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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방학답게!

등록일 2025-08-13 18:06 게재일 2025-08-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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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평소 손주들의 하교를 친외할머니가 번갈아 가면서 도왔다. 정한 시간에 학교 돌봄교실에 가서 애들을 마중하고, 약간의 간식을 먹이며 학원에 데려다주었다. 방학이 되면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누군가는 종일 집에서 돌봐주고 애들은 방학 내내 학원 뺑뺑이를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 돌봄교실에 보낼 수밖에 없다. 3학년인 손자는 그렇게 2년, 4번의 방학을 보냈다. 방학이 되어도 학교엘 가야 하니 이게 무슨 방학이야 툴툴 볼멘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안쓰러워 영화관엘 데려가는 일탈을 감행하면 그렇게나 좋아했다.

7월, 여름방학이 다가오자 며느리는 아이들의 방학 중 스케줄을 짜느라 몇 날 며칠 골머리를 앓는 것 같았다. 도리없이 돌봄교실과 방과 후 수업을 선택할 것이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학원 순례. 손주들은 올 여름방학을 또 그렇게 보낼 게 뻔했다. 이번엔 내가 며칠을 고민한 후 통 큰 결단을 해 아들 내외에게 알렸다. 이번 방학엔 애들에게 방학을 방학답게 누리게 해주자. 돌봄교실도 방과 후 수업도 신청하지 말고 다니던 학원도 최소화해라. 예전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 시골 외갓집, 이모집에 가서 한여름을 보냈듯이, 아예 할머니집에서 방학을 지내도록 해보자. 꼭 다녀야 할 학원은 직접 데려다줄게. 의외로 선선히 내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평소 세 군데 학원을 한 곳으로 줄이는 용단도 내렸다. 난 나대로 애들과 함께 할 방학 버킷리스트를 열심히 짰다. ‘동굴 탐험’, ‘고양이 카페가기’, ‘선비체험’, ‘미술관 가기’, ‘마술 배우기’, ‘대구시티투어버스 타기’ 등등.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어느 날 밤 두 아이가 짐을 잔뜩 챙겨들고 예고없이 들이닥쳤다. 그렇게 아이들의 할머니집 방학살이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에게도 방학 중 버킷리스트를 메모해보라고 했다. 손자는 ‘시내 가서 놀기’, ‘음식 만들어 먹기’, ‘그냥 책읽기’, ‘매미잡기’, ‘할머니와 글씨연습’, ‘놀기 놀기 놀기’. 손녀는 ‘바다에 가서 해뜨는 모습 보며 높이뛰기’, ‘아지트 만들기’, ‘딱 하루 뒹굴거리기’. 방학 중 하루 일과표도 셋이 머리 맞대고 같이 짰다. 7시 반에 일어나고, 8시에 아침 먹고, 11시에 EBS 보기, 9시 반에 자기. 그리고 하루 한 시간 정도 공부 시간을 상의하고 정했다. 그 이외의 시간은 맘대로 하라고 했더니 ‘놀기 놀기 놀기’로 도배를 했다. 그래 그래 그러자. 방학이잖아... 크게 프린트해서 벽에 붙여두었다.

방학이 두 주나 지났다. 그 사이 스파게티와 또띠야피자를 만들어 먹었고, 뒷방은 아지트로 내줬다. 고양이카페에도 가봤다. 지난 토요일엔 벌레잡기를 대신해 예천곤충체험관엘 다녀왔다. 예전부터 알고 지낸 마술사와 약속을 잡아, 오늘 카페에서 두 시간 남짓 마술을 보고 배웠다. 집에 오자마자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마술쇼를 펼치고, 손녀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기부터 썼다. 이렇게 버킷리스트는 하나씩 체크되는데, 하루일과표는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아침엔 늦잠이 일쑤고, 놀기 시간이 아니어도 놀고 공부시간에도 논다. 뭐 어때 봐 준다. 방학이니까…. 손자는 할아버지와 한 침대에서, 손녀는 내 품에 안겨서 잠드는 행복은 덤이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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