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글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과학적이고 쉬운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순식간에 글자의 원리를 깨닫고 읽어내는 것을 볼 때이다. 손주들이 글눈을 뜰 때는 주로 간판을 읽었다. 유치원을 오갈 때, 신호등 앞에서 정차해 있으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글자를 가리키며 읽게 하고, 잘못 읽으면 바로잡아 주는 식이었다. 좀더 크자 움직이는 차에서 손자와 손녀는 간판을 읽되 게임을 하곤 한다. 간판의 글자를 거꾸로 읽거나, 받침 없이 읽는 내기를 하고, 그렇게 읽어낸 소리가 우스운지 깔깔댄다. 무의미한 소리가 재미있는지 더 많은 간판이나 글자를 읽어내려 겨룬다. 몇 자 안되는 간판보다 움직이는 버스나 택시의 광고 문구를 먼저 찾아 읽는 게임을 하더니, 요즘엔 현수막의 긴 문장이나 광고 문구를 찾아 읽는 식의 게임으로 발전한 것을 본다. 그럴 때 애들 눈에 포착된 현수막은 대체로 정당 현수막이어서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대부분의 광고 현수막은 일정한 장소에 설치된 현수막 게첨대에 있어서 아이들 눈에는 포착이 안되는 것 같았다. 대신 정당 현수막은 대부분 교차로의 사방에 불법적으로 게시되어 있어 정차할 때마다 눈에 잘 띄는 게 문제였다.
지난 4월 선거 때에는 난무하던 그 많은 현수막에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현수막의 수와 양뿐 아니라 엄청나게 선정적인 내용엔 기함할 정도였다. 작년 12월부터 상호 비방 현수막이 덕지덕지 붙었었고, 선거 기간엔 무법천지 현수막으로 도배되었다. 선거라서 참아주자 했더니 선거도 끝난 최근엔 또 다른 내용, 서로 다른 정당을 비방하는 현수막이 교차로마다 걸려있어 눈살을 찡그리게 한다. 문제는 그걸 읽는 눈이 저 어리고 해맑은 아이들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어제 본 현수막, 그 중에서도 많이 순화한 현수막 하나를 예로 들어본다. ‘부적격·무능력·부도덕 장관 임명 반대 국민 눈높이로 송곳 검증하겠습니다.’를 단숨에 읽던 손녀가 어김없이 묻는다. “할머니 부적격은 뭐야? 무능력은 뭐야? 부도덕은 뭐야?” 단어 설명을 예를 들어 대강 해 주니 이해가 되었던지 “그러면 왜 그런 사람을 장관에 임명한대?” 송곳 검증이 아니라 송곳 질문을 해댄다. 이런 해맑은 질문에 현명하고 깔끔하게 대답해 낼 할머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고 싶다. 나는 대강 얼버무리면서 마침 바뀐 신호등에 고마워하며 자동차의 엑셀에 화난 발을 올린다.
정당 현수막은 읍면동에 2개씩만, 어린이보호구역과 소방시설 주면은 설치 금지, 보행자나 차량 운전자의 시야를 가릴 우려 있는 교차로, 횡단보도, 버스정류장엔 몇 미터 이상 높이 설치해야 한다지만 이 법조차도 눈가리고 야옹이다. 디지털 시대, 얼마나 좋은 모바일 매체가 많은가. 이런 시대에 저런 구닥다리 정치광고를 하다니 참으로 한심한 국회요 정당이다. 정치 혐오 일으키지 않는 현명한 국회나 정당은 애당초 글렀나 싶다. 흉물스러운 현수막 게시하는 정당이나 국회의원 낙선운동을 한다면 없어질까. 글눈 뜬 아이들에게서 곤혹스러운 질문을 받고 싶지 않은 이 할미의 심정을 누가 알아주려나. 슬픈 나라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