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대통령을 마치 군주처럼 여기는 잠재의식이 남아 있다. 5000년 역사 가운데 왕조 정치가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했고, 민주주의를 직간접으로 경험한 기간은 고작 100여 년에 불과하다. 일제강점기와 군사정부를 거치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 체제가 뿌리를 내린 기간은 지극히 짧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고통스런 사건을 겪으면서 정치적 사회적 혼란과 갈등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현 대통령이 대선 토론에 나설 당시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적어 화제가 되었던 일도 있었다. 이는 후보 본인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대통령직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군주제적 잔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오늘 겪는 사회적 소란 속에도 대통령을 국가의 대표자라기보다 통치권력자로 여기는 경향이 뿌리깊게 깔려있다.
대통령을 뜻하는 영어표현 ‘President’는 원래 ‘앞에 선다’ 또는 ‘대표한다’는 원어적 의미를 담고있다. 그러나 한자표현 ‘대통령’에는 ‘크게 통치하는 최고명령권자’라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히 있다. 이는 대통령제의 본질을 오해하게 만들며, 군주적 이미지를 굳히는 효과를 낳고있다. 제왕적대통령제를 극복하고 민주주의의 본령을 회복하기 위하여 직함으로서 ‘대통령’의 명칭변경을 제안한다.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적 기본을 고려할 때도 ‘대통령’이라는 명칭은 행정부 수장의 역할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한다. 입법부 수장을 ‘국회의장’, 사법부 수장을 ‘대법원장’으로 부르듯, 행정부의 수장에게도 더 균형잡힌 명칭이 필요하다. 예컨대 ‘행정수반’, ‘국무원장’, 또는 ‘국정총장’ 등으로 개칭하여, 대통령의 권한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것임을 분명히 하고 통치자이기보다 제한적인 책임자임을 강조해야 할 터이다.
대통령 명칭의 변경은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직제의 개정, 관련 조직 및 법령의 정비 등 부가적인 사안들이 동반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 본질을 구현하고 대통령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시대적으로 필요하고 의미있는 과정이라 여겨진다.
민족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놓고볼 때, 민주정부를 더욱 성숙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대통령’이라는 직함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이름을 바꾸자는 주장을 넘어, 국민이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가 군림하는 권력자가 아닌 국민의 대표자임을 재확인하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