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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침묵의 방관자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1월 25일부터 26일까지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가 개최됐다.이번 대회는 단순한 학술대회가 아니라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만든 것이다. 이것은 각자도생의 삶을 넘어서 새로운 학술제도 및 문화를 수립하겠다는 공동선언에서 알 수 있듯 대한민국 일반의 문제를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도 이번 대회에 작은 힘이나마 함께 하며 2주에 한 번씩 온라인 회의를 하는 강행군에 동참했다. 처음 줌 회의에 참석했을 때 참여자의 다수가 나보다 어린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대회 첫째 날 논평자로 대회장을 찾았다. 내가 논평을 맡은 세션이 되어 앞쪽 무대로 나가서 대회장 전체가 시야에 들어오자, 객석의 2/3 이상이 나보다 어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그때야 내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어느 학문 공동체나 직급과 성별, 지역에 따른 위계가 존재한다. 그 위계란 공동체 구성원 스스로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50대 중반 이상의 남성 전임교수가 만든 것이다. 나는 경험적으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그렇지만 이번 대회에 참석한 나보다 어린 후속세대를 눈앞에서 바라보니 ‘50대 이상’ ‘남성 교수’라는 대상을 여전히 겨냥하는 것은, 동조자의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나도 후속세대가 아니라 기성세대라는 현실을 잊고 있었던 탓이다. 수많은 후속세대가 보기엔 나도 지금의 위계를 만들어 낸 사람일 뿐이다.2월 7일 우리 대학의 총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마다 다양한 공약을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교수, 직원 등 투표 당사자의 마음을 사는 정책이 가득하다. 신임 교수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정책도 빠지지 않는다. 4년 전 총장 선거 당시에도 신임 교수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정책이 발표되었지만, 뭐 하나 바뀐 것은 없다. 의사결정을 하는 당사자는 신임 교수가 아니고 보좌진은 결정권자의 심기를 건들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한편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분주하다. 양당 정치를 끝장내겠다는 제3지대가 얼마나 정치적 파급력을 갖게 될지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올드보이’의 귀환이 속속 발표되는 가운데 젊은 초선 의원들은 연달아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예비후보 가운데 20~30대는 4.2%, 40대는 13.5%에 불과하다. 젊은 정치인을 배출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정치구조를 비판하며, 기성 정치인의 양보(?)를 기대하는 것은, 지금의 현실이 증명하듯 불가능한 일이다.결국 필요한 것은 기존 공동체의 문법을 벗어나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사람들의 연대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사람들이 모여서 현대문학자대회를 개최했다. 나를 포함한 40대는 중간 세대로서 기성 문법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히 새로운 공동체 구축을 위한 노력을 할 것인가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의사결정권자 탓만 하는 방관자가 돼서는 안 된다.

2024-02-05

울릉도 눈(雪)축제사전홍보부족…공무원 열정·기획·구성은 성공

김두한 기자 경북부 울릉도 눈 축제가  ‘가족·연인·친구와 함께하는 설(雪)렘 가득 울릉도 눈 체험’을 주제로 나리분지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아쉬움을 남겼다. 14년 만에 부활한  올해 눈 축제는 지난해에 이어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개최된 부활 두 번째 눈 축제로 나리분지에 많은 눈이 쌓인 가운데 개막식에 눈까지 내려 의미를 더했다. 하지만, 개막식에 200여 명이 참석해 분위기가 설렁했다.  이런 가운데 울릉군 공무원들의 열정, 많은 눈, 기획과 구성, 진행은 나름대로 작은 성공은 거뒀다는 평가다.  그러나 울릉도 눈 축제는 참가자가 많은 게 전부가 아니다.  울릉도 축제는 예산대비 인원동원 등 가성비는 전국에서 가장 꼴찌 수준이지만 축제를 반드시 개최해야 한다. 그 이유는 울릉도 홍보에 있다. 울릉도 축제는 언론노출이 육지 축제보다 훨씬 많다. 이번 울릉도 눈 축제도 뉴스 공급사인 연합뉴스, KBS,  MBC, 조선일보 등 50건  이상 언론에 보도됐다.  이 같은 언론 노출은 최소 10만 명 이상 몰려드는 축제보다 많기 때문에 수십억 원의 광고를 효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눈 축제는 사전 언론 홍보가 없었다. 이번 울릉도 눈 축제는  지난 1일부터 개최됐지만, 지난달 23일까지 언론보도는 지방지 1~2건 정도에 그쳤다. 올릉도 축제는 전국민들을 대상으로 관광객 유치전을 펼쳐야 한다. 전국 언론을 대상으로 축제 홍보자료를 배포해야 한다.   울릉군은 처음부터 보도 자료를 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본지가 울릉군의 언론 보도 미흡을 지적하자 급기야 1월 24일 축제 홍보 자료를 냈다. 하지만  이미 홍보의 데드라인을 훨씬 지났다. 서울, 경인지역이나 전국에서 참가하려면 최소한 한 달 전에 계획을 세워야 한다. 따라서 울릉도 눈 축제 일정이 잡히면 곧바로 보도 자료를 내야 참가자들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런 일정은 최소한 2~3개월 전에 계획이 확정된다.  이때부터 홍보에 들어가야 축제에 참가할 국민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축제 관광객 유치도 중요하지만 홍보기사가 전국 언론에 게재되는 것만으로도 울릉도는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며 축제가 개최된다는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축제 참가 인원수가 적어도 수십억 원의 광고 효과 이미 봤기 때문에 행사는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눈 축제는 개최 며칠 전까지 대 언론 홍보는 묵묵부답이었다. 울릉군은 그들만의 찬치를 하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울릉도의 축제는 육지에서 쉽게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관광객 유치보다 울릉도 홍보가 목적이어야 한다. 10억 원을 들여 축제를 한다고 해도 100억 원 광고 효과를 내면 축제는 성공한 것이다.  울릉도 축제를 주관하는 공무원들은 안일한 생각과 단순한 홍보로 그들만의 축제로 만들 것이 아니라 수백억원의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4-02-05

결정장애인가, 노회한 전략인가

김진국 고문 총선이 65일 앞으로 다가왔다. 두 달 남짓이다. 그런데 선거법도 선거구도 준비가 안 돼 있다. 어디로 갈지 아직 모른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저울질만 하기 때문이다.공직선거법에는 “국회는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해놨다. 당연히 그 틀인 선거제도도 그 전에 마무리되어야 한다. 다 이유가 있다.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이해관계가 분명해진다. 반발도 크다. 여야 합의가 쉽지 않다. 그러니 이해관계가 첨예하지 않을 때 규칙을 정리해놓으라는 뜻이다.더구나 이번에는 개정 이유가 분명하다. 2020년 총선은 사기극이었다. 이유야 어떻건 법에서 정한 규칙의 취지를 거꾸로 뒤집었다. ‘준연동형’은 국민이 준 표의 비율에 가깝게 국회 의석을 배분하겠다는 것이다.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원이 많으면 비례대표는 적게 주고, 반대의 경우 비례대표를 더 주는 제도다. 그런데 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내세워 작은 정당들이 가져갈 의석까지 싹쓸이했다.21대 국회가 출범하자마자 고쳤어야 했다. 연동형이 살아나도록 위성정당을 막든지, 아니면 연동형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임기가 끝나도록 방치했다. 무엇이 유리한지 계산기만 두드렸다. 국민의힘은 병립형을 고수했다. 병립형(竝立形)이라는 뜻은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따로 간다는 말이다. 지역구에서 의석을 얼마를 얻었건 비례대표를 결정하는 데는 영향이 없다. 정당투표에서 얻은 비율만큼 비례 의석을 배분한다. 연동형(連動型)은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서 지역구 의석만큼 빼고 비례 의석을 나누는 방식이다.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이 많으면 비례 의석을 적게 받고,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이 적으면 비례 의석을 더 받는다.21대 총선에서 서울지역을 예로 들어 보자. 민주당 지역구 후보가 얻은 표는 53.63%,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는 42.08%였다. 득표율대로라면 각각 26석과 21석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41석(83.7%)과 8석(16.3%)을 얻었다. 민주당은 15석을 더 가져갔고, 국민의힘은 13석이나 손해를 본 셈이다.서울의 비례 의석을 20석이라고 가정하면 전체의석은 49석. 득표 비율대로라면 민주당은 37석, 국민의힘은 29석이다. 연동형으로 비례 의석을 나누면 민주당은 이미 41석을 얻었으니 한 석도 못 받고, 국민의힘은 20석을 모두 가져간다. 결과는 41대 28이 된다.문제는 위성정당이다. 위성정당 때문에 이런 의도가 빗나갔다. 국민이 투표한 결과에 가까운 순서대로 나열하면 이렇게 된다.연동형>준연동형>병립형>위성정당을 못 막는 연동형.그러니 준연동형을 도입한 명분이 오히려 후퇴했다. 병립형보다 못하다. 위 순서에서 뒤로 갈수록 거대 양당이 가져갈 의석이 많아진다. 개정 방향은 분명하다. 위성정당을 막는 조항을 추가해 연동형의 취지를 살리거나,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국민의힘은 처음부터 병립형을 고수한다. 군소정당에 의석을 나눠주면 결국 정의당 같은 민주당의 우당(友黨)만 생긴다는 생각이다. 이준석 신당도 반갑지 않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 때 위성정당을 막아 준연동형을 살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욕심이 생겼다.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고 말했다. 병립형으로 돌아가거나 위성정당이 가능한 현행법을 방치하는 것이다.사실 위성정당을 금지해도 비례 의석을 받을 민주당 우당(友黨)이 많다. 야권비례연합정당 제안도 있다. 군소정당과 비례연합을 하면 수도권 선거 등에서 공조해 진보 표를 결집할 수도 있다. 비례에서 양보하는 이상으로 지역구에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보수진영과는 다르다. 그런데도 이 대표가 고민한다. 대선만 생각한다. 이낙연당이나 지난 대선에서 당락을 바꾸는 표를 잠식한 정의당에 의석이 가는 게 싫은 모양이다.선거법은 합의 처리가 불문율이다. 패스트트랙에 태울 시간도 없다. 국민의힘이 병립형을 고수하는 한 법 개정이 어렵다. 이 대표가 책임지고 결단해야 한다. 결정 장애인지, 못 이긴 척 더 많은 의석을 노리는 욕심인지 알 수가 없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2-04

‘운동권 청산’과 ‘검사 독재 청산’의 격돌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총선 60여 일 전이다. 총선 전반전은 여야의 고질적인 격돌구도이다. 선거구도 면에서 양대 정당 사이에 여러 개의 신당이 창당된 것이 달라진 점이다.이들 제3의 정당이 약진하여 양당의 갈등구도를 완화시킬 지는 미지수이다. 현재는 여당과 야당에서 이탈한 세력끼리 통합하여 합종연횡을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아무래도 이들이 하나의 빅 텐트를 치기는 어려운 정황이다. 여야의 공천관리 위원회는 후보 공천의 ‘공정성’을 강조하지만 공천 탈락자들이 상당수 신당 참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여당은 선거 사령탑이 한동훈 비대위원장으로 교체되었지만 야당은 이재명 대표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의 대표적 선거 슬로건은 ‘운동권 청산’과 ‘검사 독재 정권 청산’으로 집약되고 있다.이러한 선거 슬로건은 여야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다. 이러한 상대를 청산제거하려는 정치 프레임은 시대에 뒤진 선거 전략이며 민생 문제 해결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개딸 전체주의 비판의 연장선에서 ‘86 운동권 청산’을 여당의 총선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86세대란 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60년대 출생의 학생 운동권 세력을 지칭한다. 집권 여당은 시대에 뒤진 운동권 부패 기득권 세력의 청산이 시대정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80년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학생 운동세력이 이제는 기득권 세력으로 전략했기에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생과 개혁을 외면하고 특권 카르텔을 형성하여 ‘내로남불’의 정치를 일삼는 운동권 세력을 제거하자는 취지이다.이러한 주장이 보수 강경층의 절대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당은 운동권 출신 공천 지역에는 경제 전문가 등을 후보로 내세워 선거 승리를 획책하고 있다.운동권 출신 민주당 정청래 후보에 김경율, 임종석에 윤희숙, 윤건영에 태영호, 김민석에 박민식 후보를 내세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집권 여당의 운동권 청산이라는 선거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할지는 판단하기 이르다.민주당은 이에 대해 ‘검사 독재 청산’을 전면에 걸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신년 기자 회견에서 현 정부를 ‘검사정권’으로 규정하고 이의 청산을 선거 슬로건으로 내걸었다.민주당은 운동권 세력청산은 과거 군사 독재권 시절 사용했던 낡은 구호라고 맞서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입신 출세만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한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있다.운동권 세력은 엄혹한 군부 독재시절 자신의 출세나 영달까지 포기하고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들은 군부 독재에 대항하여 민주화에 이바지한 자신들의 역할과 공헌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검찰독재 청산이 시대적 과제라고 강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계나 관계, 심지어 국영기업체에 수많은 검찰 출신이 포진된 것은 사실이다. 야당은 대통령 부인 특검 거부와 명품 선물 사건에 대한 수사 부진도 검찰 독재 정권과 연관시켜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상대를 청산하기 위한 선거 프레임은 보수나 진보 진영의 결속을 다지는 데는 일정 부문 기여할 지는 몰라도 선거의 정책적 이슈는 적절치 못하다.보수 정당의 운동권 세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오늘 갑자기 등장한 문제가 아니다. 야당 역시 정권 심판론을 총선의 단골 메뉴로 부각하였다. 야당의 검사 독재 청산도 정권 심판의 연장선상에서 그 청산대상을 분명히 했을 뿐이다.결국 운동권 심판이나 검찰 독재 심판은 상대를 타도하기 위한 선거 전략일 뿐이다. 시대에 뒤진 이러한 네거티브 프레임이 등장한 것은 여야의 극한 대결 정치가 초래한 당연한 귀결이다.최근 야당 대표와 여당 의원의 정치 테러 사건도 이러한 증오의 정치가 초래한 일 단면이다. 여야 정치권이 아직도 처절한 자기반성 없이 네거티브 정치에 매몰된 것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나타낼 뿐이다.여야의 이러한 반목적인 선거 프레임이 4·10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러한 선거 전략이 중도층 표심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슬로건은 자기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집권 여당 내에도 80년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있으며 민주당에 상대적으로 많이 있을 뿐이다.야당이 윤석열 검사 독재 정권 청산을 슬로건으로 걸었지만 민주당 내에도 검사출신 정치인은 여러 명 있다. 총선 구호로 상대를 제거하려는 네거티브 프레임은 건전한 정책 대결을 막는 장애물이다. 이러한 상호 거부적 분열적인 선거 프레임으로 건전한 표심을 끌 수 없다.기후 위기와 인구 절벽, 안보와 민생 위기 등의 거대 담론도 총선 공약에는 통하지 않는다. 흔히 사용했던 포퓰리즘적 정책이나 안보 이념 프레임도 이제 쉽게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회의원 정수 축소, 세비 삭감, 의대입학 증원, 육아 비 지원, 교통비와 물가 등 민생 문제가 표심을 흔들 가능성이 높다. 여야 공히 네거티브 선거 전략부터 걷어 치워야 한다.

2024-02-04

교수의 정년 퇴임 정당한가?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필자는 포스텍 명예교수회(APPE·Association of Postech Professors Emeriti) 사무총장으로 매년 쏟아져 나오는 명예교수들을 APPE에 가입시키고 명예교수회의 행사를 진행하는 일을 하고 있다.65세 기준으로 강제 퇴임 당하는(?) 교수들을 매년 수십명씩 보고 있고 그 인원은 이제 100명을 넘어 200명을 향해 가고 있다.필자도 포스텍을 정년퇴임하고 타 대학 특임 교수를 하고 있고 일부 교수들이 계속 전문성을 유지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요즘 퇴직 교수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직종들은 65세가 넘어도 모두 여러 가지 형태로 일을 계속 하고 있거나 계속 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강하다.그러나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교수들은 그 아까운 지식과 지혜가 사회나 교육계를 위해 사용되지 못하고 사장되고 있는게 안타까울 때가 많다.미국이나 캐나다 등 많은 서구 국가들은 강제퇴임 규정이 없다. 종신직(Tenure·테뉴어)을 받은 교수들은 본인이 원할 때까지 대학교수를 계속 하면서 가르치고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을 최근 방문했을 때 거의 40년 전 필자를 가르쳐준 스승들이 아직도 80대 나이에 가르치고 연구를 활발히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러한 활동은 그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었고 전문성은 여전히 대단한 수준이었다. 퇴임 교수들이 캠퍼스에서 고별 강연을 하고 퇴임식을 하고 몸은 떠나지만 대학을 마음에서 떠나 보내는 교수는 없을 것 같다.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연수회에 초대되어서 강연할 기회가 있으면 항상 현직 후배 교수들과 어울리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학교, 학과발전에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여주었다.내 마음의 소리는 “아직 나는 시니어가 아니다. 나는 현역이다”라는 마음이었다. 대부분의 은퇴교수들의 마음은 현역일 것이다. 이제 캠퍼스를 떠나 바깥사회로 나가는 교수들의 아쉬운 마음을 읽을 수 있다.“어제는 봄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특별한 볼일 없이 학교에 들렀다. 왠지 ‘교수로서 마지막 날을 학교에서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라는 생각 때문인가? 공식적인 정년퇴임식을 갖고, 곧 바로 연구실을 정리했다.후배 교수들과 연구실 제자들이 마련한 고별강연을 마치고 오늘부터 진정한 백수(?)가 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지난 세월 석박사 제자들이 함께 지냈던 학생연구실을 둘러보았다”퇴임 교수들에게 마지막 학기, 마지막 강의, 마지막 지도학생 등 ‘마지막’이란 단어는 만감을 교차케 한다. ‘고별강연’이라는 행사가 있다.그 교수가 전공한 분야에 대한 마지막 강연을 캠퍼스에서 학생, 교수, 직원들을 상대로 하는 강연이다.대부분 전공강연으로 끝나지 못한다. 걸어온 인생을 반추하는 시간은 그 전공분야의 흥망성쇠 와 결을 같이 한다. 그들의 눈가는 젖고 희끗희끗한 머리는 강연을 듣는 제자들의 검은 머리위에 내리비춘다. 만감이 교차한다.“언제나 삶은 서툴 수밖에 없다. 교수생활도 항상 서툴다. 좀 더 마음과 감성과 지식을 새롭게 성장시키려 했던 나날인 듯하다. 알게 모르게 함께 한 사람들을 기쁘게도 했겠지만, 또한 알게 모르게 많은 실수를 하고, 사람들을 섭섭하게도 했을 것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았을 저의 서툰 삶을 관대하게 포용해 주시길 기원해 본다”이런 퇴임사를 할 때 사실 그 은퇴교수의 마음은 어떨까?떠나면서 강의실, 실험실, 책상, 걸상 그리고 캠퍼스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그들을 보면서 왜 이들이 여전히 연구와 교육의 열정을 갖고 있는데 이런 아쉬운 마음으로 떠나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포스텍 캠퍼스에는 길마다 길이름 표지판이 있다. 학생회관에는 만국기가 휘날린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길을 걸으며 그리고 세계적 인재를 꿈꾸는 새내기 인재를 만날 때마다 그 표지판과 만국기를 걸던 순간이 떠오른다.아직도 은퇴한 시니어 교수들의 애교심과 연구 교육에의 정열은 주니어 교수들 아니 그 누구보다 강렬하다.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애쓰는, 그래서 지혜를 사회와 국가 발전을 위해 오늘도 시니어 아니 시너이 교수들, 은퇴 교수들은 뛰고 싶다.이제 시니어는 사회와 국가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세대로 자리잡고 있다. 교수의 정년과 강제 퇴임은 이제 손을 봐야 할 때가 왔다. 과거 교수가 철밥통일 때와는 달리 이제 교수들은 연구를 통해 생존하고 있다.그 연구자들이 일시에 연구실과 장비를 반납하고 길거리에 내 앉는 교수강제 퇴임은 전면 재고되어야 한다. 100세 시대의 65세 은퇴는 한창 연구와 교육에 완숙한 경지에 들어서는 시니어 교수들에게는 맞지 않는 제도이다.필자도 특임 교수로 있는 대학에서 포스텍 보다 더 좋은 강의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대에서 포스텍으로 그리고 울산대로 옮겨간 70학번 전국대학 예비고사 수석의 한 교수가 생각난다. 아마도 그와 같은 교수들에게는 정년퇴임은 영원히 필요없는 제도일 것이다.

2024-02-04

몸과 마음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이며 반전 반핵을 앞장서 주창하고 실천한 행동파 지식인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의 ‘종교와 과학’(1935)을 읽노라면 흥미로운 사실에 이르게 된다.호모사피엔스라 불리는 인류가 맨 처음 주목한 대상이 별이라는 것이다. 칠흑처럼 아득한 밤하늘에 홀로 애처롭게 빛나는 별을 바라본 인간이라니!까마득한 옛날, 밤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갔고, 가야만 했던 고대인(古代人)을 부러워했던 게오르크 루카치(1885∼1971)의 ‘소설의 이론’(1920)에서 별은 얼마나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그려졌던가! 가혹한 생존 조건에서도 직립보행자의 특권이자 의무로써 하늘을 우러렀던 인류는 그에게 부여된, 거룩하되 고단한 숙명을 온전히 받아들인 것이다.지구에서 달까지 거리가 약 38만km, 지구와 화성의 근일점이 약 5천500만km, 원일점이 3억8천000만km인 점을 고려한다면, 은하계에 떠 있는 깨알 같은 별까지 거리는 얼마나 멀겠는가?! 그렇지만 인간은 머나먼 하늘을 우러르면서 점성술과 천문학을 발전시키며 과학의 길로 접어든다. 그런 인간이 가장 늦게 들여다본 대상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다.에테르를 이용한 최초의 마취 수술이 시연된 해가 1846년이니, 불과 180년 전이다.알렉산더 플레밍(1881∼1955)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이 1928년이며, 플로리와 체인이 페니실린을 약으로 만들어 임상에 투여한 해가 1941년이다. 1943년부터 상용화된 페니실린은 제2차 대전에서 숱한 인명을 구했으니, 불과 80년 전의 일이었다.인간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천착한 지기스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꿈의 해석’을 출간한 1900년 이후 우리는 칼 융(1875∼1961)과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 같은 심리학자들 덕분에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무의식과 잠재의식과 만난다. 태곳적부터 아스라한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던 인간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장 늦게 들여다본 이유는 무엇일까?!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이 몹시 아프고 고단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나의 마음과 육신을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론을 서두르면, 아는 바 없다는 사실이다. 아침에 깨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언제나 함께하는 영혼과 육신을 알지 못한 채 장구한 세월을 살아왔다는 사실에 아득해지곤 하는 것이다.여기저기 아프고 괴로우면 병원에 들러 의사에게 진단받고 처방전 얻어 약국에 들르는 것이 고작이다. 대체 어떤 이유로, 어떤 구조적인 문제로 육신과 마음이 무너져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는 게 더욱 심각한 일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학교만 다닌 나 같은 인간의 완전한 무지와 완벽한 무능함에 화가 치밀어오를 지경이다.건강기능식품이 설 명절 선물 1위라는 전갈에 화들짝 놀란다. 다들 건강에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어디가 어때서 건강기능식품이 필요한지, 알고 있을까! 국민 전부가 ‘건강병 환자’가 되어버린 2024년 우리 현실이 조금은 뜨악하게 다가온다. 창밖에 겨울의 찬비 내린다.

2024-02-04

총선 두달 전인데 ‘선거구·비례제’ 아직 표류

4월 총선에 적용될 선거제(비례의석 47석 배분방식)와 후보들이 뛸 선거구가 아직도 확정안돼 유권자나 후보자 모두 혼란을 겪고 있다. 여야는 지난주 정치개혁특위 전체 회의를 열어 선거구 획정에 대한 합의안을 마련하고 6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킨다는 계획이었지만, 회의를 취소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텃밭 선거구’ 존속을 고집하면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이로인해 총선을 두 달여 앞둔 시점에서도 후보자는 어디에 출마할지를 모르고, 유권자는 어느 선거구에서 투표할지 알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여야 모두 이번 주중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한 채 “설 이전 합의는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비례대표 배분방식을 결정짓는 선거제 논의도 진척되지 않고 있다. 선거제는 원칙적으로 선거 1년 전에 확정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선거제 확정 지연은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직무유기”라며 비례대표제의 신속한 확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먼 산 보듯 하고 있다.민주당은 현행 연동형 선거제(지역구에서 많은 당선자가 나올수록 비례 당선자는 줄어드는 방식)를 유지할지, 병립형 선거제(지역구와 비례를 각각 따로 뽑던 과거 방식)로 되돌릴지를 두고 그동안 결정을 미뤄왔다. 민주당은 4년 전 국민의힘 반대에도 연동형 선거제 법안을 강행 처리했는데, 이번 총선에서는 의석수 손해를 볼 것 같다는 계산이 나오자 고민하는 것이다.민주당의 경우, 비례대표 선거제 방식 결정을 당 대표에게 위임한 만큼 열쇠는 이재명 대표가 쥐고 있다. 여당도 지적했지만, 이 대표가 당리당략에 빠져 선거제 결정을 계속 미루는 것은 원내 1당의 직무유기나 마찬가지다. 이러니 비례대표제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지금은 각 당이 공천 심사까지 개시한 상황 아닌가. 이 대표는 더는 주판알을 튕기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선거제에 대한 매듭을 지어야 한다. 국민 참정권을 특정 정당의 볼모로 잡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2024-02-04

포스텍 제2건학, 세계 톱대학으로 거듭나길

포항에 소재한 명문 공과대학인 포스텍이 1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환골탈태를 시도한다.지난달 30일 학교법인 포항공과대학교는 이사회를 열고 포스텍 2.0 제2건학 추진 계획안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2033년까지 10년간 총 1조2천억원을 투자해 세계 정상급 대학들과 어깨를 겨누는 대학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1986년 비수도권의 소규모 사립학교로 출발한 포스텍(포항공대)은 이른 시간에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하나로 성장했다. 2010년에는 세계대학 평가에서 국내대학 최초로 28위에 오르는 쾌거도 이뤄냈다. 개교 초기 학교법인의 공격적 투자로 우수 인재를 모으고 세계적 연구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던 때문이다.그러나 갈수록 심화되는 수도권 집중과 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수입구조가 줄고 일부 교수들이 학교를 떠나는 등 학교운영에 어려움을 겪어 오면서 카이스트 등 4대 과기원과 합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포스텍 제2건학 추진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현재의 위기 상황을 타파해 개교 당시의 명성 회복과 더불어 세계 최고대학으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국내 최초로 교수정년을 70세로 늘리고 성과급 차등 지급을 통해 교수연봉도 최대 2배 이상 올린다. 또 학부 학생에게 1천만원 상당의 바우처를 지급하고, 연구시설 확충, 교수아파트, 기숙사 등도 새롭게 정비한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석학들도 모셔와 연구중심 대학으로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것이다.포스텍의 세계 일류 지향은 포항시민의 희망이며 자부심이다. 이번 제2건학이 반드시 성공해 지방소재 대학도 세계 일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길 바란다.포스텍의 건학이념은 국제적 수준의 고급인재를 양성해 연구결과를 산업체에 전파함으로써 사회와 인류에 봉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1968년 기술 불모지인 한국에 포항제철을 세운 불굴의 정신처럼 포스텍의 제2건학 추진이 글로벌 시대를 선도하는 대학의 모습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2024-02-04

존경하는 직업

우정구 논설위원 직업에 대한 선호도는 사람과 나라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존경하는 직업과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직업 간에는 차이가 날 수가 있다. 그러나 존경하는 직업에 대한 생각은 나라와 개인에 관계없이 비슷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는 간호사, 소방관, 의사, 교사 등이 꼽힌다. 캐나다서도 가장 존경받는 직업은 응급구조사, 소방관, 간호사 등이다.조금 오래된 조사이긴 하나 우리나라도 인천의 모 대학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소방관이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 밝혀졌다. 2년간 수도권 학생과 성인 등 1천여 명을 대상으로 44개 직업군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결과다. 신뢰성, 존경도, 국가사회공헌도, 청렴도, 준법성 등에서 소방관이 10점 만점 중 8.14점으로 1위다. 재미있는 결과는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은 4.17점을 받아 직업군 중 꼴찌다.소방관과 간호사 등이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직업군으로 꼽히는 이유는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간호사, 의사 등은 코로나 사태가 영향을 많이 준 것으로 분석이 된다.일찍이 조선시대 때도 전문 소방기관인 금화도감(禁火都監)이 있었다. 화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잘못 관리하면 국가적 재앙으로 치달을 수 있기에 국가기관으로서 중요성이 인정돼 왔다. 그러나 중요성만큼 소방관에 대한 처우와 사회적 관심이 뒷받침되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의문이다.문경 육가공공장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두 소방관의 희생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존경한다는 소방관이란 직업에 대해 우리사회는 과연 어떤 예우나 격식을 갖추고 있는지 반성이 필요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2-04

대통령 부인의 명품백 수수 핵심 문제는

유영희 작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정무위원회가 열렸다. 정무위원회는 국회의 상임위원회 중 하나로 권익위원회 등 국무총리 직속 기관에 속하는 여러 기관을 관할한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문제가 현안으로 상정되자, 국민의힘 정무위원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명품 옷과 귀금속,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도 마찬가지 아니냐며 바로 전원 퇴장해 버렸다.그 후 진행된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들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와 관련하여 질의했는데, 류철환 권익위원장은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대통령기록물로 이관되었다는 답변만 했다. 이런 회의 태도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국회의원들의 회의 수준이 너무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나는 대학에서 강의할 때 토론을 꼭 챙겨서 수업하기도 했고, 여러 토론대회에서 심사를 맡기도 했다. 아카데미 토론을 많이 하면, 논리적 사고도 길러지고 잘 지는 법도 배우게 되어 건강한 대화 문화를 만드는 힘이 성장한다. 토론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말싸움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은 토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된다. 아무리 정치라도 무조건 나만 이겨야 한다고 하면 정국은 진흙탕이 될 수밖에 없다.문제에 집중하는 것 역시 무엇이 옳으냐와 직결된다. 상대가 제기한 토론 쟁점에서 벗어나는 다른 주제를 꺼낸다든지 상대의 사람 됨됨이를 트집 잡는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옳은 것을 찾아가는 데 걸림돌일 뿐이다. 상대 주장에 간결하고 명료하게 질문하는 것 역시 상대방의 허점을 드러내는 데 큰 역할을 하므로 매우 중요하다. 이런 아카데미 토론을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으나 그 기본 정신은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 때문이다.그러나 오로지 국민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정무위원들의 회의 모습은 이런 토론의 원칙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의에서 벗어나는 주제를 꺼내든 것은 논점을 일탈한 것이고, 자진 퇴장한 것 역시 대화를 거부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안건을 다루는 방식에도 문제는 있다. 명백한 근거가 있는 내용도 괜히 질문으로 시작하여 발언 시간을 초과하는 의원이 대다수고, 설득력 있게 논증을 이어가지 못하고 혼자 마음대로 결론 내는 모양새를 자주 보였다.대통령실의 ‘몰카 정치 공작’이라는 입장도 논점에서 비껴가 있다. 정치 공작이든 아니든 대통령 부인이 일반인에게 300만 원짜리 명품백을 받은 것이 적절한가 하는 것이 핵심문제다. 명품백을 준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를 문제 삼는 것도 인신공격의 오류이다.학교에서 토론을 많이 해도 정치인들이 건강한 토론 문화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오는 7일 대통령은 KBS와 방송 대담 형식으로 국정 운영 구상을 밝히면서 부인의 명품백 문제도 설명할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핵심 문제에 대한 입장이 꼭 나오기를 바란다.

2024-02-04

스마트 팩토리와 현장 개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18세기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촉발된 산업혁명은 기존의 수공업 중심으로 소량생산 하던 제조업을 기계를 활용한 대량생산 체계로 완전히 전환시켰다. 이후 사람은 표준화 단순화된 동작을 반복하며 벨트 컨베이어에 붙어서 조립하는 포드생산방식으로 생산성이 향상되어 대량생산은 더욱 가속화되고 발전한다. 결국 이렇게 산업혁명으로 확산된 대량생산은 소비보다 많은 생산을 유발하여 제품이 남아돌아 팔리지 않게 된다. 결국 경쟁력이 없는 회사는 이익이 줄고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그래서 대량생산을 하면서도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때 필요한 양 만큼 생산한다는 사상으로 고객이 주문한 물건만 후공정인수방식으로 생산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도요타생산방식이다. 이는 수요를 예측하고 대량으로 제품을 생산하여 저장해두는 과잉생산의 낭비를 없애고 앞 공정은 후공정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만을 생산하도록 함으로써 공정 내 재고를 줄이고 생산 시간을 단축하여 원가를 낮추었다.1970년대 1,2차 오일 쇼크로 많은 제조업이 도산하는 시기에도 도요타가 지속적인 이익을 창출하자 미국의 MIT공대에서 이를 연구하여 탄생한 것이 린생산방식이다. 이는 재고를 최소화하고 고객의 수요에 따라 생산을 조정하여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낭비없이 생산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후 맥도날드, 보잉, 삼성, 기아 등 유수의 기업들이 린생산방식을 도입하여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였다.2011년 독일이 자국의 기초기술과 자동화, 통신, 인공지능 클라우드 소싱 등의 기술을 통합하여 인더스트리 4.0으로 발표한 것이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이다. 현재는 더욱 발전하여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로봇 기술을 활용하여 고객이 주문한 제품을 편차없이 유연하게 생산하기 위한 수단이며 제조원가를 절감하여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한 생산방식이다.스마트 팩토리는 생산라인을 가동하여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각종 센서에서 얻어지는 데이터로부터 출발한다. 생산과정에서 측정된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플랫폼에 저장되고 자동으로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측 모델과 알고리즘을 통해 선행제어 이상과 예방 조치 하는 방법을 스스로 학습하여 수준을 높여간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하고 편차 없는 데이터의 측정이며 현장직원들이 참여해야하는 부분이다.지금까지 현장 직원들의 개선 활동이 설비를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마이머신 활동을 통해 고장을 예방하여 필요할 때 정상적으로 가동하게 하였다면 스마트팩토리에서는 기존의 활동에 현장 설비에 설치된 각 종 센서가 고장없이 정확한 검출을 할 수 있도록 센서 주변의 환경개선과 정도 향상 활동을 추가해야 한다.아무리 지능화된 예측모델과 알고리즘이라도 측정되는 센서가 에러를 일으키거나 측정값이 정확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생산라인은 적게는 수백 개 많게는 그 수를 정확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센서에 의해 데이터가 측정된다. 향후 스마트 팩토리가 발전하면 할수록 이러한 센서의 중요성은 더 커지므로 센서에 대한 개선 활동도 함께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2024-02-04

사랑의 온도를 높이자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여러 가지 이웃돕기 성금 모금 행사가 이루어진다. 올해도 사회복지 공동모금회는 전국 17개 시·도 곳곳에 빨간 사랑의 열매가 그려진 ‘사랑의 온도탑’을 세우고 작년 12월 1일부터 올해 1월 31일까지 62일 동안 ‘기부로 나를 가치 있게/ 기부로 세상을 가치 있게’라는 슬로건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향한 온정의 손길을 모았다. 현금이나 의류 등 현물로도 사랑의 열매를 거두며 목표액의 1%가 모아질 때마다 사랑의 온도가 1도씩 올라가는 사랑의 온도탑은 2주 전에 일찌감치 전국 목표액 4천349억을 초과 달성하여 최종 109.6도를 기록하고 우리 국민의 이웃사랑 실천의 힘을 보여주었다.모인 기부금은 지역사회 안전지원을 기본으로 저소득 가정과 사회 돌봄, 교육 및 자립지원에도 나누어져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복지인프라 구축 등에 쓰이고 있다.포항은 16억5천, 경주는 8억원의 목표치를 넘었고, 경북은 서울 부산 충북과 함께 45여 일 만에 100도를 조기 달성했었지만 대구 등 몇몇 지역은 목표 달성에 마음을 조여야했다.이는 최근 경기부진으로 기업과 자영업자의 참여가 적어서 기부 한파(寒波)가 닥쳤다고 하지만 고액 기부금뿐만 아니라 십시일반의 사랑을 보여준 개인 참여가 과반을 넘어 100도 돌파에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뒤집고 목표달성을 향한 사랑의 불꽃을 활활 피웠다. 여기에 안동의 85세 어르신은 빈병을 팔고 자식들의 용돈을 보탠 45만원을, 상주의 80세 어르신은 5년 동안 모은 동전 수천 개로 70만원을 기부하였다는 훈훈한 얘기도 들린다.흔히 우리는 기부 선행을 원할 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즉,‘가진 자들의 선행(善行)’을 기대하고 있지만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아웃을 도와 달라며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기부 나눔 문화를 확산해가는 단체는 적십자 희망나눔 성금을 비롯하여 민간 아동복지전문기관인 ‘초록우산’과 글로벌 아동권리전문 NGO인 ‘굿네이버스’, 홀트아동복지회 등이 있어 꾸준히 아동들의 행복을 위한 보호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작년 1월부터 시행된 ‘고향사랑기부금’도 목표액 65억보다 약 40% 많은 90억이 모아져 저출산과 고령화에 의한 지방소멸 위기대응책을 세우고 주민 복리와 청소년 육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전국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소식을 듣고 포항 사랑의 온도를 살펴보려 포항시청 앞 광장에 갔더니 작년 12월 5일 세워졌던 빨간 사랑의 온도탑은 치워지고 없었다. 벌써 100도를 달성한 탓일까? 쌀쌀한 날씨에 사랑의 열매를 헤아릴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 사랑의 흔적을 볼 수 없어 섭섭했다.아침에 베란다에서 똑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기에 살펴보니 꼭 잠그지 못한 수도꼭지에서 작은 물방울이 밤새 떨어져 커다란 물통에 가득 고여 있었다. 적수성연(積水成淵)-작은 물방울이 모여 연못을 이루듯 시민들의 작은 정성이 사랑의 온도를 높여가면 우리사회가 더욱 따뜻해질 것이다. 가득 고인 물을 떠서 목말랐을 화분에 뿌렸더니 꽃잎에 생기가 돈다.

2024-02-01

산업화와 민주화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나라로 평가 받는다.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길항의 관계이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상보적 역할을 해왔다. 산업화로 인한 경제발전이 민주화의 바탕이 되었고, 민주화가 가져온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한 단계 높은 산업화를 가능케 한 거였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도 “민주화란 산업화가 끝나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했다.소위 ‘운동권’에서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반민주 독재자로 매도하지만, 사실 산업화도 민주화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립한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해방 직후 좌익이 압도한 혼란 정국에서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립한 이승만의 통찰과 의지가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은 존립할 수가 없었을 터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역시 민주화의 토양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이승만 대통령은 ‘한미방위조약’체결 ‘농지개혁법’제정 등으로 안보와 경제의 기틀을 마련한 업적을 꼽을 수 있고, 박정희 대통령이 성취한 공적으로는 새마을 사업, 중화학공업육성, 식량중대, 산림녹화, 자주국방 등 이루 손꼽을 수 없을 정도다.‘6·29 선언’을 이끌어낸 1987년 6월 항쟁을 정점으로 우리나라에도 상당 수준의 민주화가 정착이 되었다. 그 대신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불거져서 전체 국민을 양분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산업화에 무게중심을 두는 국민들이 보수적인 세력을 형성한 반면, 민주화를 신봉하던 사람들은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이 되었다. 명목상으로는 보수와 진보지만 실상은 우파와 좌파로 나누어 양대 정치세력을 이룬 거였다. 반독재 민주화의 명분이 희석되자 노동운동이나 환경운동 같은 여러 갈래의 사회운동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도 했다.용공친북 세력들이 주축이 되면서 소위 운동권은 전과 다른 양상으로 변질이 되었다. 반독재민주화 대신 반미친북을 외치는 사회주의 노선을 드러낸 것이다. 연달아 좌파 정당이 집권을 하면서 진보를 표방하는 좌파 세력들은 날개를 달았고, 문재인 정권 시절에 와서는 입법, 사법, 행정은 물론 언론까지 장악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어 나라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득세를 한 소위 586세대들은 아직도 민주화운동의 전력을 훈장처럼 달고 있지만 그들이 보인 행태는 다분히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일 뿐만 아니라 무능하고 부패한 집단임을 백일하에 드러냈다.민주화가 정착이 된 지도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산업화니 민주화니 하는 가치논쟁은 정리할 때가 되었다. 아직도 그 시대의 대결구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국력소모일 뿐이다.시급한 당면과제는 남남갈등 즉, 막장으로 치닫는 좌·우 대결구도의 해소다. 하지만 그 선결조건은 자유대한민국 체제의 수호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다. 역량 있는 지도자가 국민 과반수의 지지기반을 확보해서 대한민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기를 바란다.

2024-02-01

이젠 지역불균형발전이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국가균형발전을 외친지 20년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1월 29일 “지방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필연적 선택”이라며 지방화와 균형발전을 선포했다. 윤석열 정부는 별도의 20주년 기념행사는 갖지 않았다.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부산에서 열린 지방시대 선포식에서 “지역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라며 “모든 권한을 중앙이 움켜쥐고 말로만 지방을 외치는 과거의 전철을 절대 밟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역대 정권이 모두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우고 지방화시대를 이야기 했다. 말의 성찬에 불과했다. 현실은 역대 정부의 약속과 달리 거꾸로 가고 있다.지난해 말 기준 수도권에는 전체 인구의 50.7%(2001년 말 기준 47%)가 살고 있다. 100대 기업의 본사 86%가 수도권에 소재한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18개가 소멸위험지역이다. 이 상태라면 이들 지역은 30년 뒤에는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이런 마당에 윤 대통령은 최근 “당장 올해부터 본격적인 GTX(광역급행철도)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지방에서도 누릴 수 있도록 전국 대도시로 GTX 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방의 시각은 비판적이다. 가뜩이나 사람과 돈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판국에 오히려 지방 인구와 경제력의 수도권 흡수를 더욱 가속할 빨대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134조 원을 투자, ‘GTX’가 완공되면 일자리와 사람의 서울 집중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방 소멸을 더 앞당길 뿐이라는 얘기다.전례가 있다. 애초 고속화를 통해 지역균형발전을 달성하겠다며 만든 KTX가 되레 지역 간 격차를 더 키웠다. KTX 개통 이후 지방 중소도시의 지역내총생산과 인구는 준 반면 대도시는 증가했다. 역설적이게도 고속철도가 만든 전국 1일생활권이 서울 집중을 부추긴 것이다. 공기업 지방이전 효과도 KTX 때문에 신통찮다. 혁신도시는 불꺼진 도시가 됐다.홍준표 대구시장은 최근 “6조 원이 드는 달빛철도를 안 해주려고 하는 정부가 GTX를 구축하려는 것을 보고 정부의 지방 정책은 헛구호였다”며 비난했다.지역균형발전은 빛좋은 개살구다. 이젠 20년 동안 목이 메도록 외쳐왔던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허상은 버려야 한다. 극단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이 상태로는 수도권은 배가 터져 죽고 지방은 굶주려 죽는다. 국가의 모든 정책을 지방 우선에 두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없다. 지방에 대한 투자를 최우선시해야 한다. 그것이 인구 위기에 대한 대책이자 국가 불균형 발전의 타개책이 될 수 있다.교육과 문화·생활 인프라를 집중시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역 귀환이 이뤄져야 한다. 파격적인 유인책을 제시해 대기업의 지방 이전을 이끌어야 한다. 지방에 고급 일자리가 많아지면 지방에 자연스레 사람이 모인다. 지금부터 지역 불균형발전 정책을 펴야 한다. 국가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더 놔뒀다가는 미래가 위험하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최우선 공약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24-02-01

폴리코노미

우정구 논설위원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를 포퓰리즘이라 부른다. 라틴어 인민이나 대중 또는 민중을 뜻하는 포퓰루스(Populus)에서 유래한 말이다. 우리말로는 대중영합주의, 민중주의 등으로 불린다.포퓰리즘의 기원을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근대적 의미로는 19세기 러시아에서 농민계몽을 통해 일어난 사회적 변혁운동을 손꼽는다. 포퓰리즘은 대중에 호소하고 다수를 위한 정책 수립과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무분별한 정책 남발로 기회주의적 성격의 부정적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폴리코노미는 정치(Politics)와 경제(Economy)의 합성어다. 정치가 경제를 휘두르는 현상을 이르는 말. 선거에서 포퓰리즘이 성행하면 선심성 공약을 위해 각 정당은 돈 풀기 경쟁을 벌인다. 국가는 인플레이션 위험이 높아지고, 국가 부채기 늘어나는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포퓰리즘 정치로 몰락한 나라는 많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은 좌파 포퓰리즘 정책으로 물가는 치솟고 국가 재정은 바닥이 났다.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을 펼친 그리스는 국가가 부도에 내몰리면서 2015년에 디폴트를 선언했다.포퓰리즘 정책의 후유증은 심각하고 오래간다. 복지성 예산은 수혜자 입장에선 중독성이 강하고 한번 집행하면 되돌리기가 어렵다.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선심성 정책을 내쏟고 있다. 경기침체 등으로 지난해 국세 수입이 56조4천억원이나 펑크났는데도 구체적 대책도 없이 현금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대규모 사회간접시설 투지를 약속하고 대학등록금까지 무상으로 하겠단다. 정치가 경제를 휘두르면 나라가 갈 길은 몰락뿐이다.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2-01

여당 총선의 뜨거운 감자가 된 ‘유승민 카드’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며 대립각을 세워온 유승민 전 의원이 국민의힘 간판으로 4·10총선 링에 오를지가 주목된다. 최근 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오산에 유 전 의원이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그의 총선 역할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제3지대 신당으로부터 합류 제안을 받아온 그는 지난달 페이스북에 “처음이나 지금이나 이 당에 누구보다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국민의힘에 남겠다”고 밝히면서도 “4월 총선에 공천 신청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권에선 이 메시지를 ‘당이 필요로 한다면 이번 총선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국민의힘으로선 유 전 의원이 총선지도부 역할을 맡아 열세 지역인 수도권 선거에 투입되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가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대구·경북을 비롯한 보수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지만, ‘중수청(중도층·수도권·청년층)’ 외연확장에는 그만한 인재가 없다는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 윤희숙 전 의원은 “그가 총선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 정치인으로서 자산을 쌓는 기회가 되면 당도 좋고 본인도 좋고 나라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유 전 의원의 총선지도부 합류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입지가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유 전 의원이 총선에 등판하려면 한 위원장이 직접 그에게 역할을 당부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지난 대선 당시부터 이어져 온 윤 대통령과 유 전 의원의 불편한 관계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유 전 의원도 과거 “워낙 찍혀서 공천을 주겠나. 공천을 구걸할 생각도 전혀 없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한 위원장이 자칫 그를 수도권 간판으로 내세웠다간 당정 갈등이 다시 표출될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포함한 여권으로선 이번 총선에 운명이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승민 카드가 개혁신당을 견제하고 ‘중수청’ 확장에 도움이 된다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그를 총선지도부에 합류시키는 것이 맞다.

2024-02-01

신공항 SPC 설립 서둘러야지만 신중하게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구경북신공항 건설사업을 대행할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이 “시간이 걸릴 것”이라 밝혔다. “부동산 경기가 워낙 나쁘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대출 문제가 심각한 때문”이라 설명했다.대구시는 지난해 SPC사업 설명회를 서울 등지에서 몇 차례 가졌다. 신공항 사업 내용과 대행사 선정의 방향성도 제시했다. 설명회에는 대구도시개발공사와 LH, 한국공항공사 등 관련 공공기관과 건설사, 금융사 관계자들도 참석했다.지난 12월에는 삼성글로벌리서치 김완표 사장과 그룹 관계자가 대구시를 방문해 삼성의 SPC 참여가 예상되기도 했다. 김 사장도 “그룹 차원에서 충실히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삼성그룹이 SPC에 참여한다면 신공항 건설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삼성의 공신력을 믿을 수 있고 삼성그룹의 모태가 대구와 관련돼 상징성도 있다.그러나 당초 대구시가 지난해 말까지 SPC 문제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으나 홍 시장의 말대로 국내 여건이 여의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경기 상황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올해 전망도 밝지 않다. 기업들의 투자 유치가 여의치 않은 분위기다. 특히 국내 건설업계는 과도한 프로젝트파이낸싱으로 자금난에 몰린 곳이 많다.대구시가 SPC 설립이 순조롭지 않자 공공과 민간의 SPC 참여를 독려할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SPC 참여로 손실을 본 업체에 대해서는 사업청산을 통해 사업 손실분을 보존해 주겠다고 했다. 또 향후 10년동안 대구시가 발주하는 모든 관급공사에 우선 참여권을 주겠다고 했다. K-2군공항 후적지 배후 주거단지를 선개발, 선분양 방식으로 자금난도 돕겠다고 했다.대구경북의 신공항 건설사업의 중요성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에 실을 매어갈 수는 없다. 신공항을 미래지향적으로 만들어갈 SPC 사업자 선정은 매우 중요하다. 홍 시장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탄탄하게 구성하겠다”고 했다. 대구경북 미래 50년을 보장할 신공항 사업의 SPC 사업자 선정은 최고의 결과가 나와야 한다.

2024-02-01

독감과 후유증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최근 독감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의원에 내원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일주일에서 한달이 지나도 기침과 가래가 안 떨어져서 오거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몸살기가 지속되어 내원한다. 특징으로는 몸살기와 더불어 목이 많이 아프고 시간이 지나도 기침과 가래가 지속된다. 요즘은 병원에서 초기에 수액과 플루처방을 받고 초기 증상을 떨어뜨리고 일부는 완전 회복을 하는 경우가 많아 한의원에 내원하는 감기환자수가 많지는 않다. 그러나 일부는 기침 가래가 너무 오래 지속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경우에 한방 치료는 큰 도움이 된다.본인도 작년 11월 무렵 갑자기 목이 아프기 시작해 목에 피와 가래가 섞여 나오는 것을 보고 이번 독감은 고생을 하겠구나 생각했다. 일주일 가량 한의원에 비치된 감기 상비약을 복용 후 많이 개선 되어 이제는 괜찮을 것 같아 술을 좀 먹고 나니 다음날부터 증상이 다시 발현되어 고생을 했다.감기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이유는 감기가 너무 심한 경우가 있고 또 하나는 본인의 면역력이 약해 초기 증상 후 회복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 감기는 둘 다 해당되는 경우로 초기에 고생을 많이 하면 후에 회복을 못해 기관지가 약해져 기침이 안 잡힌다. 그래도 몸살이나 발열 등의 초기증상들은 해결하고 오는 경우가 많아 한의원에 상비된 감기약 중 기관지에 쌓인 담을 제거 하는 약재들과 폐를 윤택하게 해주는 맥문동이 들어 있는 맥문동 탕을 처방하면 대부분 3일에서 일주일 사이에 좋아진다.감기에 걸리면 우선 절대 찬바람을 쐬지 않아야 한다. 외출을 삼가고 방을 따뜻하게 한 후 이불을 뒤집어 쓰고 땀을 조금씩 내면 효과적이다. 생강과 계피 도라지가 섞인 따뜻한 물을 조금씩 들이키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한방에선 초기엔 계지나 마황 등이 들어간 약들로 겉을 따뜻하게 해주고 땀을 내는데 도움을 주는 약을 쓴다. 약을 복용할 때는 몸을 따뜻하게 감싸고 따뜻한 약을 복용 후 따뜻한 맑은 국물과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 약간의 땀을 내면 약효를 증가 시킬 수가 있다. 이때 절대 먹으면 안되는 것이 고춧가루다. 매운 것을 먹으면 식도 근처가 자극되고 염증이 악화되고 많은 분비물이 분비되어 고생한다. 목이 끈쩍거릴수 있는 유제품 관련 식품 등도 피하는 것이 좋다.평소에 감기에 자주 걸리는 아이들이나 노인들은 감기 끝에 몸이 쳐지고 체력이 회복되지 않으면 한의원에 내원해 약을 지어 먹는 것이 도움이 된다. 실제 매년 감기로 고생하는 아이들은 일년에 두세번 약을 지어 먹으면 감기에 덜 걸리고 고생을 덜 한다. 한번 경험해본 사람들은 면역력을 높이는 약을 계절별로 지어 먹는 사람도 있다. 평소에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이 좋고 음식은 맵고 자극적이지 않게 적당량 먹는 것이 좋다. 위장을 편안하게 하면 몸이 가볍고 면역력을 올리는데 도움이 된다. 노인들의 경우엔 밥과 국 김치나 나물 반찬으로만 밥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고기나 생선 등의 단백질 섭취를 높이는 식단 구성으로 바꿔야 한다. 내몸을 이루는 모든 세포들은 단백질을 먹어야 만들어 진다. 단백질을 적당히 섭취하는 게 면역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2024-01-31

한복을 즐겨 입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자료 사진을 찾으려 앨범을 뒤질 일이 생겼다. 내 삶의 이력마다 한복을 입은 적이 유난히 많음을 알았다. 70년대 대학졸업식, 여학생은 한복 위에 졸업가운을 입는 것이 당연했다. 은박무늬가 반짝이는 파란 공단치마에 하늘색 저고리는 당시 유명한 화장품 모델의 한복을 그대로 베낀 옷이었다.내 한복 이력의 하이라이트는 웨딩드레스다. 결혼식장을 정하니 식장에서 신부옷을 무료로 빌려준다고 했지만 희어야 할 웨딩드레스는 하나같이 우중충한 잿빛이었고 여러 사람이 입어 때 탄 옷을 입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전문 웨딩샵의 웨딩드레스는 아름다웠으나 너무 비싸 이 역시 아니라 싶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폐백용 한복을 맞추러 간 서문시장 한복집에서 눈에 띄는 흰 한복감이 있었다. 하얀 본견에 우아한 철쭉꽃이 그려져 있었다. 꽤 유명한 한국화가가 그린 그림이란다. 그것으로 웨딩드레스를 짓고 싶었고 남편도 찬성했다. 한복집 사장님은 파격적인 가격으로 주겠다며 적극 추천했다. 한복을 맞춰두고, 면사포와 부케를 주문하러 다시 웨딩샵으로 갔다. 신부용품을 모두 무료로 대여해 줄 거고, 한복에 어울리는 부케와 생화족도리까지도 만들어 주겠다. 대신 결혼식 때 사진찍기를 허락해 주고 사진을 웨딩샵에 제공해 달라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불감청고소원이었다. 그 후 그 웨딩샵엔 나의 사진이 꽤 오랫동안 걸려있었다.결혼식 당일, 한복을 입을 거니 너무 짙은 화장을 말라는 나의 요구에 신부화장도우미는 업신여기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나의 한복은 그 자리의 모든 웨딩드레스를 압도할 정도로 희고 눈부셨다. 부러움의 눈초리와 탄성에 좀전의 업신여김을 모두 보상받았다. 그 한복은 석사 졸업식, 큰아이 유치원 졸업식, 연주회에 초청 받거나 제법 격식을 갖춘 공연을 보러 갈 때도 파티드레스 삼아 즐겨 입었다.엄마의 회갑연 때 맞춘 한복은 동생 결혼식과 대학원 박사학위 졸업식 때도 입었다. 북경세계여성대회에 가서는 국위선양을 톡톡히 했다. 꽃분홍 저고리에 수박색 치마의 화사한 한복 덕에 외국인들과 사진 찍느라 진땀을 뺐다.십수년 전, 천연염색으로 들인 쪽물 옥사, 홍화물 모시, 감물과 녹찻물의 삼베 천을 주신 유복혜 선생님 덕에 내 한복의 리스트는 더욱 아름다워지고 풍성해지고 고급스러워졌다. 독일의 세계도서박람회나 브라질 한민족네트워크에 참석하여 한복의 맵시를 알렸다. 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열리는 외국인 초청 행사 때도 한복을 입었다. 한국인은 한복을 입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내 모든 한복을 가지고 가서 한국인여성들에게 입히기도 했다. 쪽빛 치마 하나에 흰 저고리, 노랑저고리, 옥색저고리를 맞춰두면 세 벌이나 있는 셈, 이렇게 한복이 많으니 두 아들 결혼식 땐 따로 옷을 짓지 않아도 되었다.며칠전 겨울용 누비치마저고리를 샀다. 꽤 도발적인 붉은 저고리와 검은 치마였다. 평소 내가 즐기는 색상은 아니었으나 늙을수록 고운 색을 입어야 한다는 지인의 조언에 귀가 얇아졌다. 오는 설날, 손주들이 한복차림으로 절할 때 이 누비한복을 입고 답례를 하고 싶다.

2024-01-31

오래된 것들의 처소(處所)

배문경 수필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집으로 들어서는 곳에 늘 늦게까지 불을 밝히던 곳이었다. 주위가 어두워도 환한 빛으로 안심이었다. 가게 하나 불을 껐다고 골목이 암흑 세상이다. 27년간 슈퍼마켓을 지키던 아저씨는 그만둘 때가 되었다며 몇 월 며칠까지 마지막 할인을 하니 필요한 것을 사가라고 덧붙여 말했다. 이제 뭘 해야 할지 고민해 봐야 한다며 말끝을 흐렸다.경쟁에서 밀린 가게에는 오래된 물건과 새 물건이 섞여 있었다. 아파트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편의점의 불빛이 환하게 빛난다. 손님들이 빛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두 번 얼굴을 보던 사람도 편리한 것에 밀렸다. 왠지 모를 낯선 기분만이 아니라 서글픔 같은 것이 밀려온다. 자신의 건물이었다면 그는 가게를 계속했을지도 모른다. 건축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이뤄지는 삶에 의해 완성된다던 승효상의 글이 생각난다.경주는 기와집이 어느 곳보다 많다. 고도 제한을 두어서 시민들이 제값을 못 받는다고 오래된 아파트를 재건축하자고 해서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던 아파트 값이다. 삼사십 년 된 아파트는 나지막하고 숲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굳이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큰 불편이 없다고 할 정도였지만 바람은 거세게 불어 정보를 들은 외지 사람들이 들불 번지듯이 싼값에 아파트를 사들였다.그곳에서 판사 딸을 길러낸 언니가 있다. 낡은 것만 생각하고 들린 집은 아파트 옆의 나무가 자라 운치가 있어 보였다. 새소리가 자작하니 들렸고 늘 조금씩 고쳐가며 자신의 세상을 만든 언니만의 공간을 보았다. 집이 따뜻하고 정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 집 주인의 생각과 가치를 집에 불어넣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곱게 만들어진 조각보가 놓인 식탁과 나무문에 달린 손뜨개 커튼과 작은 풍경이 고풍스러웠다. 우리의 삶이 사실 작고 사소한 일을 하루하루 쌓으며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닐까. 덧붙여 “나는 여기가 좋다.”라는 언니의 말에서 자신의 손때가 묻은 집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애정을 쏟은 고택 카페가 경주에 늘어간다. 어쩌면 고택을 잘 활용하는 예가 될 수도 있겠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다. 흙과 대들보가 드러나 있고 나지막한 처마에 옛 정취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밖의 풍경이 푸른 하늘과 어울려 잔디밭과 내가 좋아하는 나무 백일홍의 꽃이라도 그득하니 피어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워진다. 살지는 못해도 그곳에서 힐링된 넉넉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올 때면 울적했던 마음도 슬펐던 마음도 사그라진 다음이다.경주에는 독락당이 예전의 모습을 잘 건사하고 있다. 특히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살창과 건물에 달아낸 계정은 건축물로 그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역사적, 건축학적 의의를 함께 지녀 건축학도들의 발길을 이끈다. 사람들에게 그 가옥의 형태나 쓰임새와 풍경을 둘러볼 수 있도록 열어놓아 더 반갑다. 유지되도록 가문과 피붙이의 노력이 오늘의 우리에게 힘듦을 치유할 공간을 내어준다.기와집이 주는 넉넉함과 매끈한 곡선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더러 찾아가는 불국사의 사계(四季)는 살아가는 삶의 여정과 닮아있다. 더 좋아지려고 뭉개고 헐고 다시 시멘트로 세우는 일이 아니라 조금은 생활이 불편해도 세월이 녹아든 낡은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지 나에게 스스로 묻곤 한다. 덧대어 그것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애틋한 조언에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다.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자리에 있고 그 자리가 편안하게 보이는 어제의 건축들에서 오늘의 내가 위안을 얻는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이듯이 과거에서 연결된 오늘의 것들에 애정을 갖는 일이 내가 할 일이다. 건축물과 그 안에 깃든 가치와 전통이 같은 의미로 함께 한다는 것은 여간 고맙지 않다. 고택 마당에 널어둔 이불홑청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슬쩍 까치발을 하고 들여다볼 수 있게 나지막한 담장으로 배려함에 감사하며.

2024-01-31

소행성 L2001의 사멸 (하)

마침 그날 과학전문기자는 모처럼 긴 휴가 중이었고 이를 대신하던 인턴 기자는 메일을 정리해 윗선으로 올렸다. 멋진 1면 기삿거리-속 시끄럽고 기상천외함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정치, 경제적, 사회적 기사들을 제치고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를 찾던 데스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헤드라인은 이랬다.‘악마의 연기와 함께 지구로 돌진하는 천체 발견, 소행성 L2001’소행성 L2001은 시민 전체, 지구 전체가 바라보는 존재가 되었다. 다른 신문들과 언론들에서는 앞다투어 기사를 쏟아냈다. 천체물리학계에서 공식적인 입장- 100%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꼬리의 성분이나 소행성이 지구에 위협이 될 확률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을 내놓았지만 대중들이, 언론이 주목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높지 않다.’는 대목이었다. ‘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며 심지어 그럴 수도 있다는 뜻이 되었고 ‘높지 않다.’는 것은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미국의 NASA에서 공식적으로 ‘소행성 L2001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선언했음에도 사람들은 ‘꼬리 가스의 위험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느니 ‘거의 없다는 것은 있다는 것이다.’거나 하는 해설 기사를 찾아 읽고 ‘좋아요’ 버튼을 눌렀고 ‘히말라야 산맥에서 발견된 비밀 기지’나 ‘퇴역한 우주 왕복선 수리 중’과 같은 콘텐츠를 공유했다.소행성 L2001의 명칭도 바뀌었다. 사람들은 소행성 L2001에 대한 첫 기사 제목으로부터 딴 이름 ‘악마의 연기’로 소행성을 부르기 시작했다. 유해물질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지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말은 이제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그럼에도 사재기나 도피처를 찾기 위한 움직임은 크지 않았다. 고양이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은 쥐처럼 가만히 있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일어나 출근을 하고 가족들과 마주 앉아 저녁을 먹었다. 밤이 되면 잠을 잤고 가끔은 술을 마셨다. 주말이면 어딘가로 몰려갔지만 초월자에게 무엇을 빈다든가 다 같이 저 세상으로 가자 같은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핵미사일을 쏘아 부숴버리자.’, ‘그래서 뭐 어디로 도망가라고?’, ‘하긴 망해도 싼 존재지, 인류는.’ 같은 이름, 그와 유사한 이름을 건 독립 채널들과 SNS 영상들은 항상 검색순위 상단에 위치해있는 것과는 상반된 일상을 보며 사회학자들은 기이한 현상이라 평했고 이는 또한 연구의 대상, 기삿거리가 되었다. 어느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회학자는 ‘우주라는 거대한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3D 재난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고 있는 관객’과 같은 인상을 받는다면서 제발 깨어나라고 그 소행성이 스크린을 뚫고 우리에게로 올 것이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 프로그램이 방영되던 시간 소행성 L2001은 태양과 지구가 늘어선 뒤쪽에 위치해있었고 꼬리 또한 지구의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천문학자가 그 사실을 설명하며 ‘울지 말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소행성 L2001은 처음부터 가스 꼬리를 가진 혜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최근의 연구결과가 있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데 이제와 호들갑을 떠는 것 같다. 그저 아름다운 우주의 신비 정도일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울먹이는 사회학자로부터 소행성은 돌고 도는 것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천문학자가 그것도 모르느냐, 제발 먼 곳에서 일어나는 가십거리처럼 여기지 말아달라는 핀잔과 충고를 들었다. 소행성 L2001이라 부르지 말라, 악마의 연기라 부르라. 사회학자가 덧붙여 말했고 ‘그저 소행성에 연기가 생겼다고, 아니면 원래부터 있던 혜성의 가스 꼬리일 뿐인데 악마니 뭐니 이름을 붙이는 것은 억지가 아닌가? 무슨 성분인지,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가만있는 소행성이 무슨 죄인가?’라 항변하는 천문학자를 사회자가 말리면서 토론은 끝났다. 김강 소설가·내과의 2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자 다른 사건들, 이야기들이 악마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눌렀고 악마의 연기는 관심 순위의 아랫단으로 내려왔지만 사람들은 소행성 L2001라는 이름을 돌려주지는 않았다.3개월이 지난 12월 27일 악마의 연기, 소행성 L2001은 돌연 사멸했다. 애초에 지구를 향해 돌진하지도 않았고 그러겠다는 의지도 없었던, 실제 연기, 꼬리에 유해 성분이 있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소행성 L2001은 불꽃 하나 없이, 우주를 울리는 굉음 하나 없이 사멸했다. 누군가는 고온의 연기에 둘러싸여 스스로 증발해버린 것이라 말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악마의 연기가 소멸되기를 기원했던 전 인류의 손가락질이 이루어낸 쾌거라 말하기도 했다.

2024-01-31

지역번호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한민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화하려면 반드시 지역번호를 눌러야 한다. 지역번호는 각 지역을 분리, 식별하기 위한 번호다. 지역번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시로 정한다. 전화 보급률이 낮고, 교환원을 통해 장거리 전화를 했던 시절에는 지역번호라는 것이 없었다. 물론 당시에도 시내전화와 시외전화는 구분됐다. 1970년대부터 전화 보급률이 늘고 국번이 생기면서 지역번호가 부여됐다. 지역번호는 각 지역마다 같은 번호를 부여할 경우 생길 수 있는 혼동을 막기 위해 매기는 번호였다. 특히 1980년 전자교환시스템(DDD)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기존 국번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시·군 단위에 지역코드를 배정했다.그러다가 2000년 7월 세 자리수 국번+네 자리 수 번호로 통일하면서 서울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지역번호는 053, 031 등 세 자리 수로 바뀌었다.이에 따라 대구시는 053 단일통화권, 경북은 054를 쓰고 시·군별로 23개 통화권역으로 나뉜다. 행정구역과 지역번호는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 전화국의 할당 지역이 행정구역을 경계로 정확히 나눠지지는 않는다. 행정구역 개편 등의 이유로 바뀔 때마다 지역번호를 수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구통화권에 속하는 경산, 서울통화권의 광명과 과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도시권이 팽창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지난해 7월 대구시에 편입된 군위군의 지역번호가 ‘054’로 유지된다. 이는 대구시의 국번 일부와 군위군이 사용하는 일부 번호가 겹쳐 지역번호를 변경할 때 발생하는 경비와 혼란 등 사회적 비용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군위군은 대구시와의 통합으로 경북과는 이별했지만 지역번호만 경북과의 인연고리로 남게 됐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1-31

우리는 잘살고 있을까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미국 작가 마크맨슨(Mark Manson)이 도발적인 유튜브영상을 공개했다.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다녀왔다(I traveled to the most depressed country in the world.)’인데, 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게 아닌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최상급의 경제수준에 이르렀으며 사회문화적으로도 모두가 부러워하는 성장을 경험하지만, 한국인들이 동시에 겪는 우울현상의 그림자가 길어보인다고 했다.전쟁을 겪으며 바닥에 떨어졌던 한국사회가 급성장을 해오면서 익힌 과도한 일등주의와 경쟁문화가 한국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었을까 짐작한다고 했다. 심층적인 분석이 아니라 표면적인 관찰에 따른 내용이긴 하지만,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부분을 들킨듯 싶어 멈칫 하게된다.실제로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들 가운데 우울증발병율과 청소년자살율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열심히 살면서 이렇듯 성장했는데, 외국인의 시선에 처절하도록 우울한 나라로 발견되는 건 어찌해야 하는지. 한 해 동안 자해와 자살시도로 응급실에 들어온 4만여 환자들 가운데 46퍼센트가 10대와 20대였다고 한다.교육부 자료에 의하면, 전체 학생들 가운데 25만명 이상이 정신적 문제가 있어 심리치료 대상으로 추계된다고 한다. 꾸준히 열심히 달려오면서 스스로 대견하고 칭찬할 만한 수준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한켠에는 이처럼 드러내기 부끄러운 그늘이 있었다. 치열한 경쟁 가운데 일등만 대접받는 문화가 있었고 극소수만 칭찬받는 문화가 번져가면서 뒤처지는 아픔에 힘들어하는 다수가 있었다.동영상에서 마크맨슨은 우리나라를 우울한 나라로 고발하는 데에 멈추지 않는다. 놀라운 회복력(resilence)를 가져 ‘(어려움 속에서) 늘 길을 발견해 왔다’고 했다. 태안반도에 기름을 청소하러 달려갔으며 IMF 사태에도 금모으기로 반응했다. 나라와 공동체에 위기가 닥치면 문제의 본질을 찾아 해결해 내는 건 언제나 국민의 몫이 아니었던가.정치권과 정부가 우물쭈물하는 상황에도 소매를 걷어 올려 마침내 위기를 극복하는 열쇠를 찾아내는 사람들이었다. 도전과 응전, 변화와 적응에 능하기에 어려움이 닥쳐도 겁내기보다 맞상대하여 끝내 이겨내는 ‘습관적 회복유전자’를 장착하였다. 우울의 그늘이 오늘 깊어 보이지만, 이 또한 국민적 내공과 공동체의 저력으로 헤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끝없는 경쟁으로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는 공동체적 배려와 공감으로 우울현상을 극복했으면 싶다. 오늘까지 거둔 성과와 성공이 있다고 해도, 그 길을 완전히 혼자 걸어온 사람은 없다. 도와주고 거들어준 사람이 분명히 있을 터이며 혹 나로 인해 뒤처지거나 힘들어진 이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 ‘잘 났더라도 혼자만 잘 살지 말라’는 어느 학자의 충언이 있었다. 이웃을 돌아보는 배려심과 남의 어려움에 귀기울이는 공감능력을 길러야 한다. 회복탄력성을 다시 한번 집단적으로 발휘해 오늘의 우울현상을 내일을 향한 기대효과로 바꾸었으면 한다. 남들은 몰라도 대한민국은 할 수 있다고 본다.

2024-01-31

서문시장 4지구 재건축, 해법에 중지 모아야

대구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서문시장 4지구 재건축 사업이 또다시 제동이 걸렸다. 법원이 서문시장 4지구 시장정비사업 일부 조합원 등이 조합측을 상대로 낸 총회개최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재건축 사업 추진일정에 혼란이 생겼기 때문이다. 재건축사업 조합 일부조합원 등은 “조합측이 사업참여 의사를 밝힌 다른 업체들은 제외하고 특정업체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는 것은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한 것.이에 따라 31일로 예정된 조합원 총회가 무산되고 향후 재건축 일정도 불투명해졌다. 4지구 재건축을 위해 조합측은 지난해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벌였지만 4차례나 유찰돼 재건축 추진이 지속적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서문시장 4지구는 2016년 11월 대형 화재로 점포 600여 곳이 전소돼 상인들은 인근 대체상가에서 7년째 영업을 하고 있다. 대체 상가에서 영업을 한다지만 불편한 상가 시설과 저조한 매출 등으로 어렵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대체 상가 기간 중 코로나19까지 겹쳐 화마 후유증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한다.하루빨리 재건축이 이뤄져 정상으로 되돌아가야 하나 재건축 사업도 부동산 경기 침체와 인건비 및 건축 재료비 인상 등 각종 난제로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상인들은 “화마가 발생한지 7년이 지났으나 아직까지 명확하게 진행되는 것이 없어 답답하다”며 조합원간의 의견 충돌로 재건축이 늦어질까 봐도 걱정을 한다.서문시장은 우리나라 3대 시장의 하나로 대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성격을 갖고 있다. 정치인들도 반드시 들리는 대구 상징 장소로 유명하다. 지난해는 전국에서 드물게 시장이 개장한 지 100년을 맞기도 했다. 전국 최대 시장에 지구 전체를 7년째 비워둔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난제가 있겠지만 조합원들이 머리를 맞대 재건축 사업의 속도를 내야 한다. 재건축 완성을 위해 중지를 모으는 것이 현재의 난관을 푸는 가장 현명한 길이다.

2024-01-31

여든 야든 공천혁신 없이는 民心 멀어진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그저께(30일) 4·10 총선 공천 심사기준을 발표했다. 주목되는 부분은 ‘신(新) 4대 악’과 4대 부적격 비리가 있는 신청자에 대해서는 공천을 원천 배제하기로 한 것이다. 신 4대 악은 성폭력 2차 가해·직장 내 괴롭힘·학교폭력·마약범죄다.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심각한 병리현상들이다. 4대 부적격 비리는 가족 입시·채용·병역·국적비리다. 파렴치 범죄(뇌물범죄 등)도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받으면 공천을 주지 않기로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범죄혐의를 부각시키면서 야당과의 공천차별화를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이번 총선 예비후보자 중 전과기록이 있는 사람이 40%선에 달한다고 한다. 음주운전과 사기 등 국민의 대표가 되기에는 부끄러운 사람들이 대규모로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각 정당에 공천신청을 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저질적인 정치수준이다. 지금까지 전과자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돼 당당하게 국정감사를 하고 법을 제정하는 행위가 되풀이됐기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도 이런 현상이 관행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니 국민이 어떻게 정치인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국민의힘이 신 4대 악과 4대 부적격비리를 기준으로 후보들을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가 선거개입혐의로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황운하 의원과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노웅래 의원, 청담동 술자리 허위주장을 폈던 김의겸 의원 등을 총선 예비후보 검증통과자 명단에 올린 것과 크게 비교되는 조치다.이번 총선에서 여당만이라도 우리사회의 사법시스템과 도덕, 상식을 붕괴시킨 예비후보자에 대해서는 절대 예외규정을 두지 말고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 이번 총선의 시대정신은 증오범죄 등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을 야기하는 정치권의 개혁이다. 여든 야든, 공천과정에서 새로운 정치문화를 선보이지 않고는 민심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4-01-31

영세사업장엔 중대재해법이 ‘저승사자’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확대 적용됨에 따라 대구·경북지역 영세기업들이 초비상 상태다.앞으로 이들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는 예외 없이 해당 사업장을 대상으로 법 위반 여부를 수사하게 된다.고용부는 이번 주부터 3개월 동안 전국 83만7천개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산업안전 대진단’을 실시한다. 산업안전감독관 전원이 이 업무에 매달린다고 가정해도 1인당 1천개 기업을 맡아야 하는 모양이다. 당연히 ‘졸속 진단’이 우려된다.그동안 중대재해법에 무감각했던 소규모 사업장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적용 대상이 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자영업자(음식점, 빵집, 커피전문점 등)들은 지금 혼란에 빠져 있다. 전문가에게 상담 서비스를 받으려 해도 컨설팅 비용이 엄청나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금형·주물업 등 이 지역 공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뿌리산업 사장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뜨거운 쇳물이나 무거운 금속을 다루는 공정이 있는 업종이라 직원들이 잠시만 방심해도 산재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중대재해법은 지난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숨진 김용균씨 사고를 계기로 민주당에서 발의해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 법은 하청 업체를 포함해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진에게는 1년 이상 징역, 10억원 이하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27일부터 새로 이 법 테두리 안에 들어오는 종사자는 800만명 정도 된다.법률 내용 중 형사처벌 근거가 되는 경영진 과실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고의 과실’이나 ‘중대한 과실’이 아니더라도 재해만 발생하면 대부분 과실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포항에서는 이 법률 시행으로 바다낚시 명소인 영일만항 북방파제가 폐쇄 위기에 놓이는 사태도 발생했다. 길이 500m 이상인 대형 방파제도 이 법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중대재해법의 바탕에는 우리나라 기업이 그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을 희생시키며 성장했다는 의식이 깔렸다.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근로자 안전을 침해하는 것은 범죄행위이고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일리가 있긴 하지만, 산재사고의 모든 책임을 기업주에게만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고 2년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대부분 아직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 안전시설을 완벽하게 유지하더라도 개인이 주의하지 않으면 사고예방이 불가능한 사업장도 많다.대구·경북지역 중소기업 중에는 만약 사고가 나서 사장이 구속되면 그날로 사업을 접어야 하는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고 폐업할 경우 근로자들은 일터를 잃게 된다.더 큰 문제는 근로자수가 5명이 넘는 사업장 중에서 사법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직원 수를 4명 이하로 줄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영세사업장 기업주나 근로자들에겐 중대재해법이 마치 ‘저승사자’처럼 보인다는 것을 정치권은 알아야 한다.

2024-01-30

민생정치

우정구 논설위원 민생(民生)이란 백성들의 생활을 이르는 말이다.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가 곧 민생이다. 장바구니 물가나 교통난, 세금, 범죄, 집값 등 서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는 모두 민생이다. 국회의원이 금배지를 처음 달 때 지역주민의 삶을 먼저 생각하겠다고 약속을 하는 것은 국회가 민생정치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다. 선출직인 정치인뿐만 아니라 공직자도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를 기본자세로 삼아야 한다. 공직자는 사사로운 개인의 일보다 공적인 일에 몸을 바쳐야 공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서로 다른 이념과 지향점이 서로 다른 여야 정치인도 민생이란 말 앞에는 이론이 없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자는데 반론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정치인이 입만 열면 민생이라 떠들지만 국민의 피부로 와 닿는 느낌은 거의 없다.입으로는 민생협치를 말하고 뒤로는 정파적 이익과 정쟁으로 다퉈 민생은 항상 뒷전이다. 정치 순리대로 민생협치가 잘되면 국민의 요구가 반영된 정책이 나오고, 국민의 생활도 저절로 안정된다. 그렇지 않은 우리 정치가 아쉽다.4월 총선을 앞두고 민생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여야간의 민생경쟁도 활발해진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선민후사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고 이재명 대표는 “민생과 서민경제에 집중하겠다”고 했다.공자는 “부모에게 효도하듯 백성을 섬기는 것을 정치”라 했다. 선거를 앞두고 민생 챙기기에 나서는 정치권의 속셈이 뻔히 내다보이나 민생이 정치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이 아닌 좋은 민생정책이 많이 나와야 할 터인데 어떨지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1-30

與공천전쟁 시작, TK현역 전략공천에 떤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이번주부터 4·10 총선후보 공천 신청 접수를 시작하면서 TK(대구·경북)지역 현역의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당초 시스템 공천과 경선을 원칙으로 내세웠던 공관위가 최근 추가로 내놓은 공천 룰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천룰은 공관위원 재적 3분의 2 이상 의결을 하면 총선후보자를 바꿀 수 있고, 최대 50곳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하겠다는 내용이다. 공관위 심사 재량을 확대한 것이다.이 룰이 적용되면 TK 현역 대부분은 공천을 자신할 수 없다. 현역을 물갈이할 경우 보통 ‘의원 개인 지지율’과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을 비교하는 교체지수를 적용하는데, 지금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교체지수 허들’을 통과한 현역은 거의 없다. 여당 지지율이 타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TK현역들은 공관위에 지역 특성을 감안해 달라는 뜻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TK지역 공천은 최대한 늦춰질 전망이다. 공관위는 공천 접수 후 수도권에서 ‘험지’로 분류되는 지역부터 후보를 확정하겠다는 방침이다. TK지역을 비롯한 보수텃밭은 현역 반발을 고려해 가장 마지막에 후보 추천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한동훈 비대위는 출범 당시 ‘우리 정치문화를 완전히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여당의 공천과정이 험난하다는 것을 예고한 것이다. 현역의원을 ‘혁신’이라는 명분으로 젊은 세대로 교체할 경우 심각한 후폭풍이 몰아치게 돼 있다.TK지역 현역 상당수는 뚜렷한 이유 없이 공천에서 탈락하면 무소속이나 신당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이 크다. 개혁신당에서 영남권 현역 중 합류할 분이 있다고 일찌감치 말한 것은, 공천탈락을 염두에 두고 벌써 개혁신당에 합류할 생각을 굳힌 현역이 있다는 얘기다.이번 공천과정은 한동훈 위원장의 정치력을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하다.꼭 명심해야 할 부분은 공관위가 독립적으로 투명하게 공천업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대통령실 입김’이 작용한다는 말이 나오면, 공천의 공정성은 물건너간다.

2024-01-30

구미 반도체특화단지 수도권과 차별 없어야

지난 29일 경북 구미시청에서는 경북도와 구미시 그리고 출연 연구기관 등이 모여 구미 반도체특화단지 육성지원 업무협약식을 가졌다. 이날 협약식에는 국가연구기관인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C), 한국재료연구원(KIMS),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등 7개 연구기관이 참석했고, 이들은 경북도·구미시와 함께 핵심기술 개발과 인재양성, 인프라 운영, 행·재정적 지원 등을 상호 지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최근 정부가 평택 등 경기도 남부권에 622조원을 들여 세계 최대 최고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발표에 대한 우려도 공유했다. 반도체산업 초격차를 위한 정부의 육성 의지는 백번 이해하나 반도체산업이 수도권으로 쏠리면서 지방 유일의 반도체특화단지인 구미의 특화단지가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지난해 7월 구미시는 지역에서 유일하게 반도체특화단지로 선정됐다. 그러나 정부의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발표되면서 비수도권인 구미 반도체특화단지가 수도권 계획에 밀려 경쟁력이 약화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산업의 초격차를 위해선 소재·부품·설계 중심의 기술을 확보하고 인재양성은 필수라고 한다. 특히 중소기업이 많은 지역에서는 RD 시설과 미니팹이 반드시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데,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경북도와 구미시가 연구기관 등과 업무협약을 맺은 것도 연구기관을 통해 기술개발과 인력양성의 기회를 더 넓히려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정부 지원이 필수다. 구미시도 이런 부분을 고려, 1조원대 국비 지원을 국가에 건의할 예정이다. 정부가 구미지역에 반도체특화단지를 지정한 것은 구미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 평가한 결과고 또 지역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라 본다. 정부는 수도권 메가클러스터 조성과 더불어 구미지역에도 수도권에 상응하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고비용과 장기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정부의 지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구미 반도체특화단지가 수도권과 차별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2024-01-30

힘내라, 포항 탈북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누구에게나 태어나고 자란 곳이 있다. 어릴 적 티없는 순박함에 젖어 잔뼈가 굵어지고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무한한 꿈을 키워오던 곳, 다름아닌 고향이다. 철이 들어 학업이나 부모님의 생계, 자신의 진로를 위해 고향을 떠나서 살게 돼도 늘 그립고 돌아가고픈 곳이 고향이 아닐까 싶다. 하긴 새장에 갇힌 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물 속의 물고기도 옛 못을 그리워하는데(羈鳥返舊林 池魚思故淵), 하물며 정과 뜻이 있는 사람들에게 고향의 의미는 오죽하랴. 그렇듯이 고향은 굳이 귀소본능이 아닐지라도 늘 어머님의 품처럼 따스하고 넉넉하게 다가오는 곳이다.그러나 늘 그립고 생각나는 고향이지만 애써 버린듯이 힘겹게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있으니, 이른바 북한이탈주민 또는 탈북민이다. 한 때 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새터민’라는 표현도 썼으나, ‘새터’라는 단어가 오히려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의 정체성을 부인하며 차별적인 표현이라는 이유로 지양하고 2008년부터는 법률용어인 ‘북한이탈주민’을 줄여서 ‘탈북민’이라고 많이 쓰여지고 있다. 남북 분단과 6·25 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남아 있고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탈북현상은 지구상에 유일한 슬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어쩌면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따뜻한 남쪽’에 왔건만, 남한에서의 정착과 생계가 녹록찮은 것이 현실이다. 멀리 고향을 등지고 떠나왔기에 가족이나 친척이 없을 뿐더러, 더욱이 제2의 고향으로 삼아야 할 남한땅에서 새로운 연고나 일감을 찾아 사회에 순조롭게 진입하거나 안정적인 생활을 해나가기가 결코 만만찮을 것이다. 2023년말 기준 탈북민들은 전국적으로 3만4천여 명에 이르고 있으며,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까지 배출했지만 사회부적응과 사업실패·소송·채무 등에 시달리다가 월북·이민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으니, 한국사회의 정착과 포용에 대한 보다 전향적인 배려와 지원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계제에 포항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들이 만남과 소통을 위한 화합의 공간을 마련하고 있어서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2023년 2월 공식 출범한 230여 명의 포항탈북민연합회가 작년 12월부터 약 2개월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마침내 31일 숙원사업이었던 ‘포항탈북민연합회 사무실’을 오픈한 것이다. 모든 것이 빈약하고 열악한 상태에서 개소식이 있기까지는 각계각층의 관심과 후원, 자원봉사, 물품기부 등의 손길이 시의적절하고 드라마틱하게(?) 펼쳐져 감동과 찬탄으로 이어졌다. 특히, 포스코의 통큰 지원과 6개 재능봉사단의 9회에 걸친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봉사활동이 두드러져 ‘탈북민의 싼타-포스코’라는 애칭이 붙어졌을 정도다.철천지 사선을 넘어온 포항 탈북민들에게는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보금자리 마련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일일까? 고향을 떠나온 애절한 마음을 서로 달래고 위로하며,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탈북민들의 정보교환과 안정적인 정착생활을 돕는 훈훈한 사랑방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아울러 꿈에도 잊지 못할 북쪽을 향한 망운지정(望雲之情)이 삶의 새로운 희망과 용기로 피어나기를 축원해본다.

2024-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