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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단상

등록일 2021-12-02 19:52 게재일 2021-12-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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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12월 초순이다. 아직은 가을의 잔병들이 머뭇거리고 있지만 입동과 소설이 지났으니 절기상으로는 겨울인 셈이다. 만산홍엽 타오르던 단풍은 낙엽이 되고 엽록소를 탈색한 마른 풀잎들이 싸늘해진 북서풍에 수런거리는 계절이다. 개구리와 뱀이 동면에 들어가고 풀벌레들도 월동준비를 마치면 겨울 철새들이 돌아온다. 초겨울의 대략적인 풍경은 이러하지만 자세한 내막으로는 적지 않은 예외와 이변도 없지 않다. 특히나 풀을 배어낸 곳에는 뒤늦게 새싹이 돋아나 철없이 꽃을 피운 것도 있고, 가끔씩은 메뚜기나 나비가 초췌한 모습으로 눈에 띄기도 한다.

12월은 세월의 강물 소리를 듣는 달이다. 벽시계의 톱니 소리를 평소엔 의식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듣게 되는 것처럼 한 해의 막바지에선 문득 세월의 흐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세월의 강에 인간사가 휩쓸려가면서 역사가 된다. 얼마 전 그 역사의 흐름에 두 전직 대통령이 잇달아 떠내려갔다. 그들의 재임기간과 박정희 정권 시절을 포함한 삼십년을 군사정권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그 삼십 년 동안 대한민국은 가장 눈부신 성장을 했다. 국민소득이 고작 100불에 불과하던 극빈 후진국이 8천불이 넘는 국민소득에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른 중진국으로 도약한 것이다. 그 성과와 업적에 대해서는 김일성이 집권한 북한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알 터이다. 군사독재라고 하지만 그것이 북한 김일성의 독재와는 어떻게 다른지를 증명하는 일이다.

박정희의 5·16은 다행히 무혈의 쿠데타였지만 전두환의 군사정변은 5·18이라는 유혈사태를 초래했다. 항쟁하던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해서 무장을 하지 않았더라면 희생이 훨씬 적었을 테지만, 12·12사태와 과잉진압 등이 원안제공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두 사람 다 대통령 임기를 마치기는 했지만 후임 김영삼 정권 때 군사반란 및 내란혐의, 불법비자금조성 등의 혐의로 처벌받고 자격을 박탈당했다. 나중에 특별사면을 받았으나 전임 대통령의 예우는 물론 유골을 묻을 장지조차 정하지 못한 처지라고 한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 발생했던 일들도 600년이 지난 오늘에는 은원친소의 감정을 떠난 역사적 사실로만 평가를 하듯, 군사정권 30년도 먼 훗날에는 원한과 감정의 앙금이 가신 역사적 사실로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5·16도 5·18도 진행 중인 역사다.

인류역사라는 대하(大河)의 한 지류인 대한민국 역사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통치자 한 사람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는 예가 드물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현 정권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 이대로 가다가는 뭔가 크게 잘못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불안을 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온 국민이 신뢰하고 기대할 만한 후보가 없다고 한다.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빗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듯 국민 개개인의 의지와 판단이 역사의 흐름을 만든다. 한 해가 기우는 초겨울, 나를 돌아보는 일과 함께 역사의 향방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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