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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사’를 만나다

등록일 2021-08-09 19:08 게재일 2021-08-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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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위덕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과

지난주에 수많은 화제를 낳은 ‘덕혜옹주’의 작가 권비영의 최신작 ‘하란사’(특별한서재출판)를 읽었다. ‘하란사’를 읽게 된 계기는 순전히 권비영 작가의 신작이기 때문이다. 나는 ‘덕혜옹주’를 읽고 권비영 작가의 팬이 됐다.

지금은 권비영 작가가 회장을 역임했던 울산소설가협회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소설 21세기’를 1년에 4번 받아볼 정도니 정말로 ‘찐팬’이 된 셈이다. ‘하란사’를 입수해서 하룻밤 사이에 다 읽어버렸다. 도저히 중간에 멈출 수가 없어서 말 그대로 끝 장까지 본 것이다. 하란사에 대한 수식어는 의외로 많다. ‘이화학당 최초 기혼자 입학생(1896)’, ‘최초 미국 자비유학생(1900)’, ‘조선 여성 최초 미국 학사학위 취득(1906)’, ‘이화학당 최초 한국인 대학교수(1911)’, ‘정동제일교회에 한국 최초 파이프오르간 기증 설치’(1918), 그리고 ‘여성 운동가’이자 ‘조선 독립운동가’이다. 이러한 하란사의 화려한 이력과 함께 작품 속에는 당시 시대가 그러하듯이 파란만장한 그녀의 일생이 전개된다.

하란사는 1872년 평안남도 안주(安州) 출생이라는 것 외에 알려진 가정사가 없다. ‘하란사’는 이화학당에 입학해 세례를 받고 얻은 영어 이름 ‘낸시(Nancy)’의 한자 음역으로 ‘란사(蘭史)’라 하고, 미국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른 것이다. 어린 나이에 상처한 나이 많은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된다.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신식교육도 받게 되고, 미국 유학까지 갔다 오게 되지만, 평범한 결혼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미국 유학 중에 그녀는 의친왕 이강(1877~1955)을 만나게 되고, 이후 이강의 독립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의친왕 이강은 덕혜옹주(1912~1989)와는 이복 남매지간이다. ‘하란사’에는 덕혜옹주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이강을 놓고 볼 때 덕혜옹주와의 접점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란사는 고종황제의 영어 통역과 국제정세를 알리기 위해 궁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란사가 궁에서 어린 덕혜옹주와 멀리서나마 마주쳤을 가능성을 있어 보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하란사 이야기 끝에서 덕혜옹주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스스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덕혜옹주’와 ‘하란사’를 읽다 보면 권비영 작가는 그 시대를 살다온 사람처럼 당시의 생활상을 현실감 넘치게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품 내용 중, 1919년 의친왕 이강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외우는 하란사의 모습이 가장 절정에 이른 장면이라 하겠다. 그리고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이강과 함께 허름한 노인으로 변장을 하고, 국내를 빠져나가 상하이로 가는 도중 이강은 잡혀 국내로 송환되었고, 하란사는 그곳에서 독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호시탐탐 그녀를 제거하려는 일본의 계략에 결국 독립이라는 큰 뜻을 살아생전에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달리한 하란사. 우리는 그녀의 이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올 여름에는 권비영 작가의 최신작 ‘하란사’를 읽으면서 더위와 코로나를 한 방에 날려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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