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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탄(驚歎)에 관하여

등록일 2024-04-07 19:33 게재일 2024-04-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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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이탈리아의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와 리카르도 페드리가의 편저(編著)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첫머리에 기억할 만한 구절이 나온다. 철학은 과학이 답하지 못하는 질문을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그 하나다. 이것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명제이기에 논외로 한다. 그 둘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출발한다. “그리스인들의 철학은 경이로움에 대한 반응에서 비롯한다.”

경이로움에서 시작한 고전 그리스 철학이 오늘날 서양철학의 기초가 되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은 무척 흥미롭다. 경이(驚異)로움은 놀랍고 낯설며 비일상적이고 신이(新異)하며 익숙하지 않은 대상에서 오는 감정을 일컫는다. 경이로움을 감촉할 때 우리는 경탄(驚歎)의 소리를 내지르거나 환호한다. 예기치 못한 장면이나 상황 혹은 풍경을 연상하시기 바란다.

학창 시절 경춘선을 타고 강촌역에 내렸다. 마음속에 무엇인가 응어리져 풀리지 않은 채로 야간열차에 올라탄 것이다. 역전 부근에 있는 술집에 들어가 ‘경월 소주’와 간단한 안주를 시켜 독작(獨酌)하고 있는데, 생면부지의 사내가 맞은편에 앉는다. 나보다 너덧 살 많아 보이는, 수더분한 인상의 사내가 양해를 구하더니 자리를 잡는 것이다.

몇 잔 소주를 나눠 마시고 났을 때 그가 내게 던진 질문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살면서 경탄해본 적 있어요?!” 아주 간단한 단문(短文)의 질문이었는데, 대답할 수 없었다. 스물두 살 나이의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경탄’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경탄’이란 말을 호명하는 그가 정말 경이롭고 그래서 나는 경탄했다.

시를 쓰고 막노동을 하면서 세상을 떠돌고 있다는 그가 아주 낯설지만 경이로운 존재로 불쑥 다가왔다. 25도짜리 쓰디쓴 경월 소주와 더러 이해되지 않는 대화와 풀리지 않는 내부 인식의 혼란으로 그날 밤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문득 두툼한 철학책에서 ‘경이로움’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마주하니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다.

그랬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밤하늘을 보며 정신없이 걷다가 우물에 빠지는 바람에 하녀의 우스개가 되었다는 철학자 탈레스를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든다. 자기는 물론이려니와 거의 모든 인간과 무관하게 빛나는 한밤중의 별을 보다가 우물에 빠진 철학자라니! 그런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자라고 플라톤은 탈레스를 극력(極力) 옹호했다 한다.

탈레스가 올려다본 밤하늘의 경이로움은 어떤 것이었을까?! 별을 보고 길을 갔고, 가야만 했던 고대의 나그네를 부러워하던 낭만주의자 게오르크 루카치의 사유와 인식이 떠오르기도 한다. 혹은 ‘별 헤는 밤’의 시인이 멀리 북간도에 있는 어머니를 그리며 오래전 이국 소녀들의 이름을 하나둘 소환하는 장면도 경이롭지 않은가.

그리스 철학이 경이로움에 대한 반응에서 시작되어 연면부절(連綿不絶) 그 뿌리를 내려 오늘날 유럽의 철학적 사유의 원류가 되었다니, 경이롭기 그지없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하고, 실로 경탄하는지 새삼 생각하도록 하는 문장을 돌이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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