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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3D 바이오프린팅을 활용한 맞춤형 인공장기

김도영포항테크노파크 첨단바이오융합센터장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심장, 간, 피부, 각막, 혈관 등을 생성해 인간에게 이식하는 기술을 3D 바이오 프린팅이라고 부른다.기존의 3D 프린팅이 치과 보철, 의족·의수 등 신체를 지지하는 인공 보철물 제작에 그쳤다면 바이오 프린팅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장기와 같은 체내 이식물까지도 맞춤형으로 제작할 수 있어 국내·외에서 3D 바이오 프린팅을 통해 인공장기를 개발하려는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최초의 바이오프린팅 기술은 2008년 일본 도야마 대학의 마코토 나카무라 교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잉크젯 프린터의 입자 크기가 사람 세포의 크기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인체 조직이나 장기를 만드는 3D 바이오프린터를 개발했다.2013년 미국의 바이오벤처기업 오가노보(Organovo)에서는 수만 개의 세포로 구성된 바이오잉크를 사용해 1㎝ 크기의 인공 간을 제작했으며 제약회사에 판매되어 신약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약물 독성시험 검사에 쓰이고 있다.2016년 중국의 레보텍사에서는 원숭이의 지방층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로 인공혈관을 제작해 원숭이에게 이식했는데 이는 영장류에 대한 최초의 바이오프린팅 성공사례이다.같은 해 미국의 웨이크 포레스트의대 재생의학연구소의 앤서니 아탈라 교수 연구진은 3D 프린터로 만든 귀를 쥐에게 이식해 내부로 혈관이 자라는 것을 확인했다.2018년 영국 뉴캐슬대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기증받은 각막 줄기세포와 알긴산염(Alginate), 콜라겐(Collagen)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바이오 잉크를 만들어 사람의 인공각막을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그리고 2019년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환자 세포를 이용하여 세포, 혈관, 심실 등을 모두 갖추고 있는 체리 1개 크기의 인공심장을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데 성공했다.3D 바이오프린팅에서 잉크로 사용되는 물질은 일반적인 3D 프린팅의 재료와 완전히 다르다. 장기를 출력하는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은 살아있는 세포를 사용하여 세포를 원하는 형상이나 패턴으로 적층해 인체의 조직이나 장기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처럼 세포를 활용하는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은 의학계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공장기를 환자에게 이식했을 때 장기가 제 기능을 해야 하고, 면역거부반응 등 환자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인공장기는 실제 환자 본인의 세포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고, 환자 몸의 일부로 생착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 이식이 가진 수많은 단점과 위험성을 극복할 수 있다.바이오프린팅 시장은 최근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 바이오프린팅 시장규모는 2019년 3억 620만 달러에서 연평균 복합 성장률(CAGR) 35.4%로 확대되어 2024년에는 14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BCC Research, 2019). 최근에는 대기업들의 참여로 상용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미국의 존슨엔드존슨(Johnson Johnson)과 같은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LOREAL), 미국 생활용품 기업인 프록터갬블(PG), 독일 화학회사 바스프(BASF) 등은 화장품이나 화학물질을 시험할 피부를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 많은 과학자들은 5년 내 인체 대상 임상시험이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2020년 8월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제2차 3D 프린팅산업 진흥 기본계획(2020~ 2022)’을 수립하고 3D프린팅 글로벌 5대 강국을 달성하기 위한 비전과 추진과제를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2018년 0.4조원 규모의 국내시장을 확대하여 2022년 1조원 달성(연평균 27% 성장)을 실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중소제조기업의 지속적 혁신성장 지원을 통해 2022년까지 연매출 100억 이상 글로벌 기업을 10개사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산업현장과 기업을 연계할 수 있는 3D 프린팅 실증지원센터와 같은 실증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국내에서도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인공장기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특히 포스텍 조동우 교수 연구진은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인공장기 개발 분야의 선두주자로 손꼽힌다.2016년 세계 최초로 3D 세포 프린트를 이용하여 인공 근육을 제작했으며 2018년에는 포항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하여 세포배양기판을 제작하며 체내 근육과 더욱 비슷한 인공 근육 재생기술을 개발했다. 포스텍과 한동대학교 등 지역의 대학에는 줄기세포와 오가노이드(organoid) 분야의 핵심기술을 보유한 연구진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어 향후 포항을 중심으로 바이오프린팅 기반 인공장기 산업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아직은 대학과 공공 연구기관 주도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3D 바이오프린팅 인공장기 제품개발과 세계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산학연병간의 컨소시엄을 통한 상용화 기술 조기 확보와 중소벤처기업 지원을 위한 실증지원센터 등의 인프라 구축, 산업 밀착형 선도인재 육성, 법·제도 재정비 등 다각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2021-01-31

수도권집중, 이대로 괜찮나

윤대식영남대 교수·도시공학과얼마 전 모 일간지에서 ‘서울 도심 집값 세계 2위, 홍콩 다음으로 비싸다’라는 기사를 읽었다.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언론을 통해 접한 기사들을 보면 서울시민들의 통근소요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기사는 물론이고, 서울의 비즈니스 비용이 세계적인 대도시들 가운데 매우 상위권에 속한다는 내용까지 다양하다.모두 서울과 수도권의 과밀로 인한 문제점을 적시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언론보도를 볼 때마다 전 인구의 50%가 몰려 살고 경제력 집중이 심각한 수도권집중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함을 새롭게 느낀다.오래 전부터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도권집중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수도권집중은 국가균형발전을 저해하고 수도권의 과밀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수도권의 경쟁력마저 저하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있다.수도권집중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논자들은 수확체증(increasing returns to scale)의 원리로부터 경제성장의 동인(動因)을 찾는다. 그리고 밀도가 높고 경제활동의 근접성이 있으면서 집적이 많이 이뤄져 있으면 수확체증이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공간정책의 방향은 수확체증현상을 감안한 경제원리에 역행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공간영역으로 수도권을 육성해야 함을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일리가 있으며, 수도권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대도시권으로 육성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수도권집중의 바람직한 수준은 수도권집중으로 인한 과밀의 사회적 비용(주거 및 교통 혼잡비용)이 집적이익(agglomeration economies)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정된다.현재와 같이 수도권에 산업과 인구가 집중하는 현상은 시장원리의 산물이라고 많은 논자들이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중앙정부가 주도해온 관치경제의 산물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다. 특히 수확체증현상은 고급기술이나 지식을 많이 이용하는 산업에서 발생하는데, 수도권의 경우 지금까지 중앙정부가 주도해온 관치경제(官治經濟)에 의해 고급기술이나 지식이 많이 축적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지리적 공간상에서 나타나는 4가지 흐름은 인구이동, 자본이동, 의사결정, 혁신의 확산이고, 이들은 상호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우리 나라의 경우 개발연대를 거치면서 권력(의사결정)이 집중되는 곳에 자본과 인구도 함께 집중함으로써 수도권집중이 나타났고, 이러한 집중현상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관성(慣性)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의 입지요인으로 생산요소(원료와 노동력), 시장, 집적경제(agglomeration economies), 환경요인, 정부의 영향력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지금까지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관치경제의 요소를 걷어내고 수도권의 선발이익(initial advantages)이 사라진다면 산업생산 공간으로서 수도권의 입지적 장점이 계속 존재할까 의문이다.그러나 선진국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의 예를 보면, 첨단산업의 입지요인으로 권력에의 접근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은 워싱턴 D.C. 주변에 첨단산업이 집중하지 않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오히려 미국의 첨단산업은 명문대학과 국립연구소에의 접근성 및 기후 등의 환경적 요인이 중요한 입지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입지경향이야말로 시장원리의 결과로 볼 수 있다.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비용뿐만 아니라 현재 수도권에서 볼 수 있는 주거 및 교통 혼잡비용까지 고려할 경우 일극(一極) 집중의 공간적 독점이 아닌 다극(多極) 집중의 공간적 구조를 만드는 것이 국가 전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한 국가 내에서 일극 집중이 심각할 경우 공간적 독점으로 인해 성장의 한계가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한 국가 내에서 특정 도시 혹은 지역이 산업생산 혹은 삶의 공간으로서 경쟁상대가 없을 때, 국내 도시 혹은 지역 간에 질적인 경쟁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수도권이 오직 규모의 경제로 인해 경쟁력을 가질 때 수도권의 질적 성장이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이렇게 될 때 외국 대도시와의 경쟁력이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경제원리를 따른다면, 한계생산성이 높은 지역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바람직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이야말로 수도권의 한계생산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진지한 성찰과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이제 경제적 효율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되는 지방 대도시의 육성과 이들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초광역경제권의 형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가 우선되어야 한다.이렇게 될 때 국가 전체의 경쟁력 향상도 가능할 것이다.수도권문제의 인식과 대안의 선택은 글로벌 경제의 관점에서 조망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바로 눈앞의 경제적 득실이 아니라 먼 장래의 국토공간구조와 국가경쟁력을 바라보는 중장기적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고려한 중앙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수립과 실천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1-01-31

‘판관(判官)’들의 수난

안재휘 논설위원1952년, 자신을 살해하려는 육군 대위를 사살한 야당의 맹장 서민호(徐珉濠) 의원에 대해 1심 재판부가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하고 국회가 석방결의안을 통과시켰음에도 이승만 정권은 막무가내였다. 이때 안윤출(安潤出) 부장판사가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서 의원을 석방한다. 그러자 ‘백골단’, ‘땃벌떼’ 등 정체불명의 단체가 법원으로 몰려와 “안윤출을 죽이라”며 난장판을 벌인다.안윤출 판사는 그 후 3개월간 경기도 지방의 처가로 피신해 있었다. 대신 배석 판사들이 특무대로 끌려가 곤욕을 치렀다. 이승만 정권은 기어이, 1958년부터 안윤출을 비롯한 연임 대상자의 4분의 1 이상인 20여 법관들을 잘라냈다. 4·19혁명 직전의 풍경이었다.지난해 21대 총선에서 국회 의석 절대다수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힘자랑이 그 끝을 알 수 없도록 점입가경이다. 아무래도 거대 여당은 다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해볼 기세다. 이번에는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가 현직 판사들을 ‘탄핵’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그 첫 번째 타깃이 된 인물은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다. 임 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던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서 담당 재판장에게 유죄가 선고될 수 있도록 재판 진행을 지시하고 판결문을 미리 받아 직접 수정했다는 혐의를 받는다.직권남용 혐의의 재판에서 1심 재판부는 임 판사에게 재판개입은 인정되지만, 형사책임을 묻긴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지금은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임 판사 탄핵을 추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1심 판결문에 6차례 등장하는 ‘위헌적 행위’라는 대목이다.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여 인사들에 대해 한사코 ‘법적으로 무죄’라고 우겨오던 지금까지의 주장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또 다른 아시타비(我是他非)로밖에 읽히지 않는다.임 판사가 죄를 지었다면, 굳이 그를 두둔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야당의 비판대로 만약 민주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한 하나의 정략으로서 이 일을 벌인다면 심각한 문제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집행정지 인용, 정경심 동양대 교수 징역 4년,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 의원직 상실형 선고 등 여권에 불리한 법원의 판결이 이어지던 끝이다. 행여라도 사법부를 겁박해 길들이겠다는 의도의 불장난이라면 이는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다.가뜩이나 ‘협치’·‘소수의견 존중’ 등 민주주의의 참다운 미덕이 모조리 사라져가는 시대에 ‘삼권분립’이라는 대들보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민주당은 이제 ‘할 수 있는 일’만 들여다보지 말고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더 살펴보기를 바란다. 이승만 정권의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야당의 맹장 서민호 의원을 용감하게 풀어준 안윤출 판사는 “나는 석방 결정에 도장을 찍을 때 죽음을 각오했다”고 회고했었다.

2021-01-31

北 원전문건 충돌… 불법적 ‘삭제’ 이유부터 밝혀야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무단삭제한 월성 원전 1호기 감사 관련 파일 목록 중에 ‘북한 원전 건설’ 관련 파일이 포함된 것을 두고 여야정치권이 정면충돌 양상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를 ‘이적행위’로 표현한 데 대해 청와대와 여권은 ‘북풍 공작’·‘보궐선거용’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공무원들이 야밤에 몰래 문건을 무더기로 삭제한 이유가 더 궁금해졌다. 문제가 없는 문건이라면 도대체 왜 지웠는지 그 국민적 의문부터 풀어야 한다. 공개된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산업부 공무원들이 지난 2019년 12월 감사원의 ‘월성1호기 조기폐쇄’ 관련 감사 직전 삭제한 530개 파일 목록에 북한 원전 건설 관련 문건이 10여 건 포함돼 있다. 문건 작성일(2018년 5월 2~15일)이 1, 2차 남북한 정상회담 사이의 기간이고, 관련 폴더 이름이 핀란드어로 ‘북쪽’을 뜻하는 ‘뽀요이스(pohjois)’로 붙여진 것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김 비대위원장은 “극비리에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면 충격적인 이적행위”라는 입장을 냈다. 강민석 청와대대변인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혹세무민 발언”이라면서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북한 원전 건설 추진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 삭제한 자료는 박근혜 정부부터 검토한 내부자료”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청와대와 민주당의 반박을 “제1 야당 대표의 입을 틀어막는 공포정치”라거나, ‘원전 게이트’라고 되받아치고 있다.정부 여당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왜 산업부 직원들이 운명을 걸고서 그 많은 문서를 불법적으로 삭제했느냐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지금 청와대나 여당 어느 곳에서도 이 의문에 납득할 만한 답변이나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선 탈(脫)원전을 밀어붙인 정부가 벌인 이런 모순적 행태 논란에 국민은 큰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법적 조치’를 벼르고 나선 청와대는 불가피한 사법기관의 조사를 다 수용할 용의가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다급해서 내놓은 또 하나의 자충수인가도 궁금한 대목이다.

2021-01-31

사격장 훈련 재개, 주민 협의가 먼저다

포항시 장기면 수성사격장 폐쇄와 관련, 주민과 군간의 갈등이 또다시 증폭될 전망이다. 주민들의 사격훈련 중단 요구에 대해 협의를 통해 사태 해결에 나서겠다던 국방부가 최근 갑자기 태도를 바꿔 사격 재개 움직임에 나서자 주민이 반발에 나섰다는 것이다. 수성사격장 반대대책위 주장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국방부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정찰 비행을 하겠다. 2월 초에는 아파치헬기 사격훈련 날짜도 잡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다고 한다.지난해 11월 “주민과 민관군 협의체를 구성해 사태를 해결하겠다”던 국방부가 갑자기 사격 훈련쪽으로 태도를 바꿨다는 것이다. 주민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고 화가 날 일이다. 그동안 국방부 차관을 비롯해 많은 국방부 관계자가 찾아와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 “주민의 승낙 없이 사격 훈련은 않겠다”고 말해 놓고 이제와 일방적 훈련재개를 통보하니 주민의 반발이야 당연하다.한미연합 훈련상 훈련일수 보장 등 주한미군측과의 협정 때문에 “국방부로서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이제와서 주민의 이해를 구하겠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불과 한달여 전에 주민과 약속한 일을 국가기관이 일방 파기한 것은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국가기관이 할 일이 아니다. 국가기관으로서 절차나 진행과정에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주민과의 약속을 도외시한 행동은 비판받아도 마땅하다.주민들이 물리적 행동에 나서더라도 국방부가 이를 막을 명분조차 약해진 것이다. 주민들은 마을에서 불과 1km 떨어진 사격장에서 발생한 불발탄, 유탄, 소음과 화재 등으로 60여년을 시달려 왔다. 국방과 안보를 위해 오랫동안 희생을 감내해 온 주민이다. 국방부가 주민 희생만 일방적으로 강요해선 안 된다. 특히 국방부는 지난해 7월 경기도 포천의 한 사격장에서 실시되던 아파치헬기 사격훈련을 주민 반발에 부딪혀 포항시 수성사격장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도 주민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주민과의 갈등을 국방부 스스로가 자초했다.지난달 주민들은 국민권익위를 찾아 수성사격장 폐쇄와 관련한 고충민원을 신청했으나 권익위의 중재도 엉거주춤한 상태라 한다. 권익위가 나서든지 국방부가 지금이라도 주민과 대화에 적극 나서 문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지금 상태라면 또다른 물리적 충돌은 불가피하다.

2021-01-31

묵식(默食)

“침묵은 금”이라는 것은 말을 많이 하면 실언을 할 수 있으니 신중히 하라는 뜻이다. “말 한마다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처럼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격언이다.말은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그 사람의 교양과 인격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잘못된 말 한마디로 망신을 당하는 일도 흔하게 발생한다. 말을 잘못함으로써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그 말로 인해 명예가 훼손돼 법적 다툼도 한다.불교에서는 말로 짓는 죄를 반성한다 하여 묵언수행을 한다. 아무런 말도 않고 참선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하는 불가에서 행하는 수행 중 하나다. 마음속으로 묵묵히 기도하는 것을 묵상이라고 표현한다.말을 신중히 해야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요즘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혀야 할 때가 있는데, 무조건 말을 아낀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다.특히 식사문화는 음식을 먹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과의 대화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생활양식이다. 대화없는 음식문화는 앙꼬 없는 찐빵과 비슷하다. 음식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는 대화만큼 훈훈한 분위기도 잘 없다.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일본에서는 묵식식당이 등장했다. 코로나로 고객이 감소한 식당 주인이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고안한 고육지책이다. 식사 도중 침방울이 튀는 것을 막고 고객의 보건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의도다.말을 못해 불편할 것 같았던 묵식식당이 의외로 고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관광협회가 홈피에 묵식 안내문을 올리고 식당마다에 권장도 한다. 코로나가 많은 분야에서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지만 말않고 먹는 묵식의 등장은 충격이다. 말 없는 식사문화는 비정상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1-31

코로나 줄서기

윤영대수필가코로나19가 국내에 번지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지난해 최대 고비를 넘기며 모범적인 K-방역으로 주춤하더니 또 재확산이 우려된다. 확진자 수는 매일 400명대를 오르내리고 누적 7만7천 명을 넘었다. 방역 2.5단계로 비대면과 5명 이상 모임 금지가 이제는 일상이다,빠른 백신 접종으로 국민의 걱정도 덜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그 시행이 늦어지고 있는 이때 포항시에서는 전국 최초로 ‘1가구당 1명 이상’ 의무진단 행정명령을 내리고 1월 26일부터 약 18만 명을 대상으로 인구밀도가 낮은 면 지역을 제외한 20개소에 선별검사소를 설치하였었다.첫날은 몰랐다. 포항사랑 상품권을 구하려고 동네 농협을 찾아가서 줄을 섰다가 길게 늘어선 사람들 때문에 매진된다기에 다른 곳으로 가는 도중 두호동 옛 미군부대 주차장에 사람들이 웅성대기에 알아보니 코로나 선별검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인근의 신협 등 여러 곳을 기웃거려도 상품권을 구하지 못해 포기하고, 검사나 할까 하고 그곳으로 가보았더니 이미 길게 줄서기를 하고 있어 단념했다.다음날 정오쯤에 갔더니 더 길었다. 뒷줄에 물어보니 2시간 넘게 기다렸다고 하고 일찍 한 사람은 오전 8시 이전에도 왔었다고 한다. 가까이 있는 북구보건소로 가보니 골목엔 이미 주차할 곳이 없고 줄서기는 역시 길게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다. 내친김에 장량동 행정복지센터에도 가봤으나 입구부터 요원들이 길 정리를 하고 있었고, 한 바퀴 둘러 양덕동 한마음체육관으로 갔는데 이곳은 드라이브스루 하는 곳이라 차들이 1km 정도 길게 줄지어 있고 네거리에는 경찰이 수고하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이다.사흘째 오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멀리 주차하고 걸어 가보았더니 100명도 안 되어 이상했다. 어제까지의 불만을 들었음인지 2월 4일까지 연기하고 다섯 개 대형병원도 검사에 참여했단다. 잘됐다 싶어 30여 분 줄 서서 검사를 받았다. 그곳은 주차장이라 바닥에 주차선이 있어 거리 두기가 정확하게 실시되고 있어 다행이었다.끝내고 나오니 때마침 세찬 바람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드라이브스루는 이날도 길게 이어져 있었다. 바깥에 줄 서서 추위에 떠는 것보다 따뜻한 차 안이 좋겠지만 장시간 엔진을 켜고 있으면 연료도 많이 소모되겠다. 죽천 바닷가에 가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코로 들어 마시니 마음이 후련하다.다음날 강풍 및 한파 주의보와 포항시청 안내문자가 떴다. “별도 통보를 받으신 분 외에는 전부 음성입니다.” 다행이다. 그러나 무증상자 25명을 찾아냈다니 포항시의 특단조치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검사소도 25곳으로 늘었고 팀도 73개로 증원했다니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 수고하시는 공무원과 봉사자분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비와 찬바람 속에서도 질서를 지키며 찬찬히 검사를 받는 공공질서 의식으로 우리 모두 선진사회의 시민임을 알리고 있음은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 느낀 뿌듯함이다. 마스크 사려고 줄 서고 상품권 구하려고 줄 서고, 또 선별검사로 줄 서보니 때와 장소를 가려서 줄을 서는 일이 참 어렵다고 생각된다.

2021-01-31

우리는 함께한다 고로 행복하다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입과 손발을 묶어둔 지, 약 1년이 되어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가져다준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여기저기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북구에서 남극까지, 바다에서 하늘까지 사람들이 가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 모든 이동, 만남을 중지시킨 지 1년이 되어간다.자연의 재앙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지면서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그 홀로 있는 시간에 어떤 이는 공부를 시작하고, 어떤 이는 사랑을 하고, 어떤 이는 기도와 명상을 했으리라. 그러나 혹 어떤 이는 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못 자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즉, 생각에 또 생각을 더 하며 생각의 꼬리를 자르지 못했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생각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현실과 자신의 본성을 잊어가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요즘 눈이 오는 날, 비가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나의 상담실에 와서 사람들은 말한다.“생각이 멈추지 않아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벗어날 수가 없어요. 이러다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요?”이런 생각 과다로 인한 심리적 고통의 호소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람들과 만남을 못 하게 하고, 혼자 있도록 한 이후 좀 더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홍자성의 ‘채근담’에는‘마음과 몸이 밝으면 어두운 곳에서도 푸른 하늘이 있고, 생각하는 머리가 어둡고 우매하면 환한 대낮에도 도깨비가 나온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도깨비라는 것은 정신건강 용어로 ‘환청, 환시 등 환각을 말한다. 이 환각이란 조현병을 특징짓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며, 심리적 부적응의 종착지에서 겪게 된다.즉, 혼자 있고 생각이 많아지면 우울, 불안해지고, 더 심해지면 강박증이 되고, 조현병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증상들에 한 번도 노출된 적도 없고, 주변에 물어볼 정신건강전문가도 없는 경우, 그 충격은 상당히 클 수 있다. 실제 증상의 위험성에 비해 그 후폭풍이 더 커서 지혜로운 판단을 못 하게 된다면, 삶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도 흘러갈 수도 있다.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생각의 중요성을 설파했지만, 그는 혼자 있으면서 생각을 너무 많이 한 결과로, 마음의 병이 올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홀로 있는 사색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시간이 길어지는 요즈음, 정신건강의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사람들의 정신건강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잦아들고 백신이 보급되어, 혼자가 아닌 둘이, 셋이 아닌 여럿이 함께 일하고, 밥 먹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바래본다.‘우리는 여기 그리고 지금 함께한다. 고로 행복하다.’

2021-01-31

아우슈비츠에서 날아온 희망의 메시지

윤경희 청송군수우리의 역사에서 1930년대는 극심한 고난의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땅을 빼앗기고, 온몸을 짓밟힌 고통의 터널. 그런데 그 즈음 우리처럼 엄청난 핍박 속에서 대량 학살을 당한 민족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바로 나치에게 희생된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을 가장 많이 수용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는 4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천문학적 숫자의 안타까운 목숨이 끊어졌다.코로나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났다. 2021년 1월 말까지 통계된 전 세계의 코로나 사망자 수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독가스만 살포되지 않았지 지난 1년여 간 전 세계는 아우슈비츠처럼 공포와 아비규환의 연속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좀 잠잠해지는가 싶던 확진자 수가 겨울이 오고부터 폭증하면서 또다시 살벌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전국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승격시키며, 또 연장하면서 방역에 열을 올리고 있다.우리 청송도 마찬가지로 코로나와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같이 다중이용시설을 꼼꼼하게 방역하고 5인 이상 집합 금지 행정명령과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도 열심히 홍보하면서 군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여념이 없다.지난해 12월 지역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청송군은 대규모 선제적 진단검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 확진 환자를 조기에 찾아 N차 감염을 차단하는데 성공했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코로나19 대응 특별교부세를 확보하기도 했다. 또 설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코로나 전파의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하여 방역 강화를 위해 전 군민에게 기부 3매를 포함한 방역마스크 8매씩을 무료로 배부했다. 특히 경기침체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올해 들어 경북도내에서는 최초로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고, 설 연휴전 지급을 목표로 적극 추진 중이다.덕분인지 몰라도 우리 지역은 비교적 안정적인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는 의료진과 관계자들 덕분이다. 이 분들의 노고와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감히 지금의 안정세를 이어갈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숨은 곳에서 자신의 소임을 묵묵히 지키며 군민들의 건강을 책임져준 이들에게 진심으로 찬사와 경의를 표한다. 이 분들 이외에도 코로나 방역을 위해 각종 봉사활동에 애써준 분들도 많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들의 노고가 있었으므로 지금의 안전한 청송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이에 머리 숙여 감사의 말을 전하며, 앞으로도 청송은 적극적인 방역 활동으로 군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힘들지만 이 위기를 지혜롭게 이겨나갈 수 있도록 모두 동참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인생에서 가장 의미 없이 보낸 날은 웃지 않고 보낸 날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난 1년은 뜻하지 않았지만 웃음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두려웠다. 다시 웃을 수 없을까봐. 하지만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고,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정녕 마지막인 것만 같은 순간에 새로운 희망이 움튼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일어나 옳은 일을 하려 할 때, 고집스런 희망이 시작된다.끔찍한 고문과 생체실험, 매일매일 죽음이 엄습하는 그곳 아우슈비츠에도 희망은 있었을 것이다. 노역에 찌들다가도 겨울이 지나고 어디선가 불어온 봄바람에 수용자는 엷은 미소를 띠었을 것이며, 안네 프랑크는 숨어서도 희망이 깃든 일기를 써내려갔다. 수많은 전쟁이 인류를 위협했지만 인류는 살아남았듯, 우리에게 닥친 이 시련을 반드시 이겨낼 거라고 믿는다.그러니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 머잖아 당도할 봄처럼 아우슈비츠에서 문득 날아온 메시지를 곱씹어본다.

2021-01-31

신춘 음악회

봄 마중을 나갔다. 온화해진 햇살이 걷기에 좋은 날씨라며 수목원으로 발길을 이끌었다. 산 정상에 위치한 경북수목원을 향해 구불구불 길을 오르며 한 구비 돌아설 때마다 겨울 나목의 가지 끝이 물을 가득 올려놓았는지 발그레하다. 입구에 들어서자 차에 몇 명이 탔는지 확인을 했고, 주차 후에는 열 체크와 방명록도 적어야 입장이 가능했다. 주말이 아닌 평일 오후라 우리 말고 서너 명의 산책자들을 넓은 숲에 흩어놓으니 조용했다. 습지원에 들어서니 침입자가 나타났다고 바삐 지저귀는 새소리가 요란하다. 새소리 사이로 가만가만 피아노소리가 들렸다. 조지 윈스턴의 ‘디셈버’였다.(사실 익숙한듯하나 작곡가도 제목도 몰라 검색찬스 썼다는 건 비밀!)겨울 숲은 잎을 발밑으로 일찌감치 보내고 난 가지뿐이라 속이 훤히 드러난다. 습지 사이를 연결한 다리 난간에 십이지신상 조각이 앉아있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아챘다. 꽃과 잎이 풍성한 계절에만 찾아와 꽃과 향기에만 취했었던 탓이다. 휑한 가지뿐인 나무의 발치에 써 놓은 이름표가 눈에 띄었다. 만첩빈도리, 화살나무, 곰의말채나무를 떠듬거리며 가로수원으로 발길을 옮겼다.그사이 들려오는 가락이 경쾌하게 곡을 바꿨다. 비발디의 사계 중 한 곡인데 ‘봄’인지 ‘가을’인지 헷갈렸다. 스마트폰이 식물학자이자 음악선생이다. ‘가을’이 아니라 ‘봄’이라고 짚어주었다. 버드나무는 비발디 곡에 취해 가지 끝이 노르스름해졌고 뾰족한 봉오리를 가득 달고서 ‘나 목련이오.’하는 백목련이 키를 높이고 있다. 이름을 들어봄직한 나무들이 있는 유실수원을 지나니 경상북도 시군별 나무와 꽃을 모아놓은 동산이 나타났다. 주로 소나무와 은행나무가 시군목 이었고 꽃은 장미가 많았다. 3월에는 산수유가 시화인 의성군에 갔다가, 안동시의 매화와 예천군의 목련까지 한꺼번에 보고 와야겠다.연구동 근처로 가니 비닐하우스 안에서 무엇을 키우는지 물소리가 졸졸졸 흘렀다. 그때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이 타레가의 스페니쉬기타 연주로 물소리에 섞여들었다. 타레가가 알람브라궁전의 수많은 분수가 만들어낸 물소리를 기타로 표현했다는 그 곡이 오늘의 숲에서 연주되니 좋은 선곡이었다.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들으며 무궁화원으로 들어섰다. 예전에 처음 이 곳을 방문했을 때 키 낮은 묘목이던 것이 이젠 우리키를 훨씬 넘어서 의젓한 나무의 모습을 하고 그늘을 만들 정도로 자라있었다. 한 그루에는 새집도 한 채 들여놨다. 연못을 지나 손님을 기다리는 데크들을 지나니 옴나무, 황금, 지모, 여로, 세잎양지꽃, 이런 이름의 나무와 꽃도 있었구나 싶어 받아 적었다. 딸을 낳으면 심었다던 벽오동, 몸피가 특이한 복자기, 사람주나무, 죽단화, 낙상홍을 지나 눈을 맞고 섰던 기자 이름 같기도 한 박태기나무, 갯사상자, 수크령, 윷놀이가 아니라 윤노리나무, 열대우림에 자랄 것 같은 정글나무도 있었고, 포도는 학명이 그레이프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뜰보리수는 자태가 우아해 우리 집 뜰에 옮겨 심고 싶었고, 여느 소나무보다 잎이 통통한 잎인 금송, 어떤 꽃이 필까 궁금해지는 팥꽃나무(찾아보니 꽃 색깔이 팥 색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토끼와 친구였던 계수나무, 덜꿩나무는 꿩하고 인연이 있는 거 아닐까 궁금해하다보니 산을 내려왔다.김순희수필가숨고르기 하며 거닐었던 길은 늘씬한 몸매의 메타세콰이아가 파란 하늘이 더 높아보이게 만들었다. 길에는 마사토가 깔려 있어 밟는 소리가 음악소리이다. 사박사박 사람들이 겨우내 밟지 않아서인지 더 폭신했다. 구름을 가득 품었던 연못은 얼음으로 덮여 있어서, 연못 가운데 있는 독도는 인공섬이 아니라 육지와 연결되어 한 계절은 외롭지 않았다.겨울이 숲에게 주는 휴식 시간 겨울, 꽃 사진 찍느라 바빴던 다른 계절에 들리지 않았던 클래식 연주가 잔잔히 들려 숲을 감상하기에 더 좋았다. 숲의 속내를 들여다본 산책이었다. 화가 모네가 같은 장소를 시간에 따라 연작으로 그렸던 이유를 어렴풋하게 알려준 겨울 수목원이었다.

2021-01-31

구미시의회, 실망을 넘어 절망으로

김락현 경북부구미시의회가 2021년 첫 임시회를 동료 시의원에 대한 징계안으로 시작하면서 시민들에게 실망감을 넘어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그동안 제8대 구미시의회의 행보는 역대 최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이 역대 가장 많은 9명 등원해 기대가 컸지만, 불법 공천 헌금 혐의를 받은 마주희(비례대표) 시의원이 자진사퇴한 데 이어 김택호, 심문식 의원이 당으로부터 제명당했다. 국민의힘 권기만 시의원도 미래통합당 시절 도로 개설 특혜 의혹으로 자진사퇴했다.특히 더불어민주당 이선우 시의원은 시립예술단 단원 선발 자격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데도 두 차례나 심사장에 포함됐다. 이 밖에도 구미시장에게 시립무용단 안무자 해촉을 공개적으로 요구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엄연히 구미시의회 행동강령 위반사항이었지만, 시의원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홍난이 의원이 불교계와 마찰을 빚어 장세용 구미시장이 직접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앞서 지난 2019년에는 시의원 5명이 징계받는 등 구미시의회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내부에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김재상 의장과 안주찬 부의장은 임시회를 통해 “시민들이 그만 싸움을 멈추고 지역 경제가 회복되는 데 힘을 모아주길 바라고 있다”면서 “더는 동료 시의원에 대한 제명이나 징계안을 올리는 일 없이 서로 합심해 구미 발전에 노력하자”고 말했다. 의장단의 반성하는 목소리가 한참이나 늦은 감이 있지만, 한낱 희망일지라도 기대하고 싶다. 코로나19로 지친 구미시민들에게 무거운 짐을 더하는 게 아니라 작은 짐이나마 덜어주는 시의회가 되길 바란다. /kimrh@kbmaeil.com

2021-01-28

준비 소홀로 시민 대혼란 야기한 코로나 의무검사

가구당 1명 이상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도록 행정명령을 내린 포항시가 준비 부족을 인정하고 검사 기간을 사흘 연장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했다.전 가구를 대상으로 한 포항시의 코로나 의무검사는 당초부터 준비가 부족했고 무리한 행정명령의 발동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막상 시행에 들어가자 곳곳에서 원성과 대혼란이 벌어졌다. 선별검사소에는 아침부터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으로 장사진을 이루면서 온종일 포항시의 졸속행정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선별검사소와 인력의 부족으로 행정당국이 정한 6일내 검사 완료가 불가능한 데다 검사 이후 행동지침도 제때 내려오지 않아 시민들이 우왕좌왕하는 혼란도 겪었다. 코로나 의무검사 행정명령을 철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으니 포항시의 행정명령이 시민과의 교감 없이 얼마나 졸속으로 진행됐을까 짐작이 간다.이강덕 포항시장의 사과와 검사기간 3일 연장, 선별검사소 추가 설치 등 포항시의 보완책 발표와 함께 시가 수습에 들어갔으나 행정편의적 발상이 빚은 주민불편과 대혼란에 대한 행정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시민 20만명을 대상으로 진단검사를 시행하겠다면서 시민에 대한 사전 홍보도, 시의회와의 사전조율도 없었다는 것은 납득이 안 간다. 시민의 불편이나 반응은 애초부터 고려치 않고 의욕이 앞선 탁상공론식 발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포항지역의 코로나19 발생이 위중하고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막아야 하는 엄중한 상황이라 하지만 사전준비가 완벽해야 명분도 지킬 수 있다. 명분이 앞선다고 시민들의 소중한 일상과 시간을 함부로 희생할 수는 없는 것이다.포항시가 준비 소홀을 인정하고 뒤늦게 추가 보완책을 내놓았으니 남은 기간이라도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세심한 배려 속에 진단검사를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특히 이번 의무진단검사 대혼란은 그동안 행정기관이 자주 비판을 받았던 권위적 발생과 행정편의적 업무처리에 큰 경종을 주었다. 공직사회가 업무를 결정하는 과정이 얼마나 신중하고 세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포항시로서는 이번 대혼란이 가슴 아픈 일로 기억되겠지만 반면교사 삼고 코로나가 종결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2021-01-28

데드크로스 시대

우리나라 인구는 작년말 기준으로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이른바 인구의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인구가 자연감소를 시작했다는 뜻이다.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187개국 중 꼴찌다. 인구를 국가 경제력의 상징으로 계산한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이제 위험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아야 한다.데드크로스(Dead Cross)는 주식시장 장세의 흐름을 가늠하는 지표다. 주가의 단기이동 평균선이 중장기 이동평균선 아래로 뚫리는 현상이다. 장세가 나빠짐을 예고하는 지표다. 이와 반대되는 현상을 골든크로스라 부른다.선거판에서 1.2위 후보자의 지지율이 역전되는 상황도 골든크로스 또는 데드크로스라 부른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면 데드크로스고 그 반대면 골든크로스다. 요즘 우리 사회는 데드크로스 현상이 부쩍 많아졌다. 대학이 학생 수 감소로 전전긍긍이다. 대학교의 신입생 정원보다 대학 지원자 수가 적어져 신입생 데드크로스 현상이 생기고 있다. 아파트도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 집값이 폭등 하는 아파트의 데드크로스 현상도 걱정이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도 데드크로스 선상에 있다.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린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율이 -1%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마이너스 성장이란 중소기업인, 소상공인 등 수많은 경제 주체의 노력이 성과를 못냈다는 뜻이다. 그들의 고통과 눈물이 컸다는 의미도 있다. 코로나 속에 이 또한 데드크로스적 현상이다.정부가 우리 경제의 역성장 폭이 선진국보다 낮아 선방했다는 표현을 썼다. 적절치 않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 지금은 자랑보단 경계심을 높일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1-28

바이든에 거는 기대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조 바이든이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상원의원 36년, 부통령 8년을 지낸 화려한 경력의 직업 정치인이지만 오랜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고 대통령 선거에 세 번째 도전 끝에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며 바이든 시대의 개막을 알린 것이다.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불복, 의사당 난입에 이어 사상 유례없는 트럼프의 2번의 하원에서의 탄핵 등으로 인해 어수선한 취임식이었다.더구나 미국의 오랜 전통인 전임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이 없는 적개심이 남아있는 이상한 취임식이 되었다.지금 트럼프 정책에서 허덕였던 각 국가와 한국도 바이든에 거는 기대가 크다. 각국은 자국 손익계산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쁘다.노선과 정책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 있는 바이든은 전임 행정부와 철저히 단절하며 미국 안팎의 새 질서 구축에 나설 것으로 보여 국제사회에도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이미 수십 개의 트럼프 정책을 뒤집는 행정 명령(Executive Order)에 서명했다고 한다. 트럼프의 몽니로 탈퇴하였던 각종 세계 기구에도 복귀하고 있다.바이든은 기본적으로 경제를 재건하고 환경을 보호하면서 동맹과의 협력을 통해 자유주의의 가치와 미국의 리더십을 재건하겠다는 깃발을 내걸었다.중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패권주의가 깔린 미국에서 의회와 안보 관련 기관의 대중국 매파의 세력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으로 입은 상처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북한 문제로 동북아 정세는 여전히 안개 속에 중국과의 대립을 정리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세계는 미국이 유럽을 비롯한 동맹국과의 긴장을 완화하고, 협력을 통하여 중국을 합리적으로 견제하면서 세계무역 질서를 복원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미국판 ‘인동초’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바이든은 변호사 출신으로 만 29세의 나이로 상대와 1% p 차, 극적인 대역전극을 펼치면서 단숨에 정계의 주목을 받았다. 최연소 상원의원,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듯 보였으나, 큰 교통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들마저 잃었다. 그런 그가 내리 6선에 성공하고, 대통령에 세 번 도전 끝에 성공한다.우리는 바이든이 보여준 이러한 인동초 같은 불굴의 정신으로 미국, 세계를 안정시키고 한국에 밝은 미래를 가져오길 기대해 본다.우리는 그의 한국 정책에 특히 주목한다. 자국 위주의 경제정책에서 세계 경제를 함께하는 정책, 외국기업을 아우르는 정책, 글로벌 경영의 토대를 세울 것을 기대해 본다.주한미군의 안정된 주둔과 대북 정책에서 힘을 기반으로 하는 정책에서 한국의 현 정부를 설득할 것도 기대해 본다. 대중국 정책도 강한 힘으로 중국을 다스리면서도 세계평화라는 관점에서 유연성을 호소해 본다. 한국 정부는 대북한 굴욕외교에서 벗어나 바이든 정부와 호흡을 같이하며 품격있는 외교, 국방 정책을 조율해야 할 것이다. 바이든에 기대한다.

2021-01-28

헌재, ‘공수처 합헌’ 결정…국민감시 중요성 높아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설립과 운영 근거를 정한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28일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권력분립 원칙에 반한다는 헌법소원심판에서 일부는 기각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적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각하했다. 공수처법에 대한 또 다른 법적 심리과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제 공수처는 그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집중적인 감시가 더욱 절실하게 됐다. 헌재 전원합의부는 이날 재판에서 “행정 각부에 속하지 않는 독립된 형태의 행정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헌법상 금지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여러 기관으로부터의 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수사처가 독립된 형태로 설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권력분립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공수처의 성격에 대해서는 “행정부에 소속되고, 그 관할권의 범위가 전국에 미치는 중앙행정기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정했다. 헌재는 이와 함께 고위 공직자의 가족이나 퇴직자를 수사대상으로 한 것에 대한 평등권 침해 여부에 대해서도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공수처에 대한 헌법소원이 ‘위헌’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짐작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중대하고 시급한 재판을 1년간이나 끌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대개의 법률가들이 ‘합헌’ 결정을 예측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헌재가 자주 써온 방법대로 헌법소원 청구인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었다. 현 정부 들어 보여준 헌재의 성향만으로도 ‘위헌’ 결정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예상이 다수였다.공수처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은 존중돼야 할 것이다. 다만 근간 우리 국민이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 검·판사들마저도 패거리 정치의 폐해에 종속되어 ‘편 먹기’ 의식에 빠져 있다는 진실이었던 만큼 논란은 이어질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제 거침없을 공수처가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의 괴물 친위조직이 되지 못하도록 제대로 감시하고 차단해나가야 할 국민의 사명이 훨씬 더 깊어졌다는 사실이다.

2021-01-28

추천서를 쓰면서

내가 다니는 학교는 대학원생이 많은 곳이다. 국문과 가운데서는 가장 많은 축에 속할 것 같다.한번은 인문대학에서 공간 배분 문제 때문에 재적 인원을 물어본 적이 있어, 120명이라고 했더니 국문과 다 합쳐서 그런 것이냐고 했다. 아니고, 현대문학만 그렇다 했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요즘 외국 유학생이 많아 그렇기도 하지만 원래 국문학은 돈은 되지 않아도 학문적 열정만은 다른 곳 못지 않을 것이다.이렇게 학생이 많다는 건 행복한 소리지만 그만큼 마음이 아플 때도 많다고 할 것이, 이렇게 공부한 귀한 학생들이 막상 박사 졸업장을 들고 사회에 나가려 하면 받아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어디나 그런 것이 일자리 적은 요즘 한국 사회 풍토지만 이 박사들은 남들 서른 살도 안 되어 직장을 찾을 때 공부하겠다고 학원에 남은 사람들이다. 보통 200만 원 정도 월급을 받기 시작할 나이에 책과 자료에만 매달린 사람들이다. 그네들이 박사학위를 들고 대학만 졸업한 학생들보다도 더 적은 월급밖에 주지 않는 강사 자리, 강의전임 자리를 찾아다니는 것을 어떻게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있으랴.편할 수도, 좋을 수도 없는 마음으로 추천서들을 쓴다. 한 학기에도 여러 통 써야 하는 추천서니까 틀을 하나 정해 놓고 거기 맞춰 사람 이름만 바꾸면 될 것 같지만 가려는 대학마다 뽑는 자리도 다르고 가려는 사람도 저마다 다르다.어떤 사람은 공부도 정말 잘하고 논문 수도 많다. 어떤 사람은 논문 수는 좀 적어도 인격적으로 너무나 좋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이런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큰 덕목을 잘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 해서 아무 노력도 없이 이 위치에까지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또 다른 ‘칭찬’이 없을 수 없다.사실, 국문학이라 그렇고, 또 인문학 중의 하나라서 더 그렇지만 요즘 한국사회는 뭐든 돈이다, 실용이다, 하는 쪽으로만 돌아가는 모양새다. 그만큼 먹고 살기 어렵지 않느냐 하지만 사람은 육체와 함께 정신을 가진 존재고 그래서 빵만으로가 아니라 생각으로 살아가는 존재라 해야 맞다. 가장 연약한 갈대지만 생각하는 갈대인 것이다.오래 준비한 학생들을 위해서 오늘도 나는 잠시 책상 위에 앉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어느 대학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전공 교수로 일하고 있는 아무개입니다. 다름 아니오라….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 년 아무 일 아무개 삼가 올림”/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1-01-28

쇳물과의 상생(相生)

이성환포항뿌리회 초대회장작금의 포항이 총체적 난국으로 치닫고 있어 심히 우려되는 마음에 지역을 사랑하는 한 시민으로서 호소드리고 싶다. 코로나로 일상을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말은 ‘상생(相生)’,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코로나 역병이 확산되면서 더욱 철저히 지켜야 할 개인방역도 나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것이 이웃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근간이며 지역사회가 발전하고 행복해지려면 서로가 존중하고 신뢰하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최근 우리 지역에 확진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상황이고 확산방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행정당국의 모습에 안타까움마저 느껴진다.또한 지난 2015년을 정점으로 인구가 계속 줄어 50만 도시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포항사랑 주소갖기운동’ 등을 대대적으로 펼치며 동참을 호소하고 있는 현실을 보며 지난 2006년 포항뿌리회가 앞장서 ‘포항시민 인구늘리기운동’을 펼쳤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또 얼마 전 지역방송에서 포스코 산업재해와 직업병 문제가 부각되면서 우리 지역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도시’로 비쳐진 것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어느 것 하나 지역의 미래를 밝게 하는 일들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어떻게 우리 지역이 이런 지경까지 되었을까?나이든 사람으로서, 또한 지역사랑운동에 신명을 바쳐온 본인으로서는 부끄럽기도 하고 막중한 책임감마저 든다. 우리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있으며 이 땅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많은 애향 시민들이 있는데도 총체적 난국이 되고 있음에 마음이 아프고 참담한 심정이 앞선다. 그나마 우리지역에서는 포스코라는 글로벌기업이 50여 년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기간산업으로 ‘산업의 쌀’을 생산하며 포항이 철강도시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환동해중심도시로서 50만 대도시 규모로 발전할 수 있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다.숱한 애증(愛憎)이 오고갔지만 서로 신뢰하고 화합하면서 쌓은 ‘상생’이란 이름아래 포항과 포스코는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포스코 때문에 ‘죽음의 도시’로 불리게 된다면 50년 상생의 역사는 어떻게 되겠는가. 누가 뭐라 하여도 포스코 역시 포항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으며 포항 시민 또한 포스코를 사랑하며 응원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제껏 함께 살아온 반세기의 역사를 외면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한 쪽만 바라보는 좁은 시각보다는 지역사회와 공존하며 함께 살아가고 또 함께 살아갈 미래를 위해 좀 더 폭 넓은 견해도 필요하리라 본다. 포스코가 어려울 때 포항 시민이 앞장서는 등 애정으로 함께한 역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언제나 포스코의 발전이 지역의 발전이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렇듯 성숙된 시민의식과 공동체에 대한 진정한 공감대가 이뤄지고 50여 년 함께한 기업이 100년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는 공생 의지를 보인다면 우리가 못 넘을 산은 없을 것이다. ‘I ♡ POHANG WITH POSCO’라는 상생(相生)의 기치(旗幟) 아래 우리가 진정 사랑해야 하는 것은 ‘쇳물과 포스코’ 그리고 포항이다.

2021-01-28

트로트 신동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발명왕으로 불리는 에디슨은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흔히들 그 말을 ‘천재는 영감보다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는 뜻으로 알고 있으나, 에디슨은 ‘1퍼센트의 영감이 없으면 99퍼센트의 노력도 소용이 없다.’는 의미로 한 말인데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타고난 재능이 없이 노력만으로 천재가 될 수는 없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같은 노력을 해도 타고난 소질과 재능에 따라 현격한 기량의 차이를 보이는 게 사실이니까.각 분야마다 신동(神童)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유아기부터 어떤 분야에 몰입하고 특출한 능력을 드러내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이다.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분야에 천재적 소질을 가진 아이도 있고, 체육 분야에 특출한 기량을 보이는 아이, 수학이나 언어 분야에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는 아이들도 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천재성이 불후의 음악이 되어 인류에 기여하는 것처럼 신동들은 잘 길러지면 인류문명의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요즘은 트로트 신동들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유소년기의 아이들이 트로트 가요를 가수들 뺨치게 잘 불러서 환호와 갈채를 받고 있는 걸 본다. 어린아이들이 성인가요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것도 물론 신동이라 할 만하다. 그 소질을 잘 키우면 훌륭한 가수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일찍부터 예능프로그램에 출연시켜 지나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당사자는 물론 그걸 보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아서다.성인들도 갑자기 엄청난 각광을 받게 되면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무중력상태가 되기 쉽다. 아직 모든 것이 미성숙한 아이들이 갑자기 엄청난 관심과 환호를 받게 되면 정상적인 정서나 인성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다. 타고난 끼와 소질을 아예 무시하거나 막으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청소년이 되기 전까지는 대중 앞에 세우는 걸 유보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얘기다. 특히 방송매체는 시청률을 위해서 과장되고 자극적인 연출을 하게 마련이다. 성인프로그램은 어린아이들의 정서와 이해의 수준에 부적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어린 시절에 불렀던 노래는 그 정서와 기억이 평생을 간다. 노년이 되어도 옛날의 동요를 듣거나 부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유소년기의 아이들에게는 성인가요보다는 그 또래의 사고와 정서에 맞는 동요나 가곡을 부르게 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노래는 곡조 못지않게 노랫말도 중요한 법인데, 유행가 가사가 어찌 동심(童心)에 어울린다 하겠는가. 요즘 아이들이 아무리 되바라졌다고 하나 그 연령대에 맞는 정서와 동심이 아주 없지는 않을 터이다. 동요보다는 유행가에나 빠져들게 방치하지 말고, 요즘 아이들의 감각에 맞는 노래를 지어서 보급하고 권장하는 것이 아이들 정서와 심성을 함양하는 교육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의 음악교육에 대한 성찰과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1-01-28

그들이 왔다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제2차 세계대전 때에 포로가 되어 독일군 포로수용소에 있었던 영국의 군인 맥도널드(Murdo Macdonald) 목사는 어느 날 새벽의 감격을 이렇게 고백하였다고 합니다.그의 가까운 친구가 전기 기술자인데 그 친구가 비밀리에 라디오를 조립하여 영국의 BBC 방송을 듣고 전쟁의 상황을 수용소 내에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그 친구가 제일 먼저 맥도널드 목사를 흔들어 깨웠습니다.여보게 친구야! “그들이 왔어(They have come!)”라고 흥분된 얼굴로 엄청난 감격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친구가 전하여 준 말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들이 왔어(They have come!)”라는 이 희망의 소식이 퍼지자 온 수용소 안에 있던 포로들은 너무 너무 기뻐서 수용소 마당으로 나가 춤을 추며 서로 부둥켜안고 “그들이 왔다(They have come!)”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그러나 연합군 상륙 뉴스를 아직 모르던 수용소 독일군 감시병들은 이 사람들이 집단으로 미치지 않았나 해서 총부리를 겨누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수용소 포로들에게 외부적인 조건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수용소의 벽은 여전히 높고 그 위에 철조망도 여전히 두꺼웠으며 독일군의 총부리와 기관총도 여전히 그들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갇혀서 고통받는 포로들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의 세계가 달라졌습니다. 아이젠하워가 이끄는 연합군인 아군이 그 땅에 도착했고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이미 자신들을 향해 전진해 오고 있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그들이 왔다”라는 소식에 희망이 솟고 기쁨이 넘치며 용기가 생기고 삶에 확신이 온 것입니다. 오늘날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우울해지고 죽음의 공포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런 삶의 현장에 우리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소식은 없을까요? 성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내신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미 상륙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죄악이 흉용하고 핍박과 고통이 내 곁에 있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의 상륙 사건입니다.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우리 지구촌에 상륙하신 사건이 바로 예수 탄생의 사건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구름 속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과 기쁨으로 기다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금년 흰 소의 해 신축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형체를 입으시고 우리 인류를 죄의 자리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상륙하신 일을 기억하고 모두가 행복한 신축년 새해 맞으시길 소망합니다.

2021-01-27

46대 미국 대통령 바이든의 인간 승리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미국 46대 대통령 바이든의 취임식이 우려 속에서도 무사히 끝났다.지난 미국 대선에서 80세 고령인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리라 예측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는 현직 트럼프의 공격적인 선거 캠페인에 대응해 최후의 승자가 됐다. 트럼프는 아직도 대통령 바이든을 인정치 않고 취임식에도 참석치 않은 채 백악관을 떠났다. 그는 연방하원에서 두 번이나 탄핵 당했음에도 측근 43명을 사면하고 플로리다 집으로 떠났다.지지자들에게는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미국과 세계인들의 관심은 새 대통령 바이든에게 쏠리고 있다.변호사 출신 대통령 바이든의 삶의 궤적은 부동산 재벌 트럼프와는 완전히 다르다. 바이든은 20대 후반부터 의회 정치 경력을 꾸준히 쌓아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델라웨어 대학에서 평범한 학생으로 졸업 후 시라큐스 로스쿨에서 변호사 자격을 획득했다. 학교 성적은 최하위 정도이다. 우리의 지방의원격인 카운티 의원에 이어 상원의원에 가까스로 당선됐다. 6선의 상원의원(1973∼2009년) 시 상원 외교위원장을 역임했고, 오바마 하에서 8년간 부통령직을 수행했다. 1942년생 79세인 그는 3수만에 꿈에 그리던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바이든 대통령의 화려한 정치 경력 뒤에는 굴곡된 그의 삶이 점철되어 있다. 그는 젊은 날부터 인간적인 고뇌를 많이 겪은 사람이다. 그는 청소년 시절 말을 더듬어 고생했다. 그는 1972년 아내와 딸까지 교통사고로 저 세상으로 먼저 보냈다. 그의 장남 보 바이든 마저 뇌종양으로 잃었다. 자식과 아내를 먼저 보낸 그의 가슴은 멍이 들어 있다. 1988년 그는 뇌동맥 파열로 사망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이러한 비극 앞에 보통 사람은 정치를 포기했을 것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미국 최고령 대통령 바이든의 삶은 그야말로 인간 승리이다.바이든 대통령 앞에는 새로운 미국을 건설할 책무가 놓여 있다. 분열된 미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국의 위상을 되찾는 과업이 급선무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의 정치는 친 트럼프와 반 트럼프로 미국을 완전히 분열시켜 놓았다.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은 인종차별주의를 조장했다. 바이든은 벌써 통합의 상징으로 최초의 흑인 부통령 해리스뿐 아니라 오스틴 국방장관도 흑인으로 임명했다. 그의 경호 책임자 데이비드 조는 한국계이다. 바이든은 트럼프 식 압제와 배제의 정치 대신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려고 한다.바이든 대통령은 외교에서도 국제 평화주의를 복원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란과의 핵합의 마저 파기하고, 파리 기후 변화 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도 탈퇴했다. 그는 전통적인 우방에 대한 동맹 외교도 무시하고 방위비 협상마저 흥정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김정은과의 북미 정상 회담 마저 대선용으로 던져 보기도 했다. 미국의 우방 마저 트럼프의 정책을 신뢰하지 않고 등을 돌린 상태이다. 세계 인권과 평화를 중창하던 미국의 위상은 추락된 지 오래다. 바이든은 추락된 미국 외교부터 복원해야 한다. 바이든에게 그럴 가능성이 보인다.

2021-01-27

(학)부모가 답이다!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코로나19에 무너진 세상은 1년이 넘도록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시간은 벌써 1월 달력을 넘기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한 각오로 시작한 2021년이지만, 그 시작부터가 쉽지 않다. 올 1월에 대한 기억은 최강 추위와 코로나, 그리고 저질 정치 이야기뿐이다.2021년 1월 1일, 국가 지도자들은 저마다 새해 희망 메시지를 발표했다. 내용이 복사 수준이어서 아쉬웠지만, 희망이 멸종된 사회에서 희망이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다.“‘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 했습니다. 모두의 삶이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한 사람의 손도 절대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걷겠습니다. (중략) 국민이 희망이고, 자랑입니다.” 말한 사람을 모르고 보면 정말 희망적이다. 필자는 “한 사람의 손도 절대 놓지 않고”라는 문장을 읽을 때는 가슴이 벅찼다. 필자는 이와 비슷한 말을 예전부터 봐왔다. 그것은 교육부의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표어이다. 그런데 두 문장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단정하는 이유는 지금까지도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대통령이 말한 “국민”, 또 교육부가 말한 “모든 아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코로나 시대 교육격차 완화 (….)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공정에 대한 요구에도 끊임없이 귀 기울이고 대책을 보완해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비록 희망 고문이지만,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박수는 금방 멈추었다. 대신 헛웃음만 났다.그래도 필자는 희망을 믿는다! 왜냐면 이 나라는 특정 정치 성향의 대통령을 보유한 나라가 아닌 우리의 희망인 학생의 참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부모님을 보유한 나라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지난 주말 학생들의 행복 교육을 찾아 전국에서 오신 부모님과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들의 생각은 그 자체가 교육학 개론이었다. 교육의 답을 찾지 못하는 청와대와 교육부에 답이 적힌 그 개론서를 전한다.“시험을 위한, 수능을 위한, 대학을 위한 교육이 아닌 지구인으로 생존하기 위한,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그리고 행복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학교 교육의 틀에서 조금 벗어난다고 문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수업 시간의 질문을 같이 고민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창의적인 질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교육이 삶이 질을 높이는 선물이었으면 합니다. 수치로 평가된 평균적인 삶보다 개개인의 고유성을 인정받고 (중략) 더 나아가 창조할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하는 것이면 좋겠습니다.”교육의 시작은 가정이다. 가정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평생 학교이며, 부모는 아이들에게 있어 첫 번째 선생님이자, 평생 교사다. 부모가 바로 서야 자녀도, 가정도, 교육도, 그리고 국가도 바로 선다. 이 나라는 기적의 경제 성장을 이룬 주역들을 길러낸 부모를 보유한 나라다. 그들이 바로 이 나라의 답이다.

2021-01-27

넛지

정미영수필가찬바람머리에 수변공원을 거닐었다. 지난여름 운암지를 충만하게 덮고 있던 아리연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물가는 텅 비어 쓸쓸했다.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차가운 물 아래에는 혹독한 겨울을 길게 견디며 봄물 번지기를 기다리는 연꽃 씨앗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물이 시리다고 불평하지 않는다.절정을 꿈꾸며 인내하는 씨앗들을 생각하다 보니, 요 며칠 번잡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독서를 해야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사색을 깊이 하지 않으면서도 창의적인 사유가 탄생하기를 바라는 나날이 늘었다. 연꽃 씨앗의 인내를 닮아 내 행동을 바로 잡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넛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넛지는 ‘팔꿈치로 살짝 찌르다’라는 의미를 지녔다. 타인에게 어떤 일을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연스럽게 행동을 변화하도록 하는 부드러운 설득을 말한다. 팔을 잡아끄는 것처럼 강제와 명령 없이, 팔꿈치로 툭 치는 것 같은 유연한 개입으로 자발적인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다. 나는 연꽃 씨앗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정자가 나왔다. 정자 한 쪽 귀퉁이에 빛바랜 책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구청이나 공원 관리소에서 마련했는지 살펴보아도 그런 낌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 집에서 사용하던 것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호기심이 생겨 책장 문을 열었더니 제법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가장자리에는 조그만 글씨로 ‘책을 깨끗이 본 다음, 꼭 제자리에 두고 가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마음 넉넉한 이가 선행을 베풀었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까지 훈훈한 바람이 일었다. 누구든지 공원을 찾는 사람이라면 편안하게 책을 보라는 뜻이리라. 뭇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책장 주인의 사려 깊은 행동이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남들과 공유하기 위해 멋진 생각을 한 선한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나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깊은 울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에는 나에게는 이제 필요 없지만, 타인에게는 아직 보탬이 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때로는 작은 나눔이 큰 선행이 되어 남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아름다운 가게’에 보낼 기증물품을 오랜만에 정리해야겠다. 나는 책장 주인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나도 잡지 한 권을 꺼내들고 자리를 잡았다. 리우올림픽 경기에 출전했던 네덜란드의 승마선수 코르넬리슨에 관한 기사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경기 중에 자신의 말 파지발이 아프다는 걸 눈치 채고 기권을 해서 화제가 됐다고 한다. 19년을 함께한 파지발의 건강을 위한 결정이었다. 코르넬리슨은 경기 전 아픈 파지발을 옆에서 보살피고 잠도 마굿간에서 함께 잤다.다행히 시합 날에는 파지발의 열이 많이 내려 경기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파지발이 뭔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경기를 포기했다. 그것은 바로 파지발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동료 선수,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나는 어떤가? 몇 년 전 겨울,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애지중지 키우던 정글리안 햄스터를 죽게 만들었다. 요즘처럼 매섭게 춥던 날이었다. 음식 냄새를 없애려고 창문을 열어놓은 채 깜빡 잊고 외출했다. 볼일을 보던 중에 펑펑 우는 딸아이의 전화를 받았다.“엄마, 해미가 움직이지 않아. 어떡해.”학교 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햄스터를 들여다본 모양이었다. 집이 추워서 동면에 든 것 같았다. 야생 동물이 겨울잠을 자는 것과는 달리 애완용 햄스터는 동면에 들면 죽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햄스터에게 미안했다. 코르넬리슨처럼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살려면, 동물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잡지 글 한 대목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오늘은 산책을 하는 동안 부드럽게 넛지를 거듭 당했다. 내 마음에 벌써 봄꽃이 피었는가. 은은한 향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2021-01-27

앵무를 찾아서 - 의기(義妓)의 표본 염농산

염농산(廉嚨山·1859~1946) 여사는 구한말 대구·경북에서 활동한 애국 사회운동가이다. 경상감영의 행수기생 출신인 농산은 ‘앵무’라는 기명으로 활동했다. 한학과 시뿐만 아니라 가무에도 능했다. 이태백의 시에 등장하는 앵무와 농산을 이름으로 삼은 것만 봐도 단순한 기생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임을 알 수 있다.앵무 여사가 주목 받게 된 것은 국채보상운동 덕분이다. 1917년 2월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먼저 의연 활동을 한 여성이 앵무였다. 기생은 돈을 좇을 게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먼저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평소 신념을 몸소 실천했다.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앵무는 100환을 먼저 기부했다. “여력에 따라 의연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다. 여자로서 감히 남자보다 한 푼이라도 더 낼 수는 없으니 누구든지 1천원을 출연하면 죽기를 무릅쓰고 따라한다.” 앵무 여사의 담대한 기개는 국채보상운동의 주창자인 서상돈·김광제 등의 각성으로 이어졌고, 전국민을 분발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거지에서 고종황제에 이르기까지 국채보상운동이 범국민적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앵무 여사 같은 솔선수범하는 여성들의 기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생들의 연합인 달성 권번의 대표자로서 기생들을 규합하여 공연회를 개최해 구제활동에 쓰거나 민족운동 후원에도 적극 참여했다.염농산 여사의 흔적이 직접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여사를 기리는 빗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성주 나들이를 했다. 성주군 용암면 용정리, 빛바랜 비석은 허술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비석과 바로 이웃한 홍영기(81세) 옹을 만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홍수 피해에 시달린 마을 전답을 앵무 여사가 사재를 털어 방천을 축조한 뒤 학춤을 췄다고 한다. 그 공덕을 기리고자 마을에서 비를 세웠다고 한다. 비석은 ‘앵무빗돌’, 방천은 ‘앵무방천’, 논밭은 ‘앵무들’로 불렸지만 이제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단다.대구의 기생이었던 앵무 여사가 하필이면 성주까지 가서 그 큰 토목공사 비용까지 댔을까. 이문기 교수의 ‘대구 의기 염농산의 생애와 성주군 용암면 두리방턴 축조의 의미’라는 소논문에 의하면 방천 앞의 일부 토지가 그녀 소유였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단다. 홍수로 유실된 자신과 마을 사람들의 농토를 복구하면서 방천둑을 축조하게 되었다. 먹고 살 만했던 앵무 여사보다, 살기 급했던 마을 사람들이 혜택을 받은 것은 자명했다. 방천 축조에서 염농산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또 있다. 제방 축조 후, 국유지로 개척된 농토는 염농산이 아니라 개인들에게 불하되었다. 시행 주체에게 주어지는 토지 불하권을 마다한 것이다. 여성으로서 당당한 인격권을 외쳤지만 그 권리를 개인의 사욕에 두지 않고, 공적인 활동을 전개한 것은 그가 국채보상에서 보여준 모범과 상통하는 것이었다.그의 선행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1937년에는 교남학교의 부흥을 위해 부동산을 희사하여 민족운동의 당당한 후원자가 되었다. 관기에서 은퇴해 음식점을 경영한 돈으로 후원을 했다. 그의 가게는 노년까지 계속되었다니 의로운 일에 쓰이기 위한 노동을 끊임없이 한 셈이다. 넉넉한 자산은 물질적 선행을 꾸준히 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살림이 좋다고 누구나 선행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근대여성으로서 삶의 주체적 자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합리적 사고로 나라와 사회를 구제하려 했고, 적극적 행동으로 자립적이고도 평등한 여성을 꿈꿨다.앵무빗돌의 머릿돌은 깨어지고 비석 뒷면은 갈라지고 있었다. 빗돌집을 오르는 계단은 방치되어 잡풀이 돋았고, 뒤쪽 공터엔 쇠락한 집터만이 남아 있어 을씨년스런 장면을 연출했다. 당국에서 앵무의 존재를 알고나 있는지 홍 할아버지께 여쭤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 가끔 취재를 오는 정도라고 했다. 자신도 어른들에게 귀동냥한 것을 전할 뿐, 학술적으로 많은 연구가 뒷받침되기를 바란다고 했다.김살로메 소설가앵무 여사가 축조했다는 두리방천은 앵무빗돌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현대식으로 정비되어 그때의 축조 풍경이 남아있지는 않았다. 방죽을 받치고 있는 돌들 중 빛바랜 것들이 드문드문 보였는데, 그것이 앵무 여사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애국운동가나 사회사업가 교육사업가로서의 근대적 여성활동가는 드물지 않다. 앵무 여사가 그들과 다른 점은 그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뒤에 머물지 않고 나서야 할 때는 의연하게 나섰다. 독립된 인격체로서 평등사상과 민권의식을 고취하면서도 공익을 추구했던 사람이 앵무였다. 그것을 알기라도 한다는듯 앵무 방천을 휘도는 바람마저 당당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2021-01-27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1억이 넘었다고 한다. 지구상에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은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게 아닌가. 사계절을 건너오며 오르내렸던 감염의 기세가 이제는 꺾이는가 싶었다. 조금씩 내려가던 숫자에 또 다시 충격을 주는 듯 집단감염이 드러나고 있다. 하필이면 교회를 비롯한 종교집단발 무더기 감염이 연일 방역을 힘들게 한다. 코로나19가 사상초유라지만, 14세기 흑사병의 그늘에도 교회가 있었다. 역병의 원인을 인간의 죄로 규정하였던 교회들 탓에 오히려 확산세가 불어났다고 한다. 21세기 첨단의료와 방역의 현장에서 팬데믹 현상에 종교적 원인을 끌어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 겪는 바이러스의 창궐이 하필 교회 언저리에 들끓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신천지, 인터콥, IEM, TCS. 코로나19의 확산세에 기름을 끼얹은 이들이 하나같이 기독교 관련 단체들이다. 일부 교단들도 방역수칙을 권하는 정부의 노력을 ‘교회탄압’으로 규정하며 거부하는 태도마저 드러내고 있다. 신앙인들에게 믿음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신앙을 바르게 지키며 믿음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은 값진 일이다. 모두가 인정하며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성상 집단으로 모이는 일이 방역에 치명적임을 이제는 삼척동자도 안다. 평소에 이웃사랑을 강조하며 배려와 섬김을 기준으로 삼던 교회는 어디로 갔는가. 의료과학의 눈으로 밝혀지고 방역의 수단으로 설정된 ‘거리두기’를 억압의 방책으로 오해하다니! 신앙을 교육과 버무려 어린 청소년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면, 이는 이웃을 섬기는 일인가 해치는 일인가. 사회 일반은 방역에 집중하는데 교회는 어디를 바라보는가.‘교회도 바뀌어야 한다’ 프란시스코 교황이 방역기조를 거부하는 교회들을 향하여 일침을 놓았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 모두가 동참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영국성공회교단과 미국장로교단도 매우 세부적인 권고사항까지 적시하면서 팬데믹을 극복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고 정리하였다. 미국 기독인의료협회들도 교회들을 향하여 ‘이웃을 위하여 집에 머물러 줄 것’을 강권하는 호소문을 내었다. 다른 목소리들이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사회적인 동의가 눈에 뜨인다. 이웃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취할 태도는 분명한 게 아닌가. 생명처럼 귀한 예배는 존재와 살아가는 모습으로 올려야 하는 게 아닐까. 모여는 있어도 이웃을 해할지도 모르는 ‘회칠한 무덤’같은 섬김을 누가 기뻐할 것인가.‘네 이웃을 사랑하라.’ 믿음이 높은 곳을 향할수록 주변을 돌아보아야 한다. 혼자만 구원에 이르기보다 남들과 함께 이웃을 만들어야 한다. 죽어서 올라가는 게 천국이 아니라 여기서 당겨오는 게 하늘나라가 아닌가. 팬데믹이 얼른 지나가고 함께 교회에 모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 날이 얼른 오도록 오늘은 이웃과 함께해야 한다. 탄압이 아닌 방역이 역병을 극복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모이지 않고도 믿음의 공동체가 든든해지는 기억을 만들어야 한다.

2021-01-27

주식리딩방

주식리딩방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자칭 투자전문가가 투자자문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이들은 금융감독원의 규제를 받지않으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방송 등을 통해 대가를 받고 단순 투자조언을 하는 유사투자자문업으로 분류된다.주식리딩방으로 인한 금전적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우선 카톡방 회원들의 투자성공담이라며 수익이 난 계좌정보 등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엄청난 투자수익에 귀가 솔깃해진 투자자가 가입 또는 투자 문의를 하면 고액의 회원가입비를 요구하거나 위탁투자를 해주겠다고 나선다. 회원 가입비를 요구하는 주식리딩방의 경우 수백만원에서 1천만원에 이르는 가입비를 요구한다. 가입하고 난 뒤 주식리딩방이 지시한 대로 주식거래를 해도 좀처럼 수익을 내지 못한다. 그제서야 납부한 회비를 돌려달라고 해도 상대방은 환불을 거부한다. 위탁투자를 위해 돈을 보낸 경우는 더 심각하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만든 홈트레이딩 시스템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돈을 입금하게 하고 수익이 발생한 것처럼 속인다. 가령 개인투자자가 리딩방이 알려준 주식 사이트로 2천만원을 입금하면 얼마 후 1억원이 넘는 수익을 냈다는 연락이 온다. 하지만 개인투자자가 투자한 돈과 수익금을 돌려받겠다고 하는 순간 본색을 드러낸다. 돈을 환급받으려면 수수로 등으로 인해 오히려 8천만원을 더 내야 환급이 가능하단다. 만약 요구한 돈을 만들어 보낸다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돈을 환급해주기는 커녕 또 다시 “돈을 더 넣어야 돈을 돌려줄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때서야 사기임을 알아차리지만 때는 늦었다.주식에 왕도는 없다. 특히 주식시장에서 과욕은 패망의 지름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27

수도권 인구 집중, 더 고질화 되고 있다

지방의 젊은 인력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방도시마다 젊은층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좋은 일자리가 없는 지방 도시에 젊은이가 머물리가 만무하다.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고 15년간 500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으나 수도권은 되레 인구가 늘어났다. 2019년 말로 수도권의 인구는 사상 처음으로 국내 전체 인구의 절반 수준을 넘어섰다.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역전한 것이다.50년전인 1970년도 수도권 인구는 913만명으로 비수도권 인구 2천312만명을 포함한 국내 인구의 40%선에 불과했다. 국토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이제 국내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다.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국내 인구이동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도 수도권으로 유입된 인구는 모두 8만8천명으로 집계됐다. 2006년(11만1천700명)이후 14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구와 경북 등 전국 지방도시에서 지속적으로 인구가 빠져나가 서울 등 수도권의 인구를 늘리는데 한 몫했다. 지난해는 집값 폭등으로 서울에서 빠져나온 인구가 경기도로 주소를 옮기면서 경기도에는 순유입 인구가 무려 16만8천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지방에서 인구 유출이 가장 많은 도시는 대구와 경북, 경남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대구와 경북에서 각각 1만7천명의 인구가 순유출됐다. 부산, 경남, 울산에서도 작년 한해동안 3만4천명의 인구가 유출됐다. 유출된 인구의 거의 절반은 젊은층이다. 대구에서는 9천410명, 경북에서는 6천209명 등 모두 1만5천여명의 20대, 30대 인구가 수도권으로 순유출됐다.정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으로 한동안 주춤하던 수도권 인구 증가세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된다. 지방도시의 인구 유출은 도시의 노령화와 생산인구 감소로 이어지면서 도시의 존립 자체를 흔들만큼 심각하다.포항시가 인구 50만명 선을 지키기에 안간힘을 쏟는 것처럼 지방도시들마다 같은 고민에 직면한 지 오래다. 인구 유입에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지만 유입이 현실화된 지방도시는 거의 없다. 정부의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없이는 고질화된 지방도시의 인구유출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2021-01-27

경찰의 잇단 부실수사 말썽… ‘국민불신’ 씻어내야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취중 택시기사 폭행 사건 축소·은폐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경찰 수사관이 핵심 물증인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덮었다는 의혹과 관련한 새로운 진술들이 쏟아지면서 경찰의 거짓말이 치명적인 동티를 내는 양상이다. 경찰의 “객관적 증거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택시기사의 증언에 의존해 내사 종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애초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속속 드러나 ‘국민불신’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이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27일 사건을 처음 담당했던 서울 서초경찰서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경찰이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덮었다는 다른 진술이 거듭해서 나오면서 검찰은 사건 무마의 배경이 무엇인지,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경찰은 당초에 택시기사가 “목적지에 도착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진술했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단순 폭행 사건으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 택시기사가 휴대폰에 저장된 복원 영상을 수사관에게 보여줬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블랙박스 영상을 복구해 보여준 업주 역시 “경찰의 전화문의에 택시기사의 휴대전화를 확인해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영상을 확인한 경찰이 오히려 “영상 못 본 것으로 할게요”라며 묵살했다는 피해 택시기사의 진술은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온 국민을 분노케 한 ‘정인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부실수사가 논란이 됐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도 167일간 전담팀을 투입하고도 뭐 하나 제대로 건진 게 없다.올해부터 ‘수사종결권’까지 확보한 공룡 경찰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경찰 스스로 논란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는 수준의 엄정조치를 내려야 한다. 재발방지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경찰은 13만의 거대 조직이어서 크고 작은 실수는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경찰 출신 황운하 민주당 의원의 두둔에 한숨이 절로 난다. 경찰의 부실한 ‘사법’ 처리가 계속될 수 있으니 국민더러 그저 양해하라는 말이 과연 이치에 맞는가. 갑갑한 노릇이다.

2021-01-27

나의 작은 동무

김규종 경북대 교수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이나 프랑스 혹은 중국 영화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영화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1월 14일 개봉된 에스토니아 영화 ‘나의 작은 동무(The Little Comrade)’는 신선하고 유쾌하게 다가왔다. 에스토니아란 나라가 어디 있는 거야, 하고 묻는 교수도 있었으니 말이다.우리는 가끔 ‘발트 삼국’이라는 어휘와 대면한다. 북구와 러시아에 면한 발트해에 자리하고 있는 세 나라를 가리킨다. 위도상 위쪽부터 거명하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순서다. 18세기에 러시아 영토로 편입된 세 나라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18년 1차대전 종결로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1940년 스탈린의 강제 통합으로 국권을 상실한다. 세 나라는 1990년 다시 주권을 회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영화 ‘나의 작은 동무’는 1950년 스탈린 통치 아래 있던 에스토니아 시골 소녀의 이야기다. 2차대전의 영웅으로 떠오른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전제정치로 자유를 향한 에스토니아 국민의 열망이 짓밟히던 시절. 여섯 살 소녀 렐로는 9월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교사인 엄마가 소련에 저항하고, 에스토니아 독립을 지지한다는 죄목으로 체포된다.에스토니아 국기가 발견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다른 혐의가 없음에도 엄마 헬무스는 시베리아로 유배당한다. 아빠인 펠릭스는 여러 방면으로 구명 노력을 하지만, 렐로에게 약속한 9월 입학 전까지 헬무스를 빼내지 못한다. 그들 부녀가 만 5년 동안 겪어나가는 눈물겨운 애환이 영화의 얼개다. 약소국 에스토니아가 강대국 소련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대목과 소련 앞잡이로 등장하는 펠릭스의 친구가 얄밉기 그지없다.영화를 보면서 식민지 조선을 살아갔던 민중과 그들을 가혹하게 탄압한 일제 앞잡이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특히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 하는 말로 유명한 의열단장 김원봉이 친일 악질분자이자 이승만의 충실한 하수인 노덕술에게 모욕당한 일이 절로 떠올랐다. 일제가 거금의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려던 김원봉이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 앞잡이에게 당해야 했던 치욕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렐로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다음에도, 학년이 올라가도 엄마는 돌아올 기미가 없다. 그러다가 1953년 3월 5일 공포의 독재자 스탈린이 사망한다. 하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거기서 다시 2년 넘는 세월이 흐른 1955년 5월 헬무스는 열차 편으로 에스토니아 수도인 탈린에 도착한다. 엄마를 찾으려던 렐로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던 엄마 아빠를 본다. 조금은 어색하게 엄마를 바라보는 렐로에게 눈물 젖은 얼굴로 엄마가 손을 내민다.어린아이에게 만 5년 넘도록 엄마를 빼앗아간 전체주의 통제국가 소련의 운명은 우리가 보고 들은 대로다. 그들도 1991년 12월 31일 종언을 고했다. 철권통치의 끝은 언제나 고약하다. 역사가 그것을 입증한다.‘나의 작은 동무’는 우리가 잊었던 시절을 일깨우는 소중한 영화다.

2021-01-26

홀로서기에 대하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코로나19의 영향일까? 최근 들어 홀로 또는 따로 하는 문화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바이러스의 전염을 우려한 한 줄 칸막이 식사를 한다거나 한 칸 띄어 앉기 등으로 거리두기를 하다 보니 저절로 혼자 하는 행위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먹거나 어울리고 활동하는 자체에 많은 제약과 기준의 적용으로 다소의 불편과 움츠림 속에서도 자구책(?)으로 나타난 것이 홀로 하는 문화라 할 수 있다.그러나 혼자 하는 식사나 행동, 작업 등은 이미 한참 전부터 우리의 생활 저변에 나타나거나 스며든 삶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근래부터 1인 가구 혼족들이 많아지면서 혼자 움직이고 생활하는 문화가 늘어나다 보니 혼밥혼술이니 혼행, 혼잠 등의 유행어가 생겨나면서 ‘혼OO’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새로운 추세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렇듯 시대가 변하면서 ‘홀로 생활’은 누구에게나 통용되고 낯설지 않은 현재의 생활방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실제 우리나라에선 지난 201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나홀로 문화’가 당시 3~4개에서 2018년 39개, 2020년 말엔 65개에 이르기까지 급격하게 증가하여 홀로 하는 세태가 더해지는 듯하다. 최근에 두드러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세된 영향도 있겠지만, 혼자 먹고 입고 놀고 자는 것들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편안한 일상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일생을 크게 보면 더불어 함께하는 삶이지만, 작게 보면 소소한 개인의 생활이기 때문이다.이른 바 ‘나홀로 문화’란 자발적 고립을 택해 식사, 여가생활 등을 홀로 즐기는 문화를 말한다. 즉,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혼자만의 일상생활에서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나홀로 밥을 먹거나 여행, 캠핑을 즐기고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타인과의 관계 보다는, 혼자의 생활을 즐기면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예컨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소화하면서 감정의 소모를 줄이고 그 가운데서 자신만의 은밀한 만족을 맛보는 것이다.세상의 무엇이든 바뀌고 변화되기 마련이다. 계속되는 변화 속에 우리는 다만 적응의 문제를 간단없이 풀어나가야 한다. 미래의 상황은 환경변화라는 상수 속에 인간 욕망의 변수가 끊임없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희대의 감염증 확산에 따른 주거문화나 식사, 회식, 만남 등의 정서가 분화되고 이질적인 양상을 띄고 있지만, 우리의 고유한 습성은 하루 아침에 바뀔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점진적이고 유화적인 측면으로의 꾸준한 변모와 진전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사람은 어차피 홀로서기다. 홀로 태어나서 가족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 지내다가 결국 홀로 가게 된다. 외롭고 쓸쓸할지 모르지만, 사람은 혼자 있을 때 가장 편하다고 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가치는 뼈저릴만큼 혹독한 홀로서기에 달려있다. 그 모질고 처절한 혼자만의 고뇌와 시련 속에서 예술작품은 탄생하고 빛 부신 새날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2021-01-26

재갈 물리기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유안진 시인의 ‘침묵하는 연습’이라는 시의 첫 두 구절이다. 말의 양과 공허의 깊이가 비례하는가 보다. 그런데, 말을 많이 해야 뭔가 뿌듯하고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정치판이 대표적 다변의 마당이리라. 서울 시장, 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딱히 정치판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눌변의 시대가 아닌 다변의 시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아무말’에 다변이기까지 한 정치인 한 사람이 해가 바뀌면서 퇴장하였다. 집권 기간 내내 자기 나라뿐 아니라 세계를 온통 말과 글로 들쑤셔 놓았던 미국의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그는 재선에 실패하고 백악관을 떠나면서도 “안녕, 우리는 여러분을 사랑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돌아온다.”라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대통령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한 말을 하고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자신의 개인 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 주 팜비치로 돌아갔다.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연설에서까지 ‘아무말’을 멈추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철저하게 대통령으로서의 특권을 찾아 누렸다.우리 속담에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다’라는 말이 있는데, 트럼프는 뒷걸음질도 옆걸음질도 아닌 마구잡이 행보로 쥐를 잡기는커녕 미국의 정치마당을 끝까지 들쑤셔 놓았다. 결과는 재갈 물리기로 돌아왔다. 트위터는 퇴임을 2주도 남기지 않은 1월 8일에 8천900만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는 현직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다, 같은 날 구글과 애플은 보수 성향의 미국인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SNS ‘팔러’(Parler) 앱을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에서 각각 퇴출시켰다. 트럼프가 트위터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앱까지도 막아버린 셈이다. 다른 그 누구도 배려하거나 신경쓰지 않는 거침 없는 언사, 함부로 된 말들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자승자박이라고나 할까.공자는 논어 이인(里仁) 편에서 ‘군자욕눌어언이민어행(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이라 하였다. ‘더듬거리는 말’이란 뜻의 ‘눌언’을 여기서는 더디고 신중하게 하는 말 정도로 풀어 ‘말은 신중하게,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라고 해석하면 되겠다. 군자로서의 사람됨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좀더 말과 글에 신중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좀 심한 언사를 일삼던 남의 나라 사람 이야기이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리라.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개인의 사회적 소통 계정을 영구히 막아버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침묵하지 않고, 경청하지 않음으로 자초한 것이기는 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지고지선의 가치로 여긴다는 미국 기업의 재갈 물리기 앞에서 생각이 잠시 멈추어 버렸다. 그 틈을 정현종 시인의 시 ‘경청’의 한 구절이 들어와 앉는다.“불행의 대부분은 /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 비극의 대부분은 /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2021-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