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0 총선 기간 내내 나는 한 번도 SNS에 나의 정치적 의견을 피력한 적이 없다. 그것은 내게 특별한 정치적 의견이 없어서도 아니고 내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나는 대중예술인이기 때문에 정치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중예술인은 말 그대로 대중들을 상대로 예술 활동을 펼치는 사람이고 대중들이 외면하면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다수의 대중들은 자신과 다른 정치색을 가진 예술인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한 결론이다. 비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누군가가 보수 지지자이건 진보 지지자이건 관계없이 사랑받고 싶다. 지금 나와 나의 작품을 좋아해주시는 분들 중에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 그가 몇 번을 찍었건 간에.
그렇다고 내가 ‘대중예술인은 정치적 발언을 삼가야 한다.’라는 명제에 찬성하는 입장인 것은 아니다. 그것이 대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누구든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입장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그를 상종조차 하지 않는 문화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민의힘 원희룡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던 한국인 1호 프리메라리가 플레이어이자 2002년의 영웅인 이천수 선수는 여전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축구선수이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발언으로 화제가 되었던 ‘구마적’ 이원종 배우 역시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배우이다. 이천수 선수와 이원종 배우를 동시에 좋아하는 것이 불가능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 정치색은 정치색이고 사람은 사람이고 그의 업적은 업적이다. 모든 국민은 어떤 정당이건 지지할 권리가 있고 그것은 나도 이천수 선수도 이원종 배우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다양한 정당에서 일하는 벗들이 있다. 국민의힘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도 있고, 민주당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도 있다. 한 선배는 녹색정의당에서 일하고 있고, 또 어떤 후배는 진보당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 중 누구와도 나는 즐겁게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있고 그렇게 해 본 경험이 있다. 어떤 이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즐거웠고, 또 어떤 이들은 나와 다른 철학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있어서 새로웠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의견이 단단해지기도 하고,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기도 하며, 어떤 때는 납득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납득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건 생각이 자라는 일인 것은 분명하고 그 결과 나는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가족 안에서도 다양한 정치색들이 있다. 우리는 식사를 하거나 술을 한 잔 곁들이며 가끔 정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가끔 의견 대립이 팽팽해지는 경우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으로 인해 마음을 다치지 않는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비난하지도 않고 단지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할 뿐이다. 우리 아버지가 삼성라이온즈의 팬이고 내가 롯데자이언츠의 팬인 것이 우리 부자의 사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처럼 누가 어떤 당을 지지하는지는 우리 가족들의 유대감을 전혀 해치지 않는다.
상대에게 밉보일까봐, 또는 상대를 미워하게 될까봐 우리는 가급적 정치 이야기는 친구끼리라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정치 얘기만 나오면 화가 나고 흥분하는 이상한 조건반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어째서 토론이 자꾸만 싸움이 되곤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치 이야기는 금지라며 말도 못 꺼내게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정치적 견해 같은 건 들어볼 기회가 없어진다. 서로 간에 정보 교류와 의견 교환이 없다는 것은 물이 한 곳에 고여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인 물이 썩듯이 정체된 정보는 왜곡되기 쉽고 올바른 선택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
모두가 자유롭게 서로의 정치적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좋겠다. 그로부터 뻗어 나온 다양한 생각들이 대한민국 정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의 말할 권리를 죽음을 각오하고 지킬 것이다.” 프랑스 작가 볼테르가 말했다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거나 생각해 볼만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