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여름과일 수박의 변신

우정구 논설위원 ‘톰소여의 모험’ 작가로 잘 알려진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수박을 두고 “한번 맛을 보면 천사들이 무엇을 먹고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극찬을 했다.여름을 상징하는 대표 과일은 누가 뭐래도 수박이다. 과육의 대부분이 수분으로 구성돼 있어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에 섭취하기에 제격이기 때문일 것이다.수박은 아프리카가 원산으로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재배돼왔다. 약 500년 전부터는 세계 각지로 널리 전파, 재배되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연산군 일기(1507년)에 수박 재배에 관한 기록이 나온 것으로 보아 일찍이 수박이 도입된 것으로 짐작이 간다.오늘날 수박은 일반재배는 물론 시설원예를 통해 연중재배가 이뤄져 꼭 제철이 아니더라도 수박을 맛볼 수 있다. 1953년 일본서 귀국한 우장춘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로 씨없는 수박을 만들어 명성을 떨쳤다.광주에서 생산되는 무등산 수박은 우리나라 토종수박으로 씨앗이 하얀 게 특징이다. 평균 무게가 보통 20kg을 넘어 일반 수박보다 월등히 크다. 일본서는 네모난 수박도 만들어지고 수박은 지역과 나라에 따라 모양과 맛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수박은 여름철 더위를 식히는데 이만한 과일도 없지만 혼자 먹기엔 부담스런 크기다. 냉장고에 보관하기에도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두꺼운 수박껍질은 음식물 쓰레기를 많이 배출한다.수박의 이런 단점을 보완한 것이 애플수박이다. 보통 수박의 4분의 1 크기다. 껍질이 얇아 사과처럼 깎아 먹을 수 있다. 1인 가구가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포항 연일읍 중평리 일원에서 재배된 애플수박이 본격 출하된다는 소식이다. 여름철 과일, 수박의 변신이 소비자를 즐겁게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6-27

‘오염수 괴담’, 수산업계엔 극약과 같다

심충택 논설위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와 관련한 괴담공포가 우리사회의 ‘과학적 지성’을 무력화하고 있다. 대도시 횟집은 물론, 어촌마을까지 전염병처럼 번지는 원전오염수 괴담의 근원지는 모두가 알다시피 더불어민주당이다. 내년 총선까지 국민의 반일감정을 자극해 지금의 독점적인 정치권력을 유지하려는 계산이 훤히 보인다. 이들의 괴담정치는 지금 우리사회의 공론장을 지성이 지배하는 소통의 장이 아니라 감정이 판치는 증오의 장으로 변질시키고 있다.대다수 과학자들은 일본이 원전 오염수를 알프스(다핵종 제거설비)로 처리한 뒤 바다에 방류하면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일본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후쿠시마는 동해안 반대편 연안에 있기 때문에 오염수는 곧바로 우리바다에 오지 않는다. 가장 먼저 태평양에 접해 있는 미국에 도착한다. 그후 미 서부지역에서 남하해 해류를 타고 서쪽으로 흘러 4~5년 뒤에야 아시아 해역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북미 지역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서 오염수 방류가 쟁점이 된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의 검증 결과를 신뢰하는 입장이다.후쿠시마 오염수가 수산물 안전성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경험으로도 알 수 있다.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많은 양의 고농도 방사성 오염수가 여과장치 없이 바로 바다로 방출됐으나 지난 12년 동안 우리나라 해역에서 유의미한 방사능 증가현상은 관측되지 않았다.민주당이 명심해야 할 것은 지금 퍼뜨리는 괴담공포가 국민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사실이다. 아직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전국의 횟집과 수산업계, 어민들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지 않은가. 성주 사드괴담으로 인해 참외농가들이 엄청난 피해를 본 현상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러나 원전 오염수 방류를 정치쟁점화하기 위해 현재 100만명 반대서명 운동과 장외 규탄대회 등을 열며 오히려 더 소비자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일본정부는 오늘(28일)부터 도쿄전력이 오염수를 방류하기 전 설비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검사를 시작한다. 이 검사가 종료되면 국제원자력기구의 동의를 받은 후 곧바로 오염수 방류에 들어간다. 현실적으로 오염수 방류는 우리 정부나 야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민주당은 이제 수산업계와 어민, 소비자 보호를 위해 괴담유포는 중지하길 바란다. 오염수에 대한 과학적 진실을 가리려면 국내 원자력 분야 최고 권위 단체인 한국원자력학회가 제안한 공개토론을 받아들이면 되지 않는가. 공론의 장에서 토론을 통해 국민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제1야당의 바람직한 자세다. 그리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이 불안하지 않게 오염수 안전성 여부에 대한 정보를 매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포항 죽도시장 같은 대형 수산물 시장의 경우, 정기적으로 해산물에 대한 방사능수치를 검사해서 브리핑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괴담이 발붙이지 못한다.

2023-06-27

전통문화와 흥행은 함께할 수 없을까

심한식 경북부 지난 22일부터 24일 경산시 자인 계정 숲 일원에서 ‘2023 경산자인단오제’가 개최되어 지역민과 방문객들에게 전통문화를 알렸지만, 전통문화 행사는 흥행에 성공할 수 없다는 공식을 확인하는 것 같아 슬펐다.자인면 일대에서 단오에 왜적을 물리친 한 장군 오누이를 추모하는 자인단오굿의 하나인 ‘한 장군놀이’가 1969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고 2007년 지금의 경산자인단오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이러한 이유로 경산자인단오제는 축제가 아닌 문화재청이 후원하는 전통문화제로 오랜 기간 행해졌던 제례 의식과 충의 정신, 다채로운 민속놀이로 독특한 장르의 예술성을 엿볼 수 있는 행사였다. 하지만, 전통을 중요시하며 옛 자인단오제를 기억하는 어르신들이 줄어들고 각종 오락프로그램과 강한 비트를 즐기는 젊은 층의 기호를 따라가지 못하며 흥행에는 실패하기를 반복하고 있다.시와 경산자인단오제보존회는 이를 해결하고자 젊은 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그럼에도 이번 경산자인단오제에서도 단오제의 주축을 이루는 여원무와 계정 들소리, 초청된 강릉농악(국가무형문화재) 등의 전통문화 공연을 즐기는 관람객의 수는 서글픔을 자아낼 만큼이나 적었다.마지막 날 젊은 층을 위해 마련한 ‘살판, 놀 판, 즐길 판’은 가면 파티와 DJ 놀이마당으로 참가 젊은 층에 경산자인단오제를 알리기는 했으나 전통문화를 계승한다는 경산자인단오제의 참뜻에서는 궤도를 이탈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또 하나 아쉬운 점은 주최 측이 정말로 전통문화 알리기에 전념하고 있는가를 의심할 수 있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목격되었기 때문이다.22일의 자인팔광대의 공연은 분명 개막식이 주가 아니고 전통문화 공연의 시연이 목적이 되어야 함에도 개막식을 이유로 잔디광장이 아닌 무대에서 공연돼 흥미를 반감시켰다.또 프로그램에는 9가지의 세계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고 표기되었으나 현장에서는 5가지의 체험장만 운용되고 행사를 지원하는 부스의 운영자들도 적극적인 의지보다는 행사의 구색 맞추기로 보였다.전통문화로 여러 세대가 함께 즐기며 어울리는 것을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고 최선을 다한 후에 전통문화의 흥행을 기대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한다.shs1127@kbmaeil.com

2023-06-27

중세의 교회건축과 조각장식의 출현

유럽의 도시에서는 어렵잖게 중세에 지어진 교회건축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건축 곳곳이 조각으로 장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길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은 파사드 벽면 위에도 고개를 살짝 들어 보기에 적당한 높이에도 성인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기둥처럼 서 있다. 가장 의미심장한 조각은 팀파늄(Tympagnum)에 들어가 있다. 팀파늄은 출입문 바로 상단 반원형의 너른 면을 가리키는데 주로 이곳의 조각은 부조 형식으로 나타난다. 빈도수로 보자면 영광의 그리스도나 심판자 그리스도 혹은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옥좌에 앉으신 성모 마리아가 가장 자주 등장하는 도상이다.조각상은 교회 내부에서도 발견된다. 벽의 무게를 견디는 기둥에 돌출된 선반을 마련하고 그 위로 성인들의 전신 조각이 올라가 있다. 중세교회 건축과 조각장식, 당연한 조합 같지만 교회를 조각으로 장식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기독교 교리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우상숭배의 문제 때문이다. 시간은 한참 거슬러 올라가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수용하고 국교로 지정한 4세기 5세기 때 일이다. 처음으로 교회가 지어지고 교회에서의 그림이나 조각 등 미술품 사용에 대한 문제가 대두 됐다. 치열한 논쟁 끝에 그림 사용은 허용이 되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글을 알지 못했고 그림을 통해서라면 누구라도 쉽게 성서나 교회의 가르침을 읽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그림은 허용되었지만 조각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이교(異敎)의 신상이 만연해 있었던 상황에서 기독교가 조각사용을 허락한다면 종교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교회를 장식하는 건축조각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11세기 초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규모 교회들이 지어지면서 부터였다. 6세기에서 10세기 이르는 중세 혼란기, 혹자는 암흑기라 부르기도 하는 이 시기가 지나가고 낡은 교회들이 새롭게 단장되었고 곳곳에 웅장한 교회들이 지어졌다. 이시기를 거처 12세기 무렵 건축조각이 확산된 걸 보면 수 백 년의 시간이 지나는 사이 이미 서유럽지역이 깊이 기독교화 되었고 조각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남부 프랑스의 도시 아를(Arles)의 생 트로핌(Saint-Trophime) 교회 파사드 벽면에는 초기 로마네스크 건축 조각을 대표할 법한 중요한 작품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12세기에 건축된 비교적 아담한 크기의 이 교회는 로마네스크 특유의 투박한 모습을 드러낸다. 인상적인 것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파사드 전체가 조각으로 장식되었다는 점이다. 출입문을 중심으로 좌우 벽면에 부조에 가까운 전신 조각상들이 정렬되어 나타난다. 정문 위에 마련된 반원형의 팀파늄에는 옥좌에 앉으신 영광의 그리스도가 역시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정문과 팀파늄 사이 띠 형태의 좁은 면인 상인방(Lintel)에도 작은 크기의 인물 열 두 사람이 등장한다. 이들은 예수를 따르던 열 두 명의 제자들처럼 보인다.사람들이 들고나는 출입문 상단의 팀파늄은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간이다. 출입문은 타락한 세속과 성스러운 교회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팀파늄에는 죄를 자복하라는 경고의 이미지가 자주 나타난다. 근엄한 모습의 ‘심판자 그리스도’ 혹은 생 트로핌의 경우에서처럼 ‘옥좌에 앉으신 영광의 그리스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커다란 아몬드 모양의 전신 후광에 둘러싸인 그리스도 좌우로 둘씩 짝을 이룬 생명체가 나타난다. 이들은 신약성서 4복음서자를 상징한다. 그리스도 우편 아래에는 구원받아 천국으로 반대쪽 좌편에는 쇠사슬에 묶여 지옥을 끌려가는 영혼들이 나타난다. 감상자의 눈높이 좌우 벽면으로 서 있는 성인들은 독립된 조각이라기보다는 건축에 종속된 듯 보인다. 이들에게는 표정도 감정도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미동도 없이 굳은 자세와 표정으로 건축의 한 부분으로 나타날 뿐이다. 이것이 초기 로마네스크 건축조각의 특징이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3-06-26

오랫동안 아름다운, 칠곡 가실성당(佳室聖堂)

잘 정돈된 성당길에 들어서면 연한 꽃망울을 머금은 배롱나무가 먼저 눈에 띈다. 7월 중순이 되면 꽃을 피우는 배롱꽃은 나무 백일홍으로도 불리는데 번갈아 피고 지면서 붉은 자태를 잃지 않는다. 마치 128년을 쌓아온 가실성당의 시간과 신념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많은 이들처럼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는 것만 같다.가실성당(가실본당)은 1895년 조선에서는 11번째로, 대구·경북에서는 2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성당이 자리한 왜관 가실은 예로부터 낙동강을 이용할 수 있는 나루터가 여럿 가까이 있어 물류의 흐름이 빨랐다. 천주교도 일찍이 전파되어 조선말에는 한티와 신나무골에 교우촌을 형성하였고 여러 박해로 인해 순교자가 나기도 했다. 현재 한티는 이름 모를 순교자의 무덤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신나무골은 영남 천주교의 요람으로 알려져 있다. 순례길은 1967년 ‘한티가는 길’ 순례가 시작된 이래 피정의 집(1991), 영성관(2000), 순례자성당(2004)이 순차적으로 마련되어 지금은 5구간으로 나눠 운영되고 있다. 첩첩산중에 박해를 피해 숨어다니던 길(45.6㎞)이 오늘날 ‘돌아보는 길, 비우는 길, 뉘우치는 길, 용서의 길, 사랑의 길’이란 부제로 순례자를 이끄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지금의 가실성당 자리는 천주교도 성순교의 기와집이 있던 곳이다. 1894년에 파이야스(Pailhasse) 신부는 성순교의 기와집 한 채를 매입하여 성당으로 삼았다. 당시만 해도 영남에는 성당과 신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에 경상도 북서부 일대, 충청도 황간, 전라도 무주 등지의 지역에 공소를 마련하여 말·도보·나루터를 이용하여 순회하였다고 한다. 1911년 서울교구에서 대구교구가 분리되면서 이듬해 투르뇌(Tourneux)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는 일제 강점기 대부분을 가실에서 보내며, 사제관과 지금의 성당(1923)을 건축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구워진 벽돌을 하나하나 망치로 두드려보고 잘 구워진 것만 외벽에 사용하였다고 하니 가실성당은 그의 정성으로 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가실성당은 동저서고의 언덕을 그대로 활용하여 단층 장방형(직사각형) 구조로 만들어진 로마네스크식 벽돌조 건물이다. 외벽은 가로줄과 세로줄을 번갈아 쌓는 영(국)식 벽돌쌓기 기법을 활용했으며, 창문·출입문·축기둥·띠 등에만 회색 벽돌로 장식하고 나머지는 붉은 벽돌을 사용하였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의장적 의미에서 높게 지었으며 현관 위에 종탑을, 그 위에 8각의 높은 첨탑을 두어 타워 형태를 갖추었다. 신자들이 모이는 공간의 천장은 목재원형틀로 3개의 반원을 만들어 회반죽으로 마무리했다. 3개의 반원형 천장은 기둥을 두 줄로 늘어놓아 중앙의 신도석과 양옆의 통로로 구분하였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총 10개의 반원형 아치창을 만들었으며, 특이하게도 바닥은 온돌마루로 되어 있다.성당 내부는 유난히 아름다운 볼거리가 많다. 교단의 대형 나무십자가는 1964년 성안나상을 대신하여 중앙에 세워졌다. 이전에는 1924년 프랑스에서 석고로 제작되었고, 본당의 역사와 함께한 국내 유일의 성안나상이 귀히 모셔졌다. 안나는 다윗왕의 후손이자 마리아의 어머니로서 한때 추앙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구석진 자리에 서서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쏜 총탄에 왼쪽 어깨를 맞은 자국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어린 마리아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내실에는 성체등과 감실도 있는데, 성체등은 감실에 성체가 있음을 상징하는 불로써 한국전쟁때에도 꺼뜨린 적이 없다고 한다. 감실 정면에 있는 작품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를 주제로 삼았다. 내부 벽에는 동양화가 손숙희가 그린 ‘십자가의 길’ 14처 액자들이 걸려 있고, 창문은 색유리창(stained glass)으로 삼왕의 경배, 호숫가의 예수 등 총 40가지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출입구 위의 반원형창에는 착한 목자, 잃었던 아들, 씨뿌리는 사람 등의 비유를 통한 예수의 가르침이 형상화되어 있다. 색유리창은 독일 작가 에기노 바이에르트(Egino Weinert)가 2002년에 가실성당 100주년을 기념하여 설치한 것이다. 또한 종탑에는 안나의 종이 있는데 라틴어로 “나의 이름은 안나…. 많은 분들이 내 소리를 듣기를 바란다. 사막에 피는 아름다운 꽃처럼 싹이 틀 것이다” 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다. 마지막으로 구사제관은 현재 두 개의 방이 전시실로 활용되고 있으며 역대 본당 신부들의 사진, 창설 당시의 교인들 교적, 1960년대 교육용 환등기, 잉크로 그린 성서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다.영남에 천주교가 전파되고 박해가 있던 시기 그리고 성당이 건축되던 초기, 일제강점기까지 성장하던 교세는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농촌 인구의 도시 이주 등으로 80년대 이후 작은 교적을 유지하고 있다. 교세는 작아졌어도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돌아보고 비우고 뉘우치며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사람을 감응시킨다. 7월 붉은 배롱꽃이 활짝 피면 오랫동안 아름다운 가실성당 언덕길을 걸어보고 싶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6-26

언론의 정치적 편향성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권력을 감시·견제하고 정의·진실을 위하여 정론직필(正論直筆)해야 할 언론의 ‘정치적 편향성’이 심각하다. 공익과 사실에 충실해야 할 언론마저 정파적 보도를 서슴지 않는다. 편 가르기를 비판하면서도 늘 어느 한 편에 서 있으니 자기모순이다. 상업화된 언론사와 ‘기레기(기자+쓰레기)’가 된 언론인들에게 불편부당(不偏不黨)을 기대할 수는 없다.정파성은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객관성을 상실한 언론을 누가 믿겠는가.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발표(2023/06/14)에 의하면 한국의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조사대상 46개국 중 41위로서 최하수준이며 아시아·태평양국가들 가운데는 꼴찌다. 국내언론 분석에서는 정파성이 강한 신문과 방송의 신뢰도가 최저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론의 정파성이 문제되는 것은 모든 언론들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이념적·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실(fact)을 왜곡·조작하거나 축소·은폐·확대하는 불공정한 행태들이다.언론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견지하면서 정의와 진실을 논하려면 무엇보다 언론인들의 소명의식이 중요하다. 언론인은 진실을 먹고 사는 지식인이다. 돈·권력·명예가 아니라 정의·공정·진실을 추구하는 참 언론인들이 많을 때 비로소 ‘언론다운 언론’을 기대할 수 있다. 언론인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권력과 야합하여 곡학아세(曲學阿世)하면 언론도 죽고 나라도 죽는다. 이해관계에 따라 펜대가 휘어지는 ‘기레기’들을 어떻게 언론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특히 진영논리에 갇힌 편파적 언론의 내로남불 행태는 선악의 이분법적 양극화를 악화시킨다. 공정해야 할 언론이 편 가르기를 주도함으로써 오히려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참 언론인이라면 ‘속 시원한 해장국 언론’에 열광하는 확증편향의 유혹에 굴복하면 안 된다. 올곧은 언론인은 ‘중도(中道)’의 길을 가야 한다.중도란 단순히 좌우의 중간적 입장이 아니라, 정의와 진실을 치열하게 추구해 나가는 적극적 중도, 비판적 중도를 말한다. 중도는 어정쩡하게 중간에 서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진실의 편에 서는 것이다.한편 언론의 공정성에 대한 권력의 책임 역시 무겁다.최근 KBS·MBC 등 공영방송의 운영을 둘러싼 정부와 언론사·언론노조 간의 갈등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언론의 공정성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권력만 잡으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언론으로 길들이려고 한다. 권력이 겉으로는 ‘공정언론’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유리한 ‘편파언론’을 만들려하기 때문이다.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한다. 권력이 언론을 어용화하면 부패된 권력은 비극을 맞는다. 권력은 자신을 감시·비판하는 언론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오바마(B. Obama) 전 대통령이 “비판적인 언론 덕에 더 정직하게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던 것처럼, 권력은 언론을 길들이려 할 것이 아니라 언론의 비판에 감사해야 한다.

2023-06-26

경주 십원빵 소동

홍석봉 대구지사장 경주의 명물 간식거리인 ‘십원빵’이 디자인 도용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십원빵은 불국사 다보탑이 그려진 앞면과 숫자가 새겨진 뒷면의 모양이 시중에 유통되는 10원짜리 동전과 똑같다. 1966년 발행된 10원짜리 동전 모양을 본떴다.십원빵은 2020년 처음 선보인 이후 경주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경주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도 이 빵을 먹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한국은행이 십원빵이 화폐 디자인을 무단 도용했다며 사용중단을 요청했다. 판매업체들에 공문을 보내고 조폐공사와 함께 법적 대응까지 준비했다.한국은행의 화폐 도안은 비영리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등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별도 승인절차 없이 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화폐 시스템의 신뢰를 해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데 영리 목적의 사용이 문제가 됐다. 빵 제조업체들이 전국 단위로 가맹점까지 모집해가며 도안을 사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업체들의 욕심이 초래한 측면이 없지 않다. 업체들은 한국은행의 강경한 입장에 디자인을 일부 바꾸겠다고 했다. 한은도 한발 물러섰다. 소송 대신 적법한 범위내에서 모양 변경을 협의 중이라고 한다.업체들은 빵을 굽는 틀과 시설, 판촉물 등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해프닝으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뒷맛이 씁쓸하다.십원빵이 화폐 홍보도 하고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십원빵은 빵의 도시 경주의 명성에도 한몫했다. 경주는 십원빵 외에도 황남빵과 찰보리빵 등으로 유명하다. 유명 빵집을 찾아다니는 ‘빵지순례’ 목록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십원빵이 과연 화폐의 신뢰를 그만큼 해쳤을까. 한국은행의 유연한 대응이 아쉽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6-26

글로컬대학 사업은 지방대를 구할까?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글로컬’은 세계적이라는 뜻의 ‘글로벌(global)’과 지역적이라는 뜻의 ‘로컬(local)’을 합친 신조어다. 이 용어는 지역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살리면서 세계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향하고 있다. 한때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이 유행했지만, 이제 ‘한국’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시즌 정도를 제외하면 더이상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상상되지 않는다. 수도권과 지역 사이의 경제적·문화적 격차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교육부는 대학의 벽을 허물고 대학과 지역의 동반 성장을 이끌어 갈 지방대학을 지원하는 사업을 ‘글로컬대학 사업’이라 명명하여 진행하고 있다. 2026년까지 총 30곳의 지방대를 지정해서 학교당 5년 간 총 1천억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최근 15곳의 예비지정 대학이 발표되어 대학가에는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지방대학을 지원한다는 취지 자체는 좋다. 문제는 글로컬대학 사업이 현재의 형태로 강행될 경우, 지원받는 대학과 그렇지 못한 대학 사이의 격차가 훨씬 더 커진다는 점이다. 사업에 선정된 대학은 일시적으로 신입생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그것도 지원금을 교부받는 동안의 한정적 효과가 될 가능성이 높다. 5년 동안 글로컬대학 미선정 대학들은 고사하고, 지원금이 끊기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황폐해진 지방 학술생태계에 몇몇 대학만 외롭게 남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양한 학문적 관심사를 가진 지방 연구자들은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서울-수도권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지방대학의 소멸은 가속화된다. 지방대학 문제가 단지 예산 부족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예산 문제는 지방대학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에 불과하다. 문제의 근원은 서울-수도권 중심주의와 학벌주의에 있다. 물론 재단 자체에 문제가 있는 부실대학의 경우 솔루션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선별지원을 통한 대학 수 줄이기가 답이 되어서는 안 된다.대학은 학생과 교직원만의 공간이 아니다. 대학은 캠퍼스가 위치한 지역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지방대학이 폐교되면 그 지역 전체가 폐허로 변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폐허는 우범지대로 전락할 우려도 크다. 대학이 교육에 최적화된 공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활력을 잃어가는 지방대학을 시민교육을 위한 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적극 연구되어야 한다.전체 인구의 약 15%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은퇴자 중에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배움의 열의를 가진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들이 원하는 것들을 배우고, 이를 통해 은퇴 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교육정책 수립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는 매년 배출되는 석·박사 학위자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정책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때가 도래했다.‘대학의 벽을 허문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대학 간의 기계적 통합이 아니라, 대학의 교육 기능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일에서부터 탐색되어야 한다.

2023-06-26

묻고 또 묻자

김규인 수필가 챗GPT에 질문하는 기사가 한동안 신문을 채웠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챗GPT는 질문하기 바쁘게 답을 내놓았다. 챗GPT가 어떤지 궁금해서, 우리 사회가 묻는 이에게 속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니 기계에 물어보는 건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기계에 답을 구할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우리 사회는 산적한 문제로 어떻게 순서를 정하여 일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한다. 출산율의 저하는 엄두가 나지 않는지 지엽적인 문제만 건드린다. 국회의원 수를 조정하는 문제는 당리당략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일본의 원전 오염수에 대해서는 각자 다른 말을 한다. 전세 사기 문제는 너무 꼬여 실마리를 찾기가 힘이 든다. 여기에 퀴어 축제로 국민의 생각은 나누어진다. 욕심을 내려놓기 어려운지 들러리 문제만 만지작거리느라 중요한 문제만 그대로 남는다.코로나가 설치고 혼자 놀기에 익숙한 탓인지 우리는 자기들만의 시간에 빠진다. 수업받는 학생은 질문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우리는 현재 상황을 그저 바라만 본다. 자기의 생각을 남들과 섞을 줄을 모르고 자기 말만 하느라 남을 위하여 틈을 내어주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질문 없는 교실에 학문적인 성취는 없고 질문 없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질문하는 것은 가슴에 억눌린 답답함을 해소하는 길이요 꽉 막힌 도로를 뚫는 것이며 힘들다는 서민들의 삶을 어루만지는 일이다. 질문은 사건의 핵심을 뚫고 본질에 다가가는 길이다. 문제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핵심 문제를 들추어내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다.좋은 질문은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바탕으로 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갈구하거나 그 상황이 주는 아픔에 마음 아파하며 절박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질문은 더 구체화하며 날카로운 물음으로 문제의 본질을 향한다. 질문은 말이 없지만, 묻는 이의 절박한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다.질문이 구체화할수록 답은 절반 이상이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의 해결이 어려운 것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질문이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핵심을 빗나간 질문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누구의 이목도 끌지 못하고 문제는 홀로 나뒹굴게 된다. 핵심을 찌른 질문은 사람들을 질문에 집중하게 하고 해결 방법을 찾게 만든다. 현재의 판을 뒤집는 핵심적인 질문은 문제 해결을 넘어 삶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 사회의 산적한 문제들을 돌아보자.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로 쌓여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 것이다. 상황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의지도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만을 생각하며 의사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끊임없이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오늘 하루 나를 향해 질문을 던져보자. 누구보다 절박한 마음으로 나를 둘러싼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핵심적인 질문을 하자.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고 서로 간의 소통으로 이어진다. 어느 순간에 문제는 핵심을 찌르고 사람들은 모여 있을 테니 말이다. 눈길이 사람을 향할 때 서로 잡은 손은 더 따뜻해질테니 말이다.

2023-06-26

일 오염수 방류하면 죽도시장 문 닫나

김진국 고문 30년쯤 지난 얘기다. 한·일 대학생이 일본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주제가 독도였다. 첫날 토론에서 한국 대학생들이 압도했다. 한국 학생들의 기세에 일본 학생들이 눌렸다. 둘째 날은 한국 학생들이 고전했다. 일본 학생들이 각종 고서와 샌프란시스코 조약 등을 꺼내놓고 따지는데, 한국 학생들은 모르는 자료가 많았다. 사흘째는 한국 학생들이 더 밀렸다.당시 같이 다녀온 지도교수의 말이다.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근거가 훨씬 풍부하다. 그런데도 그 당연한 사실을 입증할 논리적 근거를 굳이 찾고, 공부하지 않았다. 그것을 부정하는 주장에 분노가 넘쳐 오히려 논리적 설득에는 실패했다. 그 교수는 “공부를 너무 안 했다”라고 반성했다. 같은 생각을 가진 학생들끼리 ‘으샤으샤’만 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상대방 주장에는 귀를 닫았다. 모르니 반박이 어려웠다.독도 문제를 대하는 요즘 젊은이의 자세는 매우 다르다. 훨씬 구체적으로 알고, 실천적 활동을 한다. 정부도 동북아역사재단(2006년 설립)을 세우는 등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때 그 토론회를 소환한 건 최근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같은 길을 가기 때문이다. 너무 남의 얘기를 안 듣는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독도는 당연히 한국 땅이지 무슨 소리야”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제3국의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 일본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다. 열정만으로 해결이 안 된다. 속이 시원하게 고함질러봐야 자기만족뿐이다. 수치가 필요하고, 논리가 필요한 곳에서 중독성 강한 노래나 부르며 굿판을 벌여봤자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이런 잘못은 국정을 이끌어가는 정치권이 더하다. 선동으로 지지세를 모으면 국내 정치에 유리하고, 힘으로 자기 생각을 밀어붙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국제 사회에서는 어림도 없다. 국민만 바보로 만든다.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 광화문이 촛불시위로 뒤덮였다. 코믹영화 ‘파 송송 계란 탁’을 패러디한 ‘뇌 송송 구멍 탁’이란 기가 막힌 구호로 무장한 광우병 공포가 덮쳤다. 인기 연예인들이 “차라리 입에 청산가리를 털어 넣겠다”라며 아이들을 선동했다. 고기 좋아하던 아이들이 미국산은 물론 국산 쇠고기도 못 믿겠다며 먹지 않겠다고 울었다.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소동이 벌어졌다.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로 위협했다. 방어용 미사일 배치를 무작정 거부하기 어려웠다. 지역주민의 불안감을 사드를 막을 방패로 삼았다. 정치인들이 가발을 쓰고 춤을 추며 ‘전자파에 튀겨진다’라고 선동했다. “…외로운 밤이면 밤마다 사드의 전자파는 싫어, 강력한 전자파 밑에서 내 몸이 튀겨질 것 같아.…” 그러나 환경영향평가 결과 사드 전자파는 측정 최댓값이 인체 보호 기준의 0.2%보다 낮았다. 성주 참외는 전자파에 튀겨지지 않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시끄럽다.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면 우리 수산물도 못 먹을 듯이 말한다. 그 탓에 소금을 사재기한다, 김·멸치·새우·미역·다시마 같은 건어물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후쿠시마 오염수가 우리 바다로 오려면 태평양을 완전히 돌아와야 한다고 국립해양조사원은 말한다. 미국과 캐나다, 필리핀, 대만 등을 거쳐 온다는 것이다. 웨이드 앨리슨 영국 옥스퍼드대 물리학 명예교수는 오염수의 방사선량이 X선에 노출됐을 때보다 적다고 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로부터 ‘돌팔이’라는 말을 들은 그는 “과학을 좀 배우라”고 말했다.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조사를 거쳐 일본이 다음 달에는 방류할 가능성이 크다. 방류를 막으려면 과학적 근거로 국제 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과학적 근거는커녕, ‘과학과 숫자는 못 믿겠다’라는 답답한 소리만 한다. 논리가 없다. 그래서는 국제 사회를 설득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방류가 시간문제다. 그때 우리 수산물은 어떻게 하나. ‘뇌 송송 구멍 탁’처럼 수산물도 공포의 대상이 되나. 죽도시장 문을 닫아야 하나. 방류를 막을 과학적 근거를 찾기보다 여야 모두 국내 정치에만 열심이다. 그 피해는 꼬박 어민들의 몫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6-25

유월의 모시적삼

이순혜 수필가 오전 10시, 추모 묵념 사이렌이 울린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위해 머리 숙여 감사하는 마음을 새기자는 뜻을 담는다. 묵념 이후에는 현충탑 앞에서 헌화와 분향을 하고 추모 공연, 국가유공자 표창 등 순서로 추념식이 진행된다.모처럼 휴일이라 느긋한 아침을 먹고 형산강변을 걸었다. 10시, 묵념 사이렌 소리에 빛바랜 기억 한 부분이 푸시시 일어난다. 생각이 완전히 여물지 않은 터에 새겨진 기억이다. 아버지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여러 가지 일을 시작했고, 너무 앞서간 꿈은 알록달록하거나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넘어져 상처가 많았다.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새 상처가 생기기도 했다. 자주 넘어져 평생을 조심스럽게 살다 가신 아버지이다. 그런 아버지의 삶을 톺아보다 아버지를 위한 헌시를 바쳤다.‘유월의 모시적삼’- 충혼탑 앞에서 -천둥소리 한 귀퉁이 찧어내다천지에 놀란 찔레향이 아리도록 매운 날입니다무더기무더기로아까시 마저 떨어지는데유월의 하얀 모시적삼은 충혼탑 앞에 서 있습니다시퍼렇다 못해 먹빛이 되었던60년, 다 받아냈기에아버지,당신은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국화입니다아니, 그 먹빛의 한(恨)한숨으로 쌓아한 겹 무심이 되었기에유월의 끓는 햇살에 서 있는 흰 모시적삼은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한 송이 국화입니다아홉 번 밀리고 밀린 싸움그날의 *형산강은검붉은 울음을 토악질하고포성에 묻혀버렸습니다여기 이 산 어디쯤일까저기 저 강 어디쯤일까아버지,당신이 썼던학도의용군의 삐뚤어진 모자를하얀 이 드러내며 고쳐주었던옛 친구의선한 눈망울이파편처럼 찢어져 묻힌 자리에는오늘도 말이 없습니다불러도 보고쓸어안아 보아도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아득한 날의 안부일 뿐저 질긴 세월을 낱장으로 뜯어다 놓아버렸습니다살아 있다고 마음껏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고속울음 삼켰을아버지묵념 사이렌 소리에바람도 나무도 잠시 눈을 감고이제야 학도의용군 이름아래어깨동무하고 있을 생각에칠 벗겨진 한 줄 비문처럼 저도 눈을 감습니다세상에서 가장 무겁고도 가벼운아버지그 주름진 국화위에6월이 글썽입니다*형산강 · 625 당시인 1950년 8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44일간 2천300명이 넘는 국군과 학도병이 전사한 치열한 격전지형산강은 아직도 말이 없다. 말을 안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들이 쏟았던 피와 땀을 모두 받아들였을 강이다. 그러고는 말없이 흘려보냈다. 역사의 현장에서 어떤 이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겠고, 어떤 이는 짧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이도 있겠다. 좀 더 적극적인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이도 있다.아버지 생각을 깊게 했다. 아주 조금은 아버지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안한 게 많아 마음껏 일하지 못한 아버지 덕분에 우리 집 쌀독은 자주 바닥을 드러냈다. 넓고 편하고 좋은 집을 찾지 않아 우리 집 서까래는 거무튀튀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쩌다 어린 자식들 생각에 화려한 세상의 것을 좇다가도 금방 접어버렸다.이제 아버지 생각을 떨쳐 보냅니다. 더는 봄 앓이를 이기지 못하고 하늘로 훨훨 날아간 저 학도병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내 몸을 주고 정신을 주었던 아버지. 이제는 밥벌이에 힘들었던 일과 생각의 뒷골목에서 평생을 움츠렸던 그 무엇에도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삼 남매를 내보내고 한 번씩 보내주었던 따스한 눈길만을 기억하겠습니다.아버지,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끝

2023-06-25

일상에서 느끼는 평안의 소중함

조현일 경산시장 고대부터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불리고 있다.이러한 이유로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분명하고 만병의 원인이라는 스트레스를 자주 받기도 한다.스트레스 없이 산다면 좋겠지만,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공간이나 시간을 정확하게 말하라면 그 누구도 정답을 내어놓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자치단체장, 특히 행정경험이 부족한 초선 자치단체장의 생활은 절대 쉽지만은 않다.지난 1년 동안 각종 민원을 해결하고 지인들과의 만남에도 소홀하지 않고 장거리를 왕복하면서도 가정을 지키는 가장의 역할도 감당하는 슈퍼맨이 되어야 했다.이러한 과정에서 주변 인물들은 건강을 해치면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만남의 시간을 줄이고 일상에서 평안을 누리길 조언하고 있다.나 또한 일상에서의 편안함을 누리고 싶지만, 다음으로 미루었다. 대신 시민들의 평안을 책임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갈수록 굳히고 있다.민선 8기를 시작하며 경산시의 시정 구호를 ‘꽃 피다 시민중심 행복경산’으로 정했다.시민을 중심으로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시민이 행복하려면 공직자들의 수고로움이 당연히 뒤따라야 하며 자치단체장은 공직자들보다 한 발 더 앞서 달려야 하기에 발에는 늘 운동화다.하지만, 시장의 마음과 달리 늦어지는 시정 추진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며 울화통이 터지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스리며 시민들이 일상에서 평안함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감한다.이러한 이유로 기존자원을 최대한 이용해 시민이 일상에서의 편안함을 느끼는 방법을 찾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그 중의 하나가 “시민들에게 남천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이었다.경산의 도심을 흐르는 남천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간으로 좀 더 나은 장소로 탈바꿈시켜 하루의 고단함을 떨쳐버릴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시간이 지나며 남천은 잔디만 있는 장소에서 계절에 따른 예쁜 꽃들과 휴식공간, 저녁이면 멋진 야경 등의 변화로 시민들에게 즐거움과 쉼을 선물하고 있다.지역의 또 하나인 명물인 대구대 앞의 문천지를 수상관광레포츠공원으로 조성해 진량·하양권역의 주민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할 예정으로 어린이 놀이터와 다목적구장, 수변 산책로 등을 2025년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시청사 인근에 있는 남매지는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지만, 시민의 여름철 휴식처에서 사계절 웃음이 있는 곳이 되었다.과거에 어려운 살림에도 열심히 공부한 오빠가 과거 날은 다가오지만, 한양까지 갈 노자가 없자 여동생이 마을 황 부자 집에서 식모살이를 약속하고 돈을 구해 오빠를 한양으로 보냈다.하지만, 황부자 아들은 우격다짐으로 처녀를 겁탈했고 정절을 잃은 처녀는 마을 앞 커다란 못에 몸을 던졌고 눈먼 어머니도 딸을 건지려다 숨지고 장원급제한 아들이 고향으로 금의환향했으나 누이동생과 어머니의 죽음에 살아갈 의욕을 잃고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잠든 연못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 남매지다.이러한 전설에도 수변 산책로와 음악 분수, 바닥 분수 등에 종종 열리는 음악회로 가족들에게 힐링 공간이 되고 있다.또 지역의 삼성현으로 추앙받는 원효와 설총, 일연대사의 혼을 이어받은 삼성현역사공원도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삼성현역사공원의 삼성현문화관은 지난달 15일부터 무료로 개방해 지역의 역사를 알리고 있으며 새롭게 설치한 인공암장과 작은 도서관, 나라꽃인 무궁화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무궁화동산 등에 체험프로그램을 더해 방문객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여기에 계획 중인 생태탐방원이 설치가 된다면 경산시민이 일상에서 쉼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 다양한 연령대가 자신에게 맞는 힐링 공간을 선택할 수 있게 되므로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여기에서 시민을 위한 배려, 행복을 추구하는 시민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멈출 생각은 없다.시민이 원하는 힐링은 다양하다, 힐링은 장소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일상에서 쉼을, 평안함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함을 준비하는 시정으로 일상에서 평안함을 느끼는 소중함의 가치를 더욱 높일 것이다.

2023-06-25

동학, 해월 최시형 선생과 포항 정신

김진문 시인 세상에 처음 나온 진리나 시대를 앞선 사상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고 오히려 멸시나 탄압을 받는다. 조선 후기 1860년 경주의 수운 최제우 선생이 창도한 동학이 그렇다.수운 선생이 선포한 동학은 곧 시천주(侍天主) 사상이다. 사람은 모두 하늘님을 모신 인격체로서 양반 상놈 없이 모두 귀하고 평등하다는 사상을 세상에 선포하자 당시 노예적 신분질서와 생존의 한계에 처해있던 일반 백성들에게 급속히 확산이 되어 조선을 뒤흔들었다.동학은 당시 난세의 조선 민중에게는 한줄기 새 빛과 같은 복음이었다. 하지만 조선 정부는 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수운선생의 동학사상 전파를 반왕조적 사태로 규정하고, 탄압하기에 이른다.결국, 수운 선생을 불온한 사상가로 지목한 조선 정부는 ‘나쁜 술책과 주문으로 사람들과 국가를 속였으며, 칼 노래로 반역을 꽤 했고, 간사한 동학으로 풍속을 어지럽힌 죄’로 처형하였다. 수운 선생이 순도하자 그 뒤를 이은 제2대 교주가 해월 최시형 선생이다.그는 1861년 35세에 동학에 입도하여 72세에 순도 하기까지 38여 년간 200여 곳을 도피와 은신을 거듭하며 떠돌았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최보따리였겠는가. 초창기 해월 선생의 동학 포덕 지역은 포항,울산,영덕,영해,영양,평해,울진등지였다. 그는 동해안 산간지역에서 풍찬노숙하며 굶주림에 극단적 선택에 이를 정도의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고난의 역정이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후 또다시 지명 수배자가 되는 등 전 생애를 동학사상 구현에 몸 바치다 스승 수운과 같은 대명율을 위반한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1898년 7월 서울에서 처형되었다.그렇다면 최시형은 누구인가? 해월 선생은 포항 출신이다. 해월(海月)은 그의 호다. 그는 현재 신광면 기일(터일)에서 성장한 포항 사람이다. 한때 그곳 검등골에서 가난한 화전민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세기 조선 사회의 강고한 신분철폐 등 만민평등 의식을 고취한 반봉건, 서양 열강 등의 침입에 맞선 반외세에 투쟁한 민중 혁명가이며, 인본주의를 실천한 민족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지명 수배자로 수난의 가시밭길을 걸으면서 동학의 사상체계를 정립하는 한편 관의 탄압으로 궤멸 되다시피 한 동학을 재건 하는 데 힘썼다.그의 동학사상은 한말 의병운동, 동학농민혁명, 3·1운동, 상해임시정부, 대한민국 수립에 이르기까지의 그 영향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더구나 오늘날 생명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어린이 인권운동, 평등사상 등 그 철학적 뿌리가 해월 최시형 선생의 동학사상 정립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에 뿌리를 둔 민주이념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전통관념을 깨는 가부장제 철폐를 통한 부부 평등 주장은 시대를 앞서간 여성 인권 사상이었다. 그의 선각자적 면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흔히 포항의 정체성을 일월정신, 호국정신, 개척정신 등이라고 이야기한다. 일월 정신은 연오랑세오녀 설화와 영일이라는 땅이름에 근거를 두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세상에 빛을 밝히며 풍요로움을 지향함을 뜻하는 정신이다. 호국정신은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입에 포항을 지킨 정신이다. 또 하나는 개척정신이다.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성장했던 제철 산업을 일군 뜨거운 가슴이다. 이 세 가지는 포항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정신적 가치관이다.필자는 여기에 포항의 정신 가치관으로서 하나 덧붙인다고 한다면 해월 선생의 독특한 양천주(養天主)사상을 들고 싶다. 양천주란 한마디로 하느님을 공경하는 지극한 마음을 기르고 길러 사람도 공경하고, 물건도 공경하고, 자연도 공경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렇게 해야 하늘인 사람이 하늘을 모시는 하늘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동학의 근본인 시천주,인시천,인내천을 관통하는 실천적 사상이다. 오늘날 물질 만능과 가치관의 혼탁, 인간의 욕심과 개발로 자연파괴는 심각하다. 그 대표적 징후가 기후변화와 생물의 멸종으로 인류가 생존의 위기에 촌각을 다투고 있다. 이러한 인류 생존 위기에 당면한 해답을 동학은 그 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최근 포항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동학을 새롭게 바라보는 분위기가 조성되어가고 있음은 고무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단법인 ‘포항동대해문화연구소’가 주최한 ‘포항 사람 해월 최시형선생의 초기활동 학술세미나’ 개최는 수운선생의 삶을 알리는 하나의 긍정적 계기가 되었다. 한편으로 영양, 영해 등 지자체에서는 해월 선생 유허지를 발굴, 보존, 기념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등의 반가운 소식도 들려온다. 이러한 사업을 통해 포항 사람 해월 선생의 인간적 면모와 그 위대성이 재평가되고 있음은 다행이다.동학은 조선민중에, 조선민중에 의한, 조선민중을 위한 조선혼의 총체다. 동학은 혁명인 동시에 개벽이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동학, 최시형! 포항 사람이라면 이 위대한 한국 사상가를 더더욱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해월 선생의 삶의 궤적과 동학사상이 포항의 정체성을 제시하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2023-06-25

자영업 수난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자영업이란 남의 회사 직원으로 일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는 사업자를 일컫는 말이다. 스스로의 권한과 책임으로 사업을 하고 수익을 얻는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 자영업은 대부분 도·소매업 및 음식·숙박업에 치중돼 있다.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는 563만명의 자영업자가 있다.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의 비중이 약 23%다. OECD 평균(15%)보다 높다. 이는 양질의 일자리가 OECD 국기들보다 부족하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자영업의 비중은 낮다는 분석을 한다.우리나라 사례를 보면 취업이 잘 안되는 청년층이나 은퇴자 등이 먹고살기 위한 수단으로 자영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인 경제 지식 없이 남들 따라 ‘묻지마 창업’을 하는 사람이 많아 창업자의 상당수는 실패로 끝난다. 창업 성공률이 20%도 안 된다고 한다.특히 2020년 시작한 코로나19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자영업은 고된 수난시절을 맞는다. 코로나 확산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상당수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거나 폐업 위기에 몰렸다. 코로나19가 해제된 지금도 많은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얼마 전 전국의 자영업자 1천여 명이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최저임금 동결시위를 벌였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의 최저임금은 41.6%가 올랐다. 과속 임금으로 자영업이 더 버틸 수 없다는 주장이다.“아프니까 사장이다”는 자영업자 커뮤니티의 제목이다. 웃프게 들리는 카페 제목에서 자영업의 애환을 느낄수 있다. “직원보다 돈 못 버니 제발 좀 최저임금 동결해달라”는 그들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반영될 수 있을까./우정구(논설위원)

2023-06-25

사라진 시간

김규종 경북대 교수 석면 제거공사를 한다고 대학원동 건물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방학 기간에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본부의 구상에 따라 연구실을 정리해야 했다. 이번 학기 시작 전부터 나는 연구실에 있는 책을 정리할 요량이었다. 러시아어, 영어, 도이치어, 한국어 그리고 기타 언어로 된 적잖은 분량의 책을 단번에 정리하는 것은 어리석은 노릇 아닌가?!나의 의도는 선량한 의지 때문에 관철되지 못했다. 몇 년 전 명예퇴직한 동료 교수가 인문학 카페를 열겠다는 뜻을 표명했고, 그곳에 다채로운 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퇴직 이후 인문학 카페의 고객이자 운영자로 자신을 설정했기에 서책 정리는 자연히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의지는 의지로 멈췄고, 정리해야 할 책만 그대로 쌓였다.혼돈의 와중에 찾아온 대상포진과 종강, 학기말 시험과 작은아들의 결혼, 어머니 기일과 시민자유대학 강연 등으로 연구실 정리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동안 나는 여러 개의 책상 서랍을 조금씩 정리했다. 그러다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눈과 마음이 동시에 멈춘다. 오래전에 찍은 색바랜 사진과 예상치 못한 편지나 엽서가 곳곳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어떤 글의 주인은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고, 어떤 사진의 주인공은 아직도 내 마음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연말에 받은 수많은 연하장과 단양 사인암 부근에서 찍은 사진을 모은 작은 사진첩이 인상적이다. 20년도 더 지난 사진 속의 나와 그들은 우리가 되어 환하게 웃고 있다. 그때 거기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와 사건을 경험했던 것일까?!현재는 과거의 누적이고, 미래는 현재의 누적이다. ‘시간의 화살’이 말하는 것처럼 시간은 언제나 과거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날아간다. 그것의 역행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 있고, 미래는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현재는 과거로 쏜살같이 달아나기 때문에, 시간은 미래에서 시작하여 현재를 거쳐 과거로 질주한다.시간이 미래로 날아가든, 과거로 질주하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사라진 시간 속에서 망실(亡失)된 나의 지나간 사건과 인연과 관계가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다. 어쩌다가 나는 그 모든 사건과 인연과 관계를 잃어버리고 지금과 여기, 우두망찰 홀로 서 있는 것일까. 사라져버린 시간을 나는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하다.젊은 날, 빛처럼 찬란하고, 색처럼 아름답고, 꿈처럼 빛났으며, 아침이슬처럼 영롱했던 눈망울과 힘차게 작동했을 심장 박동 소리를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100세 시대를 말하는 세태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한 100세인지, 묻지 않는다. 그저 존재함으로써 100세를 채우는 현상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장수하는 것이 자랑인가?!남들처럼 나 역시 인생 3막 초입에 서 있다. 앞으로 어떤 사건과 관계와 인연이 나와 함께 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예전처럼 궁금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저 물 흐르는 대로, 달빛 비추는 대로 살아갈 모양이다. 오늘 밤엔 뻐꾸기 울음소리도 없이 고요하다.

2023-06-25

구글의 목표관리 비밀, OKR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북부 아프라카에는 스프링벅이라는 동물이 있다. 이 동물의 특징은 무리가 특별한 이유 없이 하루에 서너 번씩 떼로 달리는 습관이 있고, 무작정 달리다가 몇 마리가 벼랑에 떨어져 죽으면 멈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좋은 풀을 뜯기 위해 앞으로 조금씩 달리다가 나중에는 목적을 잃고 무작정 뛰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이로 인해 처음에 어떤 목적이 있다가 목적을 잃어버리고 목적과 다른 행동으로 변질한 것을 스프링벅 현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연구결과는 지구상에서 스프링벅 다음으로 목적을 잃어버리고 행동하는 동물이 있는데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많은 리더가 처음에는 선명한 목표를 제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프링벅 현상이 나타나 목적을 잃어버리고 직원들을 통솔하지 못하는 모습과 MZ세대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과거 방식을 고집하여 이들과 불통하는 사례가 많아 구글의 목표관리 비밀인 OKR 방식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OKR(Objectivekey Results)은 목표(Objective)와 핵심 결과(key Results)의 약자로, 측정 가능한 팀 목표를 설정하고 추적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목표 설정 방법론이다.인텔 CEO 앤드루 그로브가 처음 도입하였고, 존 도어가 실리콘밸리 전파하여 현재는 구글, 홀푸드마켓, 에어비앤비 등의 기업에서 성공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OKR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 연간 계획을 세우고 1년에 한두 번 점검하는 Top Down방식인 MBO(Management by Objectives)와는 달리 단순한 절차를 통해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단기간에 집중하면서 유연하게 운영하는 목표관리 방식이다.구글은 개인의 OKR을 사내에 공개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고, 서로가 피드백을 주어 건강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관리자는 주나 월 단위로 진척상황을 피드백하므로 성과관리를 하고 있다. 또한 이 방식은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였다는 것이다. MZ세대와 OKR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첫째 MZ세대는 구체적인 목표를 원한다. OKR은 이들이 신나게 일하게 하려고 단순하면서도 구체적이고 매일의 To-Do List를 분명하게 제시해 준다. 둘째 MZ세대는 의미, 영향력을 중시한다. 이들은 자주, 또는 즉시 자기 일에 점검받고 그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OKR은 이들이 짧게는 주간 또는 최소 월 1회 달성도를 점검하고 피드백을 제시해 준다. 셋째 MZ세대는 성장감을 느껴야 한다. 이들은 이직이 능력의 증거이자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현재 내가 얼마나 성장하고 있고, 미래를 위해 역량 개발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OKR은 이들이 3개월만에 성공사례를 만들어 성취감을 느끼게 하고,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제시해 준다. MZ세대에 적합한 구글의 목표관리 방법인 OKR을 자사에서 바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과 철학을 잘 이해하고 배워서 소통의 도구로, 성과 개발의 도구로, 조직문화 구축의 도구 등 자사 맞춤형으로 적용해 나아가길 바란다.

2023-06-25

삶의 격, 죽음의 격

유영희 작가 요즘 주변의 지인들에게서 노화의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그냥 나이만 들면 좋으련만, 수명이 늘어나면서 병원 신세 질 일도 많아지고 치매도 증가 추세다. 하루에도 한두 건, 많을 때는 네 건씩 배회중인 어르신 찾는 문자가 오고, 엄마도 파킨슨 병 합병증으로 치매를 오래 앓다가 돌아가셔서 치매는 특히 신경 쓰인다.2022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897만 명 중 치매 환자가 90만 명으로 추정 치매 유병률이 10%이다. 204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1천700만 명이 되는데 이 계산대로 하면 170만 명이 치매에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이런저런 질환으로 장기요양 등급을 받게 될 인구 추정치는 300만 명이라고 한다. 2040년이면 내 나이도 80세이니 치매에 걸리지 않거나 장기요양등급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온다.이런 환자를 관리하는 비용도 어마어마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은 환자 본인과 가족들이다. 인지 기능이 떨어진 치매 환자도 고통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실제로 엄마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이면서도 삶이 고통스러워 15층에서 뛰어내리려고 베란다까지 나가셨던 적도 있다.아무리 생명 연장술을 연구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현대 의료의 발달로 살아있지만 살아있다고 하기 어려운 상태로 생명을 연장하면서 환자와 환자의 가족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현대 의료 시스템은 환자가 아무리 고통 받아도 죽는 그 순간까지 치료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환자나 그 가족도 마찬가지다. ‘왜 나는 75세에 죽기를 바라는가’를 쓴 미국 의사 에스겔 임마누엘의 보고에 따르면, 미국 노인 5분의 1가량이 죽음의 마지막 달에 외과 수술을 받는다고 하니, 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인식을 바꾸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그러나 이제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케이티 잉겔하트의 ‘죽음의 격’은 노년은 물론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나 불치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른 사람들이 어떻게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는지 취재한 기록이다.그가 어떤 죽음이 품격 있는 죽음인지에 대해서 직접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존엄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 바로 괄약근 조절능력을 잃었을 때 그런 결정을 한다는 것을 담담하게 전해준다.아무리 훌륭한 의사도 죽음을 치료할 수는 없다. 죽음은 질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나 자기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한 순간에 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노년을 상상하면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탐색하고, 죽음의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마음의 준비도 꾸준히 해야 한다. 한 달 전부터 몸 상태를 기록하는 ‘몸 일기’를 매일 쓰고 있다. 2040년 80세를 맞는 어느 하루, 나의 몸을 상상하는 일기도 써봐야겠다.

2023-06-25

탄소 중립과 대한민국이 할 일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월드 그린 뉴딜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에서 “기후 위기는 인류가 사상 처음으로 스스로를 ‘멸종 위기의 생물종’으로 인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와 같은 새로운 현실에 직면한 상황은 인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공동의 유대감’을 갖도록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기후 위기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1760년 석탄을 연료로 한 내연기관이 촉발한 산업혁명 이후 계속 탄소가 누적되어 생긴 문제다.전 세계는 지금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로 인한 탄소 누적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2015년 12월 12일 열린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파리기후협약)에서 산업화 이전 대비 2.0도 이상 기후가 상승하지 않도록 195개국이 탄소 배출량 단계적 감축안에 대해 협정을 체결했다.기후위기 대응은 탄소경제에서 재생에너지 기반 경제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에너지 전환은 한 나라만이 나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와 전 인류가 함께 공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글로컬 그린 뉴딜과 스마트 디지털 3차 산업혁명이 부상하는 이유다.반도체, 바이오, 배터리, IT제품 등 거의 모든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다투는 대한민국이 왜 스마트하고 디지털화한 3차 산업혁명에 낙오되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1·2차 산업혁명을 정상경로를 생략한 채 정부 주도로 압축적으로 돌파했다. 전쟁 치르듯 산업혁명을 달성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업은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아직도 관주도형 경제에 익숙하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개발시대에 함몰돼 ‘하면 된다’ 는 추격자 정신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파리기후협약에 195개 국가가 협정을 맺을 때 우리나라도 당사국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그 이후 행보를 보면 우리나라는 후진국, 개발도상국적 사고에 젖어 기후변화에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생각이 없다.2011년 이명박 정부 시절 블랙아웃을 경험한 후 600만kw에 달하는 석탄발전소 건립 계획을 세워 최근 3기 준공되었고 4기가 준공을 앞두고 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석탄발전소를 폐기하는 조류에 전적으로 역행하는 행위다. 당장 폐기되고 ‘좌초자산’이 될 것이 뻔한 석탄화력발전소 건립에 17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지금까지 투입하고 있다.재생에너지 도입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보완해야 할 송배전망 또한 미궁에 빠져 있다. 제주도를 시범지구로 해서 재생에너지 기반 스마트 마이크로 그리드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제주도에 재생에너지가 지난해 18%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132번 셧다운이 일어났다. 한전의 독점적 송배 전망이 분산 에너지인 재생에너지에는 적합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제도를 보완하지도, 적합한 정책을 수립하지도, 예산을 투입하지도 않은 채 방치해온 결과다. 앞으로 육지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최근 볼보와 GE가 납품 기업들에게 2030년까지 RE100을 요구하면서, 확답을 못한 업체들에겐 장기 납품 계약을 파기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평택에서 구리 수도꼭지를 생산하는 한 중견기업은 5년 전부터 공장을 이전 확장할 계획을 세웠는데, 부지 찾기도 힘들고 유럽에서 RE100까지 요구하고 있어 이참에 RE100이 가능한 헝가리공장으로 전부 이전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같은 이유로 국내 공장들이 해외로 이전을 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탈원전까지 감행했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재생에너지 정책은 실패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에 관한 상위 법령을 정비하지 않아 전국 226개 시·군·구가 각자 조례를 통해 마을에서 300~500m, 도로에서 300~500m 등 태양광 설치 거리 제한을 둔 것이 대표적이다.구미시는 시 전체에서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는 면적이 0.09% 뿐이라고 한다. 지난 정부의 제도적 방치 속에 태양광은 온갖 괴담에 시달리다가 이제 가장 대표적이 혐오시설, 기피시설이 되어버렸다.독일의 경우 주민 민원에 대해 해당 공무원과 환경단체가 적극 설득하여 태양광 설치가 6개월이면 되는데, 우리나라는 시민단체들이 주민들의 민원을 부추기고 공무원들조차도 사업자에게 민원해결을 떠맡기고 수수방관한다. 공무원, 시민사회, 국민 모두가 아직도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인 것처럼 생각한다.며칠 전 한 언론에 ‘주요국 기후변화 손실과 피해 보상’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 따르면 2050년까지 1.5도 온도 상승 목표를 지키려면 앞서 과도한 온실가스를 배출한 선진국들은 후진국들에게 2050년까지 170조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탄소배출 13위인 우리나라는 2조7천억 달러(한화 3천105조 원)를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후진국들의 탄소중립을 위해 우리나라에 배당된 청구금액이다. 유럽 선진국에 비해 20년 정도 뒤졌지만, 지금부터라도 모든 힘을 다해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 후진국들의 에너지 전환을 앞장서 돕는 것이 우리나라의 할 일이다.

2023-06-25

자연견습공

이원만 시인 국어어원사전을 보면 ‘삶’은 ‘불’의 뜻을 가졌다. 같은 어원을 가진 ‘사랑’에 불타는, 뜨거운 같은 불과 관련한 수식이 붙는 것도 그런 연유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는 물과 불과 공기와 흙 중에서 불을 가장 소중히 하는 불의 문명을 가꿔왔으니 쓰는 말들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그런데 너무 불을 강조하다보니 우리가 계속 살아가야할 행성이 뜨거워 질 정도가 되었다. 유럽, 호주에 이어 캐나다가 불길에 휩싸였다. 사용하는 에너지도 불에 집중되어 있었고 삶도, 사랑도 뜨거워야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지구가 과열된 것이다. 열이 나면 호흡이 가빠지고 기침을 하는 것처럼 지구의 안정된 리듬이 깨졌다. 기후변화, 기후혼란은 그런 것이다.‘화염의 문명’이 실패했다면 물과 공기와 흙을 가지고 더워진 지구를 식히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보다 물과 공기와 불과 흙을 잘 다루고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들, 인간이외의 생명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우리는 자연을 이용하기에 바빴다. 철학자 마이클 마더는 ‘식물의 사유’(알렙 2015)에서 “21세기의 비극은 우리가 연소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겠다고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연소될 수 있는 것들 속에는 우리 자신도 포함됩니다.”고 했다.그리고 그 대안을 식물생명에서 찾는다. “식물생명은 식물의 영혼이 식물의 신체에 자신을 작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비파괴적인 에너지가 흐르는 관입니다. 이 에너지는 다른 식물, 동물, 인간 존재들도 공유할 수 있도록 허락되어 있습니다.”며 ‘더불어 번성하기’를 주장한다. “식재료, 건축재료, 광합성을 일으키는 식물기계, 자기 복제하는 녹색 물질”로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고 식물과 자연의 ‘고요한 번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다시 ‘자연의 견습공’이 되자고 한다.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기에 더더욱 빨리 성장하는 식물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너무 막연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 그 견습공들이 있다. 예를 들면 안도현시인의 이런 시는 어떤가?초록 풀잎 하나가/ 옆에 있는 풀잎에게 말을 건다/ 뭐라 뭐라 말을 거니까/ 그 옆에 선 풀잎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풀잎이/ 또 앞에 선 풀잎의 몸을 건드리니까/ 또 그 앞에 선 풀잎의 몸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들끼리/ 한꺼번에 흔들린다/ 초록 풀잎 하나가 뭐라 뭐라 말 한 번 했을 뿐인데/한꺼번에 말이 번진다/ 들판의 풀잎들에게 말이 번져/ 들판은 모두/ 초록이 된다 (안도현 ‘초록풀잎 하나가’전문-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 상상 동시집 2023)이 동시집에는 우리의 생태적 감수성을 키워주는 식물의 말을 사람의 언어로 동시통역하는 동시로 가득하다. ‘팽나무가 오 백년 동안 일해서 만든 그늘’을 펼쳐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인간이외의 다른 생명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며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비인간생명들과 공생하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상상하기를 자극’하는 이런 시들을 읽고 나면 나무도 바위도 풀도 뱀도 다람쥐도 사촌쯤 되어있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씩 식물-되기, 동물-되기를 통해 우리는 조금씩 더 좋은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불을 끄고 지구를 식힐 수 있지 않을까?평생 바다와 인간의 사이에서 살아오신 동해안 별신굿 보존회 선생님들과 쓰레기매립장에 버려진 고래가 너무 안타까워 고래진혼굿을 한 적이 있다. 공연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할 때 누군가 그랬다. “오늘은 ‘지구식힘굿’을 해서 그런지 바람이 시원합니다.” 그날의 그 사진엔 모두가 활짝 웃는 모습이 담겼다. 모두가 불의 문명을 식히고 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든든했다. 평생 해 온 일을 지금의 시대상황에 맞게 ‘지구식힘굿’으로 말하는 ‘생태적 깨달음’은 예술가들에게도 보편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여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 문제를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느끼고 감수성의 변화로 이어져 풍어를 기원하는 굿을 ‘지구식힘굿’으로도 변용하는 의식과 행동의 변화가 생겼기에 바다도 좋다는 듯 시원한 바람을 밀어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자신의 입으로 인간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식물의 말, 동물의 말, 물의 말, 흙의 말, 바다의 말을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입을 빌려주는 사람들 중 한 부류가 시인이라면 우리 시대의 시 읽기는 인간중심주의 한계를 넘어 우리를 자연의 일부로 자연의 친척으로 만들어 주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모기약을 쓰지 않고 수건 한 장으로 방안의 모기들을 내쫒는 공생의 공력을 키우려면 생태적 감수성의 근육을 단단히 키워야 할 것이다. 함께 자연의 견습공이 되어 풀잎들 옆에 같이 서서 뭐라 뭐라 말을 전달하는 것쯤은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비 온 뒤 운동장의 풀처럼 늘어났으면 좋겠다.

2023-06-25

‘괴물’이 된 차별과 혐오

홍석봉 대구지사장 한때 크레파스 색깔 가운데 ‘살색’이 있었다. 사람의 피부색과 가까운 색이라고 여겼고 그렇게 사용했다.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살색’이라는 표현이 인종과 피부색에 대한 차별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 뒤 ‘살색’ 표현은 사라졌다. ‘살구색’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세계화와 다문화가정이 늘면서 살색은 자칫 인종 차별로 이어질 수 있었다. 살색 이름 폐기는 피부색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다름과 차별을 인식하고 받아들인 첫 사례가 아닌가 싶다.대구 퀴어문화축제가 ‘불법 도로 점용’과 ‘정당한 집회의 자유’ 보장이라는 이해가 맞부딪혀 법적 다툼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성소수자 차별 논란은 뒷전이 됐다.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무슬림 유학생과 지역 주민의 갈등이 종교 분쟁 양상을 띠며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보수 도시 대구가 성소수자 차별과 종교 혐오의 중심에 섰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퀴어축제와 도로 점용은 성다수자의 권익 보호에 배치된다며 반대했다. 이슬람 사원 건립에 대해선 “건립 반대는 종교의 자유 침해일 뿐 아니라 기독교 정신에도 반한다”며 포용을 주문했다. 차별과 혐오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라는 비판이 일었다.성소수자를 보는 시각은 아직 싸늘하다. 기성질서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위험시한다. 이해와 현실은 달랐다. 이슬람 종교에 대해서도 여전히 배타적이다. 하지만 이슬람 사원의 주택가 건립 문제는 이슬람만 특별히 차별한 것이 아니다. 주택가 종교시설은 애시당초 기피시설이었다. 주민들은 집값 하락 등을 우려, 종교시설을 오래전부터 반대했다.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시설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터이다.퀴어문화와 이슬람에 대한 편견은 기존의 가치관을 교란하고 낯익은 질서를 파괴한다는 이유에서 보이는 거부반응이다.표현과 종교의 자유가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할지라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지만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 것도 자유다. 내 자유가 중요한만큼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지금 우리 사회에 혐오와 차별이 넘쳐난다. 군 입대를 거부하는 종교단체, 차별을 거부한 장애인 차별연대, 세월호 희생자 혐오와 이태원 참사 피해자 혐오, 여성 혐오 등 차별과 혐오가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불신과 알력을 자양분삼아 어느 순간 튀어나오는 괴물이 됐다. 미국 등지에선 혐오가 증오로 이어져 유색인종 테러 등 범죄로 표출되기도 한다. 유명인사도 혐오와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 EPL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은 ‘째진 눈’ 조롱을 받았다.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은 성과 인종차별의 상징이었다. 혐오와 차별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공자는 논어에서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고 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태도, 가치관 등이 다름을 인정할 때 만이 우리 사회의 갈등이 사라지고 성숙해질 것이다.

2023-06-22

두 자녀가 다자녀인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자녀 출산과 관련한 표어를 시대별로 나열해 보면 그 시대의 출산 사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대표적 표어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이다. 이때 유행한 ‘3.3.35 운동’은 3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 이전에 단산하자는 운동이다.1970년대 와서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다. 두 자녀만 갖자는 캠페인이다. 2000년대 들어서 등장한 가족 캠페인은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형제입니다”, “한 자녀보다 둘, 둘보다 셋이 더 행복합니다”는 것이다.출산 캠페인에서 시대적 흐름의 격세감을 느낄 수 있다.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8명. 결혼한 부부가 한 자녀도 낳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구 감소의 절대적 이유다. 합계출산율은 OECD국가 중 꼴찌며 OECD 평균의 절반도 못 따른다.우리나라는 저출산 국가로서 위기감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저출산 문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넓게 확산돼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개선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출산율은 해마다 되레 낮아지고 있다.구미의 어느 목사 부부가 12명의 자녀를 거느리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소개되고, 다섯 쌍둥이를 낳은 어느 군인 부부의 육아 이야기가 젊은 세대들한테는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올들어 다 출산 장려책으로 각 지자체가 다자녀 기준을 3명 이상에서 2명 이상으로 완화하고 있다. 대구시도 현재 3자녀 이상 기준을 2자녀 이상으로 낮추는 것을 두고 고민 중이라 한다. 기준을 완화하면 각종 혜택에 따른 재정적 부담이 늘기 때문이다.두 자녀를 다자녀라 부르는 어색함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22

유월 한가운데

강길수 수필가 유월 한가운데다. 정수리에 내려꽂히는 햇빛이 따갑다. 예전엔, 지금쯤 한창 필 장미꽃은 다 졌다. 늦둥이로 피어난 작은 장미꽃 한 송이가 외로울 뿐이다.올 유월을 맞으며 든 생각은 바로, ‘자유와 민주’였다. 우리나라가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도 안 될 역사가 숨 쉬는 달이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25일, 우리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6·25 동족상잔이 벌어진 유월’이다. 하여, 1963년 ‘호국보훈의 달’로 유월이 지정되었을 터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이 발발한 달이며, 1987년 6월 항쟁을 품은 달이기도 하다.자유와 민주를 지켜내기 위해 분연히 목숨 바쳤던 선열들과 함께 가는 공동체 대한민국호 열차가, 유월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문득 바라본 차창 밖 마음의 모니터엔 홀연, ‘한국적 민주주의’란 글이 나부낀다. 웬일일까. 내 무의식은 왜, 유월 한가운데에 ‘한국적 민주주의’를 소환했을까.‘한국적 민주주의’란 말이 많이 쓰인 것은, 1972년 제4공화국 유신체제 출범 전후였다. 유신의 당위성을 함축한 이 말이, 올 호국보훈의 달에 가슴을 물들인다. 작금의 우리 사회상이, 10월 유신 같은 개혁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잠재의식의 외침인가. 입으론 국민을 팔며, 제 속 채우기에 급급한 거대 야당의 입법 독재 행태가 바로, 한국적 민주주의를 잘못 커닝이라도 한 것일까.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일찍이 링컨 미국 대통령이 말했듯, 주권자가 국민이고, 국민이 뽑은 공직자들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제도가 아닌가. 그렇다면 대통령 이하 선출, 비선출직 모든 공직자는 오직 국민과 나라를 위해 봉사할 천부적 사명이 주어진다. 만일 공직자가 사적인 것과 반국가적 일을 탐한다면, 그 자체가 죄다.나는 유신체제 때 취업, 결혼하여 셋방살이 새 가정을 꾸렸다. 제철소 기능직 사원으로 시작한 직장생활은, 주경야독하면서도 즐겁고 희망찼다. 기간직 앞에서 가끔 주눅 들기도 했지만, 급여나 분위기가 그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도, 귀족노조도 없었다. 솔직히, 산업 근로자와 서민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았다. 가장의 홑벌이로 아이 둘 키우며, 살림 살고 저축도 할 수 있었다. 독재니, 비민주니 떠드는 것은 정치꾼들의 선동이었다.산업화 시대, 민주화 시대, 정보화 시대, 4차산업혁명 시대를 살아온 산업 근로자 소시민으로서, 유월은 명경대(明鏡臺) 앞에 선 마음이다. 기꺼이 젊음을 바쳤던 유신 시대와 80년대가, 지금보다 훨씬 더 진실한 민주화 시대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때 정치인들은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했으니까.‘정치인의 자유가 곧, 민주화’라는 정치권의 괴상한 등식…. 하지만, 그 안엔 국민이 없다. 정치꾼들은 언론, 법조, 교육, 종교, 선관위, 여론조사 등 많은 부문과 야합했다. 이를 선동, 조작, 억지 주장의 도구로 삼아 국민을 호도, 지배하고 나라를 구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저들의 속셈을 침묵하는 다수 국민은 다 안다. ‘주권자 국민이 눈 부릅뜨고, 망보아야 할 세태’가 유월 한가운데가 주는 계시다.

2023-06-22

하지 지나고 맞은 단오절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 하지(夏至)가 지났다. 초하(初夏)의 계절이 온 것이다. 더위는 지금부터라 기온이 벌써 30도를 넘나들고, 모내기가 끝나면 장마철 시작이니 곧 장마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그다음 날이 음력 5월5일 단옷날, 1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이다. 수릿날(戌衣日), 천중절이라고도 하며 설, 추석과 함께 3대 명절이며 각종 전통문화 놀이가 열리게 된다. 단(端)은 첫째, 오(午)는 낮이라는 뜻 외에도 다섯(五)의 뜻도 있다 하여 단오는 ‘초닷새’를 의미하기도 한다. 보통 6월 초·중순에 드는데 올해는 하지가 지나서 있는 것은 윤2월이 있었기 때문이다.지역에 따라 더운 날씨에 밤새 비가 내렸고 중부 지방엔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와 함께 우박이 쏟아지기도 했다. 단오는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재상 굴원(屈原)이 모함을 당하여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자살한 날이라 그를 기리기 위한 행사가 풍습이 되어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고 한다.단옷날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윤기 자르르 흐르는 고운 머리칼에 창포 뿌리로 만든 창포잠(菖蒲簪)을 꽂고 창포잎 이슬로 화장한 고운 얼굴에 녹의홍상(綠衣紅裳) 꾸며 입으면 봄의 여인이 된다. 쑥과 익모초, 그리고 산나물의 왕이라는 수리취 잎으로 수레바퀴 모양의 떡을 만들어 먹고, 여자는 그네뛰기 하며 담 밖을 내다보고 남자는 활 쏘며 씨름하며 힘을 과시했다. 그래서 이날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는 ‘씨름의 날’이기도 하다. 또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큼지막한 돌을 끼워 넣어 ‘시집보내기’를 하며 대추 풍년도 기원했고 약쑥 한 다발 묶어 대문 옆에 세워두어 재액을 물리치려는 벽사(8F9F邪)도 하였던 단옷날 풍습도 이제는 사라져가는 아쉬움이다. 그래서 어저께 시골집에 가서 담장 안쪽에 무리 지어 자란 인진쑥을 한 아름 뜯어 묶어 처마기둥에 걸어두고 왔다. 포항문화원이 올해 ‘제27회 포항단오절 민속축제’를 준비했다. 23일 오전 10시 종합운동장 옆 만인당 잔디밭에서 29개 읍면동과 문화원 산하 4개 문화반 등 33개 팀, 시민 1천여 명이 참여한 다양한 전통문화 축제를 펼친다. 흥해 농요팀, 월월이청청 보존회 등이 개막식을 흥겹게 하고 이어 줄싸움, 한복맵시 자랑대회, 노래자랑이 열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숨죽였던 시민에게 새 활력을 주며 우리의 고유 전통문화를 전파하려고 한다.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포항시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니 ‘포항소식-행사·축제’ 항목에는 행사명과 장소만 적혀있을 뿐 구체적 사항은 비어있어 알 수가 없다. 포항문화원이 주최하는 행사지만 포항시에서도 지원하는 행사이니만큼 자세한 내용을 쉽게 알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국내 각 지역에 고유한 단오제가 많다. 강릉단오제, 안동 풍년기원제 등이 유명하고 경산 자인단오제는 여원무(女圓舞)를 우아하게 추는 ‘한장군(韓將軍)놀이’와 대학 장사 씨름대회가 문화행사로서 눈길을 끈다. 어제까지 흩뿌린 빗방울이 장맛비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예측도 있지만 뜨거움을 날려달라고 단오굿 하듯, 나쁜 기운 몰아낼 단오축제를 즐기며 풍성한 우리 전통문화를 이어갔으면 한다.

2023-06-22

수능, 대학, 교육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교육이 위태롭다. 수능이 불안하다. 겨우 150일 남은 올해 수능을 앞두고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헤아리느라 모두들 혼돈스럽다. 너무 어려워서 내용을 조절해야 한다는 생각과 적당히 어려워야 변별력이 있다는 의견이 부딛힌다. 수험생들이 혼란에 빠졌다 하고 학부모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책의 논의와 조율과정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쉬움과 함께 하루 하루 다가오는 수능날짜는 버겁기만 하다. 백년대계 교육을 조삼모사 당국에 맡겨놓은 꼴이라 온 나라가 조마조마하다. 논란의 가닥이 여럿이지만, 필자는 ‘언어영역 비문학 문제나 과목융합형 문제를 배제하겠다’는 교육부의 지침에 주목한다.비문학이나 융합형 문제는 오히려 권장되어야 한다. 교육은 미래 인성을 기르는 일이다. 수험생의 언어능력을 시험하면서 평가대상 영역을 ‘문학’으로 제한하겠다는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다음 세대가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발휘해야 할 언어능력을 어떻게 문학 지문으로만 평가할 수 있을까. 비문학 소재를 다루어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문제의식은 어디에서 왔을까. 초중고 국어 교과서에도 문학작품들만 실려있는 게 아니다. 문학작품 읽기와 쓰기가 물론 주요 관심사이지만, 언어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가닥의 소재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역사 이야기, 진로탐색 스토리, 매체습관 훈련 등 사회와 문화, 과학과 기술 관련 지문들이 여럿 보인다. 학생들의 언어소양을 문학 소재로만 평가하겠다는 발상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과목융합형 문제도 제외하겠다고 한다. 현대사회는 이미 융합형 통합형 인성을 기다린다. 교과과정 을 문과와 이과로 구분하여 학생들의 인성을 인위적 틀에 가두는 편협한 사고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하였다. 국어, 영어, 사회, 과학…. 학습의 편이를 위하여 학교교육은 과목을 구분하지만, 오늘의 문제는 과목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도시에 도로를 개설할 때에 길 주변 마을공동체의 문화사회적 상황을 살펴야 하고, 사회복지정책을 수립할 적에 성별세대별 인식수준을 관찰해야 한다. 수능의 언어영역 문제로 과학적 글쓰기소양을 살펴야 하고 수리영역 문제에서 사회적 책읽기가 평가되어야 한다.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유연하고 포괄적인 사고능력을 발휘하는 통합형 미래인성을 길러야 한다.수능은 12년간 초중고 교육을 통하여 길러진 수험생의 수학능력을 평가하여 앞으로 대학교육을 받아낼 소양을 살피는 제도이다. 수험생들 간 차이를 적절하게 평가하기 위하여 문항들 사이에서 적정한 난이도 배분은 불가피하다.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치밀한 분석력을 발휘하여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지 가늠할 필요도 있다. 어렵고 쉬운 문제가 고루 등장하여 수험생의 주의력과 분석력이 적절하게 평가되어야 한다.프랑스의 학생평가시험 바칼로레아(Baccalaur00E9at)에 올해 등장한 문제는‘평화를 원한다는 것은 정의를 원하는 것이기도 한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우리와 사뭇 다른 경우다, 하지만, 학생들의 통합적 융합적 사고능력을 기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까?

2023-06-21

자인단오제의 진화

홍석봉 대구지사장 22일은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단오(음력 5월 5일)다. 우리 지역에는 경북 경산시 자인면에 신라시대부터 전승돼 온 ‘경산자인단오제’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단위 민속축제다. 축제 내용이 비교적 온전하게 전수돼 지역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무형문화재 44호로 지정됐다. 강릉단오제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 단오제 축제 반열에 올랐다.신라말에 왜적이 침범하자 한(韓)장군이 누이동생과 함께 꽃관을 쓰고 춤을 추며 왜구를 유인, 섬멸해 지역을 지켜냈다. 한 장군은 이 때부터 자인면의 수호신이 됐다. 한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사당을 짓고 단오절에 제사를 지냈다. 성대한 놀이와 함께 지역 축제로 현재의 자인단오제로 이어졌다. 자인단오제가 22일부터 24일까지 자인면 계정숲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는 자인단오제의 전통적인 행사뿐만 아니라 젊은 층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문화축제로 열린다고 한다.첫날은 자인단오 다섯마당 공연과 개막식이 개최된다. 둘째 날은 어린이 인형극, 동래학춤, 팝 오케스트라 공연, 고택음악회 등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지는 행사가 펼쳐진다. 마지막 날엔 강릉농악·은율탈춤·전통무예시연 등 공연과 대학장사 씨름대회가 열린다. 다양한 체험마당과 퍼포먼스도 준비돼 있다.사라져가는 전통놀이를 마냥 아쉬워 할 때만이 아니다. 잘 보존되고 있는 전통을 찾아 맥을 잇고 더욱 발전시켜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인단오제는 귀한 전통놀이로서 지역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BTS의 감성을 더하면 세계에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또 다른 K컬처가 될 수 있을 터이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6-21

적게 먹고 간결히 먹자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많은 수의 사람들이 위장병으로 고생을 한다. 급체로 오는 경우도 있고 먹고나면 더부룩해서 혹은 음식만 먹으면 답답해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한의원에 내원한다.위장병은 간단하게 말해서 먹어서 생기는 병이다. 안 먹으면 위장병으로 괴로워 할 이유는 없다. 즉 안 먹으면 좋아지는 병이다. 그러나 생명체는 영양소를 섭취해야 살아갈 수 있으니 안먹을 수도 없다. 어떻게 먹어야 내 위장을 다시 회복하고 나의 건강도 회복하는 방법을 한번 알아보자.음식은 적게 먹는게 좋다. 소식을 연습하고 생활화 하자. 음식이 많이 들어오면 결국 인체는 음식을 소화 시키고 영양분을 보내고 그 찌꺼기를 소변과 대변으로 내 보내야 한다. 음식이 들어오면 우리 몸의 장기와 신체는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 위장이 일을 한다는 자체가 위장의 피로와 장기의 피로를 유발할 수 밖에 없으니 적게 먹는 것이 좋다.간결히 먹는게 좋다. 고기나 생선 등 단백질 조금, 야채 두세 종류, 고춧가루 없는 국 약간, 밥은 반 공기 혹은 그 이하로 간결히 먹는게 좋다. 적게 먹고 반찬 가지 수를 줄이면 소화가 빨리 되고 속이 편하다. 우리나라 식문화는 다양한 반찬에 국과 찌개 고기와 생선 등 많이 올려놓고 먹는 방식인데 너무 많은 종류의 음식이 들어오고 많이 먹게 된다. 또 밥 위주의 식단이라 영양 밸런스 측면에서 좋지 않다. 고기나 생선, 야채, 밥의 순서로 배를 채우는 것이 좋다.간식은 절대 먹지 않는다. 식간에 심심하다고 간식을 먹으면 위장이 쉬질 못한다. 위장뿐 아니라 모든 장기와 나의 신체가 들어온 음식물을 소화 하려고 일을 한다. 위장의 문제 뿐만 아니라 몸의 피로감을 유발한다. 굳이 안먹어도 되는데 스트레스로 혹은 입이 심심해서 버릇으로 간단한 간식을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먹지말자. 특히 대부분의 간식은 과자나 음료인데 탄수화물과 당류라서 특히 몸에 안 좋다. 간식으로 고기 구워 먹는 사람은 없지 않는가? 이렇게 중간에 먹는 탄수화물과 당류는 체중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니 절대 간식은 먹지 않는다.맵고 자극적인 것을 먹지 않는다. 우리나라 음식은 맵고 짜다. 특히 매운맛이 위장에 좋지 않다. 매운맛은 통각으로 위장에 들어오면 위장에 염증과 통증을 잃으키고 위장이 붓게 된다. 소화기 저하 뿐만아니라 체끼 등 불편함이 생기고 고춧가루가 대변으로 나올 때까지 위장뿐만 아니라 내장 전체를 불편하게 만드니 절대 매운 음식은 먹지 않는다. 족발은 먹어도 불족발은 먹지 말고 위장을 괴롭히는 고춧가루가 들어간 매운 음식은 최대한 피하자. 내 머리를 벽에 일부러 박는 사람은 없는 법, 매운 것을 줄이고 먹지 말자.식사는 고기 먼저 야채 다음 밥은 아주 조금 국은 거의 없는 정도로 먹는 게 좋다. 꼭꼭 씹어서 먹고 적게 먹고 순서를 지켜서 먹자.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지말자. 대부분의 병은 나의 생활에서 온다. 그중에서 특히 위장의 장애는 내가 만드는 병이다. 원인이 뭐냐고 물어 보는데 원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 많이 먹고 매운 거 먹고 간식 먹는 내가 나의 위장을 병들게 한다. 이제 위장에게 휴식을 주자.

2023-06-21

사교육과 마음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사교육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었다. 처음에는 오후 2시에 학교를 마친 아이를 돌봐주는 ‘보육’의 관점에서 접근했지만,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시간이 좀 지나자 초점은 ‘교육’에 맞춰지게 되었다. 영어는 기본으로 배워야 하고 활동적인 아이 특성을 고려해서 체육 활동도 넣어주고, 아이들의 감수성 발달에 좋은 피아노나 미술 같은 예술 계열 교육도 빠질 수 없다. 대충 이렇게 일주일 사교육 일정을 짜게 되면 월 80여만 원 정도가 된다.당연히 아내와 나는 이게 올바른 방향인지 질문한다. 초등학교 사교육비가 이렇다면, 중·고등학교는 어떤 상황일지. 그렇지만 사교육의 굴레를 벗어나기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가장 큰 이유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대부분이 사교육을 받는다는 점이다. 우리 아이만 뒤처지게 할 수 없다는 부모의 마음이 사교육을 끊지 못하게 한다. 수도권의 경우 초등학교부터 특목고 입시를 위한 사교육 시장이 따로 존재하고, 부모는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끌려가게 된다고 한다.지난 3월 발표된 통계청의 ‘2022년 초중고교 사교육비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대한민국 사교육비는 26조로 역대 최고액을 돌파했다. 흥미로운 점은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이후 2년 동안 전년도 대비 34%나 급격히 증가한 사실이다.아이를 낳지 않아서 학생 수는 감소하는데 사교육비는 증가하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결과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거나 1명만 낳는 현실을 반영한다. 뒤집어 말해서 젊은 세대가 아이를 2명 이상 낳기 위해서는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최근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다시 사교육비 문제가 화두가 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실에서는 교육부 장관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사교육비 절감과 공교육 경쟁력 강화를 지시한 대통령의 말을 교육부 장관이 쉬운 수능으로 이해해서 생긴 문제라고 설명했다. 늦게나마 사교육비 문제를 대통령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발언이 문제해결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하다.대한민국은 1970년대에 사교육 금지정책을 펼친 바 있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못했고 이후 사교육 시장은 갈수록 팽창해서 지금에 도착했다.정부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사교육 금지정책을 폈음에도 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지 분석이나 했을까? 사교육 문제는 단순히 대통령의 말이나 정책 하나로 해결할 수 없다.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누적되고 얽힌 문제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아마 우리 집도 사교육을 끊어버리지 못할 것이다. 현재로선 서울에 가지 않고 지역에서 상대적 자유를 느끼는 것이 최선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수도권에서 더 큰 사교육 시장의 굴레를 벗어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사람들의 심리를 어떻게 바꿀 수 있냐이다. 사교육을 안 받아도 우리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2023-06-21

병오일주

육십갑자 중 마흔세 번째는 병오(丙午)다. 천간(天干)의 병화(丙火)와 지지(地支)의 오화(午火)는 양 중의 양이며, 태양같이 밝고 뜨거운 기운을 모두 가졌다. 동물로는 붉은 말(馬)이다.병오일주는 해가 온 세상을 비추듯이 굉장히 공평하고 밝고 명랑하다. 자신을 드러내는데 숨김이 없고 진취적이므로 적극성을 띤다. 솔직한 성격이라 마음속에 있는 것을 숨기지 못하는 타입이다. 상대방에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가정사는 집안에 분란이 일어나기에 조심해야 한다.또한 칭찬과 정에 약하다. 칭찬을 하면서 부탁하면 거의 들어준다. 친구를 좋아해 친구한테 돈을 빌려주고도 자존심 때문에 돌려달라는 말을 못한다. 병오일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둘 중 하나는 죽자고 결투를 신청하는 것과 같다. 마치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타입이다. 하지만 어설픈 충고를 하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격앙되는 단점이 있다.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으로 타인을 자기에게 끌어들이고 동화시키는데 능력을 잘 발휘한다. 리더십이 있다는 얘기다. 전문성의 기운 즉, 프로 기질이 있어 주변 환경을 개선하고 극복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매우 정렬적인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 밀어 붙이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성격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자유롭고 자기 신념이 있으며, 낙천적인 삶을 산다. 그와 같은 인물로는 ‘돈키호테’가 있다.16세기 스페인의 세르반테스(1547∼1616)가 소설 ‘돈키호테’를 썼다. 사람들은 정상 궤도에서 어긋나 괴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두고 부정적인 의미로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돈키호테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돕는 정의로운 편력기사였다. 따뜻한 인간성과 절대적인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풍차를 거인으로 본 돈키호테는 부하 산초한테 풍차를 거인이라고 했다. 그러자 산초는 거인이라뇨? 그건 풍차입니다. 팔로 보신 것은 날개인데 바람의 힘으로 돌아서 맷돌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이런 종류의 모험을 알지 못하는 너에겐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건 거인이라고 일축했다. 돈키호테가 보는 풍차는 약자를 괴롭히며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악의 상징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약자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가는 정의의 상징이다. 자유와 정의를 지키는 진정한 기사였다.그는 “편력기사의 임무는 괴로워하는 자나, 사슬에 묶여 있는 자나, 억압받는 자들의 고통에 눈을 돌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도와주는 것이란 말이다”라고 산초에게 말한다. 그의 비문에는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다’고 적혀 있다.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서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서 자기의 운명을 택해야 한다. 돈키호테는 편력기사의 삶을 선택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고 말한다. 즉 자신의 삶의 의미와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꿈과 도전이 없이는 성공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스펙과 돈에 목을 매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돈키호테는 괴짜로 보일 수 있다.병오일주 여성은 시원시원하고 항상 밝게 웃는 인상이 많다. 애교가 많아 보이지만 무뚝뚝하다. 밖에서 활동하면 성공할 수 있으나, 남성의 유혹에는 약하다. 남성은 호탕하고 박력 있게 일처리를 하며 스케일과 포부가 크다. 그러나 독선적으로 자기중심적 성향이 있어 지탄을 받아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예의 없는 태도를 싫어한다. 특히 뜨거운 기운 때문에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과음은 금물이다.병오일주의 적토마는 붉은 말을 상징한다.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말이기에 힘과 속도에서 탁월한 특성을 나타낸다. 삼국지의 관우와 여포가 타는 말이 적토마다. “여포는 늘 좋은 말을 몰았는데, 이 말은 적토(赤83DF)라 불리며 능히 성으로 달려가서 해자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 중에 여포가 있고 말 중에 적토가 있다고 했다”고 ‘정사 삼국지’ 여포전에 나온다.프랑스를 대표하는 명품 헤르메스 로고에도 말이 등장한다. 마부가 빈 마차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명예를 소중히 하고 품격 있는 고객을 모시겠다는 표현이다. 1837년 티에리 헤르메스가 창립하여 현재까지 내려오는 브랜드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는 상업의 신이며, 부를 가져오는 신이다. 헤르메스는 탁월한 제품력과 창의적인 제품으로 승부를 걸었으며, 스타마케팅이나 신선한 감각의 광고를 통한 이슈화로 성공했다.중국 명초에 유기가 지은 ‘욱리자’ 천리마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욱리자의 말이 훌륭한 망아지 한 마리를 낳았다. 이웃 사람들이 그에게 “이놈은 틀림없는 천리마일세. 이놈을 꼭 임금 마구간으로 보내게”라고 일러주었다. 욱리자는 너무나도 기뻐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였다. 류대창명리연구자 그는 수도로 망아지를 데리고 간 뒤, 임금에게 바치는 절차를 밟아서 임금 말을 관리하는 관청에 들여보내 놓았다. 얼마 후 임금은 자기의 말을 관리하는 책임자에게 각 지방에서 바친 특산물을 조사해 보라고 하였다. 책임자가 특산물 대장을 열어서 조사해 본 뒤, 욱리자가 보내준 망아지에 대하여 임금에게 “이 놈은 확실히 훌륭한 말입니다만, 기주(冀州)에서 태어난 말이 아니라서 임금님의 말 대장에 올릴 수 없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리고는 그 말을 궁궐 밖에다 두고 길렀다.‘욱리자’라는 책은 원나라 말년 변혁기의 시대상황을 담고 있다. 사회현실에 대한 폭로와 통치자에 대한 질책, 그리고 백성의 고통에 대한 동정 등을 잘 나타낸다. 재능과 포부에도 불구하고 극복할 수 없었던 정치적 실의에 따른 분함과 원망의 정서를 나타낸다. 인사등용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 지역 출신이나 학교가 아니기에 천대를 받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인간의 삶이란 가문이나 전통이나 혈통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행위로 만들어가는 각자의 창조물이다. 그러므로 일상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을 새롭게 만들고 변화를 유발한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경멸하는가.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떤 감정을 품는가. 이러한 일상의 행동이 삶의 방식이 나를 만들고 끊임없이 개조한다. 마음과 인간성뿐만 아니라, 육체마저도 변화시킨다. 현재 나는 그 결과이며, 내일의 나는 지금부터 행하는 하나하나의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2023-06-21

붉은 눈(目)

윤명희 수필가 모처럼만에 들린 당숙 댁이다.골목에 들어서자 지붕 밑에 빨간 불빛이 깜빡거린다. 마당에도 낯선 불빛이 여기저기서 노려보고 있다.두 노인네가 사는 시골 농가주택에 CCTV를? 요즘은 멀리 있는 자식들이 부모의 상황을 살피려 설치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이 댁에 아직은 그런 게 필요할 리가 없다.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과상 앞에 앉았던 당숙과 집안 시동생들이 반색을 한다. 종조모의 제사를 핑계로 모였다.늦게 도착한 나는 싱크대 앞으로 먼저 갔다. 반백이신 당숙모가 제사 준비 다 됐으니 그냥 앉아서 떡이라도 먹으라며 등을 민다.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 앉으며 밖에 왠 CCTV냐고 물었다.아이고, 말도 마라. 우리 동네에 잡범이 있데이. 비닐하우스 안에 고추 말리는 것도 가져가고, 감 말린다고 걸어 둔 것도 한 줄 없어지고, 연장은 물론이고 뭐가 자꾸 없어지는 거라. 가져가면 한 자루를 가져가지 한 됫박씩, 몇 개씩 없어지는 거 보이 동네 사람 같어. 잃어버리고 남 의심하는 내가 죄인이지 누구를 탓하겠나 싶어서 갈무리를 잘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더라고.제 딴에는 표시 안 나게 하느라고 조금씩 훔쳐가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매일 보고 만지는 건데 그걸 모르겠나. 촌 살림살이가 아파트처럼 자물쇠를 채울 수가 있나 말이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데 뭐라 하겠노. 한 번은 노인정에 가서 들으라는 듯이 우리 동네에 도둑년 있다고 소리를 질러댔지. 그랬더니만 여기저기서 잃어버린 얘기를 하더라고. 우리 집만 그런 게 아이라. 누구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까지 없어졌다고 하는데 기가 막히재.더 어이가 없는 건 된장 담아 놓은 장 단지까지 손을 대네. 매 해마다 농사지은 콩으로 내 손으로 메주 만들어서 장담아 놨는데 메주 몇 장인지 모르겠나. 장 뜨려고 단지 뚜껑 열어보이 쑥 들어간 기라.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어 꺼내보이 딱 2장이 비더라고. 가져간 메주야 어쩌겠나 만서도 손을 깨끗하게 씻고 물기 없이 잘 닦고 건져갔겠나 싶은 게 찝찝해서 장을 못 먹겠더라고.속이 상해서 친구한테 하소연을 했더만 CCTV 달아라하데. 가짜 달면 안 된다, 누굴 바보로 아나. 빨간 불 봤재? CCTV가 낮에는 가짠지 진짠지 모르는데 밤에 보마 다 안다 아이가. 하나는 장독대 비추고 하나는 비닐하우스, 현관, 마당, 창고 집 구석구석 다 보이라고 달아 놨디라. 밭일 끝내고 들어오면 먼저 누가 왔다 갔는지 확인하는기 일이라. 이상하재 우째 알고 그 다음부터는 한 번도 안 없어지더라고. 심증 가는 그 사람이 한 번은 올 줄 알았거든.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당숙모가 박장대소를 한다.아이고, 그게 말이다. 도둑을 잡는 게 아이라 나를 잡는다 잡아. 밭에 일하고 오다보마 소변이 급할 때가 있재. 요실금기도 있는데 언제 장화 벗고 수돗가에서 발 씻고 잠가 놓은 현관문 열고 화장실까지 가노 말이다. 마당에 호미 던져놓고 퍼뜩 저기 텃밭 옆에 궁디 까고 앉았재. 오줌 누다 돌아보이 저 눈이 내를 보고 있는 기라. 엄머야 싶어 엉거주춤 바지 끌어올리고 일어서기는 했는데 어디로 가야 될지를 모르겠더라. 아무리 돌아봐도 숨을 데라고는 현관문 열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더라고. 뻘건 눈이 내를 따라 들어오는 것 같아 얼른 문을 닫았지. 그 다음부터는 우리 집 마당이 자유롭지가 않네.사촌동서가 CCTV 확인은 아재와 아지매가 하는데 뭔 상관이냐고 물었다.그게 두 아들 휴대폰에 연결되어 있으이 문제 아이라. 우리가 몇 시에 밭에 나가서 언제 집에 오는지 다 보고 있다는 걸 아는데.우리는 육촌시동생들의 옆구리를 찌르며 엄마 궁디 봤냐고 개구지게 물었다. 확인을 매일 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당숙모의 작은 아들이 폰을 귀에 대고 바깥으로 나가고, 큰 아들은 TV 볼륨을 높인다.

2023-06-21

대통령 공격에 올인하는 이준석 실체는?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주(15일) KBS 시사토론 프로그램 ‘더 라이브’를 시청하면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정체성이 궁금해졌다.이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에서 젊은 당원들과 2030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로 36세에 제1야당 당수로 선출된 인물이다. 그는 취임 후 국민의힘을 디지털정당으로 변신시켜 기업처럼 효율성과 효과성을 추구했으며, 이에 호응해 각 시·도당에서는 온라인 입당신청자가 쇄도했다. 나는 당시 이준석이 권위주의와 부패에 찌든 낡은 정치를 바꿀 수 있는 인물로 평가했다.험한 정치적 굴곡을 거치긴 했지만, 시사토론회에서 본 그는 2년여만에 너무 변해 있었다. 최근 시청료 분리징수 문제로 윤석열 정부에 각을 세우는 KBS에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와 같이 출연한 것도 실망스러웠지만, 모든 의제를 ‘윤석열 비판 버전’으로 맞추는 그의 발언 태도에 놀랐다.예를들면, 윤석열 대통령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두고 “위안스카이를 떠올린다는 사람이 많다”고 한 데 대한 그의 코멘트다. 그는 “싱하이밍이 위안스카이라면 대통령은 뭐냐, 구한말 혼란 속에서 외교적으로 갈팡질팡한 고종을 떠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을 고종에 비유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나는 싱 대사가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 일행을 대사관저에 초청해놓고 한 언행이 조선 말 청나라 총독으로 행세한 위안스카이(원세개)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고 본다.싱 대사는 이 대표를 앉혀 놓고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고 베팅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누가 들어도 위협성 발언이다.이에대해 이 대표가 한마디 반박을 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다. 오히려 일행 중에는 싱 대사의 발언을 받아 적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누가 고종인가? 윤석열인가. 이재명인가.조선왕조실록에는 1886년(고종 23) 7월29일 원세개가 의정부에 보낸 ‘조선 정세를 논함’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싱 대사가 이재명 대표에게 훈계조로 한 말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 ‘조선은 역량을 타산해보면 약점만 나타나서 자주 국가로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강국의 보호도 받는 데가 없기 때문에 결코 자기 스스로 보존하기 어려운 것은 천하가 다 아는 것이다.조선은 본래 중국에 속해 있었는데, 지금 중국을 버리고 다른 데로 향하려 한다면 이것은 어린아이가 부모에게서 떨어져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으려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조선을 중국이 돌보는 아이에 비유한 것이다.고종은 이 글을 읽고 ‘공의 말은 참으로 눈을 틔워 주고 귀를 열어주었으니 약도 침도 이만은 못하다’며 아부를 했다.그 후 세월이 140여년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를 대하는 중국의 태도는 바뀐 게 없다.지난 문재인 정권과는 달리 중국을 상대로 당당한 외교를 실천하고 있는 윤 대통령을 나라를 망하게 한 고종에 비유하는 이준석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2023-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