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익을 대로 익은 날 축제를 즐겼다. 경주 시민이라는 이름 덕분에 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볼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화려한 노래와 춤사위가 우리들의 가을에 군불을 지폈다. 고인이 된 이영훈의 자작곡들로 만들어진 이야기에 맞춰 노래가 울려 퍼졌고, 배우들의 열연이 이어질수록 관객들의 마음도 아랫목처럼 뜨듯해졌다.
그중에서도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가슴속에 피어나는 감정을 그대로 두자는 노랫말은 뭉클했다. 삶을 살아내면서 많은 사람이 다가왔다가 멀어져 갔다. 시절 인연이란 말처럼 내버려 두어야 하는데 미련의 끈을 길게 늘였더랬다. 옛사람이 떠난 자리로 새로운 사람들이 틈을 메우는 것을 다 알지 못해 아쉬움에 눈물을 흘릴 때도 많았다. 그렇게 떠남과 만남이 평생이란 인생을 만드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후배 순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녀가 즐겼던 십 대의 노래들은 거의 이문세의 노래로 가득했단다. 이문세가 ‘별밤지기’를 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는 인기 짱이었다고 말하는 얼굴이 환했다. 그 덕택에 그의 노래 제목이 어린 그녀와 친구들의 모임 제목이름까지 되며 요즘의 BTS만큼의 인기를 누리는 그 가수였다는 이야기가 뮤지컬을 보는 내내 떠올랐다. 그의 노래들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색 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어느 학자가 그랬던가. 태어나 십 대까지 듣던 음악이 평생을 찾아 듣는 음악이 된다고. 20대까지는 신곡을 찾아 듣지만 30대가 되면서는 자신에게 익숙한 음악만 되풀이해서 듣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익숙한 노래들이 음악에 대한 기억저장고에 묻혀 있다가 이따금 사람이 그리울 때 꺼내 듣는다. 그래서일까. 나 또한 나이 차이가 나는 나훈아의 노래를 왜 좋아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가 꿈속에 나온 적도 있으니 어른들이 흥얼거리던 그 시절의 노래를 귀 너머로 듣고 자란 탓이겠거니 싶다. 지금도 나는 그의 음악과 열정이 묻어나는 리듬이 흘러나오면 쉽게 따라 하고 어깨가 들썩인다. 그리움처럼 말이다.
나의 저장고에 각인된 노래야말로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추억이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중에 앞면을 차지하는 곡은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노무라 소지로의 ‘대황하’, 최백호의 ‘작은 잎새’이다. 뒷면은 영화로 채웠다. 사랑스러운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로마의 휴일’이나 스스로 노래까지 부른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애송하는 노래처럼 쪽지편지로 접어서 마음 저장함에 넣어 두었다. 한 번씩 꺼내 보고 싶은 날, 넷플릭스나 OCN을 통해 다시 보면 추억의 그 영화가 내 등을 가만히 쓸어준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을 양산(量産)하는지도 모른다.
퇴근하다가 문득 이름이 떠오르면 핸드폰에서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건다. 수화기 저편에서 어쩐 일이냐고 묻지만 반가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지금 기억 날 때 전화를 하지 않으면 다시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나의 말은 진심이다. 상대도 “ 그렇지, 세월이 너무 빨리 가고 있어.” 너무 바쁜 일상의 급류에 휩싸여 작고 귀한 것들을 잃어갈 때 듣는 친구의 목소리는 나를 가다듬게 한다. 오래된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면 함께 했던 시간들이 영상기의 필름처럼 지나가며 세포 곳곳에 산소를 공급한다. 한동안은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 옆에서 기차를 바라본 적이 있다. 기차에 탄 사람과 밖에 있는 내가 서로 겹쳐질 때가 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린 언젠가 만난 적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서로를 단지 기억해내지 못할 뿐이란 생각을 하며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더러 데자뷔처럼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처럼 그것은 환영처럼 기억의 저편, 막힌 어느 부위를 긁는 느낌이다.
11월 늦가을 들녘을 보니 경주의 벚나무에는 두 번째 꽃이 피고 은행나무는 이미 계절의 여운을 남김없이 거두어들였다. 연못에 비친 하늘과 나무가 데칼코마니다. 그리움이 그대로 투영된 것일까.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낙엽처럼 플레이리스트에서 흩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