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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로 보이냐

등록일 2022-07-24 18:41 게재일 2022-07-2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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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이원만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어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해양조난사고 상황에서 휴대폰, 식량, 모자, 물 중에서 한 가지만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할 건가를 물었다. 당연히 물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한 선생님은 깜짝 놀랐다.

휴대폰이 가장 많아서다. 당황함을 감추고 선생님이 왜 휴대폰이냐고 물으니 아이들은 “휴대폰으로 검색하면 언제 비가 오는지 알 수 있어서 빗물을 모으면 되요.” “조난상황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검색할 수 있잖아요.” “휴대폰이 있어야 위치추적이 되요.” 다양한 대답을 내놓았다.

선생님은 와이파이의 범위를 따지기보다는 아이들의 생각이 짧은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어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내친 김에 호기심이 동한 선생님은 사막같이 건조한 곳에서 길을 잃었다면 물을 어떻게 구할 것인지 휴대폰으로 검색해보라고 했단다.

1분도 안 돼 아이들은 “적정기술이 있어요.” “와카워트요.” “이탈리아 디자이너가 스테노카라라는 딱정벌레 물구나무서는 걸 보고 만들었데요.”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검색어를 물어 찾아보니 에티오피아와 예멘지역에 사는 와카라는 무화과나무에서 따온 이름인데 딱정벌레가 이른 아침 안개가 끼면 물구나무를 서서 몸에 맺히는 이슬을 입으로 흘려보내 마시는 것에서 착안한 방법이고 이미 상용화되고 있는 적정기술이었다.

선생님은 질문만 제대로 하면 휴대폰으로 수업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 이번에는 너희들이 먹는 수돗물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알아보라고 했다.

시청홈페이지냐 무슨 정부기관이냐 왈가왈부가 있었지만 형산강, 안계댐, 진전지, 오어지, 눌태지, 임하댐, 영천댐, 곡강천까지 줄줄이 튀어나왔다. 심지어 아이들은 설거지 할 때 물을 샤워기처럼 틀면 물을 절약할 수 있다느니 물을 받아놓고 쓰는 습관과 토트넘선수들이 유럽의 물에 비해 우리수돗물이 더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했다는 이야기까지 온갖 물이야기가 줄줄이 쏟아졌다.

미소를 띠며 선생님은 질문을 이어갔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축구하고 땀과 먼지가 범벅이 되면 집으로 달려가 샤워부터 하죠? 그 땀과 먼지는 누가 가져가요?” “물이요” 뭔 질문이 그러냐고 시큰둥한 아이들에게 “그럼, 더러운 걸 가져가 주는 고마운 물에게 여러분은 뭘 줄 수 있어요?”

갑자기 조용해진 아이들은 휴대폰 검색도 하지 않고 선생님을 쳐다본다. “글죠? 고마운 마음밖에 줄게 없죠? 그리고 아끼겠다고 약속하고. 빨래도 덜 자주하고 세제도 미세플라스틱 안생기거나 적게 생기는 걸로 찾아서 쓰자고 엄마한테 이야기 해야겠죠?”

그러면서 물이 온갖 동식물을 키워주고 우리 생명도 유지할 수 있으니 ‘물을 물로 보지 말라’는 말로 수업을 정리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업이 끝난 뒤에도 아이들의 물에 대한 검색은 끝나지 않고 계속 돼서 투발루며 빙하며, 가뭄이며 홍수며 기상이변으로 번져갔다.

심지어 서로 다투다가 “ 날 무시하는 거야? 날 물로 보는 거야?” “그래, 널 물로 본다. 대단한 물!”하고는 깔깔거리는 모습에 함께 웃었다고 한다.

앞으로 100년 동안 지구상의 물의 성질이 달라질 거라고 한다. 빙하가 사라지고 해수면이 상승할 것이다. 기온이 높아지면 구름이 더 많은 물을 품을 수 있고 불안정해진 대기흐름으로 어떤 곳은 가물고 어떤 곳은 홍수가 질 것이다. 바닷물이 산성화되면 산호초를 비롯한 다양한 해양 동식물들이 죽을 것이다.

벌써부터 껍질이 얇아지는 조개들이 발견되고 조금씩 변형이 이루어지는 플랑크톤이 발견되고 있다. 그 물들이 더 이상 생명이 살 수 없게 되는 티핑포인트가 어디인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해수산성화라는 지구역사 5천년 동안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큰 사건을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북의 3천500년 지구역사가 마감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흔한 물, 지구의 표면적 70%가 넘는 엄청난 바다를 채운 물, 그 물을 물로 보면 안 되는 이유다.

여름 가뭄이 심하다. 포항시민에게 물을 대주는 저수지와 댐들의 수위가 궁금하다. 영천과 임하댐은 다른 행정구역인데 생명수를 보내준다니 고맙다.

옛날 어른들은 자식들이 타지에 나가 건강하기를 물 한 그릇을 떠놓고 빌었다. 정화수는 12시와 새벽 1시 사이 동네 우물에 고이는 새물이다.

등불과 대나무가지를 들고 가며 길 위에서 잠든 벌레들을 치우며 물 한 그릇을 담아왔다고 한다. 자기 자식의 건강을 위해 벌레들의 생명을 죽일 수 없다는 마음이 담긴 물이다.

오어지의 연못에 떨어지는 빗방울. 그 빗방울이 그리는 동그라미. 그 동그란 방석에 마음을 앉혀놓고 바라보며 ‘물은 저렇게 우리에게 오시는 구나’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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