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속의 목소리가 허둥거린다. 지나는 길에 잠시 들리겠다고 하자, 조심해서 오라는 말과 함께 천천히 오라는 말이 길게 따라붙는다. 혼자 사는 아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 뒤로 미처 치우지 못한 베란다를 떠올렸나 보다. 전화를 끊자마자 그는 쓰레기를 양손에 들고 계단을 내려갈 것이다.
지난 여름, 휴가라고 모처럼 집에 온 아들과 느긋하게 텔레비전을 보았다. 영화를 한 편 보고, 막 리모컨을 돌리는데 잡다한 물건 속에 파묻히다시피 한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누울 자리도 없어 앉아 자야 할 만큼 온 집을 물건으로 가득 채웠다. 그녀가 주워 온 것들은 쌓이고 쌓여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른 프로 보자는 아들의 말을 자르며 잘 보란 듯이 볼륨까지 높였다.
화면에 비치는 것들의 썩은 냄새가 내 코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들끓는 파리에 바퀴벌레까지 눈앞을 어른거렸다. 아들은 할머니가 저장강박증 환자 같다고 했다. 아픈 기억으로 생긴 마음의 빈 공간을 물건으로 채운다는 것이다. 끌어 모은 물건들은 누가 봐도 쓰레기로 보일 것들이었다. “너도 아픈 기억이 있니?”라고 묻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베란다에 분리해 둔 재활용은 다 버리고 왔느냐, 생활쓰레기통은 깨끗이 다 비웠느냐는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이 뜨거운 여름, 온 집안에 퀴퀴한 향수가 피어오르겠다고 하자, 아들이 기겁했다. 쓰레기까지 껴안고 살려면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해야겠다는 내 말에, 그는 눈만 끔뻑끔뻑한다.
나는 집의 평수에 예민하다. 거주할 곳 한 평을 늘리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가. 아침에 눈 뜨기 바쁘게 일하러 가고,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대충 배달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주말이면 밀린 잠을 자고, 겨우 일어나 빨래한다. 그 또한 일이 덜 바쁠 때 말이지, 주말 없이 일 할 때는 빈 택배상자와 배달음식 통들로 베란다가 점점 좁아진다. 쉬는 날 큰마음 먹어야 치운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할머니를 핑계로 아들에게 제때 버리라고 각인시키려했다.
할머니 집에 도움을 주려는 이웃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이 쓰레기들을 끌어내 차에 싣는다. 화물차가 몇 대나 줄을 지어 실어낸다. 저렇게나 많다고? 끝없이 나오는 것들에 숨이 턱 막혔다. 나는 할머니 걱정보다 끌어내는 쓰레기에 눈이 꽂혔다. 온갖 병균이 내 몸에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몇 대의 차가 나가고 나자, 조금씩 집안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볼일을 마치고, 아들의 아파트에 들어섰다. 주차장 한 귀퉁이에 경비아저씨가 플라스틱 더미 사이를 헤집고 있었다. 오물이 묻은 배달 음식 통들을 건져 포대 옆으로 던졌다. 달라붙었던 음식 찌꺼기가 바닥에 흩어졌다. 분리수거장을 넘어 주차선까지 몇 개나 침범한 것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주차할 자리를 찾지 못해 몇 바퀴나 돌았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지 않았다. 누가 붙잡아 둔 건가, 짜증이 살짝 올라왔다. 나는 버튼을 누르고 또 눌렀다. 한참 만에 숫자가 천천히 내려오고 문이 열렸다. 한 남자가 쓰레기 더미 속에 서 있다. 손가락에는 플라스틱이 든 커다란 봉지와 일반쓰레기 봉지가 걸려있고 발치에는 종이상자가 가득이다. 한 번 만에 다 버리고 싶은 그의 마음이 줄줄이 그것들을 밖으로 끌어내고 있다. 종이상자에 얹힌 크고 작은 택배 상자가 바닥에 떨어진다. 아들을 보는 것 같아 나도 덩달아 거들어주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그에게 목례하고 아들 집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음악이 먼저 마중한다. 아들은 보란 듯이 베란다 문까지 열어두었다. 나는 빈 쓰레기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베란다 문을 닫으려다 바깥을 내다보았다. 잎들을 놓아버린 겨울나무의 앙상함 사이로 큰 포대들이 보였다. 조금 전에 봤던 것보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재활용 포대들이 더 많은 차선을 물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첩첩이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였다. 그들도 똑같이 쏟아내고 있겠지. 곧 쓰레기가 15층까지도 금방 차고 오를 것 같다. 할머니는 남들이 만든 쓰레기를 집에다 모으고, 나는 내가 만든 것들을 집 밖에 버리고 있다. 집안이 깨끗하지 않으냐고 묻는 아들에게 나는 할 말이 없어, 애초부터 만들지를 말라며 등짝을 후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