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무영당 백화점

현재 대구 중부경찰서에서 서성로로 이어지는 대구 중구 서문로 일대는 일제 강점기에만 해도 대구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경북도청이 있고 헌병대, 조선식산은행, 대구우체국 등이 밀집해 있었으며 서성로 쪽으로는 상업 기능이 발달한 건물들이 즐비했다.1937년 이곳에 세워진 무영당(茂英堂)은 조선인이 지은 대구 최초의 백화점이다. 건물주 이근무는 개성에서 대구로 내려와 문구 등을 팔아 돈을 번 거상이다. 무영당은 자신의 이름 가운데 무성할 무(茂)자를 따와 나무처럼 번창하라는 기원을 담아 지었다고 한다.1932년 건립된 이비시야 백화점과 1934년 건립된 미나까이 백화점과 더불어 무영당은 당시 대구지역 3대 백화점의 하나였다. 조선인 자본으로 세워져 조선사람들이 많이 애용했다. 특히 조선의 지식인과 예술가 등이 모여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으로 많이 활용한 것으로 전해져 온다. 점주 이근무는 조선의 청년들이 원하는 책들을 구입해 전달하고 그들의 정신적 조력자 역할을 했다고도 한다.5층 규모의 무영당은 당시로는 드물게 미국식 빌딩 개념이 도입된 건물이다. 당시 건물로서는 대형화된 것과 콘크리트식 건축, 흰색 타일 마감, 원형창 등 시대적 상황이 잘 반영된 건물로 현재 평가되고 있다. 근대기 지역의 대표적 상업시설로 평가받고 있었으나 철거 직전까지 갔던 것을 대구시가 가까스로 매입해 보존하게 된 건물이다.대구도시공사가 근대건축물 무영당을 역사적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시민공간으로 되돌려주는 프로젝트 개발에 나섰다고 한다. 대구의 역사성을 부각시키고 시민들이 역사 속 공간에서 문화와 관광을 즐길 수 있게끔 할 계획이라하니 기대를 한번 해보자./우정구(논설위원)

2021-06-15

동해안시대 열 경북 동부청사 기공식 환영한다

경북도가 어제(15일) 포항시 흥해읍 이인리 경제자유구역청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 현지에서 경북도 동부청사 기공식을 가졌다. 지난해 12월 기공식을 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위기가 계속돼 지금까지 행사가 연기됐다. 경북도 동남권 시·군에서는 그동안 경북도 환동해지역본부가 ‘제2의 경북도청’ 역할을 하려면 이에 걸맞는 청사와 조직·기능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 해왔다. 총 310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건설되는 경북도 동부청사는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내 3만3천㎡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8층 규모로 2023년 1월 준공될 예정이다. 환동해지역본부 청사는 지난 2018년 1월 포항테크노파크 2벤처동(남구 지곡동)에서 출발했다. 2019년 5월부터는 도민들의 접근성을 고려해 옛 포항용흥중학교에 임시로 이전해 있는 상태다. 현재 본부장 아래 2국 1실 6과 체제로 113명이 근무하고 있다. 환동해지역본부는 지금도 경북도가 바다를 통해 세계로 뻗어나가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경북도 동부청사 입주와 함께 기능이 확대되면 해양수산산업, 해양신산업, 원자력 산업과 같은 기존 산업을 잘 확장시키면서, 명실상부한 동북아시아 물류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총력을 쏟을 것을 기대한다. 사실 지금까지 동해안은 남·서해안과 비교해 다양한 국책사업에서 소외돼 왔다. 예를들어 남·서해안은 수도권과 고속도로·고속전철을 통해 연결돼 동해안과 비교되지 않는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반면 동해안의 경우 부산에서 속초를 잇는 총연장 389㎞ 동해고속도로가 포항시가지에서 끊겨 아직까지 완성되지 못하고 있다. 동해고속도로를 완성시킬 영일만 횡단대교 건설 사업은 동해안지역 지자체의 오랜 숙원이지만 정부에서 외면하고 있다.앞으로 경북도는 강원도와 협의체를 잘 가동해서 국토개발을 L자형에서 U자형으로 끌어와야 한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서해안과 남해안을 비교하면서 동해안의 낙후 정도를 호소하는 전략으로서는 정부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 경북도가 가지고 있는 비전과 가능성을 정부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전략을 잘 짜야 한다. 그 중심에 어제 기공식을 가진 경북도 동부청사가 있어야 한다.

2021-06-15

조급한 빨리빨리, 역동적인 빨리빨리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슴슴한 겨울무 깎아 먹다가 / 느닷없이 장다리꽃 그리며 / 또다시 마음 바꾸는 마음이여 // 지친 꽃묶음 한 구비마다 내던지고 / 비척비척 일어서는 마음의, / 비천한 관성이여 /비천한 빠름이여.”한영옥 시인의 시 ‘비천한 빠름이여’(문학동네, 2001)의 3연과 4연이다. 시인은 양귀비꽃의 피고 짐(1연)보다 계절의 바뀜(2연)보다 빠른, 사랑 또는 마음의 바뀜을 ‘비천한 관성, 비천한 빠름’이라고 자조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사랑이, 마음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빠르게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흔히들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로 성급함을 꼽는다. 강준만 교수는 2006년에 인물과사상사에서 펴낸 ‘한국인코드’라는 책에서 10가지 한국인의 속성 또는 코드 중 하나로 ‘빨리빨리’를 들면서 이 속성은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그 빨리빨리 정신은 현란하게 드러난다. 엘리베이터가 여러 대 설치된 건물에서는 일단 모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죄다 누르고 기다렸다가 가장 빨리 온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닫힘버튼을 먼저 누르는 것이 보통의 우리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둘러 다가오는 사람을 받아주는 여유나 배려는 보기 쉽지 않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빨리 접하고 익히는 단어 중 하나가 ‘빨리빨리’라고 하니 외국인들에게도 빨리빨리는 전염력이 큰, 우리의 속성인가 보다.‘장밋빛 인생’으로 유명한 프랑스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빠담빠담’을 패러디해서 버스커버스커가 노래한 2012년의 KT 기업광고노래 ‘빠름빠름빠름’ 역시 인터넷 속도의 빠름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 이름을 들을 수 있을까 싶은 로켓 배송이니 새벽 배송이니 하는 택배 서비스가 당연시되는 가운데 택배기사들의 과로로 인한 죽음에 우리들의 조급함은 책임이 없을까? 18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광역시 철거 건물의 붕괴 사고 또한 싼 값에 빨리 철거를 하려다가 벌어진 일이라니 이 또한 ’비천한 빠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작년 한 해 코로나 방역 성공으로 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음으로 우리 국민들의 자긍심은 한껏 올랐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는 백신 접종률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저조하다고 방역당국이 정치권과 언론의 질타를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빨리빨리는 백신 접종의 속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늦게 시작된 접종이었지만 6월 15일 낮 2시30분 현재 1차 접종자의 수가 누적 1천3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전체 인구(작년 12월 기준 5천134만9천116명) 대비 25.3%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2월 26일 시작된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은 넉 달도 채 되지 않아 정부의 상반기 접종 목표를 15일 앞당겨 달성했다.짧은 기간에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선진국으로 도약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대한민국은 백신접종에서도 역동적인 빨리빨리의 나라임에 분명하다.그래도, 조금 여유 있게 가면 어떨까?

2021-06-15

왕궁 건물지를 장식한 신라 기와의 정수

기와란 목조건물 지붕의 누수와 부식을 방지하고 건물의 치장을 위해 점토를 틀에 넣어 형태를 만들고 가마에 구워 만든 건축 재료입니다. 지붕은 수키와와 암키와를 이어 덮고 처마에는 수키와와 암키와 끝에 연꽃, 당초, 보상화, 귀면, 동물 등 다양한 문양을 부착한 수막새와 암막새를 장식합니다. 마루는 마루를 쌓아올리는 적새기와, 마루 밑의 기와골을 막는 착고기와, 서까래를 덮는 서까래기와, 추녀 밑 네모난 서까래에 사용한 사래기와, 마루 끝에 귀면기와와 용마루 양쪽 끝에는 치미를 배치하여 지붕을 치장합니다.삼국시대 기와건물은 왕궁, 관청, 사찰 등 국가적인 용도의 건물이나 특수계층의 주거건물 등 국가의 주도하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고, 수막새나 치미 등 특수 용도의 기와 사용을 통해 건물 권위의 높고 낮음을 파악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현재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신라의 왕궁과 관련된 유적으로는 정궁인 월성, 동서 200m 남북 180m 규모의 대형 석축연못의 정원시설과 동궁과 관련된 복합시설이 조성되며 월지(月池)명 유물, 동궁아일(東宮衙鎰)명 자물쇠, ‘세택(洗宅)명 목간, 용왕신심(龍王辛審)명 토기 등 동궁과 관련된 유물이 다량 출토되는 동궁과 월지, 우물 내부에서 ‘남궁지인(南宮之印)’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남궁으로 비정되는 국립경주박물관 부지 내 유적, 월성의 정북방향에 위치하고 통일신라시대에 축조한 전각과 회랑의 건물 배치로 보아 북궁으로 비정되는 성동동 전랑지가 있습니다.또한 삼국시대에는 월성을 정궁으로 사용하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동궁과 월지, 국립경주박물관 부지 내 유적, 월성과 첨성대 사이 공간에 위치한 회랑식 건물지군 일대까지 왕궁의 범위가 확대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월성은 신라의 최고지배계층이 사용한 왕궁입니다. 왕궁 축조와 관련된 문헌기록으로는 “금성의 동남쪽에 성을 쌓고 월성 또는 재성(在城)이라고 하였다.”라는 기사가 확인되며, 실제로 월성에서 ‘在城’명 기와가 수습되기도 합니다.월성은 발굴조사를 통해 5세기대에 왕궁으로서 면모를 갖추고 5세기 후반 또는 6세기 전반부터 신라가 폐망하는 10세기 전반까지 기와를 사용한 건물이 여러 차례에 걸쳐 건립·중건된 것으로 확인되고, 수키와·암키와, 수막새·암막새, 귀면와, 특수기와, 문자기와, 전돌 등 다양한 종류의 기와가 출토되고 있습니다.월성에서 출토되는 기와의 특징으로는 와통을 사용하지 않고 토기제작기법을 응용하여 회전하는 물레에서 제작한 신라의 초기기와가 다량 확인됩니다. 백제의 대통사지 창건와와 동일한 문양이 장식된 수막새와 접합된 초기기와가 출토되거나 기와 측면에 내림새가 부착된 초기기와가 출토되기도 한다. 신라 초기기와는 손곡동·물천리요지와 화곡리요지에서 생산되며, 소비지유적에서 출토되는 분포양상을 살펴보면 월성을 중심으로 500m 이내 근거리에 위치한 유적에서만 확인됩니다. 월성을 제외한 각각의 유적에서는 10점 이내 소량만 출토되어 초기기와를 사용한 건물이 존재하였다고 판단하기 어려우나 월성에서는 다량 출토되어 초기기와를 장식하여 신라의 정궁으로 사용한 건물의 존재 확인이 기대됩니다. 박정재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 월성 출토 삼국시대 수막새는 문양에 따라 백제계·고구려계·신라식으로 구분됩니다. 백제계는 백제 웅진기와 사비기에 유행한 문양이 장식된 수막새가 출토되고, 고구려계는 삼각형의 꽃잎에 양감이 강한 문양이 장식된 수막새가 출토됩니다. 신라식 수막새는 백제계와 고구려계의 영향을 융합하여 개발되며 넓고 부드럽게 융기된 꽃잎 끝을 반전시키거나 잎 가운데 능선을 배치한 문양이 유행합니다. 통일신라 수막새는 꽃잎을 중첩하여 배치한 형태와 보상화문, 가릉빈가, 사자문 등 다양한 문양이 등장하고 대량생산의 필요로 제작기법도 정형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월성 출토 문자기와는 연호명이 나타내는 ‘의봉사년개토(儀鳳四年皆土)’, 신라 6부 가운데 북천이북의 소금강산 일대에 위치한 한지부와 관련성을 보이는 ‘한(漢)’·‘한지(漢只)’, 보문동과 낭산 부근 지역에 위치한 습비부와 관련성을 보이는 ‘습부정정(習部井井)’·‘습부정정(習府井井)’, 기와 제조와 관련된 관청인 와기전(瓦器典)과 관련성이 보이는 ‘전인(典人)’ 그 외 ‘생(生)’, ‘주(主)’, ‘정도(井桃)’, ‘주(朱)’, ‘본(本)’, 만(‘卍)’, ‘정(井)’이 있습니다.월성에서 출토된 문자기와 중에 특징적인 유물로는 ‘儀鳳四年皆土’명 기와가 있습니다. ‘儀鳳四年皆土’명 기와에 새겨진 儀鳳四年은 679년에 해당하는 연호이며 월성, 동궁과 월지, 국립경주박물관 주차장부지 등 신라 왕궁과 관련된 유적에서 다량 출토되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7세기 후반 이후 월성 주변 일대에 관청건물을 건립하여 왕궁의 영역이 확대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2021-06-14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미술

전시 공간에 놓여 있는 동일한 모양의 큐브들. 누구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이 손 쉬운 물건들이 미술작품이라니.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자신들이 기대하고 상상하던 미술과 지금 눈앞에서 경험하고 있는 상자들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된다. 심지어 미술가들이 직접 제작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것이 어떻게 미술일 수 있으며, 도대체 무엇을 봐야할지 혼란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미니멀리즘은 1960년대에 나타난 미술형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시기에 곡선이 배제된 주로 각이진 모서리의 기하학적인 형태의 추상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미술 평론가들은 기하학적 형식의 미술작품들이 처음 소개됐을 때 ABC 아트, 오젝트 아트, 프라이머리 스트럭처 쿨 아트 혹은 리터럴 아트라는 명칭으로 불렸지만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것이 미니멀리즘이다.미니멀리즘은 1950년대 후반까지 미국 현대미술을 지배하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미학적 반작용으로 일어났다. 유럽에서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미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 추상표현주의는 1940년대 일어난 미국 최초의 현대미술 사조로 액션페인팅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 색면추상의 마크 로스코 등과 같은 미술가들이 여기에 속한다.1940년대와 50년대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미술을 지배하고 있을 무렵 표현이라는 요소를 작품에서 완전히 제거한 새로운 미술을 선보인 미술가들이 있었다. 미니멀리즘의 선구적 역할을 한 프랭크 스텔라가 남긴 ‘What you see is what you see’(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라는 말은 추상표현주의 이후의 미술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추상표현주의와는 달리 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은 미술작품에서 모든 감정을 제거하고 작품의 고유한 특징들을 비워내고 창작자의 흔적을 지워버리기 위해 각진 모서리의 기본적인 모양과 형태를 선택했다. 이로써 유럽의 전통미술은 물론 추상표현주의 미술에서 명백히 읽혀지는 착시나 상징, 은유 등과 같은 요소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게 된다.미니멀리즘 작품에서는 몇몇 형식적인 공통점들이 관찰된다. 첫째 동일한 형태가 반복적이면서 규칙적으로 나타난다. 둘째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기계적으로 생산된 것이거나 공장에서 제작된 재료들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창작의 주체인 미술가 개인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아 비인격적이다. 칼 안드레가 자주 사용한 벽돌이나 철판 댄 플래빈의 형광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은 감상자들이 작품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하거나 재료를 다루는 실력에 경외심을 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초감각적이나 정신적인 가치를 부정하고 기념비적으로 웅장하거나, 비장미, 역사적인 이야기, 고귀한 재료, 이지적인 구조 혹은 시각적으로 흥미진진한 경험을 철저하게 거부했다.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이 추구했던 것은 완전히 새롭고 명백한 실제(realness)였다. 미술작품과 감상자 사이를 심리적으로 분리시키는 장벽을 허물어 버리기 위해 조각 작품을 설치할 때 사용하는 좌대를 없애 버렸다. 심지어 칼 안드레의 경우 납작한 철판을 전시장 바닥에 깔아 놓고 감상자들이 그 위를 걸으면서 작품과의 직접적인 물리적 접촉을 하도록 유도한 전혀 새로운 개념의 조각을 선보였다.미니멀리즘의 이론적 체계 확립에 큰 역할을 했던 도널드 저드는 자신의 작품을 회화나 조각이 아닌 3차원의 실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특정한 대상(Specific Object)이라고 규정했다. 저드는 미술의 조형적 순수성을 오염시키는 모든 환영(illusion)을 제거해야한다는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입장에 동의했고, 미니멀리즘 작품들은 무언가 다른 것을 의미하거나, 지시하거나, 가리키거나, 상징하지 않는다./미술사학자

2021-06-14

대한민국의 행복 지수가 왜?

권윤구 포항 중앙고 교사 행복 지수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스스로 측정하는 지수이다. 행복 지수는 유럽 국가가 아시아 국가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유럽이 아시아보다 국토 자원이 많고 경쟁력이 낮기 때문이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행복 지수는 주거, 고용, 소득, 교육, 환경, 공동생활, 보건, 삶의 만족도 등 11개 항목을 평가했다. 회원국 36개 회원국 중 1위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차지했고, 노르웨이와 미국, 스웨덴 순서이고 대한민국은 24위이다.또한 유엔 산하에서는 2년마다 약 150여 개국을 대상으로 행복 지수 통계를 내는데 삶의 만족도, 기대 수명, 교육의 질, GDP 등을 종합해 산출한다. 2021년 153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 지수 통계를 보면 핀란드가 가장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다. 핀란드가 행복 지수가 높은 이유는 국가에서 제공하지 않는 많은 혜택이 있다. 그중 깨끗한 자연이 하나의 큰 이유로 선택된다.핀란드는 복지 혜택이 가장 높고 부정부패가 낮은 청렴결백한 국가이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자신감을 고취시키고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평등을 교육하는 나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충격적으로 행복 지수가 153개국 중 61위이다.영국의 시사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EIU가 최근 조사한 결과 140개국 가운데 한국인의 삶의 질, 행복 지수가 80위로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GDP 상승률이 세계 4위로 40년간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로 세계 최고 두뇌를 가지고 있으나 표현의 자유는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삶의 질과 암 환자나 노인들의 죽음을 맞는 환경은 나쁜 것으로 발표됐다.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대국에 속하지만 국민 삶의 만족도는 OECD 최하위권이다.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부룬디는 인구 5% 미만만이 전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행복 지수는 150개국 중 140위이다.경제력과 행복 지수는 다르다. 교육환경, 구매력, 안전, 보건, 물가, 집값, 출근 시간, 오염, 기후 등의 항목의 종합적 평가다. 대한민국은 위선과 오만과 그리고 독선이 난무해 국민들의 삶의 질이 더욱 떨어지고 있다.코로나19 신종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세계 경기는 멈추었다. 치사율도 높고 전염성이 매우 높아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했고, 야외 활동을 제한했다. 또한 외국 여행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청년은 직장을 잃고, 많은 자영업자들이 가게 문을 닫는 상황은 전 세계적 상황이었다. 집값은 무주택 서민이나 젊은층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됐다.국민의 행복 지수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의 채무가 개선되고,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도의가 중시되고, 정의가 바로 서야 한다. 또한 삶의 복지를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재해로부터 안전한 삶, 사회적 약자의 편리한 삶을 구현해야 한다. 정치인도 국민에게 달콤한 말로 화려한 미래를 약속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무엇을 국민에게 더 잘 살고,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2021-06-14

장기읍성의 文士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뻐꾸기 울음소리 이슬비에 젖어 드는 장기읍성을 거닐었다. 산딸기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밤꽃향이 그윽하게 피어나는 산성 둘레는 청록일색의 싱그러운 파노라마였다. 멀리 보이는 현내 들판에는 판서(板書)하듯이 온갖 작물들이 자라고 있고, 동악산 자락 대숲에는 산성을 호위하듯 창 같은 죽순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엷은 안개의 마중 속에 주변으로 천천히 눈길을 돌리면서 마름모꼴 읍성의 내력을 생각하며 옮기는 발걸음이 느긋하기만 했다. 포항문인협회 주관의 2021년 포항문학 하계세미나로 열린 ‘제35회 보리 문학제’에 동참한 것이다. ‘보리누름 문학제’는 지난 1986년 고 손춘익 아동문학가를 비롯한 지역 문인들이 대보 구만리 보리밭으로 떠났던 소풍에서 비롯됐다. ‘동해산문’에 실린 한흑구의 명수필 ‘보리’의 문학성을 기리며,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때 지역의 문인들이 회동하여 탁주 한사발에 글을 논하고 시를 읊조리던 것이 현재는 ‘보리 문학제’로 이어져 문인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색있는 문학행사로 자리매김했다.문학의 자취를 둘러보며 시민과 문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개성있는 예술적 감각과 문학적인 소양을 키우는 취지로 올해 35회째 맞이한 보리 문학제는 지난 12일 ‘벼랑 끝에서 길을 찾다’는 테마로 장기읍성과 장기유배문화체험촌 일원에서 열렸다. 첩첩산중, 바다에 둘러싸인 장기면은 예부터 사대부 유배지로 조선왕조 500년 동안 단일 현에서 가장 많이 정배된 곳이지만, 당시의 석학이나 정객들이 형벌의 땅에 머물면서 학문연구와 문풍이 되살아난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녹음은/서슬 푸른 정배(定配) 마냥 에워싸도/보리물결 의연히 원숙으로 익어가는/변방의 적거지(謫居址)에는/이끼 새삼 푸른데//혹독함이 키운 뿌리 튼실함을 더해가고/비운의 귀양살이 충정 외려 드높아/정념(情念)의 웅숭깊음이/초연하게 자라네//처연함에도/문기와 인지(人智)가 솟아/우암(尤菴)이 어리고 다산(茶山)이 배인 둘레/맥추(麥秋)의 바람결 따라/학덕이 넘실대네-拙시조 ‘장기유배지 소견’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 장기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펼친 강학과 남긴 시문들은 학문을 숭상하는 문화적인 풍토가 됐다. 외지고 궁벽한 귀양지에서 유배의 좌절을 서책 탐구와 저서 집필, 유생 교육 등의 새로운 학풍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지역의 소객(騷客)들이 1.4km 정도의 성곽을 둘러보고 녹음 속의 ‘우암과 다산의 사색의 길’을 걸으면서, 문필의 현대적인 계승과 문학의 새로운 지향점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사회적인 양상과 시대를 반영하는 문학은, 코로나의 고역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과연 어떤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문사(文士)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 걸까?돌아오는 길, 신창리 해변의 몽환적인 해무 속에서 몇 편의 자작시와 수필을 낭독하고 경청하는 내내 파도도 흥겨운지 철썩대는 음률로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문학지망생인 포항문예아카데미 23기 수강생들도 그렇게 함께 어울리고 나눈 시간들이 정겹고 넉넉하게 맥랑치는 듯했다.

2021-06-14

Brava! 클라라 주미 강!

클라라 주미 강의 바이올린으로 5월을 닫고 6월을 열었다. 롯데콘서트홀과 경기아트센터에서 연이틀 공연을 보고 황홀했다. 이번 무대에서 그녀는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을 연주했다.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은 연주시간만 140분에 달한다. 극심한 난이도와 체력 부담, 바이올린 한 대만으로 무대를 채워야 하는 연주자의 심리적 압박까지, 바이올리니스트에겐 최고의 도전이자 거장으로 나아가는 수행의 과정이다. 마라톤이나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비견되곤 한다. 나는 주미 강의 연주에서 종교적 광휘를 느꼈는데, 봉쇄수도원에서 고행하는 수도자가 보이기도 하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필사하는 새벽 신도가 보이기도 하고, “얇은 사 하이얀 고깔 고이 접어 나빌레라”의 여승이 보이기도 했다.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주미 강이 등장할 때, 1년 반 동안 잘려나간 삶의 절단면이 복구되는 걸 느꼈다. 코로나 이전, 객석에서 주미 강의 연주를 감상하는 일은 일상의 특별한 행복이었는데, 그게 중단되자 낭만도 몽상도 시들어 나는 가뭄이고 폐허였다. 그녀가 다시 1708년산 ‘엑스 스트라우스’를 들고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을 봄비 삼아 오뉴월 초록이 마음으로 번질 때, g minor 코드의 고혹적인 보잉과 함께 주미 강의 바흐가 시작됐다.주미 강은 바흐가 꿈꾼 오직 바이올린만의 광활 우주를 이상적으로 재현해냈다. 그녀의 아우라는 소리가 빠져나갈 구멍 없이, 관객의 집중이 새나갈 틈 없이 완벽한 밀도를 이뤘다. 바이올린으로 낼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부터 큰 소리까지, 제일 두꺼운 소리부터 가느다란 소리까지, 짧은 소리부터 긴 소리, 어두운 소리부터 환한 소리, 속주부터 비브라토까지 자유롭게 오갔다. 첼로, 콘트라베이스, 피아노, 바이올린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만 같았다.프랑크 소나타나 브루흐의 스코티시 판타지 등 장조 곡을 연주하는 모습이 내겐 익숙한데, 단조 위주인 바흐 무반주의 짙고 무거운 격랑 속에서 주미 강은 ‘밤의 여왕’이었다. 그녀의 연주에선 35년의 한 생애 전체가, 지나온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이, 삶과 죽음이, 바흐의 300년과 엑스 스트라우스의 300년이 휘몰아쳤다. 밤바다에서 죽고 태어나는 파도의 하얀 뼈와 사막의 지평선으로 자맥질하는 별들과 황금처럼 빛나는 무거운 안개들을 보았다. 가장 캄캄한 밤부터 환한 아침까지, 깊은 물속의 소리부터 구름 위 하늘의 소리까지, 작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떨림부터 숲 전체가 일어서서 걸어오는 지진까지를 들으며 나는 말러 2번 ‘부활’에서 느끼던 것과 비슷한 장중함과 숭고미에 두 손을 모았다.경기아트센터 1부에선 에어컨 기계음에 여린 소리와 잔향이 먹혔는데, 소매를 걷어붙인 주미 강의 바이올린은 공연장을 금세 장악했다. 공간도 시간도 무화되어 여기가 서울인지 수원인지 상관없었다. 에어컨 소리도 기침소리도 핸드폰 소리도 다 집어삼켜버렸다. 오직 바이올린만 있었다. 바이올린을 자유롭게 하는 주미 강만 있었다. 그녀는 3시간 내내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보다 행복한 바이올리니스트이길 늘 바란다. 바흐의 음악은 매우 엄격하고, 수많은 규칙들이 존재한다고 들었다. 주미 강은 오히려 엄격함 속에서 자유로움을, 규칙들 가운데서 균형과 조화를, 교리에 충실함으로써 신에 닿는 날개를 얻은 듯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연주의 하이라이트인 파르티타 2번 d단조 5악장 ‘샤콘느’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녀가 연주자로서 새로운 한 차원을 열었음을,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회색의 간달프가 죽음ㅡ부활 후 백색의 마법사로 거듭난 것처럼 젊은 마스터에서 거장으로 도약했음을 관객들에게 선언했다. 롯데콘서트홀 1층 C구역 15열쯤에서 정경화 선생이 “Brava!”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친 순간도, 박수에 다소 인색하던 경기아트센터 객석이 무려 세 번이나 커튼콜을 요청한 순간도 다 샤콘느의 비장한 마지막 보잉이 멈춘 그때였다.선덕여왕은 잠든 지귀에게 다가가 황금팔찌를 그의 가슴 위에 올려두었다. 잠에서 깬 지귀는 금팔찌를 품에 안고 기뻤다. 그런데 그 기쁨이 불꽃으로 타더니 급기야 온몸을 활활 사르는 불덩어리가 되었다. 주미 강의 샤콘느는 여왕의 팔찌처럼 나를 사로잡아, 나는 무반주 바이올린 선율에 갇힌 2021년 여름을 무한히 반복해서 살지도 모르겠다. 타는 줄도 모르고. 아니 타는 걸 기뻐하며.

2021-06-14

비건으로 가까워지는 삶

비건의 삶은 지구와 생명체를 위한 일이 아닐까. 2주 전 주말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는데 무거워진 몸이 버겁게 느껴졌다.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풀어서인지 폭식은 또다시 습관이 되어 있었고, 어느샌 음식을 배가 고파서가 아닌 기분이 좋지 않단 이유로 의무적으로 먹기 시작 했다. 그렇게 겨울 내내 옷 태가 달라졌고, 알레르기를 심하게 앓는 피부와 비염도 극심해져 몸 전체가 망가지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열패감에 시달리곤 했는데, 다시 굶기 시작하면 원래 몸무게로 돌아갈 수 있을거란 믿음을 스스로 주입하며 되뇌곤 했다.난 몸무게가 고무줄처럼 오가는 편이다.스스로를 프로다이어터라고 칭하는 만큼 폭식과 절식을 극단적으로 행하는데 수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18살엔 일 년 사이에 몸무게가 13킬로그램 정도 증가하기도 했다. 갑자기 살이 찌면 피부가 늘어나서 빨간 자국이 몸 곳곳에 새겨진 다는 걸 그 때 알았다. 22살이 되던 해에는 운동 없이 절식만으로 17킬로그램을 뺐다. 딱히 다이어트를 해야겠단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음식에 대한 욕망이 사라질 때의 공허한 기분을 조금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갑자기 살이 빠지니 변화된 몸에 대한 칭찬을 정말 많이 들었다. 인물이 산다거나, 드디어 얼굴에 꽃이 폈단 말을 부모님이나 친구들, 선생님들, 주변 어르신들 너나 할 것 없이 자주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끔찍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건 굶을수록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우월감이나 성취감에 빠졌단 거였다.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탄력 없이 축 늘어진 피부와 원인 모를 알레르기가 찾아 왔다. 머리카락과 얼굴은 푸석푸석했고, 무엇보다 자주 무기력해졌다. 외출 후 한 시간만 지나도 극심한 피로가 찾아와서 상대와 눈을 맞추는 것도 힘겨울 정도였으니까.어쨌거나 극단적인 다이어트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단 생각이 들자, 먹는 것에 대한 강박을 내려 놨다. 몸무게는 나날이 증가했지만, 그렇게 몇 년간은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지내왔다.그런데 이주 전 침대 위에서, 이젠 도저히 맘 놓고 먹어선 안 된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루 세 잔씩 커피를 달고 사는 데다 아홉 시간 반씩 사무실 의자에 앉아 퀭하게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자니 하루의 운동량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마침 늘 관심사로 두고 있던 비건이 생각나자 그 자리서 바로 검색해보기 시작했다.비건은 흔히 채식주의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섭취 방법에 따라 프루테리언, 비건, 폴로 베지테리언, 플렉시테리언 등등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상대적으로 익숙한 이름의 비건은 고기나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고, 생선이나 계란, 우유, 버터 같은 동물의 희생으로 발생되는 식품까지 포함하여 섭취하지 않는다. 프루테리언은 비건보다 한 차원 높은 채식을 지향하는데 이들은 식물도 살아 있는 생명이라 여겨 과일이나 견과류 종류만 먹는다. 폴로 베지테리언은 유제품과 계란, 어패류, 날개 달린 고기까지 먹는 단계로 상황과 때에 맞춰 자신이 선택하여 먹을 수 있다. 플렉시테리언은 평소 채식을 하다 가끔 고기를 먹는다. 비교적 선택지의 폭이 넓어 자유롭게 섭취할 수 있단 특징을 지니고 있다.그런데 무조건 채식을 한다고 해서 건강해지는 건 아니었다. 동물성 식품을 배제하는 완벽한 채식을 하기 위해선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내 몸에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는 것도 어려운데 좋은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을 고루 채울 수 있는 식단을 스스로 마련하는 것도 지식 없인 난감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처음부터 고기를 끊긴 어려워서 상황에 따라 채소와 육류를 선택하며 먹었고, 되도록 채소 섭취를 우선으로 했다. 중요한 건 내 체질에 맞게 식재료를 선택할 줄 알아야 했는데, 필수 영양소에 대한 공부뿐만 아닌 내 몸과 마음의 균형에도 시간을 들이게 됐다.비건에 눈을 돌리니 동네 마트만 가도 비건을 위한 식품이나 간식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는 게 보였다. 우유를 아몬드 두유로 교체할 수 있는 카페도 많았고, 대형 프랜차이즈 가게에선 비건을 위한 메뉴가 꾸준히 출시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이제 겨우 이 주 정도 지났지만 속이 편해졌고 몸의 붓기가 많이 빠졌다. 생활의 질이 높아진 건 물론, 비건으로 가까워지는 삶은 궁극적으로 지구와 모든 생명체를 위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떤 신념을 유지한다는 건 이토록 수고로운 일임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2021-06-14

문재인 정권, ‘집단사고의 늪’에 빠지다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문재인 정권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분노로 바뀌었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촛불의 이름으로 공정과 정의를 역설했고, 통합과 협치를 선언했으며,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4년이 지난 지금, 공정과 정의는 무너졌고, 나라는 완전히 두 동강 났으며, 국민은 ‘이것도 나라냐?’고 묻고 있다.이처럼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 원인은 무엇인가? 문재인 정권이 ‘집단사고(groupthink)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집단사고란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다양한 의견들을 억압하여 획일적으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이르는 현상’을 말한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했는데, 현 정권은 ‘코드인사’로 일관했다.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장관급만 33명이나 임명을 강행했다. 동종교배(同種交配)적 인사는 필연적으로 집단사고의 오류를 범한다.여당 내에서 정부정책과 다른 의견을 말하면 즉시 ‘문빠’와 ‘대깨문’의 집중공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거나 공천에서 탈락시킨다. ‘민주 없는 민주당’에서 당내민주주의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결정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편향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대통령이 예스맨(yes man) 참모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집단사고의 오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정책결정과정에서 집단사고의 응집력은 ‘양날의 칼’이다. 응집력이 강하면 집단 내부의 의사소통은 원활하지만, 외부와 차단됨으로써 독단에 빠질 위험성이 훨씬 더 커진다. 그렇다면 집단사고의 늪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먼저 법적·제도적 차원에서 권력을 통제하고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합리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정책결정과정에서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을 두는 것이다. 그는 항상 반대편에 서서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여 토론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보다 나은 대안을 모색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대통령에게 고언(苦言)하는 비판자 역할을 법적으로 보장한다면 집단사고의 오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민주적 리더십’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할지라도 그 기능을 살릴 수도 있고 형해화(形骸化)시킬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대통령의 권력이다. 권력의 집중과 집단사고는 대통령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비극의 원천’이었음을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末路)가 증명하고 있다.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집단사고의 늪에 빠지는 순간, 대통령은 독재의 길을 가게 되고, 그 길의 끝에서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따라서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은 집단사고의 문제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집단의 도덕성과 완전성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한편, 집단 밖의 의미 있는 비판들을 경청하는 것이 민주적 리더십이다. 대통령이 확증편향과 진영논리에 갇히면 집단사고의 늪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2021-06-14

이준석의 역량, 국민의힘 외연확장에 사용을

36세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등장으로 20대와 30대 유권자들이 우리 정치의 태풍의 핵이 되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의 절대지지층이었던 2030세대가 지난 4·7 재보궐선거에 이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경북매일신문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직후 20~30대 젊은 작가 4명을 초청해 좌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패널들은 “2030세대가 젊은 당대표를 선택한 이유는 이준석 개인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정치권의 구태에 대한 반감의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기성 정치인들이 청년 정책에 있어 뜬구름 잡듯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반면, 이준석 대표가 청년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한 점이 어필했다는 것이다. 택시 업계 문제를 체감해보기 위해 면허를 취득해 2개월간 택시기사로 일한 것이나 블록체인 산업과 2030세대의 절망감을 이해하기 위해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한 것 등이 청년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다. 일요일인 지난 13일에는 당 대표에게 제공되는 승용차 대신 서울시 공유자전거를 타고 국회에 첫 출근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좌담회에서는 보수의 변화를 바라는 것이 단순히 청년 세대의 열망만은 아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국민의힘 당내에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바꿔야 한다’는 불안감이 이준석이라는 젊은 대표를 내세우는 요인으로 작동했다고 봤다. 대구·경북 정치권도 세대교체 바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대표가 정치인 자격시험 제도를 언급하자 벌써 내년 지방선거 공천을 받으려는 젊은 예비후보들이 엑셀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청년과 여성, 정치 신인 등이 세대교체를 기치로 대거 도전장을 던질 가능성이 크다.이준석 바람이 당의 개혁과 화합에 기여하는 순풍이 되지 못하고 당의 분열을 초래하는 역풍이 된다면 국민의힘으로선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 대표의 거침없는 리더십과 인사스타일이 당의 분열을 가져올 가능성은 다분히 있다. 이 대표는 자신이 내년 대통령선거의 관리자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러려면 그의 모든 역량을 당의 외연을 확장하는데 써야 한다.

2021-06-14

케모포비아

‘케모포비아(Chemophobia)’는‘화학적인’이라는 뜻의 케미컬(Chemical)과 ‘공포’를 뜻하는 포비아(Phobia)의 합성어로, 잘못된 상식 때문에 소비자들이 스스로 사용하는 생활화학제품에 대해 근거 없는 공포를 느끼고 지나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를 말한다.제조·유통과정에서의 문제를 정부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보관법이나 사용법 때문에 부작용을 경험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있다. 최근 아이들이 사용하는 그림물감, 아동용 섬유제품 등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거나 합성가죽 소파에서 불임 위험을 높이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성분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2011년에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후 민감해진 소비자들이 공산품으로 생산·유통되는 거의 모든 생활화학제품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2017년의 살충제 달걀과 생리대 파동도 화학혐오증을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됐다.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조사한 생활화학물질 위해성 인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5%가 생활화학제품에 케모포비아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케모포비아 때문에 특정 먹거리나 생활용품들에 민감하게 반응해 불안을 키울 필요는 없다. 운동과 식습관으로 인체의 항상성 유지 기능을 높이는 게 더욱 중요하다.운동을 할 때는 땀을 배출하고 호흡에 집중하는 동작을 매일 15∼30분정도 해주는 것이 좋다. 음식에서는 식이섬유 섭취를 늘리고,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식이섬유를 많이 먹으면 대부분 지용성인 화학물질 배출이 잘되게 돕고, 수분도 몸속 자정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6-14

대구 제2수목원 조성, 시민의 힐링공간 되길

수목원과 식물원은 용도면에서 구분하기가 어렵다. 나무를 심어서 가꾸고 관상 가치가 높은 식물이나 희귀수목을 배치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휴식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같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수목원은 식물원보다 면적이 넓은 것으로 인식돼 있으나 외국의 사례를 보면 면적을 기준으로 구분하기도 어렵다. 많은 식물종을 수집하여 재배하고 식물학상의 연구자료로 활용함과 동시에 일반인에게 공개하여 휴식의 공간을 제공한다면 조성 목적에 잘 부합한다 하겠다.대구시가 2018년부터 구상했던 제2수목원 조성 계획이 국토부 심의를 통과했다. 대구권 개발제한구역 관리계획변경안이 국토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함으로써 대구의 제2수목원 조성사업이 이제 가시권에 들어선 셈이다.대구시는 현재의 수목원이 연 170만명 이상 찾아 포화상태에 있어 제2수목원 건립의 필요성이 높아졌고, 제2수목원은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대구혁신도시 인근 동구 괴전동 일원에 조성키로 했다고 한다. 규모는 45만4천여㎡에 이른다. 특히 제2수목원은 쓰레기 매립장을 메워 조성한 기존의 수목원과는 달리 팔공산이라는 자연환경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연친화형으로 조성이 가능하다고 한다. 팔공산 산림자원을 보전하고 자생식물을 활용함으로써 수목원의 가치를 한층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또 기존의 수목원이 대구의 남서쪽에 치우쳐 있어 제2수목원을 동구 혁신도시 주변에 건립기로 해 도시균형발전을 꾀할 수도 있다니 제2수목 건립이 여러모로 유용해 보인다. 수목원 수가 서울은 5군데 부산과 인천이 각각 2군데 조성돼 있는 데 비해 대구는 이제 1곳을 추가할 계획이니 늦은감은 있다. 그러나 늦은만큼 잘 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최근 수목원은 도시민이 즐겨찾는 공간으로 바뀌어간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난해 대구 수목원에는 코로나 이전보다 방문객이 20%가 늘었다. 수목원이 시민의 힐링 공간으로 정착하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 통계를 보면 선진국일수록 수목원 수가 많다. 물질문명 발달에 따라 자연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성했다는 것이다. 대구에 새로 건립될 제2수목원이 자연을 마음껏 즐길 공간으로 탄생하길 기대한다.

2021-06-14

코로나시대를 건너는 법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사람과 만날 일이 없던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사람이 자연의 영역을 무한정 침범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바이러스들은 말을 이동수단으로 이용하자 말에게서 사람에게 감기가 옮겨온 것처럼 사람을 선택했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괴물이 되었다. 성장과 효율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의 입은 마스크로 막혔다. 숙주와 숙주 사이를 떨어트리는 일인 사회적 거리두기는 ‘행동백신’이 되었고 ‘서로에게 백신이 되자’는 말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매뉴얼이 되었다.거리두기, 모이면 죽는다, 흩어져라. 소통을 강조하던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단절이 권장사항이 되었다. 그렇게 어리둥절 혼란의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사람대신 자연을 만나기 시작했다.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도 아니면 집에서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자연을 괴롭혀서 생긴 고립과 우울을 자연에게서 위로받는다. 이래저래 참 고마운 자연이고 사람은 참 염치도 없는 것 같다.자연을 자주 접하는 것, 나무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나무를 읽을 줄 아는 ‘감수성의 근육’이 단단해진다는 건 좋은 일이다. 서로 만나진 않지만 ‘우리 동네에서 꽃으로 놀자’라는 슬로건아래 건물 앞, 벽면, 옥상, 계단, 현관 지붕 위, 언더라인(다리 밑과 그 주변 유휴 공간)에 테마-색상이나 정서, 관계의 변화-가 주어진 주민참여 마을단위 생활형 정원 가꾸기로 발전한다면 코로나블루를 이기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아무튼 더욱 더 사람들이 자연과 친해지는 자세는 소중한 자산이다.코로나 초기, 미국에서는 노숙자들을 주차장의 주차선 한 칸을 띄워서 격리하다가 온 세계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우리도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비정규노동자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이 자기 것이 없어서 신발과 방한복을 공동으로 사용하여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 된 일이 지탄을 받았다. 사회적 돌봄에서 제외 된 소수자들이 물류센터 뿐이었을까? 감염병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그리고 코로나는 우리의 불평등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콜센터, 노인복지시설 등 1인당 차지하는 공간이 좁은 곳이나 저소득층을 파고들었다. 아파트 출입문에 손을 빼기도 전에 닫아버려서 다친 택배기사들은 ‘사람이 온 게 아니고 음식이 온 것’으로 취급당했다.하지만 코로나는 ‘포스트 코로나? 어떤 세상일까?’에 대한 정확한 답도 가르쳐 주었다. 태풍으로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무거운 생수를 시킨 것이 미안해 취소를 하려고 했는데 이미 출발을 한 택배기사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글을 써서 샌드위치, 우유와 함께 건넨 사람들도 있었다. 그 선물을 받은 택배 노동자는 자신이 코로나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에 힘든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며 인터뷰 끝에 ‘하하하’ 크게 웃었다.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도 코로나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세월호 사건 이후로 안전교육이 강조됐는데 너무 강조되다보니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괴감에 빠졌다는 교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그 말이 안전교육을 하며 다시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실패에서 배우는 데 실패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코로나, 뉴 노멀을 이야기한다. 마스크를 벗기 전에 우리가 포스트코로나를 맞이하는 자세를 돌아보아야한다.돌봄이라는 개념은 일방향적 서비스가 아니라 모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역능, 즉 ‘자기배려와 타자배려’의 기술로 이해해야한다.돌봄을 저렴한 노동으로 치부하고 돌봄 노동자에게 하청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미래사회를 우리가 직접 설계해야한다. (미래-공생교육/김환희/살림터 2020)포스트코로나를 살아가야할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는 ‘공생’이다. 모든 기술도 매뉴얼도 그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어야 의미가 있다. 코로나시기를 지나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공생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 그리고 그 공생의 범위는 사람을 넘어 지구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한다. 공생이 보편적 윤리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는 ‘첨단기술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여야 하고 ‘세계를 다시 설계’하고 지금까지의 ‘사회를 다시 고쳐야한다’는 생각이 공통의 관심사가 되어야한다. 공생의 삶이 어떤 삶인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어릴 적, 마당에 세수를 마친 뜨거운 물을 붓자 그 물길을 따라가며 ‘눈 감아라 눈 감아라’ 벌레들의 눈을 걱정하던 할머니를 보고자라지 않았는가! 매일매일 장독대를 닦는 어머니에게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웬 정성이냐’ 물으면 산속의 새도 보고 청설모도 보는데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른거리지 않는가!‘지속가능하고 건강한 생태환경 속에서 모든 생명이 잉태되어 그 목숨을 다 할 때까지 가진바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다가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면 다시 되찾는 일상은 ‘공생의 일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스크를 벗기 전까지 ‘우리는 계속 우리를 낳아야한다.’ 실패에서 배우는데 실패하지 말자는 각성의 백신을 계속 맞아야한다.

2021-06-13

다문화와 함께 하는 열린 대구의 희망

정영태대구여성가족재단 선임연구위원 국내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2019년 기준 177만 명으로 외국인의 비중이 전체 인구의 4% 정도지만, 우리나라는 OECD국가 가운데 상대적으로 외국인의 비중이 낮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그러나 20세기 말부터 이주의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결혼, 취업, 학업 등의 목적으로 국내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그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결혼이민자의 한국국적 취득, 난민 인정, 이주배경 청소년들의 사회적응과 교육, 취업 등 이주민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의지와 함께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이러한 노력의 하나로 서로 다른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집단을 같은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정도를 다문화수용성으로 정의하고, 정부에서 2012년부터 3년마다 국민의 다문화수용성을 발표하고 있다.지난 2019년 4월에 발표된 다문화수용성 결과, 우리 지역이 속한 영남권은 다문화수용성이 51.83점으로 전국 평균 52.81점에 비하여 낮은 수준이다. 2015년 대비 1점이 하락하였으며, 성인과 청소년의 다문화수용성지수 간 격차 역시 5.4점이 더 넓어졌다.대구시의 외국인·이주민을 위한 정책 가운데 결혼이민자와 관련된 정책은 구·군별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어교실, 가족교육, 가족상담 등 가족관계는 물론 지역사회 적응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지원되고 있다. 주목해 볼 사업으로 사각지대의 결혼이민자를 찾아내고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맺고, 소외되지 않고, 지역사회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지지망을 맺는‘다문화가족소통도우미사업’, 한국어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초기 결혼이민자 또는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한시적 ‘일상생활 통역지원’, 자녀의 학교 공지 사항 등 알림을 알기 쉽게 모국어로 번역하여 서비스하는 ‘다국어 자녀 학교 알림서비스’ 등 이주민을 위한 세심한 정책이 지역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그런데도 우리 지역의 다문화수용성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지 않는 차별·배제·동화 등의 전통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초기 다문화를 대하는 방식은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보다는 주로 우리 중심의 하나의 방식만을 인정하도록 하였다. 예를 들면 결혼이민자의 경우 자녀에게 엄마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을 꺼렸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중언어의 필요성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녀에게 이중언어를 학습의 기회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조금씩 조금씩 다문화수용성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이처럼 다문화수용성에 대한 다양한 접근은 주류 구성원들의 인식과 태도가 ‘상호문화주의’입장에서 다문화사회를 바라보기 위한 흐름으로 바뀌고 있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익숙했던 문화에서 크게 다름이 차별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된다.얼마 전 어떤 강의에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피자와 파스타가 있다면 베트남 대표요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누구나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쌀국수’를 외쳤다. 순간 “왜, 이탈리아 면 요리는 파스타인데. 베트남 면 요리는 쌀국수라고 하죠”라는 질문에 모두가 순간 다른 대답을 쉽게 하지 못하였다. 베트남의 면 요리의 퍼(ph1EDF)로 부르지 않고 쌀국수로 부르고 있다는 점을 그제야 인지했기 때문이다.아마도 이러한 태도가 우리가 지닌 다문화에 대한 수용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를 바꾸기 위해 어린이집, 학교, 회사 등 다양한 곳에서 다문화수용성제고를 위한 교육이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 문화관광부, 여성가족부 등 부처별로 다문화수용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교육 콘텐츠와 강사를 파견하고 있으며, 인식개선을 위한 홍보 역시 부처별로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되고 있다.앞서 성인과 청소년의 다문화수용성의 세대 간 정도의 차이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만큼 타인에 대한 문화를 배려할 수 있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수용성이 샐러드 볼이라고도 하고, 용광로라고도 한다. 샐러드 볼은 다양성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용광로는 그 다양성이 하나로 녹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강점이 있다.대구는 샐러드 볼이 될 수도, 용광로가 될 수 있는 그런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함께 뭉치고 함께 역경을 이겨내고,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열정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살아있는 시민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구에 더 많은 이주민이 이방인이 아닌 우리의 공동체로, 그들과 우리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열린 도시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2021-06-13

앞으로도 갈 길은 멀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지난 1년간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면서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보인 것을 제외하면 생산, 고용, 소비, 무역 등 거의 모든 경제 부문이 코로나19의 악영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다.금년 들어 세계 각국이 백신 도입을 확대하면서 세계 경제도 팬데믹에 따른 충격에서 벗어나 심리적인 안정 등에 힘입어 조금이나마 해동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모습이다. 이에 따라 주요 경제주체들도 비대면, 언택트, 온라인 등 다양한 방식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급감하였던 생산, 고용, 소비의 주요 지표들도 조금씩 반등의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포항 경제의 근간인 철강 산업단지의 월별 생산액도 증가하는 등 지역경제에도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는 있으나 월별지표만으로 경기가 완전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왜냐하면 올해의 지표는 특이요인을 고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호텔숙박업의 경우에는 2019년 5월 매출을 100으로 볼 때 지난해 5월은 10 정도까지 떨어졌었기 때문이다.만약 올해 5월 매출이 20 정도라면 전년 동월 대비로는 해당 업종의 매출이 무려 2배나 늘어난 셈이 된다. 착시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평소 100이었던 수준을 생각하면 여전히 매출은 평소보다 마이너스 80% 수준에 그친 것이다. 그렇기에 올해 월별지표는 좀 더 신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한 경기 회복은 어렵다는 이야기다.포항시가 선정한 병원 등 의료기관 종사자, 60세 이상 어르신, 학교 등 우선 접종대상자는 총 16만 8천127명이다. 포항시 홈페이지를 보면 지난 2월 26일부터 6월 1일 오후 7시 현재까지 1차 접종자는 5만6천671명(접종률 33.7%), 2차 접종까지 마친 자는 2만2천970명(접종률 13.7%)이다.집단면역이 이루어지려면 포항시 인구의 70% 즉 35만명까지는 접종을 마쳐야만 한다. 접종자 모두 100% 항체가 생긴다고 가정했을 경우다. 하지만 지난 3개월 동안 2차 접종까지 마친 접종 속도라면 이들 모두 접종을 완료하는 시점은 2022년 12월이다. 게다가 포항시 전체가 집단면역을 이루는 35만 명 모두 접종을 마칠 수 있는 시기를 마찬가지로 계산해보면 2024년 12월이 되어서야 가능해진다. 물론 이후 백신이 조기에 대량 공급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따라서 주요 경제지표가 개선되어도 해석할 때는 냉정한 시각이 필요하다. 당연히 지역경제가 곧 회복될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감은 금물이다. 포항시 정책당국자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겠지만 일본처럼 조급하게 경기회복 우선주의를 내세운 ‘Go to 캠페인’과 같이 시민 생명과 안전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정책은 과감하게 포기해야만 한다.시민들도 지난해와 같이 방역 안전에 힘써야만 지역경제의 회복도 빨라질 수 있다.앞으로도 갈 길은 멀다.

2021-06-13

그린웨이 ‘맨발路’ 걷다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듯해서 병원을 찾았더니 운동을 권한다. 평소에도 동네 뒷산이랑 철길 숲 산책을 다니는데 더 걷기를 일상화시켜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발은 제2의 심장’이라 많이 걸으며 발바닥을 자극하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고 한방에서는 말한다.내가 즐겨 걷는 곳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울창한 숲이고 또 한 곳은 확 트인 모래밭이다. 숲은 기계 서숲, 시골집 가는 날이면 그 둘레길을 걷는다. 읍내를 북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은 작년까지만 해도 넝쿨과 잡목들이 뒤엉켜 정글처럼 답답해서 숲을 살리는 방법은 없을까 했는데, 다행히 올봄부터 말끔히 정리하여 숲속 길이 만들어졌다.기계 서숲은 경주 이씨 입향조 도원(桃源)선생이 낙향한 후 홍수와 찬 바람을 막기 위해 관민을 설득하여 제방을 쌓고 조림을 하여 일구어 놓은 3만여 평의 인공림인데 지역주민을 위해 시민의 숲으로 내놓았고, 포항시에서 ‘기계 서숲 맨발路’를 꾸민 것이다.포장도로 좌우 두 개 숲속에 깨끗하게 잘 정비된 1.2km 정도의 산책길을 맨발로 걸으면 깔려있는 마사토 알갱이들이 발바닥을 따갑게 자극하지만 기분이 좋다. 잠시 소나무 둥치를 껴안고 심호흡을 하기도 한다, 입구 표지판엔 맨발 걷기의 효능이 적혀 있다. 혈액순환, 면역기능, 뇌 건강은 높아지고 혈액 점도, 불면증은 내려간다고….하루는 비 온 후 숲의 맑은 공기 마시며 허리를 쭉 펴고 걷고 있는데 천천히 걸어오던 노부부가 “참 씩씩하게 걸으시네요”하며 부러운 듯 말을 건넨다. 이름 모를 풀꽃들이 예쁜 숲속 둘레길엔 긴 의자와 흙먼지 털이기도 있고 출구엔 발 씻는 곳도 마련되어 있다. 정자에는 마을 노인들이 한담을 즐기고 있고, 인근의 학생들이 야외 수업 나온 모습도 보이곤 한다. 이 숲에서는 가끔 ‘숲속 음악회’도 열린다.또 한 곳은 영일대해수욕장이다. 집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푸른 물결이 모래밭을 씻고 있는 바닷가에 이른다. 바다 시청에서 시작하여 긴 방파제 위를 걸어 빨간 등대까지 갔다 오면서 방파제 위 지압용 자갈돌을 깔아 놓은 곳부터는 신발 벗어들고 맨발로 걸어와 여객터미널 앞 모래밭으로 내려선다. 크게 숨 한 번 들이쉬고 모래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바닷물에 발을 담그면 동해의 기운이 온몸에 올라오는 듯 어깨가 펴지고 일정한 보폭으로 걸어서 영일대 누각에 오른다. 저녁나절 하루의 피로를 풀며 맨발로 걷고 있는 시민들이 즐거워 보인다.포항시는 위 두 곳을 포함하여 송도 솔밭, 해도 도시숲, 흥해 북천수 등 ‘걷기 좋은 길 8선’ 부채를 만들어 알리고, 최근 연일에 ‘조박지 둘레길’을 만드는 등 ‘맨발路 20선’ 리플렛도 나누며 녹색 인프라 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 21년도 GreenWay 프로젝트는 ‘도시에 녹색 쉼표를 찍다.’를 추진 목표로 삼아, 도시의 생기를 되찾고 시민들이 삶의 여유를 즐기며 멈췄던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려고 추진 중인 멋진 계획이다.맨발로 그린웨이를 걸어보자.

2021-06-13

대구·경북 상생협력 의지 재확인해 다행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 이강덕 포항시장, 주낙영 경주시장이 지난 10일 경북도청에서 긴급회동을 하고, 그동안 집안싸움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었던 ‘K-바이오 랩 허브 구축사업’과 ‘국립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대해 교통정리를 했다. 이날 단체장들은 대구시와 포항시가 각각 유치의향서를 제출했던 바이오 랩 구축사업(중소벤처기업부 주관·총사업비 3천350억 원)은 포항을 대구·경북 대표 유치 후보지로 정하자고 결론냈다. 이 사업은 오늘(14일)이 사업계획서 제출 마감일이다. 그리고 이건희 미술관은 대구시 북구 산격동 옛 경북도청 자리에 힘을 모아 유치하는 것으로 뜻을 모았다. 경주시는 최근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겠다는 별도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단체장들은 이날 바이오 랩 유치를 위한 실질적 협력을 위해 공동TF를 구성해서 포항뿐 아니라 경주(양성자가속기), 안동(바이오산업단지), 대구(첨단의료복합단지)도 바이오 관련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포항시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현재 바이오 랩 유치의향서를 낸 곳은 대구와 포항 외에도 대전·인천·청주(오송)·춘천 등 10곳이나 된다. 포항시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유치위원회를 대대적으로 구성해 공모신청 준비를 해왔지만, 대구시는 뒤늦게 공모준비에 나섰다. 이건희 미술관의 경우, 전국 17개 지자체 모두 뜨거운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구시는 이건희 미술관 유치와 관련해 약 2천500억원을 투입해 이건희 헤리티지센터를 조성하고, 여기에 이건희 미술관, 미술보존센터, 야외문화공간과 같은 시설을 넣는 구상을 하고 있다.대구와 경북이 서로 장점을 살려 바이오 랩 구축사업은 경북 포항을 중심으로, 이건희 미술관 건설 사업은 대구를 중심으로 유치운동을 하기로 합의를 한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한 식구가 되기 위해 행정통합을 추진해 왔다. 수도권 블랙홀에 맞서기 위해서는 대구·경북이 한 몸이 돼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번 국책사업 유치경쟁을 두고 혹시 두 지자체가 출혈경쟁을 하지 않나 염려되었지만 늦게라도 상생협력 의지를 재확인한 것은 의미가 있다.

2021-06-13

윤석열 대선출마선언 빠를수록 좋다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공식적인 대권도전 선언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9일 퇴임 후 3개월 만에 독립운동 명문가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하면서 처음으로 공개적인 정치 행보에 나섰다.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관심이 쏠렸는데, 그는 “한 나라는 어떤 인물을 배출하고 어떤 인물을 기억하느냐에 그 존재가 드러난다”는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첫 행보의 의미를 부여했다. 대권 도전이나 국민의힘 입당 등에 대해선 지켜봐 달라며 즉답을 피했다.그의 정치적 발걸음이 빨라진 것은 공보담당자 임명에서도 엿볼 수 있다. 윤 전 총장은 지난주말 이동훈 조선일보 논설위원(51)을 공보담당자로 임명했다. 이 논설위원은 대구 출신으로 대구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일보에 입사했다가 2013년 조선일보로 옮겨 왔다.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그를 상대로 느닷없이 수사절차에 들어간 것도 ‘민심에 의한’ 그의 대선출마를 앞당기고 있는 것 같다. 그가 현 정권 권력기관에 의해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의 대선출마를 요구하는 국민적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내년 3월 대선까지 270여일 채 남지 않은 시점이다. 윤 전 총장이 고민할 시간도 사실 얼마 남지 않았다.윤 전 총장이 대선출마의 정치적 기반을 만드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국민의힘에 입당을 하거나 제3지대에서 정치세력을 규합해 새로운 당을 만드는 방법이다. 나는 그가 주변에 현혹되지 말고, 국민의힘을 대선의 산실(産室)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국민의힘 지지율은 그의 대선후보 지지율보다 더 높아졌다. 과거 대선과정을 반추해보면 후보 중심의 캠프를 차려 사조직을 가동하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캠프 내부알력으로 인해 불법정치자금 문제도 반드시 불거지게 돼 있다. 대선을 치르려면 수백억원의 선거비용이 들어가는데 개인 자금이나 후원금으로 버틴다는 건 불가능하다. 지난번 대선에서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 선거비용문제 등으로 중도 포기한 점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윤 전 총장의 본격적인 대권도전 움직임에 집권당의 방해작업도 강해지고 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윤 전 총장의 대선후보 지지율(리얼미터 조사)이 35.1%로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10일, “윤 전 총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일종의 발탁 은혜를 입었는데 이를 배신하고 야당의 대선후보가 된다는 것은 도의상 맞지 않는 일”이라며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기도 했다.냉정하게 말하면 윤 전 총장이 현재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대선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지율은 선거 구도와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하루아침에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가 지금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려면 국민의힘에 합류하는 것이 맞다. 합류시기를 늦추다 보면 사조직이 커질 수 있고, 타이밍도 놓칠 수 있다. 국가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들은 야권의 강력한 지도자가 하루빨리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

2021-06-13

MZ세대

1990년대 386세대란 말이 처음 나온 후 한 세대의 특성을 규정짓는 사회적 용어로 X세대 N세대 Y세대 등 많은 용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시대의 특징을 말 한마디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으나 주로 젊은층의 사고를 시대 구분의 특징으로 삼았다는 것은 우리가 예의주시할 만한 부분이다.세대(世代)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공통의 의식을 가지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들이다. 한 세대를 약 30년으로 보는데 이는 생물학적 나이로 부모의 일을 계승할 때까지를 기준으로 봤을 때다. 세대교체란 부모가 자식에게 권한을 물려주듯 우리사회가 신세대와 구세대간에 대물림을 주고받는 과정이다.국민의힘 당 대표에 36살의 MZ세대가 백전노장의 정치인을 물리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 대한 거대한 세대교체 요구의 물결이란 해석이 돌면서 정치권의 긴장감도 만만찮은 분위기다.MZ세대란 1980년초에서 2000년초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에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2021년 현재 우리나라 인구의 34% 정도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한다.이 세대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디지털 환경에 매우 익숙하며 스스로의 만족을 중시 여긴다. 또 가치관에 따라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뭉치고 흩어져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학연, 지연, 혈연중심의 관계망에 별로 구애받지 않는다.MZ세대는 나의 행복이 침범된다고 느껴지면 직장도 빠르게 이직하는 성향이 있다. 집단보다 나의 행복이 우선이라는 신념의 생활을 한다. MZ세대의 돌풍, 과연 우리 정치나 사회에 어떤 변화를 던져줄지 궁금해진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6-13

또다시 미룬 신한울 원전 1호기 운영

작년 4월 시공을 마친 경북 울진의 신한울 원전 1호기의 운영이 또다시 무산됐다. 당초 원전가동 시작 예정일을 기준으로 하면 벌써 3년이 지났다.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 11일 회의를 열고 신한울 1호기의 운영허가안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이후 회의에 재상정키로 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제출한 최종 안전성평가보고서(FSAR) 불일치 등과 관련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신한울 원전 1호기는 지난 2010년 착공해 지난해 4월 사실상 시공이 끝난 상태다. 공정률 99%로 연료만 채우면 바로 가동이 가능하다. 원안위는 지난해 11월 규제 전문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으로부터 지난달까지 총 12차례 운영허가에 관한 보고를 들었다. 이례적인 보고와 관련, 울진지역 주민들은 어느 때보다 운영허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으나 이번 역시 운영허가가 미뤄지면서 큰 실망감에 빠졌다.당초 신한울 1호기는 2018년 4월 가동될 예정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보면 벌써 3년의 세월을 허송한 셈이다. 신한울 1호기와 똑같은 한국형 가압경수로 방식으로 2012년 착공한 아랍에미리트의 바라카 원전은 지난 3월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안전성을 이유로 운영을 미룬다지만 바라키 원전과 비교할 때 일각에서 주장하는 안전성보다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기인한 것 같다는 지적에 동의가 간다.무엇보다 운영허가를 기대했던 울진군민의 실망이 크다. 이번 만큼은 반드시 운영허가가 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역시나”에 그쳐 허탈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6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울진지역은 정부 탈원전 정책이후 인구가 줄고 지역경제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신한울 1기의 운영허가가 미뤄지고 신한울 3·4호기마저 건설이 중단되면서 지역경제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정부도 신한울 1호기의 운영을 미루면서 입은 손실은 크다. 한수원에 따르면 신한울 1호기가 생산할 수 있는 전기의 가치는 하루 최대 20억원이다. 당초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2조원 이상 전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결론이다. 국가와 주민이 모두 손실을 입고 있으니 신한울 1호기 운영허가 연기를 두고 직무유기란 비판까지 나온 것이다. 이제는 더 미룰 명분도 없는 신한울 1호기의 조속한 운영을 촉구한다.

2021-06-13

구미형 도시재생,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장세용 구미시장 구미의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민선 7기 출범 이후 원평동에서 물꼬를 튼 구미의 도시재생은 선주원남동과 금오시장, 선산시장 세 곳의 사업을 새로 추진하며 순항 중이다.거기에 지난해 국가산업단지가 있는 공단동 일대가 국토교통부로부터 도시재생 혁신지구로 지정되면서 구미가 추진하는 도시재생은 한층 힘을 받게 됐다.구미는 우리나라 산업화와 궤적을 같이하며 성장한 도시다. 60,70년대 산업화와 함께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 까닭에 공장이 먼저 들어서고 그 주변으로 주거지와 상업시설들이 얼기설기 형성돼 발전해 왔다. 경남 창원, 경기도 과천과 같이 계획화된 도시가 아니다 보니 주거기능과 상업기능이 혼재돼 있어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도시기반시설이 부족하고 구도심과 신도심의 불균형 또한 구미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그렇다고 위축될 필요는 없다. 구미가 가진 도시의 강점과 그 가능성은 실로 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업도시, 대한민국 산업을 견인해 온 수출도시,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 온 제조도시로 구미는 국가 성장의 구심점이 되어 왔다. 지방에서 구미만큼 산업의 펀더멘탈(Fundamental)이 잘 갖춰져 있는 도시가 또 있을까. 필자는 감히 단언할 수 있다.구미는 기반 시설이 잘 갖춰진 도시다. 그것이 바로 구미라는 도시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살리는 것이 진정한 구미의 도시재생일 것이다. 구미는 그동안 원도심을 재생하고, 노후 산단을 개선하고, 시민들의 문화 활동을 이끌어 내는 문화적 도시재생에 주력해 왔다. 구미형 도시재생 프로젝트라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구미가 지향하는 바는 다름 아닌 도시혁신이다.도시재생을 통한 도시혁신은 단순히 도로를 깔고 아파트를 짓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물리적인 공간과 시설을 재생하는 것뿐 아니라 도시가 지닌 가치를 찾아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일례로 지난해 말 국가시범지구로 지정된 공단동 도시재생 혁신지구 사업은 산업단지를 활용해 새로운 재생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방 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국가시범지구로 지정된 것도 그 때문이다.상상해 보라. 1969년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공장밀집 지역에 입주기업과 비즈니스 센터가 들어서고, 창업기업을 위한 시설도 들어선다. 노동자를 위한 복합지구에는 행복주택과 보육 시설, 라키비움(도서관, 기록관, 박물관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이 자리 잡게 된다. 낡고 생기를 잃었던 공간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가 활성화 될 것이다. 스마트산단과의 시너지 효과는 물론 산단 대개조와도 맞물려 침체된 지역 경제도 활기가 살아날 것이다. 산업단지의 정체성을 살리며 새로운 가치를 더한 도시재생, 얼마나 기대되는 일인가.구미형 도시재생이 구미를 유토피아로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다. 역동성과 가능성이 숨 쉬는 공간, 도시의 경제와 사회기반을 살려 지속가능한 구미를 만들어가겠다는 전략이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에 따른 배후도시로서 향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구미의 도시 공간 구조를 새롭게 창출하는 일 역시 우리 구미의 도시재생이 향후 긴밀하게 조율해야 할 과제이다.도시재생 전문가인 필자에게 고향 구미는 꽤 매력적인 도시다. 잠재력과 가능성이 큰 도시기 때문이다. 매우 기대되는 여정이지만 불안과 우려도 있다. 이런 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우리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여파로 구미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이 잠시 주춤하긴 하지만 여건은 충분히 무르익었다. 구미의 정체성을 살린 도시재생을 차분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때다.

2021-06-13

서숲

“아우 보래이/사람 한 평생/이러쿵 살아도/(중략)/그렁 저렁/그저 살믄/오늘같이 기계(杞溪)장도 서고, (중략)/그저 살믄/오늘 같은 날/지게 목발/받쳐 놓고/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한잔 술로/소회도 풀잖는가”- 박목월 ‘기계 장날’주말마다 남편과 길을 나선다. 내가 어디라고 콕 집어 가자 하기도 하지만 오늘은 남편이 길을 잡았다. 목월 시인이 노래한 기계장터로 차를 밀어 넣으니 장날도 아닌데 사과 상자를 펼쳐놓고 아주머니가 흥정 중이었다. 손가락을 다친 것인지 깁스를 하고서도 사과를 팔려고 내게 맛을 보라고 권했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라 한 상자 차에 실었다.기계장터를 좌측으로 돌아 들어가는 길로 초등학교를 지나니 소나무가 병마용의 군사처럼 둘러선 숲이 보였다. 여름 강렬한 햇살을 모두 가릴 만큼 빽빽이 선 모습이 늠름했다. 주말이라 많은 사람이 마음을 내려놓고 쉬려고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우리도 그늘로 들어갔다.예전에 서숲에 왔을 때는 돌보는 손길이 없는지 소나무 사이를 걷기에는 풀이 우거져 힘들었다. 누군가 표고버섯 농사를 하는지 소나무 아래 가득 나무 등걸을 맛대어 놓았었다. 지금은 오솔길이 소나무 사이를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모양새였다.걸으면서 쫓아낼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는 케에르 케고르의 말이 소나무 사이에 걸렸다. 맨발로 걸으라고 부추겼다. 신발을 신고 한 바퀴 크게 돌았으니 양말도 벗고 걷기로 했다. 가다 힘들면 돌아오자고 하면서 자신 있게 벗자마자 발이 아팠다. 신발에 의지해 걸을 땐 멀리 숲 전체를 관람하며 백로가 내려앉는 하늘도 올려다보며 힘차게 내 딛었었다. 하지만 발밑에 마사토의 작은 조각이 몇 개인지 오롯이 느껴지는 지금은 발밑만 보고 걸어야 했다. 앞서가던 남편이 “길이 이레 길았나?” 한다. 숲 전체를 도는데 30분도 안 걸렸었는데 맨발로는 발 씻는 자리가 저기 보이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다.찬찬히 흙길을 밟자니 청설모가 까놓은 잣 껍질이 흩어져 있다. 소나무만 있는 줄 알았던 숲에 잣나무도 몇 그루 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 더 가니 대나무 숲이 서숲 둘레를 깜쌌다. 빨리 지나칠 땐 들리지 않던 새들의 조잘거림이 대나무 숲 가득했다. 매실을 가득 매달고 선 매화나무가 옆으로 기울어지기 직전이었고, 산비둘기 소리도 더 구성지게 들렸다.겨우겨우 걷는 우리 옆으로 힘차게 맨발로 걷는 분이 있었다. ‘대단하시네요’ 하니, 걸음을 멈추고 초보자는 큰길 건너 소나무 숲길이 발이 덜 아프다며 그리 가보라, 길 가장자리로 걸으면 돌이 좀 작아 편하다, 자신은 300일째 걸음이라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며 웃었다. 멀어져 가면서 우리도 맨발로 오래 걷기를 성공하길 바란다고 손을 흔들었다. 처음 만나는 우리의 건강까지 바라는 그 진심이 느껴져 끝까지 완주했다.맨발로 걷느라 고생한 두 발을 부드러운 손으로 씻어주라고 써있는 세족공간에 앉았다. 발게진 발바닥을 흐르는 물에 씻었다. 여름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이는 느낌이 발끝에 전해졌다.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양말 신발 차례로 신었다. 한 발 한 발이 포삭포삭 몰캉몰캉거렸다. 땅 위를 살포시 떠 가는 느낌이었다.안동 김씨가 서림으로 바람을 막았다면 서숲은 경주 이씨 문중의 땅이다. 소나무숲에 쌓여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동네 안쪽에 도원정사가 자리했다. 포항시 북구 기계면 협동길36번길 21-9 두봉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도원정사는 경주 이씨 기계 입향조인 조선 중기 유학자 도원 이말동의 높은 학문을 기리기 위해 1928년에 후손들이 세운 누각이다. 누각 아래 배롱나무 붉은 꽃이 연못에 비칠 때 가면 더 좋으니 여름이 끝나기 전 한 번 더 방문하기로 하고 숲을 나왔다. 도원은 비록 은둔자의 길로 들어섰지만,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제방을 쌓고 인공 숲을 만들게 했다. 기계 서숲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의성에 서림이 있다면 기계에는 서숲이 있다. /김순희(수필가)

2021-06-13

휴일 양극화

양극화란 서로 다른 계층이나 집단이 점점 더 차이를 나타내고 관계가 멀어지는 현상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와 빈곤의 양극화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가 더 부자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말한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나눔을 실천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장려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양극화 해소는 쉽지 않은 문제다.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휴일 양극화란 공휴일인데도 누구는 쉬고 누구는 일하는 휴식의 불평등을 뜻하는 말이다. 법정 공휴일이면 공공기관이든 민간기업이든 모두가 쉰다. 그런데 임시 공휴일은 법정 공휴일과 달리 공공기관과 공무원 등에게만 적용되고 민간기업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은 대개 정부가 지정한 임시 공휴일에도 쉬는 분위기나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학교와 어린이집이 쉬게 되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오히려 임시 휴일이 짐이 될 때도 있다.과거에도 법정 공휴일을 대체할 임시 공휴일 지정 문제가 논의됐으나 이런 문제점으로 시행을 보류한 적이 있다.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대체 공휴일을 확대해 모든 공휴일을 대체 휴일제 대상으로 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여야가 뜻을 같이하기에 빠르면 6월 중 법안 통과도 가능하다. 올 하반기 돌아오는 광복절(일요일), 개천절(일요일), 한글날(토요일), 크리스마스(토요일) 등 주말과 겹치는 휴일은 이 법이 통과되면 대체 공휴일을 별도 정하게 된다.많은 직장인이 대체 공휴일 확대에 찬성하고 있으나 일부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일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다. 휴일 양극화 문제에 대한 적극적 해법이 필요할 때가 됐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6-10

휴브리스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도전과 응전’으로 유명한 20세기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를 바꾸는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가 그 성공으로 인해 교만해져서 남의 말에 귀를 막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다 판단력을 잃게 되는 것’을 가리켜 ‘휴브리스’라고 불렀다. 이후 휴브리스는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소수가 기득권층이 된 다음 자만해 자멸하는 경우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휴브리스는 어느 시대, 어떤 집단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회현상이다.요즘 여야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는 부동산 투기의혹 조사를 둘러싼 논란이 휴브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먼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권익위원회 조사를 통해 부동산 투기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소속 의원 12명 전원에 대해 ‘탈당 권유(비례대표는 출당)’라는 극약처방을 내려 충격을 줬다. 예상을 뛰어넘는 강수였다. 민주당의 조치는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을 계기로 여권 전체가 ‘부동산 투기 내로남불’프레임에 걸려 이대로는 대선이 물건너간다는 위기감이 고조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자당 소속 국회의원들에 대한 강경조치 직후 곧바로 야당에 화살을 돌려 대대적인 역공에 나섰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모두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를 받으라고 촉구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민주당 재선 의원 출신의 전현희 위원장이 이끌고 있는 국민권익원회에 공정한 조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감사원 감사를 주장했다. 감사원은 당초부터 “감사원법 24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다”라며 조사불가 입장을 밝혀왔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자체 법률 검토 결과 감사원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감사원 조사의뢰를 강행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대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송영길 대표는 “국민의힘이 사실상 전수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비판했고, 윤호중 원내대표는 “권익위 조사에 응하는 것이 도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정의당·열린민주당·국민의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 등 나머지 5개 원내 정당이 권익위에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를 의뢰하는 바람에 외통수에 몰렸다. ‘버티기’, ‘꼼수’라는 비판도 아프고, 따갑다. 그렇다고 권익위 조사카드를 덥석 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당내에 부동산 부자가 많다는 점이 국민의힘을 불안하게 한다.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공개한 21대 국회 부동산 재산 상위 10명 중 7명이 국민의힘 소속이었고, 민주당은 2명, 무소속은 1명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국민의힘은 판돈(?)을 올렸다.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장·차관, 더 나아가 지자체장과 지방의원 등 모든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부동산 전수조사 시행을 촉구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역시 10일 여야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모든 고위공직자에 대한 부동산 전수조사를 제안했다. 과연 누가 휴브리스의 함정에 빠져들까. 정치권의 한판 드잡이질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속내다.

2021-06-10

안동 과수화상병 확산, 초기 진압에 나서야

사과 주산지인 경북 안동에서 과수화상병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관련 농가와 당국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과수화상병은 나무의 세균성 전염병으로 나무가 불에 타 화상을 입은듯 검게 그을린 증상을 보이다가 나무 전체가 말라죽는 치명적인 병이다. 아직까지 뚜렷한 치료제가 없어 일단 발생하면 전염병 방지를 위해 나무 전체를 뿌리째 뽑아 땅에 묻어야 한다.안동에서는 지난 4일 길안면 한 사과농장에서 처음 이 병이 발생한 것이 확인된 이후 5일만에 10곳이 더 늘어났다. 재배면적으로는 65ha에 7천여 그루며, 그 중 484 그루가 확진된 것으로 밝혀졌다. 확진된 나무는 현재 당국에 의해 매몰작업 중에 있다고 한다. 경북도와 안동시, 농촌진흥청 소속 공무원 등이 도내 전역에 걸쳐 정밀 예찰작업에 나고 있으며 도내 시군에서는 농장비와 인력 등에 대한 소독을 의무화하는 등 행정명령을 발동한 상태다.안동을 비롯 경북은 국내 사과 주산지다. 국내 전체 사과의 65%가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다. 경북도내 사과재배 농가들은 이 병이 발생하자 벌써부터 가을철 사과수확을 걱정하는 등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이 병은 한번 걸리면 나무를 통째로 매몰하고 매몰한 그곳에는 3년간 나무를 심을 수 없다. 제대로 과일이 결실을 맺으려면 적어도 5년이 지나야 하는 등 사과나무에는 아주 치명적 피해를 입히고 있기 때문이다.농촌진흥청에 의하면 현재 국내 과수화상병은 충청지역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 경북지역은 충청지역으로부터 그 피해가 넘어와 확산하는 추세에 있다고 하니 경북은 이 병의 확산 방지에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야 한다. 초기 진압이 가장 중요하다.과수화상병은 기온이 25∼27도 사이에 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달까지는 광범위한 예찰 활동과 방제에 총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으로 행정력이 많이 소모되고 있다. 그러나 과수나무에서 발생하는 이 병에 대한 관리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도내 농가들의 생업이 달린 사안으로 당국의 노력에 따라 피해를 줄이고 예방할 수 있는 일이다. 과수나무의 에이즈로 불리는 이 병의 확산 방지에 당국의 관심을 다시 촉구한다.

2021-06-10

대구·포항 도심공장의 악취 이번엔 개선될까

환경부가 지난 9일 대구시 서구 염색산단과 북구 제3산단, 포항의 철강산단 등 전국 노후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광역단위 대기개선지원’ 시범사업을 올해부터 2년간 추진한다고 밝혔다. 광역단위 대기개선지원 사업은 기존 개별 사업장 단위의 분산지원방식으로는 지역환경 개선에 한계가 있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역단위로 대기 및 악취개선 등을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번 사업으로 오랜 세월 악취로 고통받아온 노후 산업단지 주변 주민들의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시범사업 대상지는 전국의 지자체를 대상으로 공모를 거쳐 올해 4월 선정 심사위원회에서 사업의 시급성, 효과성 등을 고려해 선정됐다. 시범사업 대상지는 대구와 포항을 비롯해 부산, 인천, 광양, 용인, 김해 등 7곳이다. 내년까지 총 사업비 325억원(국비50%, 지방비40%, 자부담10%)이 투자된다. 대구 염색·서대구산단의 섬유염색가공업, 북구 제3산단·침산공업지역의 도금업, 포항철강산단의 철강업 사업장은 오래된 비산배출 방지시설과 후드·덕트 등의 교체를 지원한다. 환경부는 시설개선 후 운영관리를 상시로 점검하기 위해 사물인터넷(IoT) 측정기기를 부착하고, 환경기술인의 관리능력을 높이기 위해 기술진단을 지속하기로 약속했다.정부가 말한 것처럼 이번 사업으로 대구와 포항에 위치한 산업단지들이 도시악취의 근원지라는 오명을 씻고 쾌적한 곳으로 재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동안 대구에서는 염색산단, 서대구 산단, 북구 3산단, 침산동 도금업체등이, 포항에서는 철강산단 입주 업체들이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인식돼 왔다. 이들 산단 입주업체들과 지방자치단체가 다양한 환경 개선 사업을 통해 악취와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지만 주변 주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지역별로 대기오염물질과 악취 등을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이번 시범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고질적인 민원을 더이상 제기할 필요가 없었으면 한다. 이 사업을 계기로 악취발생 산업단지들은 공단시설물을 투명하게 개방하고 지역사회와 격의 없는 소통을 해서 공단이 환경오염의 근원지라는 선입견을 해소하고, 친환경적인 공단 이미지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2021-06-10

과기부 부총리 부활 돼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이제 새로운 정부 탄생이 1년도 남지 않았다. 한국에서 새 정부가 시작되면 관례처럼 해오는 일이 있다. 정부 부처 이름 바꾸기와 부처 만들기 와 없애기다. 상공부, 동력자원부, 체육부 등도 만들어졌다가 없어졌다. 과학기술부는 과학자들이 외우기도 힘들 정도로 이름이 바뀌어 갔다. 교육과학기술부라고 과학을 교육부에 붙인 기괴한 상황도 있었고 과기부 부총리를 만든 시절도 있었고 미래창조과학부라는 희한한 이름도 탄생했었다.새 대통령이 탄생할 때마다 부처이름이 바뀌니까 이제 어떤 부처가 무슨 일을 하는지 조차 혼동될 때가 많다.200년 역사의 미국은 행정부처의 이름, 가령, 국무부, 국방부, 교육부 등의 이름이 거의 바뀌지 않고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미국이 정부부처 이름을 안 바꿔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점은 대부분의 서구의 선진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그간 수없는 부처명 변경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안 바뀌는 것들도 있다. 정부부처의 이름은 수시로 바꾸지만, 운영방식은 구태의연하다. 관료주의, 권위주의, 그리고 지나친 자율침해 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오래 지난 정부 때 교육부와 과학부를 합친 교육과학부가 융합효과를 목표로 했다지만, 한 지붕 밑에서 두 개 부처가 따로 공전하는 이름만의 융합부였다. 특히 과학부와 융합됐다는 교육부의 경직성은 많은 대학들의 불만을 사왔고, 융합명칭을 가지기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필자는 과기부 부총리 직이 부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 중심의 융복합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과학기술을 빼놓고 미래를 생각할 수는 없다. 기술 변화를 예측하고 이를 실현할 연구 성과가 정착될 수 있는 사회구조가 필요하다. 국정 운영에서 과학기술이 중요하게 고려돼야 하고 우대되어야 한다. 과학기술 없이는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힘들다.반도체·자동차·조선 등 전통 주력 산업 외에도 첨단 소프트웨어·바이오·환경 기술 등에서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체계적인 정책구조가 필요하다.과학기술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 기능이 청와대를 중심으로 정부의 최정점에 있어야 한다. 전 국가적으로 과기분야의 두뇌를 총 집결하고 이를 실현하는 국가적 접근이 절대 필요하다. 이는 과기부 부총리직 부활만이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다. 무슨 화려한 이름도 필요도 없다. 그냥 부활로 족하다.과기부 부총리를 정점으로 과기 정책을 총괄하고 통합적인 국가 전략을 수립·추진할 수 있다. 또한 각종 출연연, 과기대, 과기 특성화 대학 등을 연계하여 창조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산업계를 연결하는 산학연계 제도를 과기 부총리가 직접 진두지휘해야 한다.과기부 부총리 제도 부활이 절대 필요하다. 그리고 이제 부처 이름을 바꾸고 하는 일은 그만하자. 그냥 과기부 그리고 과기부 부총리로 충분하다.부처 이름보다 일이 중요하고 내용이 중요하다.

2021-06-10

국민의 자격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부모가 대한민국 국적인 자녀들은 출생신고를 하면 바로 대한민국 국적을 갖게 된다. 반면 외국인이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려면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일반귀화의 경우 5년 이상 거주를 하고 한국의 법을 위반한 사실이 없는 사람으로서 일정 금액의 재정입증과 귀화추천서를 갖추어서 관할 출입국에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 또는 귀화용 필기시험 내지 면접시험을 치루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국 국적 배우자와 결혼한 경우에는 결혼한 상태로 2년 이상 계속 대한민국에 주소가 있거나, 결혼 후 3년이 지나고 1년 이상 거주한 주소가 있으면 귀화신청을 할 수가 있다. 그 밖에도 간이귀화, 특별귀화, 국적회복 등의 신청을 통해서도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있다.대개의 국가가 그러하듯이 대한민국에서도 국적취득과 동시에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부여된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고, 법 앞에 평등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신체적 자유, 사회경제적 자유, 정신적 자유와 같은 국가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교육을 받을 권리, 취업의 권리,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같은 생존적기본권 있다. 그 밖에도 청원권, 채판청구권, 형사보상청구권, 국가배상청구권 같은 청원적기본권도 있고, 피선거권, 공무원담임권, 국민표결권 같은 참정권도 있다.다양한 권리에 비해 의무는 비교적 단출한 편이다.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 교육을 받게 할 의무, 근로의 의무, 환경보전의 의무,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의 의무 등이다. 여기서 납세의 의무는 법률로써 조세의 종목과 세율을 정하는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따른다. 국방의 의무는 병역법에 의한 군복무 뿐만 아니라 예비군이나 민방위대의 복무 등으로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고 영토를 보전하기 위한 의무를 말한다. 또한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가 있으며, 일을 할 의무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할 의무, 자신의 재산이라 할지라도 공공의 복리에 위배되는 행사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국가가 정상적인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국민의 삶이 얼마나 비참해 지는지는 방글라데시나 시리아 난민촌에 관한 보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국가를 위태롭고 피폐하게 하는 것은 외세가 아니라 바로 자국의 국민들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국가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다 같은 국가가 아니듯이 국민이라고 다 같은 국민은 아니다. 미개하고 열악한 국가의 국민이 있는가 하면 부강하고 안정된 국가의 국민도 있다. 정의롭고 풍요로운 선진국의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와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하고 포퓰리즘에 현혹되고 프로파간다에 휩쓸리지 않는 건강한 양식도 필수다.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주인이므로 나라의 운영을 위정자들에게만 맡겨놓고 수수방관하는 것은 국민(주인)된 도리가 아니다. 국민 각자가 선진국민의 자격을 갖추고 참여했을 때 비로소 선진국가 되는 것이다.

2021-06-10

학도의용군을 가슴에 품다

정미영 수필가 이른 아침, 집 옆의 산책로를 따라 호젓한 탑산을 걷는다. 여기 탑산에는 포항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이 있다. 전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을 6월, 호국의 달이 되니 전보다 자주 찾아간다. 오늘도 이슬 젖은 흙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전승기념관에 들렀다 올 요량으로 길을 나선다.울울창창한 소나무 숲 옆 계단을 내려가면 전승기념관이 있다. 6·25전쟁 당시 포항지구 전투에 참가했던 학도 의용군을 기리는 곳이다.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펜 대신 총을 잡고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자진 참전했다. 세상에 남겨진 숱한 흔적들 중에 학도의용군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교복 입은 어린 저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처지는 어찌 되었을까?기념관 사무실에 가면 학도의용군 생존자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1979년 8월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학도의용군 전적물 보존, 추념행사 및 현지 안보교육을 실시해 왔다고 한다. 1950년 그 날로부터 71년이 지났다. 전쟁 때 의용군들은 꽃다운 14세였지만 지금은 머리가 희끗한 80대 노인이다. 상흔을 지니고 살았던 그들처럼 우리도 전쟁의 아픔을 잊지 말고 후세에 전해야 한다. 못 다 피고 죽은 학도의용군을 기억하는 것이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은 길이기에.학도의용군의 숭고한 정신을 마음속에 새기며 전시실을 둘러본다. 포항여중 전투뿐만 아니라 장사 상륙작전, 독석리 해상철수작전, 천마산 96고지 전투, 형산강 전투, 기계 안강 전투, 다부동 전투 등에도 그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6·25 전쟁 당시 국내 학생 5만여 명과 재일 유학생 641명이 전투에 참가했다. 그들 중 7천여 명이 산화했고, 전국에서 제일 많은 학도의용군이 희생된 격전지가 포항이었다. 8월 9일부터 44일 간에 걸쳐 일어났던 낙동강 전투, 그 최후의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기념관을 나와 포항지구 전적비를 향한다. 솔숲을 떠도는 눈부신 햇살이 내 등에 업혀 같이 동행한다. 나라를 위해 군복도 군번도 없이 전쟁터에 참전했던 학도의용군들이 주는 교훈을 새삼 되새겨본다. 의연하게 호국(護國)에 가치를 두고 혼신을 다한 그들 모두의 가슴에 빛나는 훈장을 달아주고 싶다.전적비 옆에 있는 이우근 학생의 편지를 새긴 돌비 앞에 선다.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는 학도의용군에 자원했다가 전투가 잠시 멈춘 틈에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꼭 돌아가겠다던 그 소년은 지금, 바람이 되어 이곳을 떠돌고 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어린 영혼을 가슴에 묻은 의용군들 어머니의 가슴은 한이 맺혀 어찌 살아갔을까? 그 어머니들을 생각해서라도 전쟁의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다시 생기지 말기를.64개의 계단을 오르면 전몰학도 충혼탑이 서 있다. 한참을 묵념하고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묵묵히 한 자리에서 세월을 이겨내면서도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죽은 영혼들을 보듬고 있다. 수많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을 기억하는 가족들이 찾아왔을 때 한숨과 눈물을 받아준 탓인지, 슬픔의 농도가 짙게 배어있는 것 같다.충혼탑이 무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해 귀를 기울인다. 몇 번의 방문으로 학도의용군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엄숙하게 해본다. 새끼손가락 걸듯 충혼탑을 쓰다듬으며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의 말도 덧붙인다.학도의용군들을 가슴에 품는다. 그들의 숭고한 정신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는 지금 이 순간, 내 심장이 뜨겁게 요동친다.

2021-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