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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권고’로 지방의회 길들이는 정부

등록일 2025-01-21 18:12 게재일 2025-01-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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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지방의회가 출범한지 올해로 34년(1991년 개원)이 됐지만, 중앙정부는 아직도 어린아이 취급을 하는 것 같다. 법률이 아니라 ‘지침’이나 ‘권고’를 통해 지방의원들을 길들이려 하는 태도는 개원당시나 지금이나 똑같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시비를 거는 단골메뉴는 지방의원들의 국내외 연수 비용문제다. 언론에서 지방의원 해외연수와 관련해 혈세 낭비 또는 ‘셀프 출장심사’ 등의 부정사례를 보도하면, 지침이나 권고를 통해 브레이크를 거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행안부는 최근 지방의원들의 해외출장 비용제한과 사전·사후관리를 위해 ‘지방의회 공무국외출장 규칙 표준’을 개정했다고 발표하면서, “지방의회가 이를 준수할 것을 권고한다”고 했다. 말이 권고지 지키지 않으면 담당 공무원이 다쳐 강제성이 다분하다.

주요 내용은 해외 출장 심사 및 절차를 강화한 것이다. 지금은 심사위원회(광역의회 9명 이상, 기초의회 7명 이상) 의결을 거친 출장계획서를 심사 후 3일 이내에 누리집에 게시하게 돼 있지만, 앞으로 출국 45일 이전에 출장계획서를 누리집에 올려 주민의견수렴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출장 후에도 심사위원회가 출장결과의 적법·적정성을 심의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항공과 숙박대행, 차량임차, 통역을 제외한 예산 지출은 전면금지했다. 김민재 행안부 차관보는 “교육을 통해 지방의회에 올바른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중앙정부의 ‘삐딱한 생각’과는 달리, 지금 지방의원들은 해외연수가 필수적이다.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를 예로들면 지역 현안 해결과 입법, 정책대안을 발굴하는 수많은 의원연구단체가 있다. 연구성과를 위해서는 해외주요 도시 벤치마킹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대구시의회에서는 사회문제해결연구회, 대구 희망포럼, 미래 발전 포럼, E&D 포럼, 지역 혁신·성장 포럼, 희망정책 연구 포럼 등에 의원 대부분이 중복 가입해 공부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경북도의회도 마찬가지다. 해수담수화시설 발전연구회, 저출생 대책연구회, 학교폭력 정책연구회 등 16개의 의원연구단체가 결성돼 수시로 세미나와 간담회를 연다. 현안에 대한 용역을 발주해 조례제정에 참고하기도 한다.

기초의원들의 공부의욕도 광역의원 못지 않다. 대구 수성구의회를 예로들면 미래지향적 도시숲 만들기 연구회, 책 읽는 의원 모임, 둘레길 연구회 등의 연구단체에 의원 모두가 참여해 도시발전에 대한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에 대한 예산낭비 문제는 어제오늘 제기된 일은 아니지만, 지방정부가 아니라 중앙정부가 이를 통제하려 드는 것은 월권이다. 엄연히 지방자치법과 조례에 의해 운영되는 지방의회를 중앙정부가 지침이나 권고를 통해 압박하는 것은 지방의원들을 무시하는 행위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지침이나 권고는 상급기관이 업무처리의 편의성을 위해 하급기관에 내려 보내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지방정부를 구성하는 양대 축인 지방의회를 중앙정부가 하급기관으로 여기고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지방자치정신에도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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