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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法독재’에 취해 있는 정치권력

등록일 2021-08-08 19:53 게재일 2021-08-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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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충택 논설위원
심충택 논설위원

대통령과 국회의원, 민선단체장처럼 선거에 의해 선출된 권력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존재가 언론이다. 누구에게도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는 그들은 권력감시와 비판기능을 하는 언론만 통제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파워를 가지게 된다.

집권여당이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언론중재법 개정안 16건을 병합한 위원회 대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4표, 반대 3표로 통과시켰다. 해당 안건에 대해 야당 의원들은 전원 반대표를 던졌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범여권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찬성표를 던졌다.

민주당은 내일(10일) 상임위(문체위)를 열어 법안 의결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현재 문체위 전체 위원 16명 중 민주당 의원이 8명이고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까지 합치면 9명으로 과반이 되기 때문에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이 법안은 일사천리로 통과될 것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핵심은 허위·조작보도에 대해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을 물리는 것이다. 현행 언론중재법으로도 기사의 ‘허위·조작’이 확실하다면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굳이 중대재해법과 같은 ‘언론 징벌법’을 무리하게 제정하려는 것은 집권당에 찍힌 언론사를 손보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아마 이 법안이 제정되면 정치권력자들이 자신에게 불리는 비판적 기사에 대해 이 법을 근거로 배상금 청구소송을 남발할 가능성이 크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규정하고 있는 ‘허위·조작기사’라는 게 기자가 범죄의식을 가지고 쓰지 않는 이상 판단기준이 모호하다. 이 때문에 언론사 사회부에 근무하는 사건·사고 담당 기자라면 언제든지 ‘허위·조작기사’의 덫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을 취재할 때 기자들은 경찰의 수사내용을 위주로 해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데, 만약 경찰이 수사방향을 잘못잡아 ‘우발적 범죄’를 ‘계획적 살인사건’으로 몰고 갈 경우 기자는 100% ‘허위·조작’ 혐의를 뒤집어쓰게 된다. 부지런한 사회부기자라면 이러한 경우를 일상적으로 겪으면서 취재활동을 한다. 이러한 기사마다 변호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기자나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 법안에 대해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은 약하다.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얼마나 전제군주적인 발상인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캠프에서 “이 정부가 언자완박(언론자유 완전박탈)에 나선 것”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공감이 간다.

지난주 공개된 문체위 법안소위 속기록을 보면, 이 법안 소관 부처인 문체부 차관과 국회 입법조사처조차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언론사에 근무하는 평범한 기자가 본연의 업무인 기사를 쓸 때마다 자신의 가정과 회사의 운명까지 걱정해야 한다면, 이것이 어떻게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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