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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미소 짓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경주’하면 원안에 사람 얼굴이 새겨진 수막새를 쉽게 떠올린다. 둥글고 커다란 코에 비대칭인 양쪽 눈과 광대뼈, 끌어올려진 입꼬리가 왠지 어색하지 않다. 기와 장인이 일일이 손으로 눌러 형태를 잡았기에 자연스러운 얼굴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왠지 옆집에 사는 사람도 수막새의 미소처럼 웃을 것만 같다.대개 사람들은 수막새의 미소를 ‘신라의 미소’라 부르며, 백제 불상의 미소와 비견하여 얘기한다. 하지만 부처님의 미소처럼 후덕하기만 한 미소로 보기에는 기와 속 오른쪽과 왼쪽 표정이 너무 다르다. 오른쪽은 완전히 웃는 형상으로 광대뼈도 올라가고 눈도 부드러우며 입꼬리도 올라가 있다. 코 옆 팔자주름도 음영이 명확하게 보인다. 반면에 왼쪽은 말 그대로 밋밋하다. 두툼한 눈두덩이를 반쯤 뜬 채 쳐다보는 듯도 하다. 두드러지지 않은 광대뼈와 흔적도 없는 팔자 주름만 봐도 웃는 형상으로 보기에 애매하다. 입꼬리는 깨어져서 알 수 없지만 과연 속없이 웃기만 했을까. 안동의 하회탈도 얼굴 형상이 비대칭이라 탈을 보는 방향에 따라 웃는 얼굴로도 비웃는 얼굴로도 보인다. 얼굴무늬 수막새도 ‘요사스런 귀신을 쫓아낸다’는 수막새인데 액운에게 미소만 건네지는 않을 법하다.수막새는 기왓골을 메워 보호하는 실질적인 역할과 건축물을 돋보이게 하는 조형적 역할과 재앙은 피하고 복을 바라는 주술적 역할을 담아 장식하던 기와의 일종이다. 고구려·백제·신라 모두 연꽃·도깨비 문양 등이 두루 사용되었다. 시기나 지역별로 연꽃잎이 뾰족하거나 넓고, 문양이 깊거나 얕고, 기와와 직각 또는 둔각으로 만들어졌기에 문화재의 시기를 알아보는데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신라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2~3세기께 궁에서 기와가 사용되었고, 528년 불교가 공인된 후에는 사찰에서도 연꽃무늬가 장식된 수막새를 장식하였다. 6세기 후반에는 고구려나 백제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연꽃 모양을 만들거나 얼굴 무늬, 도깨비 무늬 등도 제작되었으나 전체적으로 투박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통일신라에 이르면 다양하고 복잡하고 화려한 무늬가 나타난다. ‘삼국유사’에서는 ‘헌강왕 때에는 초가집이 없고…. 풍류소리가 밤낮이 없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안압지나 여러 절터의 출토된 막새를 보면 지붕조차 사치스럽게 장식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꽃·봉황·기린·사자·도깨비·용·구름 등 다양한 무늬가 사용되었다.얼굴무늬 수막새는 1934년 조선총독부 신문 ‘조선’ 229호에 기사와 사진이 실리면서 알려졌다. “이 와당의 출현은 신라예술 연구상 귀중한 자료의 하나”라 소개되었다. 경주에서 의사로 활동하던 다나카 도시노부가 골동품상에서 100엔에 구입했다고 하는데, 1930년 당시 기와집 한 채가 1000원에 거래되었다고 하니 깨진 기와 하나에 집 한 채 가격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수막새는 경주 영묘사터에서 출토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영묘사는 선덕여왕이 창건한 절로서‘삼국유사’에 따르면 “여러 가지 기예에 통달한 양지(스님)는 영묘사의 장육삼존상과 천왕상, 벽돌탑의 기와 그리고 사천왕사 탑 밑의 팔부신장 등을 제작했다”고 나온다. 얼굴무늬 수막새는 제작자가 새겨져 있지는 않지만 그가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1940년 다나카가 일본에 돌아가면서 반출되었다가 1972년 극적으로 국내에 반환된다. 다나카는 “보는 이의 마음 깊이 감명을 주는 기와를 작업한 와공의 절절한 정성을 생각할 때 느끼는 바가 있어 신라의 국토에 안주의 땅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기증 이유를 밝힌다. 우리 땅에서 문화재를 모으고 반출했으며, 태평양전쟁 당시 군의관으로 근무했고, 우리 문화재를 일본 박물관에 다수 기증한 인물의 국내 기증이 고맙지만 애매한 것은 역사에 남은 일본의 잔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한편 이 수막새는 대기업의 로고로도 재탄생되었다. LG는 ‘Lucky’와 ‘Goldstar’를 합친 단어로 구인회 회장이 락히(樂喜) 화학공업사와 금성사의 이름을 합쳐 ‘럭키금성’으로 명명했다가 변경한 명칭이다. 1995년 LG로고는 얼굴무늬 수막새에서 영감을 얻어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를 담아 제작되었다. 신라 얼굴무늬 수막새라는 ‘과거의 얼굴’이 1천400년이 지나 LG의 ‘미래의 얼굴’로 다시 미소 짓는다.신라를 대표한다고 알려진 미소, 얼굴무늬 수막새는 옛 신라의 영묘사에서 액운을 경계하는 주술적 의미로 만들어졌다. 무섭지도 않은 웃음으로 무엇인들 막을 수 있을까 싶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법이고, ‘따뜻함이 겉옷을 벗기는’ 법이다. 내 이웃 같은 미소를 수막새로 만들며 그 안에 담았을 염원을 상상해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7-17

여름, 우리를 들뜨게 했던 것들

이육사 계절이란 마치 공기 같아 그 변화라든가 그것이 주는 미묘한 느낌은 항상 감각 안에 포착되는 것은 아니다. 홀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어린 시절, 앞만 보고 살아가는 와중에는 전혀 그 변화를 자각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살아가기도 바쁜 와중에 그 찬찬한 변화까지 눈과 귀에 담기는 어려운 까닭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좀 더 들게 되면, 유독 계절이 새삼스러워지는 순간이 오게 된다. 나뭇가지 끝에 보송거리는 조그만 솜털이 눈에 보이거나, 살갗에 달라붙는 수분 가득한 공기가 계절의 변화를 보여준다.이럴 때면, 어린 시절 뭐가 좋은지 몰랐던 시의 한 구절도 입에서 마치 노래 가사처럼 맴돈다.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같은 시처럼. 예전에는 일제에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는 이육사 시인의 삶이 시보다 먼저 들어왔다면, 이제는 청포도가 익어갔다던 그의 고향이 먼저 떠오른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꽃이 뭐가 좋은지, 알알이 박히는 열매들이 뭐가 좋은지도 모르고 살다가, 문득 그 계절이 고향처럼 다가온 것이리라.코로나가 던진 충격 이후, 마스크에 갇혀 서로를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은 서서히 마스크를 벗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동안 마치 어떤 계절도 존재하지 않는 듯, 아무런 시간을 느낄 수 없었던 기간을 지나니 사람들의 마스크가 아니라 그들이 입고 있는 옷에서 계절을 느낀다. 긴 옷에서 짧은 옷으로 사람들의 옷차림은 아직 뒤죽박죽이지만, 그 변화가 계절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목련과 개나리, 진달래 등으로 찾아온 봄을 지나 여름이 되면, 세상은 온통 초록색 투성이가 된다. 산이나 계곡에서 이 초록색을 질리도록 봐두지 않으면 여름은 끝나지 않는다. 다양한 명도와 채도를 가진 초록색들을 눈에 담아두고, 풋풋함을 지나 거의 날것의 냄새까지 나는 덥고 습한 열기 속에서 시원함을 뿜어내고 있는 숲속의 공기를 마음껏 숨 쉬지 않으면 여름은 끝나지 않는다. 여름이라는 계절은 그렇게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안도현의 시집 ‘그리운 여우’의 표지. 이제 인간은 여름에는 에어컨으로, 겨울에는 난방으로, 실내에만 있으면 더 이상 계절에 영향 받지 않는, 덥고 춥기가 일정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얼마 안 있으면, 계절의 영향 같은 것은 전혀 느끼기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게 될지도 모른다. 계절의 감각이란 문학 작품의 한 구절에나 존재하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계절에 인생을 비유하고, 계절의 감각 속에 감정을 담아내는 일 따위는 한없이 낡은 무언가가 될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그러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으니, 지나친 걱정만은 아니리라. 하지만, 그래도 눈앞만 바라보는 삶에서 잠시 벗어나서, 큰 길 옆에 나 있는 작은 길로 나가면, 그곳에는 언제나 숲이 있고, 나무가 있고, 물이 흐른다. 문을 열고 나가면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이 서로의 옷깃을 스쳐가는 소리, 말소리가 들린다. 축축하면서도 치열한 여름의 공기가 느껴진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더 편리해져도,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것이 더 이상 여름의 열기가 아니라 디지털 네트워크 속 무언가로 바뀌어가도, 저기 인간 세계의 바깥에 있는 무언가, 자연의 이름을 하고 있는 것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그곳에는 숲이 있고, 소리가 있고, 신선한 냄새가 있다.가끔은 눈 앞에 있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어 자연이라는 책을 보고, 계절이 보여주는 감각을 찬찬히 느껴보면 어떨까. 그러면 분명 그곳에 예전 우리를 들뜨게 했던 여름의 감각이 우리를 한결같이 부르고 있을 것이다. 오랜 기간동안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감정의 바람이 불어오게 될지도 모른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3-07-17

포항 원도심 살리기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원도심은 도시의 옛 중심지를 뜻한다. 포항의 원도심이라면 중앙동, 송도동, 죽도동, 해도동 일대가 될 것이다. 죽도시장을 중심으로 여전히 옛 정취를 간직한 지역이기도 하다.조선 후기부터 주요 항구였던 포항은 형산강과 영일만이 만나는 지리적 요건상 상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천혜의 어장인 영일만 일대에서 잡힌 풍부한 수산물들, 경북 내륙에서 생산된 물산들이 포항으로 모여들었고, 자연히 그것들을 거래할 시장이 발달하게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주로 배들이 드나들기 쉬운 포구에서 장이 열렸고, 함경도의 명태, 강원도의 오징어, 포항의 청어와 소금, 경북 내륙의 농산물들이 거래되었다고 한다.1970년대 포항제철의 건립과 함께 주요 산업이 중공업으로 바뀌었지만, 그 영향으로 인구가 증가하며 원도심 지역 역시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동해안 최대 규모의 어시장인 죽도시장, 그리고 쇼핑의 메카이자 젊은이들의 거리인 중앙상가는 포항 원도심을 대표하는 장소들이다. 1949년에 개업한 시민제과도 빼놓을 수 없다.그러나 2000년대 이후 산업구조의 변화와 청년인구 감소 등으로 인해 원도심 지역의 활기는 상당히 감소했다. 죽도시장은 여전히 포항 시민들의 부엌이자 대표적인 관광지로 사랑받고 있지만, 인근 지역의 경우 장기간 공실로 남아 있는 상가와 주택이 적지 않다. 도시사회학에서 말하는 ‘도넛 현상’, 즉 도심지역의 주거 기능이 약화 되어 도심이 공동화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이는 포항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대구, 부산, 서울, 인천처럼 역사가 깊고 근대화 이후 급속하게 성장한 도시들은 모두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공동화된 도심은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슬럼화될 우려도 크다.이에 따라 ‘원도심 살리기’를 시도하는 도시들이 많다. ‘힙지로’라는 단어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새롭고 개성 강한 것’을 뜻하는 영단어 ‘힙(hip)’과 을지로의 ‘지로’를 합친 말이다. 서울 을지로는 원래 인쇄소들이 모여 있던 ‘인쇄 골목’이었지만, 인쇄업의 쇠퇴로 인해 공동화 현상을 겪게 되었다. 인적 없이 방치되던 공간들을 ‘힙’한 카페, 바(bar), 레스토랑 등이 채우자 을지로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핫 플레이스’로 되살아나게 된 것이다.물론 ‘힙지로’ 사례에도 문제점은 있다. 실거주자가 아닌 상업자본이 공간을 차지했기 때문에 예전의 을지로 인쇄 골목이 지녔던 서민적이고 정감 있는 분위기는 휘발되어 버렸다. 상권의 발달로 인해 임대료가 상승함으로써 개성 있는 소규모 가게들이 밀려나게 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문제도 우려된다.결국 이상적인 ‘원도심 살리기’는 상업자본이 아니라 실제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과 청년들이 주체가 되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나날이 심각해지는 지역 인구 감소와 청년인구 유출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 해당 지역에 토지와 건물을 소유한 분들의 대승적 결단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포항의 원도심을 어떤 방식으로 되살릴 것인가. 되살아난 원도심은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가.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2023-07-17

고래도 살지 못하는 지구를

김규인 수필가 방송에서 연일 장마로 인한 대피와 피해 상황을 보고한다. 실종자와 사망자가 나오고 그런데도 다음 주까지 물 폭탄은 계속된다고 한다. 물에 잠긴 논을 바라보는 농민의 시름은 깊어져 가고 하루아침에 살림살이와 가재도구를 잃은 수재민들은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앞길이 막막하다.비 피해로 문화재로 등록된 칠곡 매원마을의 승산대 대문채와 국가민속문화재인 봉화 송석헌 고택 주변의 물도랑 3곳도 무너졌다. 어디 무너진 것이 문화재뿐이랴. 가뜩이나 치솟은 물가와 불황으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국민들의 마음을 지탱하던 마음의 축대마저 부러뜨린다.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은 대응책을 내기보다는 정치적인 유불리에 따라 말과 행동을 달리하는 거대 정치집단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정작 문제의 본질은 홀로 나뒹군다. 오히려 자신의 성향에 맞는 정치에 편승해 거드는 국민의 목소리까지 더해져 나라가 온통 후쿠시마 오염수로 도배가 된다.바다의 거대한 쓰레기 덩어리인 플라스틱 섬은 인간 탐욕의 크기만큼이나 점점 더 크기를 키워도 어떤 나라에서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자는 효과적인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더 섬이 커져야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을 줄일까. 코로나 이후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더 늘어만 가는 플라스틱은 이제는 사람마저도 삼키려 한다.부산항 등 대형 항구가 있는 항만에는 선박의 접안 시 충격을 위해 달아놓은 폐타이어가 큰 충격으로 선박에서 떨어져 가뜩이나 힘겨운 항구의 커다란 혹 덩어리가 되어 자란다. 해양수산부가 늦게나마 실태를 조사하고 일제 수거에 착수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나씩 인간의 욕심을 채우고 떨어진 쓰레기가 이제는 바다를 가득 메울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높은 산이나 극지방에서 수십억 년 동안 태양의 빛을 반사하며 지구를 지키던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후세 사람들은 빙하가 무엇인지 책에서나 보는 신기한 물체가 될 것 같다. 빙하수가 이루는 호수를 보는 일은 더는 지구에서 볼 수 없는 일이 되고 호수는 바닥을 드러내고 갈라질 것이다.매일 자동차를 몰고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열심히 지구를 데우는 지구인들은 급격하게 온도가 올라 몸부림치는 지구의 아픔을 애써 외면한다. 화가 나서 여러 달을 산을 태워도 산이 뭉개지도록 물을 뿌려도 풀리지 않는 지구의 화병을 고칠 수는 없는지. 이제 더는 손 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나 지구의 아픔에 대해 외면하고 자신들의 떠내려간 살림살이만을 걱정하고 있다.지난 1월 카우아이섬 인근 암초에 길이 17m, 몸무게 60t의 거대한 향유고래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수많은 플라스틱과 해양 쓰레기로 가득해진 뱃속을 보여주며 향유고래는 말한다. 더 이상 지구는 고래가 살 곳이 못 된다고.지금도 우리는 열심히 지구를 데운다. 온갖 가스를 내뿜고 온갖 욕정을 내뿜으며 뱃속 가득 욕심만을 채운다. 고래뱃속 가득 플라스틱을 채우고도 모자라 플라스틱 공장은 24시간 불이 꺼질 줄을 모른다. 그 아름답던 녹색 별이 붉은 별이 되도록.

2023-07-17

스스로 판단해야 좋은 정치 만든다

김진국 고문 정치에 대한 불만이 많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2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정부 기관 중 가장 국민 신뢰도가 낮은 기관은 국회(24.1%)였다. 4명 중 3명은 국회를 못 믿는다는 말이다.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유권자가 30%였다. 국민의힘 지지가 33%, 더불어민주당 32%, 정의당 5%다. 보수층의 72%는 국민의힘을, 진보층의 59%는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중도층은 25%가 국민의힘을, 32%가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가 37%였다.그렇다고 이것만 믿고 제3당을 만들면, 성공할 확률이 매우 낮다. 무당층이 50%를 웃돌 때도 제3당 시도는 대부분 실패했다. 성공 신화로 거론하는 사례가 88년 4당 체제다. 소위 ‘1노 3김’ 체제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고, 분열한 양 김 씨(김영삼·김대중)와 김종필 총재까지 4당 체제가 만들어졌다.통일민주당을 탈당해 평민당을 만들기 전 몇 달 동안 김대중 고문은 필자를 만날 때마다 “한국 국민의 80% 이상이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한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서울대 연구소 조사를 인용해 중산층·서민·노동자·농민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며 분당(分黨) 논리를 다듬었다.그러나 그 체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지역 할거였기 때문이다. 호남과 영남을 쪼개고, 영남을 다시 경남과 경북으로 나누었다. 그러자 ‘핫바지’론을 들먹이며 충청도당도 만들어졌다. 독재와 반독재라는 구분을 보수와 진보, 지역대결로 바꾼 셈이다. 그 정도 강력한 구심력이 없는 한 쪼개기가 쉽지 않다.4당 체제도 오래 가지 못했다. 3당 합당 탓만도 아니다.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정당의 최고목표는 집권이고, 대통령선거승리다. 내가 좋아하는 후보보다 ‘내가 싫어하는 후보를 떨어뜨리고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찍는 양상이 벌어진다. 차악(次惡)의 선택이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봐도 비호감도가 호감도를 압도했다.양극화된 증오 정치에서는 불만이 넘칠 수밖에 없다. 한때 ‘안철수 현상’이 풍미하고, 국민의힘이 이준석을 선택했던 것도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이 탈출구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패했다. 기대와 차이가 있었다. 정치 혐오가 가득 찬 이 상황에는 유권자의 책임이 크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유권자의 수준과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유권자가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나와 지연·혈연·학연이 얽힌다고 무조건 지지하고, 감싸는 일을 그만해야 한다. 한 가지가 마음에 든다고 무조건 응원해서도 안 된다. 눈을 감고 따라가는 추종자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 편도 시시비비를 가려줘야 건강해진다. 유권자를 무시하지 않는다.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과대 대표된다. 사회통신망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증폭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조직적으로 움직일 때 영향력은 더 부풀려진다. ‘킹크랩’ 사건이 그런 경각심을 던져줬다. 최근 ‘개딸’에 휘둘리는 민주당도 그렇다. 국회의원조차 조직적인 온라인 테러에 꼼짝을 못 한다. 유권자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선동가에 끌려다니면 안 된다.4당 체제가 공고하던 시절, 호남에서는 김대중 총재가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있었다. 칠곡 출신인 이수인 영남대 교수를 전남 함평-영광에 공천해 당선시킨 일도 있다. 무조건 당선은 정치인을 타락시켰고, 지역 주민들은 당선시키면서도 불만이 커졌다. 무조건 지지의 당연한 결과다.1등만 목표로 하는 제왕적 대통령제, 차악을 선택하는 전략적 투표는 양극적 양당제로 가게 된다. 당선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 틈에 극단세력이 목소리를 높인다. ‘개딸’이나 조국 사태, 태극기 부대, 괴담…. 합리적 주장은 힘을 잃고, 극단적이고, 과장된 선동이 설친다. 결국 부패하고, 쇠망으로 가는 길이다. 유권자가 무조건 지지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이 되어 판단하고,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어야 정치도 건전해진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7-16

표류하는 세계, 무너지는 한국

김규종 경북대 교수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내게 썩 쓸모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서적을 소개하는 지면이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수많은 신간 서적이 출간-유통되는 21세기 20년대는 그야말로 유토피아다. 그래서 일본 최고의 지식인이자 독서광 다치바나 다카시(1940∼2021) 평론가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아생전에 그는 “이렇게 좋은 책들이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데, 죽어야 한다니 너무나 안타깝다”는 소회(所懷)를 밝힌 바 있다.얼마 전에 ‘표류하는 세계’에 나오는 구절을 보고 즉시 구매했다. “미국이라는 강력한 배는 정치 갈등과 부패, 이기주의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사회를 둘러싼 논쟁들은 폭력적이고, 젊은 사람들은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며, 제일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나라를 희생해가면서 개인의 영광을 추구한다. 공동체는 쇠퇴하고 있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아니, 이게 대한민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인가?!하기야 세계에서 미국을 가장 열심히 추종하는 나라가 나의 조국이니까 동조성(同調性) 확인은 식은 죽 먹기일 터. 미국인들의 두 가지 금기(禁忌)가 정치와 종교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친구나 가족 간에도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 하는 화제와 어떤 종교를 믿느냐 하는 이야기는 무조건 피한다고 한다. 그만큼 미국 사회는 정치와 종교 갈등을 심각하게 겪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 갈등 역시 미국 못지않다.이른바 제3 당의 출현을 기대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지만, 그들의 바람은 번번이 무산되었다. 정부 여당과 제1 야당의 갈등과 대결 양상이 연일(連日) 언론의 주제가 되지만, 적정한 선에서 마무리되는 타협과 해결방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정치에 염증을 내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나이 먹은 축들만 열성적으로 투표장에 나간다. 선거는 미래권력을 선출하는 행위인데, 청년들은 놀러 가고, 노인들만 투표하는 이상한 행태가 되풀이된다.어린 시절부터 똑똑한 전화기 스마트폰에 중독된 젊은 세대는 직접적인 대면이나, 전화 통화를 꺼리고, 문자 소통으로 대신하는 데 익숙하다. 사람을 만나든 전화로 통화하든 완결된 문장으로 이루어진 대화를 한다는 게 그들에겐 어려운 과제라고 한다. 이른바 ‘카카오톡’이라는 문명의 이기(利器)에 노예로 전락한 지 오래이기에 극히 짧은 의사소통 수단에 속수무책으로 길들여진 것이다. ‘ㅇㅋ, ㅇㅇ, ㅋㅋㅋ’ 같은 놀라운 신발명 표기를 보았을 터다.‘표류하는 세계’에 나오는 글 가운데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똑똑한 인간들의 지독한 개인주의와 영광 추구로 인해 공동체가 쇠퇴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미국은 처음부터 개인주의로 중무장한 상태에서 출발한 나라이니까 그렇다 쳐도, 나와 가족보다 이웃과 공동체를 중시했던 미풍양속이 우리 조상들의 전통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나와 가족이 조금 손해 보더라도 공동체를 위해서는 참아야 한다고 배운 세대가 속속 사라지고 있다.나의 결론은 단순하다. 잘난 사람들, 돈 많은 사람들, 배운 사람들, 권력 가진 사람들이 이제는 내려놓고 공동체를 돌보자는 것이다. 공동체 건설을 위해 함께 매진하면 어떻겠는가?!

2023-07-16

베케플레이션(Vacaflation)

우정구 논설위원 인플레이션(Inflation)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화폐가치가 떨어지면서 대중의 실질적 소득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반대로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하락하는 현상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불경기를 뜻하는 Stagnation과 인플레이션이 합성된 말로 경기가 침체된 상태에서 물가가 오를 때를 말한다.서민물가와 직결되는 인플레이션 현상이 지속되면서 인플레이션과 연계한 신조어들도 많이 등장했다. 여름 휴가철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베케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휴가를 뜻하는 Vacation과 인플레이션이 합쳐진 말이다.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여행수요는 폭증했으나 그동안 축소됐던 여행 인프라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항공료, 숙박료 등 휴가관련 비용이 크게 증가한 것을 의미한다.미국에서는 런치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물가가 급격히 오르면서 직장인들의 점심값 지출이 늘어난 것을 빗댄 표현이다.본격적 휴가철을 맞았으나 많은 직장인이 올여름 휴가를 포기할 생각이라고 한다. 한 여론조사기관 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의 약 70%가 휴가 계획을 못 세우거나 휴가를 포기할 것이란 응답을 했다. 비용 부담때문이다.정부의 물가 안정 노력으로 시중 물가가 2%대까지 내려갔으나 외식물가와 항공료, 휴양지 숙박비 등이 큰폭으로 뛴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콘도이용료는 전년 동기보다 13.4%, 호텔숙박료는 11.1%가 올랐다. 5성급 호텔 하루 숙박비가 55만원 한다니 여름휴가는 엄두도 못 낼 판이다.코로나가 끝나고 3년만에 홀가분한 기분으로 휴가철을 맞았으나 베케플레이션이라는 복병 때문에 직장인의 한숨 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7-16

에너지 선도국이 되기 위한 조건들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대한민국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국민 각자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일까. 지난해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자립도는 8.6%다. OECD평균이 31.3%이고, 우리가 후진국으로 여기는 중국도 20% 후반이며, 선진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49%다. 세계 경제 10대강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에너지전환 현주소가 너무 초라하다.독일은 당초 우리나라처럼 탄소중립 목표를 2050년으로 세웠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난을 겪은 뒤 2040년으로 앞당겼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2030년 신재생에너지 달성비율(30.2%) 목표를 21.7%로 대폭 후퇴시켰다. 특히 산업계의 절감목표치를 15.4%에서 11.5%로 낮춰 기후 전문가들과 야당으로부터 “제정신이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서둘러야 할 에너지전환 대책과 관련한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첫째, 에너지효율 30% 절감운동을 펴야 한다. 각급 공공기관, 모든 학교, 사무실, 공장, 아파트 등에서는 과다하게 한전과 계약된 계약전력을 적정하게 조정부터 해야 한다. 터무니없이 과다 계약된 계약전력으로 인해 낭비되는 전기가 너무 많다. 아직도 LED로 교체하지 않은 전등은 LED 조명등으로 바꿔야 한다. 모든 조명등과 전기·전자제품의 스위치에 각종 센스를 설치해서 불요불급한 전기를 절감할 수 있다. 기업들이 RE100을 달성하고 우리나라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재생에너지 투자에 앞서 ‘30% 에너지 절감’부터 해야 한다. 밑 빠진 독에 30%나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는 힘들다.우리나라는 소득 상위 13%가 전기 50%를 쓰고, 소득 하위 50%가 전기 10% 정도를 쓴다고 한다. 부자들이 솔선수범해서 에너지를 줄이는 사회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에너지 절감에 따른 각종 혜택도 적극 뒤따라야 할 것이다. 30% 절감은 국민 모두가 나서면 달성 가능한 목표다.둘째, 모든 가능한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해야 한다. 태양광 발전은 엄청난 수익사업이기 때문에 각 가정의 모든 지붕과 옥상에 태양광을 의무적으로 설치할 필요가 있다.우리나라 모든 건축물(단독주택, APT, 학교, 사무실, 공장 등) 옥상과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탄소중립에 필요한 재생에너지 30%를 생산할 수 있다. 태양광설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으로 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셋째, 송배전망 보강이 시급하다. 며칠 전 한 에너지 전문가가 “우리나라 송배전망을 신·재생에너지에 맞게 다 갖추기 위해서는 수천조원이 들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했다. 다소 과장된 말이지만, 필자도 ‘스마트 마이크로 그리드’로 신·재생에너지 수급에 맞는 조밀한 송배전망을 갖추기 위해서는 수백조원은 들 것으로 생각한다.산업화 시대에는 한전 송배전망을 통해 훌륭하게 전력 공급이 됐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로 인해 전력 공급원이 다양화하면서 지난해 제주도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18%에 달하자 132차례에 걸쳐 셧다운이 발생했다.한전이 감당하든, 민간에 사업을 개방하든, 신·재생에너지 100% 시대에도 끄떡없는 송배전망을 하루빨리 갖춰야 한다. 송전선로 부족으로 인해 전국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할 수 없는 지경이다.넷째, 산업단지와 대도시 주변 농지에 첨단 스마트팜을 조성해야 한다. 아무리 에너지 절감을 하고 공장이나 사무실, APT, 주택 지붕에 태양광 설치를 하더라도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절대량이 부족하다.따라서 전력수요가 많은 대도시와 산업단지 주변 농지를 ‘재생에너지 발전원’으로 적극 개발할 필요가 있다. 산업과 마찬가지로 농업 또한 고도화할 필요가 있는데 첨단 스마트팜이야말로 농업을 고도화하는 방편이라 할 수 있다.첨단 스마트팜은 연계해서 건설하는 수소연료전지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폐열을 스마트팜에서 활용함으로써 그레이수소를 그린수소로 전환시킨다. 수소연료전지 발전소와 결합한 첨단 스마트팜을 통해 농업을 고도화하는 한편 산업단지나 대도시가 필요로 하는 막대한 신·재생에너지 공급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끝으로, 2050년 전력공급원을 원자력 25~30%, 신재생에너지 70~75%가 달성되도록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떻게 에너지 절감 30%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느냐가 아주 중요하다.이와 함께 우리나라 모든 지붕에 어떻게 태양광 발전을 설치할 것인가, 전국에 걸쳐 ‘스마트 마이크로 그리드’는 어떻게 신속하게 만들어 갈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특히 여기저기서 단편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첨단 스마트팜 연계 수소연료전지 발전을 전국에 걸쳐 체계적으로 늘려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2050년이 아니라 2040년까지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을 달성할 수도 있다.늦은 감은 있지만, 에너지 전환 캠페인에 정부와 기업, 전 국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대한민국이 에너지자립과 에너지전환 선도국가가 되도록 해야 한다.

2023-07-16

은퇴는 내가 결정한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대학 교수인 친구 페이스북에서 “학교가 나의 은퇴를 결정하지 않는다. 은퇴는 내가 결정 한다!” 라는 글을 보고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그 친구는 은퇴 후의 다양한 계획과 생활을 소개하면서 자신은 은퇴하지 않았고 은퇴는 자기 스스로 결정할 것이라고 선언했다.60세에 은퇴하는 공무원이나 그보다 더 빨리 은퇴하는 대기업에 비하면 대학교수는 65세 은퇴라는 혜택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교수로 은퇴한 친구들은 히말라야 산맥 등산을 할 정도로 건강한 친구들이 많다.100세 시대에 은퇴가 너무 빠르고 친구들 재능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간다. 대학은 후학들에게 자리를 내 주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아직 연구, 교육 능력이 충분하고 건강한 교수들을 강제로 은퇴시킨다.미국의 경우는 교수 스스로 은퇴를 결정한다. 일류대학의 연구력이 높은 교수들이나 노벨상급 교수들은 많은 경우 80세가 넘어도 학교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이런 경우 학교도 명성이 유지되어 좋고, 교수도 일을 계속할 수 있어서 좋은 윈-윈의 모양새이다.얼마 전 모교인 미국 스탠퍼드 대학을 가보고 필자를 40년 전 가르치던 교수들이 80세가 넘어 아직 연구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은퇴 후의 삶은 너무 다양하다. 계속 학교에 남아 비정규직으로 가르치기도 하고 다른 대학으로 가기도 하고 또 개인 연구소를 경영하는 분도 있고 책을 쓰기도 하면서 학술 활동을 계속 하는 분들도 있지만 이건 여건이 되는 분들이고, 낙향하여 농사를 짓는 분도 있고 다문화 가족 돌봄 봉사를 하는 분도 있고 심지어 여행 가이드를 하는 분들도 보았다. 물론 그냥 쉬시고 노는 분들도 많이 있다.물론, 그러한 일들도 분명히 의미가 있고 보람있는 일이지만, 아직도 가르칠 힘이 있는 교수들이 강제로 대학을 떠나야 하는 것은 무언가 재고되어야 하지 않을까.요즘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65세 교수 정년이 너무 이르다는 의견이 학계에 있다. 기업들이 60세 전후 은퇴를 볼 때 65세도 충분하다는 의견과 미국대학들처럼 교수는 정년을 없애고 교수 스스로가 정년을 결정하도록 하자는 의견도 있다.유튜브에는 100세 시대에 젊게 사는 방법 등이 넘쳐 난다.눈에 띄는 것 중에 하나가 나이를 20년 세월을 돌려 살아가라는 이론이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엘렌 랑거 교수는 ‘시계 거꾸로 돌리기(counterclockwise)’ 실험으로 유명하다. 이 실험의 목적은 심리적인 시간을 되돌릴 때 나타나는 사람의 생리적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었다.실험에 참여한 시니어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가 놀랍도록 좋아졌다고 한다. 랑거 교수는 이를 “정신이 젊어지면 육체도 젊어진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논문에 발표하였다.이 실험은 시니어들의 젊게 사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들은 ‘노인’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기를 거부하는데 ‘은퇴’라는 굴레가 거추장스럽다.평균 수명 80세가 넘고, 그리고 곧 평균 수명 100세가 다가오는 시대에 있어서 노인이라는 단어를 적용하여 강제 은퇴를 시키기 보다는 탄력성 있는 은퇴제도가 특히 과학계나 대학에서 필요해 보인다.경북 안동에 이른바 ‘21세기 하회마을·도산서원’으로 불리는‘하회 과학자마을’이 생긴다고 한다.2025년까지 안동 호민지 근처에 하회 과학자마을을 설립할 계획이고, 마을에는 주거용 건물과 함께 영상회의실, 컨벤션, 공유오피스, 커뮤니티 시설 등이 들어선다고 한다.과거 하회마을처럼 천 년간 유지되는 건축 기술로 지은 마을에 과학자들이 지혜를 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방침이라고 한다. 참 반가운 소식이다.하회 과학자마을 입주자들을 경북연구원 석좌연구원으로 위촉하고, 이들이 앞으로 경북의 국책 프로젝트 유치, 대학과 연계한 강의, 기업·연구기관과 연계한 연구개발, 창업 활동 등을 돕도록 한다는 계획이라고 한다.하회 과학자마을 설립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철우 경북지사는 “하회 과학자마을이 21세기에 하회마을·도산서원 역할을 하도록 해 국가와 지역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하는데 꼭 실천되길 기대해 본다.나이는 숫자가 아닌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제 “노인”이라는 단어는 쓰지 말자. ‘시니어’라는 말도 좋고 ‘선배님’‘선생님’이란 좋은 단어가 얼마든지 있는데 이제 노인이란 단어는 묻어야 한다. 이제 100세 시대에 우린 살고 있고 시니어들의 활약도 사회의 중요한 몫이 되고 있다.앞서 언급한 엘렌 랑거 교수의 ‘시계 거꾸로 돌리기’이론을 잘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젊게 생각하면 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젊음을 유지하고 싶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건 시니어들도 예외가 아니다.그들은 “내가 은퇴를 결정한다”는 당당한 시니어 세대이다.

2023-07-16

유네스코 세계유산 대표 관광도시로 도약하는 안동시

권기창 안동시장 안동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품고 글로벌 관광도시로 도약한다. 안동시는 서울 청량리에서 KTX복선전철을 타고 안동까지 2시간 내 도착하는 1일 관광 접근성을 바탕으로 가장 한국적인 도시 안동의 매력을 알려 나간다.유네스코 3대 카테고리를 석권한 전통유산을 자양분으로 사계절 축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지역 관광사업체의 뿌리를 다지며 관광거점도시 사업을 신성장 동력 삼아 새롭게 비상해 나갈 계획이다.특히, 올해 지역 관광기업의 창업에서 홍보까지 전 단계에 걸쳐 관광경쟁력을 강화해 나간다. 지역 DMO 조직과 연계한 아이디어 해커톤을 운영해 지역특화 관광상품을 발굴하고, 음식·숙박업소의 위생 환경도 쾌적하게 개선한다. 또한, 지난해 남이섬 신화의 강우현 대표와 협업해 관광상품 패키징 디자인을 개발함으로써 품격있는 안동 기념품 생산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지역의 숨은 고택을 사람의 온기로 재탄생시키는 ‘살아 숨 쉬는 고택 만들기 프로젝트’를 추진해 연내 5곳의 고택을 카페, 창작공간 등으로 탈바꿈하고 전문 고택매니저를 영입해 명품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다변화하는 관광트렌드를 반영해 마케팅 시스템도 업그레이드 된다. 스마일트립200 사업으로 관광여행상품을 고도화하는 한편, 온라인 유통시스템 OTA(Online Travel Agency)를 새롭게 구축할 계획이다. 점차 늘어나는 체류형 개별 관광객(FIT)에 대응해 단체 관광객 유치뿐만 아니라 개별 관광객에 대해서도 여행 인센티브를 지원한다.다양한 채널을 활용한 외국인 관광객 유치 마케팅도 눈길을 끈다. 제주항공과 협력해 안동의 탈과 누각(병산서원 만대루)이 래핑(wrapping)된 항공기(Boeing 737)를 통해 관광거점도시 안동을 홍보한다. 또한, 총 1천300만 구독자를 지닌 13명의 외국 SNS 인플루언서를 활용해 안동 여행 영상을 지속 제작·업로드해 세계 각지에서 안동의 매력을 느끼고 찾아 오도록 하고 있다. 최근 베트남, 인도네시아 유튜버 영상은 30만 회를 돌파하고 지속적으로 신규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또한, 관광거점도시 사업을 중심으로 지역 특화 관광인프라를 구축한다. 안동호 내에 수상공연장을 조성하고 월영교 일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풍부한 수변자원을 활용한 안동만의 관광콘텐츠를 만들어 안동댐 관광자원화를 이룬다는 계획아래 올해부터 2025년까지 3년간 총 1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아울러 댐 일원에 마리나 리조트와 종합 수상레포츠 단지도 조성한다. 안동시가 기반시설을 조성하고 수상 리조트와 수상 경비행장은 민자유치를 통해 마련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오는 2027년까지 민자 80억원을 포함해 총 150억 원이 투입된다.원도심의 체류형 관광을 이끌 안동문화관광단지도 올해 새롭게 변신한다. 지난해 문체부 주관 지역연계 첨단 문화기술 실증 공모사업에 선정됨에 따라 유교랜드는 첨단기술 기반의 메타버스를 연동한 융복합 실감형 콘텐츠로 리뉴얼될 예정이다. 가족 캠핑족 수요에 대응해 ‘엄마까투리 야영장 및 상상놀이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161억 원이 투입돼 놀이터, 물놀이시설, 체험관, 복합상영관 등을 조성한다.이를 바탕으로 안동시는 올해를 원년으로 사계절 관광축제 시스템을 전격 도입한다. △봄에는 ‘차전장군 노국공주 축제’ △여름에는 ‘수(水) 페스타’ △가을에는 ‘국제탈춤페스티벌’ △겨울에는 ‘암산얼음축제’를 진행해 사시사철 볼거리 즐길거리 풍성한 축제의 도시로 거듭날 계획이다.독립운동의 성지 임청각에서 월영교까지의 철도 유휴부지는 2025년까지 151억 원을 투입해 테마가 있는 거리로 조성한다. 성락철교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테마화거리 도보길(연장 2.2km) 조성에 46억 원, 와룡터널(연장 200m) 내 영상과 음악 등 다양한 기술을 접목한 체험형 공간재창출 사업에 55억 원, 낙동강 조망과 함께 이색 콘텐츠가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는 성락철교(연장 220m) 랜드마크화 사업에 50억 원을 투자한다. 안동댐 하류 사면부와 여수로에는 미디어 연출 및 경관조명 등을 설치해 관광자원화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도시 안동만의 역사·문화적 특성과 풍부한 수자원을 전략적 관광자원으로 개발해 국내외 1천만 관광객이 즐겨 찾는 글로벌 관광도시로 조성할 계획이다.재미와 감동이 있는 역동적인 관광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 사계절 내내 언제나 볼거리 즐길거리가 풍성한 생동감 넘치는 관광도시 도약을 반드시 성취하겠다.

2023-07-16

풀벌레가 가르쳐 준 우정

이희정 시인 풀벌레들 소리만으로 세상 울린다그 울림 속에 내가 서 있다울음소리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나는 지금 득음하고 싶은 것이다전 생애로 절명하듯 울어대는 벌레 소리들언제 내 속에 들어왔는지 나는 모른다네가 내 지음(知音)이다네 소리가 나를 부린 지 오래되었다시의 판소리여이제 온전히 소리판이니누구든 듣고 가라소리를 듣듯이 울음도 그렇게 듣는 것이다저 벌레 소리 받아 적으면 반성문 될까부르고 싶은 절창의 한 소절 될까소절 소절 내 속에서 울리고 있다모든 울리는 것들은 여운을 남긴다―천양희,‘새벽에 생각하다(문학과 지성사, 2017)’ 중 ‘여운’ 전문칠월의 풀숲에는 여름이 부푸는 소리 한창이다. 이른 아침 천양희 시인(1942~)의 시집 한 권을 에코백에 담아 들고 나선 산책길, 이슬 젖은 흙을 밟으며 걷노라니 미성(美聲)의 안개가 나란히 보폭을 맞추며 따라온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쳐다보다 접힌 모서리를 펼쳐보니 제목이 ‘여운’이다. 온전히 초록과 풀벌레 소리만으로 가득한 이곳에 여운 아닌 것이 있을까. 세상의 어지러운 소음이 거세된 울울창창한 녹음 안에 시인은 있다. 시인은 풀벌레 소리가 세상을 울린다고 했다. 울린다는 게 뭘까. 울림 소리가 숲을 흔들고 마음을 흔드니 그 울림은 세상을 흔드는 소리지 흐느끼는 울음은 아닌가 보다. 시인은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득음을 하고 싶은” 거라고 속내를 털어낸다. 부풀 대로 부푼 여름이 마침내 터지는 소리, 득음(得音)이다. 천양희 시인은 벌레를 빌어 시인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가짜 시인은 언제나 타자의 이름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지만 진짜 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할 때도 타자와 함께 말한다”는 옥타비오 파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시인은 “네 소리가 나를 부린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한가지 일에 평생을 바친다는 것은 운명을 거는 것과 같다고, 운명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토록 고통스러운 혼신을 바칠 수 있으며, 돈도 밥도 안 되는 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시를 쓰지 않으면 살아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시를 쓰라”는 릴케의 말을 디딤돌 삼아 시인이 되었다는 그녀의 준엄한 고백을 듣는다.“전 생애로 절명하듯 울어대는 벌레 소리들”은 기실 시인 자신과 포개어져 있다. “언제 내 속에 들어 왔는지”모를 시가 그녀를 끌고 가고, 그런 시가 없었더라면 따라가는 그녀도 없었을 것이기에 “네가 내 지음(知音)이다”라고 증언하는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의 고사에서 비롯된 지음(知音)은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뜻한다.세상에 진정으로 나를 알아주는 이가 몇이나 될까. 시인은 “누구든 듣고 가라”고 권한다. “소리를 그렇게 듣듯 울음도 그렇게 듣는 것이라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고독에 바치는 것이 시라는 것은 요즘엔 쉬이 공감되지 않는 아픔일 수도 있다. 복잡한 곳을 기웃거리는 일상에 내쳐지는 일이 다반사이고 보면 또 그만큼 가슴을 조여올 때도 없다. 고독을 잃어버리면 시의 고갈이 오기에 고독을 잃어버릴 때가 시인에게는 가장 위험한 때다. 요즘 시인들은 고독을 잃어버리고 시에 운명을 걸지도 순정을 바치지도 않으니까 절창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 한 어느 평론가의 쓴소리에 몇 번이나 속으로 “저 벌레 소리 받아 적으면 반성문이 될까”라며 반성문을 쓰는 시인.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진짜 힘은 자신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누구든 “부르고 싶은 절창 한 소절”이 있기 마련이다. “소절 소절 내 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시인이 시 쓰기의 어려움을 고독 속에서 극복한 것처럼 고독의 터널 속에 잠시나마 거해 보자. 사람을 해치지 않는 유일한 것, 아름다움이 자란다면 풀잎에서부터일 것이다. 우정은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스며드는 풀벌레 소리와 같다. 음원이 동작을 멈추어도 여음으로 인해 혹은 반사로 인해 그 음은 더욱 진향으로 울릴 것이기에.지음(知音)을 듣는 시간, “모든 울리는 것들은 여운을 남긴다.”

2023-07-16

재앙이 아닌 패션을 위하여

유영희 작가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국회의원회관에서 ‘옷, 재앙이 되다’ 행사가 열렸다. 패션회사가 팔지 못한 재고를 소각하거나 폐기하는 것을 금지하자는 법안 마련을 위한 자리였다. 이 법안이 필요한 이유는 팔리지도 않은 엄청난 양의 새 옷이 소각되거나 매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엘렌 맥아더 재단이 2017년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에서 2015년 사이에 의류 생산이 2배 증가해서 2015년에는 1천억 벌의 옷이 생산되었으며 그중 73%가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등 폐기되었다고 한다. 국내 의류 폐기물 발생량 역시 심각해서, 2020년의 폐의류 발생량은 약 8만 t이 넘고, 공장의 폐섬유 발생량은 3만 t 가까이 된다. 우리 헌 옷을 수입한 나라에서도 재사용되지 못한 옷이 쓰레기 산을 이룬다.이러한 생산 증가가 단순한 인구 증가 때문이거나 삶의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18년 유엔 조사에 따르면 의류 산업의 탄소배출 비중은 10%나 되고, 폐수 발생 비중은 20%를 차지할 정도로 옷 생산에 환경 부담이 크다. 청바지 하나에 물 7천ℓ, 섬유 1t 생산에 물 200t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이렇게 의류 폐기물이 급증한 데는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려는 의류 산업의 상술과 재고 보관에 비용이 든다는 이유도 있지만, 패스트 패션의 유행도 한 몫 한다. 일반적인 패션 브랜드는 계절에 따라 1년에 4번 기획하고 생산하지만, 패스트 패션 브랜드는 1~2주마다 새로운 의류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류 산업 차원에서 대규모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아무리 중고 마켓을 이용하고 재사용을 위해 힘쓴다고 해도 개인의 힘이 닿지 않는 영역이 있다.의류 폐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산자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 이미 프랑스에서는 재고 의류 재사용을 법제화했고, 벨기에나 독일은 재고 물량을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법안으로 제정했다. 한국에서도 2022년에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이 제정되기는 했으나 의류 폐기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의 헌 옷 수출량이 미국·중국·영국·독일 다음으로 많은 세계 5위로, 인구를 고려하면 1인당 버리는 옷의 양은 세계 1위인 셈이니, 어느 나라보다 법안 제정의 필요성은 절박하다. 그런 이유로 이번 ‘옷, 재앙이 되다’에서 재고 의류 폐기 반대 법안에 서명해줄 것을 호소한 것이다.아무리 의류 산업이 환경 부하가 크다고 해도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패션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3, 4년 전까지만 해도 패션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작은 집으로 이사 오면서 옷을 다 정리하고 나니 좋은 옷이란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잘 표현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새 옷을 장만할 때는 더 신중해지고 나의 정체성을 잘 표현하는 옷 몇 벌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잘 맞는 패션을 아는 것도 패스트 패션의 광풍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3-07-16

생성형 AI 시대 미래 인재상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2023년 가장 핫한 키워드는 미국 Open AI사의 챗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로부터 촉발된 생성형 AI의 등장일 것이다. 사용자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 서비스 인지를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인 100만 사용자까지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이 넷플릭스가 3.5년, 페이스북이 10개월, 인스타그램이 2.5개월이 걸린 것에 비해 챗 GPT가 단 5일만에 갱신하면서 엄청난 파급력이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생성형 AI는 텍스트 이미지 음성 영상 등 기존 콘텐츠를 활용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을 말한다. 기존 AI가 데이터와 패턴을 학습해서 대상을 이해 했다면 생성형 AI는 학습을 통해 스스로 창작물을 만들어 낸다. 텍스트를 활용한 대화형 AI의 대표적인 예가 챗 GPT와 구글의 바드이며 그리고자 하는 이미지를 알려 주면 구현하는 달리와 스테이블디퓨전 등이 있고 문자 설명을 음악으로 만드는 뮤직엘앰이나 원하는 장르나 가수 스타일로 음악을 창작하는 쥬크박스와 비디오 생성 AI인 이메진비디오 등이 있다.얼마전 게임회사에서 캐릭터 디자이너로 일하는 지인을 만났는데 생성형 AI의 출현으로 매우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하였다. 사람이 게임 캐릭터 디자인을 할 때 시안 작업에 2~3일이 소요되는데 스테이블디퓨전과 같은 이미지 생성형 AI를 사용하면 수초에 1개씩 시안이 생성 된다는 것이다. 아직은 AI가 만들어낸 시안을 수정하는데 사람이 필요하지만 앞으로 기계가 학습을 지속하면 사람이 거의 필요 없어질 것 같다고 하였다.2023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일자리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오픈 AI의 쳇 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영향으로 앞으로 5년 안에 전세계 일자리의 25%가 영향을 받을 것이며 사라지는 일자리가 8천300만개 AI로 인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6천900만개로 1천400만개가 감소한다고 내다봤다. 실제 2022년 말 기준 전국 17개 시중은행의 지점 출장소 400여 개 가까이가 문을 닫았으며 이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가장 먼저 없어지는 일자리의 순서로 은행 딜러 캐셔 등 단순 작업과 인력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 의사 변호사 등과 같이 고임금 작업을 꼽고 있다.일자리의 변화도 많지만 지금까지의 기업의 인재상 또한 지식 기술 태도에서 지식 기술은 AI로 대체 되고 태도가 가장 중요 해진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좋은 대학을 나와서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부를 누렸으나 미래에는 필요한 지식은 인공지능이 바로 알려주며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분야도 생성형 AI에 의해 손쉽게 창조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분석적이고 창조적인 사고와 일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완벽한 개인은 없어도 완벽한 조직은 있다는 말이 있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할수록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자세로 동료들과 잘 어울려 완벽한 조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미래의 인재임을 지금 꼭 되새겨야 할 때이다.

2023-07-16

애모(愛慕)는 사리(舍利)로 맺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시조문학회 동인들이 경북 청도로 문학기행을 갔다. 청도는 시조의 고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조문단에 명망이 있는 이호우·이영도 오누이의 생가가 있는 곳이고, 유명 시조시인들의 시비(詩碑)를 세워 시조공원도 조성해 놓은 데다 현재 시조문단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민병도 시인이 태어나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한 때문이다.청도 출신 이영도 시인에 대해서는 좀 각별한 기억이 있다. 사춘기 시절에 읽은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서간집에서 받은 인상이 그것이다. 1967년, 당시 문단의 중견인 유치환 시인이 교통사고로 타계하자, 연인이었던 이영도 시인은 그간에 받은 연서의 일부를 추려 책으로 내었다. 그 서간집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문단 안팎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유치환 시인이 이영도 시인에게 20여 년 동안 무려 5000여 통의 연서를 보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일찍 남편을 여의고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이영도 시인에 비해 유치환 시인은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라는 것이 세간에 물의를 빚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해서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 지라도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로 끝맺는 유치환 시인의 연가는 연애감성에 눈뜰 무렵의 사춘기 소년에겐 적잖은 충격과 감동이었다. 뒤를 잇는 이영도 시인의 시편들도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한갓 스캔들에 머물지 않고 보다 높은 차원의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 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유치환이 세상을 뜨고 난 후에 쓴 ‘탑 3’이란 제목의 이 시는 그들의 사랑을 누구도 섣불리 흠집을 내지 못하도록 단단한 돌로 굳혀 놓았다.내가 남자이고 시조를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유치환 시인보다 이영도 시인의 시편들에 더 마음이 갔다. 물론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사춘기 시절부터 마음에 새겨졌던 여인상이어서 노년에 접어든 지금도 그의 시조를 읽으면 왠지 모를 아픔 같은 것이 일곤 한다. 누가 그랬던가, 그리움이 다 소진 되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고. 철학자 김형석 선생이 98세의 나이에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이번의 청도기행은 그런 그리움의 일단을 더듬어보는 일이기도 하였다.이영도 시인의 연시(戀詩)는 일세를 풍미했던 황진이 시조의 계보를 잇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대 환경과 처한 사정은 다르지만 격조 있는 여성성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자칫 세간의 입방아에나 오르내릴 스캔들의 주인공일 수도 있었던 그들을 남다른 여성상으로 우뚝 세운 것은 시의 힘이었다. 시가 있었기에 세인들의 비난과 폄훼의 시선을 바꾸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너는 가고/ 애모(愛慕)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임 같은/ 물결 소리 내 소리// 세월(歲月)은 덧이 없어도/ 한결같은 나의 정(情)” - 이영도 시조‘황혼에 서서’의 일부다.

2023-07-13

삼복더위를 시원하게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작은 더위’ 소서(小暑)가 다녀가니 급기야 무더위를 거느리고 온 삼복더위 삼형제가 들이닥친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숨을 막히게 하고 남쪽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열기에 실려 온 장맛비가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게릴라성 집중 호우를 퍼붓고 있다. 여기에 태풍급 강풍을 동반하니 가히 한여름이 중간에 선다. 일본 큐슈를 강타하고 북상한 장맛비는 다음 주까지 수도권 250mm를 정점으로 남부에 폭우를 뿌리며 전국에 물 폭탄을 쏟아붓는다니 산사태와 침수 등 비 피해에 대비하며 생활 안전에 신경을 써야겠다.복(伏)날은 경일(庚日)이라, 가을의 금(金) 기운인 음기가 여름의 화(火) 기운인 양기에 눌려 엎드린 개의 형상인데, 영어로도 ‘개의 날(Dog day)’이라니 동서양 모두 7월 더위가 개와 관련되어 있어서 참 신기하다. 예전 같으면 뜨거운 보신탕 한 그릇 후루룩 비우며 이열치열(以熱治熱) 더위를 물리치겠지만 요즈음은 ‘바다의 산삼’이라는 전복과 인삼을 넣어 푹 삶은 삼계탕을 먹고 이 더위를 이겨나갈 수밖에…. 아니면 ‘밭에서 나는 쇠고기’ 흰콩을 껍질 벗기고 알맞게 삶아 맷돌에 갈아 만든 콩국에 하얀 국수를 말아 콩국수도 먹고 시원한 참외나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날려야겠다.경북 동해안의 23개 해수욕장이 14일부터 순차적으로 개장을 하는데 포항지역 6개 해수욕장은 15일부터 개장하여 8월 27일까지 다양한 해양축제와 함께 그동안 코로나19에 찌들었던 국민의 몸과 마음을 씻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백사장은 중금속 검사를 통해 납, 카드뮴, 수은 등 유해 물질은 기준적합 판정을 받았고, 포항 영일대해수욕장과 영덕 장사해수욕장은 방사능 검사 결과 안전한 수준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작년에 23만여 명이 찾은 것으로 봐서 이른 더위가 찾아온 올해는 더 많은 해수욕객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어 아직도 코로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방역 당국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또 갑자기 식인상어가 돌아다닌다는 소식에 괜한 걱정이 된다.2007년 공식 폐장되었던 송도 해수욕장이 그동안 고운 은빛 모래로 채우고 수중 방파제도 설치하고 각종 시설을 보강하여 17년 만에 개장하려 했으나 바다 시청과 주차장, 화장실 등의 설치 미완으로 내년에 개장하기로 미루는 바람에 옛날 명성을 되살려보려던 지역 주민들이 아쉬움을 호소하고 있다. 하늘 높이 두 손을 치켜들고 웃는 ‘평화의 여신상’도 무색해졌다.한편 해변의 정화 활동에 참여한 2천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해안 쓰레기를 빗질하듯 쓸어 모으는 비치 코밍(Beach combing) 활동으로 깨끗한 모래밭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영일대 해수욕장에는 새로운 모래예술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이 무더운 여름날에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으로 환자들의 고통이 있고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대통령탄핵 외침으로 도로의 열기가 더욱 달구어지는데 옛날에도 삼복더위에 백성들의 고통을 생각하여 각종 행사를 자제해 왔다고 하니, 현명한 타협으로 시원한 여름을 보내도록 했으면 하는 것이 시민으로서의 바람이다.

2023-07-13

TK 물갈이론의 실체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은 홍 시장에 비해 정치적으로 햇병아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소신과 철학으로 일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을 ‘싹 다 바꿔라’는 이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얼마 전 대구시와 국민의힘 예산정책협의회에서 김용판 대구시당위원장이 홍준표 대구시장에게 한 말이다. 홍 시장에 대한 섭섭함이 묻어났다.초선의 김 의원이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물갈이론에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있는지 잘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동안 홍 시장은 여러 차례 대구·경북(TK)의원들을 모두 교체해야 한다고 발언해 지역 초·재선의원들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국회에서나 지역에서, 존재감도 없고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22대 총선을 9개월여 앞두고 있지만 지역 정치권은 너무 조용하다. 이맘때쯤이면 출마의사를 밝히고 총선을 향해 뛰는 정치지망생들이 명함을 돌리며 분주하게 지역을 누볐다. 하지만 요즘 TK 정치인들은 대부분 바짝 엎드려 있다. 현역 의원들만 의정보고회와 현수막 정치를 하고 각종 모임에 얼굴을 내밀며 표밭 다지기에 열심이다. 눈에 띄는 정치지망생은 현재 가뭄에 콩나듯 하다.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던 인사 대부분이 다음 총선에서 발을 빼는 이상기류까지 감지된다. 용산(윤석열 대통령) 눈치를 보고 있거나 섣불리 나섰다가 타깃이 돼 찍힐까봐 꼬리를 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그나마 최근 일부 지역에서 친박 인사들의 총선 출마 움직임이 관심을 끌고 있다. 본지 여론조사 결과 이들 지역은 현역 의원보다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 지역 정가를 달구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동정론이 영향을 미치는 지역과 전직 정치인에 대한 평판이 좋은 몇 곳에선 선거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불출마가 거론되는 일부 지역구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 지역은 아예 경쟁구도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 지역 정치권에선 오는 10월 예정인 당의 지역구 정무감사 결과, 성적표가 나오면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 같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교체지수가 높고 당과 대통령 지지도를 밑도는 지역은 물갈이 타깃이 될 전망이다.이 같은 TK지역 상황과 기류는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TK 물갈이론에 힘을 더하고 있다. 당 지도부로 봐선 공천을 통한 물갈이 기반이 자연스레 갖춰진 셈이다. 이에 지역에선 옥석을 가리고 중량급 인사를 키워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중앙 정계에서 활약하는 다선 의원 부재를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21대 총선때 TK 25개 지역구 중 공천경쟁에서 살아남은 의원은 대구 5명, 경북 4명 등 9명 뿐이었다. 16개 지역구의 주인이 바뀌었다. 결국 초선 의원만 16명을 배출, 정치 신인들의 등용문이 됐다. TK는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공천 희생양이 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TK는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속설 앞에 또다시 고개 숙여야할 운명에 놓였다. 공천이라는 이름 아래 속절없이 당하는 학살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역 선량들이 바람 앞에 등불 신세가 됐다.

2023-07-13

의전차량 논란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 11일 경남 거제시 조선해양문화관 야외에 세워져 있던 짝퉁 거북선이 해체되던 날 많은 언론이 지자체의 세금 낭비의 전형적 사례라 세찬 비판을 쏟아냈다.짝퉁 거북선은 2015년 이순신 장군 기념사업 일환으로 16억원의 예산을 들여 만들었으나 한 번도 빛을 보지못한 채 12년간 방치되다 이날 해체된 것. 목재는 땔감으로 철근은 고물상으로 넘겨졌다. 국민 세금이 이처럼 허무하게 낭비되어도 그 누구 하나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 이를 바라본 시민도 기가 막혀 한다.문제는 이런 유사 사례가 전국 지자체에 걸쳐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대구시 군위군의 삼국유사 테마파크도 1천223억원의 예산을 투입, 조성했으나 3년째 적자 운영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얘기로 놀이공원을 만들었지만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속골병 든다는 얘기다.세금 낭비가 논란이 되는 속에 대구시내 기초자치단체들이 1억원에 달하는 고급 승용차를 의전용 차량으로 구입할 예정이어서 구설수에 올랐다. 대구서구청장과 대구북구의회의장 의전차량으로 1억원 가까운 제네시스 G80 전기차 구매를 염두에 두고 관계기관이 예산까지 편성했다는 것이다. 구청 관계자는 최근 법이 바뀌어 전기차만 구매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제네시스 G80 외 선택지가 없다는 해명이다. 그러나 선출직 공직자가 1억원 짜리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면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 정서에 맞을지 의문이다.의전차량은 품격과 안전을 고려해 선택하는 것인데, 1억원 짜리라면 품격보다 권위에 치중한 선택이란 비난을 받지 않을까 싶다. 또 그보다 낮은 전기차가 있는데도 1억원 짜리를 선택한다면 세금 낭비 비난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7-13

호두 맛 아이스크림

윤명희 수필가 장 뜨기 좋은 날이다. 이른 아침, 복실이네 대문 앞에 차를 세우자 햇살바라기를 하던 강아지가 먼저 뛰어나온다. 그녀는 벌써 내 항아리의 장까지 뜨고 있다. 나는 서둘러 고무장갑을 끼고 소금물에 푹 절은 메주를 주물렀다. 같이 하게 좀 기다리지 왜 혼자 하느냐며 눈을 흘기자 날씨가 좋아서라 한다. 두 개의 항아리를 된장으로 채웠다. 언저리에 붙은 것을 찍어 입에 넣었다. 누런 된장이 봄 햇살을 품었다.항아리를 닦고 장독대를 정리하는 일이라도 그녀의 손이 덜 가게 서둘렀다. 수돗가까지 말갛게 치우고는 고무장갑을 벗어 빨래집게로 걸었다. 그녀를 식탁에 앉히고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손에 쥐어주었다. 한 입 베어 문 그녀가 호두 맛이라 한다. 편의점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사온 나는 찢어진 봉지를 확인하며 어떻게 단 번에 아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얼마나 먹었는데 그 맛을 모르겠느냐고 한다.그녀는 직업군인인 아버지의 복무지인 연천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고향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예비군 중대장이었다. 어린 복실이가 그의 등에 붙어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가로지르면 여기저기서 인사를 하곤 했다. 그는 학교 행사 때면 마을 유지들과 함께 천막이 쳐진 단상에 앉아 있었다. 가끔 연단에도 오르는 각 잡힌 군복의 모습이 학교 다니는 내내 자랑스러웠다.초등학교 졸업식 날도 아버지는 그 자리에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그녀는 중학교 교복 대신 지금까지 다녔던 학교의 급사가 되어있었다. 교장실에서 담소중인 아버지 앞에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놓았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그저 급사 아이였을 뿐이었다. 수업시간을 알리는 무쇠종이 그녀 대신 길게 우는 날이었다.엄마는 매일이다시피 남의 집 품팔이를 나갔다. 복실이는 일요일 새벽이면 엄마를 따라 모내기를 하러 가야했다. 일꾼이 모자라 어른들처럼 머릿수건을 하고 작업복을 입으면 한 사람 품삯을 받을 수 있었다. 못줄이 넘어가도록 딸이 다 심지 못한 빈자리를 엄마는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채워야 했다. 엄마와 그녀는 아버지의 화투장이 만들어 내는 구멍을 막기에 바빴지만 역부족이었다.일자리를 구해 부산으로 갔다. 그녀는 신발공장의 일이 힘에 버거워 밤마다 눈물바람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별빛 하나 없는 길을 걸어 패잔병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견디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손가락질이 방문을 뚫고 들어오는 것만 같아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있었다.어느 날 저녁, 아버지 손에 아이스크림 한통이 들려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동생들은 돌아가며 제비새끼처럼 한 입씩 받아먹었다. 숟가락이 몇 번 드나들자 아이스크림은 바닥을 드러냈다. 통까지 혀로 핥은 동생들은 말갛도록 빤 숟가락을 입에 물고 놓지 못했다.다시 일자리를 찾아 기차를 탔다. 영등포구에 있는 방직공장이었다. 밤이면 야학에서 못다 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남동생이 중학생이 되기 위해 짐 보따리를 들고 왔다. 새벽이면 연탄불에 냄비 밥을 지어 동생을 학교에 보냈다. 종일 미싱을 밟고 밤이면 책상 앞에 앉아 졸았다. 부모님은 여동생까지 얹어주었다. 주머니는 늘 월급날이 되기도 전에 비었다.월급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게 앞에서 발이 멈췄다. 아이스크림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얄팍한 월급봉투를 만지고 또 만졌다. 그녀는 아버지가 들고 온 것보다 더 큰 것으로 샀다. 혼자 어둑해진 둑방에 올라갔다. 한 숟가락 푹 떠서 고봉이 된 달콤함을 입에 넣었다. 입안에 가득 차는 호두 맛이 다른 세상을 꿈꾸게 했다. 집에서 기다리는 두 동생도 생각나지 않은 밤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월급날을 기다리며 또 한 달을 버텼다. 혼자 둑방에 올라 퍼 먹고 또 퍼먹으며 어른이 되어갔다.참 오랜만에 먹어본다는 말에 나는 그녀의 손을 말없이 잡았다. 그녀가 웃었다. 오늘 아침에 끓인 된장찌개가 맛있던데 좀 가져갈래? 라고 물었다. 나는 그녀의 손이 닿은 건 다 맛있다고 했다. 언니처럼 챙겨 준 반찬꾸러미를 받아들고 마당에 내려섰다. 마당 가득한 꽃들이 주인을 닮았다. 사이드미러에 비치는 그녀가 손을 흔든다. 된장이 익어가고, 담장에 장미넝쿨이 어깨동무하는 전원주택에 복실이가 산다.

2023-07-12

기유일주(己酉日柱)

육십갑자 중 마흔여섯 번째는 기유(己酉)다. 천간(天干)의 기토(己土)는 규모는 작아도 비옥한 땅이다. 지지(地支)의 유금(酉金)은 귀금속이나 날카롭고 단단한 금속이다. 동물로는 황색 닭이다.기유일주는 보석이 가득 묻힌 땅의 형상이다. 이제 막 출생한 갓난아이이며, 깨끗하고 순박한 성품의 소유자다. 어린아이처럼 감정적이고 호기심도 많고 다소 겁도 많은 편이다. 언행이 가벼울 때도 있지만, 온화하고 꾸밈이 없어 사람들에게 호감을 산다. 예술적인 면에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화술에도 능해 대인 관계도 원만하다. 외모나 성품이 좋은 인상을 주는 캐릭터다. 사회생활도 잘 적응하여 무난하게 뜻을 이뤄 성공과 출세가 빠른 편이다. 신용을 중시하며 남에게 믿음을 주고자 노력하는 경향이다. 자기가 맡은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여 남에게 신뢰를 준다. 특히 부모로부터 유산, 예술, 기술적 재능과 사업 등 좋은 기운을 물려받을 수 있어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기유일주는 명랑하고 창의력이 넘친다. 재주와 개성을 많이 갖고 있는 일주다. 냉철하게 분석을 잘하는 성격으로 매사 원칙을 중시한다. 솔직하고 거짓을 싫어하며, 확실하고 정확한 것을 선호한다. 허나 너무 예민해서 생각과 번민이 많고 쉽게 감정에 치우쳐 스스로 쓸쓸함과 고독에 빠져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따뜻하고 온유한 성품에 다정다감하여 사랑을 느끼고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다.프랑스 태생 생텍쥐페리(1900∼1944)가 쓴 소설 ‘어린왕자’를 생각해 본다.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하여 어린왕자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랑과 소유, 그리고 인간의 고독을 극복하는 과정이 어린왕자를 통해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어린왕자가 사막에서 여우를 만나게 된다. 어린왕자는 여우를 보며 얼마나 예쁜지 몰라 다가갔다. “이리 와서 함께 놀자. 난 지금 몹시 슬퍼….” “난 너와 함께 놀 수 없어. 나는 길들여져 있지 않으니까” “‘길들인다’라는 게 뭐지” “사람들 사이에 잊혀진 것들인데….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인간은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익숙해지는 과정 속에서 소중함을 느끼게 되고, 사랑이란 감정이 발전하게 된다.어린왕자에게 언제 올 건지를 말해 달라는 여우. 만나면 몹시 기쁠 거라는 기대감에 미리부터 즐거워할 것이라며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4시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마침내 4시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그러면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돼”라고 여우는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대상이 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혹시 잊지는 않았는지?기유일주의 남자는 포용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자신의 마음을 알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과 진솔한 대화를 즐긴다. 지혜롭고 미모를 겸비한 아내를 만나 처가의 덕도 볼 수 있다. 여자는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이다. 단정한 이성에게 매력과 호감을 느낀다. 가끔 남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아이를 낳으면 자식에 대한 집착이 심해져 남편을 밀어내며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있다. 집안 살림도 잘하고 요리와 손재주에도 능하다. 남녀 공히 매너와 체면을 중시한다. 기유일주는 닭이 들판에서 노는 형상이다. 닭이 먹이를 쪼아 먹고 땅을 파헤치기를 좋아하듯이 통찰력과 관찰력이 뛰어나고 예민하다. 사람을 보는 눈도 정확하다. 활동성이 강해 부지런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표현능력이 좋아 자칫 오지랖이 넓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목소리가 좋아 성우나 아나운서처럼 듣기 좋은 음색의 소유자가 많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기본적으로 귀티나 부티가 나는 사람이다. 매너를 지키며 자신이 받은 만큼 베푸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주변에서 좋게 생각한다. 너저분한 것을 싫어하고 깔끔한 성격으로 복잡한 것을 싫어해 날카로운 모습도 보인다. 또한 한순간의 실수로 남에게 비수를 꽂는 말을 해서 그동안 쌓은 공덕을 한꺼번에 날릴 수 있다. 내면이 불안하고 갈등이 심해 판단을 잘못하여 실수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하지만 보석이 흙에 묻혀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약자에게는 잘 베풀지만, 강자에게는 날카로운 언행으로 갈등을 빚기도 한다. 우유부단하지만 특유의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을 잘 활용하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장자 외편 ‘달생’에 나오는 이야기다. 기성자가 왕을 위하여 싸움닭을 기르고 있었다. 왕은 “열흘 만에 닭을 싸움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물으니 그가 대답하였다. “안 됩니다. 아직 헛되이 교만하여 기운을 믿고 있습니다.”열흘이 더 지나 다시 물으니 그가 대답하였다. “안 됩니다. 아직도 상대방의 울림이나 그림자에 대해서도 반응을 보입니다.” 열흘이 더 지나 다시 물으니 그가 대답하였다. “안됩니다. 아직도 상대를 노려보며 기운이 성합니다.”열흘이 더 지나 다시 물으니 그가 대답하였다.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소리를 질러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완전히 평정을 찾았습니다. 나무와 같은 목계가 되었습니다. 그의 덕은 완전해졌습니다. 다른 닭들은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달아날 것입니다.”교만과 조급함을 버리고, 남의 소리와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며,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인 눈초리는 버려야 한다. 즉 어떤 일에도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 목계지덕(木鷄之德)이다.“느끼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이 있다. 느끼는 감정 없이 스치는 시간들을 ‘삶’이라는 고상한 언어로 부르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그것이 ‘삶’이라면 개도 고양이도 살아간다. 동물에게는 느낌의 고뇌가 있던가. 그들은 살아있는 존재일 뿐이다. 인간만이 그 끈을 놓지 못하고 고뇌의 기억을 성숙으로 이끄는 지혜가 있다.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에게 주려고 한다. 오직 사랑만이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만이 굽은 것을 펴고, 회복하고,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진정한 창조력을 갖춘 사랑이야말로 완벽한 구원자다.

2023-07-12

공익 목적 현수막의 정의

심한식 경북부 현수막 공해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경쟁적으로 내건 현수막이 지역의 골칫거리가 되며 안전사고의 위험마저 높이고 있다.경산시는 지난 2013년 12월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 거리를 만들고자 시청 네거리에서 오거리 구간을 ‘현수막 없는 거리’로 지정했다. 시는 이 구간에 설치된 현수막 게시대를 철거하고 현수막 게시 차단을 공지했지만, 현재도 무질서하게 게시된 현수막이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경산시는 경산시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 산업진흥에 관한 조례를 통해 시의 승인을 받고 현수막 게시대에 게시된 현수막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불법 현수막으로 규정하고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하지만, 공익 목적의 현수막은 자유롭게 게시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공익 목적의 사전적인 의미는 ‘공동의 이익’이나 ‘사회 전체의 이익’ 이다.게시대가 아닌 가로수나 전봇대, 시설물을 이용해 게시된 현수막 대부분이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현수막이 아닌 불법 현수막이지만 곧바로 철거되거나 스스로 내리는 경우가 드물다.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서로를 비방하는 현수막, 당 관련자들의 이름으로 걸린 현수막, 누구를 축하하는 현수막 등은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다가와 꽃이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아름다운 형상을 가진 꽃의 이름을 불렀을 때 꽃이 되었지만, 불법 현수막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불법 현수막이다.권력이, 정당이, 시민단체가 내걸었더라도 불법 현수막이 법을 지킨 다른 현수막과 같은 가치를 지닐 수 없다.특히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현수막이 통행량이 많은 교통요충지에 버젓이 게시되어도 단속해야 할 관계기관들이 손을 놓은 것은 이 때문에 불편을 겪는 많은 지역민의 고통을 무시하는 것이다. 불법으로 법을 지키라고 게시된 현수막이 언제 사라질런지 궁금하다.

2023-07-12

과민대장, 무른변, 설사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가장 중요한 문진이 자는 것, 먹는 것, 싸는 것이다. 이 셋 중의 하나만 이상이 생겨도 환자는 불편을 호소하고 증상이 심할 때의 고통은 더욱 크다. 많은 사람들은 대변의 상태를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고 무른 변을 보는 사람은 변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아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무른 변인지 아닌지 파악하는 건 그 사람의 건강을 체크하는데 아주 중요하다.생각보다 많은 환자들의 변 상태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특히 변비로 고생하는 것 보다 변이 무르거나 설사, 혹은 하루에 여러 번 화장실 가는 경우가 많다. 너무 화장실을 자주 가면 복통과 생활패턴이 불규칙해져 불편함을 호소해 한의원에 내원하는 경우가 있다. 대변의 모양은 퍼지지 않고 적당한 강도로 바나나처럼 나오는 게 좋다. 볼 때마다 무른 변을 보거나 설사를 하거나 하루에 여러 번 화장실에 가는 것은 대장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리다.변비가 심하면 병이라 생각을 해도 변이 무르고 쉽게 나오는 걸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대장의 기능 장애가 생긴 것으로 빨리 치료하는 것이 좋다. 점점 심해지면 하루에도 여러 번 복통과 설사 등으로 고생하고 나중엔 과민대장증후군으로 진단 받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예방과 치료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한국인에겐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식생활에서 빼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고춧가루를 빼야 한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변이 물러지고 설사를 하게 된다. 야채의 섬유질은 소화가 다 되지 않고 변으로 나오는데 고춧가루도 이와 마찬가지다. 고춧가루는 피부에 닿게 되면 피부가 붉게 되고 오래 놔두면 염증이 생기고 통증을 일으킨다. 우리 장도 마찬가지다. 고춧가루가 다량 들어오면 장엔 염증이 생기고 수분 흡수가 안되어 설사를 하게 된다. 매우면 매울수록 이 현상은 심해진다.한두 번은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으나 매운 음식을 너무 자주 많이 먹게 되면 장은 항상 탈이 난 상태가 된다. 밥 먹을 때마다 혹은 긴장할 때마다 하루에 여러 번 화장실을 가게 되는 과민대장이 있는 사람은 고춧가루를 끊어야 하고 줄여야 한다. 특히‘불’자가 들어간 매운 음식은 절대 먹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유 관련 식품도 먹지 말아야 한다. 한국인의 60~70%가 유당을 분해 못하는 유당불내증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은 우유 관련 음식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 우유가 안 맞는 사람이 다량으로 오랜 시간 먹게 되면 장의 기능이 떨어진다.한의원에선 보통 황련이 들어간 약으로 치료를 하는데 황련은 심장의 열을 내려주고 대장의 열도 식혀 준다. 오랫동안 문제가 생겨서 항상 염증상태가 있는 장의 열을 식혀주면 대변이 굳어진다. 설사가 줄어들고 복통도 같이 감소한다. 심한 경우는 세 달, 심하지 않은 경우는 음식 조절하면서 한 달가량 복용하면 많이 개선이 된다.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매운 음식,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최대한 피해줘야 한다. 나의 먹는 식습관에서 오는 질병이라 치료도 중요하지만 관리도 중요하다. 관리는 좋은 걸 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 안 좋은 걸 안 먹어야 한다.

2023-07-12

봉숭아꽃 물들이기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모두의집 뜨락에 추억의 꽃씨를 심었다. 채송화, 분꽃, 봉숭아꽃. 부지런히 물을 줬는데도 자라기는 제각각이다. 씨가 가장 자잘한 채송화씨는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한 송이 겨우 피는 흉내만 냈다. 제법 씨가 굵은 분꽃은 듬성듬성 던져 심었는데도, 노리짱하게 자라는 게 영 시원찮다. 봉숭아만 실했다. 가지런히 싹을 틔우더니 불그스름한 줄기가 쑥쑥 자랐다. 잎사귀를 내더니 어느 날부턴가 진분홍, 연분홍, 주황의 여리고 예스러운 꽃을 피워 내어 예쁘다. 언젠가 서울 손녀가 오면 손주들 다같이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하며 매번 갈 때마다 물을 주며 곱게 키웠다.아니나다를까 윤이는 봉숭아를 보자마자 반색을 했다. 그리고는 냅다 봉숭아꽃물들이기를 하겠단다. 어린 다른 애들은 봉숭아꽃도, 꽃물 들이기도 몰라 물어대는 중이었다. 어느 게 봉숭아예요? 물들이기가 뭐예요? 나도 할래요….꽃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며 기다리게 했다. 백반을 사왔다. 실, 비닐장갑을 내와 이벤트를 시작했다. 네 아이 모두에게 먼저 꽃을 따게 했다. 꽃과 잎을 고루 따서 마늘절구에 넣어 찧어 짓이겼다. 아빠 엄마들이 달려들어 찧은 봉숭아즙을 손톱과 발톱에 올려 주었다. 비닐장갑의 끝을 잘라 손가락마다 씌워주고는 인내심을 가르쳤다. 밤새워야 하는데, 봐주겠으니 낮잠 한숨씩 자야한다며 겁을 주었다. 잠시 조용했다. 어디 아이들이 가만있을 리 있겠는가. 십여 분이 지나자 먼저 바른 아이부터 씻어 달란다. 어쩌면 그 짧은 시간에도 제법 발그레하게 예쁜 봉숭아꽃물이 들었다. 발라 준 어른도 바른 아이도 신기해하면서 손톱 발톱 자랑을 한다. 한여름 대청마루엔 봉숭아꽃물 든 웃음소리가 차고 넘쳤다.옛날, 나 어릴 적엔 큰집에서 이런 놀이를 했다. 하얀 모시적삼을 입은 큰어머니께서 주신 하얀 명반을 큰 돌 위에 얹어 작은 돌로 깼다. 봉숭아꽃도 돌로 찧었다. 꽃과 잎을 함께 찧어서인지 봉숭아 찧은 물색은 누렇거나 검었다. 가루가 된 명반과 섞어 손톱 위에 얹었다. 큰어머니는 흰 천을 작게 오려 손톱을 감싼 후 실로 칭칭 감아주셨다. 다섯 손가락을 오무리지 않아야 했으므로 쫙 편 채로 마당을 어슬렁거렸다. 흰 꽃이 오롱조롱 매달린 꽈리나무에서 꽃의 수를 세었다. 마당 한켠에 핀 키 큰 접시꽃에서 붉은 꽃송이를 따서 꽃의 밑쪽을 조심스럽게 반 갈라 코 위에 올려 꼬끼오해보기도 했다. 시간이 꽤 흐르고 손가락 끝을 동여맨 실과 천에 시커먼 물이 들면 실을 풀었다. 통통 부은 손가락과 손톱엔 붉은빛이 돌았다. 도발적인 봉숭아물의 색기에 잠시 부끄러움이 들었다. 그 후 여름마다 간 이모네나 외가댁에서도 어김없이 손톱물을 들였는데, 그 빨갛던 손톱의 색도 왠지 내내 부끄러움으로 남았다. 여름 지나 가을쯤 반달만큼 남은 손톱이 겨울이 다 되어 희미해져 사라질 때까지 남들 눈에 띌까 감췄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도 이듬해 여름엔 또 봉숭아꽃을 찧었다.오늘 봉숭아꽃 물든 손톱을 하고 간 손주들이 내일 학교와 유치원에서 친구나 선생님께 손톱을 보이며 어떤 이야기를 할까, 어떤 느낌을 말할까 궁금해진다. 부끄러움은 절대로 아니지 싶긴 하다.

2023-07-12

교육으로 세상을 건지게 하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장 교수의 선친은 바보였다.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의 입지를 선정하고 실제 도로디자인을 손수 하였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집에는 한 꼭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남들은 떼돈을 번다는데 아내에겐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80년대 초 서슬이 시퍼런 군사정권이 들어서 숙정의 바람이 불었다. 숱한 사람들이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멀쩡히 일했었다는 게 그의 자랑이었다. 어머니 눈에는 그야말로 ‘바보 아버지 인증’이었다. 필자도 한 때는 어머니와 같은 심정이었지만,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오늘 저 혼란한 세상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깨끗하고 당당하게 부끄럼 한 점 없이 공직자의 길을 지켜낸 아버지가 자랑스럽다.세상이 어지럽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 정치와 끝없이 힘만 드는 경제. 약속을 저버리는 정치를 어떻게 믿으며 나아지지 않는 경제에 무엇을 기대할까. 약속을 지키는 성실함과 차곡차곡 모으는 꾸준함이 민생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다음세대를 기르는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세상 모습 그대로 거짓과 혼돈을 가르칠 수는 없지 않은가. ‘바르고 성실하며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도록 가르쳐야 하는 학교는 날마다 무너진다. 교실에서 이야기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을 매일 만나는 선생님들은 오늘도 힘들다. 아이들은 눈치채지 않았을까. 교육은 학교만 하는 게 아니다. 집과 동네에서 만나고 스치며 세상을 배운다. 미디어와 언론은 아이들에게도 제한없이 열려있다. 숨길 수가 없고 숨겨지지도 않는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 전혀 딴판이라면, 그런 교육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아이들은 왜 학교에 가는가.교육적 견지에서 사회적 각성이 일어야 한다. 사회적 가치가 바로 서지 않고는 정상적 교육이 불가능하다. 선동과 기만으로만 가득한 세상에서는 성실과 정직을 가르칠 수 없다. 혼돈과 주장만 그득한 일상에서 안정과 평화를 이야기할 수가 없다. 꿈과 비전이 야심과 욕심이 되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용기와 상상력이 술수와 기만으로 해석되는 가르침은 교육이 아니다. 사람을 기르는 게 교육이지만, 고르지 못한 텃밭에 바른 교육이 설 자리는 없다. 사람을 도구화하는 교육은 부적절하다. 교육은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야 한다.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키워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도록 이끌어야 한다.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세상이 어지러워도 흔들리지 않을 용기를 가르쳐야 한다. 눈속임이 가득한 세상에 진정어린 정직을 길러내야 한다. 다음세대의 시선이 넓은 세상을 향하도록 길러야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우리는 좁은 우물에 갇히지는 않았을까. 세상을 등진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는 교육이 되어야 하고, 무너진 세상을 바로잡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어두운 세상에 빛을 던지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비뚤어진 정치와 어지러운 세상에는 교육이 희망을 던져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세상이 선다.

2023-07-12

‘극한호우’의 등장

홍석봉 대구지사장 장맛비 속 집중호우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기상청은 지난 11일 ‘극한호우’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일원에 폭우가 예상되자 발령한 것이다.폭우는 갑작스럽게 국지적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이 내리는 강우를 가리킨다. 호우는 줄기차게 내리는 크고 많은 장대비를 일컫는다.기상청은 예상 강우량을 감안, 호우주의보와 경보를 발령한다. 호우에 의한 침수 및 사고를 경계하라는 의미다. 주의보는 3시간 강우량이 60mm이상 예상되거나 12시간 강우량이 110mm이상 예상될 때 내려진다. 경보는 3시간 강우량이 90mm이상 예상되거나 12시간 강우량이 180mm이상 예상될 때 발령한다.극한호우는 ‘1시간에 50mm’와 ‘3시간에 90mm’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는 비가 내리는 것을 말한다. 기상청은 지난달 15일부터 수도권을 대상으로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를 보내고 있다.국내에서 기록적인 호우는 1998년 7월 31일 전남 순천시에 1시간동안 145mm의 집중 호우를 쏟아부은 기록이 단시간 최고 강우량이다. 하루 최고 강우량은 2002년 8월 31일부터 9월 1일 사이에 강원도 강릉시에 퍼부은 870mm가 최고 기록이다.기후변화가 지구촌에 기상 이변을 몰고 오고 있다. 열대성 폭우와 폭염이 일상화 됐다. 폭우의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역대급 호우의 기록들도 언제 깨질지 모른다. 집중호우의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재난이 잦자 경고 차원에서 ‘극한호우’란 용어까지 나왔다. 11일의 ‘극한호우’로 수도권은 물론 대구·경북에도 적잖은 피해를 가져왔다. 이번 주 내내 게릴라성 호우가 예고되고 있다. 피해 예방에 바짝 신경써야 할 터이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7-12

역지사지 · 다른 시각으로 보기

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미국 유학 시절의 일이다. 비영어권에서 온 학생들의 영어 토론 수업 시간, 각 국가의 정치체제가 주제였다. 군사 정변으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을 반대하여 직선제 선거를 한 한국. 정변의 공범인 노태우 씨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이 도마에 올랐다. 군사 정변의 주범들이 연이어 대통령이 된 것이 싫었지만, 우리나라가 외국인들 눈에 낮춰 보이는 것은 더 싫었다.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당혹함을 되돌려 줄 심사로, 미국인 교수에게 물었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니카라과 내정에 간섭하여 군대를 파병한 것에 대한 교수의 의견을 물었다. 교수는 평온한 표정으로 답했다.‘파병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레이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 답을 들은 순간의 충격은 이전의 당혹스러움이 잊혀질 만큼 강렬했다.내가 가진 국가관이 깨어지는 충격이었다. 국가 안에서 지도자와 국민은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유교적 문화 배경에 더해 전체주의 교육을 받은 결과다. 그것이 유일하고 진리인 국가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국가와 지도자, 지도자와 국민 개인을 분리하여 생각하는,‘새로운 우주’가 열린 것이었다. 이것이 미국 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보다 인생에 더 소중한 자산이 되었노라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교수가 되기 전에 십여 년 기업에서 일했다. 새로 인수한 회사의 대표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성공하고 성장하는 회사가 아니었다. 안팎으로 많은 문제가 있는 회사였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산적했지만, 회사 구성원들과 6개월간 브레인스토밍을 진행했었다. 모회사에서는 회사가 변하는 속도가 늦다고 채근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구성원들의 제안을 듣고 토론하고 합의하여 회사의 나아갈 방안을 정했다. 그 이후에는 일일이 설명하거나 강압할 이유가 없었다. 한 마음으로 일하는 임직원들을 볼 수 있었다. 돌아보면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조금씩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눈이 열리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우리는 조급하다. 빨리 이루려 한다. 게다가 내 이름으로 이루려 한다. 2년 임기의 임원으로, 4년 임기의 국회의원으로, 5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무언가를 이루려 한다. 일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리에만 오르면 조급병에 걸린다. 진정 성공하려면 먼저 이전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중에 좋은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바꾸기보다는 바른 방향에 있는 것을 계속해야 성공의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자신의 임기에 마칠 수 없는 더 큰 꿈을 그려 후임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그런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이다. 우파 지도자로서 어떤 좌파 정책의 우수함을 칭찬하면 얼마나 멋질까.상대편 전임자 정책의 우수함에 손뼉 쳐주는 멋진 지도자가 나오는 날, 우리 사회는 틀림없이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사회가 되어 있을 것이다.

2023-07-11

환상적인 울릉도 라이딩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최근 울릉도에서 두번째 라이딩을 즐겼다. 천혜의 신비로움이 가득한 동해의 진주 같은 울릉도를 찾는 것만으로도 설렘이 가득한데,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파도소리를 벗삼아 섬일주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3년만에 다시 펼치는 라이딩이니 한결 감회가 새롭기만 했다. 물론 전체가 화산섬인 울릉도라 해안선을 따라 조금만 내륙으로 향해도 비탈과 가파른 길을 오르기가 만만찮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라이딩의 짜릿함과 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울릉도는 독도 포함 섬 전역이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지질유산의 보전과 교육·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큰 곳이다. 수 백 만년 전 신생대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울릉도와 독도는 특이한 이중분화구와 주상절리, 해식동굴, 해식절벽, 용출소 등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지질학적인 가치와 자원이 풍부하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코로나19로 급감했던 울릉도 관광객이 작년엔 46만명, 올해는 역대 최다의 방문객을 기록할 전망이다. 그만큼 곳곳마다 자연이 빚은 걸작(?)들이 많기 때문일까?“삐죽삐죽 구불구불 위태위태 난 길 따라/도동에서 통구미로 설레여 밟는 페달/태고의 신비 벗기듯 한 꺼풀씩 저어가네//낙타등 같이 들쭉날쭉 태하령과 현포고개/숨소리 거칠어도 구슬땀이 달가운데/마루턱 언저리에는 바람의 결 정겹기만//…//애환 서린 내수전 옛길 아슬한 걸음으로/휘청이며 비틀대도 끌고 들고 메고 가니/두 바퀴 펼치는 세상 봉래폭포 환호하네” -拙시조 ‘울릉도 라이딩’전문3년 전의 코스와는 달리 이번에는 사동에서 도동~저동~봉래폭포~관음도로 이어지는 역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울릉크루즈 등 대형선박이 드나드는 사동항 주변은 ‘2026년 개항 예정인 경비행기 활주로 개설 등으로 바닷가측 산을 깎아내는 등 공사와 개발이 한창이었다. 몇 차례의 업힐(Up hill)과 다운힐(Down hill)을 거치고, 파도의 추임새와 갈매기의 안부를 들으며 서서히 페달을 밟는 기분은 필설로 못다할 정도였다. 특히, 나리분지로 향하는 가풀막을 힘겹게 오를 때 천천히 지나가던 차량의 운전자가 굳이 창문을 내려 “힘내요~ 파이팅! 멋져요~!” 라고 격려할 때는 정말이지 순간적으로 힘이 불끈 솟기도 했고, 안개 낀 나리분지의 원시림을 통과할 때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돼 가히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7월 들어 포항~울릉도를 오가던 기존의 배에 쾌속선이 추가되고, 공항 개항 시 관광객 100만명 목표에 대비하여 울릉도에도 숙박시설·교통 등 인프라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중앙선이 없는 이면도로가 정체되고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는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 아찔할 정도였다. 또한 대부분의 식당이 단체손님 위주의 영업으로 ‘혼밥’이 어려운 현재의 상황 등을 감안하면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울릉도의 관광과 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지름길이다.

2023-07-11

지방시대위, 자문만으로는 성과 못낸다

심충택 논설위원 국회에서 야당에 발목이 잡혀 진통을 겪어왔던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드디어 출범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지 1년 2개월 만이다.대부분 지방언론들은 지난 10일 업무를 시작한 지방시대위 기사를 1면 주요뉴스로 처리하며 환영했다. 그런데 예상은 했지만, 서울지역 주요 언론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 기사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지방시대 개막에 대한 수도권의 냉소적인 시각을 여실히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전 영남대·대구가톨릭대 총장)이 초대 사령탑을 맡은 지방시대위는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분권 정책과 국가균형발전을 총괄하는 국가 조직이다. 향후 5년간 지방시대 국정과제와 윤 대통령의 지역공약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각종 균형발전 시책과 지방분권 과제를 추진하게 된다.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로선 앞으로 지방시대위에 국정에너지가 쏠려야 그나마 인구 소멸과 저성장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볼 수 있다.우 위원장은 위원회의 3대 과제로 분권형 국가경영시스템 구축, 지방의 산업 활성화를 위한 기회발전특구 추진, 우수한 지방인재 양성을 제시했다. 비수도권 지방정부들은 한결같이 이 과제들이 잘 풀려서 ‘우동기호 지방시대위’가 큰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정치권력과 언론이 외면하는 지방시대위가 과연 소임을 다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윤 대통령도 지난해 ‘어디에 살든 기회가 균등한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미래세대의 주요자산이 될 첨단산업이나 초일류 인재를 수도권에 집중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3월 발표된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다. 정부는 300조원 넘게 투자되는 세계 최대의 이 클러스터를 경기도 용인에 조성하기로 했다. 교육부도 이 흐름에 맞춰 수도권대학을 중심으로 반도체 등 첨단·신기술 분야 석·박사 정원을 1천300여 명 증원했다. 정부가 지난달 말까지 추진하기로 했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기본계획 발표도 시한을 넘겨버렸다.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가 중 수도권 집중이 가장 심하다. 수도권에 인구 51%가 밀집해 있고, 상위 1천대 기업의 74%가 수도권에 있다. 지금처럼 지방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 2050년쯤에는 전국 시·군·구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통계도 발표됐다.지방시대위가 수도권 집중 해소와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줘야 한다. 위상이나 기능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지금처럼 대통령 자문기구로 존속하는 한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철우 대한민국 시도지사 협의회 회장(경북도지사)도 지난해 새 정부 출범 직후 부총리급 ‘지방균형발전부’ 신설을 공론화한 적이 있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실질적으로 일하는 정부 행정기구가 필요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방시대위가 악조건 속에서도 ‘지방균형발전부’와 같은 역할을 해 주길 바란다.

2023-07-11

치매약 개발

우정구 논설위원 인류는 의학이라는 과학을 앞세워 질병과의 끝없는 전쟁을 벌여왔다. 그 덕에 인류는 100세 시대를 구가하고 있지만 아직도 치료할 수 있는 질병보다 치료하지 못하는 질병이 더 많다.질병에 좋고 나쁨이 있을 수 없지만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질병의 하나가 알츠하이머성 치매다. 한 인간의 과거사를 몽땅 앗아가는 질병의 특성 때문이다. 노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병으로 “신이 내린 가장 잔인한 저주”라는 별명도 있다.알츠하이머 치매가 처음 보고된 것은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박사에 의해서다. 기억력이 점진적으로 떨어지다가 언어기능이나 판단력 등 다른 인지기능에 이상이 번지면서 궁극적으로 일상생활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병이다.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이나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가렛 대처 영국 전 총리도 그의 가족을 기억하지 못한 채 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60년대 스타배우 윤정희도 프랑스에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가운데 치매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유명했거나 화려한 스타였다는 사실은 그들에겐 무의미한 일이다.세계보건기구는 2019년 5천500만명이던 세계 치매환자가 2050년에는 1억3천900만명까지 급증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치매극복에 대한 인류의 도전이 여러 번 좌절된 가운데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를 승인했다는 낭보가 날아 들었다. FDA는 “미국과 일본제약사가 공동 개발한 레캠비가 임상실험을 통해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효과가 있고 안전한 치료법이라는 게 입증됐다”고 했다.대중화 단계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나 인류의 치매 극복 노력에 서광으로 기록됐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7-11

‘집’이 ‘집’일 수 없는 시대

한국에서 집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가정’이 존재하는 공간이자 육체적·심적 휴식의 공간으로서 바깥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는 Home의 의미. 다른 하나는 물리적 공간이자 물질적 가치를 지닌 대상으로서 거주지 외의 용도 및 가치를 지닌 공간으로서 House의 의미다. 한국어에서 ‘집’은 일상적으로 두 가지의 의미를 맥락에 따라 구분할 뿐, 별도의 구별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보니 우리의 일상에서 ‘집’이란 ‘집’이면서, ‘집’이 아닌 경우들이 왕왕 발생하곤 한다.예컨대 유아·청소년기의 한국인에게 ‘집’이 갖는 의미와 청장년기의 한국인에게 ‘집’이 갖는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아·청소년기의 한국인은 실질적인 구매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가까울 확률이 높으므로 ‘집’이란 가정을 위한 공간으로서 Home의 의미가 클 것이고, 청장년기의 한국인에게 ‘집’이 갖는 의미는 실질적 구매의 대상이자 투자의 대상으로서의 House의 의미가 혼재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평론가 이소는 이와 같은 ‘집’의 두 가지 용례를 바탕으로 한국 소설의 경향에 대한 글을 썼다. 여기에서 이소는 한국소설에서 나타나는 ‘집’의 의미를 몇 가지 범주로 분류하는데, 이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House’는 있지만 ‘Home’은 없는 상태’라는 분류다.얼마 전 학생들과 ‘집’이라는 단어를 써서 한 문단짜리 글을 쓰는 수업을 했다. 본래 목적은 짧은 문장 여러 개로 하나의 문단을 완성하고, 그 문단을 활용해 개요를 짜는 방법을 연습해보는 것이었다. 집이란 무엇인지 간단한 비유를 써서 정의를 내리고, 그와 같은 정의를 내린 까닭에 대해 3문장 정도를 서술하는 것. 내가 놀랐던 건 아이들의 정의가 대개 유사했다는 것이다. ‘집은 잠자는 곳이다’라는 정의. 비유라고 할 수 없는, 단지 기능만을 나타내고 있을 뿐인 메마르고 삭막한 정의. 그게 내 수업을 듣는 20대들이 ‘집’이라는 단어에 대해 내린 정의였다.사실 자취를 하거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등 가정을 떠나 생활하는 학생들에게 ‘집’이란 생각만큼 편한 공간이 아니다.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 온 동거인과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건 ‘적과의 동침’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생각보다 불편한 일이다. 거실이나 화장실, 부엌 등을 공유하는 형태의 쉐어 하우스는 그나마 서로 각자의 방을 가질 수 있기에 나은 편이지만, 휴식이나 생활을 위한 공간에 남겨진 타인의 흔적은 때때로 불쾌의 경험을 선사하곤 한다. 화장실이 분리된 원룸형 형태의 고시원이라면 그나마 사정이 낫다 할 수 있겠지만, 가벽에 벽지를 발랐을 뿐인 불법 개조 형태가 대부분인 탓에 타인의 소리와 냄새는 매순간 ‘나’의 공간을 침범한다.더욱 심난해지는 건 그와 같은 공간들이 단지 대학가 혹은 직장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조리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평 남짓한 공간에 40만원 가까운 월세를 내야 하거나, 4평 남짓한 원룸에 60만원이 넘는 월세를 요구하기도 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마저도 학기 중에는 학생들이 많아 구할 수 없을 지경이다. 비단 이와 같은 사례가 대학가뿐일까. 쪽방촌으로 눈을 돌리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화장실을 비롯한 공용공간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거나 난방이나 수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1평 남짓한 쪽방에, 임대업자들은 30만원 가까운 월세를 요구한다.그럼에도 이들은 이 부조리한 폭리 앞에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 목돈을 구할 수 없고 학교나 직장 가까이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임대업자의 폭리 앞에서 철저하게 ‘을’일 수밖에 없다. 단지 이것을 평생의 집이 아닌, 충분한 돈을 모을 때까지 거쳐 가는 ‘주거경로’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뿐. 쪽방에 거주하는 주거 빈곤층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목돈을 구할 수 없고, 당장에 수십만 원의 돈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빈곤 계층의 사람들에게, 월 30만원의 쪽방이란 노숙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청년이라는 이유로, 직장인이라는 이유로, 빈곤계층이라는 이유로 주거에 있어 부조리한 폭리를 방조하고 강요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와 같은 주거 빈곤 계층은 주거비용을 줄이기 위해 잠만 잘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공간을 찾아 헤맨다. ‘집’이 ‘집’일 수 없는 시대, 각각의 이유로 주거를 위한 부조리한 비용을 지불하며 인내할 수밖에 없는 시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일들조차도 자본주의라는 미명하에 용납돼야 할까.

2023-07-11

우리는 왜?

우리 집의 구성원은 단출하다. 나, 동생 그리고 강아지 보리. 우리 셋은 서로를 의지하며 아웅다웅 살아가는 중이다. 나는 집안에 큰 어른답게 대소사, 이를테면 생활비 정산이나 집의 관리 및 수리, 청소, 요리, 빨래 그리고 보리의 산책을 맡아서 한다. 동생은 그런 나를 도와주는 역할이다. 내 눈치를 보면서 이리저리 사부작대는데 하나같이 내 성엔 차지 않는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나의 감정적인 부분을 잘 보듬어 주고 늘 최고의 조언을 내어놓는다.우리는 일곱 살 터울이 있는 자매다. 외형이나 성격적인 면에서도 완전히 다르다. 동시에 서로만 아는 약한 부분이나 공유하고 있는 많은 면면이 있다. 우리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교육자인 부모님을 두었으며 스무 살에 집을 떠나 자취를 시작했다. 나는 소설을 쓰고 동생은 그림을 그린다. 최근 동생은 전시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매일 같이 집을 나서서 밤늦게 돌아오고 작업실에서 밤을 새우는 날도 부지기수다. 커다란 캔버스를 앞에 두고 붓을 잡는 동생을 상상해 본다. 백지 위로 깜박이는 커서를 뚫어져라 노려보는 나의 마음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곤 한다. 최근 우리의 화두는 예술로의 진입을 알리는 인공지능의 발전에 관한 것이다. 인공지능의 작품이 공모전에서 상을 탔다든가 책을 출간하고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으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결론이 난다.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인간은 인간이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발끈 소리친다. 이러다 이 집에서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 생명은 강아지밖에 남지 않을 거야! 죽지도 아프지도 않는 애완 로봇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기사는 보리의 귀여움마저 무색하게 만들었지만.인공지능이 두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여럿 있다. 그중 하나는 로봇은 삶의 고난에서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경제적 곤궁에서 허덕이거나 세상에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 상대와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이나 하는 것 없이 나이만 먹고 있다는 조바심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인간은 저마다의 속박에 사로잡혀 필연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현실의 문턱에 좌절하며 주저앉기는커녕 계속해서 꾸준히 엄청난 양의 작품을 생산해 내는 로봇이 어쩐지 까마득하게 보이는 것이다.처음 사진기가 발명되었을 때도 그랬다. 사진기의 발명과 더불어 회화는 본격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그간 화가들이 그렸던 전원풍경이나 정물 사진을 짧은 시간 내에 또렷하게 찍어낸 사진은 그림보다 훨씬 정교했으며 실용적이었다. ‘이 순간부터 회화의 역사는 막을 내릴 것이다’고 주장하는 화가들도 있었다.그러나 사진의 등장은 이전보다 더욱 다양한 회화의 발전을 가지고 왔다. 그중에서도 신조형주의의 화가 몬드리안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이미지로 시각적 충격을 주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우주의 진리와 근원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하는 사물의 겉모습을 떠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했던 예술가들로 인해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이 탄생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럼에도 의문이 든다.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예술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까? 가끔은 동생과 내가 가로등을 향해 돌진하는 나방처럼 느껴진다. 빛나는 것에 매료되어 날개가 타는 것도 모르는 존재. 그건 예술에 투신하겠다는 숭고함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면에서 순진무구한 천진함에 가깝다.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향해 나아간다. 인공지능이 셰익스피어보다 훌륭한 작품을 써내든, 피카소보다 더욱 센세이셔널한 작품을 만들어 내든, 그런 것은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몬드리안은 말했다. “나 역시 꽃의 겉모습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하지만 더 깊은 아름다움은 바로 그 안에 있다.” 나와 동생은 ‘더 깊은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그러한 해맑음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새근새근 자는 동생과 강아지를 보면서 나는 그런 것들에 관해 생각한다. 올해 월세 계약이 끝나면 어디로 이사해야 할지, 집필 중인 소설이 완성되기 전까지 모아둔 돈으로 버틸 수 있을지.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 괜찮다. 어떤 미래가 찾아오더라도 서로가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지금처럼 손을 잡고 그 시간을 통과해서 가면 되는 것이니.

2023-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