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침부터 온종일 여름비가 내렸다. 거실 창문에 빗물이 고여 있는 것을 기회로 삼아 모처럼 창틀에 쌓인 먼지를 닦으려고 했다. 창문을 열다가 매미 한 마리가 방충망에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파트 16층은 웬만한 나무 우듬지보다 훨씬 높다. 이곳에서 만난 매미는 반가움을 넘어 뜻밖이었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에 매미 날개가 젖을까봐 신경이 쓰였다. 제비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듯 다행히 빗물이 들이치는 곳이 아닌 장소에 본능적으로 몸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척 대견스러웠다.
방문객의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손전화를 찾았다. 나 혼자 호들갑을 떨다 결국 방충망을 건드렸다. 놀란 매미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건너편으로 날아갔다. 매미가 조용히 쉴 수 있게 혼자 둘 것을. 매미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하루가 지난 오늘은 햇볕이 쨍쨍한 날이다. 전형적인 한여름 날씨를 보여 주려는 듯 후텁지근한 오후다. 갑자기 매미 울음소리가 수직으로 치솟는가 싶더니, 수평으로 눕기를 반복한다. 밀도 높은 울림소리의 방출이 계절을 알리는 전령사답다. 유달리 내 귀를 자극하는 커다란 소리에 혹시나 하고 작은 방 창문을 올려다본다.
매미가 방충망에 붙어 자신의 존재를 우렁차게 알린다. 어제 우리 집에 방문했던 그 매미인가 싶어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으면서 자세히 살펴본다.
몸매가 좀 더 통통한 것 같기도 하고, 다리가 좀 더 가느다랗게 긴 것 같기도 하다. 아무려면 어떤가, 연일 찾아와 생의 편린 중에 하나를 나에게 펼쳐 보인다고 여기니 매미가 정겹다.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매미는 대략 7년간의 땅 속 생활을 마치고 일주일 정도를 땅 위에서 살다가 일생을 마친다고 들었다. 수컷 매미는 살아있는 동안 구애를 하기 위해 배 안쪽에 있는 울림주머니를 맹렬하게 빨리 움직이는 것일 텐데, 암컷 매미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지 않고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아 안쓰럽다.
몸피를 뚫고 큰 소리로 우는 매미일수록 암컷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집 안을 뒤흔드는 소리로 짐작을 하건데 필히 울음통이 커서 매미들에게는 매력적일 것 같다. 얼른 자기 짝을 만나면 좋으련만. 사랑을 찾지 못하고 애타게 울고 있는 매미를 응시하다 보니, 사랑에 버림받아 매미가 된 트로이 왕자 티토노스가 불현듯 떠오른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는 미남 왕자 티토노스를 보자 한눈에 반했다. 그를 에티오피아에 있는 자신의 궁전으로 데려가 남편으로 삼고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에오스는 인간인 남편이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걱정했다. 제우스에게 티토노스를 불사(不死)의 몸으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 제우스는 에오스의 부탁을 들어주어 영원히 죽지 않게 만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늙지 않는 불로(不老)의 몸은 주지 않았다고 한다.
에오스의 사랑은 점점 식어갔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피부가 주름투성이인 노인으로 티토노스가 변하자, 그를 궁전의 구석방에 가두고 청동 문을 잠가 버렸다. 슬프게도 티토노스의 몸은 점점 쪼그라들더니 작아져서 결국에는 요람에 눕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우스는 티토노스를 불쌍히 여겨 매미로 바꾸어 버렸다고 한다. 매미는 벽에 붙어 에오스를 애타게 부르며 울고 있었다는 비극적인 그리스 신화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명한 대사로 인해 한 동안 내 가슴이 먹먹했던 것처럼, 변해버린 에오스의 사랑 때문에 매미로 변한 티토노스의 이야기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영원성을 믿고 싶은 나를 절망스럽게 만든다.
요즘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이 칭찬 받는 세상이다.
그러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사랑만은 변덕을 부리지 않고 영속성을 유지하면 좋으련만. 우리 집을 찾아온 매미도 서둘러 사랑을 찾아 결실을 맺고 난 뒤,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자신의 일대기에 한 줄 적히기를 바란다. 매미를 관조하며 사랑의 가치를 가늠해본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