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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란 어려운 것이다

등록일 2024-04-15 18:31 게재일 2024-04-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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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요즈음 학생들과 함께 1980년대 소설 읽기를 하는데, 지난주에는 마침 박태순 소설 편이다.‘어머니’라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주변의 여러 일들을 사실적으로 엮어 놓은 작품이다. 무크지 시절의 ‘실천문학’ 1985년경에 실렸다.

이 이야기를 읽자니, 여러 해 전, 박태순 선생이 살아계셨을 때, 충북 수안보로 선생을 찾아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무렵 나는 소설집 ‘정든 땅 언덕 위’(민음사, 1973)를 헌책방에서 얻어 읽은 후였다.

수안보는 선생이 어머니를 돌보려고 가서 정착하게 된 곳이라 하였다. 그때 만난 선생의 마지막 인상이 참으로 처연했다. 수안보 연립주택 맨 윗층, 걸어서야 올라갈 수 있는 5층인가에 홀로 거주하고 계시던 선생은 내가 찾아간 것을 몹시 반겨 주셨다. 같이 들어간 음식점에서 선생은 잘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시고, 오로지 띄엄띄엄 말씀만을 하셨다.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 보여도 살아 있을 때는 며칠이라도, 몇 달이라도, 아니 몇 년이라도 늘 그렇게 살아있을 것 같다. 운명을 달리하고 보면, 아하, 그것이 그분 생의 마지막 국면이었다고 깨닫게 된다. 선생의 마지막 모습이 꼭 그러했다.

‘실화소설’ 딱지가 붙은 ‘어머니’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박태순 자신이 직접 겪고,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들만으로 썼다. 그래서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한다.

진실이란 어려운 것이다. 리얼리스트들은, ‘사실’ 뒤에 웅크리고 있는 진실에 육박하고 있노라 자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많은 경우에 있어 망상인 경우가 많다.

1980년대는 더욱 그러했다고 할 수 있다. 민중이니, 노동자니 하는 말이 그런 망상을 잔뜩 품고 있었다. 박태순이 말하는 민중이며 노동자는 사회과학 지식으로 얻은 것이 아니요, 스스로 겪고 생각한 것을 일인칭의 시점으로 말한 것이었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가 난 지 십 년이 된다. 벌써 십 년이었나? 채만식은 해방이 되고 나서, 여승,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했다.

세월호를 둘러싼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 말해 왔다 할 수 있는가? 정부가 바뀌고 나서 밝혀질 줄 알았던 진실이 오히려 꽁꽁 숨어 버린 것을, 나는 깊은 환멸 속에서 경험했다. 그러고 나서 정부가 한 번 더 바뀌었다. 이번에도 큰 참사가 났다. 이를 둘러싼 진실은 수면아래 먼 깊은 곳에 잠겨 있다.

나는 지금 정치 세력의 어느 한 쪽을 편들어 주려고 진실 운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입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처절히 깨달았음을 말한다.

바로 며칠 전 나라의 큰 일이 있었다. 이 큰 일을 둘러싼 진실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작금의 현실에 비추어 아마도 영영 모르고 지나갈 가능성이 크다.

모두들 자신이 믿는 바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미망(迷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의 비극이요, 희극이다.

그렇다고 생각하기라도 할 수 있다면, 그래도 한 발자국은 나아간 것일까? 무엇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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