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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래된 책을 사다

아들과 산책을 나갔다. 동네 산책로는 마스크 낀 사람들로 늘 붐벼 차를 타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갔다. 김병례 작가는 산책을 책을 산 것으로 표현했다. 자신처럼 매일매일 나가는 것은 월간지를 구독하는 것이고, 나처럼 계절마다 찾아가는 것은 계간지를 읽는 것이라고 했다.계간지 중에 오래된 책을 사러 나갔다. 이 동네를 들어서려면 먼저 은행나무 가로수를 지나고, 소나무가 솟을대문처럼 터널을 이룬 길을 지나야 나온다. 몇백 년의 세월을 지닌 아름드리 나무들이 성큼성큼 그늘을 만들어 준다. 마을의 오래된 역사를 정자나무가 책의 서문이 되어 알려준다. 여기가 이언적 선생이 살았던 마을이라고.옥산서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세심대로 향했다. 포장하지 않은 흙길에 아들과 나의 발소리만 사박사박, 딱따구리 녀석이 머리 위에서 나무를 쪼아대고 있다. 카메라를 들이미니 포로록 다른 나무로 자리를 옮겨 버렸다. 길옆으로 자계천이 따라붙는다. 가뭄이라 그런지 수량이 더 줄어 졸졸 낮은 목소리를 낸다.물 떨어지는 소리가 좀 더 커지는가 싶으면서 너럭바위가 펼쳐진다. 이곳을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닦는 곳이라고 세심대라 부른다. 이언적 선생이 사시는 동안 주변의 산과 계곡마다 이름을 붙였는데 사산오대(四山五臺)라 하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세심대이다. 읽은 책을 겹겹이 쌓아 놓은 듯한 책바위가 골짜기를 가득 채웠다. 바위에 이황 선생의 글씨로 ‘세심대’를 새겨넣었다. 그 옆으로 용추 폭포가 물소리를 증폭시킨다. 폭포 아래 용소를 건너는 외나무다리가 놓였다. 아들 손을 잡고 오래전 이 다리를 건너간 선생의 산책로를 따라 독락당으로 향했다.동네 골목길을 지난다. 집집마다 주소를 세심로 00번지라 적혔다. 동네 이름도 세심마을이라고 명패를 달았다. 까치밥을 단 감나무와 봄을 미리 준비한 매화나무를 구경하다 보니 금방 독락당 주차장이 나타났다. 버스 주차장 앞에 가게 이름은 ‘자옥슈퍼’다. 자옥산에서 따온 듯하다. 산 이름도 이언적 선생이 붙인 것이다. 독락당의 백미는 계정에서 보는 경치다. ‘계정’이라는 명패는 한석봉 선생의 글씨다. 봄, 여름, 가을에 지인들과 올라앉아 마루에 앉아 한나절 이곳을 지나는 바람을 즐기고 책도 읽었다. 그래서 오늘은 자계천에서 계정 뒤로 지는 노을을 보려 한다. 자계천으로 내려섰다. 돌다리를 건너며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가라앉은 가을 나뭇잎 사이로 송사리가 분분히 노닌다. 그 위로 기와를 얹은 한옥이 까치발을 들어 물속에 모습을 비춰 매무새를 다듬는다. 물고기들이 계정에 올라 풍류를 즐긴다.계정은 건물에 붙여 달아낸 누각이다. 바위의 모양이 들쑥날쑥하니 기둥의 길이도 제각각이다. 돌의 모양에 따라 나무기둥 밑을 깎아서 앉히는 그랭이 공법을 썼다. 살창을 내어 물소리와 계곡 풍경을 집안으로 들여놓은 선생의 기발함을 누각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건물이 냇물에 한 발 내딛고 있어 난간에서 내려다보면 물 위에 떠 있는 듯하다. 건너편 앞산도 한 걸음 더 가까워져 손에 닿을 거리다.김순희수필가자계천에서 바라보니 굴뚝과 아궁이는 계정 밖에 나와 있었다. 난간 밑 벽체에 제비집처럼 매달아 놓았다. 세상에 아궁이가 저런 곳에 달렸구나, 세상에 이런 굴뚝도 있구나. 한옥의 설계도는 대목수의 머릿속에만 있다더니 선조들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인지 계절마다 간간이 넘겨보는 산책자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한참을 물소리에 젖어서, 계정의 아늑함에 물들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아들과 독락당 담장과 담장이 만든 골목을 걸었다. 비스듬히 누운 향나무가 매력적인 사진을 만드는 곳이다. 가만히 한 컷 찍다 보니 발아래 빨간 산수유 열매가 떨어져 있다. 담 안에서 키를 키운 산수유의 품이 담 밖으로까지 뻗었다. 오늘의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오래전 미리 발간한 이언적 선생의 고서적의 품이 참으로 넓다. 오후의 산책만으로 그 뜻을 다 헤아리기 힘들어 월마다 구독해 펼쳐 봐야겠다.

2020-12-13

정치후원금, 세상을 바꾸는 “돈의 힘”

조윤현문경시선거관리위원회 홍보주무관모든 활동에는 돈이 필요하다. 정치 또한 마찬가지다. 권력은 막강하고도 달콤하지만, 정치자금이라는 비용이 필요하다. 그것을 충당하기 위해 누군가는 권한을 남용해 타인을 수탈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그 권한으로부터 지대를 추구하는 자에게 포획되기도 했다. 부정부패, 정경유착. 익히 들어온 이야기다. 정치자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이 때문일 것이다.이러한 부정을 방지하고자 정치자금법이 제정됐다. 엄격한 통제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법 또한 다른 수단으로서 돈의 힘을 빌린다. 제1조에서 말하는 “정치자금의 적정한 제공을 보장”, 바로 정치후원금이다.현행 정치후원금 제도에는 중앙당이나 정치인의 후원회에 기부하는 ‘후원금’과 선거관리위원회에 기탁하는 ‘기탁금’이 있다. 후원금은 해당 중앙당이나 정치인의 후원회에 기부되고, 기탁금은 국고보조금 배분율에 따라 각 정당에 배분·지급된다. 양자 모두 선거관리위원회가 운영하는 정치후원금센터(www.give.go.kr)에서 신용카드나 모바일결제, 연말에 버려지곤 하는 카드 포인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단으로 기부할 수 있다. 기부자는 기부금에 대해 10만원까지는 전액, 1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은 15%(3천만원 초과 금액은 25%)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단 정치적 중립의무가 있는 공무원과 교원은 기탁금만 기부할 수 있다.정치후원금 홍보와 세제혜택은 소액 다수의 정치자금 기부문화의 정착과 확산을 위함이다. 이로써 우선 정치자금 수입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소수의 밀실보다는 다중의 광장에서 부정은 발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이로써 정치문화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 정치후원금으로써 국민은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인은 국민적 평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치후원금은 정책 개발의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정치인이 소신을 지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도 할 것이다.누군가는 지지하는 정치인을 위하여, 누군가는 싫어하는 정치인에게 욕을 하기 위하여, 또 누군가는 효과적인 세(稅)테크를 위하여 정치후원금을 기부할 것이다. 그 동기가 어떻든 간에 소중하게 기부된 정치후원금은 정치발전에 기여할 것이다.누구나 원하기 때문에 얻으려 노력하고, 그러한 노력의 여파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하여금 세상을 시나브로 바꾸어나가게 하는, 바로 그것이 돈의 힘이기 때문이다.

2020-12-13

수도권 코로나 과부하 돌입, 지역 방어 총력을

전국에서 하루 1천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코로나19 방역체계가 초비상 국면이다. 정세균 총리는 지난 주말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1천명 돌파와 관련, “지금은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상황”이라며 거리두기 3단계 격상에 대비한 전문가 의견 수렴을 지시했다.지난 주말인 13일 하루 신규 확진자는 전날 950명에 이어 1천30명으로 집계됐다.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1월 20일 이후 가장 많은 기록이며 천명대 돌파는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발생이 792명으로 전체의 70%를 넘고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도 신규 확진자 수가 지속 확대되고 있다. 같은 날 부산 57명, 대구 28명, 경남 24명, 경북 17명 등으로 전국 16개 시도에서 골고루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주장하고 경기도라도 특단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은 극약처방과 다름없다. 원칙적으로 집에만 머물고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것을 권고하는 조치다. 10인 이상 모임이나 행사는 할 수 없으며 음식점, 상점, 의료기관 등 필수 시설 이외는 모든 다중이용시설은 문을 닫아야 한다. 학교는 원격수업으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이 시작된다. 전국적으로 50만개의 상점이 문을 닫아야 하고 국민의 일상이 셧다운되는 사태가 초래된다. 서울의 일부 종합병원 응급실은 벌써 일반응급환자를 더이상 받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병상 부족으로 500명이 넘는 확진자가 집에서 대기중이라 한다.대구와 경북에서도 신규 확진자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토요일 대구에서는 교회발 신규 확진자 35명이 발생한 데 이어 일요일에는 교회발 감염자가 45명으로 늘었다. 경북도 13일 18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으며 최근 일주일 사이 64명의 확진자가 새로 발생한 불안한 상황이다.연말을 앞두고 각종 모임이 많아지는 시기라 수도권발 지역 전파가 걱정이다. 특히 수도권 방역 강화를 피해 지역으로 원정와 송년회를 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시민과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1차 대유행을 경험한 대구경북은 사생결단의 각오로 코로나19의 지역 전파를 막는데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2020-12-13

무자식 상팔자일까

무자식이 과연 상팔자일까? 자식이 없어 도리어 걱정이 없어 편하다는 이 말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옳은 것일까.요즘 젊은세대 가운데서는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통계상으로도 이는 확인이 된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결혼한 지 5년이 안 된 신혼부부 중 자녀가 없는 비율이 지난해 경우 42.5%다. 10명의 신혼부부 중 4명은 자식이 없다. 통계작성 이후 최고 수치라 한다.여성의 사회참여로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부담과 주거문제 등이 아이 없는 신혼부부를 양산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은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를 말한다. 양육과 경제적 부담을 덜고 자기중심적 삶을 살겠다는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다.최근 방송인 사유리씨가 일본에서 정자를 기부받아 출산한 일이 알려지면서 비혼 출산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젊은층 사이에 비혼을 희망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전통적 가족관이 무너지는 우리 사회의 현상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수년 전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된 ‘무자식 상팔자’라는 드라마는 한가정에서 부부와 자녀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싸움을 소통과 화해로 풀어가는 과정을 그려 인기를 모았다. 보통의 가정이면 있을 법한 평범한 사건을 인간적인 터치로 풀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느끼게 한 드라마다.스웨덴의 스톡홀름대 연구팀이 400만명의 의료 기록을 분석해 봤더니 자녀를 낳았거나 입양한 부모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무자식 상팔자, 무턱대고 믿고 따를 일은 아닌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2-13

반문연대, ‘극우 회귀’ 왜곡선동 감당 묘책 있나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등 보수 정당과 야권 사회단체 대표들이 통합 투쟁기구인 ‘폭정종식 민주쟁취 비상시국연대’를 출범시켰다. 정부·여당의 목불인견 입법독주를 비롯한 반민주적 행태를 보면 야권연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바라보는 민심이다. 특히 이런 움직임을 ‘극우 회귀’, ‘수구꼴통 구태’로 몰아붙일 왜곡선동 역풍을 감당해 중도민심의 이반을 막을 묘책도 없이 아무나 마구잡이로 뭉치자고 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반문(반문재인)연대’로 불리는 비상시국연대는 공동대표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7명을 추대했다. 국민통합연대 이재오 집행위원장, 자유연대 이희범 대표,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김태훈 회장, 신문명정책연구원 장기표 원장,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공동대표를 맡았다. 출범식에는 이태규 국민의당 사무총장과 홍준표, 윤상현 무소속 의원과 40개 시민단체 등도 참석했다.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런 일을 잘못 주도하다가는 치명적인 되치기를 당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당의 잘못으로 얻은 반사이익이라고는 해도 최근 제1야당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하는 상황이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정에 대해 대국민 사과하겠다는 계획 표명 등으로 국민적인 지지와 공감을 얻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마구잡이식 외연확대는 자칫하면 또 다른 패착이 될 위태로움이 크다.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11일 ‘반문연대’에 대해서 “수구 냉전 보수의 본색을 드러냈다”면서 “시대의 부적응자일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한 것은 일종의 선동 신호탄이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와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으로 덮어씌우고 그간의 쇄신 노력을 깎아 먹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비아냥이 이미 여기저기에서 불거지고 있다.문재인 정권의 난폭한 질주를 방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막아서다가 회복할 기회를 가까스로 조금씩 얻어가고 있는 우호적 민심마저 영영 놓치는 실수만큼은 피해야 한다. 비난만 일삼는 단세포적 행태를 넘어 감동적인 정책대안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쉽게 접근하다가는 정말 망친다.

2020-12-13

독재의 ‘꿀단지’

안재휘 논설위원유신헌법 제53조에 규정된 ‘대통령 긴급조치권’은 단순한 행정명령 하나만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무너뜨린 초헌법적 권한이었다. 1975년 5월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판과 보도를 금지한 긴급조치 9호는 살벌했다. 긴급조치 9호는 800여 명에 달하는 무고한 지식인·청년 학생들을 마구 잡아 가뒀었다.‘긴급조치’는 국민을 굶주림의 도탄에서 구한 박정희 대통령의 영웅적 일생에 큰 흠집을 낸 독재의 상징으로 역사책에 남았다. 3선 개헌·유신헌법에 이어 ‘긴급조치’를 추동한 배경은 일말의 가책이 빚어낸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최근 민주당이 벌이는 입법독주 쇼의 배경에도 유사한 현상이 얼비친다. 그들을 비상식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 역시 일종의 ‘두려움’일 것이다.‘윤석열 찍어내기’에 혈안이 된 여권(與圈)의 칼춤이 금도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가 대표 발의한 검찰청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실소를 부른다. 개정안은 검사·판사 등에 대해 ‘선거일 90일 전’까지로 돼 있는 현행 사직규정을 ‘1년 전’으로 늘리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법안 발의에는 민주당 의원 10명도 참여했다.누가 보아도 이 법안은 ‘윤석열 출마 금지법’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마저 “당장 최강욱 자신도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을 감시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을 그만둔 지 한 달 만에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느냐”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대표적인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헌법의 피선거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지적했다.그러거나 말거나, 여권은 ‘윤석열 출마 금지법’을 밀어붙일 개연성이 높다. 이 정권엔 당장의 ‘위헌 시비’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도 대략 자기들 편이라고 믿고 있거니와 위헌심판은 워낙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우선 칼을 휘둘러 처치한 다음 시간을 벌고자 하는 전략이 작동하는 까닭이다.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5.18역사왜곡처벌법’은 박정희 시대의 ‘긴급조치 9호’를 연상케 한다. 이 법에는 5·18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자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 처분의 끔찍한 처벌조항이 들어있다. 몇몇 인사들이 5.18에 대해 증거도 없이 함부로 말하는 방종을 두둔할 이유는 없지만,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 소지’ 를 지적한다.민주당은 세월호 관련 범죄 공소시효를 2022년 6월까지 정지시키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요청안도 일방적으로 가결했다. 내년 보궐선거와 내후년 대선까지 계속 세월호를 붙들고 선동을 하겠다는 뜻이다.여기저기에서 “제발 세월호 좀 그만 우려먹으라”고 외치고 있으니, 머지않아 ‘세월호왜곡처벌특별법’도 나오게 생겼다.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야당의 비토권을 거세한 ‘공수처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면서 국민의힘을 향해 외친 ‘독재의 꿀’ 힐난은 어처구니가 없다. 작금 ‘독재의 꿀단지’를 노골적으로 탐하는 자들이 정녕 누구인가.

2020-12-13

달달 외우는 인재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태정태세 문단세….” “웃어서 세우세….”어려서 이런 말들을 달달 외던 생각이 난다. 누구나 눈을 감고 초중등 학교 시절 외우던 말들이다. 이조시대 왕들의 순서를 외웠고, 영어의 will, shall 용법을 외우던 시절이다. 어떻게 쓰이는 지도 모르고 무조건 외웠 다.대부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달달 외우는 것을 잘하던 아이들이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생각하지 말고 외워!”우리나라 초등학교 4학년생과 중학교 2학년생의 수학·과학 성취도는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해당 과목에 대한 흥미도는 꼴찌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는 58개국 초중등 학생 50여만명이 참여한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 변화 국제 비교 연구’결과를 발표했다.우리나라 초등학교 4학년생의 성취도는 수학 3위, 과학 2위를 기록했다. 이 평가를 처음으로 실시한 1995년부터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성취도는 수학 2~3위, 과학 1~2위로 최상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 중학생의 성취도도 그동안 수학 1~3위, 과학 3~5위로 우수한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문제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학·과학에 대한 자신감이나 흥미도가 밑바닥 수준이라는 점이다. 특히 중학 2년의 경우 수학·과학에 대한 흥미도가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낮았다고 한다.“미국 수재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 경쟁하기가 힘들어. 우리 교육방식의 문제야.” 몇 년 전 서울대에서 포스텍으로 자리를 옮긴 한 수재 과학자가 한 이야기이다. 그가 던진 독백과 같은 이 한마디가 내내 뇌리를 때린다.그가 해준 카이스트 총장이었던 미국 국적의 러플린 이야기도 흥미롭다.러플린은 벨 연구소에서 일했는데 괴짜이고 주변 사람과 어울리지 못해 쫓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로 돌아와 스탠퍼드 교수가 되었는데 벨 연구소에서 연구한 연구업적을 근거로 48세인 1998년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 후 벨 연구소의 해당 연구실은 러플린을 몰아낸 걸 크게 후회하였고, 노벨상 수상자를 몰아낸 연구실로 낙인찍혔다는 이야기다. 그는 러플린이 괴짜 연구자라고 하면서 한국에서 성장했으면 학교를 다니다가 쫓겨났을지도 모른다고 말헀다.또, 현 서울대 총장의 일화도 흥미롭다. 그는 초등학교 그리고 그 명문 중고교를 내내 수석으로 다니면서 전국 대학 입학고사 수석, 대학 수석졸업을 했던 수재이다. .그러나 그는 스탠퍼드 유학시절 “태어나서 유학까지 수석이었으나, 논문을 쓰려니 수석을 못하겠어”라고 술회하여 주변 친구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난 한국의 암기식 교육의 피해자”라고 말하며, 그의 눈가에는 가벼운 이슬이 맺혔다고 한다.오늘도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방송의 유튜브의 입시 강의가 요란하다. 수억대 연봉의 스타 강사들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그들은 “외우자, 문제 형식을 알고 해법을 외우자”라고 오늘도 외친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 노벨상을 탈 수 있을 것인가?

2020-12-10

돌아보는 달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농협에서 발행하는 12장짜리 달력의 마지막 장이다. 새해 첫날, 새 달력을 벽에 걸어 놓고 바라보면서 하루하루를 담고 있는 큼직큼직한 고딕체 숫자들이 마치 부화를 기다리는 유정란(有精卵)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매년 서른 개나 서른 한 개들이 유정란 열두 판을 선물로 받은 셈이다. 물론 겨우 몇 개나 한두 판밖에 받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받은 것을 중도에 파기하고 가버린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올해 내가 받은 삼백 육십 여섯 개 중에 이제 스물 한 개가 남았다. 나는 지금까지 몇 개나 부화시켜 날려 보낸 것일까. 갓 깨어난 병아리처럼 새롭고 생기로운 날이 며칠이나 되었던가. 현자(賢者)들은 하나같이 지나간 것에 연연하거나 날을 앞당겨 걱정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이 지금에 충실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기 마련이고.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달마다 저들의 환경과 생활에 관련된 이름들을 붙였다. 가령 크리크족은 12월을‘침묵하는 달’이라 했고, 수우족은 ‘나뭇가지 뚝뚝 부러지는 달’, 샤이엔 족은 ‘늑대가 달리는 달’, 위네바고족은 ‘큰곰의 달’ , 퐁카족은 ‘아무것도 갖지 않은 달’ 등으로 불렀다. 나는 12월을 ‘돌아보는 달’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 해의 마지막 한 달은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성찰하고 정리하는 기간으로 삼는 게 바람직할 거라는 생각이다. 자신의 삶의 궤적을 돌아본다는 것은 곧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기가 누구인 알기 위해서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삶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돌아보면 지난 한 해 우리나라 정국(政局)은 한 편의 막장드라마요, 소위 망나니 춤의 난장판이었다. 일 년 내내 숨 가쁘게 이어져온 광기어린 ‘망나니 춤’은 국민들의 뇌리에 한 장의 캐리캐쳐를 또렷하게 각인시켜 놓았다. 검찰총장이란 명패를 단 사내를 결박해놓고 법무장관이란 이름표를 붙인 여자가 봉두난발하고 권력이라는 칼을 휘둘러대는 장면이다. 둘러선 군중들도 두 편으로 갈라져서 서로 핏대를 세우고 삿대질을 하며 싸우고 있는, 이 한 장의 그림이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풍자화가 아닐 수 없다.철학자 소크라테스는‘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일일삼성(一日三省)이란 말도 있다. 공자의 제자 증자가 하루에 세 번씩 자기성찰을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자신을 몰각하고 반성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철면피, 파렴치, 몰지각, 적반하장, 후안무치, 막가파, 내로남불…. 이런 패륜의 말들을 날마다 곱씹어야 하는 한 해였다. 한 나라의 살림을 맡은 위정자들이 도무지 반성할 줄을 모른다면, 그 해악은 얼마 못 가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한 해였다. 누구든 나라의 녹을 먹는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이맘때쯤 제발 자신을 좀 돌아보라고 간청하고 싶다.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서고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12-10

페어플레이 정신

정치와 스포츠는 닮은 데가 많다. 스포츠가 멋진 승부를 통해 관중의 인기를 얻어가듯 정치도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선 대중의 인기에 부응할 것에 대해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스포츠는 팀의 인지도와 이미지 개선을 위해 마케팅이 필수 영역이다. 궁극적으로 팀의 수익성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분야다. 정당도 마케팅을 잘해야 경쟁 정당에 대해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스포츠가 신인선수를 스카우트하듯이 정당도 실력과 덕망이 있는 인물을 꾸준히 영입하여 정당 조직의 기반을 굳건히 다져야 한다.스포츠가 좋은 경기와 멋진 승부로 팬들을 기쁘게 하듯이 정치도 좋은 정치를 펼쳐야만 지지자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이다.다만 정치와 스포츠가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스포츠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강한 반면 정치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아예 반칙을 밥 먹듯 할 때가 많다. 관중인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을 때도 있다. 페어플레이 정신을 지키겠다고 약속하고도 거짓말을 한들 제재가 안 된다. 이젠 국민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페어플레이 정신은 정정당당한 경기 정신이다. 스포츠맨십이나 기사도 정신 같은 것을 말한다. 진실과 성실의 정신으로 공정한 게임을 하겠다는 뜻이다. 여당의 일방적 공수처법 통과로 지금 우리 정치가 극한 대립과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처음부터 정치권의 페어플레이를 믿지는 않았지만 역시 우리 정치는 실망을 안겨주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무신불립(無信不立)은 정치가 국민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펼쳐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페어플레이 없는 우리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할 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2-10

김여정, 대놓고 대남협박…왜 ‘짹소리’도 못 하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자 핵심 측근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콕 집어 살기 찬 협박을 내놓았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여정은 강 장관을 향해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 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랭기(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살을 앓는 모양”이라며 “두고두고 계산해야 할 것”이라고 을러댔다. 이상한 것은 그런 무도한 험구에 대해 우리는 하나같이 눈치만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여정은 강 장관이 지난 5일(현지 시각)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주최한 중동 지역 국제안보포럼 ‘마나마 대화’에서 한 발언에 시비를 걸었다. 강 장관은 “북한은 코로나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믿기 어렵다”며 “북한이 우리의 코로나19 보건 협력 제의에 잘 반응하지 않고 있다(unresponsive)”고도 말했다.맥락이나 수준으로 볼 때 아무 문제가 없는 발언이었다. 김여정이 퍼부은 특유의 강퍅한 협박 용어들은 터무니없는 생트집이다. 일각에서는 김여정의 비난이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방한 일정에 맞춘 경고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탈북민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김여정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김정은의 계산된 전술”이라고 분석했다. 태 의원은 또 “‘남북대화를 재개하려면 강 장관부터 교체하라’는 메시지”라고 풀이하기도 했다.강 장관에 대한 혹독한 실명 비난과 귀에 담기 어려운 협박에도 대북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무반응이다. 외교부는 강 장관의 발언이 “북한의 국제적 방역협력 필요성 언급”이라며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를 해명을 늘어놓았다.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전략적 인내 의도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북한 지도자들이 무슨 악다구니를 펼쳐도 눈치만 살살 보는 우리의 거듭된 비굴한 행태가 국민의 심리적 무장해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가 제일 걱정이다. 저들의 겁박 막말에 최소한 유감 표명은 하면서 남북관계를 풀어갈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 도대체 왜 짹소리도 못 하고 매번 절절매야만 하는 것인가.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부끄러운 장면이다.

2020-12-10

입법독재의 부메랑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0일 마침내 수적 우세를 앞세워 공수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 173명과 민주당에서 탈당하거나 제명된 의원 3명, 그리고 군소정당 의원을 총동원해 국회 재적의원의 5분의 3인 180명을 넘는 의원이 동원돼 야권의 비토권을 없애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공수처 설치 자체에 대해 여야는 물론이고 국민들간에도 찬반의견이 갈리는 상황이지만 민주주의가 다수결원칙이니 다수당을 차지한 여당의 뜻대로 공수처법이 통과될 것은 이미 예견된 바다. 그러나 여야가 서로 다른 의견이면 조근조근 의논해 합의할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 합의안을 도출해내고,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할 때 표결에 붙여 다수결로 결정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이 아닌가. 여당이 수적 우세를 누리고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토론절차 하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으니 ‘입법독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사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불편한 제도다. 국민들은 국회를 평가할 때 ‘효율성없다’ ‘빨리 답을 내리지 못한다’며 비판한다. 하지만 다양한 민의를 수렴해야 할 국회는 지도부 몇 명의 합의로 의사를 결정하거나, 수백만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법안을 심의하면서 빨리빨리 답을 내리는 효율성과 결과주의를 지향해서는 결코 안된다. 그런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 수적 우세를 무기로 시끄럽고 불편한 민주주의 방식을 버리고, 입법독재의 급행카드를 사용한 것이다.특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에 관한 한 여야가 모두 ‘어떤 정권, 어떤 인사의 죄악을 덮어주거나 과장할까’ 우려한다는 점은 같다. 차이점은 공수처 신설을 주장하는 여당은 검찰이 비리의 주역이니 검찰을 감독할 공수처 신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야당은 신설될 공수처 자체가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핵심인사들의 잘못을 덮고, 야당을 탄압하는 기관이 될까 우려한다는 점 뿐이다. 결국 다같이 나라걱정을 하는데, 개선방법 자체에 대한 의견이 확연히 갈리는 모양새였다. 이런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게 노무현 정부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의 공수처법 관련 발언이다. 천 전 대표는 “검찰이 강력하게 견제되지 않으면 세상의 정의는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며 “수많은 사례에서 보듯이 그들의 이해에 따라 어떤 정권, 어떤 인사의 죄악을 덮어주기도 한다. 또 어떤 정권, 어떤 인사의 잘못은 과장하기도 또 조작하기도 한다”고 했다. 언뜻보면 야당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어쨌든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민주적인 입법행위를 해야할 국회가 서로 지켜야 할 정치적 합의나 약속, 신뢰를 무너뜨리고 만든 공수처법이 당장은 정부여당의 칼날로 요긴하게 쓰일지 모른다. 그러나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다. 국민들은 결코 개돼지나 바보가 아니란 야당의원들의 외침도 귀에 쟁쟁하다. 만약 머지않은 미래 총선에서 야당이 5분의 3이상 의석을 차지했다고 생각해보라. 그제서야 제 꾀에 넘어간 여우꼴이 된 민주당은 입법독재의 부메랑을 정면으로 맞게 될 것이다.

2020-12-10

청렴도 꼴찌 공기관 부끄러운 줄 알아야

국민권익위가 공공기관의 청렴도 향상을 위해 매년 실시하는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경북에서는 올해도 4군데의 기초자치단체가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이번 2020년 청렴도 평가에서 대구시와 경북도내 공공기관들은 전반적으로 3·4위 등급이 많아 중위권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경북의 구미, 김천, 영주, 군위 등 4개 기초자치단체는 최하위 등급인 5등급을 받아 공공기관으로서 부정부패 관리에 허점이 많았음이 드러냈다.권익위의 청렴도 평가는 공직기관의 부패를 사전에 예방하고 청렴도를 끌어올려 공기관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매년 실시되는 국가부패방지 시책의 하나다. 이번 조사는 전국의 580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20만8천152명을 대상으로 각 기관의 부패 정도를 따졌다. 대구와 경북에서는 경북도와 경주시가 전년보다 2단계 오른 2등급을 받았으며 대구시는 3등급을 유지했다.권익위 발표에 의하면 올해는 종합 청렴도가 0.08점 상승해 4년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공공기관의 청렴도가 대체적으로 개선 기미를 보였다고 자체 분석됐다. 그러나 국민이 평가하는 외부 청렴도는 좋아졌지만 공직자가 평가하는 내부 청렴도 점수는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 여전히 개선 여지가 있다고 풀이했다.특히 주목할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청렴도가 중앙부처 등 타 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됐으며 기초자치단체에서는 특혜제공과 부정청탁 항목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자치단체의 청렴도 개선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청렴도 평가가 해당 공공기관의 정책 평가와는 무관하나 청렴도가 낮다는 것은 외부나 내부적으로 부정부패 측면에서 나쁜 인식을 주고 있다는 것으로 봐야 해 해당 기관의 자성 자료로 충분하다.특히 최하위 등급을 받는 기초자치단체들은 기관은 물론 지역사회에 대한 나쁜 인식도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청렴도 개선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김영란법 시행 후 우리 사회도 청렴도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기에는 고쳐야 할 부분들이 여전히 많다. 공공기관의 청렴도 개선 노력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공직자의 개선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2020-12-10

어느 수능 고사장에서 생긴 일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지난 목요일 포항 어느 고등학교 앞에는 마치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을 연상케 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16시 전부터 마스크를 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말 그대로 인파(人波)였다. 사람들은 수능 한파를 이기고 교문을 지켰다.16시 30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교문을 중심으로 양옆 인도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교문 앞은 경건한 성지가 되었다. 17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불가침의 공간으로 남겨둔 교문 앞으로 모였다.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나왔다. 아이가 들어간 시간이 생각났다. 아이는 7시에 “갔다 올게!”라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0시간이 지났다.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교정 안을 보는데 갑자기 눈이 뜨거웠다. 눈에 힘을 줄수록 벅찬 감정은 더 커졌다.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교문에서 잠시 눈을 거두다가 필자는 보고야 말았다. 많은 사람이 소리 없이 울고 있는 모습을! 사람들은 눈물로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다.“어휴, 대학이 뭐라고, 또 시험이 뭐라고 저것들을 저렇게 고생시키나. 이 죄를 어이 할꼬.”연세 지긋하신 할머니께서 혼잣말처럼 하신 말씀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교문 앞은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모든 사람이 필자를 보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누군가가 필자에게 정말 누구를 위한 시험인지, 또 무엇을 위한 시험인지를 따져 물을 것만 같았다.“저기 나 온다.” 어느 아주머니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교문 안으로 향했다. 한 학생이 종종걸음으로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막 떠오르기 시작한 해를 보는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그 학생을 필두로 학생들이 강물처럼 나왔다. 여기저기서 아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는 하나같이 물기가 가득했다. 선두에 나온 아이가 부모님 품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수고했다는 말에 아이는 한동안 울었다. 그리고 분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 1교시 시험 치는데 형광등이 깜빡거려서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어. 지금도 멀미가 나려고 해. 나 이제 어떻게 해!”학생의 울부짖음에 사람들은 위로조차 잊었다. 학생을 꼭 안고 있는 학부모님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모두 그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들은 모두 같은 고사장에서 시험을 본 학생들이었다.여기저기서 학생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시험 중간에 깜빡이기 시작한 형광등은 1교시가 끝나도록 고쳐지지 않았다고 한다. 최선을 다해 수능 시험장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아무리 돌발 상황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분명 주최 측의 잘못이다. 학생들은 당연히 피해자이다. 그냥 넘기기에는 학생들이 준비한 시간이 너무 아프다.“수능 4교시 종료로 종 2분 일찍 울려, 단체 소송 고려 중”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필자의 마음이 복잡해졌다.물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또 수능 준비 매뉴얼에 이 내용도 포함돼야 한다. 그 전에 피해 학생들에게 책임성 있는 사과가 꼭 있기를 바란다.

2020-12-09

無禮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두 달 전쯤, 국내외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모여 서로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된 적이 있었다. 모 대학의 교수가 자신의 학문 분야를 소개하고 있는데, 대뜸 어디선가 ‘아, 그건 정말 쉽잖아~!’ 하는 혼잣말 아닌 혼잣말이 크게 들려왔다. 다들 놀라 둘러보니, 그 주인공은 그 교수와 전공 분야도 완전히 다른, 여전히 포닥과정에 있던 나이 좀 있는 여성학자였다. 그러자 소개하던 교수는, “한 20년 넘게 공부해 온 저도 아직 이 분야를 다 모르는데, 누구는 쉽다하니, 오늘 제가 한 수 배우고 가야겠습니다.” 하며 여성학자의 무례함을 일축시킨 일이 있었다.사실 이러한 무례함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본다. 목 디스크가 걸린 것도 아닐 텐데 반갑게 인사한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지나가는 교수들, 버스에 천천히 오르는 노인을 향해 빨리 타라고 소리치거나 급히 차를 출발시켜 버리는 운전사들, 아파트 경비원에게 있는 갑질 없는 갑질 다 하며 뉴스의 일면을 장식하는 사람들, 익명성의 보호막 뒤에서 막말을 적는 댓글러들, 여러 사람 앞에서 온갖 모욕적 언사를 서슴지 않는 직장 상사들 등…. 이루 셀 수가 없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런 무례함을 많이 접하기에 무신경하지만, 사실 이는 결코 가볍게 넘기고 말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무례함은 타인의 인격체를 갉아먹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지타운대 크리스틴 포래스 교수도 그의 저서 ‘무례함의 비용’에서, 무례함은 사람들의 인지 능력을 빨아들여 산산조각으로 만든다 했고 이를 실험으로 증명하기도 했으며, 뇌과학자인 에드워드 M. 할로웰 박사도 무례함은 목격자와 피해자에게 뇌화상(brain burn·나쁜 기억이 한동안 기억 속의 수면 아래 자리 잡는 현상)의 흔적을 깊게 남긴다고 했던 것이다.그렇다면 이러한 무례함은 왜 생길까? 그것은 바로 상대에 대한 공경과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禮는 원래, 제사상을 의미하는 示자와 일 년 동안 길러낸 곡식을 넘치게 祭器에 담는 豊자가 결합된 글자다. 따라서 문자대로라면 天神과 地神에게 지극정성으로 제사를 지내는 절차를 의미한다. 신에게 제사 지낼 시, 공경함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아마 요식 행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즉, ‘禮’에는 외면적 형식(질서)과 그 속에 공경과 배려라는 두 가지 뜻이 모두 함의되어 있다. 그런데 무례한 사람은 이 두 가지 중 보통 후자가 크게 결핍되어 있다.예를 갖춘다는 것은 또한 무조건 남의 비위를 맞추란 뜻도 결코 아니다. 그것은 비굴함이지 禮가 아니다. 禮는 오히려 자기를 지키고 타인의 영역도 함께 존중함을 의미한다. 즉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이 ‘~~답게’를 잘 실천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무례한 이들은 이 ‘~답게’의 의미를 모른다. 그렇기에 이들은 타자의 영역을 침범하고 뇌화상을 입히고는 스스로 솔직하다 착각한다. 어찌 보면 불쌍한 나르시스트들이 아닐 수 없다. 어느덧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이맘때쯤이면 누구나 지난 공과를 짚어보곤 한다. 그 과정에서, 혹 타인에 대한 무례함을 범하진 않았는지 한번 되돌아보고, 나와 너를 함께 소중히 여기는 禮의 의미도 가슴 깊이 되새겨 보면 어떨까 싶다.

2020-12-09

암묵지(暗默知)를 형식지(形式知)로, 중소기업 학습조직화가 답이다

김동구 한국산업인력공단 경북동부지사장2020년은 방향과 속도 모두 우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급격하게 확산된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물론 기업의 경영환경에도 큰 영향력을 받고 있다.가령 제조업과 같은 기존산업은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는 반면에 온라인쇼핑 같은 온택트(Ontact)산업은 예기치 못한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마주하면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기업의 생존과 경쟁력을 갖추는 것’을 추구하는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업무노하우 등 기업구성원들의 머릿 속에만 있는 암묵지(暗默知)를 문서나 매뉴얼 같이 여러 사람들 간에 공유되는 형식지(形式知)로 바꿔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수많은 암묵지들이 그대로 방치돼 기업에 도움이 되는 형식지로 변하지 못하는 현실이 존재한다. 결국 암묵지를 형식지로 바꾸는 것이 지식경영에 필수적인데, 여기에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실시하고 있는 ‘중소기업 학습조직화사업’이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중소기업 학습조직화사업은 중소기업이 업무관련 지식, 경험, 노하우를 사업장내에서 축적·공유·확산할 수 있도록 학습조활동과 인프라구축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사업을 통해 기업구성원들은 학습조를 구성해 ‘기업 내 문제해결 중심의 직무관련 주제’를 선정한 후 8개월 동안 문제해결방안을 모색한다. 그 과정에서 학습일지를 작성함으로써 기업구성원들의 지식과 생각을 문서화하는데 그것이 바로 암묵지를 형식지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학습조직화사업은 학습조활동 뿐만 아니라 우수학습기업으로 선정될 시 최대 2천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학습인프라 구축 지원’도 존재한다.한국산업인력공단 경북동부지사는 2008년 이후 총 48개의 기업을 학습조직화 사업에 참여시켜 기업의 지식자원 구축에 기여했다. 이처럼 중소기업학습조직화 사업은 기업 내 지식의 외부화를 생활화하도록 지원해 기업구성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사업으로, 더욱 많은 기업들이 참여해 혜택을 누리고, 지역 사회 발전을 이끌어주길 희망한다.

2020-12-09

알바트로스를 읽는 밤

과학사에 코페르니쿠스적 사고 전환이 있었다면 제 개인사엔 ‘알바트로스적’ 사고 전환이 있었습니다. 알바트로스적 사고 전환, 이 말은 제가 지어냈습니다. 스무 살 시절, 어리바리한 저에 비해 독서로 무장한 후배는 통렬한 통찰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였지요. 격조 섞인 시니컬함이 그녀의 무기이자 매력이었지요. 그녀는 랭보와 보들레르와 말라르메 등 프랑스 시인을 좋아했는데, 치기로서의 제스처가 아니라 실제 그런 시인들의 성향을 좇았습니다. 세속적인 근성과는 먼 보들레르처럼 그녀가 가장 못 견뎌 한 것은 편안하고 평화로운 일상이었습니다. 대신 고매한 정신력으로 피로한 지적 노동자를 자처했지요.눈치 보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개별자로서 그 어떤 사고로부터 자유롭고자 했습니다. 자신 외에는 무관심하다시피 한 자유로운 행보, 그것은 타자를 먼저 자유케 함으로써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진정한 자유로움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시선을 타자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지요. 내 자유를 헌납할 테니, 네 자유도 속박해라, 이런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그녀를 만나기 전 제게 세상은 무조건 아름답고, 선하고, 맑고, 명랑하고, 소박한 것이어야 온당했습니다. 추하고, 악하고, 흐리고, 어둡고, 화려한 것은 경계해야 할 그 무엇인 줄 알았더랬지요. 이유 불문하고, 타자를 의식하는 자로서 지닐 수 있는 당위의 사고틀이었지요. 이런 제 내면의 빈곤과 약점을 포착한 그녀의 눈썰미가 불편하면서도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평범한 학생들에 비해 온 우주를 꿰뚫는 듯한 그 눈빛이 저는 좋았습니다. 세계관의 확장 유무와는 상관없이 어느덧 제 사고 방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녀와의 교류 덕분이었지요.남다르게 앞서가는 존재는 외롭고 고독하기 마련입니다. 보들레르의 시 ‘알바트로스’를 읽던 그녀를 떠올립니다. 거대한 알바트로스는 선원들에게 잡힌 신세입니다.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성치 못한 몸으로 그 큰 날개를 질질 끌며 선원들의 담뱃불에 부리 지짐을 당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홀로 우뚝한 영혼인 알바트로스는 평범한 선원들 앞에서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보들레르는 알바트로스적 상황을 엮어 자신의 처지를 시적 은유로 치환했습니다. 천상의 생각을 지닌 영혼들이 지상으로 내몰리면 알아서 개척자가 됩니다. 제 눈에는 알바트로스를 읽는 그녀야말로 보들레르의 화신이었습니다. 우뚝한 새가 평범함의 지상에 유배당했을 때 겪게 되는 가혹함. 그녀는 정말이지 제 정신의 웃자람을 알바트로스 새가 된 것처럼 것처럼 태연히 즐겼습니다. 선원들을 둘러싼 방관자 어디쯤에 위치한, 깜냥도 되지 않은 저는 마냥 그녀가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녀 인생관을 지배한 한 가지 철학은 언제나 단독자로서의 우뚝한 자아에 닿아 있었습니다.위대한 철학자의 큰 업적도 알고 보면 작은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사유는 디테일한 경험의 집적물이지요. 남들 눈에는 사소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체험이 한 사람의 인생관을 형성합니다. 좀 더 지난 뒤 그녀의 그런 사유체계가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 인식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전적이고 정통적인 철학자들이 존재나 의식 등, 자기 안의 문제들에 몰두했다면 현대철학자 레비나스는 특별하게도 그 관심을 ‘타자’에게로 확장시켰습니다. 집단적이고 전체적인 사유에 반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라면 레비나스 식 타자의 철학에 공감할 것이에요. 그에 따르면 ‘나와 같을 수 없는 절대적인 타자가 있다.’라는 걸 인정하는 것입니다. 타자 존재에 대한 이런 확고한 인정(認定)이자 책임감이 곧 자아 주체성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니까요.김살로메소설가스스로 자유로워지려는 자는 타자부터 자유케 합니다. 획일성이란 성에서 탈출하려면 자신만 족쇄를 자른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타자의 수갑부터 풀어주는 게 우선이지요. 문제가 되는 건 언제나 타자는 그 수갑을 풀 의지나 마음이 없을 때지요. 타자는 결코 내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어떤 영향권 아래 두고 조종하고자 할 때 강요된 이데올로기가 생기는 것이지요. 저만치 나아가는 개인의 뒤꿈치를 당겨 집합적 타원 안으로 밀어 넣는 일, 그 안에서 길들여진 풍요를 예감하는 것만이 온당한 줄 알았던 제게 후배와의 교류는 알바트로스적 사고의 전환을 거쳐 레비나스 식 통찰로 나아가게 한 것이지요. 내 고통은 타인의 고통이며, 내 욕망도 타인의 욕망이며, 내 환희 또한 타인의 그것입니다. 타자의 존재를 대범하게 인정함으로써 타자로부터 자유를 얻고자 하는 희열, 보들레르를 다시 꺼내 읽는 밤, 타자의 고유성을 먼저 알고 끝내 스스로 자유로웠던 그 시절의 그녀가 저 멀리 알바트로스 새가 되어 날갯짓하고 있습니다.

2020-12-09

수지침, 정(情)을 건네다

정미영수필가남편의 모습에 모처럼 활기가 넘친다. 봉사 가는 주말 아침이면 다른 때보다 일찍 일어나 부지런을 떤다. 그를 보며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부부에게도 이제 주변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걸 느낀다.몇 년 전, 남편은 수지침을 배워 자격증을 땄다. 그러더니 회사 자매마을에 가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람된 일을 하는 남편이 듬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못마땅했다. 나는 바깥일, 집안일, 어린 삼남매 키우느라 힘이 든다고 잔소리를 해댔다. 처음에는 입 안에서만 얌전하게 맴돌던 말들이었다. 나중에는 가시가 섞인 채 입 밖으로 튀어나와 남편의 가슴에 사정없이 꽂혔다.서로 얼굴 붉히기를 몇 차례 주고받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자신이 봉사하는 곳에 가보자며 조심스레 권했다. 나는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에 파고들어 자꾸만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아침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찾아간 마을 회관 역시 썰렁했다.시간이 흐르자 할머니 한 분이 남편을 마주하고 앉았다. 할머니는 온 몸이 다 쑤신다고 했다. 남편은 할머니의 거뭇하고 투박한 손 여기저기에 침을 꽂았다.뻗은 손이 힘들었던지 할머니가 팔꿈치를 허벅지에 대자,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가 저절로 굽어졌다. 할머니의 허리는 꼬부라진 자세가 더 편하다고 부추기는 듯했다. 한참을 절하듯 그렇게 있었다.남편이 할머니의 손을 뒤집어 새끼손가락의 상처를 가리켰다. 곪아 탱탱해진 것을 보고 가족과 함께 병원에 서둘러 가보라고 권했다. “가족은 무슨….”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속속들이 사정을 알지 못하니 코끝이 찡해지며 마음 한 켠이 아렸다. 잠시나마 따뜻한 시선으로 관심을 기울인다면 할머니의 꼭꼭 숨겨진 사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보따리 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나는 할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동무를 자청했다. 할머니는 조금 전의 침울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이내 함박꽃 같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마의 주름살이 펴질 듯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오랜 만에 이웃집으로 마실 나온 아낙네처럼 이야기를 쏟아 놓았다.할머니는 침을 빼자마자 내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주머니를 뒤져 속에 든 것을 꺼냈다. 종이 부스러기에 섞여 사탕 한 알이 나왔다. 그 사탕을 손에 꼭 쥐어주고는 말했다.“고맙데이. 복 받을 끼다.”할머니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한 겨울 선착장에 묶여 있는 배처럼 사람이 그리우셨던 것이다. 모처럼 당신 걱정을 하는 이들과 얼굴을 맞댄 시간이 어쩌면 메마른 마음에 훈훈한 단비를 적셔가는 일이 되었을 터이다.우리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이리라. 나부터 마음의 문을 열어야 상대도 내 손잡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할머니에게 바투 다가앉으니, 모자란 것이 많은 나에게 정을 내셨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할머니에게서 배웠다. 가족이 아니면 어떤가, 내 마음자리에 누군가를 들여놓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않았다.남편은 내 손을 잡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자신은 행복하다고 했다. 요즈음 가족 아닌 남에게 ‘복 받을 것이다. 고맙다’라는 말을 어디 가서 들을 수 있겠냐며 웃었다. 온기 머금은 웃음 때문에 그 동안 응어리졌던 내 시린 마음이 봄눈 녹듯 흘러내렸다. 나는 예민했던 내 몸의 신경들이 느긋해지는 것을 느끼며 사탕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수지침을 꽂으며 사람에 대한 정(情)을 덤으로 건넨 남편의 마음이 내 마음밭으로 또르르 굴러 들어왔다.오늘 아침도 돋을볕을 맞으며 남편이 재바르게 움직인다. 봉사 활동을 나가기 위해 수지침 가방을 꼼꼼히 살피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남편을 뒤따르기 위해 부지런을 떤다. 그런 나를 남편이 자상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따스한 돋을볕이 천천히 나에게로 옮겨오는 중이다.

2020-12-09

큰 다리 놓는 법

장규열 한동대 교수영일만대교는 들어설 수 있을까? 십 년도 넘게 논의하고 검토하며 지역에 필요한 일로 확인하였다. 중앙정부의 30대 프로젝트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하였던 일이 이제는 예산의 문제로 주춤거린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교통정체를 해소할 방안이면서 관광효과도 기대된다는 게 아닌가. 산업도시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영일만항 물류의 흐름을 확충하고, 글로벌도시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터이다. 동해안고속도로가 연결되면 국토의 동쪽 허리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핵심통로의 역할도 기대된다. 지역 내 교통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나라의 도로환경에도 기여할 대목이다. 관광자원의 확보는 물론 국제적으로 자랑할만한 글로벌 미래자산 가치마저 느껴지지 않는가.내년도 국가예산으로 영일만대교 설계를 위한 20억원을 확보하였다고 한다. 예상되는 소요경비에 비하여 턱없이 적은 금액으로 보이지만, 국가가 일의 필요성을 다소라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한다. 지역에서 이와 관련하여 책임있는 인사들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언론을 통하여 듣는 것처럼, 주로 같은 정당 소속 인사들과 접촉하며 호소하는 일은 효과 면에서 제한적이지 않을까. 정치권과 재계 일반에 접촉의 폭을 획기적으로 넓혀야 하는 게 아닐까. 실질적인 영향력이 확인되는 정치권 인사들과 재정과 국토관리을 다루는 정부 기관을 두루 아우르는 소구력도 발휘해야 할 터이다. 필요한 민자(民資)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가.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재계와 기업들을 설득하여 참여를 유도하는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큰 계획의 틀을 다시 잡아야 한다. 영일만대교가 지역과 나라에 왜 필요한지 그 타당성을 보다 분명하게 확인해야 한다. 다리를 놓은 다음 누리게 될 기대효과와 미래가치도 다시 살펴 확정하여야 한다. 지역이 우선 확신을 가져야 누구를 상대해도 설득이 가능할 것이 아닌가. 영일만대교는 시위와 데모로 인정받을 규모가 아니다. 조사와 분석, 기획과 설득의 모든 과정에 보다 신중하고 치밀한 접근과 대응이 있어야 할 터이다. 프로젝트의 규모와 지역에 미칠 영향과 효과를 생각하면, 다른 그 어떤 과제에 비하여 매우 의미있는 족적을 남길 수 있는 ‘큰 다리’가 아닐까. ‘글로벌포항’의 지향성을 고려하면, 국제적인 맥락에서 참여와 투자를 유치해 보면 어떨까.도시의 위상과 지역의 문화가 새발전의 기틀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하기보다 우리 안에서 긍지와 희망을 찾아야 한다. 내연산에서 솟아올라 구룡포로 흐르는 지역의 기운을 시민들의 삶에 잘 연결해야 한다. 영일만대교는 외형으로 훌륭한 자원이 될 뿐 아니라 지역의 자긍심을 한층 솟구치게 하는 모멘텀이 되어야 한다. 바다와 길을 잇는 ‘큰 다리를 짓는 일’에 지역의 관심과 기대가 더욱 모아야 한다.윈스턴 처칠이 이렇게 말했다는 게 아닌가. ‘비관적인 사람은 모든 기회에서 문제에 매달리지만, 낙관적인 사람은 모든 문제에서 기회를 발견한다.’ 영일만대교는 우리의 기회가 아닌가.

2020-12-09

巨與 ‘입법 폭주’ 극치…野 정치 달라져야

여당의 위험한 입법 폭주가 점입가경이다. 민주당은 8일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통합감독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등 핵심 쟁점법안을 상임위에서 강행 처리했다. 국민의힘이 온몸으로 막아섰지만, 거여(巨與)의 횡포와 편법에 밀려 초라한 제1야당의 위상만 확인시켰다. 21대 총선 대패의 후폭풍이 참으로 사납다. 야당의 정치가 국민만 바라보고 민심과 함께 가는 정치로 완전히 달라져야 할 시점이다. 온갖 편법과 꼼수를 다 동원한 민주당의 입법독주로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성을 위한 핵심 장치인 ‘야당의 비토권’이 거세된 채로 출범하게 됐다. 지난해 공수처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론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야당의 비토권’을 독립성·중립성 보장장치라며 수도 없이 다짐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약속은 완전히 허언(虛言)이 됐다.바뀌는 공수처법에 의하면 정권이 선택한 사람이 공수처장이 돼서 검찰이 수사 중인 현 정권 관련 사건을 다 가져갈 수 있게 돼 있다. 수사 경험도 전혀 없는 민변 출신의 5년짜리 변호사들도 수두룩 공수처 수사관이 될 것이고, 소속 검사의 임기도 3년(3회 연임 가능)에서 7년(연임 제한 없음)으로 늘어나 정권이 바뀌어도 신분을 지키게 된다.어제오늘 사이에 국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 여당의 폭거는 이 나라 민주주의에 또 하나의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오죽하면 진보 정의당마저도 “174석 거대 여당을 만들어준 민심은 그만큼의 더 큰 책임감과 정치력으로 국정을 안정시키고 이끌어가라는 것이지, 의석으로 독주하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하고 나섰을까.어쨌거나 우리는 이제 판·검사에 대해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는, 어느 독재국가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대통령 친위대 치하에 살게 됐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얼마나 무도한 지를 국민에게 최대한 알리기 위해 무슨 절차든 포기하지 않고, 따지고, 알리는 것에 소홀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말이 비장하게 들린다. 협치도 양보도 타협도 모두 사라진 정치권에서 야당은 국민과 함께 하는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다.

2020-12-09

연말특수 실종, 소상공인 도울 지원책 나와야

연말연시 대목 경기가 실종됐다.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연말에 계획된 송년회와 공연 등 각종 행사가 줄줄이 중단되면서 관련 업계가 된서리를 맞고 있다고 한다.대구와 경북도내 식당과 상가 등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2단계 사회적 거리두기가 발표되면서 송년회 등 각종 행사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1년 내내 코로나 때문에 전전긍긍해 왔던 상인들은 모처럼 연말특수에 기대를 걸었으나 이마저도 수포로 돌아갈 것 같아 지금은 거의 패닉상태라 한다.매년 연말연시에는 송년회, 신년회를 비롯 각종 행사, 또 크리스마스와 가족 모임 등으로 식당가와 상가 등은 특수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갑자기 늘어난 코로나19 확진자로 모든 경제활동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이다.1년 가까이 지속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은 이미 경제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은 상태다. 연말에 다시 시작한 코로나 확산 위기로 지금은 엎친 데 덮친 형국을 맞고 있다.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서비스업 생산은 코로나19가 처음 유행했던 지난 3월 전월 대비 4.7%가 감소했다가 이후 회복세를 보였으나 2차 유행한 8월 또다시 1.1%가 감소했다. 이번 연말 대목 경기가 실종되면 서비스업의 산업활동이 또다시 떨어질 것이 뻔하며 그 여파가 심상찮을 전망이다.특히 식당 등의 서비스업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서민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데다 아르바이트 등 영세민의 고용과도 연관이 많아 연말경기 실종이 줄 충격은 상당하다.1, 2차 코로나 사태로 영세소상공인을 돕는 지원책이 없지는 않았으나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으로 미봉에 그쳤다. 연말에 닥친 영세상인들의 위기 극복을 위해 또한번 실효적 지원책 마련이 있어야 한다.코로나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백신접종이 최선의 방법이나 국민 모두가 백신을 접종하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앞으로 코로나 위기가 얼마나 더 크게 닥칠지 알 수 없는 만큼 소상공이나 자영업자들의 자구 노력과 더불어 이들에 대한 지원책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

2020-12-09

보유세 vs 거래세

세법상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보유세’는 납세의무자가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에 부과하는 조세로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거래세’는 재화 또는 용역의 거래에 대해 부과되는 양도소득세(양도세)와 취득세 등을 일컫는다.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유세는 강화하고, 거래세는 낮추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랬던 정부가 7·10 대책을 통해 다주택자의 종부세 최고세율을 6.0%로 올렸고, 양도세와 취득세까지 인상 계획을 밝혔다. 보유세와 거래세를 모두 올려 논란을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정부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 상황과 투기 수요 억제를 위해서는 당분간 양도세 등 거래세 인하를 추진할 수 없다고 한다. 추후 부동산 가격 급등 우려가 없고 활발한 거래가 필요한 시점이 되면 재고해볼 수 있겠지만 당장은 정책 기조를 바꾸기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지방세수에서 양도세 등 거래세 비중이 크기 때문에 거래세 인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반발을 부른다.변창흠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역시 양도세를 불로소득 환수 수단으로 규정해온 학자출신이라 취임하면 양도세 인상기조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의 이런 기조 탓에 주택 공급 물량이 늘지 않아 주택시장 불안이 심해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당초 정부는 부동산 보유세 부담을 높이면 다주택자가 시장에 물건을 내놓으면서 주택 공급이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양도세 부담 탓에 다주택자 상당수가 증여로 돌아서거나 ‘버티기’에 나섰다.거래세 강화가 보유세 강화의 정책 효과를 반감시킨 셈이니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물론 서민들에게는“세금 고민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푸념만 쏟아지는, 먼나라 얘기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2-09

배운다는 것

한강 다리를 건너며 오늘은 강물이 험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가로등조차 하나도 안 켜놓은 것 같다고 느꼈다. 멀리 보이는 말없는 나무들도 어지러운 세상을 근심하고 있다.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고, 내 정신이 내 정신 같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래도 내일은 대전에 부모님 뵈러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장난 삼아 산 플래시로 어두운 산숲을 비추어 본다.마음 속으로 그 ‘민주주의’라는 것이 나를 아주 망쳐 놓았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았다고, 쓸데 없는 가치의식에, 목표에, 측정에, 비판에, 분노에, 이율배반과 환멸에, 나는 그렇지 않아도 망가진 몸과 마음 상처를 덧나게 하고 있다.어두운 방에 작은 불을 켜고 가끔은 들춰 보리라 생각한 명호 형의 두꺼운 책을 심심파적 삼아, 잠도 오지 않으니까 편다. 명호 형은 참 큰 사람이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논어’를 새로 읽을 뜻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일까?하, 배운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고 명호 형이 풀이해 놓은 것을 곰곰히 다시 생각해서 정리해 본다.배운다는 것은 그러니까 첫째, 그냥 지식, 정보의 존재를 아는 것이 아니요, 그것을 익히는 것, 습관으로, 실천으로 만드는 것이다. 알고 행동은 다르게 하는 겉배움은 배움이 아니요, 알았으니 행동으로 옮기는 속배움이라야 한다. 둘째, 배우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 나처럼 함께 길 가는 친구를 알아 그가 찾아와 즐거운 것이요, 이 배움 때문에 설혹 가난해도 원망할 것 없이 즐겁게 받아들일 줄 아는 것, 내 스스로를 닦으니 내실 있어 기쁜 것이다. 셋째, 또 뭐냐, 그러니까 배움이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 것, 그러니까 세상에는 나보다 나은 사람, 훌륭한 사람 천지요, 나만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도 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넷째, 배운다는 것은 늘 배움의 태도를 잃지 않기에, 이것은 내 생각이지만 쓸데없이 무겁지도, 위압스럽지도 않은 것이고, 뭣보다 고루해지지 않고 나날이 스스로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을 가리켜 절차탁마한다고도 할 수 있다.명호 형은 공자를 가리켜 기철학자라 했다. 주리론, 주기론 하는 기철학이 아니요, ‘나’를 다스리는 뜻과 방법을 알고자 하는, ‘나’ 철학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실제로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중차대한 문제니,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낼 여가도, 여력도 없다. 다만 ‘나’를 위해 거울이 될 남을 알지 못할 것이 두려운 것이다.하, 배운다는 것이 이리도 무서운 것이라니, 나는 멀어도 한참이나 먼 것이다. 먼저 세상의 근심을 밀어내고 내 스스로를 돌아보기로 한다.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면, 지난 잘못들은 악몽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2-09

아, 울산대학교!

김규종 경북대 교수바다를 처음 보았던 것은 고2 수학여행 때였다. 동대구역에서 해병대 군용트럭이 우리를 포항에 자리한 해병대 숙소로 데려갔다. 해병대 1일 입소를 통해 호연지기를 키워주겠다는 교장의 의지였다. 그때 처음 갯내음을 맡고 나서 내가 한 일은 바닷물을 맛보는 것이었다. 바닷물은 짰다, 아주 심하게. 내게 바다는 그렇게 다가와서 지금까지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울산에서 3수로 괴로워하던 친구가 보자는 전갈을 보내왔다. 5월의 대학축제를 팽개치고 도착한 울산은 현대의, 현대에 의한, 현대를 위한 도시였다. 현대 직원용 아파트에서 이틀 묵으면서 방어진과 주전 바다를 보고, 경주를 경유(經由)해서 서울로 돌아온 일이 엊그제처럼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런 울산을 지난주에 다시 다녀왔다. 이번에는 목표지점이 울산대학교로 바뀌었다.어느 도시에도 그곳을 대표하는 대학이 있기 마련이다. 울산과학기술대학교(유니스트)가 있지만, 명실공히 울산의 간판 대학은 울산대학교다. 울산광역시에 거점 국립대학교가 없어서 서운하지만, 그래도 울산대학교는 분명 자타가 인정하는 울산의 명문대학이다. 차가운 초겨울 날씨를 뚫고 울산대학교 인문관에 도착한 즉시 ‘뭔가 이상한데’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것일까?!복도와 화장실에서 감촉되는 싸늘한 냉기는 과객의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대학을 방치(放置)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1970년 울산공대를 모태로 시작된 울산대학교 50년 역사가 아련했다. 설립자인 정주영 회장의 배움을 향한 갈망이 근간이 되어 만들어진 울산대학교. 고려대학교 공사판에서 부러운 눈으로 학생들을 보면서 향학의 꿈을 키웠던 청년 노동자 정주영.나는 한국의 유일한 기업가로 정주영을 꼽는다. “임자, 해봤나?” 대형 유조선에 물을 가득 채워 서산 간척지의 악명 높은 물살을 이겨낸 신화의 정주영. 그런 희대의 인물이 설립한 울산대학교가 위축되고 찌그러지고 있는 것이었다. 삼성의 성균관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울산을 대표하는 대학을 이렇게 홀대하는 것은 정말로 뜻밖이었다. 대학의 위축과 몰락은 도시의 위축과 몰락을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킨다.위대한 현대의 신화를 학문과 교육에서 뒷받침해야 마땅할 울산대학교가 오후의 햇살 속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하루였다. 오늘날 사립대학의 발전과 융성은 재단의 풍부한 물적 지원과 대학 자체의 자율성과 교수들의 책임감으로 이루어진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 체제를 우리나라 전역에 산재한 사립대학 재단들은 하루빨리 배워야 한다. 대학은 돈 버는 곳이 아니라,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다.너무나도 자명한 이치를 망각한 허다한 재단과 이사장과 총장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미래와 어린것들이 구슬프다. 그들에게 다가올 희망의 광명이 환하게 퍼질 날을 고대하면서 다시 한번 말한다. “현대여, 울산대학교에 투자를 아끼지 마시라!”

2020-12-08

따로 또 같이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스산함이 더해가는 때, 코로나19의 재확산 일로로 어수선함마저 더해가는 연말이지만 한 줄기 차분한 위무 같은 이색적인 문화행사가 열렸다. 포항예총에서 주관한 ‘2020 포항예술인 한마당’ 송년 예술축제의 일환으로 기획 전시된 ‘화사(畵寫)한 문화(文話)’전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는 종전의 여타 전시회와는 다르게 예총 산하의 문인협회, 미술협회, 사진협회 작가들이 협업과 융합을 통해 독창적인 시서화(詩書畵) 작품을 한자리에 새롭게 선보였다는 것이 주목된다.연초부터 휘몰아친 난마 같은 희대의 전염병에 시달려 가뜩이나 초조하고 침울해진 시민들의 가슴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진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활자로 구성된 시나 수필 등의 문학작품을 주로 책을 통해 접하던 것을 시인들의 육필원고와 화가, 서예가, 사진가들의 독특한 심미안으로 투영된 콜라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으니 이채롭지 않으랴. 코로나로 인해 다소 낯설어진 일상에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창작품을 선보인다는 것은, 익숙해진 것들과의 ‘낯설게 하기’라는 예술 본연의 신선한 자극과 지향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시 속에 그림이 있고(詩中有畵) 그림 속에 시가 있다(畵中有詩)고 한다. 시와 그림의 유기적인 맥락과 상관성을 나타나는 말로 여겨진다. 한 점의 그림이 연상되는 시와 한 편의 시가 드러나는 그림은 시와 그림의 불가분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시적인 정취를 나타내는 시정(詩情)과 그림 속에 나타난 뜻을 일컫는 화의(畵意)는 서로 통하기 때문에 두 정신은 일치한다고 본다. 시인은 시어(詩語)로 그림을 쓰고 화가는 시각언어인 그림으로 시를 그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양예술은 시서화가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시·서·화 등은 각각의 카테고리에서 충분한 예술성을 드러낼 수도 있겠지만, 상호 조화롭게 결합되어 예술의 통일체를 이룰 때 보다 풍부한 미학적 운치가 부여된다고 본다. 그것은 곧 다양한 예술장르가 각기 지닌 특색이 조화롭게 섞여서 또 다른 하나의 장르를 새로이 창출해내는 ‘따로 또 같이’의 예술정신과 진배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예술의 섬세하고 다채로운 표현양식으로 시의 향기를 귀로 들으면서 어루만진다든가 음악의 선율을 눈으로 보면서 맛을 느낀다든가 하는 식으로 수렴과 확장의 시너지효과를 얼마든지 극대화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어쩌면 예술은 따로 하면서도 같이 하고 같이 하면서도 또 따로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로 하는 작품에서는 개성을 한껏 살릴 수 있고, 같이 하는 예술에서는 공명의 완성도가 한결 커질 수 있다. 따로따로 살아가지만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듯이, 너무나 당연시했던 일상들이 정말 그리운 현실의 삶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등한시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것들을 성찰하게 된다.온 세계가 낯선 환경에 직면하여 저마다의 일상에서 코로나에 대처하고 극복하기 위해 변화하는 와중이지만, 비대면 사회문화 속에서 메말라가는 정서에 따로 또는 같이 느끼며 감성을 움직이고 위안을 받는 예술작품을 통해 믿음과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

2020-12-08

6펜스가 필요한 세상에서 달을 보는 일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안정적인 중산층의 전형으로 전혀 특별할 것 없는, 그야말로 틀에 박힌 삶을 살아가는 재미없는 남자다. 그는 어느 날 돌연 직장과 가정을 떠나 파리의 뒷골목을 떠돈다. 그뿐 아니다. 제 발로 태평양의 외딴 섬을 찾아가 깊은 숲에 자리 잡고 문둥병에 걸려 장님이 된 채로 생을 마감한다.그는 왜 이런 무모한 행동을 했던가. 가슴 한구석에서 시작된 예술에 대한 열망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의 아내의 말대로 그림은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지속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안락과 명예를 버리고 예술을 향한 본능을 따라간 것이다.스트릭랜드가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고갱의 삶을 있는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이야기를 더 극적으로 끌고 가기 위하여 인물의 삶을 단순화시켰고 그로 인해서 스트릭랜드는 기이하면서도 신비하고 보다 더 천재에 가까운 예술가로 포장되었다. 아마 작가는 고갱의 그림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강렬함을 토대로 하여 가공의 인물로 만들었을 것이다.우리는 흔히 예술가를 바라볼 때 보통의 사람과는 다른 구석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스트릭랜드처럼 예술을 위해 자신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말의 거리낌 없이 고통을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연상된다.나는 이따금 현실감각이 없다는 말을 듣곤 한다. 창창한 나이에 소설을 쓰겠다고 나선 것부터 그렇다. 다달이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포기한 지 오래다. 당연히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도 않다. “사대 보험은? 저금은? 노후준비는? 경제적 혹독함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는군.” 하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발끈해 나 자신을 변론하고 싶다. 하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것은 정말 사실이라 어떤 대꾸도 못 한 채로 입을 다물고 만다.반대로 직접 만나보니 생각보다 예술가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동글동글한 분위기에 허파에 바람 든 것처럼 잘 웃어서 오히려 상대를 당황하게 하고 만다. 냉철하고 신랄한 느낌을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고분고분한 모습에 조금 실망했다는 경우도 있다.나 자신을 스스로 예술가라고 선언하는 것이 낯부끄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전의 나 역시 예술가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현실에서 빗겨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세상에 관해 어떤 초월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으리라고 상상했다.바로 이런 것들이 예술가를 낭만화시키려는 경향이다. 이 때문에 원고료를 제대로 정산받지 못해 항의하면 세속적이라는 답을 듣던가, 예술가라면 응당 고독과 불행을 당연시 여겨야 한다는 편견이 만연했다.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들은 이러한 이중적 시선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예술에 대한 전근대적인 인식을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중에도 글쓰기는 분명한 노동이며 그에 따른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눈에 띈다.청탁 시스템 속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은 글이 발표되지 못하면 돈을 받지 못한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작업한 원고가 잉여 자원으로 취급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자신을 ‘활자 노동자’로 칭하고 글을 파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그들의 글을 받아보고 싶은 사람들에 한하여 정기적으로 시나 소설, 에세이를 보내주는 메일링 서비스가 그러하다. 다매체 시대에 걸맞게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작가가 직접 독자를 만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미등단 작가나 지면의 기회가 적었던 신인 작가들은 다양한 플랫폼으로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인다. 이러한 흐름은 점점 커져 시장의 하나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메일링 서비스는 간단하지 않다. 단순히 텍스트를 쓰는 것을 넘어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홍보하면서 구독자를 모집하고 발송하는 등 모든 영역을 혼자 진행하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는 노동에 가깝다. 이들은 창작물을 작업할 뿐 아니라 품이 드는 일까지 자처하고 있다. ‘6펜스’(구제도하에서의 은화) 없이는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기는커녕 허리 통증 치료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예술가들이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전업 작가를 꿈꾸지만 정작 글쓰기만으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작가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생계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작품 활동에 매진한다면 당연히 훨씬 질 높은 창작물이 탄생할 것이다. 그러나 공고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예술가는 영원한 비정규직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나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을 쓰는 것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다. 돈을 벌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 가혹한 세상 속에서 고고하게 자기 삶을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소설을 발표하는 것 이외에도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여러 영역에서 글을 써서 고료를 받는다. 그 돈으로 관리비를 내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소설을 쓴다. 책상 앞에 앉아 작업하는 시간을 최저시급으로 계산한다면 먹고사는데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면서.하지만 정말로 이것이 자본으로 치환된다면 대체 얼마여야 하는 것일까. 물론 소설만으로 돈을 벌면 좋겠지만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니다. 이 작업은 절대로 값을 매길 수 없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가치를 지닌다.그러니 이러한 물음도 가능할 수 있다. 예술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거나 완전한 자본의 논리 안에서 포함하여 보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예술은 견고하게 존재하는 세계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균열을 내는 일을 한다. 노동을 자본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는 개념에서 봤을 때, 예술을 단순한 노동으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달과 6펜스’에서 스트릭랜드는 그저 천재적인 예술가로만 묘사되진 않는다. 세상의 윤리로 보면 그는 이기적이면서도 괴상한 사람이다. 비정상적인 충동에 시달려 가족을 버렸고 주변의 사람들을 고통받게 한다. 만일 당신이 훨씬 더 가난해진다면, 몸이 아프게 된다면 지금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그는 의문을 던진다. 세속의 가치에 절절매는 것, 빈곤과 고통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의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스스로 가난하기를 택했다. 문둥병에 걸리게 되지만 절망에 빠지기는커녕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 모든 일은 불행이 아니었다. 삶을 살아가는데 찾아온 하나의 사실에 불과했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이것이 스트릭랜드가 예술을 바라보는 태도다. 예술은 상품이 아니며 “더 높은 것, 아름다움과 진실을 통찰하는 것”이라며 예술의 숭고함을 중시했던 칸트도 “최고의 예술은 비즈니스”라며 예술의 상업성을 내세운 앤디 워홀도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자이자 예술가였다. 이들은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관하여 골몰했고 거기에 가 닿기 위해 노력했다. 사회적 통념이나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예술은 시대적 상황에 순응하지 않고 불화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성이다. 창조를 향한 충동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달과 6펜스’가 시대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널리 읽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세상에는 세상을 균열 내려는 이들이 더욱더 많아져야 한다. 그럴수록 사회 전체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힘은 커진다. 컴컴한 하늘에서도 기어코 별을 찾아내는 이들 덕분에 밤이 오는 것이 무섭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동그랗고 반짝이는 것 중 꼭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을 때, 동전 대신 달을 택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을 응원한다.

2020-12-08

검찰 개혁의 당위성은 차고 넘친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촛불혁명 이후에도 무소불위의 검찰의 권력은 강화되었다. 민주화 과정의 어려운 고개를 넘었음에도 검찰의 권력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의 한 치의 양보 없는 갈등 구도는 제로섬 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나라를 위해 매우 불행한 일이다. 추 장관은 윤 총장 징계요구는 검찰개혁의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고, 윤 총장은 살아있는 권력수사에 대한 보복이라는 입장이 강하다. 검찰개혁이라는 문제 본질은 묻혀버리고 정쟁으로만 치닫는 상황이 불편하다. 검찰 개혁의 당위성은 모두 인정하면서도 합의된 해법은 찾을 수 없을까.10여년도 훨씬 넘은 오래된 일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어느 경찰서장 한 분을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다. 나도 그 식당에 어느 부장검사와 업무협의로 식사가 예약되어 있는 터였다. 그 서장은 내가 이 식당에 온 이유를 알고는 얼른 자리를 피해 나가 버렸다. 당시만 해도 검사는 언제나 갑이고 경찰은 을의 신세였다. 검찰의 수사 기소 독점구조는 경찰에 대한 상하 수직적 구조를 강화시켰다. 학교 대선배였던 그 서장의 불편한 심기를 뒤 늦게 알게 되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검경간의 조정이 이제 겨우 방향만 잡힌 상태이다.검찰 권력의 비대화 배경에는 지방 토호 세력의 자기 보호 본능도 한 몫 하였다. 과거 유력 기업인, 재력가는 사전 보험 식으로 검찰에 줄을 대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과거 검사인 어느 선배 부친의 시골 상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집 찾기를 우려 했는데 마을 앞 십리 길은 조화가 늘어서고 경찰이 친절히 안내까지 해주었다. 당시 초임 검사도 ‘영감’으로 호칭되고 어느 자리나 상석에 배정되었다. 몇 해 전 유림 향사에서 젊은 검사가 초헌관이 되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왜곡된 문화가 검찰 독점 권력의 온상이 되었다.과거 재직 시 잠시 학생관련 보직을 맡아 공안 검사들과 수차례 만난 적이 있다. 검찰의 조직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부장 검사 옆의 젊은 검사는 항시 긴장하는 모습을 보았다. 회식에서도 부장 옆 자리의 젊은 검사들의 순종하는 모습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상관이 건배사로 ‘좌익 척결’하면 아랫사람이 ‘우익보강’하던 시절 이야기다. 검사 동일체 원리는 검찰 조직의 상명하복 문화의 온상이 되었다. 윤 총장의 징계 회부에 전 검찰 조직이 들썩이는 이유도 결코 이러한 조직문화와 무관치 않다.이러한 검찰 조직문화는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 문화와 융합하여 검찰 개혁을 어렵게 한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당연한 귀결이고 여론의 지지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관행이나 문화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가까스로 입법화된 공수처는 하루 빨리 가동되어 살아 있는 권력인 검찰도 수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검경간의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원칙은 엄격히 실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검찰내부의 조직적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의 정쟁은 검찰 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20-12-08

14개 시도의장 가덕도 지지는 들러리 정치다

대구와 경북 그리고 인천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의회 의장들이 부산에 모여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지지하는 선포식을 가졌다고 한다. 그들은 “국가균형발전의 마중물인 가덕도 신공항을 건설하라”며 “국회는 관련 특별법을 조속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참석한 14명은 민주당 소속 13명의 시도의회 의장과 민주당에서 제명된 무소속의 경남도의회 의장이 포함됐다. 인천시의회 의장은 인천공항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빠졌다고 한다. 전국 시도의회 의장협의회는 지방자치 발전과 지방의회 운영을 위한 상호교류 및 협력증진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협의체다. 특히 중앙정부의 불합리한 제도 개선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모임으로 지방자치단체 간의 이해관계가 있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협의회 전체가 공동의견을 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각 지역의 이해를 존중하고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는 당사 간 원만한 합의나 대안 제시로 문제를 푸는 것이 협의체 운영의 올바른 정신이다. 대구와 경북이 극렬히 반대하는 줄 뻔히 알면서 부산을 찾아가 가덕도 공항을 지지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으로 의도된 행동이다. 모두 민주당 소속의 의장이라는 사실만으로 의도된 행동임을 짐작게 하고도 남는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4년 전 영남권 5개 광역단체장은 영남권 관문공항을 김해신공항으로 합의한 바 있다. 당시 가덕도 신공항은 국제적 전문기관인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의 타당성 검토에서 밀양보다 뒤진 꼴찌 평가를 받았다. 가덕도 신공항이 다시 절차적 협의나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고 마치 신공항 후보로 확정된 듯 밀어붙이는 것은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연결짓지 않고는 받아들이기 어렵다.총리실 검증위원회의 검증만으로 국가의 중대한 국책사업이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14개 시도의회 의장들이 이런 내용을 모르고 지지했다면 웃음거리가 될 일이다. 지방의 자치단체장으로서 가덕도 신공항 지지는 본분을 망각한 일일뿐더러 협의체 내 분열을 자초한 일로 앞으로 그 책임도 물어야 한다. 당의 의사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보다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명분 있는 일에 나서는 것이 멀리보아 지방정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2020-12-08

‘크리스마스 악몽’

1993년 제작된 ‘크리스마스 악몽’은 월터 디즈니 계열사 터치스톤 픽처스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뮤지컬 영화의 제목이다. 미국의 유명한 동화인 ‘크리스마스 전날’에서 제목을 따온 영화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방영된다.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어두운 내용이 많다고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2년 늦게 개봉됐다. 크리스마스와 핼러윈데이를 결합한 독특한 소재의 영화다.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최근 크리스마스 대이동을 앞두고 미국이 또한번의 크리스마스 악몽을 맞게 될 것을 공개 경고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천400만명에 달한다. 세계 확진자 수의 21% 수준이다.추수감사절처럼 이동 자제 권유가 먹혀들지 않는다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한 주 동안만 2만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질병센터는 예측했다. 또 크리스마스에 이어 연말까지 대이동이 이어진다면 미국 내 전체 누적 사망자 수는 33만명에 달해 역대 가장 우울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우리나라에도 연말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고 있다. 예년이면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럴송이 퍼져 나올 무렵임에도 연말 분위기가 전혀 살아나지 않고 있다.수도권을 중심으로 2.5단계 거리두기 조치가 내려지면서 수도권은 이미 셧다운 상태다. 초저녁 무렵부터 거리에는 어두움의 그림자가 내리고 차들도 서둘러 집에 가는 모습이 마치 전시상태를 방불케 한다.세계 각국이 최악의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사실상 올 크리스마스 악몽은 미국만의 악몽이 아니다. 올 연말 찾아온 크리스마스 악몽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지구촌 모두의 고민거리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2-08

국민의힘, 공감대 없는 ‘사과 쇼’ 의미 없다

국민의힘이 구속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대국민 사과 문제를 놓고 내홍으로 치닫고 있다. 취임 직후부터 대국민 사과에 나서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온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사과를 실행할 뜻을 내비치자 당내에서 반발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공감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김 위원장 혼자서 사과를 하는 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할 것이다. 최근 지지도가 오르는 등 조금 형편이 나아지자 고질병이 도지는 것 아니냐는 조롱이 터져 나온다.김 위원장은 지난 6일 청년국민의힘 창당 행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국민 사과는)국민의힘에 처음 올 때부터 예고했던 사항인데 그동안 여러 가지를 참작하느라고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라고 운을 뗐다. 김 위원장의 사과가 이르면 9일에 행해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주호영 원내대표부터 “선거를 앞두고 굳이 우리 스스로를 낙인찍을 수 있는 얘기를 하는 게 문제가 있다고도 하더라”라고 말해, 에둘러 반대 의견을 표했다. 장제원 의원도 SNS에서 “절차적 정당성도, 사과 주체의 정통성도 확보하지 못한 명백한 월권”이라고 반발했다. 당 대변인인 배현진 의원은 SNS를 통해 김 위원장을 정면 겨냥 “누가 문재인 대통령을 탄생시켰나. 김종인 비대위원장마저 전 정부 타령하시려는가”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최다선인 5선 서병수 의원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김 위원장이 이 같은 기류에 대해 “이것도 못 하면 내가 (당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까지 말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한 차례 분열 소용돌이마저 감지된다. 정당의 이름으로 공개사과를 하려면 당내 공감대부터 형성하는 게 순서다. 밤샘 토론을 통해서라도 구성원들이 의견을 모으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순리다. 국민의 지지가 조금이나마 돌아오는 시점에 불거진 제1야당의 불협화음이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김종인 위원장의 생각은 그르지 않다. 중지를 모아서 한목소리를 만들어가는 정치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2020-12-08

66년생 오진선

최미경동화작가‘2020년 9월 10일자 부동산매매계약서 제 5조에 따라 매도인 오진선은 매수인 최민식에게 부동산매매계약의 해제를 통보합니다. 계약에 따라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고자 하오니 매수인 명의의 계좌번호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오진선씨는 다시 한 번 자신이 보낸 문자를 들여다보았다.B부동산에서 보내준 문자를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한 것이니 법적으로 문제시 될 것은 없었다.오진선씨는 자신의 머릿속에 맴도는 ‘법적으로’라는 단어를 혀끝에서 여러 번 굴려보았다. 요 며칠 그 단어가 꽤 근사하고 합리적이다 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러다 네이버 검색창에 들어가 ‘법’이라 쳤다.“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칙, 모든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 오진선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 9월 아파트 계약서를 쓸 때를 떠올렸다.부동산정책이 바뀌면서 골치 아픈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가지고 있던 물건 몇 개를 정리해서 갈아타려 했다. 그 중 하나가 S4차 아파트였다. 그런데 계약서를 쓰고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슬금슬금 전세가가 오르기 시작하더니 11월이 되자 두세 달 전 매매가 보다 웃돌았다. 잔금 날짜까지 10일 정도 남았는데 아침저녁으로 S4차아파트의 매매가는 최고가를 쳤다. 매매계약서에 적힌 잔금날짜와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세입자의 이사날짜와 계약 파기 시 물어내야 할 금액까지, 숫자들이 우글우글 머릿속에서 기어 나와 밤새 오진선씨의 온 몸을 기어 다녔다.날이 세자마자 오진선씨는 B부동산에 전화를 했고 중도금이 없는 상황이니 계약을 파기해도 현시점의 아파트 매매가면 물어준 배액의 몇 배 이상까지 거뜬히 당길 수 있다는 확답을 받았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혹시나 매수인이 중도금을 넣기 전에 세입자부터 내보내야 했다. 잔금일자를 당기자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렸던 게 B부동산인지 오진선씨인지 중요하지 않았다.오진선씨가 그 날 오후 네일샵에서 빌더젤과 엠버를 섞어 손톱라인을 그리는 동안 잔금일자가 당겨졌다는 통보를 받은 세입자와 매수인의 마음은 바빠졌다.3일 후면 노모가 살던 집을 비워야 하는 50대 아들과 3일 후면 생애 처음 ‘우리 집’을 가지게 된 세 아이와 그 아이들의 엄마 그리고 40대 중반의 가장이 쉽게 잠들지 못한 금요일 밤이었다.그리고 이튿날 아침 계약을 파기한다는 내용을 매수인에게 전했다는 B부동산중개사의 전화를 받았다.오진선씨는 소파에 반쯤 누워 TV채널을 돌리다 살짝 배가 고파졌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한 통 왔다. ‘사모님, 저희 다음 주면 이사간다고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들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오진선씨는 문자를 읽다말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오진선씨는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잔금일자를 하루 남겨둔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이었다.*위 글은 현재 아파트가격이 급등하자 매도자들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사례가 잇따른데 따른 가상의 글임을 밝혀둡니다.

2020-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