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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쓰다 그리고 죽다

등록일 2024-04-15 19:33 게재일 2024-04-1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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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인상을 남긴 시키기념박물관의 모형.
강렬한 인상을 남긴 시키기념박물관의 모형.

마쓰야마에는 나쓰메 소세끼의 흔적도 곳곳에 있지만, 마쓰야마에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문인은 단연 마쓰야마에서 나고 자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입니다. 마쓰야마 시립 시키기념박물관에는 마사오카 시키의 생애와 문학에 관한 온갖 자료들이 알뜰하게 모아져 있었는데요. 대충 훑어보는 데만 한나절이 걸릴 정도였습니다. 마사오카 시키는 언론인, 수필가, 평론가 등으로도 활약했지만, 그의 가장 큰 활약은 단연 일본의 전통 시가인 하이쿠를 혁신한 겁니다. 심지어 시키의 하이쿠 혁신 운동이 없었다면, 일본이 자랑하는 하이쿠는 이미 사라졌을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니까요.

시키는 당시 유행하던 하이쿠가 발상이 신선하지 않고, 사용하는 언어가 상투적인 것 등을 비판하며, 새로운 하이쿠를 주장했는데요. 새로운 하이쿠가 갖춰야 할 요소로 시키는 당시 일본에 들어온 서양화에서 비롯된 ‘사생(寫生)’이라는 개념을 내세웠습니다. 사생이란 “실제로 있는 그대로를 그린다”는 의미인데요. 시키는 자연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하이쿠야말로 새로운 세상에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 믿었던 겁니다. 그러한 시키의 생각은 그대로 적중하여 하이쿠는 오늘날에도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 시가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키기념박물관을 둘러볼 때, 저의 시선을 잡아끄는 강렬한 모형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앞둔 듯 초췌해 보이는 시키가, 한 여성이 들고 있는 화판에다 붓으로 무언가를 쓰고 있는 모형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시키의 죽음을 기다리는 듯 조용히 시키의 창작을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모형 옆에 놓여 있는 안내판에는, 시키가 죽기 하루 전날 가족과 지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절필삼구(絶筆三句)’를 쓰는 장면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절필삼구’는 시키가 병상에서 보이는 수세미외를 읊은 세 편의 시가인데요. 시키는 목숨이 경각에 걸린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키기념관을 나온 후에도,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던 이 모형은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한 인간으로 하여금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것인지 너무나 궁금했던 것입니다. 오랜 고민 끝에 저는 시키가 보여준 ‘목숨을 건 글쓰기’가 일본의 무사도와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나라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인간상과 정신이 있는데요. 일본인이 내세우는 이상적인 인간형과 정신은 말할 것도 없이 무사(사무라이)와 무사도입니다.

야구 배트를 든 시키의 동상.
야구 배트를 든 시키의 동상.

그런데 놀랍게도 무사도의 핵심에는 ‘죽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사도의 고전으로 꼽히는 ‘하가쿠레(葉隱)’(1716년)에서 야마모토 쓰네토모는 반복해서 무사란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책은 “무사도란 ‘죽음’을 깨닫는 것이다. 생과 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죽음을 선택하면 된다”로 시작합니다. 또 하나의 무사도에 대한 고전인 다이도지 유잔의 ‘부도쇼신슈(武道初心集)’(1720년)도 “무사는 항상 죽음을 각오하고 생활해야 하는 것이 숙명”임을 반복해서 강조하는데요. 오늘날 세계인들에게 일본의 무사도를 알린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Bushido)’(1899) 역시 사무라이의 제1계율을 “죽음을 각오하며 살아가는 것”이라 말합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무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던 것이죠.

이경재 숭실대 교수
이경재 숭실대 교수

문인과 무인을 구분하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일본의 사무라이를 ‘칼을 찬 무인’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요. 우리와 달리 일본의 사무라이는 기본적으로 ‘칼을 찬 무인’이지만, 동시에 ‘붓을 든 문인’이기도 했습니다. 사무라이는 전쟁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에 필요한 일체의 활동을 담당했으니까요. 일본 문화에서는 애당초 문인과 무인은 일체화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붓을 든 자’ 역시 ‘칼을 찬 자’와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내면화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는, 조금은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는 시키의 최후 모습은 아마도 이러한 전통 속에서 가능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쓰야마시에는 시키기념박물관 이에에도 시 중심부에는 시키가 살던 집을 본떠 지은 시키도(子規堂)가 있고, 도고 온천역 근처에는 야구 배트를 든 시키상이 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문인이 야구 배트를 들고 있다는 것에 의아해 할 분도 있으실 텐데요. 시키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야구용어, 일테면 1루수, 2루수, 우익수, 포수와 같은 말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안다면, 붓 대신 야구 배트를 든 시키도 그렇게 어색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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