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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

등록일 2021-12-05 19:36 게재일 2021-12-0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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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정규 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 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남 탓을 하는 경우가 무수히 많다. 예를 들면, 시험공부 할 때 저녁에 공부하지 않고 자면서 어머니에게 아침에 공부할 테니 일찍 깨워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침 일찍부터 열심히 깨워도 깨지 않고 계속 자다가 시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일찍 깨워주지 않아서”라며 어머니 탓을 한다.

평소에는 부하 직원의 보고서를 보거나 감독도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던 상사가 사장에게 꾸중을 듣고 나면 부하 직원을 탓하며 난리를 친다.

또 매사를 남 탓으로 돌리는 풍조가 심한 곳이 정치권이다. 정치인은 어떤 불미한 사건에 연루되면 하나같이 “나는 아무 죄도 없는데 억울하게 희생되었다”고 말한다.

만에 하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의도는 그렇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되어 유감”이라고 한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사과하거나 반성은 하지 않고 서로 남 탓하기 바쁘다. 오죽하면, 올해 4월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 뉴욕타임스의 기사에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뜻의 ‘내로남불(Naeronambul)’이 등장했겠는가. 자신한테 관대하고 남한테는 엄격하다. 이중성의 극치이다.

이렇듯, 사람은 대개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이다. 왜 사람은 잘못되면 남 탓으로 돌리려 하는 것일까? 인간은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갈등이 있으면 내적으로 긴장하고 불안을 느낀다. 불안과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우리 뇌는 여러 심리적 대응책을 작동시키게 된다. 이를 ‘방어기제’라고 한다. 남 탓을 하는 것은 정신의학으로는 갈등이나 내외적인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렇게 남 탓하는 방어기제를 ‘투사(projection)’라고 한다. 영사기를 통해서 나오는 스크린의 영상을 보고 그것이 영사기가 아닌 스크린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현상과 비슷하다는 데서 나온 용어이다. 투사는 자신의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이나 생각 등을 타인의 탓으로 돌려 자신의 불안감, 책임감, 죄책감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자아의 의도이다.

그러나 문제는 투사가 부적절하게 많이 사용하게 된다면 정신건강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신병적 증상 중에는 환자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는 ‘피해망상’이라는 증상이 있다. 실제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투사되어, 바로 그 사람이 자신을 미워해 피해를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이다. 그 사람의 잘못이므로 그 사람이 변해야한다”고 항변한다. 물론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탓해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내 인생에서 잘못된 모든 것을 남 탓으로 규정한다면, 남이 바뀌기 전에는 내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타인 의존적 삶’이지 ‘자기 주체적 삶’이 아니다.

정치의 경우, 자기반성 없이 남 탓만 하는 정치는 절망이고 자기반성에 투철한 정치는 희망이다. 우리가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든 정치가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인들이 올바른 정치로 국민을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이 정치 때문에 불편하다.

‘내로남불’의 풍토가 고쳐지지 않으면 희망의 정치는 없다. 어떤 정치를 선택할 것인가는 국민들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희망의 정치가 없다면 희망의 대한민국은 없다.

논어나 맹자에도 “소인은 무엇이 잘못되면 남을 원망하고 심지어 하늘까지 원망하는데, 군자는 우선 자기에게 잘못이 없나 반성해보고 잘못이 없을 때 비로소 외부를 검토한다”고 돼 있다.

요즘은 자기반성보다는 남 탓만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불가에서 깨달음의 핵심은 ‘불취외상(不取外相) 자심반조(自心返照)’ 즉 ‘바깥 모양을 취하지 말고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켜 비춰라’는 데 있다.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바깥모양(外相), 다시 말해 남을 탓하지 말고 자심반조,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켜보라는 뜻이다.

사실 정신치료도 자기 문제를 남이나 외부로 투사하고 있는 것을 깨우쳐 자심반조 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석가의 깨달음처럼 바로 이 투사를 없애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세상 일이 내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 힘겨워 진료실 문을 두드린다. 진료실에서 많은 사람들은 배우자 때문에, 부모 때문에, 자녀 때문에, 상사 때문에, 동료나 친구 때문에, 부하직원 때문에, 자신의 주변 환경 때문에 힘들어 한다. 비록 타인이나 주변 환경 때문에 힘들다 하더라도 그 원인을 오롯이 남 탓으로 돌린다면, 그것은 ‘타인 의존적 삶’이다. ‘자기 주체적 삶’은 자심반조하고 투사를 없애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남 탓하지 않는 자기 주체적 삶을 통해, 우리 정치도 남 탓하지 않는 희망의 정치를 통해 오늘보다 더 건강한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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