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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등을 켰다

등록일 2021-12-05 19:39 게재일 2021-12-0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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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산수유 마을에 있는 냇가.

가을이 겨울을 위해 붉은 등을 켰다. 동네가 환하다. 수백 년 전부터 바알갛게 불을 밝힌 만 그루의 나무 곁에 십만 그루가 가로등처럼 꽃불을 켜서 마을 전체가 환하다. 의성 사곡면 화전리로 들어서는 순간 어찌나 동네가 붉은지 ‘산수유 마을’이란 별칭이 꼭 맞아떨어진다. 지난봄, 입구에서부터 버스 정류장에도 산자락에도 어김없이 산수유꽃이 노랗더니 지금은 붉은 물감을 칠해 새로운 겨울 축제를 열었나 싶다. ‘영원불변한 사랑’이라는 꽃말처럼 300년 넘게 오래도록 마을을 밝힌다.

산책로에 들어서니 발밑에 빨간 열매가 떨어졌다. 학창시절 국어책에 실렸던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聖誕祭)가 저절로 떠오른다.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애처롭게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려고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고,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하며 끝맺던 시.

그 시절 나는 산수유를 알지 못했다. 꽃의 색깔뿐만 아니라 모양도, 시에 등장하는 빨갛다는 열매가 콩알만 한지 사과만 한지도 궁금했다. 지금은 얼른 핸드폰을 열어 검색 찬스를 쓰면 되지만, 그때는 국어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손톱만 한 작은 열매라고 하셔서 앵두 같겠거니 했는데 발아래 산수유는 투명한 다홍 색의 타원형 보석 같다. 그때 이 어여쁜 모양을 알았더라면 시가 더 내 몸속에 알알이 새겨져 흘렀을 것이다.

혹여 시인은 산수유 마을을 겨울의 길목에 다녀갔을지도 모른다. 본관이 의성이고 안동에서 태어나셨으니 이곳 사곡면 화전리에 와서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산수유 붉은 물결을 눈에 넣고 시를 썼을 것이다. 시 전체에 산수유 빛깔이 흩뿌려져 있다. 바알간 숯불로 시작해 열로 상기한 볼, 불현듯 느끼는, 마지막 구절에 산수유 알이 박혀 흐르는 혈액을 보면 동네에 내를 따라 늘어진 붉은 산수유 가지들을 보고 부리나케 시상을 떠올렸을 것이다.

물이 흐르는 곳으로 작은 돌계단을 따라 내려섰다. 골짜기 가득 붉은 산수유 이불을 덮어놓았다. 찾아간 시간이 해거름 녘이라 물가에 늘어진 가지 뒤에 붉은 조명을 비추는 듯해 더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잎은 하나 없이 온통 붉게 상기된 얼굴을 냇물에 비추니 물빛도 산수유를 꼭 닮아 버렸다. 넋 놓고 올려다보노라니 나도 덩달아 달아올랐다.

가만히 열매를 생각하니 꽃이 피었다 지고, 또 열매가 익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도 걸렸다 싶다. 가장 일찍 눈을 떠 봄소식을 전하는 전령사 노릇을 하는 녀석이 여름에 붉게 익어도 될 터인데 뒤에 핀 사과꽃도 열매 다 익혀 시장으로 마트로 팔려갔는데, 더 늦게 핀 감꽃도 주황색 까치밥만 남겨둔 지금, 이렇게 활짝 붉은 꽃 잔치를 느지막하게 열었다. 누구보다 많은 계절을 담기 위해 봄 여름 갈 겨울을 기다린 녀석들이다. 성격 급한 나로선 따라 하기 힘들다.

노란 산수유 꽃이 필 때는 동네가 사람들로 넘쳤었다. 산책로를 따라 사진을 찍으면 꽃만큼 사람도 찍혔더랬다. 붉은 산수유 꽃이 핀 지금은 우리뿐이다. 꽃등 아래 흐르는 냇물 소리만 가득하다. 봄에 기념사진 찍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던 그 자리가 오로지 내 차지다. 뒷사람 눈치 보지 않고 남편이 하라는 대로 포즈를 취하며 붉은 내음새를 가득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고선 폰을 내려놓고 눈으로도 한참 바라보았다. 마음에 알알이 새겨넣었다.

산수유 마을은 가로등 모양도 산수유다. 사람이 자연을 따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순리를 따르는 일이다. 거스르며 사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산수유 마을 사람들은 300년 전에 알았다. 골짜기 깊은 곳이라 해가 일찍 졌다. 기둥 끝에 빨간 열매 두 개가 부리나케 불을 켰다. 불현듯 성탄이 가까웠다는 게 떠올랐다. 집에도 산수유 닮은 불빛 몇 개 내 걸어야겠다. /김순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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