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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욕망의 왜곡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더위의 막바지인 말복(末伏)이지만, 좀체 꺾일줄 모르는 코로나19 감염증의 확산세 만큼이나 끈질긴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복날을 나타내는 복(伏)은 엎드린다는 뜻으로, 가을의 서늘한 금기(金氣)가 여름의 무더운 화기(火氣)를 두려워하여 세번(초복·중복·말복) 엎드리고 나면 무더위가 거의 지나가게 되는 셈이라 한다. 이른바 삼복 중에는 더위가 극성을 부리기 때문에 무기력해지거나 기운이 허약해져서 건강을 해치기 쉽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곤해진 심신을 안정시키고 더위를 잊기 위해 청유(淸遊)하거나 탁족(濯足)을 하고, 보신(補身)음식을 먹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건강한 여름나기를 하고 있다.지긋지긋한 코로나에 시달리는데 더위마저 먹게 된다면 심신은 그야말로 사소한 일조차도 힘들어지게 된다. 소나기는 피해가는 게 낫다고, 코로나든 더위든 조금만 더 엎드리고 몸을 사려 조심하고 회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민감하고 우려스러운 상황에서 독불장군처럼 볼썽사나운 돌출행위로 괜스레 된서리를 맞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폭염과 전염병에 맞닥뜨리기 보다 몇 번 수그리거나 낮추면서 분위기와 여건에 맞게 순응하고 처신해야함은 비단 삼복(三伏)에만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예컨대 일상이나 주변에선 간혹 무지와 독선, 욕심의 남발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종종 보도되거나 일어나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판이다. 세상사 요지경(瑤池鏡)이라서 그러는 걸까? 세상이나 만물은 자연이 그러하듯이 음양과 오행에 따라 조화와 질서가 생기고, 상생상극의 이치와 순리 속에 안정적이고 균형적인 변화와 진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대자연계에서도 상생상극의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뤄가듯이 인간사회 역시 개인이나 조직이 화합하고 상충, 상반되는 논리와 견해에 따라 티격태격하는 ‘부조화의 조화’ 속에서 천태만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대부분의 부조화는 관점이나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대립과 갈등으로 나타나고, 아집과 욕망에 사로잡힌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경향으로 표면화하게 된다.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이나 집단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그들의 노선을 지키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진실을 곡해, 호도하여 합리화시키거나 집요하게 선전, 회유를 조장하기도 한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오해와 갈등을 불식시켜야 함에도, 수시로 말을 바꾸고 억측과 왜곡으로 전(煎) 뒤집듯이 순식간에 번복을 일삼는데 무슨 수로 문제해결과 합목적적인 조화로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전형적인 표리부동이요 자가당착한 일이 아닐 수 없다.인간과 사회생활의 기본은 믿음과 약속이다. 믿음이 없으면 일어서지 못하듯이(無信不立), 신의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고 의지하기 어렵다. 철석같이 믿어왔던 사람이 욕망의 왜곡 같은 불신과 의문, 위선적인 행태를 일삼는다면 실망감을 넘어 환멸감마저 느끼게 될 것이다. 우연히 쳐다본 석양 무렵의 하늘에 야누스 형상 같은 구름이 바람에 쓸리고 있었음은 무슨 연유였을까? 사람은 어울림의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귀하다는 배려와 존중으로 겸손과 양보의 마음을 서로 나눌 때, 조화로운 공감의 꽃이 피어나리라.

2021-08-09

포항~울릉 항로에 곧 대형여객선 다닌다

포항 신항만에서 울릉 사동항로를 운행하는 대형여객선 뉴시다오펄호가 다음달 16일 취항할 예정이다. 그동안 육지와의 안전한 항로를 손꼽아 기다려왔던 울릉군민들의 숙원이 해결돼 무엇보다 다행스럽다. 선표 예매는 다음주 월요일(16일)부터 시작된다.포항지방해양수산청 공모사업에 선정된 뉴시다오펄호는 1만9천988t급이며 승객용 의자 없이 모든 객실이 침실로 이뤄져 있다. 승객 1천200명에 컨테이너 화물 218TEU를 실을 수 있고, 속도는 20.5노트(시속 38㎞)로 포항에서 울릉까지 6시간 30분 소요된다. 하루에 한번 포항 신항만(밤 11시)과 울릉 사동항(낮 12시30분)에서 출항한다. 포항시와 선사 측은 승객편의를 위해 신항만에서 포항시내까지 대중교통편도 마련할 계획이다.그동안 울릉군민들은 울릉∼포항 항로를 오가던 대형여객선인 썬플라워호가 지난해 2월 말 선령(船齡) 만기로 운항이 중단돼 큰 불편을 겪어 왔다. 포항∼울릉 운항 여객선이 300∼400t급 소형 여객선뿐이라서 파도가 높은 겨울철에는 결항이 잦아 육지와는 단절된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특히 만성질환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갑자기 응급환자가 발생할 수도 있어 겨울철에는 아예 육지에 있는 자식들 집에서 거주하는 경우도 많다. 응급환자는 헬기나 해경 경비정을 이용할 수 있지만 기상이 악화하면 헬기·경비정도 운항이 불가능하게 된다.울릉군에 따르면, 군민들과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포항∼울릉 간 여객선이 지난해 124회나 운항이 통제됐다. 풍랑주의보가 자주 발효돼 거의 3일에 한 번꼴로 여객선이 결항했다는 통계다. 지난 2007년부터 2019년까지 통계를 보면 결항 일수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울릉군은 이 때문에 지난해 썬플라워호가 운항을 중단한 이후 운항보조금 10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대형여객선 사업자를 구해 왔지만 군민들이 만족할 만한 선사(船社)가 나타나지 않아 애를 먹어왔다. 최근에는 운항결손액을 울릉군에서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까지 내걸었다. 이제 휴식과 항해를 즐길 수 있는 크루즈선 취항으로 포항∼울릉 간 여객선 결항 일수가 크게 줄어들어 울릉도와 독도를 찾는 관광객들도 급증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1-08-08

반복되는 폭염 피해, 특단의 예방조치 있어야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경북도내 양식장에서 양식어 집단 폐사가 발생하는가 하면 농작물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양식어의 경우 지난달 24일 울진의 한 양식장에서 강도다리가 집단 폐사한 것을 시작으로 경북 동해안 곳곳에서 집단 폐사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고수온주의보가 발령된 가운데 포항 9곳에서 강도다리, 넙치 등 12만3천여 마리가 집단 폐사했고, 영덕과 울진 등 도내 15곳에서 모두 22만 마리가 넘는 물고기가 집단 폐사했다. 피해 금액만 15억1천여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경북 동해안 지역에는 모두 81곳의 양식장에서 강도다리, 넙치, 전복 등 1천700여만 마리의 어류가 양식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무더위가 지속된다면 더 많은 어류의 집단 폐사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특히 동해안 양식어류의 대부분이 고수온에 약한 강도다리여서 걱정이 된다. 바닷물 고수온에 의한 양식장 어류의 집단 폐사는 거의 매년 되풀이되는 행사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앞으로도 여름철 되면 고수온에 의한 집단 폐사는 또다시 재발될 가능성이 높다.단기적 대응과 함께 강력한 실효적 조치가 필요하다. 경북도가 양식어류 조기 출하를 유도하고 실시간 수온 정보를 제공하는 등 어업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양식장 시설 현대화 등 항구적 대책 마련에 더 많은 투자가 있어야겠다.기상청은 경북도내 각 지방 낮 최고기온이 35도 안팎을 기록하는 찜통더위가 당분간 이어질 것을 예보했다. 동해안지역의 고수온 피해말고도 도내 농촌지역의 농작물 피해도 걱정거리다. 지난 5일 김현수 농림부 장관이 예천 과수농가를 방문하고 폭염에 대비한 준비상황을 점검했다고 한다.덥고 습한 날씨가 지속되면 농작물에는 각종 병충해가 발생하기 십상이다. 특히 사과나무는 햇빛 데임(일소)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수확한 사과의 상품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추석을 앞두고 있는 과수농가에는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예찰 활동 강화로 피해 상황을 조기발견하여 적기 방제 등을 해야 한다. 또 폭염 속에서 일해야 하는 농민들의 안전도 신경을 써야 한다. 폭염 피해는 사전 예방으로도 어느 정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행정당국과 농어민들의 적극적 대응과 특단 조치가 필요한 때다.

2021-08-08

부스터샷 갈등

백신 면역효과 증대를 노린 부스터샷(추가접종)을 두고 세계 각국이 신경전이다.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미국, 유럽국가 등을 겨냥해 백신공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오는 9월 말까지 부스터샷을 유예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 전 세계는 40억회 분의 백신을 접종 중에 있지만 80% 이상이 중상위 소득국가에 집중돼 가난한 국가에 대한 백신공급이 시급하다는 것이 WHO의 입장이다.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은 WHO의 촉구에도 자국민에 대한 부스터샷 준비를 서둘고 있다. 부스터샷을 둘러싼 갈등이 해소될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부스터샷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총리가 나서 “부스터샷 과정에서 축적된 지식은 전세계가 공유 할 것”이라며 부스터샷 실행에 대한 자국 옹호에 나섰다. 부스터샷을 준비 중인 미국도 백신공급 확대와 부스터샷은 동시에 할 수 있어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영국과 독일도 이달부터 부스터샷 도입에 들어간다.선진국이 부스터샷을 서둘고 있는 것은 델타 변이 확산에 따른 자국민 보호 대응전략이다. 현재 백신을 1회 이상 접종받은 인구의 비율은 북미와 유럽은 60%에 달하고 아프리카는 고작 3.6%에 불과하다. 일부에서는 부스터샷보다 백신공급이 낮은 국가에 대한 접종률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으나 강대국의 이기적 결정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부스터샷 갈등은 인도적 문제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나 자국민 우선보호 논리 앞에 백신 양극화 벽은 더 높아만 간다.백신 양극화 속에 한국의 포지션이 궁금하다. 잘하는 쪽일까, 못하는 쪽일까. 한국은 7월말 현재 1차 접종률 37.4%로 세계 90위 수준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8-08

‘立法독재’에 취해 있는 정치권력

심충택 논설위원 대통령과 국회의원, 민선단체장처럼 선거에 의해 선출된 권력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존재가 언론이다. 누구에게도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는 그들은 권력감시와 비판기능을 하는 언론만 통제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파워를 가지게 된다.집권여당이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언론중재법 개정안 16건을 병합한 위원회 대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4표, 반대 3표로 통과시켰다. 해당 안건에 대해 야당 의원들은 전원 반대표를 던졌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범여권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찬성표를 던졌다.민주당은 내일(10일) 상임위(문체위)를 열어 법안 의결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현재 문체위 전체 위원 16명 중 민주당 의원이 8명이고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까지 합치면 9명으로 과반이 되기 때문에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이 법안은 일사천리로 통과될 것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핵심은 허위·조작보도에 대해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을 물리는 것이다. 현행 언론중재법으로도 기사의 ‘허위·조작’이 확실하다면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굳이 중대재해법과 같은 ‘언론 징벌법’을 무리하게 제정하려는 것은 집권당에 찍힌 언론사를 손보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아마 이 법안이 제정되면 정치권력자들이 자신에게 불리는 비판적 기사에 대해 이 법을 근거로 배상금 청구소송을 남발할 가능성이 크다.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규정하고 있는 ‘허위·조작기사’라는 게 기자가 범죄의식을 가지고 쓰지 않는 이상 판단기준이 모호하다. 이 때문에 언론사 사회부에 근무하는 사건·사고 담당 기자라면 언제든지 ‘허위·조작기사’의 덫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을 취재할 때 기자들은 경찰의 수사내용을 위주로 해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데, 만약 경찰이 수사방향을 잘못잡아 ‘우발적 범죄’를 ‘계획적 살인사건’으로 몰고 갈 경우 기자는 100% ‘허위·조작’ 혐의를 뒤집어쓰게 된다. 부지런한 사회부기자라면 이러한 경우를 일상적으로 겪으면서 취재활동을 한다. 이러한 기사마다 변호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기자나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 법안에 대해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은 약하다.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얼마나 전제군주적인 발상인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캠프에서 “이 정부가 언자완박(언론자유 완전박탈)에 나선 것”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공감이 간다.지난주 공개된 문체위 법안소위 속기록을 보면, 이 법안 소관 부처인 문체부 차관과 국회 입법조사처조차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언론사에 근무하는 평범한 기자가 본연의 업무인 기사를 쓸 때마다 자신의 가정과 회사의 운명까지 걱정해야 한다면, 이것이 어떻게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가.

2021-08-08

이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김락기 시조시인·칼럼니스트 지금은 혼재사회 시대다. 자연과 사회 환경이 뒤섞이다 못해 혼돈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듯하다. 일반인의 상식과 이전에 겪던 순리는 힘을 잃었다. 2년째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구촌의 삶을 온통 뒤바꿔놓고 있다. 변이·변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기왕의 독감바이러스를 밀어내고, 우리네 안방을 차지하면서 백신을 무력화하는 것 같다. 이로 인해 깊어지는 건 비대면 사회다. 일본 도쿄 무관중 올림픽 경기나 계좌입금 경조사, 재택근무, 밀키트 배달주문 같은 단면들로 알 수 있다. 통계청은 작년 11월 기준 우리나라 1~2인 가구가 60%에 이른다고 했다. 혼자만의 비대면 세계 속 생활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것이 일상화될수록 필연적으로 자기만의 생각이나 상상력이 보다 더 활용된다. 상상력은 시세계의 공기라 할 수 있다. 평소 잊고 지내던 공기를 새삼 들이마시듯 이제 상상력은 일상인 누구나 수시로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더이상 시인만의 주된 전유물이 아니다. 시세계의 상상과 일상의 현실이 혼재하는 시대, 코로나19 대처에 백신투여와 거리두기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아픔이 크다. 당국은 면역력 강화조치와 더불어 치료제 개발, 보급을 서둘러야 한다. 비대면·대면 연계 생활의 주도면밀한 체계적 일상화로 서민생업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환상과 현실이 융합된 확장현실(XR)이 화두가 되는 이즈음, 이른바 메타버스 세상이 바투 다가왔다.한편 정치적 분야의 우리네 혼재사회는 사뭇 다르다. 한마디로 요지경 세상이다. 신비롭기는커녕 그저 기이·혼탁·불순한 혼돈사회다. 여야가 따로 없다. 국리민복보다 사리사욕에 매몰되어 이합하는 붕당 무리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도토리 키재기식의 후보들이나 어느 당대표의 경박한 언행, 그간 여러 번 겪어오면서도 누구로든 정권교체만 하면 된다는 발상들…. 한심하다.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은 물론 작년 4·15 총선 부정선거(설)는 사전투표로부터 여태 대법원 선거재판에 이르기까지 비정상 정국상황임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다. 사전 투표제 폐지와 완전 수개표 같은 제도적 보완 없이는 정권교체가 쉽지 않을 거다. 되레, 이런 상황은 머잖아 수렁에서 이 나라를 구할 크나큰 인물의 출현을 예고하는 징조일지 모른다.끝으로, 참과 거짓을 잣대로 하여 일반인이 살아가는 유형을 살펴본다. 거짓인 줄 알면서 이를 두둔하거나 모르는 체 눌러 사는 사람, 거짓을 참인 것으로 알고 거짓이라 하는 이를 도리어 나무라는 사람, 거짓인 줄 알고 이를 참되게 바로 잡고자 하는 사람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먹고 살기에 바쁜 서민들에게 시시비비를 묻기가 난감하다. 나부터 어느 부류인지 자문해본다. 거대담론을 꺼내다 말고 용두사미로 그친다. 단시조로 해량을 구한다.‘XR의 길’코로나는 미물인가저 하늘의 전령산가 여야정 분탕질로한 치 앞이 안 보여도정신줄단디 붙들 때새길 번히 나투리.

2021-08-08

입추, 가을이 온다는데…

윤영대수필가 입추(立秋), ‘가을이 들어선다’는 절기이다. 그런데 연일 35도를 넘는 폭염과 열대야로 가을을 마중하기 어렵고 기후변화와 온난화에 대한 미래에의 두려움만 커지는 듯하다.그동안 열기를 띤 도쿄올림픽 경기를 늦은 밤까지 보며 더위를 잊곤 했지만 이제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 어게인’을 외치며 열심히 싸운 선수들의 땀방울을 생각하며 10위권을 벗어난 결과는 잊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축하하자.입추의 첫 닷새 초후(初候)는 서늘한 바람이 불고 중후에는 흰 이슬이 진하게 내리고 말후에는 쓰르라미가 운다고 하지만 어림도 없는 듯한 요즈음이다. 중국 남동해에서 발생한 제9호 태풍 루핏이 먼 남쪽 바다를 지나게 되는 말복쯤에는 이 무더위도 엎드리려나…. 가을의 첫 결실인 노란 옥수수 한 소쿠리 사서 삶아 먹으며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한가함으로 바캉스 못 가는 마음이라도 달래야겠다.코로나19의 4차 유행 열기로 전국 일일확진자는 1천800명을 돌파하여 기록을 경신하였고 이에 질세라 포항도 24명을 넘어 최대 기록을 세우고 거리두기 3단계의 2주 연장에 들어갔다. 이러한 사태에서 백신 접종도 온라인 예약으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지만 8월 중순부터 접종하게 되는 18세 이상 49세까지의 국민에게도 가능한 빠른 기간 내에 백신 접종을 마쳐 좀 편한 마음으로 이 더위를 이기고 맑은 가을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역병 창궐에 따른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머리에 두고 가족의 무병과 국가 사회의 안전을 위해 자중자애하는 정신으로 여름 휴가철을 현명하게 보내야 할 것이다.집에서 종일 에어컨 틀고 TV 보며 에너지를 낭비할 게 아니라 가까운 문화복지 시설에서 책이나 읽으려고 찾았더니 여의치 않아 내친김에 시골집으로 갔다. 무성하게 자란 뽕나무 가지에 덥힌 접시안테나가 TV 화면을 어지럽히기에 잠시 작은 가지를 치고 나니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고 팔뚝엔 풀모기에 물린 빨간 자국들이 가득하다.해거름 무렵 마음을 털려고 형산강 둔치로 가서 포항운하관을 둘러보고 송도 끝 모래사장에 갔더니 바다를 나는 패러글라이딩 모습이 활기차다. 큰 전구 모양의 바다전망대인 투명한 워터폴리 안으로 올라가면 송도 바다 전망과 찬란한 포스코의 야경이 가슴에 찬다. 모래사장 복원을 하는 송도해변을 지나 포항운하를 따라오다가 동빈다리를 건너니 ‘그린웨이 프로젝트’인 학산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이 한창이다. 빨리 친환경 녹색도시가 만들어져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일그러진 시민의 숨결을 고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영일대 해수욕장으로 가서 발열 검사 후 모래밭으로 내려서면 ‘생명의 노래, 물결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샌드아트 패스티벌이 꾸며져 있다. 가까이 살펴보니 표면에 모래를 입힌 섬세한 조각품들이 사랑스럽다. 입추의 저녁 바람에 밀려오는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모래의 간질임에 되돌아보니 샌드아트 ‘바다의 여신’이 웃으며 속삭인다. ‘곧 가을이 올 거예요.’라고.

2021-08-08

변화·혁신·도전, 군민들과 함께한 민선7기 취임 3주년

김학동예천군수 ‘경북의 중심, 도약하는 예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뚜벅뚜벅 황소와 같이 흔들림 없이 현장을 누빈지 벌써 3년이 지났다.‘경북의 중심, 도약하는 예천’이라는 슬로건에는 예천군으로 경북도청이 이전해오고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예천군이 반드시 ‘경북의 중심도시’로 성장해야 한다는 목표 설정과 함께,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예천군 행정이 전심전력하겠다는 다짐과 결의가 담겨져 있다.공직자들 모두가 경영마인드로 무장하고 변화와 혁신으로 도전적인 행정을 추구해온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면 정말 다사다난했다.지난해는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19로 매우 힘들고 어려운 한해를 보냈다. 군민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고, 예천군은 군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튼튼한 방역위에 경북의 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 모든 역량을 결집시킨 결과 예천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의미있는 성과들을 만들어냈다.아시아육상연맹이 주최하는 2022년 아시아U20육상선수권대회를 군 단위 최초로 유치했으며, 대한육상연맹의 육상교육훈련센터 유치로 교육 및 훈련 인원이 매년 2~3만 명으로 예상되며 기존 전지훈련 및 각종 대회 인원을 모두 합하면 약 16만5천여 명이 예천을 방문할 것으로 보여 수백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유발돼 지역경기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공영주차장 조성, 전선지중화, 간판정비, 도시 재생사업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살기 좋은 신도시를 만들기 위해 신도시복합커뮤니티센터 착공, 주민자치센터 개소, 도시공원 조성, 등산로 정비사업을 추진해 좋은 호응을 얻었다. 또한, 국도비 공모사업에 적극 대응한 결과 총 2천억 이상의 예산을 확보하는 유례없는 성과를 달성, 성취감이 매우 컸고 제2농공단지의 성공적인 기업 유치와 ‘부자 농촌’을 만들기 위해 농업시설 현대화, 예천한우 브랜드화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농가 소득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왔다.지난해 중앙 및 경북도로부터 40개 분야에서 우수 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괄목할만 성과를 거뒀다. 지역의 인재들이 다양한 호기심과 경험으로 미래 꿈나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미래교육지구 지정과 함께 교육소외지구 교육여건 개선 사업 등으로 명품교육 1번지 예천을 만드는데 초석도 다졌다.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역 교육 사업에도 적극 지원했다.이러한 결과로 2021년도 대학입시에서 관내 3개교 졸업생 290명 중 95.9%인 278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성과를 거두었다.이제 남은 1년의 임기 군정은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소중한 시간이다.예천읍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도시재생뉴딜사업, 전선지중화사업, 도시미관개선사업 등에 속도를 더하고, 한천과 남산·개심사지 오층석탑 공원과 폐철도부지를 집중 개발하고, 그 중심에 박서보 화백 미술관을 건립해 예천관광의 거점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명품 도청신도시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2022년 6월까지 복합커뮤니티센터를 완공하고, 신도시 2단계 개발 계획에 중학교 신설과 병의원 유치, 생활체육시설 확보 등 신도시민들의 요구 사항이 반드시 수용되도록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하고 있다.군민들의 소득 증진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인구유입을 위해 군유지에 대형 프로젝트 사업을 유치하고 제2농공단지 분양을 조속히 완료하고 제3농공단지 조성사업을 앞당겨 지역경기활성화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농축산업 현대화와 유통 구조 개선을 통한 지역농산물 경쟁력 확보 및 판로 개척으로 농가 소득 증대에도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예천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화합을 위한 친절·미소운동, 뚜벅이 걷기운동, 클린예천 만들기 등의 ‘예천사랑운동’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변화를 당한다는 생각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군민들과의 약속인 공약사항을 군정 최우선 과제로 삼아 지난 3년 동안 차곡차곡 실행했다. 이제는 예천군의 잃어버린 50년을 되찾아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도록 남은 1년 임기는 ‘마부작침(磨斧作針)’ 자세로 매진할 것을 약속한다.

2021-08-08

친구가 보내온 사진 한 장, 이태리타올에 ‘다 때가 있다!’라는 글귀가 적혔다. 몸에 끼인 때와 삶에 걸쳐진 시간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말이라 슬쩍 웃음이 난다. 때는 때 맞춰 씻어내야 하니 더 적절한 표어 같다.시시때때로 꽃이 핀다. 대한민국은 꽃공화국이라고 할 만큼 일 년 내내 다른 도시에 뒤질세라 꽃축제가 이어지고, 카페도 커피 맛보다 정원에 핀 꽃이 더 손님을 불러들인다. 수국 맛집, 야생화 맛집, 해바라기 맛집에서 찍은 사진들이 sns를 통해 내게 당도한다. 꽃공화국 시민답게 보는 즉시 길을 나선다.꽃의 절정을 보러 갔다. 백일동안 붉은 꽃이라 백일홍이라 이름 붙여진 배롱나무 군락지 명옥헌에 가려고 새벽길을 나섰다. 포항에서 담양까지 이동 거리가 만만치 않다.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나선 길이니 가보자하고 대구를 지나 전라도 경계선에 들어서니 다행히 서서히 비의 양이 줄었다. 담양은 가로수조차 배롱나무라 길 양옆으로 마중 나와 붉게 손을 흔들며 우리를 맞았다. 명옥헌 주차장에 내리자 보슬비가 오락가락했다.비를 흠뻑 머금은 정원이 더 붉었다. 꽃잎에 물방울이 맺혀서 색을 더 진하게 만들었다. 정원 연못에 떨어진 꽃잎이 한가득 떠다녀 꽃무늬 카펫을 덮은 듯했다. 나무에 열린 꽃이 반, 세찬 비에 떨어진 꽃이 반이었다. 떨어진 꽃이 비 덕분에 오래 촉촉하니 제모습 그대로였다. 비가 와서 꽃의 절정을 보는 게 어려울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8월 중순의 강렬한 햇살을 비가 가려주어 꽃을 더 오래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좋은 풍경을 보러 매년 가자고 손가락 걸며 약속했다.벌써 4년 전 일이 되어버렸다. 3년 전에는 나서다가 어긋나 대구 화목정 백일홍을, 다음 해는 안동 병산서원 백일홍으로 대신했다. 지난해 이맘때의 백일홍이 절정이었으니 하고 찾아가면 한철이 이미 지난 끝물이다. 며칠 더 먼저 와보리라 하고 다음 해 오늘 찾아가면 봉오리가 미쳐 열리지 않기 일쑤다. 절정인 날에 걸음 하기가 내 마음처럼 쉽지 않다.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곳은 때를 맞추기 쉽다. 8월에 들어서면서 오며 가며 살펴볼 수 있어서다. 명옥헌의 경험으로 비가 오는 날이면 얼른 길을 나서리라 마음먹고 기다렸다.올해 점찍어 둔 곳은 종오정이다. 조선 영조 때 학자인 최치덕의 유적지이다. 영조 21년에 돌아가신 부모를 모시려고 일성재를 짓고 머무를 때, 학문을 배우려고 따라온 제자들이 글을 배우고 학문을 닦을 수 있도록 귀산서사(龜山書社)와 함께 건립한 것이다. 8월이면 연못에 연꽃이 한껏 꽃대를 올리고 둘레에 백일홍이 가지를 늘어뜨려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소나기 예보가 있던 주말 오후, 비가 아직이지만 집을 나섰다. 천북쪽 하늘이 뿌옇게 보였다. 넓은 들에서는 소나기가 몰려오는 것이 보인다. 어릴 적엔 들 끝에서 달려오는 소나기보다 걸음이 느려 힘껏 달려가도 집에 다다르기 전에 몸이 흠뻑 젖곤 했다. 이젠 천리마 같은 차를 가졌으니 소나기를 따라잡기도 하고 비를 피할 수도 있다.천북 무궁화 가로수가 끝나는 지점에 길섶으로 들어서면 금방 종오정이 나타난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붉은 백일홍이 가득한 고택이 눈에 들어오고, 꽃소식을 들은 사람들로 작은 동네가 수런거렸다. 집 주변으로 보랏빛, 분홍빛의 어린 배롱나무도 색을 보태고 있었다. 연꽃은 아직 절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연못 옆에 까치발을 한 백일홍은 홍조 가득한 새색시처럼 바알갛게 가지를 물들였다. 그 아름다움에 화룡점정을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소나기가 찍어두었다. 화라락 떨어진 꽃잎으로 꽃그늘이 가득 만들어졌다. 흠…. 깊은 호흡으로 잠시 꽃멍을 때렸다.돌아오는 길에 서산을 보니 언제 비가 왔나 싶게 노을이 진다. 시(時)를 맞춰 갔더니 때마침 뭉싯한 구름이 꽃처럼 붉어지는 하늘에 시(詩)를 적는다. 장관이다. 다 때가 있다. /김순희(수필가)

2021-08-08

여야 대선 예비후보의 ‘원팀’ 실종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이다.최근 대선 예비후보들의 행보는 폭염과 열대야에다 동남아 스콜이 복합된 날씨만큼이나 정제되지 않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특히 여야 대선 예비후보들 모두 이른바 ‘원팀’을 내세우면서도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모양새를 달리하면서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도출되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들은 당내 경선을 앞두고 명목상 ‘원팀’을 강조하면서 이재명·이낙연 두 예비후보를 필두로 후보 검증이라는 말로 이전투구를 넘어 과열 비방전 상태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에서 ‘도덕성 검증’이라는 이름하에 이낙연 전 대표 측은 이재명 경기지사를 공격하는 배우 김부선씨를 선거판에 출연시켰고 이 지사 측은 이 전 대표와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의 친분설을 제기하며 당내 강성 지지층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등 네거티브 비방전으로 가열됐다.여당 내 대선 예비후보 중 양강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의 삐거덕거림은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잡다한 집안싸움으로 비치기 충분하다.후보들 간 선을 넘은 상황에서 원팀이라는 구호가 아득하게만 보이는 것은 불문가지다. 과거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들이 서로 적자임을 강조하며 밥그릇 싸움을 하던 양상과 거의 비슷하게도 보인다.국민의힘 대선주자들도 이같은 행보에 동참했다. 4일 국민의힘은 대선주자들의 제1호 행사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생수와 마스크, 삼계탕 등을 전달하는 봉사활동을 실시했다.이 자리에 김태호·안상수·원희룡·윤희숙·장기표·장성민·하태경·황교안 등 8명의 대선주자만 참여하고 나머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박진 의원은 개인사정 등을 이유로 불참했다. 다만, 최 전 원장은 부인인 이소연씨가 대신 참석했다.당 대선 경선 과정의 일환으로 마련한 이번 행사에는 이준석 대표와 서병수 대선 경선준비위원장도 함께 했지만, 5명의 대선주자 불참으로 당내 첫 대외행사는 결국 반쪽짜리로 전락하고 마는 결과를 도출하게 됐다.이에 하태경 의원 등은 SNS를 통해 불참한 대선주자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등 ‘원팀’이미지가 사라졌음을 알렸다. 여야 할 것 없이 이같이 당내 대선 주자들 간 엇박자 행보는 결국 당내 경선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자신만의 정치일정을 버릴 수 없다는 점이 노출된 셈이다.여당은 서로 친문의 적자라는 점을 내세우기 위한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된 상태고 국민의힘은 당보다는 개인의 일정이 우선되는 아이러니를 표출해 ‘뭐가 중한디’라는 말이 나오기 충분하다. 이런 정치권의 모습은 결국 대선이나 지방선거 등은 국민과는 상관없는 ‘자신들만의 리그’라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다. 여야 모두 요즘 날씨처럼 뜨거운 열기만 있고 오락가락하는 행보가 아니라 자신들이 주장하는 구호처럼 당내에서부터 먼저 정립돼야 유권자들로부터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그동안의 선거가 증명했다.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투표로서 말해줄 일만 남았다.

2021-08-05

아, 대한민국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올림픽 개막식에 각국의 선수들이 입장하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총 206개 참가국 가운데 참가선수의 규모만도 12번째이고, 역대 메달획득 성적도 1984년 이후로는 대부분 10위권 내에 들었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올림픽을 치른 1988년에는 메달성적이 세계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스포츠 경기가 국위를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지만 참가선수의 규모와 성적의 우위는 국력의 뒷받침이 없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200여 국가 중에 상위 5% 내에 든다는 건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일이다. 그런데 그런 국격에 오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MBC방송이 이번 올림픽 개막식을 중개하면서 몰상식한 짓을 저질러 세계인의 지탄을 받은 것이다. 그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에 분노를 더하고 있다. 그것은 몰상식한 정도를 넘어 비열하고 사악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우크라이나를 소개할 때는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아이티를 소개할 때는 시위대 사진과 대통령 암살사건을 내보낸 것처럼 그 나라들이 대한민국을 소개할 때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과 광주사태의 영상을 내보내면 뭐라고 할 것인가. 좌파노조가 장악한 방송이 온갖 편파방송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더니 급기야는 온 세계에 내놓고 나라망신을 시키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일제의 식민통치와 6·25전쟁의 참화로 세계 최빈국이었던 시절을 겪어온 세대로서는 세계 10위권에 든 대한민국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른다.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열악한 부존자원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맨주먹과 피땀으로 일군 나라였다. 다른 나라의 구호물자로 허기를 때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경제뿐만 아니라 스포츠까지 세계 상위권에 드는 강국으로 보무당당하게 입장하는 걸 보고 어찌 가슴 벅차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감회가 없을 것인가.한편으로는 올림픽조차 참가를 못 하는 세계 최하위권 빈민국인 북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겨레가 이렇게도 극명하게 엇갈리는 분단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한스러움이 북받친다. 그것은 곧 한사코 통일을 가로막는 만고역적 김일성 일족의 세습체제에 대한 원한과 분노이기도 하다. 통일이 시급하고 절실한 이유는 우선 기아와 폭정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들을 구해내야 하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우리 민족이 하나로 뭉치면 세계 굴지의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일단은 김일성 일족의 세습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 통일의 첫걸음이라는 걸 모르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 체제를 비호하고 동조하는 정권이나 세력들은 민족의 반역으로 엄단하고 척결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흥망의 기로에 서 있다. 심각한 것은 국민의 상당수가 위기의식이 없다는 것이다.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 현실로나 사회주의·전체주의로 가면 패망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투철한 반공정신을 기반으로 한 때문이라는 걸 패망 직전의 북한이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지금의 좌파 정권은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은커녕 정체성마저 부정하고 폄훼하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국민들이 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

2021-08-05

성공의 비결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야권 통합을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야권통합은 대선 승리를 위해 야권에게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다.지난 2017년 대통령선거를 봐도 그렇다. 당시 보수층은 두 후보를 지지했다. 한 명은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을 기반으로 한 홍준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후보였고, 또 한 사람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였다. 보수의 분열은 패배를 불렀다. 보수층이 지지한 홍 후보와 안 후보의 득표수를 합해보니 문재인 당선자의 득표수를 뛰어넘는다는 사실이 가장 뼈아픈 회한으로 남았다.그런데 이번에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있다.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합당무산론이 떠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힘 표현을 빌리면 아예 ‘요란한 승객’으로 몰리고 있다. 국민에게 야권대통합을 약속했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양당 통합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이 준 지상과제로, 이것을 거스르면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며 합당을 압박했다.이 대표는 특유의 화법으로 “예스(Yes)냐, 노(No)냐”라고 을러댔다. 이에 맞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지금 여권 대선주자들의 지지율 합이 야권보다 높아 야권이 위기 상황이고, 이대로 가면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고 ‘야권 위기론’을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 ‘플러스 통합론’을 설파했다. 중도 성향의 국민의당이 국민의힘에 흡수돼 소멸하는 방식의 합당으로는 외연 확장 효과를 누릴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다. 달리 말해 당별로 경선후보를 확정한 후 단일화하자는 제안인 셈이다. 이 모두가 합당을 둘러싼 힘겨루기의 일환일 수 있다.그러나 이 대표와 안 대표간 감정싸움은 우려스럽다. 안 대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영국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낼 때 ‘예스까? 노까?(항복할래? 안 할래?)’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 대표의 태도가 고압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 역시 “친일몰이를 넘어서는 전범몰이는 신박하다”고 비꼬았다. 이대로라면 안 대표가 독자출마하겠다 해도 이상치않다. 하지만 극적 타결 가능성은 남아있다. 안 대표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했던 것처럼 정권교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겠다”고 지난 서울시장 선거 사례를 들었으니 두고볼 일이다.물은 100℃에 이르지 않으면 결코 끓지않는다. 99℃에서는 절대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시험도 1점 차이로 합격·불합격이 갈린다. 올림픽에서도 불과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바뀐다. 더 이상 길이 없다 싶을 때 한걸음 더 내딛어야 변화가 온다. 피겨요정 김연아는 훈련을 하다보면 근육이 터져버릴 것 같고, 숨이 목끝까지 차올라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올 때 그 순간을 참아낸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했다.국민들은 내년 대선에서 여야간 멋진 승부를 기대하며 야권통합 논란을 지켜보고 있다. 야권이 대통합을 위한 마지막 1도를 어떻게 올릴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2021-08-05

“졌잘싸”

코로나로 관중 없이 진행되는 도쿄 올림픽에서는 유난히 페어플레이 선수나 팀이 주목을 받는 일이 많다.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아예 언론에 노출되지 못하던 과거의 모습이 줄고 스포츠 정신을 살린 선수나 팀이 언론에 자주 부상한다.우리나라도 금메달리스트만이 스포트라이트 되지 않았다. 열심히 시합을 준비한 선수의 피와 땀과 눈물이 관중을 감동시켰다. 여자배구의 김연경 선수를 세계가 극찬한 것도 메달 획득을 염두에 둔 칭찬은 아니다.이번 올림픽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남자 럭비팀이 그러했다. 참가 12팀 중 꼴찌를 했으나 열악한 여건에서 처음 본선에 진출한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꼴찌’란 칭찬이 뒤따랐다. 유도 중량급의 조구함 선수가 비록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승자의 손을 번쩍 들어주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관중의 박수는 쏟아졌다.“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을 “졌잘싸”라 부른다. 과거 한국 축구팀이 세계 강호를 만나 좋은 경기를 펼쳤을 때 졌지만 잘 싸웠다고 했던 것이 유래가 돼 이렇게 불리게 됐다고 한다. 예상을 뛰어넘어 잘 싸운 선수를 격려할 때 “졌잘싸”란 말을 자주 쓴다.전쟁에 비유한다면 계백장군이 국가 명운을 걸고 결사항전했던 황산벌 전투 같은 것을 “졌잘싸”라 부를 수 있다. 비록 백제는 망했으나 황산벌 전투의 계백장군 기상은 오랫동안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도 금메달보다 잘 싸운 선수를 격려하고 스포츠 정신에 충실한 이를 칭찬하는 문화가 정착해 기분 좋은 모습이다. 스포츠 정신이란 승리에 연연하지 않고 정정당당히 승부하는 것에 있다. 승자는 겸손하고 패자는 예의바른 태도를 보일 때 품격이 있는 것이다. 네거티브에 빠진 우리 정치권도 “졌잘싸” 문화를 본받으면 어떨까./우정구(논설위원)

2021-08-05

“대한민국 각 도시에 독도조형물을 만들자”

대구중부청소년경찰학교 이광섭(59) 경감이 스스로 독도 홍보대사가 돼 대구시민에게 독도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어 화제다.지난 2012년부터 2년 6개월간 독도경비대장으로 근무한 이 경감은 독도에 대해 ‘대한민국의 가슴이 뛰는 심장’으로 여길 정도로 애정이 깊다. 이 경감이 독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는 2012년 7월 일본이 독도 영유권 내용이 포함돼 있는 방위백서를 발표한 직후였다. 당시 뉴스에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가슴 속에서 피가 끓어올랐다는 그는 일본의 주장에 의심이 들어 공부를 했으며, 나부터 ‘독도를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그는 우선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후세대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청소년경찰학교를 찾는 학생들에게 독도의 자세한 정보가 들어 있는 리플릿을 제공하고, ‘가슴 속에 항상 독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동료 경찰들과는 ‘내사랑독도회’를 만들어 독도 알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경비대장 근무 때 독도에서 사계절 동안 찍은 사진을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독도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통해 대한민국의 주권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독도를 일본과 달리 ‘대한민국 독도’라고 불러야 한다는 그는 우리나라 각 도시에 독도 조형물을 만들어서라도 국민이 독도의 중요성을 알도록 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최근 도쿄올림픽 개막을 기점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도쿄올림픽 홈페이지의 성화 봉송로에 독도를 표기해 둘 정도다. 지난해 제작된 일본 방위백서에서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방위성은 당시 “고유영토인 북방영토(쿠릴 4개 섬의 일본식 표현)와 다케시마(독도)의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존재한다”고 밝혔다.우리 정부도 8·15 광복절을 앞두고 독도의 실시간 영상을 국민에게 제공하고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점검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지만 항상 국민교육과 외교채널 등을 통해 일본의 도발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광섭 경감처럼 국민이 모두 독도홍보대사가 돼 ‘대한민국 독도’에 대한 애정과 친밀감을 가져야 한다.

2021-08-05

대구·경북 확진자 181명… 방역 허점은 없나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가 적용 중인 대구·경북에서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세다. 5일 0시 기준으로 대구는 121명, 경북은 60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대구는 지난해 3월 11일(131명). 경북은 지난해 12월 24일(67명) 이후 최대치다. 전날 대구에서 75명, 경북에서는 48명의 확진자가 나와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하룻만에 다시 기록을 경신했다.걱정스러운 것은 코로나19 감염 확산의 속도가 무서울만큼 빠르다는 것이다. 현재 밝혀진 감염자는 대구는 수성구 태권도 도장과 관련한 확진자가 나흘사이 73명으로 늘었고 수성구 M교회와 관련해서도 80여명의 확진자가 쏟아졌다. 태권도 도장에서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도 확인됐다고 한다. 경북은 경산에서 26명, 포항에서 24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는데, 포항은 외국인 모임 관련으로 누적 확진자가 26명까지 늘었다.체육관 등 운동시설은 특성상 마스크를 벗는 등 방역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 교회도 신자 모임인 수련회 등이 자주 열려 집단전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집단감염 발생 우려 지역에 대한 방역체계 점검이 필요하다.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는 감염 속도가 2.5배나 빠른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의해 확산세를 넓혀가는 추세다. 잠시의 방심이 대량 감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전국적으로 백신을 맞은 사람도 감염증이 일어난다는 돌파 감염까지 발생하고 있다. 수도권과 같은 대유행이 대구·경북에도 언제든 가능한 상황이다.대구시 관계자도 “델타 변이가 확산세를 주도하는 양상”이라 말하고 있는 만큼 철저한 방역관리가 절실한 때라 하겠다. 보건당국은 방역망 관리에 허점은 없는지 다시 살펴보고 세밀한 보완조치를 해나가야 한다. 주민들도 방역수칙 준수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지역사회가 코로나 감염증 확산에 총력 대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정부는 수도권 4단계, 비수도권 3단계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당분간 유지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수도권 비수도권 할 것 없이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지역도 방역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한다.

2021-08-05

떠난 자리

배문경 수필가 사람들로 웅성거리던 자리에 먼지가 내려앉았다. 번화했던 거리의 가게들이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았다. 가까운 은행도 이 환난을 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예전처럼 붐비지 않는다. 은행을 찾기보다는 집에서 손가락으로 인터넷 뱅킹을 이용했고 그 편리함으로 인해 은행을 찾는 횟수는 차츰 줄어들었다. 그래서일까. 영업이 어렵다던 은행은 결국 쇠문을 굳게 닫았다. 한여름 절규하듯이 우는 매미소리가 오히려 적막하게 들린다.몇 년 전, 병원 일층에 있던 은행이 길 건너편으로 이전을 했다. 큰 도로 하나를 건너야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감수할 정도의 불편함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큰 글씨로 ‘임대, 매매’라고 써놓았다. 이 비싼 빌딩에 이만한 평수를 임대해서 운영하는 일이 만만찮았을 것이다. 빈 은행에는 버려진 집기류와 은행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홍보물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의 흔적이 사라지니 사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둠 속으로 고요히 사라진다.사라진 것은 은행만이 아니다. 근무지의 응급실이 문을 닫았다. 밤늦도록 흥청망청하던 술꾼들이 사라지고 잡다한 사고가 줄어들자 찾는 이도 많지 않았다. 그로인해 응급실의 밤은 전등만 환했다. 십여 년 같이 근무한 동료가 일자리를 잃었다. 권고사직으로 얼마 동안 실업수당은 받겠지만 갑자기 직장을 잃은 그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할 것이다. 24시간 환하던 공간이 저녁 6시면 자물쇠로 채워지니 가슴이 답답하다. 다들 어디로 내몰리는 것일까.십년이 넘도록 사용하던 사무실 문을 마지막으로 닫고 돌아섰을 때, 창가에 두었던 화분 속 꽃들도 말라비틀어졌다. 울컥했던 그 시간이 지나가서 차라리 다행이다. 과장실을 혼자 사용하다 직원이 여러 명인 검진실로 옮기며 그동안 사용했던 집기류와 살림살이를 꺼내놓자 구석구석 박혀있던 짐들이 두 세배로 늘어났다. 버리려고 내놓은 손때 묻은 물건들을 보며 지난날을 떠올렸다.삶이란 내려놓을 때 성숙해지는 것일까. 내가 존재하는 이 공간과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님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직원이 다 빠져나간 후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 은행에서 수명이 다한 물건 서너 개를 가져왔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앉았던 고객용 패브릭소파와 버리기 아까운 소품 몇 개를 챙겨왔다. 자물쇠로 채워진 서랍장의 열쇠가 한 꾸러미다. 열쇠에 매달린 종을 빼자 뎅그렁 소리가 울린다. 마술처럼 여기저기 닫혀있던 문이 열릴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것 같은 쑥부쟁이가 그려진 기왓장도 챙겼다. 쑥부쟁이 가득한 들판으로 나비 서너 마리가 날갯짓을 하자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듯하다. 버려진 기억이 누군가의 추억에 편입되었다.누군가가 떠나야만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선다. 물건도 낡아 버려야만 새 물건이 그 자리를 메운다. 하지만 사람이 일하던 자리를 때론 로봇이 차지한다. 좀 더 편리하고 쉽게 일하고자 만든 기계가 사람의 자리를 메우고 일자리를 빼앗는다. 나의 자리 너의 자리가 안전하지 못하다.많은 것을 잃고 헤매는 지금의 이 상황들이 가상의 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일로 끝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존을 위한 일자리가 있어야만 그나마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이 소박한 바람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사치가 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지금도 은행 문을 열고 들어서면 환한 미소와 친절한 목소리로 직원이 내게 말을 걸 것만 같다. 혹여 그들이 떠난 자리가 깨끗이 정리된 후 AI가 나를 맞는 것은 아닐까?“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나태주 시인의 ‘떠난 자리’가 생각난다. “나 떠난 자리 너 혼자 남아 오래 울고 있을 것만 같아 나 쉽게 떠나지 못한다. 여기 너 떠난 자리 나 혼자 남아 오래 울고 있을 것 생각하여 너도 울먹이고 있는 거냐? 거기.”

2021-08-04

기웃기웃, 누구를 기다리시는가

산들 어디에나 초록이 짙다. 여름이 깊디깊었다는 말이다. 꽃자리 다투며 피는 봄꽃이 한바탕 지나가면 여름꽃이 하나둘 피기 시작한다. 나무 위에서 매미 울음소리 울창한 여름날, 담장 위로 바깥을 내다보는 꽃이 있다. 능소화다.능소화는 담쟁이 넝쿨처럼 덩굴식물이다. 빨판이 나와 어디든,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달라붙는다. 주로 시골의 돌담에 피어 고즈넉함을, 도시의 시멘트 담에 올라 따스함을, 붉은 벽돌담까지 친근하고 익숙하게 기어오른다. 그리고는 담장에 올라 치렁치렁 꽃줄기를 간드러지게 늘어트린다.꽃의 색깔이 붉지도 노랗지도 않아 ‘붉노랑’이라고나 할까. 원뿔 모양의 꽃차례에 붙어 많이 필 때는 담장을 모두 뒤엎을 정도다. 한 번 피기 시작하면 초가을까지 피고 지기를 이어간다. 그러다가 꽃은 햇볕 무더기, 한 무더기 안고 통째로 댕강 떨어진다. 능소화의 꽃은 땅에 떨어져도 볼만하다. 꽃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고 오랫동안 화려하게 그대로 있다.능소화 꽃말은 기다림이다. 간절한 기다림을 모티브로 문학에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원이 엄마의 편지’는 1582년 31세의 나이로 죽은 이웅태의 아내 원이 엄마가 남편에게 쓴 편지가 일부 공개되어 많은 사람이 눈물을 쏟았다. 소설은 능소화꽃을 배경으로 이들은 능소화가 곱게 피던 날 만났고, 꽃이 만발하던 날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능소화를 피워 남편이 찾아올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이다.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남편을, 아내를 향해 어떠한 마음을 가지는가. 무심하게 지나쳤던 배우자를 유심하게 살펴보자. 밥벌이를 위해 이곳저곳 다니느라 한쪽으로 닳은 남편의 구두, 자존심 하나만으로 당당할 것 같았지만 세상에 타협하느라 갈수록 처진 어깨, 맑고 영롱하게 꾸었던 꿈이 언제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빛을 잃어가는 눈빛을. 그런 배우자를 향하여 능소화 같은 사랑 한 송이 피우는가.능소화의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소화라는 이름의 예쁜 궁녀는 임금님과 하룻밤의 인연을 맺었다. 그 후로 임금님은 소화를 다시 찾지 않았다. 소화는 행여나 임금님이 이곳을 지나갈까, 소화를 찾아올까, 매일 담장 너머에 고개를 빼서 임금님을 기다렸다. 후궁인 소화가 임금님을 그리며 한평생을 보내다 궁궐 담장 아래에서 꽃으로 피었다. 그 꽃이 소화를 닮아 능소화라고 한다. 얼마나 기다리고 그리웠으면 꽃으로 피어날까, 얼마나 보고 싶으면 한여름에 지치지 않고 예쁜 꽃으로 보여 줄까, 한결같은 짝사랑은 꽃으로 피어나기도 하는가 보다.친정집 담장에도 능소화는 피어 있었다. 아버지는 늘 자식을 기다렸다. 설핏 불어오는 바람에도 화들짝 놀라며 밖을 내다보았다. 담장에서 떨어지는 꽃잎 하나에 몸은 대문을 향했고 마음은 마을 어귀에서 서성였다. ‘쯧쯧, 누구 기다린다고 저리 곱게 앉아 있누,’ 담벼락에 기댄 능소화를 향해 아버지는 중얼거렸다. 객지로 떠난 자식들은 서쪽 하늘에 해가 누울 때쯤 드문드문 전화했다.자식들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향해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헛기침으로 표현했다.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자식들은 소홀했고 늘 데면데면했다. 어머니가 가꾸던 마당 한쪽의 텃밭은 날이 갈수록 쪼그라들었지만, 대문 옆 담장 위로 능소화는 줄기차게 꽃을 피웠다. 이순혜 수필가 아버지는 떠났지만, 시골집 담장에서 능소화의 기다림은 그치지 않았다. 꽃잎 하나를 떨어뜨리고 안방을 기웃대도 인기척이 없다. 동트는 시간에 텔레비전 켜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저녁 무렵에 마당에서 들리는 슬리퍼 끄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내일이면 아버지가 기다리던 자식들이 대문을 들어설까 기대해 본다. 숱한 날 해가 뜨고 지기를 반복했지만, 시골집은 적막이 집어 삼켜버렸다. 능소화도 지칠 대로 지쳐 몇 해 만에 시들어 말라버렸다.능소화는 무엇을 보려고 저리도 애쓰는 것일까. 솔개그늘 하나 없는 담장위에서도 화려한 꽃을 피워 놓는다. 작달비가 내려도 천둥 번개가 내리쳐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고개를 쭈욱 내민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꽃은 떨어지고 말지만, 떨어져도 전혀 추해 보이지 않고 예쁨이 그대로다. 목이 잘려 떨어져도 그리움은 한 송이 꽃으로 남는다.저기, 세월의 담 너머로 목을 뺀 채 바깥을 기웃거리는 당신, 이 여름에는 또 누구를 기다리시는가.

2021-08-04

백신 탐구생활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 ‘처음’이라는 단어의 유의어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근심, 걱정, 무서움,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설렘, 바람, 기대, 희망 등의 긍정적인 어휘들도 있다.지난주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물론 처음이다. 그 처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희망보다는 두려움이었다. 백신 접종 날짜가 정해지고부터는 필자는 거의 모든 시간을 백신과 관련한 정보를 검색하는 데썼다. 검색된 정보 중에서 유독 필자의 마음에 쌓인 것은 백신 부작용과 관련된 기사였다. 특히 백신 접종 사망 기사는 필자의 마음에서 긍정과 관련된 모든 감각을 지워버렸다.이미 접종을 마친 지인들이 필자를 위로했지만, 필자의 우울은 더 심해졌다. 급기야 우울은 무기력을 불렀고, 그렇게 한동안 필자는 병적인 무기력과 우울 속에서 지냈다.그때만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때는 세상 모든 머피 법칙이 필자에게만 일어날 것 같았다. 필자는 선택적 지각(知覺)이라는 말의 의미를 그때 확실히 알았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그래서 심각한 왜곡(歪曲)을 초래하는 선택적 지각! 곧 마음의 어리석음!백신 접종 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 필자는 너무도 멀쩡하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마음의 간사함을 이기지 못하고 백신 접종 직전까지 떤 오두방정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짐작(斟酌)과 뜬 소문만으로 모든 것을 단정해 버린 무지함. 그것이 필자의 본모습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지금도 계속해서 심하게 무너지고 있다.그래도 다행인 것은 코로나 예방 백신 접종 덕분에 필자의 단점과 본모습을 제대로 알았다는 것이다. 아직 2차 접종이 남았지만, 필자의 몸에는 감사하게도 백신 보호막이 쳐졌다.백신 접종 이후부터 필자에겐 필자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것은 선택적 지각의 오류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 방법은 누구나 안다. 그것은 편견과 아집, 독단과 독선,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이 방법 또한 우리는 잘 안다, 나를 내려놓고, 나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것!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때 우리는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코로나19 4차 대유행, 돌파 감염 등 세상은 아직 바이러스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백신이라는 단어가 있는 한 이 또한 곧 지나갈 것을 알지만 마음이 불안한 이유는 뭘까!우리는 많은 것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속을 보면 우리는 우리 몸 하나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절대 빈곤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 빈곤을 채워준 것이 백신(vaccine)이다. 백신의 효과를 잘 알지만, 그래도 우리 몸속에 인위적으로 바이러스를 주입하지 않고는 자유롭게 살 수 없는 백신 만능 시대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이 어찌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그러면서 간사한 마음은 또 생각한다, 성적에 미친 이 나라 어른들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구할 교육 백신은 언제 나올지를!

2021-08-04

성공한 탈북자와 실패한 탈북자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이런 저런 사유로 탈북자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많다. 이들 탈북자들은 북한 이탈주민, 새터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탈북민들의 남한 사회 통합 과정은 통일 국가의 미래라 볼 수 있다. 이들의 남한 사회 정착이나 사회 적응 문제도 주요 정책적 과제가 되어야 할 시점이다. 탈북자들은 입국 후 12주간 하나원 교육과정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우선 교육을 통해 남한 사회를 배우게 하려는 목적이다. 교육 수료 후 이들은 전국 각지에 배정되어 첫 출발을 한다. 이들도 대개 서울 경기 등 수도권 배치를 희망하지만 지방에도 많다.내가 만난 새터민 중에는 남한 사회 정착에 성공한 사람이 많다. 대부분 남한의 자유 경쟁체제에 빨리 적응하여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엔 북한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토대로 남한에서도 출세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직접 만나 대화까지 나눈 황장엽 선생은 상당한 예우를 받다 돌아가셨다. 식사를 같이한 조명철 의원은 통일교육원장을 거쳐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다. 현 국회에도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의원과 지성호 비례대표 의원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남한 정치인 이상의 정치 감각을 보인 점이다.일전에 내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탈북민 출신 두 명의 발표를 들은 적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남한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북한 경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탈북자 중에는 이곳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한다. 나도 교수 재직 시 북한의 교수 출신 C의 멘토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그 역시 식당 알바 등 고난을 거쳐 학위취득 후 서울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탈북자 중에는 주식에 성공한 사람도 있고, 북한 음식으로 서민 갑부가 된 사람도 있다. 이들이 3만5천명 중 남한 사회 정착의 성공적인 모델인데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탈북자 중에는 이곳에 정착하지 못하고도 방황하는 사람이 상당수다. 이들 중엔 임대 아파트에서 단순노동을 하면서 기초 생활 지원금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남쪽의 지나친 경쟁체제에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그 중 20여명이 다시 북으로 돌아갔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북한의 일류 김책공대 출신이면서 단순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미국 이민계획이 성공했는지 알 길이 없다. 평양 출신 여성 K는 중국에서 브로커에 속아 남한에 왔다면서 재입북을 공개 요구하고 있다. 모두 남한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이다.서독은 과거부터 동독 탈출자의 경력을 인정하여 서독 취업을 적극 알선해 주었다. 600여만 명의 동독 출신의 서독 탈출 행렬이 독일 통일의 토대가 되었다. 탈북민들은 “북한에서는 배고파서 못 살겠고, 중국에서는 잡혀갈까봐 무서워서 못 살겠고, 남한에서는 몰라서 못 살겠다”고 토로한다. 탈북민들은 남한 사람들의 그들에 대한 의심과 오해가 더욱 괴롭다고 호소한다. 그들 중엔 외국인 노동자 보다 대접 받지 못한다고 불평하면서 조선족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이들의 남한 정착을 돕기 위한 정부와 시민 단체의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

2021-08-04

왼 뺨도 돌려 대어라고?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잘 알려진 예수의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비실제적이고, 피학적이고 자멸적이다. 이것을 비폭력무저항주의라고 하기도 하고, 무한히 양보하는 사랑이라고도 한다. 이 가르침의 해석을 위한 배경을 미쉬나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가르침은 불의한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관계를 상정한다.미쉬나에는 동급신분에서 손바닥으로 상대방의 뺨을 때리면 200일에 해당하는 품삯을, 손등으로 때리면 400일에 해당되는 품삯을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고 했다. 손등으로 치는 행위는 모멸감과 수치를 주기 위한 것으로 육신의 상처보다 더 깊은 상처를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에 손등으로 뺨을 치는 행위는 노예나 아내나 자녀나 여자나 피지배국의 사람에게 모욕과 수치를 주는 행위로 지배자의 차별적 힘을 보여주기 위함이며 이 경우에는 벌금이 주어지지 않았다. 예수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피지배국이었고 이들은 계급, 인종, 성별, 연령, 신분의 차별을 받고 종종 지배권력자들에 의해 손등으로 뺨을 맞고 멸시와 수치를 당하였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오른 뺨을 손바닥으로 치려면 왼손을 사용해야 한다. 당시 왼손은 불결한 일을 할 때만 사용하였다. 쿰란 공동체 생활규칙에는 왼손으로 손짓만 해도 열흘간 속죄 고행을 처벌로 받았다.결국 오른손을 사용해야 하는데 오른 뺨을 오른손으로 치려면 손등으로 칠 수밖에 없기에 오른 뺨을 치는 행위는 주로 피지배자에게 굴욕감을 주려 할 때이다. 그런데 예수는 오른 뺨을 맞은 뒤 오른 뺨을 한 번 더 대어 주어라고 하지 않고 왼 뺨을 대어 주라고 했다. 왼손 사용이 금지되어 있기에 왼 뺨을 치려면 오른 손바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미쉬나에는 손바닥으로 치는 행위는 같은 신분의 경우일 때이다. 결국 왼 뺨을 치는 행위는 피지배자를 동등한 관계로 인정하는 셈이니 결국 왼 뺨을 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왼 뺨을 대어 주는 행위는 계급, 인종, 성별, 연령, 신분의 차별을 고발하고 동등함을 주장하는 약자의 비폭력무저항 운동이다.간디는 비폭력항의에 대해 “모든 굴욕감을 주려는 것에 대한 비폭력적 저항”이라 했다. 피지배자인 인도인들이 끝없이 줄을 지어 맞고 쓰러지고 또 맞고 쓰러지는 행위를 보고 지배국의 영국기자는 오히려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했다.결국 왼 뺨을 돌려대는 행위는 지배자들의 차별에 대한 저항이요 불의한 지배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비폭력무저항운동이다. 갑질과 언어폭력이 난무한 우리 사회에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가르침이다.

2021-08-04

‘지방소멸 대응 양여금’ 신설 시의적절하다

기획재정부는 그저께(3일) 경북도청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대구시·경북도와 함께 ‘대구·경북권역 예산협의회’를 열었다. 이번 협의회는 기재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 예산안 편성에 반영하기 위해 마련했다. 지난달 분야별 예산협의회에 이어 지역별로는 처음 대구·경북 지역에서 개최됐다.경북도는 지역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경북의 특성에 맞는 국가균형발전 사업의 일환으로 문경~김천간 내륙철도(50억원), 구미하이테크밸리 임대전용산업단지 조성(346억원), 영일만 횡단구간 고속도로 건설(180억원) 등의 국비예산을 편성해 줄 것을 건의했다.대구시는 침체된 지역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들이라며 노후산단 스마트 주차장 인프라 구축, 디지털융합 제조공정혁신 정밀기계 가공산업 육성, 디지털 치료기기 육성을 위한 실증플랫폼 구축 등 7개 사업의 예산안 반영을 건의했다.이날 예산협의회에서 시선을 끈 부분은 기재부가 국가 현안인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지방소멸대응양여금’ 제도를 신설, 앞으로 10년간 매년 1조 원을 지방자치단체에 교부하겠다는 내용이다. 지방소멸대응양여금은 비수도권 소멸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투자의 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거점지역을 선정해 교통·주거·통신 등 생활 인프라를 향상시키는 중장기(5년 단위) 투자계획을 수립하면, 중앙부처가 해당 계획에 대한 자문, 재정·정책금융·규제 완화 등 ‘정책·투자지원 패키지’를 마련하는 방식이다.안도걸 기재부 2차관은 “종전 단순 재원 이전방식과는 달리 국가·지자체 공동문제해결을 목표로 지역에 포괄적 자주 재원을 교부하는 새로운 유형의 예산”이라고 설명했다.지금 우리나라는 수도권 인구집중화가 심각하게 진행되면서 비수도권은 점차 인구소멸위험지역으로 변해가고 있다. 비수도권 도 단위 광역단체는 물론 대구, 부산 등 광역시 내 지자체에서도 인구소멸위험지역이 생겨나는 실정이다. 지방소멸대응양여금 제도는 비수도권 지방정부가 재정 부담 없이 청년인구 유입과 저출산·고령화문제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추진해 볼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2021-08-04

코로나·폭염에 물가도 껑충… 강력 대책 나와야

소비자 물가 상승이 심상찮다. 통계청 소비자 물가 동향에 따르면 7월 중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동기보다 2.6%가 상승했다. 10년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이면서 4개월째 2%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같은 기간 대구는 2.8%, 경북은 3%가 각각 올라 전국 평균보다 모두 높았다. 품목별로는 장바구니 물가와 직결되는 농축수산물의 가격이 평균 9.6%가 올라 물가상승을 주도했다. 달걀이 57%, 마늘 45.9%, 고춧가루 34.4% 등이 올랐다. 석유류 가격도 평균 20%가 뛰었다.일부 회사 제품이지만 라면 가격도 11% 정도가 올랐다. 원유가격 인상으로 빵, 아이스크림, 치즈, 커피 등의 가격 인상도 우려되고 있다 한다.폭염 등 기상악화로 농산물 작황이 부진하고 국제 원자재 가격이 물가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물가당국은 분석했다.올 여름은 유난히 더 덥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불안한 일상을 이어가는 서민에게 소비자 물가 상승은 서민가계의 주름을 더 깊게 한다. 시중의 물가를 잡지 않으면 내수경기가 위축돼 시중의 경제 사정도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지금 시중의 경기는 악화일로다. 폐업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들의 비명도 커지고 있는 때다.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당국의 강력한 물가안정 대책만이 이를 수습할 수 있다. 폭염과 태풍 등 아직도 물가에 영향을 줄 불안 요소들이 여전히 상존해 있다.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도 민생경제회의에서 “생활물가를 안정시키는데 집중적인 노력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하루빨리 당국이 나서 수급이 불안한 품목에 대해서는 수입물량을 확보하는 등 생활물가를 안정시켜나가야 한다. 가급적 공공요금도 인상을 억제해 서민 가계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지금 서민들은 오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유행으로 피로감에 지쳐 있다. 폭염에 물가 인상 등 삼중고를 겪는 서민의 시름을 달래줄 강력하고 확실한 당국의 대책이 절실하다. 다음 달에는 시장의 수요가 늘어나는 추석도 예정돼 있다. 장보기가 겁난다는 말이 다시 나오지 않게끔 당국의 강력한 대책이 지금 나와야 한다.

2021-08-04

당신은 정치를 왜 하려 하는가

장규열한동대 교수 대선 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프리드먼(Milton Rose Friedman)의 저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인용하면서 ‘저소득층이 기준에 못 미치는 식품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서 소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시장경제주의자인 프리드먼이 ‘과도한 규제가 자유로운 시장기능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소비자들이 살아가면서 결정하는 데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고 적은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그가 설파한 내용은 ‘아무 거나 다 괜찮다’고 주장할 만큼 부실했을까.그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전면에 나서서 주도적으로 규제하기 보다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방법들로 업계의 자율규제, 소비자의 주권의식, 업계의 상도덕 등을 들고 있다. 길게 보아 아담스미스(Adam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작동할 것이므로 시장에 맡기는 게 좋겠다는 정도다. 시장의 자유와 소비자의 선택 가운데에서 시장은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고 소비자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아는 게 없다. 가격의 차이만 눈에 보일 뿐 속속들이 내용을 알 길이 없다. 상품의 안전도와 위험 수준에 대해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소비자가 과연 있을까. 소비자가 취약한 경제여건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을 ‘무엇이든’ 소비할 수 있게 한다면 위험천만한 결과를 빚을 것이 뻔하지 않을까.경제활동에 그같은 자유를 과도하게 허용한 끝에 맞을 수 있는 부작용으로는, 개인의 건강과 복지를 해칠 뿐 아니라 거시적으로는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쳐 물과 공기의 질마저 낮아지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있다. 프리드먼 자신도 ‘정부의 규제가 필요없다’는 데 방점을 두기보다 ‘깨어있는 시민의 소비자의식과 업계의 수준 높은 상도의’가 먼저 있어야 함을 동시에 강조한다. 경제활동에 있어 업계의 자유와 시민의 자유를 견주어 볼 때에도 누리는 자유를 통하여 업계는 번창하게 되는 반면 시민은 같은 자유를 누리면서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만 떠안게 되는 것은 아닌지 짚어야 한다.정치는 왜 하는가. 국가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적정수준에 미달하는 재화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소비하게 하기보다는, 국민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양질의 소비활동이 가능하도록 돕는 게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가난한 사람도 사람다운 생존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도와야 하는 게 아닌가. 정보의 비대칭이 가속화되어 가는 지식정보화사회를 맞아 시민들에게 가격 이외의 정보도 투명하게 전달되고 경제활동에서 불확실성이 제거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게 당신이 고민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시민의 복리와 안전을 확보하고 공동체의식이 살아나도록 살피는 일을 정치의 제일 과제로 삼아야 한다.학자도 사람이다. 그가 한 이야기를 맹목적으로 인용하기 보다 시민을 위한 무거운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고심하는 정치를 만나고 싶다. 시민도 물론 깨어있어야 한다.

2021-08-04

자동차 선팅이 필요한 이유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자동차 실내온도는 80도 이상까지 올라간다. 이때 차 안에 무심코 놓아둔 라이터나 캔 음료, 휴대용 배터리 등은 폭발 위험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특히 플라스틱 생수병 등은 ‘돋보기’ 같은 역할을 해 햇빛이 특정 부위에 집중되면서 화재를 유발한 경우도 있으니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곳에 주차할 때는 창문을 약간 열어두는 게 좋다.자동차에서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틴팅 필름’을 사용해 ‘선팅’을 한다. ‘선팅’이라는 용어는 해를 뜻하는 ‘sun’과 ‘틴트’(tint)를 한다(~ing)는 의미의 합성어다.필름은 차단 원리에 따라 흡수식과 반사식으로 나뉜다. 과거엔 필름을 고를 때 무작정 가시광선 투과율이 낮은 제품을 선호했지만 최근엔 ‘기능성’이 선택 기준이다.틴팅 필름에서 먼저 살필 숫자는 가시광선 투과율(VLT)이다. 5%·15%·35%·50% 등으로 표기하며, 수치가 낮을수록 필름 색이 짙다. 다만 이는 사생활 보호 등을 위한 투명도의 문제일 뿐 열차단과는 큰 관계가 없다.앞유리와 1열 창문의 지나친 틴팅은 밤길이나 주차장 등 어두운 곳에서 안전을 위협하므로 단속 대상이다.전면은 30% 이상을 권장하고 있다. 2열부터는 짙은 필름 시공이나 색유리가 허용된다. 측면 틴팅농도는 15%가 적당하지만 더 진하게 하고싶다면 2열과 열선유리만 5%를 해도 좋다.최근 출시 제품은 자외선(UV) 차단능력이 대부분 99%에 가깝고, 열 차단능력도 향상돼 제품에 따라 열 차단 성능이 30%에서 최대 90%까지다.폭염 속 자동차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서도 자동차 선팅이 꼭 필요한 이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8-04

그 많던 관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일요일 오후, SNS 친구 신청이 하나 와 있었다. 보통은 허위 계정만 아니라면 별 고민 없이 수락 버튼을 누르는데, 낯익은 이름이어서 잠시 손이 멈췄다. 분명 어디서 본 이름이었는데 누구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프로필 사진은 이십대 중반의 남자. 한참동안 들여다보고서야 누구인지 기억해냈다. 학부시절에 아르바이트로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가르쳤던 아이였다. 많이 까불던 아이라 다른 선생들이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녀석도 어른이 되었지만, 예전의 장난기 어린 눈빛이 남아 있었다.녀석은 요즘 말로 하면 ‘관종’이었다. 수업이 진행될만하면 말장난을 해서 아이들을 웃겼다. 그때만 해도 학원가에 체벌이 아직 남아 있을 때라, 녀석이 있는 반 옆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다른 선생들이 몽둥이로 그의 엉덩이를 때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녀석은 맞으면서도 친구들을 웃기려고 희한한 소리를 냈다.나는 그 아이가 좋았다. 사실 나도 관종 기질이 조금 있다. 그래서 지금도 내 이름을 내걸고 하는 직업들을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중고등학교때는 내성적인 편이라 마음껏 까불지는 못하고, 그 녀석처럼 나서서 친구들을 웃기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 아이의 말장난이 웃겼다. 시답지도 않은 언어유희들이었는데 은근히 센스가 있었다. 가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강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사실 그 아이를 다루는 방법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 만큼의 관심을 주면 되는 것이었다.“너, 웃겨봐.”“네?”“나 진짜 너 웃겨서 그래. 오늘은 웃길 거 없어?”“아, 당황스럽게 왜 그러세요~”“왜? 좀 웃겨줘. 다들 기다리잖아.”나는 아예 녀석에게 마음껏 웃길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는 쭈뼛대던 녀석이 나중에는 학교에서 있었던 웃겼던 일, 같은 반 친구의 부끄러운 일, 아니면 되지도 않는 인터넷 유머를 가져오게 되었다. 나와 반 아이들은 웃기는 천재라며 한없이 추켜 세워주었고, 안 웃긴 날에는 ‘그럼 그렇지’하며 가차없이 놀리곤 했다. 아이는 우리 반 분위기 메이커가 됐고, 다른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나는 녀석이 꼭 개그맨이나 배우 같은 직업은 아니더라도 무언가 자신의 유쾌한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해서 크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반가운 마음에 녀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어이, 오랜만이네.”“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그럼, 잘 지내지. 제자님은 어떻게 지내는가? 대학 졸업할 때 되지 않았나?”“저 진작에 졸업했어요. 지금은 부사관 하고 있어요.”아이는 군인이 되어 있었다. 취업도 힘들고 일자리의 안정성도 적은 요즘 같은 때 많이들 권장 하곤 하는 길을 걷고 있는 셈이었다.“이야, 의외네. 군인이라니. 상상도 못했어.”“그쵸, 저도 제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저희 아버지도 군인이셔서 많이 낯설진 않아요.”“나는 네가 좀 더 까불 수 있는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거기선 안 까불지?”“군대에서 까불면 큰일 나죠. 저 옛날이랑 많이 달라졌어요, 선생님.” 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우리는 한참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채팅창 옆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도 나는 내 대화 상대가 그 옛날 그 녀석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너무 진중해진 모습을 보며, 나보다 더 철이 들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옛날 철딱서니 없었던 그 모습이 그리워졌다.가만 생각해 보니 어릴 때 통통 튀고 재미있었던 친구들이 철이들며 그런 발랄함을 잃어버리는 것을 그동안 많이 봐왔다. 재기발랄함보다는 점잖음이 미덕인 나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철 좀 들라고, 어른스럽게 굴라고 타박을 했을 거다. 누군가는 그들을 관종이라며 비난하기도 했을 것이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자랐더라면 적당히 철들면서도 여전히 유쾌하고 재미난 어른으로 성장했을 친구들이 나이를 먹으며 하나같이 진중하기만 한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상에는 까불까불 하는 사람들도 필요한데. 그 재기발랄함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가치들도 존재하는 것인데.

2021-08-03

첫사랑 이야기

더위가 기승이다. 몸도 마음도 흐물흐물 녹아가는 날씨에 교실의 아이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재밌는 소설을 읽어도 분위기가 축 처지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때 한 학생이 외쳤다.“선생님, 첫사랑 이야기 들려주세요!”과연 고등학생다운 진부함이었다. 나 역시 학창 시절에 젊은 남자 선생님을 당혹하게 하기 위해 같은 말을 던진 적이 있었으니. 그러나 역으로 내게 이런 질문이 다가오자 십 년 전의 그처럼 당황하고 말았다. 동시에 고민에 빠졌다. 숱한 연애를 해왔다. 그중에서 나의 첫사랑이라고 호명할 수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고민 끝에 떠오르는 얼굴을 붙잡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낀 대상. 그건 다름 아닌 나와 함께 사는 강아지였다.다시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나는 동물애호가는커녕 동물을 낯설어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인터넷을 떠도는 강아지나 고양이의 귀여운 사진을 봐도 어떤 감흥도 생기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생명체였다. 우리에게 교집합 따위는 없었다. 그런 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연한 기회로 내 삶에 끼어든 작은 개는 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우리가 만난 첫날을 기억한다. 부산에서 구조되어 4시간의 여정 끝에 마침내 내 품에 당도한 개는 코를 킁킁대더니 집 안 구석구석에 오줌을 갈겨놓았다. 그도 모자라 잔뜩 흥분한 상태로 잡히는 것을 모조리 물어뜯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개의 만행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개는 이렇지 않았다. 인간에게 다정하며 사랑스러운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기대했었다.하지만 눈앞에 놓인 개는 이빨을 드러내며 온몸으로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개를 거실에 두고 방문을 닫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시 거실로 나오니 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우리를 감싸 안았다. 나는 낯선 생명의 동그란 눈동자를 마주했다.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생명. 낯선 환경에 무섭고 두렵고 불안해하는 아이. 나는 조심히 개의 곁으로 다가갔다. 여전히 나를 경계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워 개의 곁에서 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우리의 거리는 어제보다 조금 가까워져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다.이제 우리는 서로의 습관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 나는 이 작은 개가 배가 고플 때나 밖으로 나가고 싶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안다. 몸이 아프거나 행복할 때 내는 소리의 차이를 안다. 언제나 내 곁을 지키며 사랑한다고 온몸으로 외치는 것을 듣는다.동시에 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토록 좋아하던 즉흥적으로 떠나는 여행도, 밤새워 술을 마시는 일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아도 집을 비운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그런 것은 괜찮다. 정말로 괴로운 것은 이 작은 개로 인하여 또 다른 세계를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복날을 앞두고 동물보호소에 있던 유기견들이 사라졌다는 기사를 접한다. 강아지를 도로에 버리고 가는 사람들의 무정함을, 자동차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는 강아지의 애달픈 걸음을 본다. 학대당하는 개를, 그런 아픔을 겪었으면서도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이를 향해 꼬리를 흔드는 바보 같은 개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던 현실의 한 토막이었다. 이제 이 끔찍한 이야기는 나를 괴롭게 만든다. 분노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행동하게 만든다.나는 사랑에 환상을 품은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사랑은 너희가 상상하는 것만큼 즐겁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말이다.그러니까 사랑은 끊임없는 자기모순을 경험하는 것. 마주해야만 하는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 그에 따른 슬픔까지 기꺼이 껴안고 마는 것.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 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것.나는 그 사실을 이 조그만 생명을 통해 알았다.

2021-08-03

소원

김규종경북대 교수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소원 한두 가지는 있는 법. 도선사 명부전 오르는 길에 커다란 바위가 있다. 거기 올려진 무수한 작은 돌멩이를 보자니 마음이 짠하다. 다른 사람들이 보든 말든 간절한 소원을 담아 올려놓은 돌멩이들. 염천의 작열(炸裂)하는 태양 아래 온몸을 드러낸 채 천둥벌거숭이로 소원을 갈구하는 인간군상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사자처럼 용감하고 바람처럼 자유로웠으며 연꽃처럼 깨끗했던 청춘의 날들에 내 소원은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이었다. 신혼여행 길에서 맞은 동해 일출을 보면서 나는 소원을 간절하게 희구했다. 한 주에 한 번꼴로 일출을 볼 수 있다던 커피 상인의 말이 거짓처럼 느껴졌던 그 날의 기막힌 일출. 고교시절 배운 의유당의 ‘동명일기’가 절로 떠올랐던 장관(壯觀)의 일출!새털처럼 수많았던 날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동안에도 내게는 소원이 있었다. 임권택의 영화 ‘장군의 아들’을 보면서 아, 역시 조폭이 멋지네, 하고 생각했다. 새파랗던 20대에 시인이 되지 못했음을 한탄하던 백면서생이 어느덧 물리적 폭력을 열망하는 30대가 된 것이다. 40대에 우연히 마주친 트럭 운전사의 고독한 얼굴에서 읽히는 자유인의 표상이 흐뭇해서 1만2천킬로미터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트럭 운전사가 돼보리라 하는 꿈도 있었다.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자들이 대통령 한답시고 들먹거리는 시점이 오자 소원도 모습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래, 세상을 바꿔보자! 세상을 바꿀 힘은 글에 있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50대에 내가 품은 소원은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문필가’가 되는 것이었다. 작은 공책을 구해서 날마다 소원을 만년필로 정성껏 써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흐르고 흘러간다. 아직도 내게는 소원이 있다. 그것은 예전의 소원과 많이 다른 것이다.조직 폭력배의 멋과 낭만도 아니고, 트럭 운전사의 자유분방함도 아니며,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바람도 아니다. 세상은 언제나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되며, 내게 주어진 배역은 소소한 단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무엇보다 나 자신 먼저 바꾸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자명한 이치도 깨달았던 때문이다. 아니, 세상은 영원히 바뀌지 않은 채 굴러갈 것이기에 이러쿵저러쿵 말을 보태는 것이 허망한 노릇이리라. 그것이 사적(私的)인 소소한 것이든, 만고에 길이 빛날 장쾌한 것이든, 각자(各自)의 소원에는 고유한 빛깔과 향기가 있다. 소원은 지극히 바라는 꿈 같은 것이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살아 있으되 죽어버린 사람은 꿈이 없다. 그래서다. 면담을 신청한 학생들에게 꿈을 묻는 까닭은 거기 있다. 하지만 그들은 바라는 직장이나 회사를 말한다. 배운 것이 ‘장래희망’이니, 무슨 말을 보태겠는가?! 이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서역정토(西域淨土)로 먼 길 떠난 모친 송별하는 길에서 만난 숱한 돌멩이에 새겨진 꿈을 보면서 기원한다. ‘부디 그대들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환한 햇살 아래 능소화(凌9704花)와 비비추, 어여쁘게 부시다.

2021-08-03

4·15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강길수수필가 지금 우리 사회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중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구약성경의 유명한 이야기다. 양치기 소년 다윗은 칼과 창으로 중무장한 필리스티아의 거인 투사 골리앗과 전장에서 맞선다. 단 한 발 돌 무릿매질로, 골리앗의 이마를 맞혀 쓰러트렸다. 이로써, 다윗 편 이스라엘이 이겼다.작년 4·15총선 직후 우리 사회는 부정선거 주장이 제기되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총선 무효소송이 전국적으로 139건이었다는 보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부정선거로 국민이 뽑지 않은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어, 법과 정의가 무너지고 나라 근간을 흔들므로 총선은 무효라는 송사다. 내 눈엔 원고들이 다윗이고, 피고 조작 기획자들과 선관위가 골리앗으로 보인다.선거 후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각 지역 후보자별 득표 내용을, 전문가들이 통계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언론에서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저 수치들은 조작이다!’하는 확신이 들었다. 오랫동안 직장에서 품질관리를 하며, 통계치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조작 없이 그런 변칙데이터는 결코 나올 수 없음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한국 통계전문가들의 말과 미국 부정선거 전문가 미베인 교수의 연구논문 결론도 그 궤가 같았다.투표 후 여당 전략기획위원장은 ‘광역별 판세(사전투표 보정 값)’란 선거 이전 예측 표를 페이스북에 올렸었다. 득표수 집계에 보정 값이 왜 필요할까. 성취감에 취해 사전투표를 조작했다고 스스로 한 고백이자 자승자박으로 보였다. 이 때문에 나는 부정선거 진실을 밝히려 다윗처럼 고군분투하는 분들의 활동을 살펴보기 시작했다.대법원은 선거법에 정한 6개월의 선거소송 기일을 미뤄왔다. 선관위 편일까. 14개월 지난 6월 28일에야 처음으로 인천 연수구 을의 선거무효 소송 재검표가 시행됐다. 결과, 경천동지할 사실들이 드러났다는 보도다. 아래가 연녹색인 ‘배춧잎 투표지’, 두 장이 붙은 ‘자석투표지’, 관리인 도장이 뭉개진 ‘일장기 투표지’ 사전투표 용지가 아닌 ‘인쇄된 빳빳한 투표지’ 등 9종의 위조된 물증이 대량 쏟아졌다고 참관인들은 밝혔다. 선관위는 ‘투표 당일의 표 이미지 파일 원본이 없다며 사본을 제출했다’라고도 증언했다. 원고 측의 위조 표 증거 보존 신청도 5건이 이루어졌다 했다.요약하면, 기획된 4·15총선은 1, 2차로 조작됐다고 본다. 사전투표지 보관 및 운송 중 조작, 개표 시 전자 조작까지가 1차 조작이 되고, 인쇄된 가짜투표지 바꿔치기, 개표 당일 이미지 파일 대체용 가짜 복사본 제작이 2차 조작이 된다.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를 조작한다면 그 죄는 대역죄보다 클 것이다. 드러난 4·15총선 부정선거 증거들을 알고 보니 전자 계수기와 컴퓨터를 쓰기에 더 대규모 조작이 가능했다. 무서운 일이다. 결국, 선거 당시 제1 야당 대표도 ‘4·15 부정선거 특검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태가 이런데도 야당과 대형언론들은 애써 왜곡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어떤 이들이 의심하듯, 정치계, 언론계, 사법부가 국민이 모를 나눠먹기식 침묵의 카르텔이라도 맺은 걸까. 4·15 부정선거의 다윗과 골리앗 싸움은 과연 누가 이겨야 할까. 깨어 있는 국민은 미치겠다.

2021-08-03

대프리카 본색

지난 7월 24일 서울의 기온이 36.5도를 기록하면서 서울이 대구보다 더 덥다는 것이 전국의 뉴스로 떴다. 이날 대구의 낮 최고기온은 33도선에 머물렀다. 전통적으로 폭염 현상을 보이는 대구지방의 더위를 서울의 더위가 이겼다는 것이다.인터넷 게시판에는 “서프리카가 대프리카를 이겼다”는 글이 등장하고, 서울의 폭염 현상을 가리켜 서우디(서울+사우디아라비아)라 부르기도 했다. 서울의 고온현상은 인구밀도가 높고 도시화 등이 진행되면서 생기는 인공열이 작용하는 열섬현상이 주 원인이다.그러나 역대 폭염과 관련한 기록을 살펴보면 서울은 대구를 한참 못 따라온다. 폭염 일수 최장 기록을 보면 서울은 1939년 47일을 기록한 반면 대구는 1994년 60일을 기록했다.폭염이 가장 빨리 찾아온 날은 서울은 5월 17일(1932년)이지만 대구는 5월 9일(1997년)의 기록을 갖고 있다. 전국을 통틀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여름 낮 기온을 보유한 곳은 대구다. 1942년 8월 1일 대구의 기온은 40도다. 전국 어디서도 이 기록을 아직 깨지 못하고 있다.우리나라 여름철 평균 기온은 1910년 22도였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난 지금은 약 2도 정도가 올랐다고 한다. 지구온난화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 한국이라고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기상청은 이번 주부터 대구의 날씨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을 유지하는 열대야로 이어질 것이라 예고했다. 지난해 대구의 열대야 일수는 16일이다. 역대로 열대야는 8월에 집중 발생했다.대구의 대프리카가 이제부터 본색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코로나 기승 속에 무더위와도 한판 싸움을 벌여야 할 것 같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8-03

폭염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얼마나 더운지 / 그는 속옷마저 벗어던졌다 / 엎드려 자고 있는 그의 엉덩이, / 두 개의 무덤이 하나의 잠을 덮고 있다….그의 벗은 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 벌거벗은 육체가 아름다운 건 / 주머니가 없어서일 것이다 / 누구도 데려갈 수 없는 그 강을 / 오늘도 건넜다가 돌아올 것이다, 그는”나희덕 시인의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문학동네, 2004)에 실린 시 ‘열대야’의 1연과 3연이다. 시인은 속옷마저 벗어던지게 만드는 더운 여름 밤의 풍경을 감각적이면서도 깊은 정념을 담아 그려내고 있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망각의 여신이자 죽음의 신 하데스가 지배하는 저승 세계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다섯 개의 강 중 하나인 망각의 강 ‘레테’를 벌거벗은 채 건너갔다 온다.시인의 말처럼 ‘잠은 죽음의 연습’이자 일상의 힘듦을 풀어주고 고뇌를 잊게 해 주는 시간이다. 그러하기에 매일매일 잠을 청하지만 이 무더운 여름밤, 속옷을 땀으로 적셔 가면서 혹은 속옷마저 벗어제치고도 쉬이 잠들지 못하는 것이 이즈음 우리들의 모습이다.바야흐로 8월이다. 여름의 절정이다. 폭염주의보, 폭염경보가 이어지고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폭염을 ‘매우 심한 더위’라고 간단히 정의하고 있는데, 한자의 뜻으로 보면 사나운 더위가 폭염(暴炎)이니 섭씨 30도 정도로는 폭염이란 명함을 내밀기가 어렵겠다. 실제로도 기상청에서는 최고 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날에 폭염이라는 단어를 붙여준다. 또한 최고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주의보를, 최고기온이 섭씨 35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경보를 발령한다고 한다.1973년부터 자료가 제공되고 있는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가장 오랜 폭염일수를 기록한 해는 2018년으로 31일이었고, 그 다음이 29.6일의 1994년이었다.(폭염일수에 소수점 이하의 숫자가 보이는 까닭은 전국 여러 지점의 폭염일수를 평균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 폭염이 가장 긴 해와 장소는 어디였을까? 대구와 경북 지역이 많이, 그리고 오래 덥다는 것이 통념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2018년 7월 11일부터 8월 16일까지 37일 동안 이어진 충남 금산의 폭염이 가장 긴 폭염기록이다.통계로만 본다면 아직 더위는 좀 더 참고 견뎌내야 할 것 같다. 더욱이 이 여름에 코로나19가 사나움을 한껏 더 불지르고 있다. 이 폭염에 방역복을 껴 입고 하루종일을 온몸에 땀으로 목욕하듯 보내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자. 가게문을 닫고 한숨과 눈물로 이 염천의 긴 여름을 지나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자. 눅눅한 1평 남짓 쪽방에 여윈 몸 누이고 더위먹은 이들을 생각하자. 누구 하나 에어콘 ‘빵빵’하게 틀어놓고 내 몸 하나 편하다고 만족해 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사나운 2021년 8월이 지나고 있다. 한 겨울 맹추위를 애써 떠올릴 필요도 없다. 이 여름의 폭염이 사랑과 나눔과 함께함의 뜨거움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고 말할 날이 오리라. 함께 보듬은 우리에게 폭염이 무슨 대수랴.

2021-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