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야구 대표팀은 금메달을 획득했음에도 기뻐할 수 없었다. 일본이 사회인 선수들을 출전시키기로 해 한국의 우승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금메달에 주어지는 ‘병역 면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리그에서 성적이 썩 빼어나지 않았던 내야수 오지환(LG)과 외야수 박해민(삼성)을 선발한 선동열 감독에게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군 미필 선수에게 병역 혜택을 주기 위한 ‘특혜’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결국 대표팀은 금메달을 따고도 죄인마냥 고개 숙인 채 입국했다.
진짜 촌극은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벌어졌다. 선동열 감독이 국회 국정감사 증언대에 불려간 것이다. 이 국정감사는 야구인과 야구팬들에게 큰 모욕과 상처를 줬다. 한국 야구의 대명사이자 ‘국보’로 추앙받는 위대한 대투수가 국회의원들의 기본도, 상식도, 예의도 없는 수준 낮은 질문에 조리돌림 당하는 모습이 생중계 됐기 때문이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선동열 저격수’로 나서서 “그 우승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야구 대표팀이 거둔 성취 자체를 부정했다. 그러고는 오지환과 박해민의 선발에 있어 선 감독의 사심이나 은밀한 청탁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무례한 음모론을 펼쳤다. 선 감독이 어이없어 하자 “사퇴하라”며 고함을 질러댔다. 김수민 의원(당시 바른미래당)도 거들었다. 1년 전 성적 자료를 들고 와서는 오지환보다 뛰어난 다른 선수를 왜 뽑지 않았냐는 황당한 질문을 했다. 야구를 전혀 알지 못하는 문외한들이 평생을 현장에서 살아온 전문가에게 훈수를 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2020 도쿄 올림픽 야구 대표팀은 일본과 미국에 준결승에서 석패해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3, 4위 전에서 중남미 야구 강국인 도미니카공화국에게마저 져 동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비록 메달을 얻지 못했지만, 대회 내내 가장 큰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바로 오지환과 박해민이다. 오지환은 팀이 위기에 처한 순간마다 홈런 두 개를 포함한 맹타를 휘둘러 구해냈고,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수비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대회 전 연습경기에서 주자의 스파이크에 턱이 찢어져 다섯 바늘을 꿰맸고, 대회 기간 동안에는 상대 투수의 몸쪽 공에 손등을 강타당해 피멍이 들었음에도 몸을 내던지며 플레이했다. 박해민은 전 경기 1번 타자로 나서 감각적인 타격과 빠른 발로 상대 수비 진영의 혼을 뺐다. 거의 모든 경기에서 1회 첫 타석 출루에 성공했고, 온몸에 흙을 묻혀가며 쉴 새 없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 외야에서도 견고한 수비를 뽐냈다. 선동열 감독이 2018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이 두 선수를 선발한 것은 바로 이러한 능력을 믿은 까닭이다.
두 선수는 실력으로 증명했다. 안타로, 홈런으로, 호수비로, 도루로, 몸을 던지는 허슬 플레이로 ‘국가대표’ 자격이 충분함을 몸소 입증했다. 나는 국가대표 선수 선발 과정보다 국회의원 선발 과정이 궁금하다. 음주운전을 해도, 성범죄를 저질러도, 탈세를 하고 부동산 투기를 하고 논문을 표절해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그리고 그렇게 국회의원이 돼서는 공약 이행, 입법 발의, 민생법안 처리에 소홀한 채 그 어떤 ‘증명’도 하지 않고 4년 동안 ‘국민의 대표’ 자리를 차지한다는 데 분노가 치민다. 국회 본회의에서 낮잠을 자거나 업무추진비로 부적절한 외유를 즐기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결격 사유가 넘치더라도 유력 정당의 공천 명부 상위에 이름만 올리면 무조건 당선되는 비례대표는 더 그렇다. 자격도, 자질도, 신념도 없는 이들이 기성 정치의 구태를 반복하며 정당이기주의와 기득권을 심화시키고 있지 않는가?
국정감사에서 선동열 감독을 몰아세우던 손혜원 전 의원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검찰에 기소되어 정치 생명이 끝날 위기에 처해 있고, 김수민 전 의원은 기성 정치의 답습을 벗지 못한 채 지난 총선에서 큰 표 차이로 낙선했다. 다시, 오지환과 박해민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종목 대표 선수들은 실력으로, 투혼으로 국민들을 납득시켰다. 이제 두 전직 의원에게, 아니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배지를 달고 있는 동안 대체 무엇으로 ‘국민의 대표’임을 증명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