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더워야 제맛이라지만, 너무 덥다 보니 각종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유례없는 폭염 경보에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수온상승으로 인해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는가 하면 영국에서는 과다한 지열 탓에 자연발화 화재가 발생하는 등 지구촌은 보통 난리가 아니다. 지구 온난화의 습격인지, 산업 문명화의 경고인지, 기상이변에 따른 걷잡을 수 없는 재해재난이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듯하다. 꺾이는가 싶던 코로나19 변이종이 교묘하게 재확산되고 날씨마저 극성이니, 정말 한여름의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타는 듯한 삼복(三伏)더위 중 가장 덥다는 중복이다. 가마솥이나 찜통 더위로 비유되는 복더위는 작렬하는 태양이 내뿜는 후끈한 열기로 대지를 인정사정없이 달구고 있다. 간혹 소나기나 장마가 열기를 식혀주기도 하지만, 숨이 막힐 듯한 무더위를 피해 바다나 계곡으로 떠나는 발길이 중복을 전후해 많아지는 하계휴가가 집중되기도 한다. 경제활동을 위한 일도 중요하지만, 특히 혹서기에는 쉼과 힐링이 있는 삶이 중차대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시 일손을 놓고 일상을 벗어나는 피서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봄날 아침에 들길 거니는 것/여름 한낮에 계곡에서 멱 감는 것/가을 저녁에 오동에 걸린 달을 보는 것/겨울밤에 소나무에 이는 바람소리 듣는 것(春朝行郊外/夏日泳溪中/秋日望桐月/冬夜廳松風)” - 강성위 한시 ‘四時四快’ 오언절구 전문. 여름날의 묘미는 무엇보다도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며 물놀이를 하는 것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오래 전 당시 초·중학교를 다니거나 들일로 개울가를 지나치다가 좀 덥다 싶으면 그대로 물 속으로 뛰어들어 자맥질을 일삼기도 하고, 또래들과 어울려 채반이나 반도로 천렵을 할 때면 거의 한나절 이상을 물 속에서 살다시피 하곤 했다. 또한 달 없는 밤엔 비누와 수건을 챙겨 동네의 빨래터나 물목 좋은데로 가서 몸의 때를 제대로 벗기고 씻으며 가슴 속까지 서늘해지는 여름밤의 낭만을 즐기기도 했었다.
‘석양이 함께 와/물장구치던 시냇가//그 물결 부드러워/바위들도 옷을 벗고//물소리/물장구소리/먼 옛날 그 시냇가//가슴 결에 묻어 놓은/수줍은 생각 하나//물결이 칠 때마다/애잔한 모습 되어//소년은 냇가에 앉아/지난 세월 줍고 있다’ -拙시조 ‘시냇가에서’ 전문. 밤낮없이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고향의 시냇가를 거닐다 보면 아련한 추억들이 물보라로 일어서거나 물빛 웅성거림으로 소용돌이치는 듯하다. 나뭇잎배를 띄우며 바다에 이르는 마음을 그려 보기도 했었고, 풀섶의 반딧불이를 쫓으며 작은 꿈이나마 오래도록 초롱하게 빛나기를 보듬기도 했었다. 잔잔한 여울의 속삭임이 유년의 재잘거림처럼 다가오고, 세차게 굽이치는 물살이 소년의 다부진 포부 마냥 거침없이 달려가던 시절이기도 했었다.
하천정비사업으로 물길이 달라지고 아늑한 예전의 자취는 사라졌지만, 하염없이 흘러가는 물은 여전히 부드러운 율(律)과 한결 같은 격(格)으로 여울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끝없는 경전의 올을 풀어내고 있다. 물소리에 스민 사연과 물장구에 어우러진 무구함이 때때로 삶의 장단을 부추기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