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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가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탁란(托卵)으로 새끼를 기르게 하는 새로 잘 알려져 있다.얌체짓으로 보이지만 뻐꾸기를 비롯한 두견이과 새들은 몸통은 큰 데, 다리가 짧아 알을 품기가 어려운 신체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실패확률이 높지만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걸 번식방법으로 선택해 진화했다. 그러나 탁란 성공률은 10%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뻐꾸기 90%가 탁란하는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첫 번식때는 잘 속지만 두 번째 번식 이후엔 뻐꾸기 알과 자기 알을 구별해서 골라내기 때문이다. 뻐꾸기 탁란과정을 보면 어미 뻐꾸기나 새끼 뻐꾸기 모두 필사적이다. 먼저 어미 뻐꾸기는 알을 낳기에 적합한 ‘붉은머리오목눈이’둥지를 찾아야 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집을 짓고있거나 이미 알을 품고있으면 안 되고, 알을 낳기 시작해 2~4개 있는 둥지를 찾아야 성공확률이 높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야 하니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둥지를 비웠을 때 얼른 자기 알 1개를 낳고, 붉은오목눈이 알 가운데 하나를 먹거나 버린다. 여기까지가 뻐꾸기 어미의 역할이다. 그 다음은 뻐꾸기 새끼의 몫이다.붉은오목눈이보다 며칠 먼저 태어난 뻐꾸기 새끼는 남아있는 다른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 행동이라지만 처절하다. 눈도 못뜬 채 깃털하나 없는 뻐꾸기 새끼가 다른 알들을 밀어내려고 넓은 등판과 날개를 이용해 안간힘을 다한다. 그러다가 다 못밀어내고 남은 알이 부화하면 태어난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 떨어뜨린다. 둥지안에 혼자 남았다고 끝난 게 아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어미보다 덩치가 더 커질 때까지 끊임없이 먹이를 먹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뻐꾸기 새끼는 배가 고프면 마치 “먹이를 안주면 천적에게 들키게 하고 말거야.”하는 것처럼 시끄럽게 울어댄다. 이런 협박(?)으로 어미가 먹이를 계속 가져오게 만든다. 그래야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동남아시아나 인도까지 혼자 날아갈 수 있다. 자기보다 큰 뻐꾸기 새끼를 키우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어미는 지 새끼 잃고 남의 새끼 키우느라 생고생이다.난데없이 웬 뻐꾸기 얘기냐고 하겠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 가운데 여권에서 크느라 고생한 사람들 얘기다. 바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롯, 최재형 감사원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그들이다. 이들은 남의 둥지에서 태어난 뻐꾸기가 둥지에서 살아남기까지 해야했던 비정한 생존경쟁 이상의 경쟁을 치르고 오늘의 자리에 올랐으리라.정부 여당은 이들이 야권의 당당한 대권주자로 거론되자 윤 전 총장에게는 X파일로 위협하는 반면, 대권 출마선언을 고려중인 최 원장에게는 중립성·독립성을 들어 흠집내고 싶어한다. 김 전 부총리에게는 아예 “여권 후보로 나와달라”며 구애작전에 나섰다.모두 허망한 짓이다. 장성한 뻐꾸기가 둥지 위를 날아 제 갈길 가려는 데,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무슨 재주로 막겠는가. 둥지에서 날아오른 뻐꾸기에게 이제 그만 미련을 버리시라 권한다.

2021-06-24

빈과일보의 폐간

빈과일보는 홍콩에서 발행되는 대표적인 반중(反中) 매체다. 빈과일보를 창간한 사주 지미 라이는 중국 광동성에서 태어나 11살에 홍콩으로 넘어와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파산한 의류공장을 인수해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지오다노를 창업해 아시아 굴지의 의류기업으로 키운 사람이다.빈과는 사과를 뜻하는 중국식 한자어다.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사과를 먹지 않았다면 인류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제시하며 제호를 지었다 한다. 사주는 1989년 중국 정부가 천안문 사태를 유혈진압하는 과정을 보고 충격을 받아 다음해 넥스트 매거진, 1995년에는 빈과일보를 창간했다고 한다.빈과일보는 작년 홍콩 보안법이 만들어진 이후 중국과 홍콩 정부를 상대로 날선 비판을 해오다 지난 12월에는 사주가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홍콩의 친중 매체들은 지미 라이를 외세와 결탁해 홍콩정부를 전복하려는 선동적 인물이라 평했지만 그는 홍콩 내에서는 범민주진영의 원로로 대접을 받아왔다. 홍콩 보안당국에 의한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의 잇따른 체포와 회사재산의 동결 등으로 빈과일보가 결국은 폐간을 선언했다. 24일 자를 끝으로 빈과일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언론의 자유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보여준 또 하나의 국제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빈과일보 모회사인 넥스트 매거진의 루이스 웡 편집장은 “언론의 자유를 만끽했으므로 후회는 없다”는 말로 폐간의 심정을 밝혔다. 또 홍콩의 한 교수는 “빈과일보가 폐간되면 홍콩은 가장 큰 민주적 가치 하나를 잃게 된다”고도 말했다. 미국 등의 비판에 홍콩 당국은 “언론의 자유 침해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홍콩 보안법 발효 1년만에 반중언론의 폐간이 진행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6-24

‘탈원전은 재앙’이라는 소리, 현실화될 수 있다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대구·경북의원들은 현 정부 탈원정책에 대해 집중 비판했다. 국민의힘 양금희 의원(대구 북구갑)은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산업통상자원부도 SMR(소형모듈원전) 예비타당성검사를 검토하고 있다. 안전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경우 기존 원전 수명을 연장하는 게 비용을 줄이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김영식(구미을) 의원도 이날 질의에서 탈원전 사업에 대해 집중거론했다. 김 의원은 “탈원전으로 원전산업 생태계붕괴, 협력사 연쇄부도, 대구·경북지역 경제 피해 등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 원전설계와 시공능력은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신한울 3·4호기 백지화로 노하우가 사라지고 있다”며 신한울 3·4호기 공사를 재개할 것을 요구했다. 김 의원이 이날 “탈원전은 TK지역에 재앙이다. 이 정부는 TK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했다. 총리는 신한울 1호기 운영허가 불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추궁하자,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미 완성단계에 있는 원전을 아무 일도 안하고 그냥 묵히는 문제는 빨리 정리해야 한다. 원자력 안전위원장에게 요청하겠다”고 답변했다.양 의원이 질의에서 밝힌 것처럼 탈원전과 탄소중립은 양립할 수 없는 정책이다. 비오는 날이나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전력을 생산할 수 없는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전력수요를 감당하겠다는 발상은 누가 들어도 비현실적이다. 에너지 전문가들도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소는 날씨와 계절에 따라 전력생산량이 변화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기대할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계속 유지하면서 오는 2050년에는 원전을 9기만 남기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24기인 원전을 계속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원전을 9기만 남길 경우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수준으로 줄어든다. 현재 원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기준 30% 정도에 이른다. 정부가 모자라는 전력에 대해서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 주변국에 의존하려는 구상도 하고 있다니, 전력안보를 고려하면 기가 막히는 발상이다.

2021-06-24

감염병전문병원 지역 설립에 거는 기대 크다

칠곡경북대학교병원이 대구경북의 감염병 의료대응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경북권 감염병전문병원 운영기관으로 최종 선정됐다.2017년 국립중앙의료원이 중앙감염병전문병원으로 지정된 이후 호남권에 조선대학교병원, 중부권에 순천향대천안병원, 경남권에 양산부산대병원이 지정된 데 이어 전국적으로 다섯 번째다.감염병전문병원은 감염병의 연구와 예방, 전문가 양성 및 교육, 중증환자의 집중진료 및 치료를 위한 정부 차원에서 시행하는 공공의료 구축사업이다. 이번에 선정된 칠곡경북대병원에는 감염병전문병원 건립에 따른 건축비 756억원 가운데 400여억원이 국비로 지원된다. 대구경북에서는 계명대 동산병원, 영남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등이 공모에 참여했으나 칠곡경북대병원이 낙점을 받았다.특히 지난해 2월 대구지역 코로나 사태 때 민간의료기관임에도 코로나 환자 치료를 위해 병원을 통째로 내놓았던 계명대 동산병원의 선정이 기대되기도 했으나 공공성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칠곡경북대병원이 최종 기관으로 선정됐다고 한다.중국 우한발로 시작한 코로나19 사태가 1년 이상 지속되면서 전 세계는 감염병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1억8천여만명의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가 390만명에 달한다. 국내서도 15만2천여명의 누적 확진자가 발생했고, 2천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현재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도발 델타 변이 바이러스로 발전해 확산세를 뻗치는 등 여전히 기세를 떨치고 있다. 또 변이를 통해 날로 감염 속도를 높이는 추세에 있어 경각심을 잠시도 늦출 수 없는 처지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확산은 앞으로도 인류를 위협할 중대 질병으로 주목되고 있으며 지구적 차원의 대응도 시급한 분야다. 이런 세계적 추이를 고려한다면 경북권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은 지역을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하며 의미 있는 일이다. 대구와 경북을 아우르는 감염병 전문기관으로서 그 역할에 거는 기대도 많다.대구경북은 코로나19를 가장 일찍 많이 체험한 도시이면서 수준 높은 시민의식으로 감염병 위기를 잘 극복한 경험이 있다. 이번 전문병원 설립을 계기로 지역의료계의 축적된 노하우가 더 빛나 감염병 예방에 있어 신기원을 기록하길 희망한다.

2021-06-24

끝나지 않은 6·25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한반도 북쪽의 김일성이 동족살상의 전쟁을 일으킨 지 72년이 되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3년 동안 계속됐던 전쟁은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지금까지 휴전상태로 있다. 6·25전쟁의 발발부터 전개과정은 명약관화한 일인데도 아직까지 논란거리로 만들려는 자들이 있다는 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수많은 희생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인데, 이 정부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6·25가 김일성의 남침이었다고 말하는 걸 꺼리는 자들이 있다니 어찌 통탄할 노릇이 아닌가.김일성이 남침준비를 해놓고 소련의 허락을 받기 위해 몇 차례나 스탈린을 찾아가서 간청한 사실도 이미 다 밝혀진 바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재가를 미루던 스탈린이 1950년 4월 김일성과 박헌영이 비밀리에 다시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야 중국이 동조한다는 조건으로 남침전쟁을 승인하였다. 이처럼 6·25전쟁은 김일성과 스탈린, 마오쩌둥이 치밀하게 모의하고 계획한 전쟁이었다. 반면 대한민국은 북한의 기습남침에 대비하지를 못하였다. 그해 6월초엔 사단장 등 지휘부의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었고, 6월 23일부로 경계강화 조치를 해제시켜 전방부대 병력의 3분의 1가량이 외출이나 농번기 휴가를 나간 상태였다.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은 38도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였다. 김일성은 그날 오후 1시 35분 평양방송을 통해 ‘남한이 오늘 아침 옹진반도에서 해주로 북침을 하여 반격을 한 것’이라고 남침을 은폐하였다. 졸지에 기습을 당한 국군은 사력을 다해 대항하였으나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에 역부족으로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말았다. 남침 사실을 보고받은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즉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지시했다. 유엔은 신속히 북한의 남침을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38도선 이북으로 퇴각을 요구했으나 북한이 이를 무시하자 유엔군의 파병을 결의했다.유엔의 결정에 따라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이 병력을 지원했고 5개국이 의료지원, 39개국이 물자나 재정을 지원했다. 맥아더가 이끄는 유엔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해서 9월 28일에는 서울을 수복하고 낙동강전선까지 밀고 내려왔던 북한군의 보급로를 끊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명령으로 10월 1일에는 국군 3사단이, 7일에는 유엔군이 38선을 넘었고, 10월 19일에 국군1사단이 평양에 입성했다. 여세를 몰아 선발대는 압록강까지 진격했으나, 10월 19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여 서울을 다시 빼앗겼다가 1952년 서울을 재수복, 3월 말에는 38선을 회복하였다. 미국과 소련이 막후 접촉에서 휴전에 동의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체결하였다.그리고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사의 유례가 없는 최장기간 휴전상태로 전쟁의 위험을 안고 사는 처지다. 더구나 김정은 일당은 지금 핵보유국임을 천명하고 대한민국을 협박하고 있다. 북쪽의 비대칭 핵위협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한미공조를 공고히 하는 수밖에 없다. 6·25를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악의를 가지고 왜곡하는 것은 심각한 해악이다.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진상을 알고 대처해야 한다.

2021-06-24

지역균형과 의과대학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정년을 마친 모든 이들의 관심사는 ‘어디서 살 것 인가?’이다. 많은 포스텍 교수들은 정년퇴임을 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편한 도시 생활이 좋기도 하고 자녀들이 직장을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그러는 가운데에도 포항이나 경주, 대구 등 영남 쪽의 조용한 곳을 찾아 퇴임 후 남은 생을 즐기며 보내려는 분들도 종종 있다. 필자도 포스텍을 떠나 디지스트가 있는 대구 현풍에서 살다가 다시 아주대가 있는 수원에서 지내고 있다. 물론 주말에는 포항, 대구 등 영남권으로 자주 내려와 지낸다.포항이나 현풍, 그리고 영남권에는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전원적인 환경이 있고 맑은 공기와 여유 있는 길이 있어서 좋다. 완전 은퇴 후에는 이곳에서 살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의료 시설이다. 전국이 문화적으로 평준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의료시설이 비평준화 되고 있는 게 문제다. 포항이나 현풍의 공통점은 대학병원과 같은 대형병원이 없다는 점이다.최근 지역의 대학별로 의과대학 설립의 욕구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대학별 특성을 살려서 지역 내 성격이 다른 복수의 의대를 유치하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포항에는 포스텍의 특성을 살려 연구중심 의과대학, 안동에는 안동대에 공공의료와 백신연구개발에 특성화된 국립 의대를 유치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경북 북부지역에 공공보건의료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한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치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권역별로 국립대학 내 의과대학(공공보건의료대학)을 설치하고 국가는 학생에게 수업료·교재비·기숙사비 등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요즈음 포스텍은 오래전부터 염원이었던 의과대학을 세우려는 욕망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경북지역은 전국 평균 의사 수가 서울의 50% 정도 수준에 그치고 있어서 포항에 의대를 설립하는 일은 시급한 것이고 포스텍이 설립된 30여 년 전부터 여러 차례 논의되었던 문제이다. 경북 인구 1천명 당 의사 수는 2017년 기준 1.34명으로 거의 전국 최하위라고 한다. 물론, 상급종합병원도 전무한 실정이다.경북뿐만 아니다. 여러 지역에서 지역 대학과 지자체들이 의대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의대 유치 논의가 코로나19 사태로 공공의료 확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다시 수면 위로 빠르게 떠오르는 모양새다. 대학 간 경쟁을 넘어 전문대와 일반대 연합전선으로 확대되는 등 다각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이제 전국 지역의 평준화를 통해 수도권 인구집중을 분산시켜야 한다. 인구분산에 가장 중요한 인프라 중에 하나가 의료 시설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역균형을 위한 의과대학 설립과 대학병원 등이 지역마다 좀더 많아져야 한다. 특히 역량 있는 대학들에게는 과감하게 문호를 개방하여야 한다.전향적인 정부의 사고가 절실할 때이다.

2021-06-24

산업화와 민주화, 그 다음 서사는?

장규열 한동대 교수 최근 2030 청년층의 대두에 관한 해석이 여러 가닥이다. 지난 세기 산업화의 높은 언덕을 힘들여 넘어온 세대가 있었다. 곧이어 건너왔던 민주화라는 산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 길지도 않았던 반세기 남짓 세월 동안 성큼성큼 지나온 이야기들이라서 모두에게 익숙한 것으로만 알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1950년대 이후 세대에게 한국전쟁이 옛날이야기가 아니었던가. 1980년대 이후 세대에게는 유신도 광주도 기억 속에 없는 서사인 셈이다. 지난 역사로부터도 배워야 할 테지만, 오늘 우리는 새로운 기억을 지나가는 중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새로운 서사(敍事)는 무엇일까.대한민국의 국격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게 아닌가. G7체제를 D10(Democracies10)으로 확장하여 재편하면서 대한민국이 들어갈 모양이다. 국제적 경쟁구도의 아래쪽에서 오로지 모방하고 추격하던 세월을 넘어 어느덧 앞자리에 와 있다는 게 아닌가. 그게 사실이라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건넌 후에 우리가 다듬어야 할 스토리의 성격은 이미 정해진 게 아닐까. 잘 살아보겠다는 산업화의 다짐을 건너며 사람답게 사는 민주화된 세상을 만들었다. 이제는 누구든 보듬고 아우르며 나누고 소통하는 가운데 이웃에 유익을 끼치는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잘 사는 나라에서 사람다운 삶이 펼쳐지며 주변에 기여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나라 안의 다문화는 어디쯤 와 있을까. 낯선 얼굴들을 위한 배려는 얼마만큼 하고 있을까. 2018년 현재 다문화가구원이 100만을 넘었다. 5천만 인구의 2퍼센트에 달한다. 학생인구통계에 따르면 전국 초등학생 가운데 이미 4퍼센트가 다문화가정 출신이라고 한다. 나라 밖을 살피기 전에 우리 안에 이미 진행되고 있는 다문화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어쩌면 아직도 우리는 낯선 그들을 그저 낯설게만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라의 다문화정책은 다양한 문화를 우리 문화로 받아들이겠다는 인식과 다짐으로 시작해야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우리의 생존과 자존감을 세우려는 노력이었다면 우리의 새 지평은 ‘세계를 담는 큰 그릇’이어야 한다.모방과 추격 끝에 추월하고 있다. 앞자리에 서서 어제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과거를 닮은 습성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얼른 찾아내어 버려야 한다. 생각이 내일에 닿아야 하며 그러려면 상상력과 창의로 승부해야 한다. 껍데기만 젊은 가짜는 차라리 배격해야 한다. 공정과 평등은 기본이 아닌가. 젊은 생각과 싱싱한 꿈으로 가득한 세대가 나타나야 한다. 나이로만 정하지 않기로 하자. 숫자에만 휘둘리지 않기로 하자. 세계를 바라보는 너른 지평을 향하기로 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넉넉한 시선을 만나기로 하자.역사에서 배우는 민족이 되자. 전후 상처에서 산업화로 일어났으며 그 부작용을 민주화로 극복했다면 이제는 소통하고 공감하며 이웃과 세계를 담는 백성이 되었으면 한다. 인류가 저질러 온 실수와 패착에도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이 살려내는 세상, 멋지지 않은가.

2021-06-23

코로나19 방역 완화 서둘지 말아야

정부가 다음 달부터 시작할 코로나19 관련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조치를 발표하면서 지역사회의 일상복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식당 등 자영업자 중심으로 모임 인원수 완화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업소에는 벌써부터 모임 예약이 들어와 다소 들뜬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정부의 새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대구시는 29일 세부 실행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의 새 개편안은 인구 10만명당 확진자 수를 기준으로 기존의 5단계를 4단계로 조정하고 사적모임 인원제한도 대폭 완화한다.다음 달부터 수도권은 최대 8명까지 모임을 허용하고, 비수도권에서는 인원제한이 없어진다. 그러나 지역에서의 확진자 발생 정도에 따라 자치단체가 인원 수를 자율적으로 제한하게 된다. 현재 대구시는 사적모임 인원 수의 전면 해제보다는 이행기간을 거쳐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쪽으로 검토 중이라 한다. 이행기간 2주 동안 사적모임 인원 수는 8명 이내가 유력하다고 한다.대구는 23일 6명의 신규 감염자가 발생했고 전날에는 3명이 발생해 지난 3월 23일 이후 3개월 만에 최소 숫자를 기록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지난달 발생한 유흥주점발 코로나19 확산세가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어느 정도 진정국면을 찾았으나 변이 바이러스가 발견되는 등 지인과 사업장 중심의 집단감염 우려는 여전히 있다 봐야 한다.전국적으로도 300명대를 보이던 하루 평균 신규 감염자가 23일에는 600명대로 다시 회복되는 등 코로나 신규 확진자 발생도 오락가락한다. 전문가들은 변이 바이러스 확산이 변수라고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급속히 전파되고 있으며 올 가을철 대유행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도 많지는 않으나 15일 기준으로 델타 변이 감염자가 155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아직은 방역의 완결단계는 아니다. 국내 백신 접종률이 이제 30%선에 도달해 있어 백신접종 속도도 더 내야한다. 다행히 백신접종으로 델타 변이를 막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대구시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는 일상복귀 기대감으로 너무 들뜨지 말고 확진자 발생, 백신 접종률, 의료역량 등을 감안해 완만하지만 완벽하게 추진돼야 할 것이다.

2021-06-23

델타변이

델타변이는 2020년 10월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를 가리킨다.당초 ‘인도 변이’로 불리다가 ‘델타 변이’로 이름이 바뀌었다. 코로나19 변이바이러스 가운데 알파(α·영국) 베타(β·남아프리카공화국), 감마(γ·브라질)와 함께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우려 변이(Variant of Concern)’ 중 하나다.WHO는 변이 바이러스가 △기존의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전파성이 증가하거나 중증도에 변화가 있는 경우 △백신과 치료제 등의 유효성 저하가 확인되는 경우 ‘우려 변이’로 지정하고 있는데, 델타 변이는 지난 5월 우려 변이로 분류됐다.델타 변이는 기존 코로나19 백신으로 방어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변이 바이러스보다 전파 속도가 빠른 데다 더 심각한 증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인도를 비롯해 델타 변이가 확산된 지역의 코로나19 환자들은 복통, 메스꺼움, 구토, 식욕 상실, 청력 상실, 관절 통증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원래 WHO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대해 주요 발생 지역명을 따서 영국 변이, 남아공 변이, 브라질 변이, 인도 변이 등으로 불렀다. 그러나 특정 지역과 국가를 차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5월 31일 △영국발 변이(B.1.1.7)는 알파(α)로 △남아프리카공화국발 변이(B.1.351)는 베타(β)로 △브라질발 변이(P.1)는 감마(γ)로 △인도발 변이(B.1.617.2)는 델타(δ)로 명명했다.‘델타 변이’의 세계적 확산이 코로나 재확산 우려를 낳고 있다. 집단면역의 완성이 델타변이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니 방역당국이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한시 빨리 서둘러주길 바랄 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6-23

민속마을로 새로 태어나는 영덕 괴시마을

고려후기 학자인 목은(牧隱) 이색이 태어난 영덕군 영해면 괴시마을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는 경사를 맞았다. 경북도로서는 경주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 영주 무섬마을, 성주 한개마을에 이어 5번째의 국가민속마을을 보유하게 됐다. 전국적으로 국가민속마을은 괴시마을을 포함해 8곳 뿐이다. 영덕군은 오는 29일 괴시마을 괴정 앞 야외무대에서 김현모 문화재청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을 초청해 기념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괴시마을은 경북 동해안에 남은 대표적인 반촌(班村·양반이 모여 사는 동네)이다. 괴시라는 마을이름은 목은(1328∼1396)이 직접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신의 고향 마을이 중국 원나라 학자 구양현의 마을인 ‘괴시(槐市)’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작명했다는 것이다. 마을주민들은 지금도 목은 선생을 기리는 ‘목은문화제’를 매년 열고 있다.이 마을은 조선후기 영남지역 사대부들의 주택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양 남씨 괴시파종택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재와 전통 가옥 40여호가 남아 있어 과거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대부분의 가옥은 안동 지역 상류주택 형식으로 알려진 뜰집에 사랑채가 튀어나온 날개집 모습을 하고 있다. 뜰집은 안채, 사랑채, 부속채 등이 하나로 연결되는 주택이다. 문화재청은 “괴시마을은 조선 후기 주택건축의 변화와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뜰집은 안동에서 산맥을 넘어 영덕으로 전래됐는데, 인문적 요인에 의한 건축문화 전파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이라고 밝혔다.민속마을은 과거 우리조상들의 의식주와 생업, 신앙, 연중행사와 같은 풍속이나 관습을 잘 보존하고 있고, 그 가치와 의미가 인정되는 경우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다. 괴시마을 주민들은 마을 자치회를 구성해 고택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마을의 전통성과 역사성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지금도 외국인을 비롯해 국내외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지만, 앞으로 주민들이 더욱 분발해서 괴시마을이 하회마을이나 양동마을처럼 전국적인 명승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021-06-23

행복을 담는 그릇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그날에 잡을 고기를 잡아 놓고 여유롭게 누워 쉬고 있는 어부를 보고 한 부자가 말하길 “더 많은 고기를 잡으면 더 큰 배를 살 수 있고 그러면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큰 부자가 되면 뭐하느냐?”고 어부가 물으니 자기처럼 평안히 삶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어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당신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나는 지금 평안히 삶을 즐기고 있는 중이요”했다. 소확행을 생각나게 하는 앤소니 드 멜로의 글이다.얼마 전부터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작은 것에서 확실한 행복을 얻는다는 뜻이다. 사회학자들은 미래가 없는 절망적인 청년들이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 나서면서 이 말이 생겼다고 한다. 청년들이 큰 꿈을 가지지 않고 현실 도피적 이기주의, 꿈과 이상을 쟁취할 진취성이 없는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하게 된다면서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미래가 암울한 칠포세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는 현실적인 생존전략으로 이를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미국의 신경생리학자 애넛 비튼과 이스라엘의 루드 그로스 이서로프라는 사람이 자살하여 죽은 시체와 자연사 하여 죽은 시체를 놓고 뇌의 구조를 정밀 분석해 보았더니 사람의 뇌 속에는 행복을 담는 그릇이 있는데 자살한 사람의 경우 보통 사람보다 아홉 배가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의학적인 용어로는 ‘엔도르핀에 대한 반응인자’이다. 행복한 사람은 뇌 속에 행복을 담는 그릇이 작아서 사소한 일에도 행복을 느끼지만 자살자의 경우는 행복의 그릇이 너무 커서 왠만한 것으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뇌 속에 행복을 담는 그릇의 크기에 달렸다는 것이 뇌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이다.옛날보다 더 살기 좋아졌는데 왜 사람들은 삶의 의욕을 더 잃어버리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까지 하게 되는 것일까? 왜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뒤지는 나라 방글라데시나 부탄 같은 나라의 행복지수가 우리보다 더 높을까? 그들의 뇌에는 우리의 뇌 보다 행복을 담는 그릇이 작기 때문이라고 뇌 과학자는 말한다.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 있었는데도 행복하지 못하여 또 다른 남편을 두고 있다고 했다. 예수는 이 여인에게 또 다른 남편에게서 부족함을 채우려 하지 말고 하나만으로도 그 속에서 마르지 않는 생수를 찾으라 했다. 이는 행복의 그릇을 크게 하지 말고 사소한 것으로도 채울 수 있는 작은 행복의 그릇을 만들라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는 뇌 속에 행복을 담는 너무 큰 그릇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2021-06-23

소리와 소리 사이

배문경수필가 열어둔 창으로 빗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누워 빗소리를 들으면 잠마저 촉촉해진다. 우물 속을 바라볼 때처럼 아득하고 깊다. 세상을 찬찬히 적시다 내게 다가와 손길을 서서히 뻗어 쓰다듬듯이 낭창하게 마음속으로 어둠에 섞인 비를 뿌린다. 어느 유년의 한때 미루나무가 제 그림자를 뻗어내던 가로수의 그림자를 밟고 걸었던 시간과 오버랩 된다.바야흐로 번성의 계절이다. 덩달아 봄꽃 사라진 자리로 소소하게 금계국이 피고 석류꽃이 피어난다. 무논에 모내기 끝낸 자리로 자욱하게 개구리소리 요란하다. 온몸으로 울어대는 개구리의 떼창에 여름 더위가 깊어간다. 밤새 저 왁자한 개구리 소리는 언젠가 들렸던 화개장터의 요란한 정오 같다. 산 것들의 생식이 빚어내는 절묘한 절규다. 가야금을 서서히 켜다 자진모리로 달려가며 숨이 멎을 듯이 극으로 치닫는 소리 같다.개구리 소리가 사라지는 아슴푸레한 새벽, 먼 산에서부터 뻐꾸기 소리가 낭창하게 들린다. 나무와 나무를 오가는 새소리가 밤을 걷어낸다. 상쾌하고 발랄한 아침, 신선한 바람의 전령사처럼 금세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다.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농약 등으로 새소리가 없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환희로 아침을 맞을 것인가를 묻는다. 나 또한 한겨울 날개를 제대로 펴지 못한 새들이 푸른 하늘을 나는 소리에 살아있다는 기쁨을 느낀다.분황사에 새벽 예불을 드리기 위해 절문을 열면 한꺼번에 밀려드는 새소리는 아득하다. 천국이 있다면 천당이 있다면 필히 이렇게 아름다운 새소리가 있을 것이리라. 초록의 잎사귀가 하늘을 덮은 절집마당에 하늘과 땅이 온통 새소리로 인해 기쁨과 가득 찬 환희를 맛본다.여름이 깊어갈 즈음, 고목의 꼭대기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를 듣는다. 이미 개구리가 짝짓기를 끝내고 소리 없이 떠난 뒤이다. 자지러지도록 매앰맴 소리에 하늘이 쩍 갈라질 듯하다. 절창이란 말이 맞을 것이다. 칠 년이란 긴 시간 동안 침침하고 캄캄한 땅속에서 견뎌냈으니, 어찌 작렬하지 않을까. 애벌레인 굼벵이가 땅속에서 올라와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펼치며 매미가 되는 모습은 불교에서는 해탈이고, 도교에서는 껍질을 벗고 새로운 몸을 얻기 때문에 재생이라고 한다.“매암이 맵다 울고 쓰르람이 쓰다 우니, 산채를 맵다는가 박주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에 뭇쳐시니 맵고 쓴 줄 몰라라.”이정선은 평시조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삶을 노래했다. 하지만 소음의 주범인 말매미는 플라타너스라 불리는 양버즘나무와 벚나무를 좋아하는데, 이 나무를 가로수와 정원수로 도로와 아파트 등에 많이 심으면서 번식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10마리 수컷 말매미를 대상으로 소리의 크기를 측정한 결과, 사람에게는 아주 고통스러운 수준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여름 소리에서 소음으로 전락한 매미 소리는 안타깝다.죽은 매미가 길가에서 발견되면 어느새 창 근처에는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귀뚜라미 소리가 가을 초입을 알린다.풀벌레 소리가 벼가 익는 소리처럼 익어갈 즈음 방안에 누워서 배가 아프다고 뒹구는 나를 달래던 소리가 있었다.“내 손이 약손이다. 내 손이 약손이다.”엄마는 배 위를 슬슬 쓰다듬으며 문지르며 자신의 손이 화타의 손인 양 아픈 배가 낫는다고 했다. 어느새 잠든 내가 깼을 때는 어둠이 대문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태어날 때, 삼신할미의 손에 궁둥짝을 철썩 맞고서야 첫울음으로 자타(自他)가 세상에 자신을 알린다. 잘살든 못살든 한 생애를 끝낸 자리에 울음보로 예(禮)를 다하니 시작과 끝이 결국 소리의 한 생애가 아니던가.지금, 뭇소리 속에서 어둠을 헤치고 내게 온 개구리 소리가 흐뭇하기만 하다.

2021-06-23

노간주나무를 찾아서

책장을 넘기다 산비탈 바위틈에 있는 노간주나무를 보았다. 나무가 도저히 자라지 못할 곳에 뿌리를 내리고 비스듬히 서 있었다. 더구나 물이라고는 전혀 없는 곳이었다. 하늘이 내려 주는 빗물만으로 지탱하며 사시사철 푸름을 지키고 있었다. 그 당당한 모습에 자꾸 마음이 갔다.때마침, 봄장마가 물러가고 말간 하늘이 얼굴을 내밀었다. 무작정 나무를 찾아 떠났다. 초록이 연두를 품고, 진분홍이 연분홍의 꽃들을 모두 삼켰다. 하늘과 산이 맞닿아 초록이 머무는 곳, 햇살과 바람, 구름이 쉬어가는 곳, 경상북도 수목원으로 향했다.수목원에는 나무와 풀 냄새가 자욱하다. 흠 하나 없는 무결점의 하얀 꽃들도 뒤질세라 화르르 가지를 흔든다. 무방비로 열려 있는 감각에 예고편도 없이 사방에서 맑고 푸름이 들어온다. 온몸의 세포가 자연스레 열린다. 나무 터널이 낸 길 따라,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얼마 가지 않아, 하늘을 담은 연못이 눈 앞에 펼쳐진다. 어제 내린 비에 하늘이 연못에 들었나 보다. 구름도 따라 내려와 올챙이와 벗하며 한낮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하양과 파랑만 있으면 단조로운가, 꽃창포와 노랑꽃 창포가 연못 주변을 맴돌며 배시시 웃고 있다. 나도 꽃 인양, 벤치에 앉아 이들과 함께 풍경 하나가 된다.얼마나 머물렀을까, 노간주나무를 보러 왔다가 잠시 풍경에 취해 넋을 놓았다. 이제 나무를 찾아갈 생각이다. 짐작하건대 노간주나무는 평지보다는 산등성이에 있을 것 같다. 오르막을 따라 산을 오른다. 나무마다 걸어 놓은 이름표를 들춰가며 생김생김의 모습에 눈을 맞추며 올라갔다. 한 골짜기를 훑어도 노간주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아래로 내려와 건너편에서 천천히 올라 가 보았다. 또 헛걸음이다. 덜컥거리며 내려앉는 마음을 바로 세웠다. 노간주나무는 측백나뭇과이기에 비슷한 모양의 군락지에서 찾아야겠다.노간주나무는 고향 마을 뒷산에 많이 있었다. 송아지에 코뚜레를 만들 때 노간주나무의 가지를 이용한다. 나뭇가지가 부드럽고 잘 부러지지 않아 제격이다. 고향 집, 소 우리에서 목 놓아 울던 그렁그렁했던 송아지의 눈빛과 그 옆에서 일손 늦어 겁먹은 아버지의 눈빛이 오버랩된다.농사일에 소는 든든히 살림 밑천이다. 거친 땅을 보드랍게 갈아엎을 때, 논에 물을 가둬 모내기 준비할 때도 소를 이용했다. 그만큼 소는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며 가까이 있는 순한 동물이다. 그런 소였지만, 소도 사람을 보고 일을 하는지, 일손이 없거나 느린 사람에게는 고집을 피우기도 한다. 어렵게 장만한 송아지도 우리 집에 온 지 며칠 만에 아버지와 기 싸움을 했다.책 속의 사진 한 장을 보고 무작정 길을 나선 게 잘못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고산 식물원이라 당연히 노간주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산등성이를 몇 번 오르다 지칠 때쯤, 노간주나무를 못 찾아도 숲속에서 어슬렁대도 좋겠다 싶었다. 마음을 그렇게 다잡는데, 눈은 이 골짜기를 훑었고 분명 저 골짜기에는 노간주나무가 있을 것 같았다.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 사무실을 찾아갔다. 노간주나무를 보러 왔다고 하니 담당 직원이 “노간주나무요?”라고 되묻는다. 경북수목원에는 노간주나무를 일부러 심지는 않았다고. 그런데 자생한 한 그루가 있다는 골짜기를 말해 주었다. 나무의 이름표는 달지 않았으니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한 그루가 있다는 소식에 무거웠던 발걸음이 가벼웠다. 천천히 산을 훑어가며 나무를 찾았다. 그곳을 찾아 헤맸지만, 노간주나무는 쉽사리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순혜​​​​​​​수필가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다. 돌아가기는 너무나 아쉽다. 마지막으로 문화해설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분도 노간주나무를 본 것 같지만, 그냥 지나가며 본 터라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사무실 직원이 말한 곳을 대략 설명하니 기꺼이 동행해 주었다. 근처를 다시 수색했다. 찾기가 어려워 수색이라는 말이 맞는다. 한참을 헤맸다. 수목원의 어둠은 빨리 달려들어 걸음을 돌려야 했다. 돌아가는 길에 일반인의 발길이 드문 수목원 뒤쪽 초소를 찾았다. 자연생태계의 식물을 찾아 연구하는 분이 계시기에 여쭈었다. 경주 남산 이무기 능선에 노간주나무 군락지가 있다고 한다.오늘은 노간주나무를 만나기는 힘든가 보다. 나무를 찾아 헤매다 지칠 때쯤, 우리 집 송아지가 코뚜레를 하며 눈물 흘리던 슬픈 눈과 어머니의 잔소리에 코가 꿴 아버지가 밭으로 가며 속으로 울었을 그 눈망울이 겹친다.더 비켜날 곳도 없어 보이는 사진 한 장이었다. 옛사랑을 찾아 먼 길 갔는데, 못 보고 발길을 돌린 것처럼 허전했다. 내일은 이무기 능선으로 향해야겠다.

2021-06-23

긴급공고 - 시험 정답 찾기

이주형 산자연중학교 교감 대한민국 모든 교사에게 어느 중학교 2학년 학생의 세상 진지한 질문을 공유한다.“선생님, 시험은 왜 치는지 꼭 좀 말씀해 주세요?”과연 학생의 질문에 교사들은 어떤 답을 할까? 학생이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답을 아는 교사가 있다면 꼭 산자연중학교로 연락 부탁드린다.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답을 보낸 교사에게는 특강의 기회는 물론 학생들이 준비한 큰 선물도 드릴 예정이다.그런데 필자는 학생들이 없어서 학교가 문을 닫고 있는 이 판국에 왜 시험을 치는지 정말 모르겠다. 지금 시험은 분명 구시대의 산물이다. 학생들이 지금보다 몇 곱절이나 많았을 때, 그때 공정한 선발을 핑계로 학생들을 점수로 줄을 세웠던 도구가 시험이다. 또 점수가 곧 학생 능력이라는 정말 몹쓸 국민 최면을 만든 구시대의 부조리한 평가제도가 지금의 시험이다.그 최면에 걸려 우리는 지금도 학생의 특성도, 개성도 모두 무시하고 학생들을 오로지 시험 치는 기계로 만들고 있다. 시험에 넌덜머리가 날 법도 한데 기성세대는 한풀이하듯 학생을, 자녀를 시험의 사지로 내몰고 있다. 그 모습에는 어떤 죄책감도 없다.우리 사회를 나타내는 말 중에 시험 만능주의라는 말보다 더 아픈 말은 없다. 정말 이 나라는 시험이면 다 되는 나라이다. 무엇을 하든 반드시 시험을 봐야 한다. 시험이 곧 힘이요, 시험이 곧 생존인 사회가 바로 지금 우리 사회이다.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학생이 우리 사회의 희망이요, 그 희망을 키우는 곳이 학교라고! 물론 학교의 순수한 기능만 보면 이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한 사람은 지금 학교의 상황을 전혀 모르거나, 아니면 긍정주의에 중독된 사람임이 틀림없다.학교는 학생의 꿈과 희망을 파괴하는 공작소가 된 지 오래다. 말로만 개개인에게 맞는 교육을 떠들어대지만, 막상은 모든 학생에게 하나의 목표를 주입하고 있다. 그 목표는 시험에서 1등 하기다. 그 과정이 어떻든, 주변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말고 오로지 1등만 하면 된다고, 그러면 다른 문제는 모두 자동으로 해결된다고 세뇌를 시키고 있다.6월 넷째 주! 학교 현장에는 학생을 공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부를 포기하게 만드는 시험이 또 시작되었다. 학생의 꿈과 희망을 살리는 곳이 학교여야 하는데, 지금 학교는 오히려 반대다. 학교는 학생을 공부로부터, 아니 아예 학교 밖으로, 나아가서는 삶의 밖으로 내몰고 있다. 언제까지 시험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학생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할까! 그 죗값을 어떻게 다 치르려고 학교는 또 의미 없는 시험판을 벌이는 걸까!대한민국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교사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린다.제발 “닥치고 시험이나 쳐!”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시험이 무엇인지, 시험공부는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왜 시험을 봐야 하는지에 대해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지하게 말해 줄 것을! 그 전에 교사들부터 시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것을!

2021-06-23

어느 프랑스 신부가 체험한 한말 사회 풍경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지난해 ‘플로리앙 드망주 주교의 서한집’(정진주 역)이 발간되어 재미있게 읽고 있다. 1875년 프랑스 솔쉬르에서 태어난 신부는 4년제 신학교 졸업 후 바로 한반도 선교사로 파견됐다.그는 부산지역 본당신부, 신학교 교수를 거쳐 1911년부터 1938년 선종 시 27년간 대구에서 가톨릭 주교로서 봉사하신 분이다. 그는 23세에 프랑스의 부모를 떠나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부모님께 소상히 편지로 보냈다. 프랑스의 부모님께 보낸 이 편지에는 100여 년 전 한말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담겨 있다.이 서간집에는 당시 주민들의 삶이 잘 드러나 있다. 부산 초량에서 시작한 그의 사목은 주로 가난하고 힘없는 조선인이 대상이다. 1900년 초엽 도로도 없던 시절 그는 조랑말을 타고 대구까지 원거리 사목 활동을 한다. 부산에서 대구까지 오솔길을 하루 16시간 강행군하여 3일 만에 겨우 대구에 도착한 이야기도 있다.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인 대구-부산은 당시는 무척 먼 거리였다. 그가 여행길 주막이나 여관에서 받은 밥상은 된장과 김치가 전부였으니 프랑스인인 그의 입맛에 맞을 리 없다. 당시의 시골 여관에는 호롱불만 있었고 그는 매캐한 골방의 돗자리 위에 지친 몸을 눕혀야 했단다.당시 조선에는 장티푸스와 이질이 대유행했고 치료약이 없어 죽어나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선교 신부도 여러 명 세상을 떠났다는 기록도 자주 등장한다. 신부는 대구에 왔다 돌아가는 도중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맨 적도 있었단다. 며칠 걸려 대구에서 조달된 키리네 몇 방울이 늦었다면 그는 살아나지 못할 뻔했다. 당시의 한국식구들이 놓인 초라한 여관방 이부자리에는 빈대와 이기 득실거렸다.요즘의 젊은이들이 본적도 없는 이 해충을 잡는데 몇 시간이 걸렸다는 사연도 있다. 세계적 의료 선진국이 된 오늘의 우리와는 너무 대조적인 당시의 사회상이다.이 서간에는 쇄국으로 일관하던 당시의 대한제국 말기의 흔들리는 국가 운명이 잘 드러나 있다. 조선조 말기의 관료 부패는 다반사였고 양반과 관료는 주민들의 삶을 속박했다. 신부는 가난한 신자를 돕기 위해 양반관료에게 그의 취업을 부탁한 적이 있다. 오히려 그 신자가 관청에 밉보여 불려가 고초를 당한 장면도 있다.당시 관료들은 ‘네 죄는 네가 알렸다’고 곤장을 치면서 상민을 괴롭혔던 것이다. 이제 이 나라는 한말의 호위호식하는 양반 관료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아시아에서 최고의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으니 신이 도운 것일까.신부가 체험한 어지러운 대한제국은 결국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버렸다. 선교 목적으로 파견된 많은 프랑스 외방선교회 신부들이 대원군에 의해 땅에서 순교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 35년의 탄압에서 해방되고 분단된 형태지만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해방 후 우리는 세계사에 보기 드문 경제 성장과 정치 발전을 압축적으로 이룩하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은 GDP 규모 세계 10위권이며, 우리 대통령은 G7회의에도 초대됐다. 이제 우리는 어려울 때 우리나라를 도운 우방들의 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2021-06-23

문화도시 포항에 박물관이 없다

박창원수필가 지난 2015년 12월 16일, 포항시청에서 지역 국회의원 주최로 국립환동해문명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간담회가 열린 바 있다. 포항에 국립박물관이 필요한데, 가까운 경주에 국립박물관이 있으니 역사박물관은 어렵겠고, 환동해문명사박물관이라는 특수박물관을 유치해 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행사였다. 그 당시 지역에서 다소 생소해 보이는 환동해문명사박물관 건립 문제를 논의한 것은 포항에 국립박물관을 유치하기 위한 하나의 아이디어로 시민들의 기대와 관심을 모았다. 포항시 역시 문명사박물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업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설 뜻을 밝혔으나 현재까지 구체화되지 못해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포항에 박물관이 필요하다고 하면 박물관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박물관이 있기는 하다. 호미곶에 국립등대박물관이 있다. 영일군에서 1985년에 장기갑등대박물관이란 이름으로 개관하고, 2002년에 국립등대박물관으로 승격한 이 박물관은 ‘등대’를 주제로 한 전문박물관이다.흥해읍에는 영일민속박물관도 있다. 이 박물관 역시 영일군 시절인 1983년에 향토의 민속자료를 수집하여 전시하는 전문박물관으로 건립되었다. 이곳에는 현재 약 4천 점의 유물이 있지만, 지정문화재 한 점 없고, 연구·관리할 전문 인력 한 명 배치되지 않은, 껍데기만 박물관인 채 방치되고 있다.포항바다화석박물관이란 것도 있다. 호미곶해맞이광장 새천년기념관 2층에 있는 이 박물관은 포항문화원장을 지낸 강해중 씨가 세계를 누비며 평생 동안 수집한 바다화석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2009년에 개관했다. 그러나 전시공간이 협소하고, 이마저 독립된 공간이 아닌 새천년기념관 내 일부 시설에 들어 있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고, 관람객이 적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포항에 있는 위의 세 박물관은 그 나름의 역할은 하겠지만 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포항에 제대로 된 박물관이 없기에 지역에서 발굴된 많은 유물들을 타 지역으로 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종종 생긴다. 대표적인 경우가 중성리신라비이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비석으로 흥해읍 중성리 도로공사장에서 발견되어 국보 제318호로 지정된 중성리신라비는 현재 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것 말고도 개발예정지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수습한 많은 유물들은 인근 국립경주박물관 수장고로 들어가고 만다.포항에는 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낼 역사박물관이 필요하다. 국립박물관 유치가 어렵다면 시립박물관이라도 지어야 한다. 도시 규모가 포항보다 작은 속초, 양산, 밀양, 김천, 경산, 삼척 등에도 시립박물관이 있다. 특히 포항은 근래에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되어 문화적 역량을 집중적으로 배양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박물관 하나 없이 문화도시라고 내세우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이다. 박물관을 지어 경주에 가 있는 중성리 신라비도 찾아오고, 국립경주박물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는 포항의 문화재를 가져와 전시해야 한다. 이거야말로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다.

202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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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미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X파일’은 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꽤 오래동안 인기를 모았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성과 논리,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사건을 소재한 때문이다.외계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정 사실화하면서 그 외계인은 미국 연방수사국과 음모 관계에 있으며, 영화 속 주인공은 그 음모론의 배후를 캐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권력의 음모에 의해 일어나는 사건으로 묘사된다.시청자들은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지만 미묘한 미지의 세상으로 자연 끌려간다. 보이지 않는 권력이 우리의 세상을 조작하고 있다는 현실적 느낌에 스스로가 매료되는 것이다. X파일 사건은 언제나 미궁으로 빠지고 마는 특징이 있다.선거전략으로 매번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네거티브와 마타도어는 비슷한 뉘앙스지만 확실한 차이점이 있다. 마타도어는 우리 말로 흑색선전이라 번역한다.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근거가 빈약한 내용을 조작해 상대를 곤경에 빠뜨린다. 특히 선거가 얼마 남지않은 시점에서 터져 나오는 음모적 내용은 자칫 치명적일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 선거에서도 여러 번 목격했다.반면에 네거티브는 팩트 자체를 갖고 있다는 점이 마타도어와 다르다. 상대 후보의 단점을 폭로하고 까발려 대중으로 하여금 상대방의 이미지를 나쁘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마타도어와 네거티브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다.윤석열 X파일 논란이 정국을 달구고 있다. 윤 전 검찰총장이 정치 참여 선언도 하기 전에 흑색선전부터 먼저 나도니 내년 대선이 얼마나 혼탁해질지 벌써 두렵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6-22

전동 킥보드, 안전한 교통문화로 정착시켜야

개인형 이동장치(PM)인 전동킥보드가 안전한 교통문화로 정착하려면 좀 더 많은 제도 개선과 함께 계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구경찰청이 도로교통법 개정 후 계도기간을 끝내고 전동킥보드에 대한 본격적인 단속을 벌인 결과, 한달동안 법 위반 행위 40건을 적발했다. 내용별로는 음주운전, 무면허운전, 신호위반, 안전모 미착용 등 다양하다.개인형 이동장치인 전동킥보드는 짧은거리에서의 이동 편리성과 친환경적 특성으로 젊은층 중심으로 이용자가 매년 증가해 왔다. 교통연구원에 의하면 2017년 9만8천대이던 개인형 이동장치 이용자가 2019년에는 19만6천대로 증가했다.그러나 이용자가 늘면서 관련 사고도 증가해 정부는 지난해 관련법을 개정하고 지난 13일부터 안전사고 단속에 나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안전모 착용 의무화 등 안전을 위한 조치는 마련됐으나 이 바람에 이용자가 되레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해 대중교통 보조수단으로 기대했던 사업의 안착에 문제가 생겼다는 지적이다.업계 관계자는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데 헬멧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이용률이 급감한다며 속도를 낮추고 헬멧 착용을 제외하는 방법으로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전동킥보드의 안전 사용 규제는 정부가 당연히 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규제로 이의 활성화에 방해가 있다면 대안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알려진대로 전동킥보드는 공유업체의 등장 등 시대변화가 낳은 새로운 교통문화다. 특히 단거리 교통수단으로 인기를 모으고 친환경적이라는 점에서 장려할만한 요소도 있다. 지자체 중심으로 헬멧을 공유하거나 킥보드 정류장의 인프라를 확대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이용자도 본인과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에 적극 동참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전동킥보드가 안전한 교통문화로 정착하는데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2021-06-22

창간 31주년, 다시 출발점에서 뛰겠습니다

경북매일신문이 오늘 창간 31주년을 맞았습니다. 경북매일신문 임직원들은 지난 1990년 6월 23일 창간호를 낸 이후 오늘 8495호를 내기까지 수많은 영광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때마다 ‘맑고 정직한 신문을 만들자’는 창간 정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경북매일신문과 항상 함께하며 격려를 해 주신 대구·경북 시·도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오늘 창간 31주년을 맞아 시·도민들의 깊은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창간 이후 우리는 언론 본연의 사명과 대구·경북의 발전이라는 존립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수많은 사건 사고 현장과 정치·사회적인 갈등 속에서 언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총력을 쏟았습니다. 더 많은 정보를 담은 신문, 지역민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신문, 대안이 담긴 신문이 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뛰었습니다.서울과 지방의 차이는 있겠지만, 현재 우리 신문업계는 전반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유행이 종식되지 않으면서 상당수 신문사가 지면 감면, 유·무급 순환휴직 등을 통해 경영난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특히 비수도권 신문사들은 코로나19 여파로 지역행사나 이벤트가 취소되면서 광고·협찬수입이 대폭 감소한데다, 각종 사업도 불가능해져 설상가상의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이런 상태에서 정부는 언론장악에 혈안이 돼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는 언론사가 거짓뉴스를 내보낼 경우 최대 5배 손해배상을 물리는 법안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킨다고 합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신문사의 여론형성 기능이나 뉴스제공을 육성하고 지원해야 할 중요한 산업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신문사가 매일 아침 내놓는 지역의 의제나 뉴스는 공공재(公共材)입니다. 공공재 가격을 시장기능에만 맡겨놓아선 안 됩니다.우리가 지역을 대변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균형발전을 외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대구·경북 시·도민들입니다. 경북매일신문은 앞으로도 시·도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는데 전심전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시·도민들과 독자께서는 따뜻한 격려와 함께 때로는 매서운 질책으로 우리의 앞길을 올바르게 이끌어주시길 바랍니다. 급변하는 언론 환경 속에서 경북매일신문 임직원들은 또 다른 출발점에 서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변함없는 사랑으로 길동무처럼 경북매일신문을 지켜주십시오.

2021-06-22

어머니를 보내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 토요일 한가로운 오후의 적막을 깨뜨리는 전화 수신음! 뭔가, 이런 시각에 나의 고막을 어지럽히는 소리는?! 동생의 갈라지고 긴장된 목소리가 많은 것을 암시한다. “그래 알았어! 정리하고 바로 올라갈게. 이따가 서울에서 보자.” 잠시 망연한 상태에서 생각을 수습한다. ‘그래, 올 것이 왔지만, 너무 이르군. 예상치 못한 타격이야.’삶은 언제나 느닷없이 문제를 던진다. 해결 능력과 무관하게 불쑥 난제를 던지고 가버린다. 그래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새침한 얼굴로 시간과 인생은 흘러간다. 그래서 인간이 만들어낸 대응책은 “그것 또한 지나가리라!” 아니던가?!언제나 예외는 있다. 19년 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음이 그랬고, 이번 어머니의 별세가 또 그러하다. 88세 ‘미수(米壽)’라서 형제-손자들 모여 잔치해드린 게 열흘 남짓인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젊었던 시절 아버지가 떠나셨을 때는 천붕(天崩) 같은 슬픔과 설움이 밀어닥쳤더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오랜 세월 꿋꿋하게 버티신 어머니였기에 이르단 느낌은 있지만, 마음의 붕괴는 없다. 다만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뜻깊게 보내드리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붓다의 가르침과 절집 큰스님들 말씀에 귀를 기울이셨던 어머니. 어머니께 고타마 붓다의 의미심장한 설법과 삶의 본령을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해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것이다.남편과 자식과 손자들 걱정으로 늘 괴로워했던 어머니. 나는 어머니에게 깊은 연민을 품었더랬다. 그래서 몇 번은 작심하고 말씀을 드리기도 했다. “어머니, 이제는 저희와 애들 걱정은 내려놓고, 어머니 인생과 다가올 죽음을 생각해보시면 어떠세요?!”어머니는 내 생각에 반대하셨다. 그것은 당신의 인생에 대한 자신감과 우월의식 그리고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 자식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었을 터다. 부모 자식의 인연이 무려 8천 겁이라는데, 장구한 세월의 인연이 축적돼 현생에서 마주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자식으로 살아온 날들에 대한 반추는 여러 색깔로 현현한다.강렬한 의지와 욕망과 진취적 기상이 남달랐던 어머니. 그래서 남처럼 성취하지 못한 꿈과 욕망으로 괴로워했던 어머니. 이제, 그런 건 내려놓으시고, 어머니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와 색깔과 향기를 가지고 있었는지, 아버지와 우리 자식들과 맺어온 인연의 의미와 향기를 성찰하면 어떠시냐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어머니.누구에게나 고유한 삶의 방식과 생활양식이 있기 마련이라, 나는 어머니에게 차마 강권하지는 못하였다. 내가 개입할 성질의 인생을 어머니는 살아오지도 살고 싶지도 않았던 터다. 어찌 감히 간섭하겠는가?! 다만, 이제는 말씀드리고 싶다. “정말 다 내려놓고 편히 먼 길 떠나세요. 당당하게 염라 만나서 화통하게 웃으시며 어머니 일생을 이야기하세요. 어머니, 고생 참 많이 하셨어요! 편히 쉬세요!”

2021-06-22

잊지 말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권윤구 포항 중앙고 교사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6·25 노래 가사다.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하며 6월 6일 현충일 아파트 창문에 태극기를 달았다. 호국영령들이 있기에 행복하고 건강하고 빛나는 달 6월은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국민에게 애국정신을 고취하는 달이다. 국민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무엇이고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라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달이다.한국 전쟁을 6·25 사변이라고도 하며, 소련을 등에 업고 군사력을 지원받아 북한이 남침하여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였다. 우리 국군은 북한의 우수한 병력과 무기에 밀려 한 달 만에 낙동강 부근까지 퇴진하였다. 한국 전쟁에 16개국의 유엔군이 파병되었다. 유엔군의 맥아더 장군이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 성공으로 서울을 되찾고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요청으로 인해전술의 중국군이 개입하자 다시 서울을 빼앗겼다. 3년 동안의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체결로 남북한은 지금까지 휴전 상태이다.2021년 6월 25일은 전쟁 71주년이자 정전협정 제67주년이 되는 해다. 남북한의 얼어붙은 동토의 땅도 봄기운이 왔다. 헤어진 이산가족의 상봉, 금강산 관광, 남북경제협력사업의 하나로 개성공단 사업, 한북미 정상의 판문점 만남 등 정전체제 종식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모두 공염불이 되었다. 그리고 북한의 문은 열리는 듯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일인독재체제 구축을 위한 선전에 혈안이 되었다.평화적 남북통일을 위해 온 국민이 함께 힘을 합하여 어려운 난국을 극복하고, 지난날 동족상잔의 한국 전쟁은 끝이 난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라의 안보에 최대의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유비무환의 자세로 민족의 통일을 위해 자주국방과 자력으로 나라를 지키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미국이나 유엔의 도움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지킨다는 자신감과 단결된 힘으로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가야 한다.지난 6일 현충일 조기를 단 아파트 주민이 거의 없었다. 필자의 아파트뿐만이 아니라 포항시 거의 모든 아파트에 태극기를 게양한 주민이 아주 소수이었다. 또한 거리에도 항상 휘날리던 태극기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 모두 한국 전쟁을 잊지 말고 가슴 속에 깊이 새겨두고 호국영령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폭력과 약육강식의 야만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시대’인 만큼 국민 안전보장과 국가 안전보장은 최우선이다. 호국영령의 숭고한 그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잊지 않겠다. 잊지 말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역사를 왜곡하는 민족에게는 영원히 미래가 없다.

2021-06-22

안전과 책임

광주에서 철거작업 중이던 건물이 무너지면서 공사장 앞 버스정류장에 정차돼 있던 시내버스를 덮쳤다. 그로 인해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버스에 있던 승객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살던 시민이었다. 거리는 극단적인 위험의 모습을 가지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어느 평범한 오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사고. 이러한 참극을 단지 ‘운이 나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경기 평택항에서는 이선호 씨가 개방형 컨테이너 벽체에 깔려 숨졌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으로 원래 업무와는 무관하게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를 위한 안전교육이나 장비도 없었고 사고 현장에는 안전관리자조차 없었다.어째서 우리는 계속해서 이러한 이야기를 접해야 하는 걸까. 건물과 다리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죽어나는 사건들. 안전을 위한 예방에 만전을 기했다면 충분히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재난들. 그 끔찍한 일을 기어코 마주하고 나서야 시스템의 개선을 말하는 사람들.우리는 우리를 비극으로 몰아넣었던 여러 사고를 경험해왔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참극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참담해지는 것이다.우리의 일상은 안전하지 않다.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계속해서 같은 결과가 변주될 뿐이다. 어느 누가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내버스를 타고 노동 현장으로 투입될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안전하다는 가정에 얽매인 채 그 환상 안에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우리 사회는 그렇다. 어디서든 효율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생산성 향상을 요구한다. 회사에서는 ‘빨리빨리’ 완벽한 결과물을 내어놓기를 바라며 개인이 가진 에너지를 남김없이 다 소진하기를 바란다. 무엇이든 빨리 허물고 새롭게 지어야 한다는 압박감. 언제든지 다른 인력으로 교체될 수 있다는 불안함. 이러한 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은 늘 뒤로 물러나기 마련이다.번듯하게 만들어진 건물을 바라보며 무너짐을 상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휘황찬란한 모습에 감탄하는 것으로 끝내기 마련이다. 그것을 위해 희생당한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잊힌다. 공고한 세계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동시에 끊임없이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다. 묵묵하게 일하며 지반을 떠받치고 있는 이들의 발화는 너무나도 쉽게 흩어지기 마련이다.그렇다면 이토록 끔찍한 사건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사실상 어느 누구도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문한 음식이 약속된 시간에서 조금만 늦어져도 배달원을 탓하며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수에 엄격하게 반응하는 일들은 우리 주변에도 빈번하지 않은가. 일상에서 노동자의 희생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그로 인해 벌어지는 참극을 ‘운이 나쁜’ 어느 사고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에게는 일말의 책임도 없는가. 그 괴로운 질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쉽게 잊어버리고는 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마크 피셔는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일이 자본주의의 종말을 떠올리는 것보다 더 쉽다”고 말했다. 자본의 논리 안에서는 한 푼의 돈이 한 사람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전언은 그저 허울 좋은 말에 불과하다.한 사람의 목숨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부조리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참극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분명한 우리의 책임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 안타까움을 상기하며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동시에 사회적 책무도 물어야 한다.비극적인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단 한 사람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건물을 짓고 그러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누구도 죽거나 다치지 않고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가 와야 한다는, 너무도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야기를 외쳐본다.

2021-06-21

사소한 재능이라도

몇 년 전 어느 텔레비전 강연 프로그램에서 강연을 한 이후, 가끔 기업이나 학교에서 강연 요청이 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한 대학에서 특강 강사로 초청을 해 주어서 다녀왔다. 강연 내용은 별 것 아니다. 그냥 내가 여태까지 음악을 하고 글을 쓰면서 느낀 것들을 늘어놓을 뿐이었는데 학생들이 눈을 빛내며 경청해주어서 나도 행복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강연 시간보다 더 즐거운 시간은 학생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다. 요즘 친구들은 이런 고민들을 하고 사는구나 싶을 때도 있고, 예전에 내가 했던 고민을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애틋해질 때도 있다. 그 날도 몇몇 학생들이 질문을 해 주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이런 거였다.“강사님. 저는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잘 하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그것은 나도 꽤 오랫동안 했던 고민이었다. 나도 오랫동안 자기소개서의 ‘특기’란을 채우기를 힘겨워했다. 남 얘기 같지가 않아서 되도록 도움이 될 만 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정말 없을까요? 하나도요?”“네. 진짜 많이 고민을 해봤는데요, 없어요.”“혹시 재능이라는 단어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분명히 어떤 장점이 있는데 ‘이까짓 게 무슨 재능이야’ 하면서 넘겨버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재능이라는 것의 기준을 좀 낮춰 보면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사실 이 이야기는 예전에 친구들과 축구게임을 하며 쓸데없이 ‘박지성은 축구 천재인가’에 대한 논쟁을 하다가 나온 것이었다. 누군가는 박지성이야말로 노력의 표본이라고 외쳤고, 누군가는 그가 타고난 실력이 없었다면 그 위치에 갈 수 있겠냐며 핏대를 세웠다.그런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축구를 잘 하는 재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재능이라는 것은 선천적으로 무언가를 잘 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축구는 결국 사람이 발명한 것이다. 축구가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닌데, 그것을 잘 하는 능력이라는 것이 자연 발생할 수 있는 것인가?축구를 잘 하는 재능이라는 것은 허구인지도 모른다. 다만 폐활량이 좋고, 발이 빠르고, 하체 힘이 좋고, 시야가 넓은 것과 같은 단순한 재능들이 존재할 뿐이다. 박지성은 이러한 재능들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축구라는 종목을 선택한 것이다.국민MC, 유느님이라고 불리는 유재석. 그에게는 ‘방송진행을 잘하는 재능’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방송이라는 산업 역시 사람이 발명한 것이다. 유재석에게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능력,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심, 대화의 흐름을 캐치하는 눈치, 다른 사람들의 능력을 파악하는 눈썰미, 그리고 다양한 어휘를 조합해서 문장을 만들어내는 언어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방송진행에 있어서 천부적이라고 하는 그의 재능은 어찌 보면 사소하다고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점들을 훌륭히 조합해 만들어낸 재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이런 식의 재능이라면 누구나 몇 가지는 발견할 수 있다. 누구는 손이 크고, 누구는 손가락이 길다. 누구는 후각이 예민하고, 누구는 손놀림이 야무지다. 누구는 눈치가 빠르고, 누구는 매사에 끈기가 있고, 누구는 붙임성이 좋고, 누구는 조심성이 있다. 어지간한 개성이나 특징은 다 사소한 재능이 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모아두고 보면 의외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하게 발견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목소리가 큰 편이고, 성대가 건강한 편이다. 폐활량이 좋고, 부끄러움을 잘 타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장점들을 긁어모아 가수를 해서 먹고 살고 있는 것이다.“나는 뭘 잘하는지 고민하기보다는 사소한 재능들을 한번 샅샅이 찾아보세요. 정말 이런 게 재능일 수 있을까 싶은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아요. 그런 것들을 싸그리 모아 놓고 보면 내가 뭘 하면 좋을지 발견할 수 있을 거에요.”나의 이야기를 들은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내가 다른 질문들에 대답을 하는 내내 그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강단에서 내려올 때까지 나는 그런 그를 슬쩍슬쩍 바라봤다. 그는 어떤 사소한 재능들을 발견했을까. 그렇게 발견한 재능들에 어울리는 진로를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그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꼭 찾아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21-06-21

1천500여 년 전 신라 왕경 경주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경주는 약 천년 동안 나라를 이어온 신라(기원전 57년~기원후 935년)의 유일한 수도이다. 곳곳에 천년의 향기가 묻어있으며 당시 찬란했던 역사와 문화가, 남겨진 유적과 유물을 통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경주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최고의 역사서이자 관광지이다.최근 KTX 신경주역이 생겨 관광 동선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시외버스를 타고 경주터미널에서 내려서부터 여정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엔 유적지를 순환하는 관광버스나 일반 시내버스, 택시를 이용해서 주요 유적을 보고 오는 여행이었다면, 요즘은 전동차, 전동킥보드, 전기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지금 경주에서 가장 유명한 ‘황리단길’의 맛집, 커피숍 등 핫플레이스를 가는 사람이 많다.이때 보이는 주요 유적지들이 대릉원, 첨성대, 월성, 월정교이고 조금 더 가면 동궁과 월지, 황룡사지, 계림 등을 보게 된다. 이들 유적지가 무질서하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발굴조사와 옛 지형 연구를 통해 밝혀진 모습을 이해하면 더욱 재미있게 신라의 수도를 둘러볼 수 있다.신라 주요 유적지가 있는 인왕동, 교동, 황성동 일대의 경주 시내는,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인 선상지(扇狀地)이다. 선상지란 산에서 흘러내리는 강에 의해 운반된 자갈, 모래 등이 양쪽으로 퇴적되면서 만들어진 부채꼴 모양의 지형을 말한다. 지금은 개발로 인해 지형이 바뀌었지만 1천500여 년 전에는 편평한 선상지가 펼쳐지고, 선상지를 동에서 서로 흐르는 북천(北川)과 남천(南川), 그 주변의 이러진 많은 물줄기가 마치 거미줄처럼 형성되어 있었다.현재는 볼 수 없는 당시 지형 모습이나 하천의 흔적은 발굴조사를 통해 찾을 수 있다. 발굴조사를 무덤이나 집자리의 흔적과 당시의 유물만 찾는 것으로 흔히 알고 있지만, 여러 가지 관찰과 분석을 통해 당시 자연환경과 사람이 활동했던 시간까지도 알 수 있다.이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발굴조사법이 트랜치(trench)법이다. 길쭉한 직사각형의 도랑을 파고, 도랑의 벽에 보이는 흙이 쌓인 층들과 각 층에 있는 무덤, 집자리 같은 유구(遺構), 유물, 동·식물 유체(有體) 등을 분석하여 다양한 정보를 얻는 것이다. 흙이 쌓인 층에서 모래띠, 곡선형의 퇴적층, 뻘층과 같이 물이 흐르거나 주변으로 퇴적될 때 생기는 흔적을 통해 당시 하천이나 늪 등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발굴을 통해 알려진 경주 시내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선사시대를 거쳐 기원후 약 6세기 중엽경까지는 거미줄처럼 형성된 물줄기와 여러 늪 또는 습지가 형성되어 있는 선상지였다. 경주지역 내 청동시시대에 만들어진 고인돌의 위치와 황남대총 등 5세기대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봉토를 가진 무덤의 위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선상지 내 물줄기와 늪 또는 습지를 피해서 자리잡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무덤이 없는 곳에 물이 흐르고 습지가 있었다고 머릿속에 그려보면 1천500여 년 전 경주의 모습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헌에 따르면 101년에 축성했다고 전해지는 신라의 궁성(宮城)인 월성이 반달 모양의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해서 조성된 점도 지석묘, 무덤과 맥을 같이 한다. 정인태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그럼 언제부터 지금의 경주 시내와 같은 모습이 되었을까? 또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17만호의 집이 있었던 적은 언제일까? 그 비밀은 황룡사(皇龍寺)에 있다. 황룡사는 진흥왕 14년인 553년에 처음 짓기 시작해서 17년 만인 569년에 완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원래 새로운 대궐을 지으려고 했으나 황룡이 나타나 절로 지었다는 것에서 국가사찰임을 알 수 있다.이 황룡사의 발굴조사를 통해 물이 흐르고 습지가 있었던 땅을 최대 2m까지 매립하여 절을 지었음이 밝혀졌다. 황룡사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도로와 담장, 집 등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면서 당대 동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경주에서 대규모 도시 조성사업이 벌어진 6세기 중엽은 고구려, 백제를 치고 한강을 차지하면서 최대 영토를 가지게 된 시기이다.옛 안압지(雁鴨池), 지금의 월지(月池)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유적지 중 하나로, 밤에는 조명이 켜져 주말이 되면 인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월지는 7세기 후반에 가장자리를 돌로 쌓아 만든 인공 연못이지만 그 이전에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만나며, 늪지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아름다운 이 연못이 왕경에서 어떠한 기능을 했는지, 궁금증을 풀기 위한 발굴조사가 지금 한창 진행 중에 있다. 1천500여 년 전 신라 천년 수도 경주의 모습이 점점 드러나는 걸 함께 느껴보시길 바란다.

2021-06-21

‘보들레르’라는 경이로운 사건

샤를 보들레르 서구 현대시의 역사에 있어서 샤를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1867)라는 이름은 하나의 시인을 넘어서는 하나의 현상이자 놀라운 효과였다. 24세 때 살롱을 중심으로 한 미술 현상에 대해 주목하여 비평을 하며 비평가로 출발했던 샤를 보들레르는 서구 낭만주의 예술이 빛을 발하고 있던 무렵인 19세기 중반부터 비평과 번역, 소설, 시 등의 창작을 하다가 36세인 1857년이 되어서야 그간 썼던 시들을 모아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을 출판해 하나의 새로운 예술시대를 열었다.보들레르 이전에, 운율을 중시하여 시인의 입에서 마치 음악과 같이 노래되어 시인의 감정과 관객의 감정을 고양시켰던 시의 세계는, 파리를 산책하며 보들레르가 하나하나 수집했던 고대와 연결되는 골동품과도 같은 단어들과 그 연결을 통해 반짝거리며 빛나기 시작했다.이 보들레르를 자유시의 이념을 최초로 구체화한 시인으로 간주하는 경향은 가락과 음률, 인간 내면의 친근성과 천진함으로 연결되어 있던 과거의 낭만주의적 시를 일신하여, 바로 노래하는 시로부터 읽는 시로 바꿨던 최초의 시도였던 까닭일 것이다. 보들레르의 시 속에는 비록 배치와 반복에 의해 만들어지는 기계적 음향이나 노래는 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도시를 횡행하는 우울한 정서 속에 저 먼 고대나 원시의 신화적 국면과 연결되는 풍부한 볼륨의 단어들이 총총히 박혀 하나의 별자리를 이루고 있어, 단지 그것을 눈으로 훑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각적 충족감을 주었던 것이다.샤를 보들레르는 그 자신이 미국의 가장 독특한 작가 중 하나인 에드거 앨런 포우(Edgar Allan Poe·1809~1849)의 예찬자였고, 그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당연히 그의 시집 ‘악의 꽃’ 속에 들어 있는 ‘유령’이나 ‘고양이’, ‘흡혈귀’ 등의 총총한 이미지들은 포우의 시나 소설 속에 들어 있던 환상적 세계의 파편들로부터 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미 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해가고 있던 당시의 파리 시내를 방황하며, 그는 포우를 비롯해, 서구 사회의 정신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신화를 필터처럼 빌려와 결코 단순하지 않은 풍요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발견해낸 파리의 수집품들은 마치 연금술처럼 그의 시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귀중한 무언가로 바뀌었다. 우리가 보들레르를 상징파의 시인으로 간주하는 것은 바로 그가 자신의 시에 초대한 이러한 귀중한 무언가들이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풍요한 상징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보들레르의 사후인 1869년에 출판된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Le Spleen de Paris)’에는 서문 격으로 보들레르가 자신의 친구인 ‘아르센 우세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이 서문은 보통 보들레르가 자유시의 이념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것으로 인용되곤 한다. 그 편지 중 몇몇 부분을 인용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그 야심만만한 시절 우리 가운데 시적 산문의 기적을 꿈꾸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나? 음악적이면서 리듬도 압운도 없고, 영혼의 서정적 움직임과 환상의 기복과 의식의 비약에 적용할 만큼 충분히 유연하면서도 충분히 복잡한 그 기적을 말일세.”-박철화역, 동서문화사이 부분은 바로 보들레르가 시적인 산문, 또는 산문시의 기적을 꿈꾸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래로 불리지 않으면서도 리듬을 갖고 있는, 의식의 비약에 버금갈 정도로 독자의 마음에 다가가는 시의 움직임을 그는 ‘상응(correspondances)’이라고 같은 제목의 시에서 지칭하기도 하였다. 요컨대 이는 노래에서 벗어나 읽히는 새로운 자유시의 탄생의 장면이었다. 보들레르는 바로 그러한 새로운 시의 탄생을 의미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던 셈이다. /홍익대 교수

2021-06-21

마음결 따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오뉴월 하루 볕이 무섭게 만물이 자란다. 고른 햇살에 때맞춰 비가 내리니 식물과 작물이 무럭무럭 자라고, 군데군데 연하거나 진하던 잎새들이 일제히 녹색으로 성큼성큼 기세를 뻗어가고 있다. 길섶의 풀이나 들꽃들은 저절로 피고 흔들리며 앙증맞게 손짓하는가 하면, 언덕배기에 뻗은 뽕나무 가지에는 검붉은 오디가 저절로 익어서 떨어지고 있다. 어디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는 한가로움을 노래하는데, 저녁답의 무논 주변에 깔리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요란한 듯 정겹기만 하다.현란한 꽃잔치가 끝나자 청산과 들판에는 초목이나 곡식들이 하루가 다를 정도로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과실이나 곡식이 자라고 익으면서 주변에는 달갑잖은 잡초도 덩달아 가세한다. 망종(芒種)을 전후해서 텃밭이나 옥답에는 농부들의 발길이 잦아든다. 보리를 수확하고 밭갈이나 모내기철의 들일이 많아서 들로 가는 발걸음이 많기도 하겠지만, 연중 낮길이가 가장 긴 하지 무렵에는 곡식이 자라는 것 못지않게 이틀이 멀다 하고 웃자라는 잡초를 뽑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논밭에 해를 끼치는 온갖 잡풀을 제초하고 농작물을 잘 건사해야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어릴적 농촌에서의 여름철은 ‘잡초와의 싸움’이기도 했었다. 들마다 고랑마다 농작물의 번성에 방해가 되는 잡초를 뽑고 또 베어내도 얼마나 끈질지게 돋아나고 거세게 뻗어가는지, 비가 잦은 6월 장마철엔 몇 차례 김매기를 해도 제초한 흔적이 전혀 나지 않을 정도로 금세 무성해졌다. 심지어 일손이 모자라 한동안 김매기를 놓치기라도 하면, 담배나 고추 작물을 짓누르듯 에워싼 거침없는 잡초더미를 보며 푸념부터 하시던 어머니께선 ‘호랑이가 새끼 쳐도 모를 정도로 우거졌다’는 말씀을 입에 달곤 하셨으니, 잡초의 위력(?)이 얼마나 어마무시할까.‘향그런 꽃 져버려 온 산 푸른데/가랑비 오는 속에 뻐꾸기 울음 울다/봄날 시름은 풀처럼 자라거늘/어느 때 낫을 얻어 마음의 뜰 베리오(芳花謝了滿山靑/細雨970F970F布穀聽/春日傷悲如草長/何時得91E4刈心庭)-강성위 한시집 ‘하늘에 두 바퀴의 달이 있다면(1991년)’중 ‘送春’잡초는 논밭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생각과 마음에도 여러가지 잡념 같은 풀들이 얼마든지 생겨나고 자라날 수 있다. 이를테면 부정이나 비리, 과욕이나 무시, 편견이나 오만, 시기나 사악함 등도 어찌 보면 선량하고 진실됨을 갉아먹고 순리와 법도에 구멍을 내며 정의와 평온함에 흠집과 파문을 일으키는 악초악목(惡草惡木)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선현들은 늘 마음을 다스리며 절제와 경계의 낫으로 마음 자락에 웃자라는 잡스러움과 졸렬함의 풀잎을 베어내며 마음공부를 일삼았던 것이리라. 마음은 몸의 주인(心爲身主)이요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身爲心器)이니, 주인이 바르면 그릇은 마땅히 바르게 된다(主正則器堂正)고 했다. 평소에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자기노력과 한결 같은 수양이 따라야 한다. 뽑고 베어내도 속속들이 비집고 드는 잡풀 같은 우환을 멀리하고 사유의 뜰을 넓히며 마음이 흐르는 대로 몸을 저절로 움직이면, 마음결 따라 배이는 지덕과 풍운이 인향만리(人香萬里)로 피어나지 않을까?

2021-06-21

대통령의 묵주 반지

강길수 수필가 밖에서는 묵주 반지를 끼고 다닌다. 걸으면서 기도하기 위해서다. 처음 성물(聖物) 판매소에 묵주 반지를 팔면서부터였으니, 강산이 몇 번은 변한 세월이다. 내 것은 은 묵주 반지다. 금 묵주 반지는 비싸서 우리 성당 판매소에는 예나 지금이나 없다.묵주 반지는 간편하게 묵주기도를 바치기 위해 만든 도구다. 묵주 알이 59개나 되는 5단 묵주는, 외출 시엔 불편해서 묵주 반지를 쓰는 신자들이 많다. 김연아 선수가 묵주 반지를 끼고, 성호를 그으며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하는 장면을 볼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었다.묵주 반지 낀 사람을 보면 어디서든 한 가족 같은 느낌을 받는다. 4년 전 봄, 제19대 대통령이 취임했었다. 집무실에서 일하는 새 대통령이 손에 금 묵주 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을 TV에서 처음 보았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의 묵주 반지! 그래. 뭔가 제대로 되겠구나!’ 하는 믿음과 희망도 뒤따랐다. 묵주기도 하는 분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묵주기도는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기 위해 바친다. 그것은 이웃을 위한 십자가로 드러나는 사랑의 길이다. 묵주기도의 4가지 주제 곧, 환희·고통·영광·빛의 신비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간 길을 묵상하도록 한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신앙 대상을 믿고, 행하는 삶이 아닌가.우리나라 헌법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제20조 제2항에서 규정한다. 이는 종교와 정치가 서로 간섭하거나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정치인과 종교인의 가치관이나 신념까지 제한하는 내용으로 보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의사는 종교나 정치에 상관없이 존중되어야 한다.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어떻게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까. ‘하늘나라’일 것이다. 그가 가르친 ‘주님의 기도’의 주제가 바로 땅에 하늘나라가 오기를 빌기 때문이다. 하늘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하늘을 사랑하고, 함께 이웃을 사랑하여 서로 한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라’고 복음서들은 가르친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의 하늘 사랑은 이웃사랑을 통해 이루어지고, 그 결과는 한 공동체로 나타난다는 것이다.사실 하늘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서 이루는 이웃사랑으로 서로 하나가 된 공동체가 바로, 보이는 하늘나라의 모습이란 이 메시지는 얼마나 신선한가. 그렇다면, 정치에서도 이 메시지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 대통령은 참 좋은 기반을 가진 셈이다. 대통령이 지난주 오스트리아 수도원 방문길에,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묵주 반지를 낄 것을 권유하셨다’고 원장에게 말했다는 보도는 내게 잊었던 ‘대통령의 묵주 반지’를 소환했다.그런데 지난 4년 우리 사회는 ‘내로남불’이란 신조어가 대변(代辯)하듯,‘이웃사랑’이 커나가기는커녕 줄어들어 분열과 반목만 늘어나 보인다. 나만의 착각일까. 가슴 뭉클하게 하던 대통령의 묵주 반지가 정치의 희생물로 변해 보이는 것은 웬일일까. 지금이라도 어려운 이를 보듬고, 아픈 이를 위로하며, 갇힌 이를 풀어주는 사랑의 길, 묵주 반지의 길을 보고 싶다.

2021-06-21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경계심 늦추면 안 된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내용의 새 방역 지침을 확정, 발표했다. 이에 따라 내달부터 수도권은 사적모임이 8인까지 허용되고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도 밤 12시까지 연장된다. 대구와 경북 등 비수도권은 사적모임 인원 제한과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 제한이 아예 없어진다.전국적으로 확진자가 1천명이 안될 경우 2학기부터 모든 학생이 매일 등교한다는 원칙도 세워졌다. 또 코로나 백신접종 대상자에 대한 인센티브도 곧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극장이나 스포츠 경기장 관람석, 공연장 등에는 백신접종 완료자만 입장할 수 있는 구역을 만들고 음식물을 섭취토록 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백신 접종자를 대상으로 단체여행을 허용하는 방안도 추진된다.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은 신규 확진자 추이나 백신 접종률 등을 고려했고 지자체의 건의도 감안한 것이다. 특히 경북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한 거리두기 완화조치 결과에 자신감을 얻은 측면도 있다.오랫동안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지금 국민은 심한 피로감에 빠져 있다. 이번 조치가 민생이나 자영업자의 생업 문제 해소 차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대폭의 완화조치를 시행하기에는 아직 불안한 구석이 많다. 지자체의 자율성을 강화한다지만 완전한 커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백신 접종률은 현재 30% 선에 머물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내달부터 여름 휴가가 본격 시작된다. 전국의 해수욕장이 개장되고 국민의 이동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 거리두기 완화조치와 더불어 백신 접종에 따른 국민적 긴장감이 크게 느슨해질 수도 있다.국민의 절반 이상이 백신 접종을 한 영국이나 이스라엘이 긴장감을 늦추다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 마스크 쓰기 등 개인방역 강화에 나서고 있다는 점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특히 영국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하루 1천명까지 떨어졌던 신규 확진자가 1만명으로 늘어나는 혼란을 겪고 있다. 보건당국은 변이 바이러스의 침투나 확산 방지에 긴장감을 높여야 한다. 개인도 자신이 방역 최후 보류자라는 생각으로 방역수칙 준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기대하던 거리두기 완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총력을 모아야 할 때다.

2021-06-21

자원봉사가 짜증난다구요?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늦은 저녁, 동네 산책길에서 지인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김에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외로운 건 인문학적으로 어떤 해결책이 있어요? 겪을 수밖에 없다는 말 말고 좋은 대안 좀 연구해봐요. 자원봉사 같은 건 권하지 말구요, 짜증나.”그 지인과는 이상하게 길거리에서 가끔 만나는 인연이 있다. 언젠가도 길에 서서 외로움을 어떻게 하냐고 하소연하기에 걸어보라고 했더니 걷는 것도 하루이틀이지요 하기에 그것도 그렇네요, 하면서 깔깔거린 적이 있다. 그런 지가 한참 전인데 산책길에서 또 만난 것이다.그런데 이번에는 자원봉사는 짜증난다고 손사레를 친다. 긴 말을 안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갈듯하다. 자원봉사가 필요한 곳은 대부분 상황이 어려운 곳이다. 그런 곳에 가서 ‘그래, 저렇게 힘든 사람도 있는데’하면서 나를 위로하는 것도 편하지 않고, 봉사 대상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마음이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그런 자원봉사의 끝은 어디일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외로운데 이런 무거운 의문 앞에 서게 되는 것이 짜증이 나는 것이다.자원봉사뿐 아니라 무료로 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이 많이 든다. 큰애가 4살이던 1994년부터 최근까지 거의 쉬지 않고 동네에서 무료 독서모임을 했다. 처음 독서 모임을 시작하던 1990년대에는 전공을 살려 동네 주민센터에서 1년간 무료로 논어 강의도 했다. 요즘에는 도서관의 문화 강좌가 많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별로 없었다.그러다가 얼마 전, 요즘 말로 ‘현타’가 왔다. ‘현타’란 현자타임의 줄임말이다. 무언가에 몰두하여 열심히 하다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는 성찰을 하게 되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무료 독서모임을 하는 나의 욕망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온 것이다.이런저런 생각에 불씨를 지핀 책이 있다. 노구치 마사코의 ‘프랑스 여자는 80세에도 사랑을 한다’는 책에는 빨간 코트를 입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하이힐을 신는 80세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갑자기 만날 수도 있을 사랑을 위해 언제나 화려한 속옷도 잊지 않는다. 그 프랑스 여자가 자신의 욕망을 알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것이 쉽고 간결해서 신선했다. 이 80세 프랑스 여자가 느닷없이 다가온 것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행동에 숨김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그에 비해 자원봉사 같은 일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복잡한 메커니즘이 숨어 있어서 의도와 결과가 잘 어우러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애당초 대상을 위하는 선한 마음이 아니라 열등감을 감추고 싶어서 시작할 가능성도 있고, 선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초심을 잃기도 한다. 봉사한다면서 모인 사람들끼리 자리와 명예를 가지고 다투기도 한다.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아는 것은 정말 긴급하다. 다행히도 그것을 알았다면 괜히 에둘러 갈 필요도 없다. 자신의 욕망에 당당하고 솔직하게 다가가는 것, 그것은 80세가 되어도 멈출 수 없는 인생의 과제가 아닐까?

2021-06-21

대구·경북 ‘스타트업 역량’ 정부가 인정했다

대구시와 경북도, 지역 11개 대학이 공동으로 설립한 (주)대경지역대학공동기술지주가 발굴한 스타트업 7개사가 중기부 창업지원 프로그램인 팁스(TIPS)에 선발됐다. 대학의 우수기술을 활용한 기술창업활성화가 대경기술지주를 통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팁스는 중기부가 마련한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 지원사업이다. 우수기술을 보유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을 선발해 연구개발과 사업 자금을 지원해주는 제도다.이번에 선정된 대표적인 스타트업은 우주라컴퍼니(주)다. 이 회사는 서울대 수의과대학에서 동물행동의학을 전공한 심용주 대표가 창업했으며, 고양이 행동패턴과 질병예측이 가능한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을 개발해 반려동물 시장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계명대 의대 출신 박은빈 대표가 창업한 (주)인셉션랩은 LED를 통해 뇌의 해마가 활성화되는 원리를 활용한 치료법으로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스타트업은 ‘신생 창업기업’을 의미하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보통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외부의 투자를 필요로 한다. 제조업처럼 눈에 보이는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인터넷에 기반한 기업이기 때문에 고위험·고수익·고성장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스타트업 창업 열기가 확산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전국적으로 청년 창업기업만 매년 40만 개 이상씩 나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역대 최다인 49만 개로 집계됐다. 20대 창업기업 수도 17만5천 개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정부에서 청년 창업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다양한 지원정책을 펴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대경기술지주의 경우처럼 청년 창업 열기를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스타트업을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다양한 파트너를 참여시켜 △체계적인 창업교육 △정책자금·기술 지원 △초기투자 △판로확대 및 글로벌 진출 등 전 주기에 걸쳐 창업지원을 해줘야 한다. 우리 청년들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 진입해서 역량을 발휘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국가와 지자체의 중요한 역할이다.

2021-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