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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상원사 관대걸이

등록일 2025-07-23 17:29 게재일 2025-07-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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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697년 신라 효소왕 때였다. 망덕사에서 낙성회가 열려 왕이 친히 가서 공양하였다. 그때 비파암에서 왔다는 초라한 모습의 스님이 재에 참석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왕은 내키지 않았지만 말석에 앉히라고 명했다. 재가 끝나갈 즈음, 왕은 스님에게 놀리듯이 말했다. “돌아가서는 사람들에게 국왕이 친히 공양하는 재에 참석했다고 하지 말라.” 그 말을 들은 스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왕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신 석가를 공양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말을 마친 스님은 몸을 솟구쳐 하늘로 날아 사라졌다. 왕은 놀랍고도 부끄럽고 두려워 스님이 간 쪽을 향해서 절했다. 그가 간 남산을 찾아보게 하니 바위 위에 지팡이와 바리때가 있었다. 스님이 원래 계셨다는 암자엔 석가사를 창건하고, 그의 자취가 없어진 곳엔 불무사를 지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쓴 일연은 이와 비슷한 예화를 인용했다. 삼장법사가 왕을 초대한 행사에 초라한 행색을 하고 갔을 때는 문지기가 막더니 좋은 옷을 빌려입고 가자 막지 않았다. 자리에 앉고 음식을 내어오자 법사는 음식을 옷에게 먹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내가 초라한 행색일 때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더니 이 옷을 입고 들어오자 이 자리를 허락하니 옷 덕분이 아니겠소. 그러니 옷에게 음식을 대접해야 마땅하지 않겠소.”

삼국유사에는 석가모니 부처님뿐만 아니라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 관음보살들이 몸을 바꾸어 인간에게 감응한 기적의 이야기가 매우 많다. ‘부처님을 몰라보는 어리석은 왕과 모습을 감춘 부처님 이야기’ 화소(話素)는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지난 일요일, 청계사 108기도성지순례로 오대산 상원사에 가서 이 이야기 화소를 다시 만났다. 신라왕이 아니라 조선의 왕 이야기였다. 조카인 단종을 죽인 세조는 꿈에 나타난 단종 모가 뱉은 침 자국마다 종기가 났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전국의 온천과 맑은 계곡을 찾았는데 오대산 월정사를 찾았고 상원사 물 맑은 계곡에서도 몸을 씻었다고 했다. 왕은 종기 가득한 등을 보이기 싫어, 신하들도 물리치고 혼자 몸을 씻었다. 마침 계곡에서 놀고 있는 동자승에게 등을 씻어달라 부탁하였다. 다 씻고 나서 세조는 동자승에게 “어디 가서 임금의 몸을 씻어 주었다는 말은 하지 마라”고 말하자 동자승은 “어디 가서 문수보살이 직접 등을 씻어 주었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라고 말한 후,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 세조의 종기는 씻은 듯이 나았다. 현신한 문수동자에 감복한 세조는 화공을 불러, 기억을 더듬어 문수동자상을 그리게 하였고, 문수동자상을 조각하게 하였다. 이것이 상원사 문수전에 모셔져 있는 국보 목조문수동자좌상이라고 한다. 상원사 입구에는 세조가 목욕을 위해 의관을 벗어 걸쳐두었다는 “관대걸이”가 돌로 만들어져 있는데 세월의 이끼가 내려앉아 있다. 이야기가 역사로 만들어진 현장이다.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5만 진신이 머무는 성산이기도 하니 오랜 세월이 흘러도 불심 깊은 자들에게는 숱한 기적이 재생산되는 산이기도 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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