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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책갈피

읽은 책을 꺼내 넘기니 책이 저 혼자 알아서 한 쪽을 펼쳐 준다. 구멍 뚫린 영화 티켓이 사이에 껴 있다. 그 영화를 보았을 즈음에 읽은 책이라고 내게 귀띔하고 있다. 또 다른 책을 펼치면 언젠가 친구랑 먹었던 점심값 영수증이 들어있다. 누군가에게서 받은 명함이, 마음을 사로잡았던 신문의 칼럼이, 새로운 종이돈에 밀려 사라진 천 원짜리가, 도서관 옆자리에서 친구가 건네던 쪽지가 책 속에서 튀어나와 지나간 그날의 추억을 들려준다. 책갈피는 문득문득 지나간 일을 들려주는 일기장이다.오랜만에 간송 전형필 일대기를 꺼내니 하얀 입장권이 그 속에 잠자고 있다. 터키 여행 중에 데린구유 지하도시 입장권을 보고 순간 머리가 띵했다. 여느 입장권에 있는 사진 하나 없이 하얀 바탕에 지명 하나만 달랑 적어 놓은 터키 정부의 자신감을 보고 한동안 감탄했었다. 데린구유의 멋진 모습을 떠벌리지 않아도 된다는 자부심이 그 하얀 백지 입장권이 말해주고 있었다. 대부분의 티켓은 가방 속 어딘가에 구겨 넣었지만 그 표만은 버리지 않고 여행길에 읽던 책 사이에 끼워 내가 읽은 만큼을 표시했었다.나는 책갈피를 사거나 선물 받고도 사용하지 않는다. 성격이 꼼꼼하지 못해 어디에 놔두었는지 정작 필요할 때는 내 손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에 잡히는 영수증이나 메모지가 책갈피를 대신한다. 책을 다 읽고는 받을 때 아무 생각 없었던 것처럼 무심히 넣어둔 채 덮어 버린다. 오랜만에 책갈피를 보니 그 날, 그 여행길, 그 영화, 그 기찻길이 펼쳐진다. 지난 일기장을 넘겨보는 것 같다.지난 가을, 친구들과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가방에서 어젯밤 읽은 수필집을 꺼냈다. 동행한 친구들에게 밑줄 친 문장을 읽어주며 내가 느낀 기쁨을 전하려고 했다. 책장을 넘기자 책갈피가 끼인 곳이 펼쳐졌다. 순간,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의 손이 책갈피로 향했다. “이거 내꺼지 싶은데?” 하며 손때 묻은 꽃무늬 책갈피를 앞뒤로 넘기며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책갈피를 얼른 빼앗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머지 친구는 박장대소를 했다.김순희수필가도서관에서 한옥에 관한 책을 빌렸었다. 책을 펼치자 그 사이에서 문제의 책갈피가 들어 있었다. 예쁜 꽃그림이 있고, 뒷면에 숫자가 있는 걸 보니 누군가 달력의 그림을 오려서 만든 수제 책갈피였다. 귀퉁이가 낡은 것을 보니 오래 간직한 듯 했다. 이런 센스 있는 사람이 누굴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마음에 쏙 드는 것이라 책만 반납하고 책갈피는 내가 가졌다. 그런데 여기서 그 주인을 만나다니, 친구는 꽃그림이 있는 달력을 보면 자주 오려서 책갈피를 만들어 둔다고 했다. 그 후 나는 전시장에 갈 때면 팸플릿을 꼭 챙긴다. 화사한 그림이 나오도록 오려서 독서회 회원들에겐 책갈피로, 지인들에게는 선물상자 속에 메모장으로 썼다.연말에 달력을 주는 이가 있으면 명화나 꽃 사진이 들어가 있는 것이면 넉넉히 챙긴다. 2020년 달력 중에는 친정집 달력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물방울을 그리는 화가 김창렬 화백의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딸이 좋다고 너스레를 떠니 금방 벗겨서 가져가라고 하셨다. 달력에 숫자를 보는 게 목적이 아니니 1년 동안 걸어두고 보다가 해가 지나면 달라고 했더니, 잊지 않으시고 챙겨 보내셨다. 몇 장은 작은 액자에 넣어 친구에게, 몇 장은 책갈피를 만들어 새해 만나는 이들에게 나눠주려고 한다. 며칠 전 김창렬 화가가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책갈피를 만든다. 가위를 들고 하나씩 오릴 때마다 받을 사람 이름을 떠올리며 혼자 행복해 한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내가 더 기쁜 작업이다.수필집에 있던 낡은 꽃그림 그것은 내가 지켜냈다. 지금도 그 책갈피는 내 일기장 한 쪽을 장식하고 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내가 만든 꽃갈피 하나씩 챙겨 넣으려 한다. 누군가에게로 가서 그 사람을 미소 짓게 할 수만 있다면 그때 내가 훔친 책갈피 값을 치르는 일일 터이니.

2021-01-17

철강 산업도시 포항, 친환경 녹색생태도시로 탈바꿈

이강덕 포항시장포항시는 최근 행복한 삶을 위해 건강을 챙기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누리려는 웰빙(well-being)과 힐링의 바람 속에서, ‘그린웨이(Green Way) 프로젝트’를 통해 도심 곳곳을 초록의 숲이 어우러지는 친환경 녹색도시로 변모시키고 있다. 그동안 철강 산업도시로만 알려졌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정성껏 심은 나무 하나하나가 모여 숲이 되고, 그 숲에서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생기고 산새들과 야생동물의 보금자리가 되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포항시는 올해 철길숲을 효자에서 유강에 이르는 2.7㎞ 구간을 연장해 형산강의 상생인도교와 연결한다. 이어 시민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포스코대로를 비롯한 이동 도로를 녹색 숲길로 확장해 사람 중심의 그린웨이 생명력을 이어갈 계획이다.또한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을 위해서는 꼭 넘어야 할 산으로 ‘환경’ 관련문제 극복하는 일이다. 지속가능한 생태도시 조성을 최종 목표로 다각적인 노력을 펼쳐왔고, 지난해부터 하나둘씩 가시적인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눈에 띄는 부분은 대기환경 개선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의 성과다. 지난 2019년 22마이크로그램(㎍)/㎥이었던 미세먼지가 지난해 16마이크로그램(㎍)/㎥으로 감소했다. 사업장의 대기오염물질 총량관리제를 확대 시행을 비롯해 실시간 악취 모니터링을 통한 상시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악취 유발 사업장의 시설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또한 배출가스 5등급 차량에 대한 운행제한, 노후경유차 배출가스 저감사업과 전기자동차 보급을 지속 추진하는 한편 철강산업단지 주변에 스마트 녹색생태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입주기업에 대한 악취방지시설을 지원하고, 포스코의 사일로(Silo)와 탈질설비(SCR) 준공을 통해 오염 배출물질을 80% 이상 줄여 나간다. 이 밖에도 구무천을 비롯한 생태하천 복원사업과 철강산업단지 완충저류시설 설치, 형산강 생태복원사업 등 수생태계의 건강성 회복과 안전한 친수 공간 확보에도 꾸준히 노력을 기울이겠다.맑고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 지방상수도 현대화, 스마트 관망관리 시스템 구축 등 ICT 기반의 상·하수도 관리로 24시간 안심할 수 있는 스마트 물관리 인프라를 조성하고, 지속적인 수돗물 모니터링과 검사결과를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방침이다. 또한 산업폐기물 매립장 증설문제와 장기 수성사격장 문제 등 최근 이슈화가 되고 있는 현안에 대해서는 지역주민들은 물론 시민들과의 충분한 공감대 형성을 통해서 문제해결 노력을 기울이겠다.특히 복개로 인해 심각한 오염단계에 있는 양학천, 칠성천, 학산천, 두호천 등 4개 하천을 각각의 테마를 가진 하천으로 체계적으로 복원해, 자연이 살아 숨 쉬고 시민들에게 쾌적한 환경과 휴식공간을 제공할 복안이다. 생태하천 복원사업은 수생태계의 회복과 자연친화형 도시 공간 창출을 통해 시민 삶의 질을 드높이고, 쇠퇴한 구도심의 도시재생을 활성화해 나가겠다는 공약사업 가운데 하나이다. 시범사업인 학산천의 추진과 모니터링을 통해 양학천과 칠성천, 두호천 등 나머지 하천에 대한 복원사업도 순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관련해서 생태하천 복원사업이 △치수적으로 안정성이 있는 하천 복원 △깨끗하고 풍부한 물이 흐르는 하천 복원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생명력 있는 풍부한 하천 복원 △시민들의 소통과 화합, 가족과 함께 추억할 수 있는 하천 복원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하천 복원 등 구체적이고 장기적으로 실천 가능한 5대 정비목표를 설정하고 시민들의 공감을 바탕으로 사업추진에 속도를 내겠다.이밖에도 지난해 전국 최초로 착공한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주거와 복지, 통합과 소통, 도시 공동화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공동체 가치를 만들어 나간다는 청사진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에 있는 중앙동 일원은 내년까지 청소년 문화의 집과 청년창업 플랫폼을 구축해 스마트 콤팩트 도시의 모델로 조성하고, 송도동 일원의 경우는 2024년까지 첨단해양산업 R&D센터를 건립해 경제자립과 도시의 활력을 증진하는 등 ICT기반의 해양산업 플랫폼을 조성하겠다.

2021-01-17

유튜브 ‘쓸데없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점입가경이다. 공중파, 채널티비만 해도 그렇지 않은데, 유튜브를 보면 하루하루가 긴박하기만 하다. 오늘은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DC 일원에 비상사태를 선언했다고 하는데, 이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해석이 분분하기만 하다.벌써 며칠째 유튜브를 통해서 미국 대선 현황을 지켜보고 있는지 모르는데, 그래도 유튜브가 아니고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주는 데가 없어서일 것이다. 이 중에는 오보도 많고 가짜도 많지만 있었던 일을 해석하고 며칠 뒤 일을 예측하기도 하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보고 듣게 되는 것이다.그런데도, 내가 유튜브 쓸 데 없다고 과장 섞인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요즘 들어 유튜브가 전례없이 뜨겁다 못해 거칠고 험악해졌기 때문이다.특히 미국 대선 문제, 국내 정치 문제를 둘러싼 유튜브는 하루에도 몇 번씩 프로를 올리는데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쓰는 말이며 표정이며 몸짓이 무서울 정도로 변했다.정작 더 큰 문제는 마냥 자유로울 것처럼만 여겼던 유튜브가 사실은 이면적인 정치공학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튜브만의 문제가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 CNN 같은 거대 여론 주도 매체들의 공통된 문제다.며칠 전 놀랍게도 트위터에서는 ‘트통’의 계정을 영구삭제하고 그 편 드는 사람들 계정도 많이도 없앴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팔러’라는 새로운 인터넷 매체로 옮아갔고 그를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쪽으로 옮겨가 버렸다고도 한다.이것은 독일 수상도 우려를 표명했다던데, 사실상 검열이고 언론 자유의 억압인 것이다.세상을 살아갈수록, 뭔가 세상의 안쪽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게 되면 될수록 사람살이는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편에 서는 것도 어렵고, 어느 쪽에도 편들지 않고 사는 것도 어렵다. 중심을 잡고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디지털 세상이 더 민주적이고 더 자유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던 낙관은 이제 디지털 전체주의, 디지털 통제 사회에의 공포로 변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어떻게 하면 이 ‘쓸데없다’는 과장법에서 벗어날 수 있으련지?그래도 내일 나는 또 유튜브를 보게 될 것 같다. 미국 대선도 어느 쪽이 최후 승자가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나마 시시각각 뭔가라도 던져주는 곳은 유튜브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즘 속된 말로 영혼이 털려버리는 느낌이라고나 해야겠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1-01-14

세한도(歲寒圖)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미술품 소장가인 손창근 씨가 대를 이어 간직해온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국보 180호인 세한도는 1844년 58세의 추사가 유배지 제주도에서 그린 문인화이다. 귀양살이하는 자신을 잊지 않고 사신의 통역관으로 중국에 갈 때마다 최신의 서적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에게 답례로 그려 보낸 것이다. 세한도는 이상적 사후에 민 씨 일가로 넘어갔다가 일본인 후지스카의 손에 들어간 것을 서예가 손재형이 간곡하게 부탁하여 양도받았다고 한다. 그 후 사채업자 이근태를 거쳐 개성 갑부였던 손세기가 수집한 것을 아들 손창근 씨가 소장해오다 기증을 한 것이다.세한도란 제목은 논어 자한편의 ‘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에서 따온 것인데,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라야 비로소 그 지조의 일관성이나 인격의 고귀함 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뜻이다. 추사는 세한도의 발문에서 이상적에게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내가 곤경을 겪기 전에 더 잘 대해 주지도 않았고 곤경에 처한 후에 더 소홀히 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의 곤경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겠지만, 나의 곤경 이후의 그대는 역시 성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그림을 받은 이상적이 청나라에 가져가서 장악진(章岳鎭), 조진조(趙振祚) 등 문인 16명의 찬시(讚詩)를 받은 데다, 뒷날 김준학의 찬(贊)과 오세창, 이시영의 배관기(拜觀記) 등이 함께 붙어서 세한도는 10m가 넘는 긴 두루마리가 되었다. 지금까지 전해진 내력이 파란만장한 만큼 문화재적 가치는 더 높아져 값으로 매길 수가 없지만 굳이 따진다면 1천억 원도 넘을 거라 한다. 나는 물론 세한도의 진본을 본 적이 없다. 본다고 한들 일천한 감식안으로 그 예술적 가치나 담겨 있는 고매한 정신과 품격을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그래서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는 것이지 특별하고 절실한 감동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추사의 그림보다 내가 더 감동하는 세한도는 겨울 들판이다. 겨울 들판에는 송백(松柏) 대신 억새와 갈대, 쑥대 같은 마른 풀들이 한 올 미련도 회한도 없이 허허로운 모습으로 삭풍에 전신을 내맡기고 있다. 자세히 보면 그 밑에는 혹한에도 얼어 죽지 않고 월동하는 풀들도 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사는 데까지는 살아 있으려는 생명이 참 엄연하다. 더 경이로운 건 이 황량한 들판에서 겨울을 나려 온 철새들이다. 가끔씩 고니와 기러기도 보이지만 대부분이 청둥오리들인데, 수백 마리가 군무를 펼치며 날아와 들판에 내려앉는 걸 보며 오씩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콤바인으로 추수해 낟알초차 없는 이 얼어붙은 들판에서 도대체 무얼 먹고 영하의 엄동을 견디는지, 방한복을 껴입고 들길을 걸으면서 나는 내내 마음이 시리다. 고상한 품격이나 높은 뜻이 아니라, 그냥 생명의 엄연함이 시리게 와 닿는 것이다. 걸핏하면 죽네 사네 소란을 떠는 인간들은 그에 비하면 얼마나 나약하고 엄살이 심한가. 나는 오늘도 살아있는 세한도를 한 바퀴 돌아왔다.

2021-01-14

코로나 백신과 확률 게임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코로나 백신!미국을 시발점으로 전 세계에서 코로나 백신접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뉴스가 들린다. 백신접종을 시작한 미국에서 50대 남성 의사가 화이자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을 맞고 16일 만에 사망해 당국이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한국도 곧 백신접종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공포가 아닐 수 없다.뉴욕타임스는 플로리다주의 산부인과 의사 그레고리 마이클 교수가 지난해 12월 화이자 백신을 맞고 2주 만인 지난 1월 3일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그의 부인은 “남편은 기저 질환이 없었고 건강하고 활동적인 사람이었다”며 “이전에는 다른 약물이나 백신에 반응을 보인 적 없으며,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마스크를 쓰며 가족과 환자들을 보호했다”고 전했다. 화이자는 성명을 내고 백신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그러나 백신에 대한 공포는 가시지 않고 있다. 미국인들의 50% 가까이 백신접종을 거부한다는 보도도 있고 흑인, 라틴계 등 유색인종일 경우 더 불신이 심한 상황이라고 한다.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공포에 이어 백신 공포가 잇고 있다.필자의 친구들도 백신을 맞겠다는 숫자가 반정도 밖에 안되니 백신에 대한 불신은 도를 넘는 듯 하다.여기서 확률과 공포감의 관계를 설명하는 확률게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확률게임의 대표적인 예는 항공기 사고에 대한 공포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항공기 추락사고에 대한 공포 때문에 항공기를 타지 못하는 고공공포증 환자는 꽤 많다.항공사고의 경우 확률은 작지만 사고가 났을 경우 거의 전원이 사망하므로 공포가 훨씬 크다. 사고의 확률은 적지만 사람이 느끼는 공포는 매우 큰 것이다. 현재 백신에 대한 공포도 비슷한 양상을 띄고 있다. 확률은 낮아도 치명적일 수 있다는 공포가 있는 것이다. 코로나에 효과적으로 대처한 대만과 같은 정부에 비하여 한국 정부가 초기 코로나 대응 실패가 백신에 대한 불신에 한몫하고 있다.그러나 국민들도 지나친 백신에 대한 지나친 공포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확률게임에서 보듯이 각자의 공포지수의 문제일 뿐이다.우리는 매일을 확률게임을 하고 있다. 교통사고, 낙상사고 등 낮은 확률이라도 사고는 항상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치명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과도하게 걱정하지 않고 살듯이 백신접종의 문제도 그렇게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화이자는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을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백신 접종과 사망 간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임상시험과 실제 백신 접종 과정에서 이번 사례와 관련된 안정성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백신접종에 대한 지나친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다. 이번 코로나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2021-01-14

구룡포 과메기

구룡포에서 생산되는 과메기는 전국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포항을 대표하는 별미 음식이다. 과메기는 꼬들꼬들한 식감에 미역에 감싸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감칠맛 때문에 겨울철만 되면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다.과메기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1918년 서울의 신문관(출판사)에서 발행한 소담집에 나온 내용은 이렇다.동해안의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던 중 우연히 청어가 눈이 꿰인 채 얼말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배가 고파 먹었더니 그 맛이 너무 좋아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청어 눈을 꿰어 얼말려 먹었다는 것이 유래가 됐다고 전한다. 아마 동해안 어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개발된 먹거리가 아닌가 싶다.‘관목(貫目) 청어’란 꼬챙이 같은 것으로 청어의 눈을 뚫어 말렸다는 뜻이다. 구룡포에서는 목을 메기라는 사투리로 불렀는데 처음에는 관메기로 불리다가 ‘ㄴ’자가 날아가고 과메기로 정착한 것으로 본다. 과메기는 원래 청어를 원료로 생산했으나 1960년대 이후 청어 생산량이 줄면서 꽁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꽁치를 덕장에 달아놓고 바닷바람에 냉동과 해동을 반복해서 말린 자연의 손길 탓인지 과메기의 영양상태는 그 어떤 음식보다 좋다. 등푸른 생선으로 불포화 지방산인 DHA와 EPA, 오메가3가 풍부하여 노화를 예방해주고 뇌세포를 활성화 시킨다고 한다. 특히 동맥경화 등 심혈관 질환 예방과 피부미용에도 좋다고 한다.포항시가 코로나 사태로 소비가 주춤해진 과메기의 소비 촉진에 팔을 걷어붙였다고 한다. TV 등을 통한 홍보와 함께 쇼핑몰을 통한 파격 할인행사도 한다. 포항의 별미 구룡포 과메기의 소비 진작을 기대해본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1-14

오지 않는 철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서울시장 선거열기가 벌써부터 뜨겁다. 여야가 서울시장 선거에 올인하는 것은 대통령 선거 승부와 직결돼있기 때문이다.이제 최대 화두는 ‘야권이 후보단일화를 이룰 수 있을까’다. 현재 국면은 국민의힘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후보단일화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새다. 당 외부 인사의 합류가 가능하도록 경선룰까지 바꿨다. 당내 일각의 반발을 무릅쓰고 보궐선거 후보 본경선을 전국민경선 100%로 치를 예정이다. 국민의힘이 바라는 그림은 안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하거나 합당하는 형식으로 후보경선을 치러 야권 단일후보를 내자는 것이다. 반면 안 대표는 중도 외연확장을 위해 입당이나 합당에 반대하면서 “나 아니면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오직 현 정부의 실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야권 후보가 단일화돼야 한다는 주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안 대표와의 야권 단일화가 가능할까.미래를 알려면 과거 정치적 행보를 되짚어보자. 안 대표는 그동안 우파 보수쪽에는 거부하거나 자신만을 고집하고, 좌파진보에 대해서는 후보를 양보하거나 사퇴했다. 실제로 안 대표는 지난 2006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하려 했으나 야멸차게 거절했다. 그랬던 그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출마선언도 않은 상태에서 여론조사상 지지율이 50%까지 치솟았으나 지지율 5%에도 미치지 못한 박원순에게 후보직을 양보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가 중도에 사퇴해 문재인 후보에게 후보 단일화를 선물했다.최악의 패착은 2018년 6월 13일에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에서였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시장이 3선도전에 나섰고, 야당에선 자유한국당 김문수,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가 출마해 3파전으로 치러졌다. 최종 득표율은 박원순 52.7%, 김문수 23.3%, 안철수 19.5%였다. 당시 김문수·안철수 두 야당 후보간 단일화작업이 진행됐지만 안철수 후보가 자신이 야당 후보가 돼야 한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끝내 단일화가 무산됐다. 가뜩이나 그때 선거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에 치러진 데다, 선거 바로 전날 싱가포르에서 트럼프-김정은 간 북미정상회담이 열려 야당이 이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다해도 두 야당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기만 했다면 승부는 박빙이거나 뒤집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 많았다.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김재원 전 의원은 최근 SNS에서 국민의힘이 안 대표의 페이스에 끌려들어가고 있다며 “철수는 오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를 차용한 표현이다. 김 전 의원은 안 대표가 말하는 단일화의 의미가 ‘국민의힘이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를 내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다. 정말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부동산값 폭등으로 상처받은 서울민심을 아우를 수 있도록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선거를 치르는 방법뿐이다.‘오지않는 철수’를 향한 구애가 뜨거울수록 철수의 마음은 멀어질 뿐이다.

2021-01-14

고용절벽 최악… ‘반기업 정서’부터 바꿔야

통계청이 13일 발표한 ‘2020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은 고용절벽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넘치는 실업자, 치솟는 실업률, 세금으로 부양하는 관제 일자리는 이제 일상이 됐다. 정부는 숫자만 채우는 단기고용 대책에 골몰하고 있다. 점점 노골화해가는 여당의 ‘반기업 정서’가 문제다. 모든 기업의 성공을 견인하는 정책은 외면하고, 성공한 기업의 이익을 빼앗을 궁리부터 하는 잡권당의 의식구조가 도무지 한심하다.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는 2천652만6천 명으로, 2019년에 비해 62만6천 명이나 줄었다. 대신 실업자는 19만4천 명이나 늘어나 113만5천 명에 달했다. 고용률은 59.1%(1.7%p 하락)로 60% 선이 무너진 반면 실업률은 0.7%p 상승해 4.1%에 닿았다.내용은 더 나쁘다. 증가한 건 관제 일자리들뿐이고 고용률도 65세 이상 노인들만 늘었다. 질 좋은 일자리의 대명사인 제조업은 11만 명이나 줄었다. 36시간 이상 취업자는 161만1천 명 감소했고, 36시간 미만 취업자는 54만6천 명 증가했다. 취업을 포기한 구직단념자는 19만 명 이상 늘어나 72만5천 명에 달한다.정부의 “코로나19 3차 확산에 따른 12월 고용 악화는 예견된 일”이라는 핑계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엄중한 시기에 정부·여당은 각종 입법과 행정조치로 기업의 숨통을 옥죄는 일만 탐닉하고 있다. 코로나로 수익을 올린 기업들에게 노골적으로 ”번 돈 내놓으라“는 ‘이익 공유제’는 또 뭔가.벌써 몇 년째 백수인 청년들은 취업적령기 자체를 넘기고 있다. M세대, Z세대가 아닌 ‘코로나 백수 세대’가 양산되는 중이다. 고용절벽을 벗어날 유일한 길은 민간의 고용역량 증대밖에 없다. 민간기업이 자발적인 투자의지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유권자의 표를 훑어낼 선동정치의 개미지옥에 빠져서 ‘반기업 정서’에 기대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나랏돈 퍼 돌리는 일만 탐닉하는 이 한심한 정책 기조를 확 바꿔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기업 하기 좋은 나라’ 캠페인이 필요하다.

2021-01-14

대구경북 민원서비스 최하위 기관 각성해야

소속기관의 대민 서비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 민원창구다. 민원서비스를 담당하는 민원창구는 소속기관 행정의 최일선 업무이기도 하지만 그 기관의 얼굴이기도 하다. 국민권익위와 행정안전부가 전국의 304개 기관(중앙 44시·도교육청 17 광역.기초자치단체 243)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난해 민원서비스 종합평가에서 대구와 경북에서는 최우수 등급인 ‘가’등급을 받은 곳이 한 군데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시교육청과 김천시, 상주시, 영주시 등이 그나마 ‘나’등급을 받아 체면을 겨우 유지했다. 전체 대상기관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최하위 등급인 ‘마’등급에 경산시, 군위군, 봉화군, 울릉군, 의성군, 대구 달서구, 대구 중구 등 7군데나 포함돼 충격을 주었다. 대구시는 ‘다’등급, 경북도는 ‘라’등급을 받는 등 대구와 경북의 다수 기관들이 평균 이하에 머물렀다 한다.이번 민원서비스 평가는 지난 1년 동안 추진한 민원서비스 실적을 종합 평가한 것이다. 민원행정 관리기반, 민원행정 활동, 민원처리 실적 등을 서면과 현장방문, 설문조사 등을 통해 반영했다.특히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 배려와 국민의 정책 참여 노력, 고충민원의 적극적 처리 과정 등을 중점 반영했다고 한다.행정기관의 민원서비스가 과거에 비해 전반적으로 많이 개선됐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불친절이나 소극적 업무처리 등으로 종종 민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구와 경북지역 자치단체의 민원서비스 평가가 중하위권에 몰려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전국 행정기관간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은 공무원 스스로가 반성하고 개선해야 할 일이다.요즘은 민원공무원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다. 민원서비스에 대한 불평은 담당공무원의 공직자로서 성실함이 부족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공직자로서 사명감을 갖고 민원인을 대하는 봉사정신이 필요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 사회는 상당분야에서 비대면 문화가 늘어났다. 게다가 디지털 분야가 확대되면서 민원업무도 대폭적인 국면전환이 예상된다. 대구경북지역 자치단체는 민원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더불어 시대변화에 대응하는 준비에 나서야 한다. 이번 평가를 대오각성의 계기로 삼아 시도민에 봉사하는 공직상 정립에 나서길 바란다.

2021-01-14

세례의 신비를 살아가는 삶

정석수 신부대구가톨릭 치매센터 원장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인간이 알고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이를 간단하게 계시(啓示)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내 주셨는데, 그 모습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스승의 참 모습을 간략하게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을 때 성부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듣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로써 성부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요 성부의 마음에 드는 아들로서 온 천하에 선포되었습니다.세례를 받은 예수님은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라고 제자들에게도 허용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허용된 세례는 바로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 자리에 이르기 위하여 먼저 자신을 버리는 작업이 동반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십자가가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를 깨닫고 지고 스승을 따르는 삶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이루셨던 의로움을 우리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 의로움에 이르는 길에는 인간적인 고뇌가 따를 것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일에는 하느님의 영, 성령의 도움이 필요로 합니다. 성령의 도움에 힘입어 사람은 공정을 펴고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보듬어 주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고 되살릴 희망을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하느님의 일에 동참하는 시골처녀 마리아는 천사를 통해 성령께서 자신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덮어 줄 것이라는 천사의 아룀을 듣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게 된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은 잉태의 순간에서부터 성령을 충만하게 지니셨고, 그 성령께서 세례 때 예수님께 머무르심을 확연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한 성령의 원천”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아담의 죄로 닫혔던 하늘이 열렸고, 마침내 물이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새로운 창조의 서막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 교리서 536항에 보면,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하여 빠스카의 그리스도와 성사적으로 닮게 됩니다. 따라서 삶에서 빠스카의 삶을 이루기 위하여 겸손하게 낮추고 속죄하는 신비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성자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됩니다.세례를 통하여 예수님은 새로운 삶, 공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삶의 첫 일성은 회개와 하늘나라의 다가옴입니다. 그리고 그 사업에 함께 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의 삶의 태도를 통하여 배우고 성장합니다. 그 첫걸음마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젤 먼저 하신 일은 광야에서 기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아침에 눈을 뜨고 잠들기까지 기도를 합니다.

2021-01-13

김해신공항 공익감사로 편파성 여부 가려야

통합신공항 대구시민추진단은 12일 감사원을 찾아 국무총리실 김해신공항 검증결과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 대구경북시도민 6천200명의 서명서도 제출했다. 동남권 신공항 이해당사자인 대구경북으로선 당연한 대응이다. 오히려 늦은감이 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집권당이 내린 김해신공항 백지화는 누가봐도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이며 내용도 황당하다. 법적 절차뿐 아니라 이미 결론 난 국책사업을 손바닥 뒤집듯 한 행태는 놀라울 지경이다.김해신공항안은 2016년 국토부의 의뢰로 국제적 권위기관인 프랑스 파리공단 엔지니어링(ADPi)이 최종 결론 내린 평가다. 이 평가에는 대구와 경북, 부산, 경남, 울산의 광역단체장이 모두 동의를 했다. ADPi의 최종 평가에서 김해공항 확장이 1위를 했고 밀양, 가덕도 순으로 결론났다.ADPi는 공항운영, 접근성, 경제성 등 전략적 고려와 사회·경제적 영향, 환경, 비용과 리스크 등을 종합 평가했다고 밝혔다.가덕도는 바다 매립으로 건설비가 많이 들고 국토 남단에 위치해 접근성도 떨어진다고 했다. 새로운 검증과 절차도 없이 가덕도를 신공항 건설지로 몰아가는 것과 특별법 제정을 서두는 행위는 분명한 정치적 편파며 국책 사업에 대한 대국민 신뢰 추락이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의 이해당사자인 대구경북민의 의견조차 물어보지 않는 중대한 절차상 하자도 있다.통합신공항 대구시민추진단이 청구한 내용은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 설치 및 운영의 적법성 여부와 검증위원회 판단의 전제가 된 자료의 오류, 검증 결과의 부당성 등 따져야 할 것이 많다. 특히 검증위의 결론으로 도출된 국론분열과 예산 낭비의 문제는 공익을 심대하게 해친다는 점에서 반드시 검증돼야 할 부분이다.김해신공항 백지화는 지역의 이해관계가 연관된 문제다. 대구시와 경북도의 양보는 있을 수 없다. 국토부가 김해신공항 백지화를 수용한다면 행정소송과 위헌법률 심판청구 등의 절차도 밟아야 한다.국가의 정책이 힘이나 정치적 이유로 바뀌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가덕도 신공항 문제는 지역간 갈등으로 비화, 예산의 낭비를 떠나 국력이 소모되는 일이다. 정부의 오판이 없도록 감사원 감사의 공정한 평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2021-01-13

공포지수

공포지수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거래되는 SP500 지수옵션의 변동성을 나타내는 지표를 가리키며, SP 500 지수옵션에 대한 향후 30일간의 변동성에 대한 투자기대 지수를 나타낸다. 영어로는 ‘VIX(Volatility Index)지수’로 표기한다.1993년 미국 듀크 대학의 로버트 E. 웨일리 교수가 미국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나타내기 위해 처음 개발했다. 주로 시장상황에 대한 정보, 수급과 함께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의 하나인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수치로 나타낸다. 예를 들면 VIX 30(%)이라고 하면 앞으로 한 달간 주가가 30%의 등락을 거듭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변동성 확대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투자자들의 심리가 불안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흔히 VIX지수를 ‘공포지수(fear index)’라고도 부른다. 이 지수가 높아지면 주식시장의 변동이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는 것이고, 증시에서 주식을 팔고 빠져나가려는 투자자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후 주가는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VIX지수는 보통 20∼30 정도 범위가 평균 수준이고, 40 이상 50에 근접하면 바닥권 진입의 징조로 해석돼 주가 반등이 이뤄진다.우리나라에서는 옵션 가격에 반영된 향후 시장의 기대 변동성을 측정하는 지수인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를 공포지수로 여긴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가 3천고지를 넘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공포 지수’가 7개월만에 최고치인 35.65를 기록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상승장속에 공포지수의 급상승은 그만큼 투자자들이 흥분한 증거이니 ‘묻지마 주식투자’를 삼가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야 할 듯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13

대학은 이십대만 가르친다고?

장규열 한동대 교수코로나19가 모두 삼켜버렸다. 3차 대유행이 약간 고개를 숙이고 백신과 치료제가 떠오르면서 조금씩 저무는가 한다. 하지만 글로벌세상이 펼쳐지면서 아직 안심하기는 이른가도 싶다. 해마다 이즈음이면 긴장하게 하는 뉴스 자락이 있다. 대학입시.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이 다양해져 정시 비중이 줄었지만, 학생을 기다리는 대학의 관점으로는 여전히 중요한 입시시즌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극소수의 수도권 대학들을 제외한 대학들의 정시경쟁률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지방대 경쟁률은 미달을 감수해야 할 만큼 심각하다고 한다. 문제는 어디서 왔으며, 대학은 어찌해야 하는가.힘든 경제환경과 각박한 사회현상은 젊은 부모들에게 아이들을 낳기 힘들게 하였다. 2000년에 330만이었던 학령인구수가 2020년에는 240만명이 되었다. 학령인구가 거의 30퍼센트나 줄어든 셈이다. 올해 대입정원을 모두 합치면 55만명이라는데, 입시에 응하는 수험생수는 53만명이라고 한다. 수험생이 더 적다. 학령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대입수험생이 줄어들면서 대학들은 정원을 채우기가 어렵게 되었다. 상아탑을 자처하며 고학력 졸업생들을 배출해 내던 대학들은 이제 사활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성과 재능을 대학이 지속적으로 배출해 낼 수 있을까.대학교육이 끝이 아니다. 디지털문명이 심화되고 4차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대학에서 배운 것으로 평생을 살기는 어렵게 되었다. 20대초반에 좁은 한 분야를 전공삼아 획득한 학사학위는 긴 시효와 효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드러내고 존재이유를 증명하려면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나때는 말이야’는 통하지 않는다. ‘내가 다 해본 것’도 이제는 없다. 학문영역의 경계도 무너지는가 하면 전공분야의 구분도 선명하지 않다. 대학생들은 이미 ‘자유전공’을 만들어 스스로 여러 학과의 과목들을 혼합하여 학위를 취득하곤 한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처럼 뒤떨어진 발상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젊은 이십대를 가르쳤던 대학은 이제 모든 세대를 교육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새롭게 배울 것들을 세상의 손에만 맡겨둘 수가 없다. 대학이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지식이 윤리적 기준과 제도적 타당성을 유지하면서 사회에 이롭게 기여하도록 대학이 나서야 한다. 사회적 책임성이 결여된 지식의 오류를 수정하는 일도 대학이 맡아야 한다. 책임있는 ‘평생교육’이 대학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대학은 이제 모든 세대가 함께 호흡하며 끊임없이 나누는 ‘배움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세대 간의 나눔과 다양한 집단 간의 토론도 아우르는 ‘소통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배움과 소통이 일어나면 대학의 내일은 오히려 밝다.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는 공론의 장을 대학이 만들어 낼 가능성에도 기대를 건다.어제 대학이 젊은이를 기르는데 까닭을 걸었다면, 내일 대학은 사회가 책임있게 움직이도록 이끄는 마당이 되어야 한다. 대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1-01-13

삼중수소 논란, ‘과학’으로 밝혀 ‘책임’ 물어야

민주당이 월성원전 방사성 물질 누출 의혹을 연일 제기하며 ‘국회 조사’까지 언급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월성1호기 검찰 수사를 물타기 하려고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측도 유출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이 문제를 정치권이 정쟁의 소재로 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과학’으로 밝혀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한다. 정말 심각한 문제라면 정부는 왜 인근 주민들을 ‘긴급대피’시키지 않나.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삼중수소 유출 의혹을 제기하며 “월성원전 폐쇄는 불가피했음이 다시 확인됐다”고 주장한 데 이어 같은 당 김태년 원내대표도 나섰다. 김 원내대표는 “정부는 물론 국회 차원의 조사 필요성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조작 관련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여당이 ‘삼중수소 유출 의혹’으로 반격에 나선 모양새다.지역 방송사는 지난 7일 “월성원전에서 삼중수소 기준치(4만 베크렐/L)의 최대 18배가 검출됐다”며 외부 유출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한수원은 곧바로 “해당 지점의 관리 기준치라는 게 따로 있지 않다”고 밝혔다. 4만 베크렐/L은 외부에 배출할 때의 ‘배출 관리 기준’인데, 원전 내부 특정 지점 측정치를 이와 비교했다는 지적이다.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SNS에서 방송보도 등과 관련, “극소수(환경) 운동가가 주장한 무책임한 내용”이라며 “결론은 삼중수소 외부 유출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수원 노조도 이날 “여당이 검찰의 월성원전 수사를 피하기 위해 정치적 물타기를 하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비판했다.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원전 수사를 물타기 하려는 저급한 술수를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월성원전 괴담 소동은 지난 2008년 MBC PD수첩의 과장 보도로 촉발된 광우병 사태의 혼란을 연상시킨다. ‘정치’가 아닌 ‘과학’으로 진실을 밝혀 음모가 있다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온 나라를 일순 구렁텅이에 빠트리는 선동정치는 반드시 청산돼야 한다.

2021-01-13

부활한 성탄 트리

강길수수필가몇 해를 망설였다. 일을 미루는 버릇이, 삶에 큰 마이너스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불치병처럼 고치지 못했다. 이번에는 자신뿐 아니라, 한 생명에게 큰 잘못을 하고 말았다.접이식 작은 톱을 들고, 몇 년 동안 미루던 일을 하러 간다. 그 생명 앞이다. 낮은 밭둑에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던 터라, 제법 늠름하다. 행사 때 묵념하듯 속말로 사전 고해성사를 한다. “소나무야, 미안하다. 이제 더는 너를 여기에 둘 수 없구나. 어릴 때 옮겨 주지 못해 더 미안하다. 부디, 다음 생은 좋은 곳에 자리 잡으렴….”사람이라면 아동기에 해당할 소나무다. 밑동 둘레가 두 손으로 움켜잡으면 굵기가 조금 남을 정도로 컸다. 밑동에서 허리춤 정도 올라가면 원줄기가 두 개로 갈라졌다. 톱날을 소나무 밑동에 들이민다. “쓱싹쓱싹….” 톱날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소나무의 몸을 자르기 시작한다. 아는지 모르는지 소나무는 반응이 없다. 순한 양같이 자신을 내맡기고 있다 싶기도 하다. 아니, 소나무는 비명 지르며 절규하는데, 사람인 나는 알아듣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소나무가 내는 비명소리와 내가 알아듣는 소리의 주파수가 달라서 말이다. 톱날이 톱밥을 밖으로 뱉어내자, 소나무가 속에 간직한 비밀의 향내가 번져 나왔다. 실로 오랜만에 맡아보는 냄새다. 군 제대 후, 고향에서 한 해 가량 취업 준비 겸 농사일을 도우며 지냈다. 그때 산에 나무하러 가는 길에, 방해되는 가지를 톱으로 자르며 맡아 본 뒤 처음이다.두 팔은 열심히 톱질하는데, 마음속은 복잡하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다 들기 때문이다. 네가 예전 시골서 자랐더라면 멋진 디딜방아의 방아채와 다리로 쓰였을 텐데 아깝다든가, 베어낸 너를 텃밭 어디에 쓸데는 없을까 하는 궁리, 하필 좋은 산 다 두고 밭두렁에 나서 무지막지하게 요절을 당하니, 너도 참 박복하다는 둥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문다. 부모 소나무들이 사는 산까지는 직선거리로 200m는 될 터다. 한데, 솔방울 안 씨앗의 작은 날개로 예까지 날아왔다고 생각하니 믿기지 않는다.밑동을 다 베자, 소나무는 밑 밭이랑으로 속수무책 쓰러졌다. 앞길이 창창한 소년 소나무의 생이, 인간인 내 욕구에 따라 마감되는 모습이다. 이 소나무의 씨앗은 무슨 뜻으로, 바람 타고 이 먼 곳에 정착했을까. 자연은 하늘의 뜻을 따를 터. 그렇다면 하늘이 경영하는 자연 질서란 뭐란 말인가. 뒷정리를 위해 가지들을 쳐내고, 둥치도 들어 치울 수 있을 정도로 잘랐다. 떨어진 솔방울들을 모아 건너편 언덕으로 던졌다. 그냥 두어 이곳에 또 나면, 다시 뽑아내거나 옮기거나 베어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두 주 만에 텃밭에 다시 왔다. 자른 소나무 밑동이 궁금해 그곳에 갔다. 덮어 두었던 작은 솔가지를 들어냈다. 잘린 단면이 보기 미안해 나도 모르게 덮었었다. 나이테를 살펴보았다.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오륙 년은 되어 보였다. 잘린 껍질과 줄기 사이에선 송진이 눈물로 배어 나오고 있다. 가슴이 짠했다. 낮은 곳에 쌓아둔 가지들에게 눈이 갔다. 역시 푸르다. 잘린 둥치는 푸른 가지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이 슬픈 나무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방법 곧, 다른 쓰임새로 부활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번쩍 났다. 머릿속의 알고리즘이 빨리 회전한다.‘그래.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았구나. 예쁜 가지를 가져다가 살아있는 성탄 트리를 만들자. 트리에 꽃과 눈, 별을 장식하여 손자들에게 보여주자.’ 하는 아이디어가 뒤이어 떠올랐다. 쉬는 화분에 어울릴 가지 두 개를 골랐다. 아이들 성장하고 나서부터 집에 거의 성탄 트리를 마련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올해, 오랜만에 플라스틱 나무가 아닌, 산 소나무 가지로 트리를 세우고 솜과 조화 등으로 아담하게 꾸몄다.비록 작은 가지 둘이지만, 소나무는 새 생명으로 우리 집 거실에 되살아났다. 땅속 물과 공기와 햇빛으로 사는 생명은 끝났다. 하지만, 소나무는 사람들에게, 성탄과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는 살아있는 성탄 트리로 부활하였다.크리스마스 날, 부활한 성탄 트리 위로 푸른 별빛 한줄기 찾아오겠지….

2021-01-13

‘태평송’을 위한 변명 - 실리 외교의 수를 놓다, 진덕여왕

여성의 삶이 점점 주목받는 사회이다. 하지만 여전히 역사나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며 제 몫을 다해온 여성들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우리 지역을 살다간 유·무명 여성들의 발자취를 따라 소회를 풀어가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연구자들이 닦아놓은 연대기식 여성사가 아니라 그 숨결을 찾아나서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을 김살로메 작가가 들려줄 예정이다. 여성들이 걸어간 길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장이 될 것이다.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를 바란다. /편집자주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완벽한 객관성이란 없다. 명확한 잣대가 있는 게 아니라 서술자가 취하는 이데올로기의 방향에 따라 그 관점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진실은 하나지만 기술되는 내용은 주체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진덕여왕에 대한 연구자들의 기록을 대할 때 독자로서의 입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짧은 재위 기간에 반비례라도 하듯 국제 정세의 역동성에 휘말린 여왕의 시간을 살펴본다. 여왕이 남긴 오언율시 ‘태평송(太平頌)’을 통해 여성 리더로서 느꼈을 고충을 공감하고 싶었다.여자가 왕이라는 이유로 당나라는 선덕여왕에 대해 트집을 잡았다. 이 기회를 이용해 상대등 비담이 난을 일으켰지만 김춘추·김유신에 의해 십여 일만에 반란은 진압되었다. 와중에 선덕여왕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고, 여왕의 사촌인 승만 공주가 왕으로 추대 되었다. 성골 출신 마지막 왕인 진덕여왕(재위 647~654) 7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국제적 정세 한가운데서 고군분투했을 여왕을 생각하며 능 가는 길을 재촉했다. 경주 현곡의 야산, 오솔길을 따라 200여m를 올랐다. 초행의 객이 감행하기에는 다소 외진 구릉에 햇살을 받은 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봉분 허리를 감싼 둘레돌 사이사이에 듣던 대로 돋을새김한 십이지신상의 흔적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이러한 무덤 양식은 8세기 이후의 것이기에 이곳이 진덕여왕의 무덤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태평송에 나타난 역사적 의미와 여왕의 인간적인 고뇌를 짚어보는 데에 방해가 되지는 못했다.당시 국제 정세는 위급했다. 조여드는 백제의 공격에 조정은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전쟁마다 김유신의 연승으로 이어졌지만 국권을 수호하려면 당과의 협력은 필수였다. 진덕여왕은 김춘추를 비롯해 유능한 인재들을 사신으로 보내 당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했다. 당의 의관을 좆았고, 태화(太和)라는 독자적 연호가 있었음에도 당의 연호와 책력을 따를 만큼 당 체제를 적극 수용했다. 즉위 4년인 650년, 백제와의 승전보를 알리려 춘추의 아들인 법민왕을 당 고종에게 파견하면서 지어 보낸 시가 그 유명한 ‘태평송’이다.‘높디 높은 황제의 포부 빛나도다. 전쟁을 그치니 천하가 안정되고, 전 임금 이어받아 문치를 닦으셨네. (중략) 계절마다 기후가 고르고, 해와 달은 만방을 두루 도네. 산악의 정기 어진 재상 내리시고, 황제는 신하를 등용하도다. 선대왕들 한 덕을 이루니, 길이길이 빛나리 우리 당나라.’더할 나위 없는 아부로 가득한 내용이다. 후대인으로 가슴이 아픈 것은 여왕이 손수 시를 지은 것은 물론 비단을 짜고 수까지 놓았다는 점이다. 삼단 콤보로 행한 이 굴욕적 외교 방식은 주체적 여성 시각으로 볼 때 치욕에 가까운 방식이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당시 천자국을 향했다지만 진심에서 나온 방식은 아닐 것이다. 섬세한 여성성을 외교에 적극 차용할 수밖에 없었던 진덕여왕의 심정은 어땠을까.이러한 여왕의 외교술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 이도 있다.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외교적 수사였음을 적극 변호하고 싶다. 풍전등화의 국운 앞에 실체 없는 명분이 무슨 소용일 것인가. 국제적 제휴의 손길이 필요했던 여왕으로선 그보다 나은 실리적 외교법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김살로메 소설가여왕의 이런 정성이 당 고종을 감동시킨 것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다. 실제 당 고종은 여왕의 죽음 앞에 예를 갖춰 애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시늉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확실한 태도를 취하는 방식, 현명한 소통법이 아니었을까.살다보면 굴욕이 최선의 공격일 때도 있고, 치욕이 최상의 전략일 때도 있다. 굴욕 없이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낮아짐 없이 펄럭이는 깃발이 어디 있을까. 하산 길, 왕릉 동쪽으로 ‘동녘골’ 저수지가 보였다. 혹시라도 진덕왕의 흔적을 느낄 수 있을까 싶어 못 주변을 살폈다. 구체적 실체는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바스락바스락 무언가 교감을 원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한겨울 얼음장 조이는 소리였다. 마치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옥좌의 부담감을 감내해야 했던 한 여인의 뒤늦은 고백처럼 그 소리, 귓전에 오래 머물렀다.

2021-01-13

학교가 답이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인천 ‘라면’ 형제, 정인이, 혹한 속 내복 차림으로 발견된 3세 아이” 등 최근 우리 사회에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겪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황당한 기사를 보았다. 필자를 당황스럽게 만든 기사는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CEO 월드의 기사였다. 이 회사는 신생아 사망률, 병원 수, 학교 수, 미취학 아동 수, 문맹률 등을 지표로 삼아 ‘아이가 태어나기 가장 좋은 나라’를 발표했는데, 웃기게도 우리나라가 97.26점으로 노르웨이와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과연 이 기사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동 학대’라는 항목을 넣어도 과연 결과는 같을까? 기사 내용대로라면 우리나라 산부인과는 산모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아니다. “작년 사상 첫 인구 감소, 출생 27만 사망 30만 명 ‘데드크로스’”천문학적인 세금을 퍼붓고 있지만, 인구수는 빠르게 줄고 있다. 정부가 대책을 찾고 있지만, 기껏 내놓는 정책이 또 재정지원이다. 돈으로 해결될 문제였다면 진작에 해결됐다. 2006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 인구문제 연구소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우리나라를 꼽았다. 어쩌면 아래 기사 내용처럼 국가 소멸은 시작됐는지도 모른다.“지방 소멸 이미 현실이 됐다. 전남 828개교, 경북 729개교 ‘폐교’”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참담한 뉴스 속에서 살아야 할까! 사람들은 말한다, 아이들이 희망이라고! 하지만 앞 사건들에서도 보듯이 그 희망들을 우리 스스로가 처참하게 짓밟고 있다. 아이 낳기 좋은 나라보다는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다. 물론 출산율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행복 지수다. 아이가 행복하면, 어른도 행복하다. 어른이 행복하면 어쩌면 인구문제는 저절로 해결될지도 모른다.그럼 아이들이 행복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바로 아래에 있다.“인천 ‘라면’ 형제 형 오늘 퇴원, 빨리 학교 가고 싶어요. 친구, 선생님, 너무 보고 싶어요.”모든 학생이 학교에 가고 싶어 하고, 또 학교에 가서 행복한 나라! 그런 학교가 전국에 단 한 곳이라도 있다면, 인구문제는 물론, 학교 폭력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혁신 학교, 미래 학교 등을 말하면서 떠들어대지만, 이 나라에는 그런 학교가 없다. 자유학년제를 비롯해 지금도 많은 교육 실험이 전국 학교에서 자행되고 있다. 그런데 성공한 것은 단언컨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교육 현장의 혼란만 초래했다. 그 결과 학생들은 학교를 믿지 않게 되었고, 주인을 잃은 학교는 불행과 혼돈의 장이 되어버렸다.그래도 답은 학교밖에 없다. 학생들은 마루타가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학생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낯선 교육 이론이 판치는 실험 학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는 시험 맹신 학교! 새해에는 이런 학교들이 없어져 학생들이 학교 다니는 것이 행복한 나라가 되길 기원한다.

2021-01-13

미국 의회 민주주의를 훔쳐 간 트럼프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워싱턴의 미국 의회당을 폭도들이 점령했다. 트럼프를 적극 지지하는 극우 보수 세력이 점령한 의회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시위자들은 경찰의 저지를 무시하고 높은 담벼락을 넘어 의사당 회의실을 점령해 버렸다.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의자에는 미국 총기 소지자협회장이 걸터 앉았다.현장에서 4명이 사망했다. 한국 국회는 여야 몸싸움의 ‘동물 국회’로 비판받았는데 미국 의회는 완전 ‘탈법 국회’가 되어 버렸다. 미국 의회 민주주의가 점령당한 모습에 세계인들은 모두가 놀라고 있다. 어쩌다 미국의 의회 정치가 이렇게까지 되어 버렸을까. 여태껏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모델이었고, 그들 스스로도 자부심이 대단했었다. 미국 민주주의가 이렇게 추락한 것은 분명 트럼프에게 책임이 있다.​​​​​​​스스로 대선 패배를 인정치 않고 선거가 도난당했다던 트럼프가 초래한 비극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번 선거에서 47.7%의 표를 얻고도 낙선했다. 그는 내심으로 원통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군중 앞에서 의회로 행진을 하자고 선동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그의 처신이다. 그는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치 않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의 인격의 졸렬함이 드러난 최악의 비극이다.몇 해 전 광화문 태극기 집회를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 이상한 것은 태극기 사이에서 미국 성조기가 펄럭이는 모습이었다. 미국 성조기까지 동원한 것은 한미 동맹을 과시하거나 보수성향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번 미국 집회에서도 성조기와 함께 “USA”를 외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한국의 축구 경기 시 붉은 악마들의 “대-한-민-국”과는 비슷한 소리였다. 그러나 시위자들의 USA는 미국 의회 난입의 파열음이라면 우리의 대한민국은 한국인의 저력이었다. 이번 의사당 난입은 성조기와 미국의 국호마저 동시에 모독했다.사실 대통령 트럼프의 그간 정치행적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너무 많았다. 그의 아메리카 우선주의는 인종차별주의로 귀결됐다. 그는 우방과의 방위비 협상에서도 철저히 돈을 거래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는 기후 협정에도 탈퇴하고 이란과의 핵 협정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모두가 부동산 재벌다운 그의 정치 행각이다.본란을 통해서도 필자는 트럼프 식 정치를 여러 번 경고한 적이 있다. 그의 선거 결과 승복은 빠를수록 좋다고 제안했다. 그는 링컨 대통령이 주창한 ‘인민을 위한 정치’를 ‘트럼프만을 위한 정치’로 변질시켜 버렸다.20일 취임할 바이든 대통령이 해결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미국 의회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튼튼한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트럼프의 인종차별 주의적 정책은 철저히 폐기해야 한다. 힘을 앞세운 미국 우선주의와 결별해야 미국의 위상은 회복될 수 있다. 동맹국까지 거래의 수단으로 이용한 트럼프 식 외교는 즉각 폐기해야 한다. 바이든은 실추된 미국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미국을 정상적인 국가로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트럼프의 비정상적인 정치 행각은 정치 지도자의 품성과 자격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2021-01-13

월성원전 삼중수소의 진실

황성호 경북부라듐이라는 방사선 원소를 발견한 것으로 잘 알려진 ‘퀴리 부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얼마 전 개봉됐다. 라듐은 우라늄보다도 200만 배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물질로 의학, 생물학, 유전학 등 많은 부분에 사용되고 있다.이러한 방사선 물질은 오늘날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멀게는 살균과 멸균, 품종개량, 화재감시기 등에, 가깝게는 질병 진단을 위한 엑스레이, CT, 암 치료 등에 사용되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그러나 모든 것에는 명(明)과 암(暗)이 있듯이 핵폭탄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우리는 흔히 기회비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무엇을 얻기 위해 희생되는 부분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건강검진을 위해 사용되는 엑스레이 촬영이나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한 방사선 치료가 그 좋은 예이다.부작용을 알면서도 방사선을 우리의 몸에 쪼임(조사·照射)으로써 원하는 목적을 얻기 위해 사용한다. 더 많은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요즘 발전소 주변 삼중수소가 이슈가 되고 있다. 삼중수소는 라돈과 같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방사능 물질로 매우 미미한 수준의 방사선 피폭을 일으킨다. 우리는 자각하지 못하지만, 일상생활 중 호흡, 음식, 자연으로부터 연간 약 2.4mSv 수준의 자연방사선을 받고 있다. 핵분열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 원자력발전소에는 자연계의 수준을 넘는 삼중수소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그러나 월성원전의 삼중수소로 인해 1년간 지역주민이 받는 방사선 피폭량(0.0006mSV)은 엑스선 1회 촬영 시 피폭량(0.01mSv)의 100분의 6 정도에 불과하다. 바나나 몇 개를 먹는 수준과 같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보편적 기준과 우리나라 규제요건에도 한참 모자라는 수치이다.원자력발전을 통해 얻고자 하는 많은 이득이 있을 것이다. 삼중수소의 부작용을 알지만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감시하고 통제해 인체에 무해한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면 무조건 기피하고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아닐 것이다./ hsh@kbmaeil.com

2021-01-12

움직이고 어울리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해마다 새해 소망의 단골 중 ‘건강’이 빠지지 않는다. 더욱이 2년째 지리멸렬 이어지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건강 보다 더 중요한 화두가 또 있을까? 물론 현실적으로는 ‘코로나 종식’이나 ‘마스크 벗기’ ‘경제 회복’ 등이 급선무로 대두되지만,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건강이야 말로 누구나 일년 내내 아니 평생 바라는 우선적인 염원이 아닐까 싶다. 최소한 일신의 건강이 확보돼야 일상을 지탱하고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금동서를 막론하고 건강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예전부터 추구해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몸이 건강해야 온전한 삶이 가능하고 건강한 신체는 장수와 직결된다. 인간의 건강한 삶과 생명연장을 위한 과학자들의 도전은 끝이 없다. 노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텔로미어(telomere)에 대한 연구나 건강식단, 건강보조제 등이 학계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주제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텔로머라아제(telomerase)라는 효소가 세포 분열 후 짧아진 텔로미어를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며, 이 효소가 잘 활성화된다면 건강 장수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될 것이라고 한다. 즉, 몸을 어떻게 관리하고 움직이냐에 따라 텔로미어의 길이가 달라지며, 나이가 들수록 무조건 짧아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따라 길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항간에 건강과 장수에 도움이 되는 여러가지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규칙적인 운동, 소식하기, 스트레스 안 받기, 체내의 활성산소 줄이기, 칼로리 제한, 충분한 수면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실행으로 옮기고 꾸준히 지켜 나가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의지가 약하거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일에 쫓기고 바빠지는 현재의 곤고한 삶에서 오는 괴리가 커져 많은 사람들이 건강수칙을 간과해버리는지도 모른다.필자도 비슷한 처지지만, 적어도 두 가지만큼은 꾸준히 실천하며 나름대로의 건강법(?)을 터득해 나간다고나 할까? 그것은 곧 움직이고 어울리기다. 자연만물도 움직임이 있음으로써 오묘한 작용과 다양한 변화를 거듭하듯이, 사람도 움직임이 있어야 육신에 생기와 활력이 생기게 된다. 건강과 직결되는 움직임은 운동이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50대가 운동 안하는 30대 보다 텔로미어가 활성화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만큼 운동은 건강의 필수적인 요소인 셈이다.운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주위 사람들과의 어울림이다. 즉, 가족이나 공동체와 함께 나누는 관심과 사랑, 사회와 주변에 대한 봉사, 그리고 삶에 대한 낙관적 태도다. 이를테면 가족애를 쌓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우정을 넓히며 사회나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과 나눔을 통해 삶의 만족도가 커지게 되면 ‘좋은 호르몬’이 생성되어 건강수명이 길어진다고 한다. 결국 편안한 어울림으로 친화력을 높이고 공헌활동을 지속해 나가는 것도 심신의 건실함에 상당한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생명연장의 꿈은 다 같이 오래 사는 건강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건강한 식습관과 와사보생(臥死步生)을 염두에 둔 적절한 운동, 어울림으로 친근한 신뢰 쌓기, 공익활동을 통해 보람을 느끼는 선한 영향력으로 불로장생을 추구해보자.

2021-01-12

북극한파

김규종 경북대 교수일주일 가까이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다. 요즘은 대구나 청도 기온이 다를 바 없다. 예년 같으면 청도 최저기온이 대구보다 4∼5도 정도 낮았는데, 그런 차이가 사라졌다. 영하 18도 가까운 추위를 경험하는 일은 행운이다. 내가 좋아하는 기온이 영하 18도이기 때문이다. 바람 한 점 없이 쨍한 날 아침에 맞는 영하 18도의 상큼함은 형언하기 어려운 기쁨이다.우리나라 추위에는 언제나 바람이 동반한다. 날이 추워질 기미를 알려주는 것도 바람이고, 기온이 오를 징조를 통지하는 것도 바람이다. 겨울에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날이 차가워질 것이고, 차갑던 날에 바람이 잠잠해지면 포근해지기 마련이다. 이 땅에 살면서 체득한 이치 가운데 하나다. 러시아인들이 기장(機長)의 인천공항 일기예보에 환호하다가, 공항 바깥에 나오자마자 괴로워하는 데에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유라시아 대륙의 내부에 있는 도시들, 예컨대 베를린이나 모스크바 혹은 이르쿠츠크에는 바람이 드세지 않다. 그곳의 추위는 바람 없이 생짜로 내려가는 한기(寒氣)에서 발원한다. 영하 30도의 베를린과 영화 28도의 이르쿠츠크, 영화 25도의 흑룡강 추위의 경험은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일상을 영위하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겨울을 맞이하고 보낸다.언론에서는 이번 추위의 원인 제공자가 북극이라면서 ‘북극한파’라는 별칭(別稱)을 부여한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북극 기온이 상승하고, 찬 기운을 막아주던 제트기류는 상대적으로 약해져 북극의 찬 공기가 그대로 남하해 한파가 닥쳤다는 것이다. 호모사피엔스가 불러온 기후재앙의 결과로 이해하면 속 편할 듯하다. 스웨덴의 18살배기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강력한 저항운동이 절실해 보이는 까닭이 여기 있다.북극한파가 가져다준 선물도 소중하다. 한국인들의 지리적 이해도를 강화한 점을 들 수 있겠다. 한반도 남단, 그것도 서울과 경기도 인근의 미소(微小)한 공간에 갇힌 사람들의 시선을 확장한 공이 크다. ‘우물 안 개구리’도 유분수지, 날이면 날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타령이 끊이지 않는 나라의 좁디좁은 소견이 가관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북극이라는 지명과 그곳의 맹추위가 잠자는 한국인들의 협소한 의식을 일깨운 셈이다.이런 정도의 추위를 감내하고 살아가는 지구촌 사람들이 많다는 인식의 확장은 덤이다. 극동 러시아의 야쿠티아 자치 공화국에 자리한 오이먀콘 초등학생들은 영하 52도 아래로 떨어지면 등교하지 않는다. 영하 56도까지 내려가야 휴교한다고 알려져 있다. 눈보라 치는 영하 50도의 날씨에 학교에 가는 7~12살짜리 아이들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과잉보호가 넘쳐나는 이 나라 학부모들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여름에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병해충이 이번 추위로 상당수 절멸했을 가능성도 있다. 덕분에 올여름에는 모기나 각다귀가 조금은 적을 듯하다. 세상사 대차대조표는 결국 영(零)이다. 조금은 여유롭게 북극한파와 대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1-01-12

국민의힘, 잡음 접고 ‘정치혁신 비전’부터 내놔야

4월 재보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의 내부불협화음이 심각하다. 마땅한 대선후보가 부재한 것에 더해 주목받는 선두 서울시장 후보가 없다는 점이 갑론을박의 원인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독주 양상을 보이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단일화 문제를 놓고 이견이 충돌하고 있다. 국민의힘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상승세에 있는 정당지지율을 굳히기 위한 ‘정책 정당’으로서의 미더움이다. 정치공학적 잡음을 털고 ‘정치혁신 비전’부터 장만해 내놔야 할 때다. 안철수와의 통합 문제로 일부 중진들과 부딪치고 있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한 라디오방송에서 “안철수 대표가 독자적으로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들어도 이길 자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95년 야당 민주당 조순 후보가 무소속 박찬종 신드롬을 잠재우고 낙승했던 역사를 소환하기도 했다.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1일 공개한 정당지지율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3.5%로서 민주당의 29.3%보다 높았다. 그러나 깊숙이 들여다보면 국민의힘이 안정적으로 민심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의힘을 떠받치고 있는 확고한 정책적 신념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정권의 실정에 의한 반사이익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선거가 임박했으니, 대세 조짐이 있는 안철수 대표와의 통합이 시급하다는 강박관념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섣부른 정치 공학이 현실정치에서 화를 부르는 경우는 귀하지 않다. 정치판에서 원 플러스 원(1+1)이 반드시 2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김종인 위원장이 당 소속 의원 전체에게 보낸 ‘공공선(公共善) 자본주의’ 보고서를 주목한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국민의힘은 국민이 미래를 꿈꾸며 따를 수 있는 혁신적인 정책지향점을 찾아내어 제시해야만 한다. 흘러드는 민심을 담아낼 그릇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정 인물 중심으로 좌충우돌해 온 한국 정치의 폐해를 청산할 때가 됐다. 정책좌표가 설정되고, 뜻을 합치면 야권통합은 저절로 된다. 선후(先後)를 잘못 헤아려서 모처럼의 이 지지세를 허망하게 뒤집고 부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1-01-12

흰 황소의 걸음으로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김사인 시인은 ‘아무도 모른다’라는 제목의 시에서 옛 동네어른들, 옛 누님들의 부재를 이렇게 노래하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런닝셔츠’라는 말은 알아도 ‘런닝구’라는 말도 알까? 혹 런닝구를 안다 해도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 좁은 골목길에 모여 앉아 장기와 바둑을 두거나 동네 어귀를 스스럼없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모습은 나이 지긋한 이들의 과거 기억 속에서만 아스라이 물안개처럼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2020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여느 해와 다름없이 시작되었지만 ‘쥐죽은 듯’ 왔다가 전 세계를 팬데믹의 혼란 속으로 휘몰아 넣었던 ‘태산명동’(泰山鳴動)의 쥐띠 해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우리는 2020년에 많은 것을 잃고 없이 보냈다. 종무식도 망년회도 없었다. 제야의 종소리 또한 들리지 않았다. 망년회니 제야종이니 하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힘든 한 해가 갔다. 사라졌다기보다 스러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해의 바뀜이다.2021년이다. 시무식도 새해맞이 모임도 없이 벌써 열흘이 넘게 날들이 흘러가고 있다. 소걸음으로 걸어가자고 하지만 아직 그 걸음이 무겁고 힘겹다. 도통 새로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검은 왕관 코로나가 머리를 짓누르며 새해 새 느낌의 부재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를 주고받기가 무안하다. 건강하자는 서로 간의 덕담이 무색하다. 희망을 노래하고 밝은 날을 꿈꾸며 웃음을 나누던 연초가 그리운 올해는 지난해와 더불어 매우 특별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하릴없이 2021년의 1월이 지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희망 노래를 입안에 감추기는 이르다. 우리에게는 아직 또다른 1월 1일이 있다. 설날이다. 아직 한 달이나 남았다. 십간(十干)의 경(庚)과 신(辛)은 오행(五行)으로 보면 금(金), 오방색(五方色)으로 보면 흰색이 되어 신축년(辛丑年) 올해를 흰 황소의 해라고 한다. 문화권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동양에서 흰색은 상서로운 색으로 여겨지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스스로를 ‘흰 옷 입은 겨레’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불렀다. 누를 황(黃) 글자의 황소를 ‘희다’라는 형용사로 수식하는 것은 모순형용이라고 이견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황소는 누렁소가 아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에서도 황소는 다 자란 큰 수소를 일컫는다. 어원적으로도 황소는 ‘한쇼’에서 온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므로 ‘흰 황소’라는 표현을 가지고 딴지 걸 일은 아니다.이상국 시인은 시 ‘내일로 가는 소’에서 어둠을 물리칠 강인한 소의 걸음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산 넘어 가시덤불 / 어둠 밟고 가는 힘을 보아라.”황소걸음으로 저기 흰 황소가 오고 있지 않은가. 서두를 필요 없다. 지혜와 힘을 모으고 조금만 더 버티자. 이제 곧 다시 둘러앉아 새 희망과 꿈을 노래하고 가시덤불 걷어낼 새 쟁기를 벼릴 날이 우리 앞에 온다.

2021-01-12

신한울 3·4호기 건설에 산자부 용단 있어야

한국수력원자력이 다음 달로 예정된 신한울원전 3·4호기의 공사계획 인가기간 연장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신청했다. 신한울 3·4호기는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으로 월성 1호기가 폐쇄되고 천지·대진원전의 건설계획이 취소되면서 국내 원전산업의 마지막 보류로 여겨져 왔던 사업이다. 신한울 3·4호기의 공사계획 인가 연장 여부에 따라 국내 원전산업의 불씨가 남느냐 하는 중대 고비가 된다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당연히 국민적 관심도 높다.한수원은 지난 2017년 2월 정부로부터 신한울 3·4호기 발전사업 허가를 받았으나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아직까지 공사계획 인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신한울 3·4호기는 2022년과 2023년 말 차례로 준공할 예정이었다.특히 신한울 3·4호기는 이미 7천900억원의 사업비가 진행된 사업이어서 산자부의 발전사업 인가 여부에 따라 법정소송 등 파장도 만만찮을 전망이다.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시작 초기부터 관련 업계를 포함해 원전지역 주민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저항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한국의 원전산업을 매몰시킨다는 지적도 받았다. 최근에는 산자부에 대한 감사원 감사에서 월성원전 1호기의 경제성 조작과 증거인멸이 드러나고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정부가 무리하게 탈원전을 추진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검찰의 수사와 법정 소송 등 산자부의 원전 리스크가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떠나 원전산업에 대한 국가적 이익을 광범위하고 정확하게 판단할 시점이 됐다. 원전 1기의 경제적 효과는 약 50억달러라 한다. 만약 이를 수출시 중형차 25만대, 스마트폰 500만대를 판매한 것과 같다.또 세계 최고의 국내 원전기술이 사장되고 원전관련 기술자가 떠나가는 원전 생태계 자체가 소멸되는 현상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다. 오랜 기간 집적한 국내 원전산업의 회복도 어려워진다. 업계서는 탈원전 정책으로 1∼2년내 2천여개의 중소기업이 줄도산 할 거라 한다. 국민의 70% 이상이 원전에 찬성하는 여론조사도 있다.정권에 따라 왔다갔다 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 관련부처의 과학적이고 합당한 판단이 필요할 때다. 신한울 3·4호기 건설로 최소한 침몰하는 국내 원전산업을 막는 산자부의 용단이 있었으면 한다.

2021-01-12

화수분

이솝우화에 나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어느 농부가 농장에 들어온 거위를 잡아먹지 않고 집 기둥에 묶어 놓았더니 거위가 다음날 황금알을 낳기 시작해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욕심이 생긴 이 농부는 어느 날 한꺼번에 황금알을 얻겠다는 생각으로 거위의 배를 칼로 가른다. 그러나 거위는 황금알은 커녕 보통의 거위처럼 죽고 말았다.이를 각본한 또다른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아주머니가 집으로 굴러들어온 황금거위에게 사료를 많이 주면 황금알을 더 많이 낳을 거로 생각하고 먹이를 잔뜩 주었다. 그런데 거위는 살이 너무 많이 쪄 알을 하나도 낳지 못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두 이야기는 지나치게 욕심을 내면 되레 일을 망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화수분은 재물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보물단지를 가르키는 말이다. 중국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만든 거대한 물통을 하수분(河水盆)이라 했다. 너무 커서 수십만 군사가 먹을 황하의 물을 담고 써도 물이 줄지 않았다고 한다. 하수분에서 재물이 자꾸 새끼를 치는 화수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필요한 물건을 화수분에 넣으면 그 안에서 새끼를 치고 다시 재생산되는 화수분은 오래전부터 가난한 사람의 소망 단지다. 서양에서 소원을 빌면 무엇이든 다 들어준다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와 비슷한 이야기다.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살포해야 한다는 여당 지도부의 의견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반기를 들었다고 한다. 국가 빚이 천문학적인데 “재정을 화수분처럼 봐서는 안 된다”는 경제관료의 소신 발언이다. 문제는 국민 세금인 국가재정을 아직도 화수분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이 많다는 것이다. 그의 소신이 관철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1-12

낙태죄 폐지 이후 나아가야 하는 것

2021년 1월 1일부로 낙태죄가 입법 공백 상태에 놓였다.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12월 31일까지 대체 입법을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체 입법 기간을 지난 현시점에선 낙태죄 일부 효력이 상실되었고 명확한 대체 입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사실상 낙태죄는 폐지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완전한 폐지는 아니다. 현재 입법이 공백으로 놓여 있기 때문에 의료계와 여성계 전반적으로 혼란이 일고 있다. 의료계는 선별적 낙태 거부를 선언하였고, 이에 따라 병원과 의료진마다 낙태 가능 여부나 금액이 천차만별이다. 또한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대책 마련과 법적인 보호 장치가 없어, 빠르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그간 임신 중지가 필요한 여성들은 암암리에 인터넷 사이트나 비공개 카페를 통해 임신 중지에 관련된 정보를 얻었다. 미프진과 같은 유산 유도제를 비밀리에 구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복용하거나 부작용으로 인해 응급실을 찾는 여성 또한 적지 않았다. 앞으론 이와 같은 상황을 줄이기 위해 누구나 간편하고 빠르게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임신중지를 위한 각종 정보와 자료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상담이나 구체적인 의료 가이드라인 또한 의료진과 전문가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제정되어야 한다.낙태죄 폐지를 말하는 여성들은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분명한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재생산 권리는 성관계, 임신과 출산 여부와 시기, 자녀의 수 등 출산에 해당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여 여성이 스스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모자보건법 14조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유전으로 정신 장애나 질병이 있을 시,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혈족이나 인척간의 임신, 임신 지속이 모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시에만 임신 중단이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강간, 준강간의 경우 입증이 어려웠으며, 여성의 입장에서는 신체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여겨졌다. 또한 과거 국가 차원에서 산아 제한 정책을 펼치며 오히려 임신 중단의 범위를 허용하는 법으로 기능했다. 새로 개정되어야 하는 모자보건법의 방향은 임신과 출산이 더는 국가의 인구 정책 수단이 아닌, 개인의 선택이자 권리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남녀의 결혼 제도 없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선택하는 ‘자발적 미혼모’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방송인 사유리 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고심 끝에 결혼하지 않고 엄마가 되기로 결정했다”고 말하며 임신 소식을 알렸다. 산부인과 검진 결과 자신의 난소 나이가 48세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서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는 원치 않는 결혼 대신, 자신이 직접 아이를 선택하여 낳아 기르는 것을 택했다.중국 광저우에 살고 있는 이에하이양은 갈색 머리와 하얀 피부, 푸른 눈을 가진 아이를 안고 있다. 밝게 웃는 아이의 얼굴은 얼핏 보아도 서양인에 가깝다. 28살, 사랑하는 남자는 없지만 아이를 갖고 싶었던 이에하이양은 외국으로 가서 정자를 직접 고른 뒤 자신의 딸인 ‘도리스’를 낳았다. 홀로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였고 몇 년 뒤 놀라울 만한 성과를 이끌어낸 그녀는 자신의 경제적 여유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책임감을 고려한 뒤, 스스로 임신과 출산을 결정했다.그녀들은 자신의 의지로 출산을 택해 새로운 가족 형태를 꾸렸다. 과연 한 사람이 두 사람 몫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과 우려를 내비칠 수 있겠지만, 누구도 한 가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개인의 행복을 정의할 수 없다.아직 임신 중단 세부 절차나 구체적인 법안 등 남아 있는 문제로 갈 길이 멀다. 낙태죄가 사라진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실질적이면서도 유용한 법안들이 마련될 수 있도록 개인의 지속적인 관심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이나 문화, 교육 등 바뀌어야 할 것이 많다. 임신중지에 취약한 여성에게, 같은 고민을 나누는 친구에게, 여성 스스로가 신체 결정권을 내릴 수 있는 날이 어서 주어지기를 바란다.

2021-01-11

참사람 장경식

북극한파와 함께 폭설이 쏟아진 지난 6일, 제주도에서 부고 하나가 날아들었다. 제주 ‘봄 연구소’ 장경식 소장이 새해 첫 날 뇌출혈로 쓰러진 후 결국 세상을 떠난 것이다. 역사나 인명사전에 등재될 수 없는 한 개인이지만, 이 땅에서 60년을 지내온 그의 삶을 공적인 사건으로 기록하고 싶다. 그는 사회적 약자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며 특히 제주 지역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그가 지향한 ‘발전’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연대의 감각이 지역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에 봄비처럼 퍼지는 일이었다. 아내인 봄 정신건강의학과 신윤경 원장과 함께 그 봄비의 마중물이 되어 왔다.‘장경식 추모’ 단체채팅방에는 2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슬픔과 위로를 나누며 고인을 추억했다. 빈소에는 대안학교인 제주 볍씨학교 학생들이 한달음에 달려와 생전 고인이 좋아했던 노래 ‘그대와 함께 평화가 되어’와 ‘아침이슬’을 울먹이며 합창했다. 유가족들은 너무 이른 이별에 황망해 하면서도 더운 파도처럼 밀려오는 조문객들의 손을 잡고 의연하게 슬픔을 견뎠다. 청소년, 이주노동자, 영세상인, 가톨릭 신부, 스님, 작가, 교수, 음악가, 공무원 등 수많은 이웃들이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발인일에는 솜뭉치 같은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렸다. ‘장경식의 친구들’은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손에 손 잡고 하늘 향해 “안녕, 안녕!” 외쳤다. 고인이 어떠한 삶을 살아 왔는지 짐작할 만하다.2008년, 아내와 제주도로 온 후 이주민이라는 제한적 위치에도 아랑곳 않고 ‘불의 전차’처럼 달리며 지역을 위한 활동들을 펼쳤다. 그가 걷어 부친 굵은 팔뚝은 척박한 땅을 일구는 개척의 호미나 다름없었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활달한 생명력이 우렁우렁 넘치는 그의 호탕한 웃음은 끝내 여러 장벽과 빗장을 열었다. 아내가 개원한 봄 정신건강의원에 별도의 사무실을 두고 ‘돌봄’, ‘들여다봄’, ‘새싹이 돋는 봄’이라는 뜻의 봄 연구소를 열어 지역민들에게 인문학을 통한 마음 치유와 회복을 선물했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볍씨학교 등을 물심양면 후원하며 아동과 청소년 봉사에 힘썼다. 또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을 향해 혐오와 적대감이 일어날 때 그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하고, 지역사회 인식을 바꾸어 난민들이 안전하게 정착하도록 밤낮없이 일했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유목민’이라는 인문학 모임을 이끌며 독서와 영화 감상, 명사 초청 강연 등을 펼쳤고 그 모든 활동 안에는 반드시 토론이 자리 잡게끔 했다. 그가 꿈꾼 세상은,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다양한 생각들이 막힘없이 흘러 큰 바다를 이루고, 그 바다에서 생명과 평화가 탄생하는 ‘행복의 나라’였다. 그는 물리적인 연대보다 정서적, 정신적 연대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연대를 위해 불쏘시개, 마당발, 스피커를 자처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감정표현에 거침없으며,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 센 데다 ‘투머치토커’라 때론 일부러 피해야했지만, 그는 어린아이에게도 늘 배우려 했고, 자신과 다른 정치적 견해에도 귀 기울이는 열린 사람, 넓은 사람이었다.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재야운동가 백기완 선생,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인권운동가 서승 교수 등을 아버지처럼 모셨고, 청소년, 어린아이, 여성, 이주노동자를 살뜰하게 챙겼다. 단체채팅방 인원의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그에게 신세를 졌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진심이었다. 막걸리와 꽃과 사람을 뜨겁게 사랑한 참사람, 장경식 소장은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 윤리, 타자에 대한 무한 책임이라는 비대칭적 관계를 온몸으로 살다 갔다.그는 떠났지만, 그가 수많은 이들에게 남긴 감명은 늘봄처럼 환한 빛이 되어서, 그를 기억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변의 10명에게, 그 10명이 다시 10명에게, 그렇게 또 10명, 10명씩 빛을 나눌 때, 볍씨학교 학생들이 그의 영전에 바친 노래처럼, 제주를 넘어 “온 누리 흘러넘치는 평화의 물결”이 될 것이다. 그렇게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안녕, 안녕!

2021-01-11

청동기시대 경주人, 신라시대 경주人

“신라” 하면 떠오르는 도시는 당연히 “경주”일 것이다. 경주는 월성, 동궁과 월지 등 궁궐은 물론이거니와 대릉원에는 높디높고 크디큰 신라시대 고분이 자리하고 있다. 이뿐이겠는가? 신라시대 유일한 별을 관찰했다는 첨성대, 9층목탑이 위엄있게 자리했을 대사찰 황룡사, 지금도 법등을 이어져 오고 있는 유명한 불국사, 분황사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문화유산이 자리한 곳이다. 그렇다보니 “경주=신라”로 통하게 됐다.그러나 경주지역에 신라가 자리하기 전부터 경주에는 선사시대 경주사람들이 살아왔다. 사람이 불을 이용하기 시작한 구석기시대에서 빗살무늬토기를 만든 신석기시대를 거쳐 무문토기를 만들고 청동을 다루기 시작한 청동기시대에도 말이다. 천년고도로 알려진 경주에선 천년보다 더 오랜 기간 청동기시대 경주 사람들이 살아왔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이다.청동기시대는 학자마다 견해의 차이는 있으나 보통 기원전 13~10세기에 시작됐다. 이 시기에는 농경이 본격화 되면서 한곳에 머무는 정주취락이 증가하고 무문토기와 각종 마제석기가 널리 사용된다. 물론 시대명이 말해주듯 청동기 제작기술이 발달하면서 청동검, 청동거울, 청동도끼 등 각종 무기류, 의기류 등이 등장한다. 청동은 구리(80~90%), 주석(10~20%), 납, 아연 등을 섞은 합금으로 당시 이러한 주조술은 매우 고도화되고 혁신적인 기술이었을 것이다. 아마 사람들은 박물관에서 그리고 역사책에서 한손에는 비파형동검을 다른 한손에는 팔주령(청동방울)을 들고 반짝반짝 빛나는 청동거울을 목에 건 청동기시대 사람을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이 지니기에는 매우 고가의 상위 1% 사람들이 지닐 수 있는 귀중품이었다고나 할까?경주지역에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람들이 거주했던 주거지, 사후에 묻힌 무덤 그리고 간절한 소망을 기원했던 의례유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주거지는 방형 또는 원형의 구덩이를 판 후 나무기둥을 세우고 풀 등의 초본류로 지붕을 이어 집을 짓고 살았는데 주로 구릉이나 하천 근처에서 확인된다.경주 인동리·금장리·신당리·충효동·용강동·모량리 등지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조사됐다. 양북면 봉길리 13-1번지 유적에서는 비파형동검이 출토되기도 했다. 무덤으로는 석장동 876-5번지에서 묘역을 표시한 지석묘와 화장묘로 추정되는 수혈이 확인된 바 있는데 수혈 내부에서 목탄과 인골편이 확인됐다. 의례관련 유적으로는 화곡리에서 청동기~통일신라시대 제단이 확인된 바 있다.정여선학예연구사최근의 발굴조사 중에서 주목되는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경주문화재연구소와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공동으로 조사한 경주 구황동 지석묘가 있다. 구황동 지석묘는 황룡사와 분황사 사이에 위치하는데 아마 이들 사찰은 잘 알고 있어도 그 사이에 커다란 상석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의 육안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 지석묘의 상석으로 여겨져 왔을 뿐이다. 사실 진흥왕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신라 사찰사이에 청동기시대 상석으로 추정되는 50톤 이상의 큰 돌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2005년 분황사 발굴조사 중 청동기시대 석관묘 3기가 확인됐고, 내부에서 마제석창과 석촉이 출토된 적이 있다. 또한 신라시대 원지(園池)로 분황사 동쪽에 위치한 구황동 발굴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도 확인된 적이 있다. 즉, 신라시대 사찰이 들어서기 전 이 일대에는 이미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증거가 남겨있었던 것이다. 그 증거 중 하나가 지금도 야트막한 잔디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구황동 지석묘이다.구황동 지석묘는 지난해 5월부터 여름이 끝나가는 그 해 8월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공동 발굴조사를 했다. 과연 이 큰 돌의 정체는 무엇일까에 대한 많은 궁금증을 갖고 시작한 발굴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거대한 돌이 드러나고 그 아래로 돌을 받친 작은 돌(지석)이 확인됐고, 주변에서 청동기시대 무문토기편이 확인된 것이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추정만 됐던 큰 돌이 청동기시대부터 이 자리에서 꿈적하지 않고 세월을 버텨온 것이다. 또한, 돌 주변으로는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석렬이 상석을 따라 방형으로 돌아가는 양상이 확인됐다. 청동기시대 경주사람들이 만든 커다란 돌이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히 큰 돌의 존재만이 아니라, 신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망을 비는 신성한 장소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황룡사와 분황사를 답사하게 된다면 꼭 한 번쯤은 사찰 사이 벌판에 오롯이 서있는 구황동 지석묘에 들러 청동기시대 사람과 신라시대 사람을 상상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길 바란다.

2021-01-11

처음으로 미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학문으로서의 미술사는 그 역사가 길지 않지만, 미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거의 맞먹을 정도로 오래됐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미술은 사람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사가 먼저 살펴보는 대상은 미술작품이지만, 미술작품을 통해 진짜 관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 ‘시대’이다.미술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시각적 창작물이다. 음악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창작한다면, 미술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이미지를 창작한다. 물론 이러한 구분도 지금에 와서는 모호해져 버렸다. 장르간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또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미술은 늘 모습을 바꾸며 어디론가 흘러가기 때문에 하나로 잡아 놓을 수 없다. 사람이 변하고, 시대가 변하듯, 미술도 변한다.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책이나 설명을 참고하곤 한다. 도움은 되겠지만 설명을 통해 작품을 보려는 잘못된 습관이 몸에 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글은 정보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전달해 주는 장점이 있지만 의미를 제한해 버리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미술을 보는 목적은 지식이나 정보습득에 있지 않다.미술을 본다는 것은 미술가들의 눈을 통해 세계를 본다는 뜻이다. 미술가의 눈을 통해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몇몇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먼저 벗어나야할 편견은 시각적 익숙함이다. 예컨대, 시각적 익숙함은 사과가 빨갛거나 초록이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림 속 사과가 꼭 그런 색일 필요는 없다. 미술가는 원하기만 하면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사과를 그릴 수 있다. 하지만 그림 속 사과가 실제 사과를 모방하기만 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오히려 현실에서 불가능한 사과가 더욱 흥미롭다.또 하나의 편견은 지식이다. 모든 지식이 편견은 아니지만 고정되고 확고한 신념은 편견일 가능성이 높다. 우물 안에서 바라본 하늘이 하늘 전체일 수 없다. 보고 싶은 대로 짜 맞춰 보려하거나, 알고 있는 지식을 미술에서 확인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미술의 참맛을 즐길 수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태도를 버려야 보는 것이 즐거워진다.아주 자주 미술가의 유명세가 미술작품 보는 것을 방해한다. 유명한 미술가의 이름 보다 더 설득력 있는 무기는 없다.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몇 개의 선이 유명한 미술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순식간에 그것은 걸작처럼 취급된다. 여기에 전문가들이 합류해 그럴싸한 양념을 뿌린다. 검증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는 미사여구로 극찬이 이어진다. 이 같은 논평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검증하는 것은 불필하다. 이것은 유명한 미술가가 그은 선이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그 이름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것은 위선이거나 거짓이다.작가의 유명세와 함께 작품 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작품의 유명세이다. 미술과 상관없는 수많은 스토리가 루브르의 ‘모나리자’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만들었다. 장사진을 이룬 인파 속에서 모나리자를 감상하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모나리자의 실물을 확인하고 싶은 이유는 단지 이 그림이 유명하기 때문이다.특정 작품에 유명세를 입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신기록을 달성한 천문학적인 작품가격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라든지, ‘한국 미술품 최고가’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일순간 유명세를 탄다. 작품과 작품의 가격이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누구도 작품성을 정확히 계산해 작품의 가격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비싼 작품이 꼭 훌륭한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일일이 다 언급할 수는 없지만 미술을 둘러싼, 하지만 미술 그 자체와는 무관할 수 있는 편견들이 너무나 많다. 이것들을 하나씩 걷어내 버리면 미술이 조금씩 더 선명하게 보인다. 미술 자체가 선명하게 보일수록 보는 즐거움은 더욱 커지게 된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1-01-11

정조의 애민(愛民)과 세금 도둑들

강희룡 서예가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 속에 규장각직제학 정지검이 국왕의 언행을 법에 따라 기록해 후일 반성의 자료로 삼자고 건의함으로써 기록된 책인 일득록(日得錄)이 있다. 이 ‘일득록6’에 ‘백성이 굶주리면 나도 배고프고 백성이 배부르면 나도 배부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보면 정조의 애민(愛民)사상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정조는 숙빈 최씨(영조의 어머니)의 묘소가 있는 소령원 부근 논에서 추수한 벼를 대궐 뜰에 가져다가 말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벼를 말리다가 낟알이 자리밖에 떨어져 있으면 내시를 꾸짖으며 하나라도 주워 올리게 하고는 ‘하찮게 보이는 낟알 하나라도 농부들이 갖은 고생하며 키운 것이니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래서 나는 밥을 먹을 때 물에 말아 남긴 것까지도 내시들이 먹기 싫어 땅에 버릴까 봐 배가 불러도 매번 다 먹는다.’ 하였다. 직접 농사짓는 현장을 가지는 못했더라도 한해 농사지은 벼를 손 위에 올려놓고 살피면서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헤아리는 성군으로서의 정조의 모습이 그려지는 대목이다.백성들이 고생하며 지은 곡식 한 톨 버려지는 것을 아까워한 정조의 자세를 오늘날의 위정자나 고위공직자들에 비추어 볼 때, 이들도 과연 국민들을 그렇게 보고 있을까라는 물음이 든다. 오늘날에는 농산물 대신 국가를 유지하고 국민생활의 발전을 위해 각자 소득 일부분을 국가에 세금으로 납부한다. 이 세금의 역할이 분명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하여 각종 세금을 만들어 거둬들이는 것이다. 이 세금을 태풍에 비유한다면 태풍은 비록 자연과 많은 시설물들을 훼손하고 생명을 앗아가지만 열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적조현상을 완화시킨다. 세금 역시 강제로 빼앗기는 것 같지만 국가안보나 공익시설 설치, 복지향상으로 편리하고 안전한 생활을 향상시키며 빈부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유럽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세금이라고 한다. 우리 역시 세금을 적대하고 세율을 올린다는 뉴스를 들으면 격렬하게 반응한다. 자기가 번 돈을 스스로가 아닌 정부가 개입하여 일부 가져가면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세금 없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설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세금이 많다고 불평하기 전에 세금이 어디에 쓰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어떤 혜택을 받고 세금이 없는 세상을 한번 상상해본다면 세금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이 조금씩 변화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세금을 가장 아깝게 생각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일 안하는 국회다.코로나19라는 전염병의 영향으로 국민들의 경제토대와 삶이 무너져 피폐해진 이 마당에 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 수당은 인상되어 일인당 1억5천만원이 넘으며 구속돼도 월 1천만원 가져간다. 거기다가 8명이 넘는 보좌관 연봉을 합치면 천문학적인 세금을 서로 멱살 잡고 싸우며 도둑질하고 있는 것이다. 세금이 가장 아름다운 기부금으로 여겨질 때, 그 나라는 진정한 민주주의며 선진국일 것이다. 정조가 백성을 사랑했던 애민사상을 위정자들은 되새겨야 할 것이다.

2021-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