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한 학급에 70명이 넘었다. 초록색 천으로 싸인 출석부가 좁고 길쭉했다. 펼치면 한자로 된 이름이 빼곡했다. 이따금 선생님께서 내게 출석을 부르는 일을 맡기셨다. 모르는 한자가 있어도 친구들의 이름을 다 알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또 모두 다 여학생이어선지 비슷비슷한 이름이 많았다. 끝자가 거의 자(子), 순(順), 숙(淑), 희(姬), 옥(玉)이었다. 정을 첫 자로 쓴 이름들도 많았는데, 내 이름과 한자를 달리 쓰는 애들의 이름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대부분 곧을 정(貞), 맑을 정(淨), 고요할 정(靜)의 한자였고 정(正)자는 없었다. 남들과 다른 뜻의 이름자를 가진 나는 까닭 없이 뿌듯했다.
어느 날 신문을 보고 계시는 아버지 옆에 바짝 다가앉았다. 신문엔 내가 모르는 한자가 더 많았지만 함께 읽는 척하다가 정(正)자를 찾아내고는 아버지께 내 이름자의 내력을 여쭸다. 집에선 내 이름을 옥(玉)이라고만 부른다. 니가 났을 때 워낙 동글동글하다며 할머니께서 그렇게 지으셨지라고 하셨다. 옥(玉)자 말고요, 정(正)자요…. 아 차라리 여쭙지 말 걸 싶은 대답을 들었다. 니가 정월에 났거든…. 난 이월이나 삼월에 나지 않았음을 큰 다행으로 여겼다. 이옥이 삼옥이보다는 정옥이 더 낫지 않은가.
이름대로 바르게 살아야지 무슨 결기 같은 것이 생긴 건, 그 몇 년 후였다. 무슨 연유에선지 어머니가 점쟁이에게 나를 데리고 가셨다. 세상 가장 공손한 자세로 앉은 어머니가 뭔가를 묻고 점쟁이는 잠시 뜸을 들인 후에 긴 대답을 한다. 어머닌 좋아하는 기색이기도 하다가 때론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좀 더 바짝 점쟁이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셨다. 옆에서 그저 심상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점쟁이가 대뜸 이름을 물었다. 바를 정(正) 구슬 옥(玉)이라고 대답했더니 이름자를 크게 쓰면서 대통령 이름자하고 같네. 이름 풀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만은 아주 똑똑하게 기억한다. 그 때 나는 내 이름의 정(正)자를 내 삶의 신조로 삼기로 결심했다.
불교 진각종단 위덕대에 다니게 되자 내게 또 하나의 이름, 불명(佛名)이 생겼다. 수계관정(受戒灌頂)으로 받은 불명은 ‘대자은(大慈恩)’이었다. 크게 사랑하고 은혜를 베풀라로 풀이하자 왠지 내겐 버겁다는 첫 생각이었다. 특히 대(大)가 그랬다. 정사님께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인연 따라 이름이 지어지는 것이라며 부처님의 뜻이라고 하셨다. 남에게 은혜를 베풀기엔 역량 부족이지만 두루 봉사하면서 살자. 최소한 폐 끼치면서 살지는 말자.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폐 끼치고 살았다는 생각에 두렵다.
언젠가 중국 시안의 대자은사라는 절엘 갔다. 내 불명과 같아 반가워 감격했다. 서유기로 유명한 현장이 수좌로 있으면서 역경사업을 했다는 절이다. 당 고종이 모후인 문덕황후를 위해 세워, 절 이름을 ‘자애로운 어머니의 큰 은혜’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했다. 역사깊은 내 불명에 사명감과 동시에 두려움이 들었다. 절에 가면 불명을 조심스럽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