는 두려움은 내려놔도 되겠다고 안심했다. 그런데 그 안심은 이내 불안으로 바뀌었다. 챗GPT의 구동원리는 온라인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하는 데 있다. 즉 인간이 이미 만들어놓은 정보들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챗GPT는 디지털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됐는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한편, 온라인에 부정확한 정보들, 왜곡된 내용들, 입증되지 않은 가설 등이 얼마나 많은지도 함께 말해준다.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의 오류를 학습한다. 그렇잖아도 가짜 뉴스와 날조, 선동이 판치는 세상이다. 챗GPT는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온갖 거짓들을 근사한 사실로 포장하고, 첨단 기술을 강력히 신뢰하는 현대인들은 챗GPT가 제공한 정보들을 의심 없이 믿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류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핵전쟁이 아니라 온통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인지도 모른다.

2023-07-04

어른의 모양

새콤달콤을 맛별로 많이 사서 하나씩 까먹을 때나, 커다란 토마토를 2~3개씩 잘라 설탕을 잔뜩 뿌려 먹을 때 나는 입버릇처럼 이건 어른의 특권이라 말하곤 한다. 어릴 때 부모님에게 혼날까 싶어 쉽게 할 수 없었던 아주 사소한 몇 가지의 행동이 있는데, 예를 들자면 카레에 고기만 쏙쏙 빼먹는다거나 밥 대신 빵이나 과자로 대체하는 것 등, 작은 일탈을 벌이고 나서 이건 어른의 특권이라며 우스갯소리로 웃어 보이는 것이다.최근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정말 다양한 인간상이 있고,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는 정말 많은 노력과 관심이 필요한 것임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매너를 갖추고 있으나 가끔 무례한 사람들 사이에서 불쾌한 일을 겪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또 성숙한 어른이란 과연 어떤 자세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보게 된다.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작은 일에 마음 쓰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수용의 자세와 넉넉한 마음의 크기를 지닌 자다. 작은 것 하나에도 손해 보기 싫어하거나, 아주 사소한 말싸움이어도 절대 지기 싫어 부정적인 언어를 더 보태는 습관은 스스로 좁아지는 마음을 택하는 것이다.만약 무례를 범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그들과 똑같이 무분별하게 타인을 비방하기 보단, 그들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 옳은 방향으로 설득시키는 우아한 매너를 갖추는 사람이 근사한 어른이 생각한다.두 번 째는 이해할 수 없는 요소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고 헤아리는 자다. 만약 어린 날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삶에 근거한 경험과 통계로 함부로 타인의 삶을 조언하고 참견하지 않아야 한다. 네 나이 땐 다 그래 라는 말로 상대의 힘듦을 함부로 속단하여 무책임하게 무마하려 하지 않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포용하여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 충분히 멋진 어른이라 생각한다.세상은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 모두 다른 삶 속에서 불명확하고 불안정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살아가는 내내 마음가짐은 서툴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좋은 어른이 되기란 쉽지 않기에 정확히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그러한 태도를 지니기 위해선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태도를 갖추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공을 필요로 한다.요즘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고민될 때마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쓰기는 머릿속에서만 떠다니던 수많은 말들이 정리되고 정제되어 불필요한 말을 충분히 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안이나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기 때문에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여태 단 하나의 진실된 문장을 표현하는 것이 글쓰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글쓰기의 본질은 하고 싶은 말이 아닌,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덜고 덜어내어 맨 마지막에 남는 문장을 써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그간 생선을 먹기 위해 젓가락으로 생선살을 발라낼 생각만 했으나, 정작 생선살을 모두 바르고 나서 가시만 남은 상태가 진짜 쓰고 싶었던 글의 이야기였다고 해야 할까. 단단하고 날카롭게 존재를 번뜩이고 있는 가시가 글이 될 것이고, 글을 쓰는 내내 조금 더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조심스레 믿어보는 것이다.최근 이사를 앞두고 있다. 4년간 살던 집에서 떠나 새로운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곳에서의 살림이 미처 정리되지 못했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새로운 방에서의 삶을 그려 본다. 하루 전 멈춘 시계의 건전지를 갈아 새로운 벽에 걸 테고 7월로 넘긴 달력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둘 것이다.그리고선 흰 책상에 앉아 두툼한 생선살이 아닌 뾰족하게 자리한 생선의 가시를 오래토록 볼 것이다. 7월엔 더 나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작고 하얀 방을 명쾌해진 기분으로 그려본다.

2023-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