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들네가 방학이라 며칠 내려오겠다고 했다. 광복절 끼워 2박 3일 연휴가 가능해서라고 했다. 두 번의 명절, 두 번의 방학, 그리고 어린이날 연휴가 길면 오기도 해도, 많아야 1년에 다섯 번 정도밖에 못 만나는 그리운 손녀들이었다.
그날부터 몸도 마음도 분주해진다. 가장 먼저 할 일은 2박 3일의 스케줄을 잡는 것. 마침 8월 15일과 그 다음날이 큰손녀와 큰아들 생일이니 합동 생일파티를 하면 되겠다 싶었다. 대구 애들과 합하면 10식구이니 움직이는 일이 만만찮다. 집에서 간단히 파티 준비해야지. 마침 집에 와 있는 손주 둘과 같이 생파 이벤트를 의논했다. 며느리들에게 계획을 알렸더니 모두들 손사래를 친다. 더위에 절대 고생하지 마시라. 허무하게도 생일파티는 취소, 외식으로 결정이 났다. 집에서 가까운 뷔페를 예약하고, 또 볼링을 치기로 했다. 대신 케이크커팅은 집에서 하자. 둘쨋날 스케줄은 남편이 제안했다. 경주 미술관 투어를 하자. 경주예술의전당에서 ‘근현대 4인의 거장전’, 오아르미술관에서 무라카미 타카시의 ‘해피 플라워’를 보면 손녀들이 좋아할 거다. 경주문화관의 ‘고흐전’도 보자고 결정했다.
가장 힘들고 고된 일은 손님맞이 청소다. 가장 먼저 이불 빨래를 하고, 방 청소하기, 주방도 정리 좀 해 두어야 오랜만에 보는 며느리에게 책잡히지 않지. 화장실 청소는 맨 나중에 하자. 작년에 쓰고 그냥 넣어두었던 까슬한 여름용 차렵이불을 꺼내 빨았다. 빨다 보니 우리가 쓰던 이불과 베갯잇도 빨아야지 싶어 모두 내어 빨고, 건조하고, 햇볕에 바싹 말리고, 속통도 건조대에 걸쳐 말리고 소독했다. 네 개의 방 중 정작 남편과 내가 쓰는 방은 거실과 안방뿐이다. 그러나 10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모이면 안 쓰던 방도 침실로 사용해야 한다. 책방의 먼지부터 깨끗이 턴다. 큰아들 내외가 특히 그 방을 좋아하니 걸레질도 꼼꼼히 한다. 방학 중 손주들이 아지트로 꾸민 뒷방도 양해를 구해 잠시 철거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네 명의 손주들이 합심해서 또다시 아지트로 꾸밀지언정···. 엉망진창 어질러진 컴퓨터방도 손대야 했다. 창틀의 오래 묵은 먼지까지 훔치고 닦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아 난 왜 평소에 털고 닦고 걸레질하는 습관이 안돼 있을까 자책한다. 다시는 이렇게 먼지 쌓아두지 말고 평소 청소 습관을 길러야지 아주 잠시 결심하지만 난 날 믿지 못한다.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 뻔하다. 연닷새 집안일을 했더니 거의 탈진 지경이었다. 결국 화장실 청소를 제때 못하겠다 싶었다.
내가 이불 빨고 청소하고 주방 정리하며 부산을 떨어도 안마의자에 앉아 책 읽고 TV 보는 남편에게 화장실 청소를 부탁했다. 웬일로 남편은 벌떡 일어나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며 화장실로 갔다. 락스와 솔을 찾는 남편에게 과탄산소다를 가져다주며 뜨거운 물을 쓰라고 일러주고 안방으로 가 누웠다. 깜빡 잠이 들었나 보았다. 서울 애들이 곧 도착한다는 전화에 잠에서 깼다. 거의 동시에 대구 손주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왔어요.” 남편은 막 안방 화장실 청소를 마친 모양이었다. “건아···. 화장실 구경해 봐···. 할아버지가 깨끗하게 청소했어.” 화장실 청소한 생색을 저리도 내고 싶은가 보다. 슬그머니 웃음.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