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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밖엔 없어 <Ⅲ>

등록일 2022-07-25 19:02 게재일 2022-07-2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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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 연재소설 ‘Grasp reflex’
/삽화 이건욱

지금 무엇을 어떻게 조사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를 통해 뭔가를 알아보려 하지 마십시오. 인공 장기까지 달았던 사람들이 그저 쉽게 죽겠습니까? 사모님이 받은 인공 콩팥은 하늘에서 뚝 떨어졌겠습니까? 사모님 장기는 어디서 왔는지 아십니까?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다른 것은 다 까먹어도 사모님 콩팥이 어떻게 왔는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형사님을 이용해 먹지는 않았습니다. 형사님께 빚진 것이 없었다면 형사님을 제법 괴롭혔지 싶습니다. 그러니 이런 일로 제게 전화하지 마십시오. 형사님은 그저 물어보는 것이겠지만 저는 취조당하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저는 형사님의 정보원이 아닙니다. 허 형사님께 부탁드리는 말씀입니다. 제가.

허 형사의 아내에게 이식했던 인공 콩팥은 교통사고를 당한 노인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허 형사의 아내와 마찬가지로 당뇨로 인한 신부전으로 투석을 하고 있던 노인이 이식받아 육 개월 정도 사용했던 콩팥이었다. 콩팥을 바꿔 단다고 당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질은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이틀에 한 번씩 혈액 투석을 하기 위해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그런데 육 개월밖에 더 살지 못했다.

아들이랑 백화점에 가는 길이었데. 갑자기 끼어드는 차를 피하려다 방호벽을 들이박은 거지. 설상가상으로 조수석 에어백이 작동을 안 한 거야. 아들은 찰과상, 아버지는 사망. 그렇게 된 사연이야.

물건을 넘겨주던 병원의 직원이 우현에게 해 준 이야기였다.

하여튼 우현 씨는 물건 냄새를 잘 맡는단 말이야. 중고 물건이 나올 줄 어찌 알았을까? 얼마 전에 우현 씨가 전화로 혹시 물건 나오면 꼭 먼저 연락 달라 했었잖아. 응급실에서 인공 장기 환자 사망이 있다고 콜이 오는데 우현 씨 생각이 바로 나더라고.

병원 직원이 덧붙여 말했었다. 직원의 안주머니에 하얀 봉투를 넣어주며 우현이 대답했다.

무슨 그런 큰일 날 말씀을 하십니까. 이식 기다리던 환자가 운이 좋은 거지요. 이건 감사의 표시구요. 이번에는 조금 더 넣었습니다. 유가족에게는 제가 직접 이체하겠습니다. 계좌번호만 보내주십시오.

돈이 된다는 소문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여러 신생 업체가 덤벼들던 시기였다.

박 팀장이 허 형사의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허 형사가 고개를 들었다. 박 팀장의 손에 종이컵이 두 개 들려 있었다. 박 팀장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까딱하고는 종이컵을 내밀었다.

-한 대 피우자고.

-바쁩니다.

허 형사가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야, 허 형사. 아직 삐져 있는 거야? 왜 그래, 사나이가. 풀어.

박 팀장이 종이컵을 든 팔로 모니터를 가리며 말했다.

-삐지다니요. 왜 이러십니까.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담배가 웬 말입니까? 여기 폴더 안에 들어 있는 파일들 안 보이십니까? 일일이 다 확인해야 합니다. 둘이서. 내가 형사로 온 건지 모니터 요원으로 온 건지. 방해하지 마시고 혼자 가서 피우십시오. 열심히. 조심하십시오. 커피 쏟아지면 오늘 작업한 것 다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허 형사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박 팀장의 팔을 모니터 밖으로 빼냈다.

-미안해. 그래서 이렇게 커피 뽑아 왔잖아. 그리고 천천히 해도 된다 했잖아. 자, 한 대 피우러 가자니까.

허 형사가 고개를 들었다. 박 팀장이 웃고 있었다.

-이번에는 안 풀려고 했는데. 아이 씨.

허 형사는 한 마디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 팀장은 허 형사의 손에 종이컵을 쥐어주고는 허 형사의 어깨를 툭 쳤다. 밖으로 나온 박 팀장과 허 형사는 주차장 뒤쪽 벤치에 앉았다.

-그래. 뭐 나온 것 좀 있어?

박 팀장이 허 형사가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여 주며 물었다.

-뭐가 나왔다고 말하기는 좀 그런데요. 올더앤베러의 공장이 진주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사건 당일 진영휴게소에 서 있던 컨테이너 수송차량이랑 다른 트럭들 중에 올더앤베러 소유의 차들이 많았습니다. 올더앤베러에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거의 주차장처럼 사용한답니다. 진주랑 가까워서 거기서 빈차로 대기하고 있다가 필요하면 진주로 와서 실어나가고, 일 없으면 휴게소에 세워놓고. 운전기사는 개인차량으로 진영 휴게소에 출퇴근하듯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허 형사는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들이마신 뒤 내뱉었다. 박 팀장이 허 형사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수고하네. 지겨운 일 맡겨서 미안하다. 들어보니 아직 뭐 특별한 진척이 있는 것은 아니네. 그지?

-진척이 있을 리가 있습니까? 이제 겨우 CCTV 파일 중 육십 퍼센트 정도 보았는데요. 일단 모두 살피고 나서 특별한 내용이 있든 없든 진영 휴게소와 올더앤베러 진주 공장에 한 번 다녀올 예정입니다. 사건 당일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휴게소의 같은 자리에 있는 컨테이너나 트럭들도 살펴보고, 휴게소에 없는 차량들은 진주 공장에 가서 살펴봐야겠습니다. 아직 다 본 것은 아니지만, 일반 승용차에서 범행을 저지르기에는 좁을 것이고.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승합차가 오랫동안 서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왠지 컨테이너 트럭이나 냉동 탑차 같은 것이 범행 장소로 유력할 것 같습니다. /김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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