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외식물가가 문제야”

우정구 논설위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 영향을 받아 큰 폭으로 오르던 국내 소비자 물가가 조금씩 안정세를 잡아가는 모양새다.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이와 관련, “6∼7월 쯤에는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낮아질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이와 함께 라면값 인상 문제를 거론하며 “지난해 9-10월 기업들이 국제 밀가격 상승을 이유로 라면값을 크게 인상했는데, 최근 밀가격이 절반 정도 떨어졌으니 가격도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제 밀가격이 떨어진 만큼 소비자 가격에 반영해 달라는 뜻이다.관련업계도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은 없으나 추 부총리의 언급이 부담스러워 가격 인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추 부총리가 물가와 관련해 굳이 라면값을 언급한 것은 라면이 대표 서민음식으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그러나 물가가 안정세에 들어갈 것 같다는 추 총리의 전망에도 국내 외식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이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3.3% 올랐는데 반해 외식물가는 7% 가까이 뛰었다. 서민들이 즐겨 찾는 냉면, 자장면, 김밥 등은 지난 5년동안 40%가 올랐다.라면 한그릇 4천500원, 김밥은 한줄에 5천원을 육박한다. 여름철 대중음식인 냉면은 1만원을 훌쩍 넘었다. 1만원이하 식사가 사라졌다는 말과 점심값이 급등했다는 뜻의 런치플레이션이 유행하는 시대다. 점심 먹고 커피 한잔하면 2∼3만원의 금액이 사라질 판이니 직장인에게 점심은 매우 부담스런 일이 됐다.따지고 보면 외식물가 상승도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다. 정부의 압박으로 라면값이 내리면 외식물가도 잡힐까. 그렇지 않다. 외식물가를 잡을 정부의 특단 대책도 나와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6-20

전세 사기 전성시대

올해 초 ‘빌라왕’ 전세 사기 사건으로 세상이 뒤숭숭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의 등기부등본을 열람해봤다. 아연실색했다. 집은 가압류된 상태고, 임대인 앞으로 무려 48억9천만 원의 채권이 있었다. 임차인들에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해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대신 변제한 금액이다. 전화로 자초지종을 물었다. 소유 주택이 170여 채나 된다고 했다. 전세계약이 만료되어도 보증금을 반환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집이 계약돼 자꾸 늘어났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명의만 빌려준 ‘바지 임대업자’인 듯했다. 뒤에 전문 사기 세력이 있는, 전형적인 전세 사기 수법이었다.계약 만료까지 1년도 더 남았지만 보증금을 다 날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대처했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인 친구에게 전세금 반환 소송을 위임했다. 소송 과정에서 임대인은 연락이 두절됐는데, 아마 구속 수감되었거나 잠적해버린 것 같다. 극단적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고 들었다. 부디 그건 아니길 바란다. 어찌 보면 그 사람도 피해자다. 적게는 수십 채, 많게는 수백 채의 빌라를 보유한 악성 임대인들 중에는 경제력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나 노숙자, 무직자가 많다.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명의를 빌려줬다가 사기범이 된 것이다. 탐욕도 죄고, 무지도 죄라지만 그 사람들 처지도 참 안됐다.1월부터 진행된 소송은 다섯 달 걸려 지난주에 승소 판결이 났다. 이제 이 집을 강제경매에 넘긴 후 내가 직접 낙찰 받으려 한다. 경매 낙찰까지 또 몇 달이 걸릴 것이고, 낙찰 받은 후에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기존의 전세대출을 갚아야 한다. 아직 복잡한 절차들이 많이 남아 있고, 모든 게 순조롭지만은 않을 테지만 ‘내 집 마련’의 희망을 가져 본다. 내 경우는 그래도 좀 낫다. 집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많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2년만 살 생각이었던 집을 울며 겨자 먹기로 낙찰 받는다.얼마 전 전세 사기 특별법도 시행이 돼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겉으로는 활달한 척했지만 사실 이 일로 상반기 내내 골치 아팠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논문을 쓰는 것도, 시와 평론을 발표하는 것도 다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간신히 여름까지 잘 왔다. 다시금 ‘존버’(끝까지 버티는 정신을 뜻하는 신조어)의 위대함을 본다. 어떻게든 버티고 발버둥 쳤더니 살아날 구멍이 생겼다.나에겐 ‘불행 중 다행’이 작용했지만, ‘불행 중 비극’으로, 전세 사기를 당해 스스로 삶을 저버린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슬프고, 화가 난다. 손쓸 새도 없이 집이 이미 경매에 넘어가고, 낙찰자가 나와도 보증금에서 국세, 지방세, 은행 등 선순위 채권을 떼고 나면 피해자가 돌려받는 건 푼돈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건지지 못하고 신용불량자가 된 채 거리로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들의 경우가 대개 그러하다. 그러니 전세 사기 특별법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임차인들의 전세금을 보호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진작 마련됐어야 한다. 특별법이 시행돼 이제는 임차인의 보증금이 최우선순위로 변제되고, 피해자가 원한다면 주택의 경매를 유예하거나 우선 낙찰 받을 수도 있다. 그밖에도 생계 지원이나 저금리대출 등 여러 피해 보상 대책이 마련이 되었지만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임대인은 돈을 받고 임차인에게 집을 빌려준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임차인은 집을 비우고 임대인은 돈을 돌려준다. 이게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이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을 만큼 대한민국이 후진적인 나라인가? 전세 사기가 판을 치게 된 것은 제도가 미비한 탓이다. 제도에는 허점이 많고, 부동산 업자나 관련 업계 종사자가 아니면 쉽게 알 수 없을 만큼 내용이나 용어가 어려워 사기꾼들이 악용하기 좋다. 처벌도 가볍다. 타인의 재산을 갈취해 삶을 망가뜨린 자들이다. 중형에 처하는 게 마땅하다.며칠 전,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에 가 전세사기피해자 등록 신청서를 제출하고 왔다. 평일 오전인데도 상담 창구에 긴 줄이 서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이 센터를 찾는다고 한다.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우스갯말이 있다. “이게 나라냐?”

2023-06-20

일상을 잘 가꾸기

5박 6일의 짧은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첫 해외여행이라 얼마나 새롭고 설레던 게 많았는지 모른다. 일본 오사카 지역은 인천 공항에서 2시간 이면 도착하는 곳이라 사실 한국과 많이 다를까? 하는 염려가 있었다. 예상대로 크게 한국과 다른 점은 없었으나 그래도 처음 가는 낯선 도시이기에 호기심으로 부푼 마음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여행을 하는 내내 스스로가 정말 작은 사람임을 느꼈다. 수많은 인파 속 다양한 인종 사이의 나는 너무나 작고 사소한 존재였고, 그 사실이 굉장한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일상을 억누르고 있던 중압감에서 내려와 낯선 도시를 유유히 걸어 다니는 관광객의 거취란 얼마나 자유롭던지. 당장 해치워야 할 업무도, 크고 작은 사소한 집안일에서부터 멀리 벗어나 마음대로 먹고 원하는 곳으로 느긋이 걷는 하루는 너무나 만족스러웠다.하루에 2만보를 넘게 걸으며 지역의 유명 관광 스팟이나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거리를 걸어다니며, 오랜 시간 그곳을 지켰을 터와 그곳에서 일상을 일구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던 기억, 또는 깊은 숲속의 절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빽빽이 들어찬 푸른 숲속을 자유로이 만끽했던 장면들은 지금까지도 너무나 좋은 기억이 되고 있다.같이 여행을 떠난 이와도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겼다. 거대한 자연 풍경 앞에서 우리는 정말 작아졌고, 그래서 서로를 놓지 않기 위해 손을 꼭 잡았다. 수많은 대화 보다 마음 깊이 자리하는 눈빛과 말들로 말을 대신했고 가장 좋은 것은 서로에게 건네며 관계에 더 많은 신뢰를 차곡차곡 쌓았다.예상했던대로, 과거의 후회에 머무르지 않는 여행이 아닌 계속해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여행이었다. 평범한 일상에선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이 귀중한 경험을, 일상에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갖고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여행지에서의 좋은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을 하다가도 중간 중간 여행지에서 찍은 동영상과 사진을 들여다본다거나 여행지에서 사온 기념품을 자꾸만 열어보거나 아직도 여행지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금 꿈으로 꾸고 있다.더군다나 배달 음식을 잘못 먹고선 장염에 걸리는 바람에 일주일 내내 고생을 하고 있다. 마치 감기 기운을 앓고 있는 것처럼 일주일 내내 아픈 몸을 겨우 이끌고 있다. 그러니 더더욱 총명한 눈을 반짝이며 가볍게 걷던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는 수밖에.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여행지에서의 특별한 삶에서 다시금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꿈결 같던 여행지에서의 자유로움을 벗어나기란 참 어렵다. 내팽겨 쳤던 모든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있으니 부담감이 배로 크다. 각종 공과금 납부, 쓰레기 버리기, 밀린 빨래 등등. 자유를 외쳤던 것에서 다시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한다는 건 피로감이 상당하다.일상은 많은 공을 필요로 한다.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그 안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무수히 많은 노력이 녹아 있다. 자그마한 것 하나 놓쳐도 흐트러지기 쉬운 일상이니까, 이젠 여행의 낭만에서 빠져 나와 다시금 일상을 보살펴야 한다.수납함에 잘 개어 있는 수건들, 반듯이 정리된 각 종 생활용품들, 깨끗하게 잘 말려 있는 식기, 햇빛에 잘 말려 둔 여름 이불 까지. 아무리 고단할지라도 집안을 쓸고 닦으며 정리하다보면 어느덧 다시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고 깔끔히 정돈된다.가볍게 떠나 새로움으로 가득한 여행을 하기 전까진 나의 삶을, 하루의 일과를 방치하고 홀대해선 안 된다. 나를 먹이고 나를 잘 재우며 평범한 일상을 가꾸고 보살펴야한다. 또 훌쩍 떠날 수 있는 현실적인 소비와 준비가 필요한 법이니까.그러니 내일부턴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원래 일하던 일을 열심히 해내고 성과를 보이고 좋은 글을 읽고 또 쓰면서 더 단단한 일상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나는 조만간 또 떠날 것이고, 다음 여행은 조금 더 현지인의 삶으로 녹아들어 그 나라와 문화를 조금 더 여유롭게 여러 방면으로 깊이 느낄 것이니까.

2023-06-20

無信不立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재잘재잘 새들은 노래하고 뭉게뭉게 구름꽃이 피어나며 여름날이 열리고 있다. 연중 낮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가 오늘이고 보면 벌써 반년이 마감되는 시점이다. 때이른 더위 탓인지 후끈한 대지의 열기 못지 않게 비지땀을 흘리며 지역사회를 위한 도움의 손길로 분주하고 하루가 모자라는 사람들이 있다. 포스코의 연중 봉사활동에 집중하며 다양한 나눔활동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얘기다.이른바 ‘글로벌 모범시민위크’는 국내외 포스코그룹 임직원이 동시다발로 봉사활동을 펼치는 특별봉사주간이다. 지난 9일~16일까지 8일간 진행된 ‘2023 글로벌 모범시민 위크’는 포스코 직원 3천여명과 31개 협력사 1천여명 등이 포항시 전역 124곳을 방문해 다문화가정 사진촬영, 독거어르신 나들이, 자매마을 취약지역 개선 등의 활동으로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이 같은 특별봉사활동은 포스코봉사단의 창단일에 즈음해 그룹 임직원이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나눔·돌봄 활동과 지역생태 보전활동 등을 펼치는 특별봉사주간으로 20년째 매년 진행해 왔다. 지역상생과 협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물론 이 기간뿐만 아니라 주말과 휴일을 활용해 일상 속에서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또한 직원들이 지역사회에 관심을 갖고 지역사회 문제를 찾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직접 제안·실행하는 ‘체인지 마이 타운’ 사업 등과 연계해 지역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맞춤형 봉사활동으로 꾸준한 나눔과 베풂의 온정을 전하고 있다.그런데 이와 같은 포스코의 지역사회와의 상생협력, 동반성장의 노력과 활동에도 불구하고 최근 포스코 본사 앞에서는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집회와 궐기대회가 열려 개탄스럽기만 하다. 포스코지주사 미래기술연구원 포항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와 경찰 추산 시민 1천500여 명이 참여해 포스코를 상징하는 파란 근무복의 대역 민간인의 볼기를 치고 망나니 칼을 휘두르며 인형의 코를 자르는 등의 과격한 시위 퍼포먼스는 황당하다못해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현실적인 범위 안에서 범대위와의 합의사항이 이행되고 있음에도 대낮에 버젓이 포항시민인 포스코 직원들의 자긍심을 짓밟는 행태는 묵과하기 어려울만큼 도를 넘은 것 같다.‘믿음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無信不立)’는 말은 정치나 사회,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즉, 신뢰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포스코와 포항시가 작년에 명시적으로 합의한 대의가 엄연히 있고 신뢰와 소통을 기반으로 하나씩 단계적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난데없이 합의파기라도 된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선동과 자극을 일삼는 처사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생명을 찬미하는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소리가 자연의 화음으로 들리는 것처럼, 성숙과 인내의 마음으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미덕이 필요한 때다. 정성과 노력의 손길로 봉사의 꽃을 피워나가듯이, 합리적인 범주에서 믿음과 실행을 바탕으로 한 공존공생의 꽃이 피어나기를 염원해 본다.

2023-06-20

빅데이터 시대 교수의 역할

김정현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대한민국의 수많은 대학교는 오랫동안 주입식 교육방식을 채택해 왔다.이러한 교육방식에서 교수의 역할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었고 학생들은 전달되는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필자가 경험한 대한민국에서의 학사, 석사 과정에서의 수업들도 대부분 교수가 수업 시간에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은 전달된 지식을 외우고 시험을 통해 성적을 얻는 과정을 거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해당 교육방식은 지식의 전달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적어도 필자에게는 창의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대한민국에서 경험한 단기적인 정보의 습득과 암기에 초점을 둔 교육방식과는 다르게 필자가 경험한 미국 박사과정에서의 교육방식은 토론 위주의 수업이었다. 학생들은 수업에서 활발한 토론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처음에는 토론식 교육방식이 어색하여 수많은 다양한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되었지만, 돌이켜보면 토론 위주의 수업을 통해 창의적인 사고, 의사소통 방법, 그리고 문제 해결 접근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이러한 교육방식에서 교수의 역할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이 해당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학생들을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창의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었다.빅데이터의 출현과 함께 현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교육 분야 또한 상당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의 전통적인 교육방식과는 달리 이제는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직접 지식을 전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다양한 온라인(Online) 교육 및 강의 자료가 흘러나오고 있다. 가령, 미국 보스턴(Boston)에 있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양질의 교육을 전 세계에 공급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오픈 코스웨어(Open Course Ware)가 그러하다. 이는 곧 강의실 안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교수의 역할은 언제든 보다 좋은 교육 매체에 의해 대체될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빅데이터 시대 교수의 역할은 무엇일까.우선, 현대 시대의 흐름 속에서 교수들은 적극적으로 변화에 적응하고 흐름에 적합한 교육방식을 지속해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주입식 교육방식보다는 토론식 교육방식을 통해 학생들이 강의실 안에서 배운 개념들을 강의실 밖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실제 산업 현장의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프로젝트(Project) 기반의 수업을 설계함에 따라 학생들이 산업 현장에서 성공적으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데이터(Data) 사용의 윤리적인 책임을 가르치는 것 또한 빅데이터 시대 교수의 역할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2023-06-20

백 년 전의 사랑, 연애의 시대에 바침

지금 우리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어린 시절 사랑이란 빠질 수밖에 없는 감정의 상태이니, 그것이 지금 사라져버렸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각각의 인간의 한계를 넘어 저 바깥에 존재하는 어떤 대상에 대한 마음의 급격한 움직임으로서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 청년들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누군가는 각자 생존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한다. 학생들의 삶은 미래의 더 나은 생존을 준비하느라, 지금 여기에 있지 않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어찌 사랑 같은 가장 현재적인 감정에 빠질 것인가. 경쟁의 시대에, 생존을 고민하는 이들의 고민은 지금 우리 사회가 귀기울여야만 하는 것이다.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우리 모두가 빠져 있던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한국에서 근대 문학의 시작은 바로 사랑으로부터였다. 1920년대를 연애의 시대로 규정하는 연구자가 여럿 존재할 정도로, 사랑과 연애는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는 것이었다. 유명인들의 연애가 입에 오르내리고, 연애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누구나 연애편지 모음집을 한 권 씩은 서가에 몰래 꽂아두고 보던 시대였다.19세기 말부터 불어오기 시작한 제국주의의 광풍에 휘말려 제국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 어떻게 사랑이 그렇게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었을까. 흥미롭게도 그 시대 역시 경쟁의 시대였다. 진화하지 못하면 도태한다는 진화론적 상상력의 공포가 사회를 덮쳤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다른 국가들에 대한 끔찍한 폭력을 저지른 배경도 바로 밑도 끝도 없는 경쟁과 소멸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겠는가.하지만, 지금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을 생존과 경쟁의 시대였던 백 년 전 우리가 빠져 있던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김동인이 ‘약한 자의 슬픔’에서 보여준 것은 삐뚤어진 사랑이었고, 현진건이 ‘희생화’에서 보여준 것은 사랑에 빠진 모습을 바라보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었고, 노자영이 ‘반항’에서 보여준 것은 가정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정적 혁명을 꾀하며 집 바깥으로 뛰쳐나갔던 여성의 사랑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1920년대는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김동인이 만든 최초의 근대문학잡지 ‘창조’에 혜성과 같이 등장했던 임노월이라는 작가는, 지금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이 즈음 가장 독특한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의 곡 ‘사의 찬미’가 나오기 전에, 같은 이름의 시를 쓴 것도 이 임노월이었다. ‘창조’가 폐간되고 발간된 ‘영대’에 그는 이 사랑의 시대에 강렬한 사랑의 욕망을 표현했던 ‘악마의 사랑’이라는 소설을 썼다.이 ‘악마의 사랑’은 자신과 어릴 때 혼인한 정순이라는 여성과, 새롭게 알게 된 영희라는 여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에 대해 쓴 작품이다. 어쩌면 전형적이다못해 뻔하기까지 한 삼각관계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짧은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자기를 덮쳐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기록일 것이다. 그것은 숨쉬는 것처럼 당연했던 기존의 관계를 송두리째 뒤흔든다.지금에 와서 백 년 전 사랑에 목매던 소설을 읽는 것은 조금 미묘하다. ‘악마’의 사랑이란 제목조차 과장처럼 여겨진다. 분명, 우리에게 사랑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 아닌 시대에,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조금은 그 시대가 그리워진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3-06-19

내 아이가 태어났다! 조선시대 아기 탄생의 순간

장흥효의 ‘경당일기’. /선인의 일상생활, 일기(https://diary.ugyo.net/) 16~17세기를 살다갔던 안동 출신의 선비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1564~1633)는 자신의 일기에서 외손자가 태어나는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시간은 1619년(광해군11) 10월 22일이었다. “이른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니 딸이 이미 아기를 낳았다. 어제 미시(未時)에 외손자가 태어났으니, 어떤 경사가 이와 같겠는가? 큰 추위가 지극하면 반드시 따뜻한 봄날이 있다고 한 것이 진실로 빈말이 아니다.”(장흥효의 ‘경당일기’는 그가 51세 되던 1614년(광해군6)부터 62세 되던 1625년(인조3)까지 11년 6개월간의 기록이 담겨 있다.) 이날 외손자를 출산한 딸은 ‘음식디미방’의 저자로 잘 알려진 장씨부인으로 여자로서는 드물게 ‘장계향’이라는 이름이 전해진다. 그리고 태어난 외손자는 ‘홍범연의(洪範衍義)’의 공동 저자인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1619~1672)이다. 동생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과 함께 이 책을 저술했다.장흥효의 첫 번째 아내 안동권씨는 딸 하나만 낳고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녀가 오랫동안 병을 앓았기에 장흥효와 그 딸(장씨부인)은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병이 심해 물고기를 먹이려고 물고기를 잡기도 했고, 병을 걱정하느라 꿈자리가 뒤숭숭한 날도 있었으며, 병을 앓는 아내를 보며 애타는 심정으로 보낸 날도 있었다. 딸이 외손자를 낳았던 그 시간은 아내의 상례를 치르던 시기였다. 한 달 전 9월 25일에 그의 아내가 오랜 병환 끝에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장흥효는 일기에서 “이 날 술시(戌時)에 아내의 병을 구해내지 못하였으니, 애통한 슬픔을 어찌하리요! 망극함을 어찌하리요! 하늘에 하소연하여도 아득하여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네. 외로운 딸과 함께 가슴치며 오래도록 곡하니, 오장(五臟)이 끊어지는 듯하다. 꿈인가! 생시인가!”라고 했다. 최은주한국국학진흥원 국학자료팀장 그리고 곧 상례 절차에 돌입했는데, 그 주관을 사위 이시명(李時明)에게 맡겼다. 그렇게 아내의 상례를 치르며 친지들의 조문을 받던 날들이었다. 이때의 일기는 대부분 누가 조문했고 부조했는지에 대한 기록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마침 매부의 대상(大祥)이 되었기에 참석차 그곳에 다녀오느라 잠시 자리를 비웠던 날, 딸아이가 외손자를 출산한 것이었다. 장흥효가 딸의 출산을 두고 “큰 추위가 지극하면 반드시 따뜻한 봄날이 있다고 한 것이 진실로 빈말이 아니다.”라고 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아내가 죽고 상중(喪中)이던 그 시간은 그에게 그야말로 혹독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끝에서 외손자의 탄생을 맞이했으니 큰 추위가 가고 따뜻한 봄날이 온 것 같은 느낌이 당연했을 것이다. 평범한 표현이지만 그의 절절한 심정이 그대로 와 닿을 만큼 드러나 있다.자식이 귀하던 그에게 외손자의 출생은 또 다른 의미의 기쁨이었다. 그는 다음날 방문했던 조문객에게 예를 이루지 못했다고 하며, 그 이유를 빈소가 산실(産室)과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에 혹시 불결해질까 모든 일용에 행하는 예를 모두 폐했기 때문이라고 직접 기록했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 아이의 건강을 우선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자손이 귀했으므로 자연스레 더욱 조심하고 더욱 신경을 쏟았을 것이다. 10월 24일에는 “손자가 태어난 지 겨우 4일인데, 울음소리가 한 살 된 아이와 다름이 없다”라고 기록했다. 세심하게 지켜보는 외할아버지 장흥효의 모습과 4일된 아기의 울음소리가 교차되는 장면이다. 아기의 우렁찬 울음을 들으며 장흥효는 내심 안심하면서 동시에 그 아이가 특별할 것이라는 기대를 은연중에 담아냈다. 그리고 덧붙이길 “딸이 아기를 낳은 뒤 조금 불평한 징후가 있었는데, 점차 평상을 회복하였다.”라고 했다. 어머니의 상례 중에 출산하느라 애쓴 딸의 건강도 챙기는 모습이 인상 깊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장흥효는 55세에 첫째 부인을 잃었다. 그리고 그녀의 일년상을 마쳤을 때 둘째 부인을 맞이했는데, 무남독녀였던 딸이 아버지의 후사가 없는 것을 걱정해 혼인을 서둘렀기 때문이었다. 일기에는 둘째부인의 임신과 출산의 기록도 담겨 있다. 1622년 9월 26일의 일기에서 “부인이 임신해 사람들이 모두 축하했었는데, 이 날 10달을 채우지 못하고 여자 아이를 낳으니 사람들이 불안하게 생각했다.”라는 기록이 보이는데, 29일의 일기에서 “아이를 낳고도 기르지 못하니 애통함을 어찌 다 표현하겠는가. 잉태하지 않는 것이 나을 뻔하였다. 그러나 화와 복이 찾아올 때는 순순히 천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듬해 윤10월 8일 둘째 부인이 다시 딸을 낳았다. 장흥효는 이날의 일기에서 “해시(亥時)에 딸이 태어났다. 아들 낳기를 바라는 마음이 극진했는데 아들을 낳지 못했으니, 속마음이 어떠하겠는가. 그래도 뒷날을 기대하며 허전한 마음을 위로할 뿐이다.”라고 했다. 장흥효는 예순을 넘겨 아들 셋을 얻었다. 그가 숨을 거둘 때 맏이 나이가 겨우 여덟 살이었다고 한다. 어린 동생들을 돌보았던 것은 딸 장씨부인이었다.조선 시대에도 아기의 탄생은 소중하고 또 특별했다. 자손이 귀하거나 산모가 건강하지 못할 때 그것은 더욱 간절했다. 인구 절벽의 시대다. 개인의 사정을 넘어 사회적으로 아기의 탄생이 더욱 귀해지는 시기이다.

2023-06-19

‘중수도 시스템’

남광현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국가가뭄정보포털(www.droug ht.go.kr)에 들어가 보면 2023년 6월 12일 현재 가뭄 기초지자체는 전체 167개 중 47개(28.1%)인데, 대구광역시는 전역(8개 구·군), 경상북도는 11개로 전국의 40%에 육박한다. 그리고 대구·경북의 가뭄 상태는 7월과 8월에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과거 2018년에도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운문댐 저수량이 고갈되어 금호강에 비상급수 시설을 설치하였고, 대구광역시 전 지역이 최근 광주광역시가 처한 제한 급수 시행 직전 역대급 가뭄 수준에 직면하였었다.지난 10년간(2011~2020년) 낙동강유역에서 발생한 수질사고는 144건으로 연평균 14건 이상 발생하고 있으며, 조류경보 발령일수(강정고령 기준)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는 중·상류 지역에 대규모 공단과 도시가 있어 오염원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상황이 이러함에도 낙동강유역에서 물이용현황을 살펴보면 2018년 기준 연간 이용량 110.3억t 가운데 댐 53.3억t, 하천수 44.8억t, 지하수 7.2억t 등 원수 그대로의 이용량이 총 이용량의 95.4%로 대부분이다.반면에 빗물 0.01억t, ‘중수도’ 0.8억t, 그리고 하·폐수처리수재이용 4.3억t으로 물재이용 총량은 총 이용량의 4.6%에 불과하다.이러한 낮은 물 재이용 수준은 기후변화로 인해 점점 심각해지는 가뭄과 수질 악화에 대응한 맑은 물의 안정적인 확보를 더욱 어렵게 할 수밖에 없다. 물의 가치는 생명의 근원으로서 필수적이며, 산업과 경제의 핵심 자원으로 작용한다. 물의 부족과 오염은 건강, 식량 생산, 산업 생산 등을 위협한다.이러한 물의 가치를 인식하고 보호하여 효율적인 사용과 지속 가능한 관리를 실현해야 한다. 즉, 물의 가치를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결국 우리는 이러한 소중한 물의 가치 실현을 위해서도 물재이용률을 극대화 해야한다. 국민 물복지를 위해 실제 물의 값어치보다 극히 낮은 물값으로 공급된다고 물을 함부로 관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국가가 법으로 촉진하는 물재이용 수단은 빗물, ‘중수도’, 하·폐수처리수 3가지가 있다.이중에서 ‘중수도’는 일정 규모 이상의 숙박·목욕장업 시설물, 공장과 발전시설, 관광 및 산업단지, 택지 등 도시개발지역 등에서 하·폐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지 않고 자체 처리하여 재이용하는 상수도와 하수도의 중간 개념이다.‘중수도’는 대구광역시의 구도심과 같이 급격한 도시개발과 함께 합류식 하수도로 도심 말단 하수종말처리장으로 일거에 하수와 빗물을 내보낼 수밖에 없는 지역에서는 새로운 물순환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와 생활양식이 유사한 일본에서는 시청사 등 공공시설 위주로 ‘중수도’를 도입하여 원수 사용량은 60%, 하수종말처리량은 70% 수준까지 절감하고 있다.대구는 앞으로 공항, 군부대 및 노후 산업단지 등 엄청난 규모의 이전 후적지에 ‘중수도 시스템’ 도입을 통해 ‘2050 탄소중립 달성’, ‘맑은물 하이웨이 구축’과 ‘글로벌 물산업 허브도시 조성’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도모해야 한다.

2023-06-19

퀴어축제 충돌

홍석봉 대구지사장 퀴어(queer)의 사전적 의미는 ‘낯선’, ‘이상한’ 등의 뜻이다. 속어로는 동성애를 뜻한다. ‘게이’, ‘레즈비언’ 등을 아우를 수 있는 말로 사용된다.퀴어축제는 지난 1970년 6월 28일 미국 뉴욕에서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는 행사로 진행된 ‘게이프라이드’에서 시작됐다. 스톤월 항쟁은 1969년 미국 경찰이 게이바 ‘스톤월’을 습격하면서 발생한 시위를 말한다. 퀴어축제는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소수자로서 숨지 말고 당당하게 자긍심과 권리를 세상에 알리자는 취지로 축제를 열었다. 성 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이 참여한다. 한국에서도 지난 2000년 퀴어문화축제가 처음 시작된 이래 서울과 대구 등지에서 매년 열린다.하지만 퀴어축제는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극심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동성애자들이 대규모 퍼레이드를 펼치는 모습을 일반인과 어린이들이 보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대구 퀴어축제는 2009년 첫 시작돼 논란에도 불구, 15회째 개최되고 있다.홍준표 대구시장은 “성소수자의 권익도 중요하지만 성다수자의 권익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대구 퀴어축제를 반대했다. 기독교단체와 상인 등이 대구지법에 퀴어축제 집회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퀴어축제는 열렸고 집회를 막으려는 대구시 공무원과 집회를 보호하려는 경찰이 충돌했다. 초유의 사태다.성 소수자가 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자유를 즐기는 것은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하지만 광장이나 네거리에서, 타인들이 오해할만한 행동과 퍼포먼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국민들이 많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6-19

흔들리는 가치, 유동하는 이미지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전북 남원은 춘향전의 배경이 되는 고장이다. 남원에는 춘향의 영정을 모신 춘향사당이 있으며 매년 5월 5일에 이곳에서 춘향제가 열린다. 이당 김은호(1892∼1979)가 그린 기존 영정이 작가의 친일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르자 남원시는 새로운 춘향 영정을 제작하여 사당에 봉안하였다. 새 영정을 그린 김현철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남원 소재 여자고등학교에서 추천받은 7명의 여학생 모습을 참고했다고 밝혔다.문제는 새 영정이 공개된 이후, 영정 속 춘향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다’는 비난 여론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형평운동가 강상호가 그렸다고 알려진 최초의 춘향 영정, 그리고 김은호가 그린 기존 영정에 비해 새 영정 속 춘향의 얼굴은 17세라기엔 너무 나이 들어 보이고, ‘미인’도 아니라는 것이 비난의 요지다.근대문학 연구자로서는 이 논란에 대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든다. 우선 춘향이 상징하는 가치를 ‘열녀’, 즉 여성의 ‘정조’로 떠받드는 것이 현대사회에 적합한지부터가 의문이다. 두산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남원 춘향사당은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 숲 속”에 위치해 있으며 “열녀춘향사(烈女春香祠)”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고 한다. 춘향사당이 건립된 1931년에도 여성의 정조라는 가치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서양화가이자 문인인 나혜석은 1930년에 발표한 ‘이혼고백서’라는 글에서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조하는 조선사회를 이렇게 비판했다.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합니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이제 춘향제는 ‘열녀 춘향’이 아니라,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목숨 걸고 권력에 맞선 ‘멋지고 용감한 여성’ 춘향을 기리는 축제가 되어야하지 않을까?이런 맥락에서 새 춘향 영정은 여성의 주체성이라는 현대적 가치를 춘향이라는 기호에 잘 녹여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존의 춘향 이미지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새 영정을 낯설게 느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이미지에 대한 기호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며, 특히 ‘춘향전’같이 집단 기억이 관련되어 있는 경우 더욱 그렇다. 1865년, 여성의 나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가 공개되었을 때 남성 관객들이 분노하여 지팡이와 우산으로 그림을 훼손하려 했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가 ‘전통’, ‘고전’이라고 여기는 것은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거쳐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가치들이다. 새 영정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비교 대상으로 내세우는 기존의 춘향 영정들 또한 각각 1931년, 1939년에 봉안된 것으로, 여성에 대한 당대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물일 뿐이다. 호사가들에게 이번 논란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일 뿐이겠지만, 춘향이라는 대중적 아이콘(icon)의 이미지가 어떻게 표현되느냐의 문제는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낯선 것’과 ‘잘못된 것’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3-06-19

더 아름답기를

김규인수필가 멀리서 보면 매화를 닮았다는 매원(梅院)마을이 마을 단위 국가등록문화재로 처음으로 등록됐다. 집에 서당에 재실 뿐만 아니라 골목길에도 남은 사백여 년 삶의 자취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한다. 더구나 여기는 조선시대 하회마을,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 3대 양반촌이 아닌가.마을은 자연이 허락하는 대로 동·서로 길게 터를 잡았다. 중매를 중심으로 동쪽의 상매와 서쪽의 하매로 이루어진다. 문화재청은 “이는 구성원들이 갈라지면서 나아가는 시간적·공간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마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집도 길을 따라 늘어서고 신분에 따라 집의 규모가, 가족의 분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드나드는 길이 서로 다르다. 이는 신분과 시간에 따라 주거의 차이를 알아볼 수 있어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된다.문화재청은 “칠곡 매원마을은 근·현대기에 이뤄진 마을 영역의 확장, 생활방식 등이 다른 영남지방의 동족 마을과 구별되는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주며, 가옥과 재실, 서당, 마을 옛길, 문중 소유의 논과 옛터 등 역사성과 시대성을 갖춘 다양한 민속적 요소들이 있어 국가등록문화재로서의 등록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우리 문화재에 대한 가치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옥의 구조나 골목길은 우리들 삶의 방식을 말하고 재실에서는 삶의 뿌리를 다시 확인하고 서당에서는 자녀들에 대한 미래의 꿈을 키운다. 이러한 것이 오늘날 우리네 삶의 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우리네 문화가 세계를 향해 나아가 세계문화의 중심에 선 우리 문화의 자존심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한류가 수십 년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는 것은 오천 년 동안 쌓아 뿌리 깊은 문화가 있어서다. 오천 년간 쌓은 한국적인 것을 제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이번 문화재청의 매원마을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준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오천 년을 이어오며 굴곡진 삶을 살아온 삶의 자취를 다양한 각도에서 재조명하는 일은 한류의 지속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문화의 지속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여 남의 나라에 복속되거나 긴 식민 지배로 자신들의 문화를 잃은 사람들은 또 얼마인가. 그러하기에 매원마을 문화의 꽃이 더 아름다운 이유다.‘아름답다’를 살펴보면 조상들의 문화에 대한 통섭을 알 수 있다. ‘아름’은 앎의 뜻으로 썼으며 나나 개인을 나타내는 의미로도 사용하였다. 이 말은 나를 제대로 알 때 아름답다는 뜻으로 단어 하나에서도 사물의 깊은 이치를 담은 우리 선조들의 통섭을 읽는다. 그러하기에 모든 색을 품을 수 있는 흰색을 좋아하고 지형을 보고도 매화꽃을 피우고 오늘날 세계를 열광케 하는 한류의 거대한 물줄기를 만들었다.나를 제대로 알기에 문화의 꽃을 피우는 대한민국. 다시 삶의 향기 가득한 매원마을을 찾아낸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 한민족의 바닥에 깔린 깊은 문화의 샘을 끌어올리는 작업은 계속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문화 수준을 올리는 일이 세계의 문화를 한 단계 올리는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

2023-06-19

대통령이 나서도록 외교부는 무얼 했나

김진국 고문 겸손이 늘 좋은 것일까. 성경은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고 가르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아랫사람이 억지로 밀려 윗자리에 앉는다면 불편하지 않을까. 유교에서는 장유유서(長幼有序)라고 한다. 아무리 위아래가 없어진 세상이지만 격(格)을 무너뜨릴 때 생기는 문제도 적지 않다.각국 정상이 사진을 찍을 때도 서로 가운데 서려 한다. 이런 다툼을 피하려고 의전 순서를 정한다. 정부 내에서도 의전 서열이 있다.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 순이다. 나라 간 이런 다툼이 더 치열한 때가 있다. 자칫 국민 정서를 자극하고, 국내 정치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대사를 교환할 때도 신경전을 벌인다.나라의 비중과 대사의 레벨이 접촉 범위를 좌우한다. 도널드 그레그 주한 미국대사는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에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골프와 테니스를 자주 쳤다고 밝혔다. 그는 “나보다 골프 실력이 훨씬 뛰어났던 노 전 대통령이 실수할 때면 난 웃으면서 놀렸고, 노 전 대통령도 내가 실수하면 웃으면서 놀렸다”라면서 “진짜 친구처럼 잘 지냈다”라고 회상했다.당시 한 외교관은 이런 관계에 대해 필자에게 불만을 표시했었다. 외교부가 대사관과 여러 통로로 협상하고 있는데, 대사가 직접 대통령을 통해 해결해 버리니 외교부가 협상력을 잃어버리고, 대사관이 무시한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테니스를 좋아했다. 자주 만나면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는 게 쉽지 않다.주한미국대사는 오래전부터 예외적인 역할을 해왔다. 미군정을 거친 탓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수시로 주한 미국대사를 경무대로 불러들였다. 4·19혁명 때 월터 매카나기 대사는 경무대를 찾아가 이 전 대통령의 하야를 설득했다. 제임스 릴리 대사는 6월 항쟁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군 동원을 막았다.대통령이 나서 어려운 문제를 풀 때가 있다. 그렇지만, 자칫 잘못하면 우리 협상 카드는 다 보여주고, 무를 수도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질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라고 말해 한·일 관계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외환위기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2년 8월 독도를 직접 방문해 일본이 독도 문제를 노골적으로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때의 위안부 문제 합의를 번복해서 한·일 관계를 최악으로 몰아갔다. 얻은 게 없다. 국익보다는 정치적 이익을 노린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 돌이킬 수 없다.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8일 중국 대사관저를 방문했다. 그런데 싱하이밍(邢海明) 대사가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라며 윤석열 정부를 대놓고 비판해 파문이 일고 있다. 대사는 자기 정부 입장을 상대국에 설득해야 하는 자리다. 굳이 갑·을로 따지면 을의 위치다. 그런 대사가 주재국 정부를 대놓고 비판하는 일은 드물다. 이 대표가 찾아가 만난 것도 격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모두 양보해도 싱 대사의 발언에는 바로 반박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선 것도 의외다. 윤 대통령은 싱 대사를 위안스카이에게 비유하면서 “국민이 불쾌해한다”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중국 정부의‘적절한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싱 대사의 발언은 도저히 묵과할 수없다. 이 대표도 사과해야 옳다.그렇지만 싱 대사는 외교부의 국장과 과장 사이에 있는 심의관급이다. 아무리 대사가 정부 대표라고는 하나 제1정당 대표가 찾아가고, 국회의원이 ‘말씀’을 받아적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했나. 중국 정부가 싱 대사를 교체해도, 대통령 말을 무시해도, 모양이 안 서게 됐다. 이런 상황을 막아줄 참모는 없었나. 윤 대통령이 나설 때까지 외교부는 또 무얼 하고 있었나. 참 답답한 정부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6-18

“봉화양수발전소 유치 위해 모두 힘 모아주시길”

박현국 봉화군수 올 들어 봉화군의 최대 현안사업은 양수발전소 지역 유치이다. 현재 봉화군은 대대적인 양수발전소 유치전에 나서며 지역 곳곳에서 양수발전소 유치를 염원하는 현수막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한수원은 전국 양수발전 후보지를 사전조사하고 민간 입지선정위원회 평가를 거쳐 영양군을 최종 후보지로 선정, 중부발전 역시 봉화군과 양수발전소 조성 업무협약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지난 1월 산업부가 발표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년)’에 신규 양수발전소 1.75GW가 반영된 데 따른 것이다.산업부는 이달 중 사업자 선정 공고를 하고, 하반기에 사업 대상지를 확정할 전망이다.양수발전소는 상·하부 댐 사이에서 특정 시간대 잉여전력을 활용, 하부댐 물을 끌어올려 상부댐에 저장한 뒤 전력 공급이 부족한 시간에 수력발전하는 방식이다.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하는 필수 공존 설비이자 ‘친환경 전기 저장고’로 불린다.2019년 한차례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봉화군은 이번 정부의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서 발표에 따라 재도전에 나섰다.탈락 주요 원인인 주민 수용성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설명회와 홍보행사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주민들도 이에 호응해 각 기관과 단체, 기업 등 이름으로 마을마다 유치 희망 현수막을 내걸고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봉화군이 유치를 추진하는 양수발전소는 소천면 두음리와 남회룡리 일대에 총사업비 1조 원이 투입되는 500MW 규모의 양수발전소로 봉화군 유사 이래 최대규모의 국책사업이다.특히 봉화군은 상부와 하부에 각각 댐을 조성할 수 있는 지형과 낙차도 우수해 지난 2019년 한국수력원자력 자체 조사에서 타 후보지보다 양수발전소 건립에 최적지란 평가를 받은 바 있다.사업 대상지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양백지간에 위치하고 있어 산림자원이 풍부해 댐 건설 시 수자원 확보로 산림자원 전반의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농촌지역의 심각한 인구감소와 고령화 및 투자유치 어려움, 산업분야 취약 등 소멸위기에 처한 봉화군으로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규모 국책사업의 유치가 절실한 상황이다.특히 양수발전소가 완공되면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수발전소가 봉화에 들어서면 6천 명 이상의 직·간접적 고용효과와 1조 원 이상의 생산 효과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양수발전소 건설로 인한 상부댐 연결도로 등 지역밀착형 SOC 구축은 물론 지역주민의 환경 개선, 양수발전소 주변 환경을 활용한 새로운 관광자원과 산불 진화용 수원지 확보 등의 이점도 있다.지난달부터 각급 기관단체와 사회단체에 이어 농업인단체, 이장협의회, 각종 친목단체 등 민간단체까지 차례로 나서 양수발전소 유치를 촉구하고 있다. 군청 직원들, 지역 사회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장날에 맞춰 전통시장 주변 시가지를 돌며 지역 최대의 성장동력이 될 봉화양수발전소 유치를 위한 대대적인 홍보 캠페인도 벌였다. 홍보물을 배부하고 사업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며 군민 공감대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봉화군의회에서도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고 일자리 창출과 인구증가를 위해서는 양수발전소가 유치돼야 한다며 지난달 열린 제256회 봉화군의회 임시회에서 양수발전소 유치 촉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또 최근에는 경북도 관계자들과 만나 봉화군 양수발전소 유치에 관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의논하고 경북도 차원에서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는 등 적극 나서기로 해 봉화군 현안해결에 큰 힘이 되고 있다.봉화군은 오는 22일에는 봉화양수발전소 유치 범군민 추진위원회 출범식을 갖고 양수발전소 봉화 유치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지역발전에 대한 군민들의 염원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이때, 군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도록 양수발전소 유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3만 군민분들도 뜻을 모아 봉화양수발전소 유치를 위해 끝까지 힘을 모아주시길 부탁드린다.

2023-06-18

오래된 처음처럼 울었다

저 나정 우물가 빛을 불러온 날 이후포박된 어둠 속의 아름다운 목청들은천리 밖 꿈결에까지 말굽 치며 울었을까돌아오지 않는 것은 밤하늘로 날아가수억 광년 전에 죽은 빛을 품고 있었을까무성한 노여움들은 뗏장으로 덮이고혼령 같은 초승달 선문을 열고 나와어둠을 품고 빛나는 푸른 알의 눈물들을은장도 벼린 칼날로 곱게 깎아 놓는다―박권숙, ‘홀씨들의 먼 길(고요아침, 2005)’에서 ‘천마총·5’ 전문.신라 향가에는 “천지 귀신을 감동케 하는 힘”이 있다. 이 천지를 움직이는 서정의 힘을 박권숙 시인의 시조를 숙독하며 만난다. 시조의 발생 연원을 따질 때 한시, 고려 속요와 더불어 10구체 향가를 들고 있는 점에 주목해 감상해 보자. 노래로 불렸으니 그 곡을 알지 못하는 오늘이지만 향가의 가장 정교한 형태인 10구체 향가 사뇌가(詞腦歌) 중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비는 노래인 ‘제망매가(祭亡妹歌)’로 그 감응을 유추한다. “그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 홀연히 바람이 일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과장이 아니었음을 시인의 작품을 통해 실감할 수 있으리라.박권숙(1962~2021) 시인의 작품집에는 연작 시조가 많다. 연작작품만 모아도 100편에 이른다. 특히 ‘아버지의 밭, 천마총, 청사포’는 15편씩으로 방대하고 유장하다. 현실적 대상에 대한 주관적 체험을 운율에 담아내는 서정 양식에서, 한 편의 작품만으로는 그 내적 체험을 다 읽어낼 수 없는 경우에 집중적으로 그 심층을 파헤쳐 보고자 하는 노력이 연작으로 표현된다. 천마총 연작은 죽음과 구원이라는 테마로 건너온 천년의 신화와 맞닥뜨린 순간이라고, 아니 찰나와 영원, 삶과 죽음, 어둠과 빛이라는 한계를 넘어선 초월의 공간에서 느끼는 전율이라면 어떻게 그것을 단 한 편의 시조로만 표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던 시인을 우리는 기억한다.시인은 “포박된 어둠 속”에서도 “아름다운 목청”을 잃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것은 밤하늘로 날아가” “수억 광년 전에 죽은 빛을 품고” 있다. 하여 시인은 의연하게도 “침엽의 정신들“로 그 푸른 가시를 세워 우리를 슬픔에서 몰아내려 한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 연속되더라도 이를 초연하게 극복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듯 “빛나는 푸른 알의 눈물들”을 “은장도 벼린 칼날”로 곱게 깎아 내고 있다. 오늘도 저 청고한 하늘 위에서 견고한 서정의 광휘를 뿜어내며. 이희정 시인 1991년 등단 시기부터 죽음과 삶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던 당시 시인이 그려낸 고독한 자화상, 첫 시집 ‘겨울 묵시록’부터 마지막 시집 ‘뜨거운 묘비’까지 투병과 창작을 병행하며 붙들어낸 치열한 삶과의 분투였음을 감히 짐작한다. “난삽하지 않고 격정적이고 또 명징한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박권숙 시인을 생각할 때마다 척박한 90년대의 시조 들판을 객토하기 위해 태어난 시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라고 이우걸 시인은 추억했다. 더하여 이지엽 시인의 바람처럼 가없이 푸르른 초록 “침엽의 정신”이 “깨끗한 눈물”로 빛나는 절정이 후대에까지 이어지리란 염원을 뜨겁게 품어본다.삶과 죽음이 어떠한 것인지 여전히 모를 일이다. 다만 선인들의 삶에 비추어 볼 따름이다. 올해로 천마총 발굴 50년을 맞은 경주 대릉원의 밤은 찬란하다. 저 먼 신라인들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성한 동물로 여긴 천마(天馬)가 국립경주박물관 한복판에서 우리를 맞고 있다. 예술과 뉴미디어의 협업으로 황남대총 두 봉우리에 신라의 혼이 신령스러운 기운을 뿜어내며 마침내 하늘로 비상하는 하얀 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국보 천마도가 다시 수장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전시회장 ‘장니(障泥 : 말다래)’에 부기 된 감상문과 더불어 시인의 노래 한 줄이 심금을 울린다.“방금 막 화공이 붓을 놓은 듯, 천리 밖 꿈결에까지 말굽 치며 울었을까”

2023-06-18

소금이 무슨 죄?

우정구 논설위원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시중의 소금값이 폭등을 하고 일부서는 사재기 현상도 일어난다고 한다. 일본서 방류하는 오염수가 한국 해역에 도달하면 국내 수산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야당은 일본 원전 방류수와 관련 야외 반대집회에 나섰고, 여당은 야당이 과학적 논쟁은 거부하고 괴담과 선동정치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한다.지금은 흔한 식품이지만 20세기 이전만하더라도 소금은 ‘백색의 황금’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귀중한 자원이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생선과 올리브, 치즈, 고기 등을 저장하는데 소금을 사용했고, 군인의 보수를 소금으로 지급했다는 기록도 있다. 중세시대는 소금을 둘러싸고 100년 넘도록 소금전쟁을 벌인 곳도 있다.짠맛을 내는 무취의 흰색 결정체인 소금은 단순히 음식 정도가 아니고 음식 이상으로 인류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물질이다.재화로서 가치가 높은 소금의 유통을 통해 도시 간의 문화와 경제교류가 촉진됐고 소금 교역으로 ‘솔트로드’도 생겼다. 소금은 한때 지금의 석유처럼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뿐만 아니라 소금은 모든 생물체에 있어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성분이 있어 물만큼이나 생리기능에 꼭 필요한 요소다. 소금의 주요 성분인 나트륨은 소화를 촉진해 식욕을 끌어 올린다. 사람의 체온 조절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땀의 배출을 도와 체온을 식히기도 하고 반대로 체온을 유지하도록 돕는다.데이터를 내놓고 과학적으로 풀어야 할 오염수 문제를 정치적 선동으로 떠들어봐야 국민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치적 공방의 결과가 소금값 폭등이라면 소금을 사먹을 국민만 피해자가 된 꼴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6-18

결혼식 풍경

김규종 경북대 교수 아주 오랜만에 결혼식에 참석했다. 나는 장례식에는 자주 가는 편이지만, 결혼식에는 부조(扶助)만 하고 대개는 아니 간다. 쓸쓸하고 슬픈 장소에는 사람이 많이 갈수록 좋지만, 환하고 행복한 자리는 조금 허전해도 견딜 만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가 결혼식에 간 이유는 나의 둘째 아들이 혼인(婚姻)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혼주(婚主) 자격으로 신랑과 신부를 위한 덕담(德談)을 하기로 했기에, 더욱 결혼식에 가야 했다. 붐비는 토요일 오후 서울 내부순환도로와 강변북로를 거쳐 강동(江東)의 결혼식장에 도달한 시각은 오후 2시 15분 무렵. 예식은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한다. 여유 있게 도착한 나와 동생 둘, 그리고 조카 둘이 호기롭게 35층 예식장으로 들어선다.어린 시절부터 나는 고소 공포증에 시달렸다. 어디든 높은 곳에 올라가면 간담이 서늘해져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35층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풍광(風光)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신선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필시 내 아들의 결혼식이 진행될 고층 건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며칠 전부터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재삼재사 생각하곤 했는데, 첫머리를 어떻게 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식을 앞두고 수많은 하객(賀客)이 찾아들고,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덕담 걱정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래, 닥쳐서 생각하면 되겠지, 하고 자신의 내면을 추스른다.활달한 성격의 신부와 씩씩한 거동의 신랑이 잘 어울린다. 젊음의 약동(躍動)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아름답고 유쾌한 노릇이다. 36년 전에 나도 저런 모습이었던가, 잠시 상념에 잠긴다. 그때 내 지도교수께서 주례하셨는데, 머리털 나고 그렇게 넘치는 칭찬을 들었던 기억은 없다. 얼마 전에 세상을 버리신 선생님의 명복을 새삼 빈다.이윽고 내가 말할 차례가 온다. 높은 단상에 올라가 신랑과 신부의 얼굴을 보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린 시절 작은아들이 보여준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 내게 경험한 낯설고 아픈 추억을 잠시 더듬는다. 고집스럽고 공부하기 싫어하고, 삶을 향한 애착이 많지 않았던 아들이 어느새 장성하여 일가(一家)를 이룰 태세라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하다.며느리 되겠다고 자청한 젊은 신부 역시 환한 얼굴로 내 덕담에 귀를 기울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4~5분 정도 말하겠다고 해놓고, 7분 넘게 너스레를 떨었나 보다. 필시 제 이야기에 홀로 도취하여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모양이다. 장남(長男)을 미뤄두고 차남이 먼저 혼인하게 되었기로 적잖은 인사를 받는다. 큰아이 결혼식에서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생각한다.멀리 울산과 대구, 청주에서 올라온 벗들이 고마웠다. 이렇게 인생의 중요한 장면 하나가 스르륵 지나간다. 언젠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작은아들 내외가 오늘을 돌이켜보면서 무엇을 생각할 것인지, 궁금하다. ‘얘들아, 행복하고 멋지게 살아가렴! 뒤돌아보지 말고, 당당하게!’

2023-06-18

사람의 실수와 안전 확보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안전사고는 불안전한 행동과 불안전한 상태가 만났을 때 에너지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며 현장에 불안전한 상태가 있더라도 사람의 불안전한 행동과 만나지 않으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 P사의 지난 약 50년간의 안전사고 원인 별 분석결과를 보면 불안전한 행동이 82, 불안전한 상태가 5%, 기타가 13%로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이 절대적임을 알 수 있다.특히 불안전한 행동 중 실수는 인간 행동의 일부로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누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이 실수를 하는 이유는 오감에 의해 인지 판단 행동하는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주로 경험부족 피로나 감정적인 상태 주의력 부족과 집중력 분산 등에 기인하며 이러한 상태에서 행동해도 사고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독일의 심리학자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을 보면 학습후 20분이 지나면 58%만 기억을 하며 1시간이 지나면 44%로 떨어진다고 한다. 반복 학습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로 하루가 지나면 초기 학습 내용의 약 33%를 한 달이 경과하면 약 21% 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즉 인지 판단의 에러를 줄이기 위해서는 학습 후 망각 속도를 늦추어 장기 기억으로 되기 위한 반복학습이 필요하다. 또 사람이 잊어버리거나 인지하지 못해도 모니터링 수단이나 알람 등을 통해 인지 하도록 하는 체크 기능이 있어야 한다.인지 판단을 제대로 했더라도 최종 행동시 조치를 생략하거나 착각 착오로 인해 오조작을 하면 사고로 이어진다. 그래서 아예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작동되지 않거나 사람이 임의로 작동을 해도 안전하지 않으면 조작이 되지 않도록 하거나 최종적으로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안전이 확보되도록 작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템퍼 푸르프(Temper Proof) 풀 프루프(Fool Proof) 페일 세이프(Fail Safe)라고 한다.템퍼 푸르프는 안전장치나 기능을 제거할 경우 아예 동작을 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며 풀 프루프는 ‘어리석은 사람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라는 의미로 작업자가 실수 할 수 없도록 만들거나 만약 실수를 하여도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장치를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휴대폰 충전 코드의 잭이 일치하지 않으면 아예 체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페일 세이프는 설비가 고장이나 오조작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경우 피해가 확대되거나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안전한 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일 예로 중요한 제어기의 경우 제어 유닛이 듀얼로 설치되어 상시 동일 Data를 공유하고 있다가 한 쪽이 이상시 즉시 전환하여 운전되도록 한 것이다.이렇듯 인간의 실수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설계시 불안전한 행동 자체를 원천 차단하거나 작업자가 모르고 불안전 행동을 해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거나 만약 사고가 발생해도 안전이 확보되도록 개선 하는 것이다.

2023-06-18

나의 사정을 다 말해야 하는 이유

유영희 작가 지난 6월 14일, 4년 만에 서울국제도서전에 방문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로 못 갔고, 작년에는 내 사정으로 못 갔다. 이 행사는 해마다 주제가 있는데 올해 도서전의 주제는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라고 하여,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강조했다고 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취지문을 읽어 보니, 비인간은 인간이 아닌 자연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예년에는 남녀 섞어서 세 명이던 홍보대사 인원을 일곱 명으로 늘리면서 모두 여성 문인만 내세운 것을 보니 아무래도 비인간이란 남자가 아닌 존재, 여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이런 주제 때문인지 발걸음이 멈추는 곳마다 여성이 있었다. 에밀리 디킨슨 시를 전문으로 내는 파시클 출판사의 박혜란 대표의 북토크에도 참가하여 디킨슨 이야기도 들었고, 여성들의 자기 이야기가 담긴 책도 몇 권 샀다.출판사 핌의 ‘어쩌면 너의 이야기’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만난 주부들의 동화 에세이 모음집인데, 동화 형식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말하는 독특한 형식이었다. 직접 글과 그림을 다 작업한 참여자도 있고, 딸이나 남편이 삽화를 그린 글도 있었다. 자상한 시간에서 펴낸 ‘감정愛쓰다’는 그보다는 직접적으로 자기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 글을 올린 참여자들 역시 모임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나누며 글을 썼다. 담다 출판사의 ‘3923일의 생존 기록’은, 저자 김지수가 불안, 공황, 우울장애와 더불어 생존해온 기록이다. 최근 암 생존자 여성의 투병기 ‘엉망인 채로 완전한 축제’도 읽었는데, 사회 통념상 암보다 더 말하기 어려운 것이 마음의 병이라서 김지수의 고백은 더 인상 깊었다.‘파레시아’라는 희랍어는 ‘세상을 향해 다 말하다’라는 뜻이다. 본래 파레시아는 정치적 의미가 강하여, 키케로는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까지 이끈 파레시아를 ‘대담한 저항’이라고 요약했는데, 플라톤은 여기에 행복의 의미를 덧붙였다고 한다. 당시 독재자였던 디오니소스 1세가 플라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질문했을 때 소크라테스라고 대답하여 독재자에게 추방당했다고 전해진다. 플라톤의 대답에서 우리는 ‘다 말하는 것’이 행복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파레시아를 원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억압받는 사람이거나 사회적 약자일 것이니, 이들의 말하기는 민주주의와도 통한다.황현산은 ‘밤이 선생이다’에서 내 사정은 나만 알고 있는 것이라서 사소해보이지만, 글을 쓰다 보면 그 사정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고 결국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나 역시 여성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면서 글을 통해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는 연결을 체험하고 있다.여성 문인만 홍보대사가 된 것에 대해 어느 남자 시인은 책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런 목소리를 잠재우는 방법은 여성들이 용감하게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니 움츠리지 말고, 나의 사정을 사정없이 써보자.

2023-06-18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으면 중독되나요?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일반인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중독(中毒)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평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이 알코올이나 마약으로 인해 건강을 잃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사회적 폐인(廢人)이 되는 상태를 말할 것이다.그러나 당뇨병 환자나 고혈압 환자가 약을 복용함으로써 혈당과 혈압이 조절되어 정상화되고 생활을 잘할 수 있다면 치료되고 있다고 해야 할 일이지 결코 중독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또 약을 갑자기 중단하면 다시 혈당이 올라가고 혈압이 올라간다고 해서 그것이 약에 중독됐다고 할 수 없다.공황장애 환자나 우울장애 환자가 그에 맞는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복용함으로써 평안을 찾고 부정적 관점에서 벗어나고 자살로부터 자신의 가치와 생명을 지켜내고 행복을 찾는다면, 치료되고 있다고 해야 할 일이지 결코 중독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약을 갑자기 중단하면 다시 공황 증상이 나타나고 우울 증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이 약에 중독됐다고 할 수 없다.알코올이나 마약이 뇌를 손상하는 것과는 달리 현재 사용되는 항공황제제, 항우울제제는 오히려 뇌신경 세포의 신생을 돕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약으로 어떻게 당뇨 또는 고혈압을 치료하느냐”, “당뇨나 고혈압은 의지나 정신력으로만 고쳐야지”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에 대해서만 달리 생각하는 태도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나로서는 몹시 안타깝다.당뇨병과 고혈압은 하나의 신체 질환이다. 공황장애와 우울장애 등 정신건강의학과 질환도 하나의 뇌의 질환이다. 뇌도 신체 일부이다. 지금 공황장애, 우울장애뿐만 아니라 많은 정신과적 질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약이 중독된다는 편견으로 인한 불충분한 치료(under treatment)이다.왜 사람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으면 중독된다고 생각할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물치료를 하면 약물중독이 되어 약을 끊지 못하고 평생 먹어야 한다는 두려움의 표현일 수 있다.결론부터 말하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하는 약물치료로 인해 중독되어 약을 끊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당뇨병이나 고혈압 환자분은 오랜 기간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몸에서 혈당, 혈압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기능이 저하돼 약물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다. 그래야 합병증을 예방하고 건강수명을 늘일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질환들은 우리 뇌에서 불안, 우울 등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기능이 저하돼 약물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다.또 정신건강의학과 질환들은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비교한다면 완치돼 약을 끊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다만,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계 약물들은 약리학적으로 내성과 신체적 의존성이 있을 수 있어 약물 사용에 유의할 필요가 있으나, 올바른 처방 가이드라인을 지킨다면 문제되지 않는다.세계 최고 권위의 임상의학 학술지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임상에서 그 효과를 얻기 위해 약을 계속 늘려가야만 하는 내성의 증거가 없다”고 했다. 또 미국정신건강의학과학회 특별위원회의 보고서에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이 올바른 처방 가이드라인이 지켜졌을 때 중독되는 약이 아니다”라고 결론지었다.결국,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물치료를 받는 경우 약물중독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가끔 공황장애 환자와 우울장애 환자의 적절하고 충분한 치료를 도와야할 가족과 지인이 “정신건강의학과 약은 중독이 되어 약을 끊을 수 없다”라는 등의 무책임한 말들로 환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다. 특히, 공황장애 환자의 심리는 기본적으로 불안하고 우울장애 환자의 심리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약에 대해 겁이 나는 말을 들으면 치료를 시작하지 않거나 먹던 약도 복용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따라서 별생각 없이 뱉은 무책임한 말들은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있는 기회를 막거나 재발하게 하는 결과적으로 환자의 건강과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 대단히 위험한 행위이다.정신과적 질환의 치료를 신체 다른 부위의 질환에 대한 치료와 동일선상에서 생각해주면 좋겠다.정신과적 질환이 다른 신체적 질환과 다르다는 편견(偏見), 정신과적 약물치료가 다른 신체적 질환의 약물치료와 다르다는 편견이 치료를 어렵게 한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질환들은 당뇨병, 고혈압 등 다른 신체 질환과 마찬가지로 치료할 수 있고 치료해야 하는 질환이다.오늘 필자가 드리고 싶은 말은 ‘정신건강의학과 약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약만을 맹신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약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지나친 거부감도 문제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편견(偏見)으로 보지 말고 정견(正見)으로 보자”는 것이다.

2023-06-18

VDT 증후군, 몸이 펼쳐지도록 하는 게 답이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VDT(Visual Display Terminal) 증후군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모니터와 같은 영상 기기를 장시간 사용하여 생기는 목, 어깨 통증 등의 후유증을 아우르는 말이다. VDT 증후군은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앓는 질환 중 하나인데, 초기에 증상을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악화될 경우 다른 질환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일상에 지장을 줄 만큼 불편함을 느끼는 질환이기에 빠른 대처가 중요하다. 초기증상에는 치료 시간이 짧고 스트레칭과 자세 교정 같은 운동치료로도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VDT 증후군의 증상으로는 근골격계의 이상으로 흔히 담이라고 얘기하는 근육의 뭉치는 느낌과 통증이 있는 근막통증증후군이나 요통이 있다. 또는 손목의 신경이 눌러져 손가락이 저리게 되는 손목터널증후군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근육이나 말초신경의 이상으로 목, 어깨, 팔꿈치, 손목 및 손가락에 통증이 생기고 저린 증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눈의 이물감, 충혈, 눈부심 등 안구건조증이나 근시 혹은 굴절 이상의 안과 질환이 생긴다.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VDT 증후군 관련 질병 수진자 수는 근막통증증후군이 233만 명으로 가장 많았고, 안구건조증 226만 명, 일자목증후군 220만 명, 손목터널증후군 17만 명 순으로 나타났으며, 연령대별로는 50대 수진자수가 가장 많았다.근막통증증후군은 근육 또는 근육을 싸고 있는 근막에 장시간 스트레스가 가해져 뭉치면서 근육에 통증 유발점을 생성하는 질환이다. 잘못된 자세로 인해 목과 어깨 근육이 오랜 시간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여 경직되거나 통증이 발생한다. 아픈 쪽으로 움직이려 할 때 통증이 생겨서 쉽게 움직이기가 힘들어진다.근막통증증후군 예방을 위해서는 작업환경과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바라볼 때는 눈높이를 맞춰주고, 앉는 자세를 올바르게 유지하는 게 우선이다. 또 근육이 경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시간에 10분씩 휴식이 필요한데, 이때 정적 스트레칭으로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 스트레칭의 원리는 근육의 길이를 확장하여 늘려주는 것인데, 한번 늘리는 시간은 근육의 긴장 지점에서 들숨과 날숨을 길게 5~6회 반복하거나 20~30초 정도가 적절하다.일자목증후군은 거북이처럼 목이 앞으로 구부러지면서 목과 어깨, 근육의 인대가 늘어나 신체 변형 및 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기는데, 척추의 윗부분이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아 인대가 늘어나면서 증상이 발생한다. 목에 과하게 하중이 발생하고 뒤통수 아래 신경이 압박되어 두통을 비롯해 현기증이나 어지럼증이 동반되기도 한다.일자목증후군 예방을 위해서는 머리를 위로 올리듯 바로 세우고 허리를 요추전만자세로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항중력근을 자극해 자세를 바로 잡아주고 목의 C커브를 만들어주는 심부경추굴곡근이 활성화 된다. 따라서 일자목증후군은 흉추 후만증, 다시 말해 심한 둥근 어깨로 인해서 목이 전방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자세만 바로 잡아도 어느 정도 개선이 될 수 있다.현대인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이 움직이는 신체 부위가 바로 손이다. 손과 손목은 스마트폰이나 키보드, 마우스의 잦은 사용으로 부담이 증가해 통증이 생기더라도 방치하기 쉬운 부위다. 과거에는 집안일로 손을 많이 쓰는 40대나 50대 주부 환자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전자기기 사용이 많은 10대와 20대 환자들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손목터널증후군은 손목을 과다하게 사용하여 손목의 신경과 힘줄이 지나가는 통로인 수근관의 내부 압력이 증가하거나 좁아지면서 신경이 눌려 통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엄지와 둘째나 셋째 손가락이 저리면서 무감각해지기도 하고, 손목이 시큰하고 손가락이 저리거나 손목과 손바닥에 뻐근함이 느껴지고 심할 경우 손이 타는 듯한 통증이 생겨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이 따른다.손목터널증후군 예방은 우선적으로 손을 무리하게 사용하지 않고 휴식하는 것이다. 30분이나 1시간마다 5~10분씩 휴식을 취하면서 틈틈이 손가락과 손목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이 효과적이다. 특히 손목을 아래로 심하게 꺾으면 증상이 악화되므로 손목이 꺾인 자세로 작업할 때는 중간중간 휴식 시간을 갖고 손목 스트레칭을 해주는 게 좋다. 장시간 컴퓨터 작업으로 키보드와 마우스를 계속해서 사용하여 손목 통증이 생기는 경우에는 손목 보호를 위해 패드를 깔아주면 증상 예방에 도움이 된다.현대인의 자세는 늘 굴곡져 있다. 식사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자세를 보면 목, 어깨, 등, 고관절, 무릎 그리고 팔까지 굴곡진 자세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하늘을 볼 시간이 없다. 이처럼 굴곡진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우리 몸이 펼쳐진 삶을 살도록 유도하면 된다. 틈틈이 서 있거나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스트레칭을 통해 신전 동작을 꾸준히 해주는 게 답이다.

2023-06-18

접시꽃 피는 유월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유월의 골목에 접시꽃이 피었다. 소박한 이름과는 달리 무척 화사하고 탐스러운 꽃이다. 중국이 원산이라고 하나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기르거나 자생해서 토종식물이나 다름이 없다. 야생화로 불리지도 않지만 흔하게 볼 수 있어서 귀한 대접을 받는 화초도 아니다.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좋아했다는 매(梅), 난(蘭), 국(菊)이나 연꽃, 모란 같은 품격(?) 있는 꽃의 반열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서민적인 꽃으로 보기에는 너무 화려하다. 그러면서도 마치 무슨 파수꾼인 양 담이 낮은 골목을 지키고 서 있는 꽃이다.촉규화, 덕두화, 접중화, 일일화, 단오금 등의 이름을 두고 언제부터 접시꽃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어려운 한자어와 친하지 않은 백성들이 붙인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알록달록 고운 색깔의 그 접시는 사발과 대접, 보시기, 종지 따위가 고작인 서민들의 밥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청자나 백자와 같이 사대부들의 밥상에 올리기에도 격이 맞을 것 같지가 않다. 사대부들은 체면 때문에 감추고 백성들은 고된 삶에 억눌렸던 원초적인 정념 같은 꽃에다 빗댄 접시이니 어디엔들 맞겠는가?키가 크고 꽃대가 튼실한 접시꽃은 울타리나 담장을 따라 많이 심었다. 한번 심으면 그 다음부터는 저절로 번식을 하니 일일이 돌봐줄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도 관상용 꽃으로서의 역할은 더할 나위가 없다. 마을 골목에 피어 있는 접시꽃의 그 화사한 모습은 누구나 날마다 볼 수가 있어서 고달프고 팍팍한 일상에 한 줌 향기와 온기를 불어넣는다고나 할까. 이제는 뭐든지 숨기거나 억눌러 감추는 세상이 아니다. 취향에 따라 누구든 형형색색의 접시를 일상의 식탁에 올려놓을 수 있는 세상이다. 고매한 품격이나 야한 것을 따지는 세상도 아니다.시골마을 곳곳에 쌓인 저리도 고운 접시들이 뭉클한 감회로 다가온다. 보리밥 한 덩이에 된장 한 종지, 상추나 풋고추가 고작이었던 우리네 일상의 밥상 말고, 저 고운 접시의 용도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접시꽃 보면 사무치는 그리움 같은 것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이 유월에는 저 알록달록한 접시에다 온갖 것을 담아보자. 잊혀 진 것들, 잃어버린 것들, 외면하고 하찮게 여긴 것들, 세월의 먼지를 털고 편견과 망집의 더께를 떼어내고 알뜰하게, 소꿉놀이처럼 담아보자. 그러라고 접시꽃이 피었다.오랜 세월 우리는 밥그릇 하나 챙기기에도 너무 벅찬 삶이었다. 생활에 꼭 필요한 집기들도 뚫어지고 깨어지면 때우고 붙여 쓰는 형편에 곱고 예쁜 접시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생활이 각박하다고 마음까지 삭막한 것은 아니었다. 장독대 둘레에 채송화나 봉선화를 심을 줄 알았고 울타리나 사립문 옆에 접시꽃을 심기도 했다. 그래서 들며나며 한 번씩 눈길을 주는 것으로 마음 한 편에 작으나마 마르지 않는 정서의 샘을 간직할 수 있었다.먹고 살 만해진 지금도 밥그릇 때문에 울고 웃고 걸핏하면 부모형제도 저버리는 패륜의 시절에, 접시꽃이 피었다.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고. 인생을 담을 그릇이 어찌 밥그릇뿐이겠느냐고.

2023-06-15

노인 학대를 예방하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6월 15일은 ‘노인 학대 예방의 날’, 노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노인 학대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인복지법에 따라 2017년에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우리나라는 65세 이상을 ‘노인’이라 하며 올해 2월 기준으로 900만 명 이상인 ‘고령화 사회’가 되었고, 2025년에는 20% 이상 즉,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83세, 건강 수명은 66세라고 한다.20세기 후반 인구 고령화의 세계적 추세에 따라 노인 복지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UN은 2006년부터 그 인식에 대한 활동을 추진하게 되었고, 노인을 위한 원칙으로 자립, 참여, 돌봄, 자아실현 및 존엄성을 제안했다. 즉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고 지식과 기술 등을 활용할 수 있게 하며 건강 보호와 관련 시설 등의 확충으로 안전한 생활을 보장하고 또 교육, 문화, 여가 프로그램 참여로 잠재능력을 키울 기회를 줌으로써 학대로부터의 자유와 공정한 대우를 받게 하여 노인의 삶의 질 향상과 노인 보호 네트워크 확충 및 사회인식의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노인복지법에 ‘노인은 후손의 양육과 국가 및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여 온 자로서 존경받으며 건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을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듯이 우리나라 노인은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경제발전을 이루고 가족들을 위해 헌신해 왔다. 그런데 최근 자료를 보면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최고이고, 노인 자살률도 1위라는 슬픈 사실에 놀란다. 통계청 자료에는 10만 명당 노인자살률은 60대가 30.1명 70대 38.8명 80대 이상은 62.8명으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노년기 자살은 사회적 지위 상실과 실업에 따른 경제적 결핍과 건강 악화, 배우자 사망 등 가족 문제의 우울감이 주된 이유이다.이러한 이면에는 노인학대라는 사회적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노인학대는 ‘노인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성적 폭력 및 경제적 착취 또는 가혹 행위를 하거나 유기 또는 방임을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노인학대 실태를 보면 노인 10명 중 1명이 고통을 받고 있으며 1주일 1회 이상이 36.5%, 매일 23.1%로 정서적 학대가 가장 많고, 가정 폭력이 88%이다. 여기서 학대 행위자는 배우자가 46%, 아들-딸이 49%라는 통계도 있는데 이는 대가족 문화가 붕괴하고 있는 일면이다. 학대 사실이 인지되면 노인보호 전문기관 1577-1389로 신고하거나 ‘나비새김 앱’을 통해 알리면 된다. 2022년도 전국 노인보호 전문기관에 신고된 것은 1만4천여 건이며 이 중 3분의 1이 학대로 판정되었다. 그러나 자식들의 학대 아픔보다 신고할 경우 자녀의 피해를 우려한 부모의 마음으로 하지 않은 경우도 많겠지만 최근 5년간 노인학대 건수는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경찰청 발표도 있다.우리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 이제 국가와 사회는 존엄하고 안전한 노년을 위하여 경제적 어려움에 편견과 차별, 건강 돌봄 문제 등 노인 복지에 더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23-06-15

홍준표의 국량(局量)

홍석봉 대구지사장 홍준표 대구시장의 광폭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꼭 필요한 사람만 만나고 찾던 홍 시장의 보폭이 크게 넓어졌다. 가급적 외부 행보를 자제하던 그였기에 변화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대구시장 취임 1년을 앞두고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라는 것이 지역 정치권과 관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치 훈수도 크게, 멀리 보고 있다. 관심사는 노동, 국제 문제까지 확대됐다. 종교와 성소수자 문제까지 들여다본다. 폭 넓어진 그의 관심사와 시각이다.홍준표 시장은 최근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지도부가 하는걸 보니 내년 총선이 걱정된다”며 여당에 선대위 조기 구성을 촉구했다.그는 보수정당이 지역별 맞춤형 인재 발탁으로 해방 후 처음 수도권에서 승리한 1996년 총선의 기억을 소환했다. 10개월이 채 남지 않은 내년 총선의 여권 인재난을 지적하며 무능한 당 지도부를 질타했다. 진영논리에 갇힌 채 논쟁만 일삼는 정치권의 무기력을 비판했다. 지지율 바닥인 윤석열 대통령에겐 힘을 실어주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정 없이 비판한다. 후배 정치인들의 힐난엔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옳지 않다고 판단하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까뭉갠다.최근 관심사가 일본과 중국 문제로 확대됐다. 때마침 중국대사가 주제넘은 발언으로 지탄받는 상황이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내정간섭’ 발언에 “방자하기 이를 데 없다”며 “꼭 하는 짓이 문재인 정권때 한국 정부 대하듯이 한다”고 매섭게 쏘아붙였다.같은 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문제를 놓고서는 ‘세계인들의 건강권 문제’라며 “일본의 자해행위”라고 경고했다.방류를 용인하는 대통령실 및 여권과는 결이 달랐다. 주위에서 걱정하자 “다양한 의견이 여당 내에서도 있어야 한다”며 일축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속이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다.종교와 문화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소신을 밝힌다. 홍 시장은 지역의 이슬람사원 건립을 반대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입장을 밝혔다. 종교 폄훼와 배척은 안 된다며 특정 종교 세력이 주민을 선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론적인 입장 표명이지만 한쪽을 두둔한다는 인상이 짙다. 자칫 갈등을 부추기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대구에서 열리는 퀴어 문화축제와 관련, ‘성다수자의 권익도 중요하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통 협조도 않겠다고 했다. 호불호가 분명하다.그간 거리를 두던 한국노총과도 정책간담회를 갖고 노정 갈등의 중재자를 자처했다. 민감한 사회문제에는 조정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얼마 전에는 불편한 관계에 있던 대구상공회의소의 행사에도 참석했다. 이처럼 최근들어 그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다. 홍 시장의 광폭행보에 TK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홍 시장의 업무 추진력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에 비판은 용납않는 모습을 보여 반대론자를 끌어안는 아량과 포용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강과 바다는 개울물도 마다하지 않는다(江海不擇細流)’고 했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홍준표 시장의 국량을 대구시민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2023-06-15

靑松의 매력

우정구 논설위원 푸른 소나무란 뜻의 청송군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지질공원은 그 지역의 생태계가 가진 과학적 중요성, 희귀성, 시각적인 아름다움, 교육적 가치 등을 종합 평가해 결정된다. 청송군이 보유한 자연생태가 고고학으로나 역사학적으로 가치가 매우 훌륭하다는 뜻이다.청송군은 2017년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두 번째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고 올해는 유네스코로부터 재인증도 받았다. 청송군은 경북의 오지지만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뛰어난 자연환경 등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백악기 시대 형성된 주왕산과 사진작가들이 즐겨찾는 주산지,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 등이 있고, 청송사과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 전국에서 산소포화도가 가장 좋아 ‘산소카페’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공해에 찌들린 대도시와 대비되는 자연주의를 도시 컨셉으로 삼은 것은 청송의 자랑이다.이곳에서는 나이와 주소와 상관없이 누구나 시내버스를 무료로 탈 수 있다. 관광객 유치 효과를 기대하나 그보다 군이 직접 무료버스를 운영함으로써 자동차로 인한 공해를 줄일 수 있다니 청정도시다운 발상이다.2011년 청송은 국제슬로시티에 가입했다. 공해없는 자연으로 돌아가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슬로시티운동은 자연주의를 표방한 국제사회 운동이다. 세계적으로 많은 도시가 슬로시티에 가입했으나 청송은 유일하게 바다를 끼지 않은 산촌형 슬로시티라는 게 특징이다.청송은 유네스코가 인증한 지질학적 가치를 잘 보존해 글로컬 관광도시를 지향하겠다고 한다. 경북의 오지 청송이 추구하는 순수자연도시로의 성공을 기원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15

커피, 아침을 열다

정미영 수필가 “당신이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가져다 드릴게요.”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나오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대사다. 내 나이 20대 초반에 주인공 마리아가 로버트 조던에게 이 말을 속삭이며, 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 한동안 눈에 선했다.커피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집집마다 인스턴트커피, 프림, 설탕을 티스푼으로 덜어서 아껴 먹던 때였다. 그런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이 건네주는 커피 한 잔으로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였다.요즈음은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이 어렵지 않다. 1999년 스타벅스 1호점이 문을 연 이후 원두커피가 본격적으로 퍼졌기에, 드립커피를 직접 내리는 집도 늘었다. 편의점이나 아침에 문을 여는 카페도 있어 부지런히 움직이면 모닝커피는 손쉽게 마실 수 있다.그러나 나는 이제 누군가가 건네는 모닝커피의 여유를 기대하지 않는다. 영화처럼 낭만적으로 살고 싶었지만, 현실은 강퍅한 드라마일 때가 많다는 것을 자각해 버렸다. 그렇다고 커피 마시는 일을 생활에서 지울 수는 없기에, 스스로 커피를 챙겨 마시며 새맑은 하루를 기대한다.커피를 음미하는 것은 삶에 여백을 만드는 일이다. 아로마가 풍부한 최상급의 커피가 아니어도 괜찮다. 그동안 시간의 눈금에 편승해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려온 나였다. 방향을 잃은 채 속도에만 치중했던 일도 부려놓고, 마음에 쉼표를 찍으며 잠시나마 위안을 받는다. 마음을 채우기보다 비워서 여백을 만드는 시간이 커피를 마시는 순간이다.그렇지만 비우고 싶다고 마음이 어디 내 뜻대로 비워진 적이 있던가. 오늘도 베토벤을 따라해 본다. 그는 아침마다 60알의 원두를 분쇄해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나는 글감이 막막할 때면 그의 예술적 영감이 시공간을 초월해 나에게 전해지기를 은근히 기대하며, 그를 흉내 내어 종종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아직까지 성공한 적이 없어 애석할 따름이다.알맞은 굵기로 커피를 갈기 위해 그라인더 버튼을 조절한다. 그라인딩 정도와 추출 도구에 따라 같은 커피콩이라도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추출 시간이 길수록 커피를 거칠게 갈아야 하고, 추출 시간이 짧을수록 곱게 갈아야 한다.분쇄된 가루를 추출한 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쓴맛과 신맛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입안에 가득 퍼진다. 모든 커피가 부드럽고 감칠맛이 나는 게 아니므로, 커피 봉지에 적힌 블렌딩 비율을 훑어본다. 복숭아의 달콤새콤한 맛과 은은한 꽃향기가 어우러진 화려한 커피, 라는 문구와 커피잔에 담긴 커피를 번갈아 눈에 담는다. 커피원두는 품종마다 서로 다른 맛과 개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 가지만으로는 종합적인 맛을 즐길 수 없다. 원두가 지닌 특성을 균형 있게 배합하여 깊은 향미와 풍미를 지닐 수 있게 섞는 과정을 블렌딩이라고 하는데, 내가 마시는 커피는 배합 공정이 잘된 것 같다.문득, 우리네 사람살이와 닮은 듯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질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려면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야 할 때도 있지만, 다른 이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순간도 필요하다. 완벽한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기에 가끔은 부족한 부분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줄 수 있어야 한다. 블렌딩이 잘된 커피가 부담이 없듯이.커피에 취하면 마주앉은 상대도 다정스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실제로 미국에서 부부 1만 쌍을 대상으로 “처음 두 사람을 사랑에 빠뜨린 때는 언제인가요?”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커피 한잔 하실래요?”라고 말한 순간이었다고 한다.나는 내 주변이 정(情)으로 가득 넘치기를 바란다. 애정이든, 우정이든. 오늘 아침, 가까운 이와 새뜻한 하루를 시작해야겠다.‘커피 한잔 하실래요?’

2023-06-14

을사일주

육십갑자 중 마흔두 번째는 을사(乙巳)다. 천간(天干)의 을목(乙木)은 아름다운 꽃이나 유연한 나무다. 지지(地支)의 사화(巳火)는 계절적으로 여름의 시작이다. 어린나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동물로는 푸른 뱀이다.을사일주는 뜨거운 태양 아래 화려한 꽃밭처럼 밝고 명랑하다.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동산처럼 사고에 부드러움과 유연함이 있다. 외모는 화초같이 밝고 아름답고, 성격은 세심하고 상대를 배려하므로 주변으로부터 인기가 많다. 때론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성향으로 인하여 가벼워 보일 수가 있다.기본적으로 유쾌하고 명랑한 성격을 갖추고 있다. 말하는 능력이 뛰어나 자기표현에 능하다. 사회적 교섭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많다. 말싸움 해서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감정도 풍부하지만 희로애락의 표현이 분명하다. 상상력이 탁월하고 이성적이며, 멋을 잘 부리며, 기분파 기질이 있다. 사치심이 있는 것이 흠이다. 남녀 모두에게 인기와 매력이 있는 사람들이다.특히 순발력과 임기응변이 뛰어나며, 기존의 틀을 깨는 기획을 잘한다. 하지만 지구력이 다소 떨어지고, 상대를 은근히 무시하며 자기주장이 강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가 있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항상 바쁘게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시작은 잘하지만 마무리가 부족하여 항상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을사일주는 순수한 아이처럼 보여도 내면적으로 냉정하며 현실에 잘 적응한다. 그렇지만 흔들리는 꽃이라 감정의 변화가 심하며, 인내와 지구력이 약한 단점이 있다. 하지만 표현능력이 좋고 끼와 화려함이 겸비되어 있어 이성과 동성에게 호감을 주는 장점이 있다. 옷도 센스 있게 잘 차려입는다.중국 전국시대 양주가 송나라에 가서 어느 여관에 묵게 되었다. 여관 주인에게는 첩이 두 명 있었다. 한 여인은 얼굴이 예쁘고, 다른 여인은 못 생겼다. 그러나 못 생긴 여인이 오히려 총애를 받고 있었다.양주가 그 까닭을 묻자 여관의 젊은 주인은 “아름답게 생긴 여인은 자기가 예쁘다고 뽐내고 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못 생긴 여인은 자기 스스로 못 생겼다고 겸손하게 낮추고 행동하여 나는 그녀가 보기 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양주는 제자들에게 “자네들도 이 일을 잘 기억해 두어라. 스스로 잘났다고 내세우는 태도를 떨쳐버리고 품행이 훌륭하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지 않겠는가?”라고 당부하였다. ‘장자’ 외편 산목에 나오는 이야기다.양주의 당부는 지금도 강한 생명력이 있다. 물건에는 명품이 있듯이 말과 행동에도 품격이 있다. 언행이 일치할 때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은 호소력과 감동을 준다. 품격 있는 말과 행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자기개발이 필요하다.을사일주의 사화(巳火)는 뱀이기에 따뜻한 인정과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뱀은 따스함과 차가움을 함께 가졌고,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오묘한 동물이다. 거기에다 뜨겁고 큰 불이 더하니, 자신을 공격하거나 해를 입히는 사람은 냉정하게 잘라내는 성향이 있다. 실제로는 자기중심적이기에 혼자서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물상으로는 ‘풀밭에서 바쁘게 활동하는 뱀’이다.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을 휘감아 큰 먹잇감도 그대로 삼켜버린다. 어떠한 곤란에도 굴복하지 않고 이겨내는 능력의 소유자다. 자기방어 이외에는 사람을 잘 공격하지 않는다. 뱀이 허물을 벗는 것은 생존하며, 성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여 살아간다.남녀 모두 이성에게 인기가 많아서 이성문제가 잘 발생하는 일주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의 경우는 외모가 뛰어나며, 예술적인 감각과 매혹적인 목소리로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낼만한 매력의 소유자다.화려하고 향기 나는 꽃에는 항상 벌과 나비가 있다. 19세기 미국 작가 나다니엘 호손(1804∼1864)의 소설 ‘주홍 글씨’를 읽어보자. 17세기 엄격한 청교도들이 지배하는 미국 뉴잉글랜드지방(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죄를 다루었다. 주인공 헤스터 프린은 키가 크고 젊은데다 아름다운 용모를 겸비한 상류사회 여자였다. 헤스터는 나이 많은 남편을 영국에 두고 홀로 미국으로 이주한다.그녀는 보스턴에서 유능하고 촉망받는 젊은 목사와 사랑에 빠져 임신하게 된다. 청교도 사회에서는 여자의 행실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있었다. 간음은 그 사회에서는 죄에 해당한다. 헤스터는 생후 3개월 된 딸을 안고 처형대에서 간통을 뜻하는 주홍 글씨 A를 가슴에 달고 야유를 당하는 벌을 받는다.헤스터는 자신의 주홍글씨를 당당히 내보이며 죄를 극복하려는 진취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외곽에 머물며 탁월한 뜨개질 솜씨로 동네에 힘들게 사는 여자들에게 접근한다. 그녀는 타고난 의연함과 봉사정신으로 가난한 이웃과 병든 사람을 돌보게 된다. 죄를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당당히 드러내고 속죄를 통해 타인을 보듬고 위안을 준다. 아기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그녀의 사심 없는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 전해져 가슴에 찍힌 주홍글씨 A는 Adultery(간음)이란 의미에서 차츰 Able(능력 있는 여자)로 인식되었고, 결국에는 Angel(천사)로 받아들여진다. 죄를 숨기고 거룩한 목사로 행세하는 젊은 딤스테일 목사는 점점 병들어가고 쇠약해져 간다. 목사는 설교를 통해 도덕과 사랑을 강조하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는 신임 총독 취임식장에서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죽는다.주홍 글씨는 세상의 멸시와 조소를 받는 죄의 낙인으로 쓰였다. 헤스터는 이를 존경과 극복의 상징으로 바꾸어 버린다. 죄는 목사이건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극복했을 때 진정한 자기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인가를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머리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랑은 머리가 아닌 마음의 일이다. 그렇기에 사랑을 선악의 범주에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사랑은 선악의 판단 이전에 인간 본연의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랑의 행위는 선악의 피안에 있다.

2023-06-14

여름철 숙면 중심체온 관리에 달려

나선택 포항 행복한의원장 올해는 유난히 여름이 빨리 다가오는 느낌이다. 여름에 열대야가 시작되면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확 늘어난다. 날씨가 더운데 왜 잠을 못 자는 걸까?사람의 수면은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생리활동이다. 바이오리듬과 비슷한 ‘일주기 리듬’에 따라 잠이 들고 잠이 깨는데, 대체적으로 지구의 낮과 밤 주기와 비슷하게 움직인다. 수면 뿐 아니라 혈당 조절, 각종 호르몬 합성 조절 등 수많은 생리 기능이 일주기 리듬과 연관되어 있다.사람의 체온도 일주기 리듬을 따라서 움직인다. 항상 36~37.5도 사이를 유지하는 중심체온(몸 속 중심부의 온도)은 저녁 7시경 가장 높고, 새벽 5시경 가장 낮다. 일주기 리듬을 따라서 체온과 수면의 패턴을 관찰해보면, 밤 10시를 전후해서 중심체온이 높은 상태에서 낮은 온도로 떨어질 때 졸음이 오고, 수면중에는 조금씩 떨어지면서 낮은 상태를 유지하다가 새벽 5시경 가장 낮은 온도에 도달하고, 이후 서서히 중심체온이 오르면서 잠이 조금씩 깨게 된다.심장, 간 등의 내장이 활동하느라 생긴 열은 중심체온을 높이는데, 이것이 사람마다 달라서 중심체온이 높은 사람도 있고 낮은 사람도 있다. 중심체온이 높아지면 이 열을 밖으로 빼내려고 혈액이 피부쪽으로 많이 이동한다. 그런데 여름이 되어 바깥이 더워지면 피부 쪽으로 이동한 혈액이 열을 많이 내보내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중심체온이 잘 낮아지지를 못하게 되고, 중심체온이 낮아지지 못하면 잠을 잘 들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즉, 속이 더우면 잘 잘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여름이 아닌데도 중심체온의 발산이 잘 되지 않아서 불면증이 오는 경우에는 심장의 열을 줄여주는 황련, 치자 등의 약재와 간의 열을 줄여주는 황금 등의 약재가 배합된 황련아교탕, 갈근황금황련탕, 치자시탕 등의 처방이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반면에 한방에서 양허라고 부르는 저체온자나 고령의 노인들, 체력 허약자가 깊은 잠을 못 자는 경우도 있다. 이는 애초에 중심체온이 상승하지를 못하기 때문에 중심체온이 떨어지는 현상도 없어서 잠을 들기도 어렵고 깊은 잠도 못 자게 된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중심체온을 높여주는 인삼, 건강, 부자 등이 배합된 처방을 사용해야 몸이 따뜻해지면서 잠을 더 잘 자게 된다. 이런 이유로 열체질과 냉체질인 부부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은 때로는 곤혹일 수도 있다.위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 기침이나 복통, 심장병 등의 질환으로 인해 체온의 변화와 상관없이 못 자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는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노력과 기저 질환에 대한 치료가 병행 되어야 불면증이 없어지게 된다.불면증이 심하고 장기화 된 경우 한방의 불면증 치료는 중심체온을 조절하고 신경의 화를 식혀 주어 자연스레 수면패턴이 안정되게 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회복력을 키우기 전까지는 불면 증세가 금방 좋아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 회복하면 재발의 확률이 적고, 수면 뿐 아니라 전반적인 건강 상태도 좋아지니 인내심을 가지고 한방 치료를 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2023-06-14

‘영화 WITH’ 프로젝트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년 전 4월쯤으로 기억한다. 동네 행정복지센터에 갔다가 지산종합복지관에서 ‘영화 WITH’의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팸플릿을 얻었다. 은퇴 후 온갖 문화강좌 수강을 별렸으나 코로나19 탓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답답하던 차였다. 신청서를 정성껏 써서 인터넷으로 제출했다. 면접 후 대상자 선정을 한다길래 떨리는 맘으로 연락을 기다렸다. 며칠 후 면접 전화가 왔다.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나, 왜 신청하였나 등등의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무엇보다 수강의 간절함을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 영화 덕후라고 했더니 무슨 장르를 주로 보냐, 왜 좋아하느냐는 등 꽤 긴 시간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하여튼 며칠 후 선정되었다고 연락이 왔고, 5월부터 20주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강생은 20대부터 60대까지 나잇대도 다양한 남녀 20명 정도였다. 이번이 세 번째 수업인 분도 몇 있었으나 대부분은 나처럼 영화 공부인 줄 알고 오신 분들이었다. 그러나 강좌명과 같이 실제 영화감독이신 강사의 지도로 수강자들이‘함께 영화를 제작하는 프로젝트’였다. 2019년부터 시작된 ‘영화 WITH’는 첫해에는 2편, 2회째는 한 편의 영화를 이미 만든 저력이 있었다.첫 수업 때, 영화 끝의 엔딩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짜릿할 건가를 기대한다며 내 소개를 했다. 20주 후 영화시사회에서 그 바람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매주 수업은 영화제작 실습이었다. 첫날부터 컷촬영 실습, 두 번째 수업엔 휴대폰으로 5컷짜리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기획, 촬영, 편집 등의 영화 실무 공부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단 한 번의 수업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이크, 카메라, 오디오 장비들을 다루는 법을 모든 수강생들이 실습해 보면서 15분 내외의 단편영화 제작 준비를 했다.다양한 단편영화들을 감상하는 동시에 우리가 만들 영화 주제에 대한 의견을 제안하고 상의했다. 대강 정해지자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배우, 연출, 촬영, 스크립트, 오디오, 붐마이크, 슬레이트, 메이킹필름, 소품 등의 영화 스태프는 수강생들이 자원하거나 타천으로 결정했다. 나는 소품 담당을 자원했는데 감독님의 요청으로 시나리오 작성에도 다소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 시나리오가 거의 완성된 후 몇 주간은 배우들의 시나리오 읽기와 연기 연습이 이어졌다.촬영일자와 로케이션 장소도 상의했다. 촬영은 하루만 하기로 정했으나 실제 배우들은 보충 촬영을 할 정도로 쉽잖은 작업이었다. 촬영 내내 촬영장의 현장 분위기를 맛보고, 영화 한 편이 얼마나 어렵게 탄생되는가를 체험하였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단편영화 ‘선물’의 시사회는 흥분과 보람의 시간이었다. 영화 상영 후, 엔딩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의 감동은 전율감 그 자체였다. 그 감동을 잊지 못해 작년에도 참여하여, ‘엄마 찾아 칠십 리’라는 단편영화제작에 붐마이크를 들었다. 아, 우리집 강아지 베리도 특별출연하는 기쁨도 있었다. 올해도 절반의 수업이 지났다. 영화 주제는 만남, 내 역할은 시나리오 정리로 이미 정해졌다. 완성도 높은 작품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기대반 걱정반이다.

2023-06-14

아직도 어른을 찾는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다.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 공동체에서 발생한 폭력은 일반 사회에서 벌어진 폭력과 다르기는 하다. 가장 중요한 가닥은 아마도 가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가 많으므로, 교육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까닭이 있겠다. 하지만, 일반 사회에서 범죄가 발생해도 피의자가 미성년인 경우에는 특별하게 다룬다. 학교에 교육이라는 명제가 있다지만, 사회에도 교정과 회복이라는 까닭이 있다. 학교폭력이라 하여 과도하게 다르게 바라보고 특별하게 다루어야 할 까닭이 그리 분명하지 않다. 사회에서 범죄가 발생했을 때 공식적인 수사, 기소와 재판이라는 정교하고 치밀한 제도적 접근방법이 정비되어 있는 반면, 학교폭력이 절차에 있어 시스템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지는 오히려 미지수다. 학교폭력도 당연히 폭력이다.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맞서는 우리의 태도는 어찌해야 할까. 일본이 바다에 버린다는 물을 사람이 마셔도 괜찮을 것인지를 묻는다. 물에 오염되었을 방사능으로 인간이 건강을 해칠까 하여 불안하다. 방류의 결과가 안전하다면 일본은 왜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바다에 버린다는 것인지, 가장 중요한 질문에 속시원한 답이 아직껏 없다. 실은, 한 가지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오염수로부터 인간이 안전할 것인지를 묻기 전에 방류가 바다와 자연을 혹 무너뜨리는 것은 아닌지 누구도 묻지 않는다.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다. 물고기와 바다는 어찌 되는 것인가. 하나뿐인 지구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국제사회는 일본에 물어야 한다. 환경을 보호하고 바다를 보전하기 위하여 일본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방류가 자연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관하여 일본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방사능에 아무런 까닭없이 피폭을 당해야 하는 물고기들과 저 멋진 바다는 어찌할 것인지.다가오는 여름이 엄청 무덥겠다는 예측이 있다. 정부가 보다 분명하게 사안을 짚어내어 국민을 안심하게 하고 환경훼손을 최소로 하도록 접근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있다. 경륜이 깊고 덕망도 높은 인사들이 왜 침묵을 지키는지 안타깝기도 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적에 그런 분들이 논란의 매듭을 풀어내는 데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나라 안에 그런 분들이 사라졌다기 보다 오히려 생각깊은 사람들이 오히려 많아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다. 교육과 지식수준이 한층 높아졌으며 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이해도 우리 안에 편만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건너온 사회적 집단 경험치도 대단히 높다. 예전에 역사와 민족 앞에 깃발을 들었던 소수의 지도자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열어가는 수많은 어른들이 나라 안에 가득하다. 당시에 대결과 타도로 난제를 돌파했다면 이제는 토론과 협상으로 논리적인 해결을 이어가야 한다. 더 이상 우리 앞에 설 어른을 찾지 말아야 한다. 겪을만큼 겪었고 배울만큼 배운 당신이 이제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한다. 건강한 집단지성으로 가득한 사회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2023-06-14

세계 최고, 울릉도 리조트 코스모스

홍석봉 대구지사장 울릉군 추산리에 있는 ‘힐링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는 개장 당시부터 화제를 뿌렸다. 호화 시설과 빼어난 건축미 때문이다. 2021년, 2022년 연속 ‘월드럭셔리 호텔 어워즈 럭셔리 허니문 리조트’ 부문 최고상을 받았다. 2017년 10월 문을 연 후 4년 만에 세계 최고의 호텔로 등극한 것이다. 세계의 아름다운 건물 20개 중 7위에 오르기도 했다. 코스모스는 코오롱 그룹이 김찬중 건축가에게 맡겨 설계했다. 건축가는 버킷리스트를 꿈꾸며 현실로 만들었다.코스모스는 울릉도를 단숨에 세계적 여행 명소 반열에 올려놓았다. 오직 이 건축물을 보기 위해 울릉도를 찾는 사람이 적잖다고 한다. 콘크리트 건물로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유려한 곡선미와 인근 송곳 산의 경치가 어우러져 신비감마저 자아낸다.숙박비는 엄청나다. 특급 풀빌라(객실 5개)는 1박 숙박비가 1천만 원을 넘는다. 식사와 교통편, 관광 등 여행경비 일체가 포함돼 있다. 펜션 형태의 숙소(객실 8개)도 1박에 40만~70만 원대로 가격대가 만만찮다. 이마저 객실 수가 적어 예약이 쉽지 않다. 예약돼도 섬의 특성상 풍랑으로 이용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식사 때는 울릉도 특산물인 명이나물과 부지깽이 나물을 활용한 파스타, 호박 아이스크림 등 특선 메뉴들을 맛볼 수 있다. 코스모스는 울릉도 고릴라 캐릭터를 만들고, 야간 레이저 쇼를 선보이는 등 울릉도 관광 면모를 확 바꿔놓았다.리조트 코스모스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외교결례와 내정간섭 논란의 주인공인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코오롱 그룹으로부터 리조트 코스모스 이용 편의를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고급 호텔 이용권이 접대 수단이 되는 시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