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투(妬)

등록일 2024-09-05 18:11 게재일 2024-09-06 19면
스크랩버튼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의 일이다. 마흔 중반의 나이에, 고국을 떠나 한국에서 한 10년 넘게 공부하던 외국인 친구가, 마침내 지방 모 사립대 교수로 임용이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겹게 살아왔는지 잘 알기에,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진심 축하해주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길, 그동안 생계 문제로 너무 힘들어 거의 연구를 포기하다시피 했고, 다들 싸늘하고 지도교수조차 외면했던 그 무렵, 내가 도움을 주어 너무나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근데, 한 이틀 후, 다시 전화가 왔다. 매우 시무룩한 목소리로, 잘 돼서 이제 축하해줄 줄 알았더니, 다들 심드렁한 표정에다, 심지어 지도교수 및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은, 도리어 화까지 냈다는 것이다. 아마 대학에 원서 낸 줄도 몰랐다가 주변에서 소식을 들은 모양인데, 예전 하루살이 인생으로 힘들게 살 때는 ‘나 몰라라 하던 이들이, 이제 버젓이 교수가 되고 나니,‘네가 잘된 게 내 덕’이니, 와서 감사함을 표현하라는 것이었다. 축하는 못해 줄 망정, 참.

일본의 예술가 기타노 다케시는, 그의 ‘생각노트’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타인의 성공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 것 같다’고. 그러나 이것은 말처럼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오스카 와일드도,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벗의 곤경을 동정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벗의 성공을 찬양하려면 남다른 성품이 필요하다’고.

독일어에 이런 말이 있다.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손해 및 불행을 뜻하는 ‘샤덴(Schaden)’과 기쁨을 뜻하는 ‘프로이데(freude)’가 합쳐진 말로, 타인의 불행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의미이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실험 하나가 있다. 일본 교토대 다카하시 히데히코 박사는 피험자들을 대상으로, 가상 시나리오를 주고, 뇌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 결과, 많은 피험자들이 저보다 잘난, 시나리오 속 가상 동창생들에게 강한 질투를 느꼈고, 그럴수록 불안한 감정이나 고통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배측전방대상피질’이 반응하였다. 이는 곧, 질투의 감정이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아가 느끼는 불안, 내적 결핍 등과 관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내면의 결핍이나 불안은,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내면이 알곡처럼 단단하고, 자기의 삶에 만족한다면, 절대 남의 성공을 질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묵묵히 또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조선조 3대 가자(歌者) 중 한 명인 박인로는, 소 빌리기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이렇게 읊조리지 않았던가. ‘남의 집 남의 것 전혀 부러워 말겠노라. 내 빈천(貧賤) 싫게 여겨 손 내젓는다 물러가며, 남의 부귀 부러워해 손짓한다고 나아오랴. 인간 어느 일이 명(命)밖에 더 있을까’하고. 가난해도 내면의 여유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 열흘 후면 우리의 최대 명절, 추석이다. 올 추석에는, 간만에 보는 친지, 형제들 간에 누가 더 잘 났고 말고를 따지며 시기 질투로 보내는 대신, 서로의 성공을 축하해주며, 아름다운 명절,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와 같아라는 말처럼.

여성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