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다람쥐, 간이 커지다

양태순수필가 산에서 다람쥐를 만났다. 대부분의 다람쥐는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면 부리나케 숨거나 달아난다. 그런데 도망가지 않고 뒷다리로 서서 입을 오물거리며 나와 눈을 맞추고 있다. 황당하기도 하고 어찌 나올지 궁금하기도 해서 땅에 앉아 지켜본다. 다람쥐는 나와의 눈싸움에서 결코 피하지 않고 볼록한 볼을 움직이며 태연하다. 마치 너는 나를 잡을 수 없다는 당당한 눈빛이다. 내가 어이가 없어 발을 쿵 굴리며 잡을 듯한 자세를 취하자 그제야 나무 사이로 사라진다.다람쥐의 간 큰 행동이 하루아침에 나오지는 않는다. 처음 낯선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앞뒤 가리지 않고 숨기에 바빴을 것이다. 숨이 팔딱거려서 기절할 정도였지 싶다. 몇 번을 경험하고 나서는 호기심에 숨어서 콩닥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주위를 살폈고, 그런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저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가 보다. 발소리에 서서히 적응하여 환경을 받아들인 반응이다.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엇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렵다. 변화하는 환경에 나름 적응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 키우는 문제만큼은 쉽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자라주지 않는 자식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서로에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내가 아이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아이들이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다. 눈 앞에서 아이의 방문이 수없이 닫히고 내 입에서 독이 든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씩씩거리며 냉수를 마신 뒤에도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부족한 부분만 도드라져 보인 적이 많았다. 밤이 깊어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아이의 자는 모습을 몰래 들여다보며 공부가 뭐라고 이리 안달복달하는지 반성을 하곤 했다. 아이의 좋은 점만 봐야지, 굳게 마음을 먹었다.사람마다 환겅의 적응 방법이 다르다. 내가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성적보다 인간성, 사교성을 우선이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아이는 엄마의 잔소리에 토를 달기보다 “알았어요, 알았어.”하며 반성하는 척 했다. 그렇게 나는 나대로 성적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산에서 만난 다람쥐도 이런 과정을 겪었기에 저리 태평한가 보다. 그러나 아직 사람 가까이 다가와서 재롱을 부리지 않는 것을 보니 조금의 경계심은 있다. 만에 하나 저를 해치려는 의도가 보이면 단숨에 사라지겠다는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듯해서 안심이다. 환경에 백 프로 적응보다는 나만의 색깔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듯해서 대견하다.간이 큰 다람쥐를 만나고 온 나는 자꾸 입꼬리가 실룩거린다. 사람을 보고 도망가지 않은 것이 기특해서다. 다람쥐 세계에서 반항아로 찍힐 만큼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의 산경험이 친구들에게 틀림없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것이든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지 않은가.주변의 환경은 늘 변화한다. 아침이면 새로운 소식이 쌓여있고 지구촌 어디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세계가 놀란 가슴이 되기도 하는, 속도의 경쟁이기도 하다. 또 어제 멀쩡하던 전화기가 고장이 나서 연락처가 다 날아가서 당황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크고 작은 사건들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많은 영향을 준다.그러나 변화의 중심은 늘 사람이라고 믿는다.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내가 살아갈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무작정 두려워하는 것보다 개개인의 소중한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다람쥐는 자신의 영역만 고집하지 않았다. 조금씩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는 노력을 했다. 가끔 발소리를 듣고 놀라기는 하지만 무작정 도망가지 않고 서로 눈짓을 교환할 정도가 된 것이다. 그 작은 생명체가 덩치가 큰 사람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배울 점이기도 하다.서로를 향한 조금의 배려와 존중이 삶의 가치를 향상시킨다. 다람쥐는 조금 더 간이 커지고 사람은 더 큰 품으로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부족한 대로 어울려서 채워가는 세상, 큰 그림을 꿈꾼다.

2022-05-25

류대창의 명리인문학… 임신(壬申)

육십갑자 중 아홉 번째 임신(壬申)이다. 천간(天干)은 임수(壬水), 지지(地支)는 신금(申金)이다.임수(壬水)는 넓은 호수, 바다로 표현한다. 넓은 호수와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은 자세 덕분에 속이 깊어 내면의 심리를 알기 어렵고, 바다와 같이 넓은 까닭에 모든 것을 수용하는 덕이 있다. 물처럼 유연하고 총명함을 타고 났기에 박식함이 넘쳐 언변이 청산유수인 자가 많다.사주에 임수가 있으면 모든 것을 수용하는 능력이 있어 재물이 마르지 않는 것과 같아 대체적으로 부자가 많다.인간이 살아가면서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돈’으로 해결 되지 않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어떤 마을에 매우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먹을 것이 생기기나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어느 날 우연히 달걀을 하나 얻게 되었다. 뛸 듯이 기뻐하며 집에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 “나는 오늘 큰 재산을 얻었네”라고 말했다, 아내가 “큰 재산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달걀을 아내에게 내어 보이며 “이거지. 그렇지만 십 년쯤 기다려야 될 걸세”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셈을 해보게 되었다.“내가 옆집 주인에게 부탁하여, 그 집의 어미 닭에게 이 달걀을 함께 품도록 하여 병아리로 만들고 좀 클 때까지 기다렸다가 찾아와야지. 그 병아리는 곧 닭이 되어 알을 낳게 되고, 한 달에 열다섯 개는 낳겠지. 그것들을 다시 품게 해서 알을 까면 병아리가 열다섯 마리가 되지. 그렇게 두 해만 지나면 닭이 알을 낳고, 알이 닭으로 되어서 닭이 삼백 마리는 족히 될 것이고, 그것을 팔면 은 덩어리 열 개는 될 거야. 그 은 덩어리 열 개를 가지고 암소 다섯 마리는 살 수 있지. 암소가 또 암소를 낳으면서 삼년만 지나면 암소가 스물다섯 마리가 되지. 또 송아지가 크면서 새끼를 낳을 것까지 계산하면 삼년 만에 일백오십 마리는 될 거야. 그것을 팔면 은 덩어리 삼백 개는 되지 않겠소. 그 은 삼백 개를 가지고 빚 놀이를 하면, 또 삼 년 이내에 오백 개로 늘어나겠지. 그 가운데에서 삼분의 이는 밭을 사고 집을 짓고, 삼분의 일로는 집안일을 잘 할 아주머니를 두도록 하지. 나와 자네는 행복하게 늘그막을 살아가지.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아내는 집안일을 하는 아주머니를 둔다는 말을 듣자, “이 화근 덩어리를 남겨 두어서는 안 되겠군”하며 그 달걀을 땅에 던져 버렸다. ‘설도소설(雪濤小說)’ (중국 명나라 신종 때 강영과가 지은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다.먹고 살기 힘든 서민은 그 날 그 날 살기 위해 재물에 매달린다. 만약 부(富)를 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말채찍을 잡는 마부가 될지라도 나 또한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을 것이다.신금(申金)은 초가을처럼 맑고 결실을 맺는 시기며, 동물로는 원숭이다. 원숭이 원(猿)이 아니고, 원숭이 신(申)이다. 원숭이는 경계심이 강하고, 이해타산이 심하며 잔꾀가 많다. 자기 재주만 믿고 행동하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그만큼 똑똑하고 재주가 많다.진요자(‘송사’(宋史)에 실려 있는 강숙공)는 활을 매우 잘 쏘았다. 그와 겨룰 만한 사람이라곤 없었다. 그는 스스로 언제나 자기가 활을 제일 잘 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그가 활을 쏘고 있는데 참기름을 파는 노인이 어깨에 메었던 짐을 내려놓고 활 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그 노인은 진요자가 쏘는 화살 열 개 가운데 아홉 개가 과녁의 한가운데에 맞는 것을 보고서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요자가 “당신도 활을 쏠 줄 아십니까? 나의 솜씨가 참으로 훌륭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노인이 “뭐 별로 특별한 비결이 있지는 않군요. 그저 손에 푹 익었을 뿐이군요!”라고 대답하였다. 진요자가 화가 나서 “어찌 겁도 없이 나의 활 쏘는 실력을 가볍게 본단 말이오!”라고 말했다.노인이 “내가 참기름을 병에 부어 본 경험이 있어 그러한 이치를 알지요”라고 대답하였다. 말을 마치더니 호리병처럼 생긴 참기름병을 하나 꺼내서 땅 위에 내려놓고, 엽전으로 병 아가리를 덮더니 국자로 참기름을 떠서 병 속에 넣었다. 참기름이 엽전의 가운데에 뚫려 있는 조그만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데, 엽전에는 조금도 참기름이 묻지 않았다.그러고는 노인이 “나도 뭐 별난 비결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손에 푹 익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했다. 진요자가 웃으면서 참기름을 파는 노인에게 “많이 파시오”라고 말하며 배웅해 주었다. ‘귀전록(歸田錄)’(북송 때 구양수가 쓴 산문집)에 나온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참기름 파는 노인과 장자에 나오는 소를 잡아서 고기를 발라내는 포정(庖丁)이라는 사람이나 수레바퀴를 쪼아 만드는 윤편(輪扁)이라는 사람이 무엇이 다를 바가 있는가?한 분야에 달인이라며 지나치게 재주를 과시하면 상대방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다. 자랑보다 겸손의 미덕도 필요하다.‘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원숭이를 일명 ‘잔나비’라고 하는데, 하는 짓이 경망스러워 붙여진 이름이다.임신(壬申)은 뜻이 다르지만 임신(妊娠)과 음(音)은 같다. 임신(妊娠)은 ‘아이를 배다’이다. 즉, 지상의 모든 생명의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임신일주(壬申日柱)는 성욕이 왕성한 대표적인 일주(日柱)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에 추진력이 있고, 다재다능하여 자기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사회에 기여하여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때로는 너무 잘난척하는 행동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2022-05-25

그렇게 어른이 된다

나에게는 중학교 때부터 항상 붙어 다닌 세 명의 친구가 있다. 좋은 일도 슬픈 일도, 바보같은 짓도 함께 하며 울고 웃었던 친구들. 서로의 경조사를 항상 함께하며 힘들 땐 위로가, 기쁠 땐 함께 웃어준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웃기다고, 우리도 서로 얼굴만 봐도 자꾸 웃게 된다. 다들 밖에서는 존중받고 또 신뢰받으며 살아가는 친구들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우리끼리 있을 때면 한없이 바보 같고 실없어진다. 나는 친구들의 그런 모습이 서로에 대한 신뢰처럼 느껴지곤 해, 바보 같은 소리를 하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 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우리는 모두 서울 은평구에 살았었다. 둘씩 둘씩 아주 어려서부터 친구였다가, 중학교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린 마치 그보다 훨씬 전부터 넷이 하나였던 것처럼 붙어 다녔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한없이 의지하기도 하며 20년을 함께 지내왔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교대로 군대를 다녀오고, 이사를 가고 하면서, 이제는 모두 은평구를 떠나고 말았다. 같은 동네를 살 땐 몰랐다. 가까운 거리에 네가, 밤이면 우리가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축복이었는지 말이다. 이렇게 다들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게 되니, 그와 같은 인연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이었는지 새삼 느낀다.그렇게 우리는 30대가 되었고, 하나 둘 결혼을 하며 가정을 이뤄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철없는 아이가 아니라, 누군가의 동반자로서, 누군가의 아빠로서 살아가게 되었다. 이제는 마냥 실없는 짓만 할 수는 없게 된 친구들의 모습에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고 때로는 질투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그렇게 변해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다.저번 토요일의 일이다. 우리는 넷 중 가장 일찍 결혼해 어느새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친구의 집에 모였다. 보다 일찍 아이도 보고, 녀석의 사는 모습도 보고 싶었지만, 코로나 시국에 갓난아기를 보러 간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아 미뤄진 자리였다. 그 사이 아이는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 걷고, 뛰고, 토끼나 아빠, 속닥, 똑딱 같은 간단한 단어를 말할 정도로 커 있었다. 나는 그게 신기해 한참을 보고만 있었다. 너무나 작고, 너무나 부드럽고, 그래서 금방이라도 부서지거나 사라질 것만 같아 조금은 슬퍼지는 행복한 기분이었다.사실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어떻게 행동해 주는 게 옳은 건지 알 수 없어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녀석의 딸을 보는 건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아마 나에게 소중한 사람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이기에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신기하다는 말 말고는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 하지만 보다 신기했던 건, 그런 아이의 모습보다도 더 신기했던 건, 아이를 시종일관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하는 내 친구의 모습이었다. 어느새 녀석은 함께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밤새 함께 술을 먹고는 부스스한 얼굴로 인사하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주겠다고 각오한, 이 세상이 위험하고 험한 곳이지만 그곳에 절대 너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각오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녀석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사실 난 좀 건방지고 오만한 구석이 있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생각이 깊고 마음이 넓다고 생각할 때가 자주 있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성숙한 아이인 것처럼 굴었고, 세상 모든 슬픔과 고통을 미리 경험한 사람인 것처럼, 혹은 전생의 슬픔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어렸고, 어리석었다. 단지 어리고 어리석어 타인은커녕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정말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 단지 한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을 따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커녕, 스스로의 마음도 감당하지 못하는 어른아이.그렇게 어른이 된 친구의 집을 나오며 나도 모르게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것을, 너는 알까. 네가 이미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며, 세상을 향해 인도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내가 너를 얼마나 자랑스럽다 생각했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너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진심으로 존경하는, 너와 같은 어른이. 아마 너는 아직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주길. 너에게는 너의 힘듦을 함께하고 너의 아이를 함께 지켜줄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너의 행복을 지켜줄 친구들이 너의 곁에 항상 함께 있다는 사실 말이다.

2022-05-24

복수, 그 수상함에 관한 단상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 권여선 작가의 ‘친구’라는 작품을 읽었다. 해옥이라는 여자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소설은 짧은 분량이지만 우리의 현실을 완벽하게 그려내며 문학으로 획득할 수 있는 강렬한 페이소스를 보여준다.해옥은 “하루하루에 기쁨이랄 것”이 없이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에게는 아무도 모를 두 가지의 기쁨이 있는데 하나는 매일 새벽마다 감사기도를 드리는 신이며 또 다른 하나는 보물과도 같은 아들 민수다. 평소와 다름없이 지난한 일상을 살던 해옥은 담임에게서 아들인 민수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간 해옥이 민수의 친구라고 알고 있던 아이들이 민수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폭력까지 휘두른 것이었다. 무엇보다 소설에서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부분은 해옥과 민수가 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며 더 나아가 아들인 민수는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들을 친구라는 미명으로 감싸는 모습까지 보인다.텍스트를 읽은 학생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내어놓았다. 우리와 맞닿은 현실을 언어적으로 구현했다는 놀라움과 인물의 심리를 날카롭게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에 감탄했으며 소설 속 인물인 해옥에 완전히 이입하다 못해 더 나아가 이토록 답답한 상황에 분개하는 학생도 있었다. ‘사이다’ 없이 ‘고구마’로만 끝났다는 것이었다. 해옥과 민수가 받은 폭력을 갚아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도적 장치로서 문제를 해결했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이야기의 막을 내린 것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허구의 상황을 보여주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뤄볼 수도 있겠다. 해옥의 내면에서 부글거리는 분노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선하게 살아가는 모자에게 닥친 위기 상황이 종국에는 복수극으로 전환되어 독자로 하여금 일종의 만족감을 선사했을지도 모른다.사실상 ‘복수’라는 키워드는 유구한 역사 동안 다양하게 소비되어 왔다. 서양 최초의 서사시라 일컬어지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역시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아가멤논을 향한 복수심으로 시작된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작품이 복수의 서사를 사용하면서 법과 규제의 테두리 안에서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내밀한 감정적 지점을 건드린다.그러나 이러한 복수극의 플롯이 어쩐지 수상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솟아오르는 감정에 사로잡혀 자기 인생을 내걸고 타인을 파멸시키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며 결국 자신의 존엄까지 해치는 인물에게 공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해진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피해 보는 인생을 살 바엔 차라리 추악함을 택하겠다는 마음도 만연하다. 복수의 무서운 점은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잘 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자기 삶의 정확성을 가지는 일조차 누군가를 향한 분노로 추동하고 있지 않은가.그렇다고 해서 사랑과 용서를 설파하기엔 결코 아름답지 않은 세상이다. 세상에 만연한 추악함을 덮을 수 있는 것이 막연한 사랑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서도 드러나는 문제의식이다. 용서하는 행동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는 종교적 믿음을 붙잡았지만 전지전능하고 공평한 신은 살인자의 마음마저 어루만지며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살인자의 목을 조르는 편이 낫겠다고 소리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런 지점에서 ‘친구’의 해옥은 얼마나 답답한가. 자신의 별 볼 일 없는 삶을 신의 뜻이라고 치부하며 폭력에 노출된 아들을 보면서도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우리는 선량하고 착한 사람들이 획득하게 되는 어떠한 지점에 관해 알아야 한다. 올바르고 완벽한 정답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야말로 그들에게는 일상을 지탱하는 큰 힘이다. 세계의 끔찍함을 완벽하게 응시하는 순간 분노할 수밖에 없고 그 감정에 잡아먹히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불행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상황이 오히려 전지전능한 누군가의 뜻이라고 믿으면서 살아갈 뿐이다.이런 인물들을 그저 답답하다고 치부하기엔 마음 한편이 아려오는 것이다. 어떠한 일의 판단과 결정은 오롯이 그들의 몫이며 무엇도 정답이 될 순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읽는다. 불합리한 상황에 분노하는 일. 타인의 감정까지 지평을 넓히는 일. 그렇지만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게 두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 인물 또한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일로 나아가기 위함인 것이다.

2022-05-24

대통령이 직접 ‘지방시대’ 주도하라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내일(26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첫 정식 국무회의를 개최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첫 국무회의를 세종청사에서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새 정부는 올 연말 입주 예정인 세종청사 중앙동 내에 대통령 집무실도 마련한다. 윤 대통령의 이러한 ‘탈(脫) 서울’ 행보는 비수도권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신선감을 준다. 대통령의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사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 지역 간 갈등, 저출산 문제 등은 수도권 일극주의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수도권에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의 자산, 권력, 인재가 몰려 있기 때문에 국가기능이 균형 있게 작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수도권에 국가 주요사업과 예산이 집중돼 있으니까 6·1 지방선거도 서울, 경기, 인천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전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경기도지사 선거와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1기 신도시 건설과 재건축, 광역급행철도(GTX) 신설·연장, 군 공항 이전 및 국제공항 건설 등 후보들의 굵직한 개발 공약이 넘쳐나고 있다. 이 공약에 따라 해당 지역의 부동산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이에 비례해 비수도권지역 주민들의 박탈감은 커지기만 한다.비수도권 모든 지자체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기업 하나라도 유치하기 위해 올인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기도지사 후보들은 ‘수도권 공장 총량제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국민의힘 김은혜 경기도지사 후보는 수도권 공장총량제를 ‘대못 규제’라고 비난하면서 경기도 이전 기업에 대해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다닌다.지역균형발전이 제대로 되려면 수도권에 집중되는 국가자산(일자리·교육·의료·교통·문화)을 규제하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출산유도를 위해 아이 낳는 가정에 현금을 지급하고, 여기저기 도로를 넓히는 식의 대증적 요법으로는 지역균형발전은 요원하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를 균형적으로 배분하는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 수도권규제를 완화하면서 비수도권 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하다.이런 측면에서 새 정부가 현재 대통령 직속으로 있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는 별도로 윤 대통령의 지역균형발전 공약을 챙길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는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들이 대거 남아있어 새 정부의 ‘지방시대 국정과제’를 적극적으로 챙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 관련, 김병준 전 인수위 균형발전특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자신도 적극적으로 참여할테니 지역균형발전이 국민의 관심사가 될 수 있도록 외부포럼이나 학회가 적극적으로 연계해서 활동하라고 했다”며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지역균형발전을 범정부적 현안으로 추진하려면 특정기구에 맡길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공론화작업을 하는 것이 맞다. 지방소멸 어젠다는 청년들의 취업과 결혼·출산 문제에 직결돼 있기 때문에 새 정부는 반드시 이 문제를 국정과제 1순위로 삼아야 한다.

2022-05-24

WHO의 경고

우정구 논설위원 팬데믹(Pandemic)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선언하는 감염병 최고 경고 등급이다. 세계보건기구는 감염병의 위험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6단계로 등급을 구분한다.1단계는 동물에 한정된 감염, 2단계는 동물간 전염을 넘어 소수 사람에게도 전염된 상태. 3단계는 사람들 사이에서 감염이 증가한 상태다. 4단계는 사람들 감염이 급속히 확산된 경우고 5단계는 감염이 2개국 이상에서 유행하는 상태며 6단계는 다른 대륙국가에서도 유행을 보이는 상태일 때를 말한다.인류 역사상 팬데믹에 속한 질병은 14세기 중엽 유럽을 휩쓴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 홍콩독감 등이 있다.살이 썩어 검게 되는 흑사병은 당시 유럽 전체 인구의 30∼40%를 몰살시키는 등 중세 유럽을 초토화한 질병이다.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도 전 세계 인구의 5천만명 이상을 숨지게 했다. 1968년 발생한 홍콩독감으로는 1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세계보건기구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5차 세계보건총회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종식되지 않는 한 어떤 곳에서도 끝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그는 “거의 70개국에서 신규 확진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며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저개발국의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률이 저조한 것이라 했다.거리두기 해제로 코로나 경계심을 풀고 있는 우리에게 그의 발언은 주의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는 점에서 새겨들을 만하다. 국내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1만명대 밑으로 떨어졌으나 재유행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히 많다. 유비무환의 정신이 필요한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5-24

공공기관 지방이전, 새정부 의지 궁금하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추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국정 목표로 정한 새 정부가 지역균형발전과 밀접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펼칠지 지방민의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문재인 정부도 공공기관의 2차 지방이전을 찰떡처럼 약속했으나 이런저런 핑계로 차기 정부로 떠넘겼다.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학수고대했던 지역으로서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넘어 가히 충격적 실망감에 빠졌다.국가의 모든 기반이 수도권에 매몰돼 지금도 매년 수만명의 지방청년들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인구마저 줄어든 지방은 노령화 등으로 그야말로 소멸위기에 봉착했다.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공공기관 370개 중 서울 등 수도권에 있는 기관이 164개(44.3%)로 집계됐다.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추진해 왔다고 하지만 아직도 10곳 중 4곳 이상이 수도권에 자리 잡고 있다. 17개 시도별로는 서울이 125개(33.8%)로 압도적으로 많고 대전 40개, 경기 31개, 세종 26개, 부산 22개 순으로 나타났다. 대구는 16개, 경북은 10개에 그치고 있다. 공공기관의 지역별 편차도 크다.그저께 김병준 지역균형발전특위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 지방화 시대를 여는 정부”며 “균형발전을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공공기관 이전과 관련해서도 “상당히 폭넓은 수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할 것”이라 말했다.새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의지가 강하다고 하나 이전 대상기관의 거부감과 지역별 이해 등이 섞여 이를 추진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만해도 노사가 반대의사를 밝히는 등 갈등 조짐이 심상찮다. 균형발전을 실현하려는 정부 의지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조화롭게 통제할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공공기관 유치를 희망하는 중소도시들도 대거 등장해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이전보다 더 합리적이어야 설득력이 있다. 새 정부의 공공기관 실행의지가 주목된다.

2022-05-24

정호영 결국 사퇴, 의료 전문가로 복귀하길

경북대병원장 출신인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결국 자진사퇴했다. 그는 지난 23일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하고, 여야(與野) 협치를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장관 후보직을 사퇴하고자 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지난달 10일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지 43일 만이다. 윤석열 정부 장관 후보자 중에서는 지난 3일 자진사퇴한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두번째 낙마 사례다. 정 후보자의 자진사퇴에는 윤 대통령의 뜻이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도 그간 윤 대통령의 지명 철회보다는 정 후보자의 자진사퇴에 무게를 두고 전방위로 사퇴 압박을 벌여왔다. 정 후보자의 경우 서울이 아닌 지방출신의 유일한 국무위원 후보자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다.윤 대통령의 ‘40년지기’로 알려졌던 정 후보자는 지명 당시 코로나19 이후 의료·복지를 재정비할 전문의료인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그가 경북대병원 진료처장·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두 자녀가 경북대 의대에 편입학하는 과정에서의 특혜 의혹이 제기돼 민주당 의원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됐다. 이와 관련 정 후보자는 사퇴 입장문에서 “경북대학교와 경북대병원의 많은 교수들과 관계자들도 인사청문회를 비롯한 다수의 자리에서 자녀들의 편입학 문제나 병역 등에 어떠한 부당한 행위도 없었음을 증명해줬다. 실제로 수많은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행위가 밝혀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정 후보자는 지난 2020년 2월 대구·경북이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로 패닉 상태였을 때, 경북대병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의료시스템 붕괴를 막은 주역이었다. 당시 대구는 확진자가 하루 수백명씩 나오면서 입원병실이 모자라 시민들이 공포에 떨었다. 극도로 급박한 상황에서 그는 확진자가 공공기관 연수원, 대학 기숙사 등 격리된 공간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며 치료할 수 있는 생활치료센터 운영을 주도했다. 이제 장관 후보직에서 사퇴한 만큼,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겪은 고통을 잊고 위암수술 분야의 권위자로 다시 의료현장에 복귀하기를 바란다.

2022-05-24

몰라서 죽을 수도 있다

조현태 수필가 헛간 지붕 사각파이프 속에 참새가 둥지를 만들더니 어느새 새끼참새가 부화하여 날아 나왔다. 아직 부리 부분이 노란빛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소한 지 얼마지 않아 보였다. 내가 가까이 가도 도망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둥지에서 나온 세상이라 뭐가 위험하고 어떤 것이 안전한지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마당에는 자전거 튜브를 때우기 위해 마련해 둔 물통이 있었는데 물 깊이가 약 십 센티미터 정도였다. 그 물을 마시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는 중이었다. 혹시 내가 유심히 보면 불안할까봐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 피해 주었다. 잠시 후에는 세 마리나 물통에 앉아 놀기에 그러나보다 하고 내 용무 보러 나갔다.약 두 시간 가량 용무를 보고 집에 와 보니 물통 주변에는 참새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예닐곱 마리 참새가 가정용 정미기 주변에서 떨어진 곡식들을 주워 먹는데 정신을 팔고 있었다. 평소에도 미강이나 왕겨가 나가는 곳에 참새들이 많이 붐볐으므로 흩어진 곡식을 알뜰히 찾아먹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그냥 웃어넘기며 아까 그 물통 옆을 지나다가 깜짝 놀랐다. 새끼참새 한 마리가 물통에 빠져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얼른 건져보니 이미 죽어 있었다. 새들이 물을 먹기도 하고, 물에 들어앉아 깃털 씻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많이 봤으니까 얘들도 그런 줄 알았다.겨우 10cm에 빠져 죽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이런 사고가 나고 말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새끼참새에게는 키 높이에 두 배가 넘을 깊이가 아닌가. 더구나 아무런 경험도 없었으니 누군가 거들어주지 않으면 혼자 해결할 줄 몰랐을 수도 있다. 그저 어미가 물을 먹으니 따라서 먹어 보았고 목욕을 하니 흉내를 냈을 수도 있다. 아차! 싶었으나 새끼참새가 이미 익사하고 말았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감나무 밑에 묻어주는 일밖에 없었다.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어 실수하거나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부족한 상황을 미리 짐작했어야 했다. 또 다른 새끼들이 물 먹으러 올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두면 안 될 듯했다. 수면에 닿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에 안전장치를 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면 물을 먹으러 왔다가 빠져 죽지는 않을 것이다. 얼른 생각나는 것이 석쇠와 같은 철망이었다. 철망에 10cm 정도 되는 다리를 만들어 물에 넣어두면 될 터이다.사람 사는 사회에도 마찬가지다. 사고는 언제나 터진 후에 수습하고 나서 왜 그랬을까 고민하게 된다. 겪어보지 못한 일이나 처음 접하는 상황 앞에는 누구나 당황할 수 있다. 혹시 위험에 처하더라도 크게 다치거나 생명을 잃지 않도록 세상을 먼저 살아 본 사람이 가르쳐줘야 한다. 그래서 교육과 실험이 필요하지 않겠는가.작게는 어린이를 비롯하여 크게는 정치지도자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부분을 나무라기 전에 알고 있는 사람이 가르쳐주어야 할 일이다. 협력하여 문제를 극복하는 사회구조를 우리 인간이 장악하고 영위해 나가야 할 일이다.

2022-05-24

5월은 가도 식구는 남는다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매일 함께하는 식구들 얼굴에서 / 삼시 세끼 대하는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 때마다 비슷한 변변찮은 반찬에서 / 새로이 찾아내는 맛이 있다 // 간장에 절인 깻잎 젓가락으로 집는데 / 두 장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 다시금 놓자니 눈치가 보이고 / 한 번에 먹자 하니 입속이 먼저 짜고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 나머지 한 장을 떼 내어 주려고 / 젓가락 몇 쌍이 한꺼번에 달려든다”창비청소년시선의 특별판으로 나온 시집 ‘너를 만나는 시 1’에 실린 유병록 시인의 시 ‘식구’의 1연과 2연이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는 이 시는 시인이 고등학생 때에 쓴 작품이라고 한다.사춘기를 지나고 대학입시에 매몰되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에게 제 식구들이 얼마나 대단히 사랑스럽고 정겹게 다가오겠는가. 관심을 가져 주면 귀찮게 생각되고, 무심한 듯 대하면 또 서운한 나의 식구들. 고등학생 시인의 시선은 이 관계를 놀랍게도 정확히 포착하였다. 별생각 없이 각자 밥을 먹는 듯이 보이지만 밥상머리의 식구를 눈여겨보고 있다가 깻잎을 떼어 주기 위해 젓가락을 내미는 손들의 주인, 시인은 “이런 게 식구이겠거니 /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 내 식구들의 얼굴이겠거니” 하며 심드렁하니 시의 마지막 연을 끝맺는다.나는 ‘가족(家族)’이라는 말보다 ‘식구(食口)’라는 말이 더 좋다. 원래의 한자 풀이가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집(宀-움집 면) 안에서 기르는 돼지(豕-돼지 시) 무리(族)’라는 뜻을 가진, 일본 사람들이 잘 사용하는 ‘가족’이라는 말을 왠지 쓰기가 꺼려진다. 그래서 같이 살며 함께 먹는 입(그리고 여기서 더해 함께 자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 정겨운 말 ‘식구’를 더 즐겨 쓴다.유럽과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부부간, 부모자식간의 애정 표현이 참 깊고 짙어 보인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어떤가. 오죽하면 부부끼리 짙은 사랑의 표현을 하려 치면 식구끼리 그러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겠는가. 특별하지 않지만 매일 먹는 밥과 같이 늘 함께 있는 존재, 데면데면 지내는 듯 보이지만 희로애락을 끊임없이 솟아오르게 하는 샘과 같은 존재가 식구이다. 그래서 면전에서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내 삶의 원천이 되는 아내와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5월의 시간이 흐른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21일 부부의 날, 셋째 월요일 성년의 날, 게다가 스승의 날까지. 얇은 지갑을 더 얇게 만들고 괜히 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게 만드는, 어쩌면 가장들에게는 여느 달보다 조금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는 가정의 달 5월이 가고 있다.올 초에 한 연예인이 식구 앞에서 지인의 깻잎김치를 떼어 주는 친절에서 비롯된 이른바 ‘깻잎 논쟁’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과하지 않아도, 곰살맞지 않아도 좋다. 무심한 듯, 심드렁한 듯한 친절을 내 식구에게로 돌리자.시인 박인환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5월은 가지만 식구는 과거보다 더욱 진득하니 현재도 기억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사랑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2022-05-24

정치참여의 첫걸음, ‘투표’로 시작합니다

신성완 봉화군선관위 부위원장 지난 3월에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36.93%)을 기록했다. 사전투표율만 보면 선거에 참여하는 국민들이 엄청 많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제20대 대통령선거(77.1%) 투표율은 제19대 대통령선거(77.2%) 와 별 차이가 없다.우리나라는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일정한 자격을 갖춘 유권자들이 선거라는 과정을 거쳐 대표자를 선출한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는 선거 과정의 공정성을 바탕으로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은 투표를 통하여 주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함과 동시에 정치에 대한 자기 생각을 피력하게 된다. 문제는 선거가 거듭될수록 투표 참여율이 저하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낮은 투표 참여율은 선출된 대표자의 정당성을 약화하고, 소수 지지자를 위한 정책만을 추진하게 되고, 결국 정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려말 원 간섭기‘국지불국(國之不國)’(나라이되 나라가 아니다)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최근 정치나 사회를 부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는데 과거와 현재 사회현상을 표현하는 두 단어가 미묘하게 닮아 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헬조선’이라는 말도 앞의 두 단어와 같은 의미라고 하겠다. 이쯤에서‘과연 나라가 아닌 나라, 헬조선은 누가 만든 것일까?’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오로지 정치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위정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주변에서 ‘나는 정치에는 관심 없다’, ‘나와 정치는 별 관계가 없다’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정말 정치와 우리들의 삶이 관계가 없을까?예를 하나 들어보자, 주거·일자리 등 청년 정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청년층에 대한 청치참여 확대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증가되고 있음에도 국회나 지방의회에서 청년의 정치대표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들이 원하는 실질적인 요구사항이 어느정도 정책에 반영될 수 있을지 충분히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정치가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나를 위한 정책을 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자. 나라가 아닌 나라, 헬조선을 만든 것은 결국 우리들 자신이다.정치참여하고 하면 엄청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정치에 가장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투표’다. 지난 공직선거 투표율을 살펴보면 대통령선거가 대체로 가장 높고, 국회의원선거·지방선거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율은 56.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율은 60.2%에 불과했다. 유권자에게 주어진 1표는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행사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건전한 민주정치의 발전과정에 참여한다는 주권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책과 지역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제시하는 후보자가 누구인지 그들의 정책을 꼼꼼하게 비교해 보고 더 많은 유권자가 이번 선거에 참여하여 정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기를 바라본다.

2022-05-24

올림퍼스의 노예들 <Ⅱ>

아비의 말을 어미가 가로막았다.-당신은 그런 허풍 좀 떨지 말아요. 당신이 그만한 돈이 있은 적 있어요? 돈은 쥐꼬리만큼 밖에 없는 사람이 일만 크게 벌여서는. 그거 감당한다고 당신은 몸으로 때우고 우리는 안 입고 안 먹어서 때우고. 뒤늦게라도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지. 그건 그렇고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건데요?아비는 어미를 슬쩍 쳐다보고는 안나의 부은 손 등에 왼손을 얹었다.-안나 네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은 아니다. 사는데 정답이 있나. 네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건가 보다. 그 정도 되는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너를 그리 대하지는 않았겠지. 자기 관리도 잘할 것이고.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있으니 바람을 피우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어떤 방식이든 네 인생에 도움이 되겠지. 최 회장 정도 되면 꼬리치는 여자도 많았을 테고 어떤 여자든 만날 수 있을 텐데, 그게 너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어쨌든 잘 모셔라.-지금 아버지가 되어서 딸에게 할 소리에요?어미가 아비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아비는 안나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덕분에 우리 집 형편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건 정말 아니야. 나나 너의 엄마나 지금이 딱 좋다. 모자란 것도 더 가지고 싶은 것도 없다. 그저 너의 인생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너의 오빠가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고.아비가 말을 덧붙였고 안나는 손등에서 아비의 손을 들어 내렸다. 어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이 양반아, 가슴에 손을 얹고 이야기하소. 아이고, 이 미친 것아, 어디 할 일이 없어서.어미는 안나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지만 안나는 꼿꼿이 앉아있었다. 안나가 몸을 세워 버틴 탓이기도 했지만 어깨를 잡은 엄마의 힘 또한 밥주걱으로 손 등을 내리치던 그 힘이 아니었다. 아비가 안나의 손 등에 다시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안나야, 뭐라 말을 해 보거라, 네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은 아니라니까.노마는 안나의 뺨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우리 집 왜 이래요? 아빠가 그렇게 말하면 제가 고마워요, 하고 말할 줄 알았어요? 저 친딸 아니에요? 제가 부자 늙은이의 마이걸이 되어서 우리 집에 뭘 가져오면 되는 건데요? 지금 미리 말하세요.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고.노마는 안나가 왜 우는지 궁금했다. 아비가 손바닥으로 안나의 뺨을 올려붙였으면 안나는 웃었을까? 노마는 안나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딸을 부자 늙은이에게 팔아넘겨야 할 정도로 집안 형편이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안나가 마이걸이 된 것은 아니라 믿었다. 그럴 안나도 아니었다.다음 날 어미가 안나를 불렀다.-이왕 그렇게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잘해라. 네가 생각하는 그런 뜻으로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고.안나는 어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성실한 노동이 정당한 결과와 함께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안나의 아비는 ‘언젠가’에 가족들의 미래를 걸었다. 언젠가 개발될 것들, 언젠가 이용될 것들, 그리고 언젠가 대박이 날 것들을 찾아다녔다. ‘지금 당장 여기’가 중요하다고 가족들이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지금 당장 조금의 이익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간다면 원하는 미래는 오지 않아. 다른 사람과 똑같은 미래를 가질 뿐이지. 우리는 달라야 해. 안나의 아비는 고집했다. 아비는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을 들고 ‘언젠가’를 쫓아다녔다. 심해의 광물 자원 개발, 성층권에서의 태양광 개발, 아프리카의 부동산 개발 등. 아비가 가진 재산은 ‘언젠가’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다. 투자자들의 모임 어느 한 구석에라도 앉을 수 있으면 감사한 일이었다. ‘언젠가’는 번번이 아비를 배신했다. ‘언젠가’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것을 아비가 깨닫게 될 즈음 그의 호주머니에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지금 당장 여기’의 세계로 돌아온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이 참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가지겠다, 무언가를 이루겠다, 무언가를 물려주겠다를 버리니 마음도 몸도 편안해졌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탐하지 않는 한 다달이 들어오는 노년 기본 소득이면 충분했다. 이게 말이야. 투자한다고 돌아다닐 때는 푼돈처럼 보였는데 말이야. 나쁘지 않아. 아주 요긴해. 좋은 제도야. ‘언젠가’를 찾아 돌아다니지만 않는다면 개인용 차량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언제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공공교통수단들이 도처에 있었다. 그것도 공짜로.나이가 곧 돈이었다. 괜한 욕심을 내었어. 이렇게 편한 세상을 그저 살기만 하면 될 것을. 안나의 어미가 법적으로 노인이 되는 해를 손꼽아 기다릴 뿐이었다./ 김강 소설가

2022-05-23

깃발인가? 아니면 깃발을 그린 그림인가?

재스퍼 존스(Jasper Johns)의 작품 ‘깃발’은 1950년대 중반에 제작되었다. 작품에서 읽혀지는 이미지는 누가 보더라도 미국의 국기 성조기이다. 붉은 색과 흰색의 얇은 띠가 서로 교차하며 화면을 가로로 나누고 좌측 상단 짙은 파란색 배경의 사각형 위로 미국의 주를 상징하는 별들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다.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성조기의 별들은 모두 쉰 개이지만 재스퍼 존스의 작품에는 두 개가 빠진 마흔 여덟 개의 별들이 그려져 있다. 그 이유는 그림이 제작된 1950년대 중반에는 알래스카와 하와이가 아직 독립된 주로 편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재스퍼 존스의 깃발이 그려질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미술사조는 추상표현주의이다. 추상표현주의는 1940년대 중반 이후 뉴욕을 중심으로 확산된 미국 최초의 현대미술 움직임이다.대표적인 미술가로는 재스퍼와 운동감 넘치는 액션 페인팅의 잭슨 폴록, 빌렘 드 쿠닝, 프란츠 클라인, 정적이며 명상적인 화면을 보여준 색면추상의 마크 로스코, 바넷 뉴먼, 애드 라인하르트 등이 있다.추상표현주의를 통해 미국 미술가들은 유럽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새로운 추상형식을 선보이며 드디어 서구 미술의 흐름을 주도했다. 추상표현주의는 외부 세계를 모방하거나 재현하지 않기 때문에 비관계적, 비대상적, 반환영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회화가 철저하게 추상이기 위해서는 회화라는 매체의 순수성을 고수해야 하고 추상표현주의를 이론적으로 정립했던 그린버그와 같은 비평가들은 회화의 매체적 순수성을 평면성에서 찾았다.재스퍼 존스의 작품 ‘깃발’은 1950년대 중반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미술의 주된 흐름으로 유행하고 있을 때 제작되었다. 존스의 작품은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추상표현주의에 내재된 수많은 미학적 담론들을 동시적으로 포착하고 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미국 미술계 중심 화두로 떠오르게 된다.재스퍼 존스의 ‘깃발’은 추상이면서 추상이 아닌 작품이며, 환영적이면서 동시에 비환영적인 평면 작품이다. 작품 ‘깃발’이 추상이 아닌 이유는 미국의 국기 성조기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것이 추상인 이유는 ‘깃발’을 구성하는 희고 붉은 색의 선과 별 그리고 사각형은 모두 기하학적인 도형이기 때문이다. 작품 깃발이 환영적인 까닭은 그림이 성조기를 떠올리고 성조기는 수많은 의미를 품고 있어서이다.하지만 동시에 이 그림이 비환영적인 이유는 이것이 실제 성조기가 아니라 원래부터 평면적인 성조기의 이미지를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재스퍼 존스는 자신의 작품이 하늘을 펄럭이는 실제 성조기가 아니라 성조기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그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파라핀을 녹여 그림을 그리는 납화법이라는 번거로운 제작 방법을 선택해 화면에 거친 질감과 얼룩이 그대로 드러나게 했다. 그림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화면 바탕에 신문의 글자들이 읽혀진다. 이 또한 화가가 자신의 작품이 성조기를 재현하거나 모방한 것이 아니라 성조기 이미지를 통해 추상표현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추상미술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는 신호로 이해된다.재스퍼 존스의 대표작으로는 과녁이나 지도, 숫자, 알파벳 등이 있다. 미술가가 소재로 취하는 대상들은 그 자체로 평면적이거나 추상적이라는 점에서 깃발에서 논의된 맥락들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추상과 재현의 경계에 위치한 존스의 이미지들은 주로 일상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미술사는 그의 작품에서 대중적 이미지를 수용한 팝아트의 출현을 예감하기도 한다./미술사학자 김석모

2022-05-23

정치권 단합해야 ‘통합신공항 해법’ 나온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조기건설 해법과 관련해 당선이 유력한 홍준표 대구시장 후보와 이철우 경북도지사 후보 간의 생각이 서로 달라 걱정하는 시·도민이 많다. 두 후보 모두 통합신공항건설을 최대현안으로 꼽고 있긴 하지만, 건설방식을 두고는 아직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간 한시가 바쁜 공항 개항이 늦어질 수 있다.이철우 후보는 23일 보도된 본지 인터뷰에서 “신공항은 군공항이전특별법에 따라 전국 15개 군공항 중 유일하게, 이전 부지를 확정하고 사전타당성을 조사중이다. 하루라도 빨리 건설공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평소 “새로운 법을 만들면 다른 공항과 엮인다. 빨리 가는 것이 이 길이다”라고 말해왔다. 반면, 홍준표 후보는 신공항을 가덕도 신공항처럼 특별법을 만들어 전액 국비로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통합신공항은 지금 이 후보가 말하고 있는 군공항이전특별법에 의해 기부대양여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동촌 K2부지를 민간에 팔아서 군위 이전비용을 충당하는 방식이다. 만약 이전예산이 부족할 경우에는 국가가 지원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군공항이전특별법 개정작업이 현재 진행중이다.홍 후보는 국회의원 시절 신공항 건설 국책사업화를 위해 ‘대구통합신공항 특별법안’을 발의해둔 상태다. 추경호 의원(달성군)도 통합신공항 관련 특별법안을 발의해 둔 상태기 때문에 두 법안을 절충하면 특별법안 마련이 어렵진 않다. 홍 후보는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 토론회 당시 “대구 동촌 이전터는 첨단관광상업지구로 개발하며 아파트는 짓지 않겠다”고 공언했다.시·도민들로선 신공항 건설을 기부대 양여방식으로 추진하지 않고 전액국비로 건설하는 것이 최상의 방식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회에서 가덕도 신공항처럼 ‘대구경북통합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느냐 여부다. 이철우 후보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홍 후보의 생각이 현실화 되려면 차기 대구시장, 경북도지사는 물론 이 지역 여·야 정치권이 한 마음으로 똘똘 뭉쳐 지혜를 짜내야 한다.

2022-05-23

대구 세계가스총회 성공 개최에 거는 기대

대구 엑스코에서 열리는 세계가스업계의 최고 축제인 ‘2022 세계가스총회’가 23일 대구미술회관에서의 환영연을 시작으로 5일간 일정에 들어갔다. 글로벌 에너지기업 대표와 에너지 석학, 정부 장관급 대표, 국제기구 관계자 등 80개국 460개사 총 1만여 명이 행사기간 대구를 찾는다. 대구서 열리는 국제행사로서는 가장 큰 규모며 코로나19 이후 대면 행사로 진행되는 대규모 국제행사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이번 총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적으로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해지고 있는 시점에 열린다는 점에서 글로벌 에너지 기업의 대응에 이목이 쏠린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는 등 세계 각국의 경제와 국가안보가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어 이들 논의에 따라 세계 에너지시장의 지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큰 관심이다.국제행사를 유치한 대구 입장으로서는 이번 총회가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 대구경북연구원은 총회 개최로 생산유발 효과 4천400억, 부가가치유발 효과 1천900억, 취업유발 효과 4천여명이 된다고 밝혔다. 대구에 대한 직접적 경제 효과 말고도 대구 브랜드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좋은 기회다. 또 대구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호기가 되는 것도 큰 이득이다.대구는 2015년 개최한 세계물포럼을 통해 정책적 컨벤션 효과를 경험했다. 정부와 협력해 물산업 전용지구를 조성하고 연구기관 및 기업유치 등의 성과를 얻어 물산업이 대구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등장했다.세계가스총회도 이런 점에서 컨벤션 효과를 발굴해 대구의 경제적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 대구는 가스와 관련한 지역기반이 미미해 컨벤션 효과를 키울 정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다행히 세계적 가스기업인 한국가스공사가 대구에 입지해 가스산업을 대구의 전략적 산업으로 육성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가스총회 이후 지속 가능한 성과물을 지역에서 어떻게 도출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지역경제와 연계시키는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가스총회의 성공 개최가 곧 지역발전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022-05-23

사라지는 꿀벌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꿀벌 실종 현상은 21세기에 들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군집 붕괴 현상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시작돼 3월까지 전라남도, 경상남도, 경상북도, 충청북도까지 북상하며 발생했고, 4월 들어 경기도 고양시에서도 관찰되는 등 전국적 사건이 됐다.전국적으로 77억여 마리의 꿀벌이 사라지면서 양봉업계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21세기에 들어 양봉 농가는 등검은말벌과 같은 외래 천적의 침입, 낭충봉아부패병과 같은 질병, 폭염과 집중호우가 반복되는 여름과 점점 더 더워지는 겨울의 특징을 보이는 기후 변화 등으로 꿀벌 개체 감소와 꿀 생산량 급감을 겪어왔다. 올해 꿀벌 개체 감소는 유례없이 큰 규모로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이런 가운데 일부 국내 기업들이 꿀벌 생태계 복원 사업에 나섰다. 한화그룹은 태양광 전력을 활용한 탄소저감벌집,‘솔라비하이브’를 개발해 꿀벌 4만 마리를 관리하기로 했다.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력을 통해 벌통 안의 온도와 습도, 먹이 현황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꿀벌의 천적이 나타나면 이를 감지해 침입을 차단하는‘보호 기능’까지 탑재했다. KB금융그룹도 사회적기업과 손잡고 꿀벌에게 먹이를 주는‘밀원숲’을 조성하기 위해 강원 지역에 헛개나무, 백합나무 등 10만 그루를 심기로 했다.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농작물의 꽃가루를 옮겨주는 꿀벌이 없으면 식량도 사라진다는 의미로, 꿀벌이 생태계에 갖는 의미를 강조한 말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꿀벌의 실종은 궁극적으로 인류에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일이다. 국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5-23

‘택소노미’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택소노미’는 그리스어로 ‘분류하다’라는 뜻의 ‘tassein’과 법·과학을 가리키는 ‘nomos’의 합성어인데, 우리말로는 ‘분류체계’라고 할 수 있다.‘택소노미’는 지난 2월 열린 대선후보 첫 TV토론회에서 이재명과 윤석열 대선후보간의 토론에서 RE100(재생에너지 100%사용캠페인)과 함께 크게 화제가 된 용어이다.대선토론에서 다루어질 만큼 앞으로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용어로 인식될 것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전문가만이 사용하는 난해한 은어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지난해 12월 환경부는 과연 무엇이 진정한 녹색경제활동인가를 판단하는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인해 여러 국가가 녹색회복을 위한 그린뉴딜정책 등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게 될 것인데 이 과정에서 녹색위장행위(Green Washing)를 걸러내기 위한 일환이다.녹색경제활동은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물, 순환경제, 오염, 생물다양성 등 6대 환경목표 달성에 기여하여야 한다. 6대 환경목표 달성과정에서 다른 환경목표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며, 인권, 노동, 안전, 반부패, 문화재 파괴관련 법규를 위반하지 않아야 한다.지난 5월 초 발표된 윤석열정부의 국정비전과 목표, 110대 ‘국정과제’ 중 17번째 과제인 ‘성장지향형 산업전략 추진’에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소셜 택소노미’의 마련이 있다.‘소셜(Social) 택소노미’는 앞서 이야기한 녹색분류체계 즉 ‘그린(Green) 택소노미’라는 환경적 녹색 분류에서 나아가 인권을 포함하고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사회적 목표로 확장하여 사회적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이 무엇인지 분류하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 제공, 최종 사용자에게 적절한 생활수준 및 복지 제공,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역사회 조성이라는 세 가지 사회목표로 구성되어 있다.산업화와 도시화라는 인류문명의 변화과정에서 기후위기와 양극화 등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방해하는 위장행위(그린워싱, 소셜워싱)를 ‘택소노미’를 이용하여 걸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윤석열 정부는 ‘K-택소노미’에서 제외된 원전을 다시 포함할 계획이다. 금년 2월에 유럽연합(EU)이 그들의 녹색 분류체계에 수많은 찬반격론을 거쳐 2050탄소중립을 위해서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원전을 포함시킨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정부가 바뀌어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이라는 국제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원전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조화를 이룬 ‘에너지믹스(mix·전원 구성) 정책’을 성공적으로 펼쳐야 한다.지난 4월 말 발표된 ‘어디에 살든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지방시대’라는 윤석열정부 지역균형발전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15대 국정과제가 대구·경북에 실현되는 과정에서도 ‘택소노미’ 기준은 제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2022-05-23

기업에서 필요한 리더의 능력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투자의 귀재라 불리며,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된 워런 버핏은 ‘독서를 이기는 건 없다’고 했다. 독서를 통해 실패든 성공이든 미리 간접경험을 하면서 가야할 미래의 어느 지점에 위험이 있는지 알 수 있으니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효과적인 작용을 할 것이다. 정보를 바탕으로 필요한 결정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책을 먼저 읽고 소개해 주는 사람들 그들 모두는 소중한 선생이다.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지치기 된 맞춤형 책 소개를 통해 시간의 낭비없이 효율적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것처럼 기업에서도 이렇게 가지치기 된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해 어디에 시간과 돈과 노력을 써야 하는지 알려 주는 리더의 역할은 중요하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리더의 자질이자 능력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하나는 문제가 발생되었을 때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완성품 위주의 ‘고치는 품질 시대’에서 필요로 했던 능력이며, 드러난 문제만 해결하는 구조로 재발방지가 되지 않아 무결점 공장을 만드는데는 한계가 있다.나머지 하나는 ‘지키는 품질 시대’에 맞는 ‘문제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완성품이 아닌 그 원인을 제공하는 ‘공정 중의 품질관리’를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며 사람이 아닌 시스템적인 것이다. 문제만 만들어져 있다면 그것을 해결해 줄 수단은 그리 어렵지 않다.바둑에서 알파고가 인간을 능가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면서 인간의 역할은 어디에 위치하게 될지 고민이 깊어진다. 인간은 점차 고립된다는 가설에 근접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고, 성공스토리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면 불안해 지는 시대에 살아가면서 리더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기업에서 리더는 조직이 나아가야 할 나침반 역할을 하는 지표를 설정하는 능력을 갖춰야한다. 어떤 업무를 하든 사실 일에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성과지표가 필요한데 기업들은 지나치게 한 가지에만 치중한다는 것이다.하나는 ‘기술적 성과’로 표준과 전략에 맞추어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다. 식당에서 조리사가 칼로리와 염도를 정확하게 맞춰 조리하여 언제나 같은 맛으로 만들어 주는 성과가 여기에 속한다.다른 하나는 ‘임기응변적 성과’로 표준을 벗어나서 상황에 따라 적응하는 성과다. 조리사가 손님의 기호와 건강상태에 따라 다르게 응대하고 손님이 원하는 것을 읽고 대응하는 것이다. 신시장을 개척하거나 신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 필요하며 직원의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다.그런데 많은 기업의 리더들이 전자에 지나치게 편중된 훈련과 가치를 두면서 목표는 달성하는데 목적달성에 실패하게 되는 이유다. 경영학자들은 일본기업이 디지털 시대에 적응 못하는 이유도 비슷하게 설명한다. 아날로그 기술 시대의 품질관리와 개발 절차에서 변화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공공부문이 절차와 규정에 집착하는 것은 바로 ‘적응적 성과’에 우리 사회가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2022-05-23

스침과 스밈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연초록 수채화 같은 5월이 벌써 하순으로 접어들어 초목의 두터움 속에 어느새 초여름으로 치닫고 있다. 경쾌한 새소리가 새벽을 깨워주고, 정갈한 햇살과 훈향의 바람이 푸른 오월을 구가하고 있으니, 어디를 가거나 무엇을 해도 좋을, 그야말로 네 가지의 아름다움(四美)이 꿈결처럼 찾아드는 때가 아닐 듯싶다. 이른바 좋은 시절(良辰)에 아름다운 경치(美景)를 감상하고 마음껏 즐기며(賞心), 즐거운 일(樂事)을 더불어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언제부턴가/자명종 같은 새소리가 두드리면//깃 터는 아침이/선물처럼 다가와//샘솟는/환희의 빛살/온누리에 뿌리네//터질 듯한 음조로/하루를 탄주(彈奏)하느니//초목의 푸르싱싱/새들의 무정설법(無情說法)//오롯이/추임새 삼는/꿈을 향한 날갯짓” -拙시조 ‘새소리로 여는 아침’ 전문야산과 인접한 우거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온갖 새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새벽부터 재잘거리는 새소리에 하루가 시작되고, 밤하늘에 퍼지는 밤새 소리에 그 날을 마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새소리라 하더라도 참새처럼 그냥 짧고 가볍게 스쳐가는 지저귐이 있는가 하면, 뻐꾸기나 소쩍새처럼 구슬픈 듯 애틋하게 깊이 들리는 새들의 울음도 있다. 새소리의 음절이나 음색, 음역이 각기 다르고 사람의 청각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과 마음의 울림 정도가 저마다 상이하기 때문이다.흔하게 듣는 새소리가 이럴진대, 사람사는 세상에는 오죽이나 복잡미묘한 소리와 별의별 울림들이 난무할까? 자신의 주관에 따라 자기본위로 제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제 각각의 목소리를 내거나 들으며 살다 보면 자신의 음색과 비슷하거나 편안하게 어울리는 음률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즐겨 부르는 노래나 듣기를 좋아하는 곡을 선호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마음이 통하고 뜻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고 정을 나누며 공생가치를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같은 무리끼리 어울리며 서로 사귄다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은 결국 물이유취(物以類聚)나 초록동색(草綠同色)처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생각이나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된다는 뜻이다.시절인연(時節因緣)처럼 인생행로에는 인연에서 비롯되는 온갖 현상과 만남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부지기수 나타나고 만나는 사물이나 사람들은 대부분 돌차간 스쳐 지나는가 하면, 찰나의 마주침 속에서 부침하며 절로 스며드는 경우도 더러 있다. 물체의 공명으로 울림이 커지듯이 사람은 공감으로 투합이 많아지게 된다. 소통과 공감으로 상호관계가 합치될 수 있음은 동조와 합심으로 한배를 탄다는 의미이다. 건성의 비위맞춤이 아닌 진솔한 이심전심으로 마음에 스며든다는 것이다.풍파가 그칠 날이 드문 세상살이는 자신의 이해타산에 따라 이합집산이 많은 곳이다. 위선자의 가식적인 행위나 위정자의 언행에는 무릇 새소리만큼의 무구함이나 명징한 울림이 있기라도 하는 걸까?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이 됨을 명심하여 관계의 소중한 가치를 함께 누렸으면 한다.

2022-05-23

검찰개혁, 말 잘 듣는 검찰 만들기 아니다

김진국 고문 검찰총장 임기제는 1988년 12월 만들어졌다. 그해 13대 총선 결과 출범한 첫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는 정치개혁에 많은 성과를 거뒀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검찰총장 임기제다. 그만큼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87년 6월 항쟁의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경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이 사건이 폭로되고, 실상이 드러나는데 검찰의 역할이 컸다. 경찰이 곧바로 사체를 화장하고 은폐하려 했으나, 최환 부장검사가 중앙일보 기자에게 흘려 기사화했고, 사체를 보존해 부검토록 했다. 이런 배경 속에 평민당 등 야당과 대한변협이 임기제를 밀어붙였다.그때는 검찰총장이 바로 법무부 장관으로 가는 것도 비판받았다. 김태정 검찰총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임기 3개월을 남겨놓고 장관으로 기용됐다. 대선 직전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중단한 데 대한 보은으로 비쳤다. 비판 논리의 하나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상하관계로 본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검찰총장이 재임 시절 정권의 입맛에 맞게 수사하고, 영전을 노리게 만드는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것이다.그러나 이제 이런 문제를 거론하기도 민망하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에 대한 노골적인 정치적 압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을 만들어냈을 정도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총장이) “내 지시의 절반을 잘라먹었다”, “(윤 총장이) 장관의 지휘를/ 겸허히/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새삼 지휘랍시고/ 해가지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고 한 음절씩 조롱하듯 강조해 말했다. 검찰총장을 정권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사람’으로 규정해버린 것이다.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이 없는 상태에서 취임 하루 만에 검찰 인사를 대대적으로 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윤 대통령과 가까웠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요직으로 복귀시켰다. 문재인 정부에 가까웠던 검사들은 모두 한직으로 쫓겨났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 정치적 충성을 강요하며 인사권을 휘두른 걸 생각하면 왜곡됐던 검찰을 정상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한 장관은 “정치검사가 출세한다”는 야당 의원의 지적에 “지난 3년이 가장 심했다”고 반박했다. 추 장관 시절 검찰 인사에 대해 언론은 ‘윤석열 사단 대학살’, ‘윤석열 사단 학살 넘어 전멸’이라는 제목들을 달았다. 박범계 법무 때도 ‘윤석열 사단 거리두기와 친정권 검사 요직 배치’라는 제목이 나왔다. 윤석열 총장도 “나는 식물총장”이라고 했다.원인은 문재인 정부가 제공했다 하더라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서는 나쁜 선례를 쌓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이 한꺼번에 냉탕과 온탕으로 보직을 바꾸게 되면,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보이지 않게 정치에 개입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매우 중요하다. 수사권을 박탈한다면 그것이 검찰이건 아니건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경찰의 성격상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가 쉽지 않다. 또 통제되지 않으면 민주당이 검찰에 대해 우려하는 이상으로 위험하다.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오랫동안 지적됐다. 정치의 중심을 국회로 옮겨야 한다는 논의도 전문가들 사이에 많이 이뤄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통령의 힘을 수평적으로 국회에, 수직적으로 지방정부에 더 나눠야 한다는 공감대는 만들어져 있다. 의회 중심 정치에서 가장 우려하는 게 부패다. 가뜩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크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해 더 큰 권력을 넘기려면 정치인의 부패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장치가 필수적이다. 검찰과 경찰에 대한 정치권의 압력을 줄이지 못하면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장관의 지휘를/ 겸허히/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새삼 지휘랍시고…’라는 식으로 조롱을 듣는 한 정치보복을 반복할 위험도 있다.윤석열 정부는 검찰이나 수사기관을 잘 안다. 검찰 권력을 되찾는 작은 조직의 이익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부패를 막을 수사제도 전반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진정한 ‘검찰 개혁’, ‘경찰 개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본사고문

2022-05-22

사전투표로 공명선거 한 걸음 더

신효원대구 달서구 선관위 사무보조원 불과 두 달여 전 실시된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이어 곧바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될 예정이다. 지방선거 역시 5월 27일과 28일 양일간 사전투표가 진행된다. 지방선거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교육감 선거, 광역·기초의회의원선거 등을 동시에 치르기 때문에 대선과는 달리 투표용지가 7장으로 늘어난다. 많은 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 까닭에 선거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예를 들어 사전투표를 전후하여 쟁점으로 대두되는 관심 중 하나는 “과연 사전투표가 투명한 선거권 행사를 보장하고 있는가?”이다. 사전투표 절차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이 과연 보장 되는지 여부가 논란의 주요 내용인데,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치르며 필자가 직접 경험한바 선거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많은 절차들이 있다. 사전투표의 취지는 본 선거일에 투표 참여가 어려운 선거인을 위해 선거일에 앞서 전국 어디서나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사전투표는 유권자들의 투표 편의를 공정하게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집약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선거관리위원회는 많은 변수를 염두에 두면서 국민에게 최대한의 투표 편의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투명성’ 역시 철저하게 보장된다. 사전투표 진행은 사전투표관리관이 보관하는 보안USB와 공인인증서를 통해 인터넷 등 외부망과 철저하게 분리된 사전투표 전용 통신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외부 프로그램의 해킹과 같은 만일의 상황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또한 각 사전투표소는 전국의 유권자를 하나의 명부로 전산화하여 관리하는 통합선거인명부를 이용하기 때문에 선거인의 투표소 간 이중 투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투표소에는 정당·후보자별로 1명씩 선정된 투표참관인이 있고, 투표 시작 전 사전투표 운용장비의 봉인 해제, 기표소와 기표용구 확인까지 모든 과정은 투표참관인의 참관하에 실시된다. 투표가 종료되면 사전투표 운용장비는 투표참관인의 서명이 날인된 특수봉인지가 부착되며, 투표함을 자물쇠로 봉쇄한 뒤 서명된 특수봉인지를 붙여 최종적으로 봉인한다. 봉인을 마친 투표함은 경찰의 동행 하에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인계되며, 선거관리위원회는 개표 당일까지 방범시스템, 출입통제시스템을 통해 보안을 유지하고 CCTV를 통해 24시간 감시하는 등 철저하게 투표함을 보관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일련의 절차들은 선거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절차라고 할 수 있다.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의 경우 진행 과정에서 다소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선거를 거울삼아 다가올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 투표권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보장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권자분들도 이러한 노력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시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개개인의 소중한 권리를 꼭 행사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

2022-05-22

경주 발전 이룰 적임자 뽑아야

김맹희 경주시·자영업 제8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바로 코 밑이다.위기의 지방자치를 구하는 방법은 우수한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일이다. 지방자치는 저절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현재 경주시장 선거에는 국민의 힘 주낙영 현 경주시장과 더불어민주당의 한영태 경주시의회의원 두 사람이 경주발전의 적임자라며 시민들의 한표, 한표를 호소하고 있다.경주는 세계적인 역사문화관광도시이자 자동차 산업 등 경제산업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한수원, 원전, 방폐장 등 원전산업이 점차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원전 메카이기도 하다. 이러한 반면에 인구 감소 위험이 높은 관심지역이며, 우량기업, 대학 등 부재로 젊은 층 인구가 외부로 유출되는 등 점차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또한 기업지원 등 타 지역에 비해 기업지원 전문연구센터를 유치해 지역 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경주경제의 활성화도 간과할 수 없다. 하나하나 찾아보면 미래를 바라보는 경주가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일들이 산더미이다.이러한 지역의 여러 현안을 해결해 나가고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으로 연계되기 위해서는 처음도 끝도 무엇보다 시민들의 욕구가 뭔지, 현재 경주의 현실을 파악하고 타파해 나갈 인물이 가장 중요하다. 경주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그리고 지방정부의 한계는 돈이다. 예산이 없이는 아무리 좋은 계획도 성사되지 않는다. 주민을 위해 4년간 경주 살림을 살아갈 리더는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듯이 경주가 새롭게 변모하기 위해서는 뭐니 뭐니 해도 시민들의 가려운 등을 긁어 주고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또한 유권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시민과의 약속 이행이다. 예비후보자가 제안한 지역발전 공약과 정책을 바꾸거나 변경하지 말아야하며, 부득이한 경우에는 시민과의 협의를 통해 갈등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에 우리 유권자들은 허황된 공약보다는 좀 더 건설적이고 실현 가능성 있는 자에게 한 표를 행사하고 싶어한다.이러한 여러 가지 희망사항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려면 풍부한 경험과 시민과의 공감 및 소통능력이 확실한 후보가 우리에게는 절실히 필요하다. 한번 결정을 하면 4년을 가야한다. 지금까지 우리 손으로 선출한 단체장을 지켜볼 때 탁월한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능력을 통해 지역발전에 밑거름이 되도록 한 것을 보면 이번 경주시장 선거 역시 그런 능력을 갖춘 후보가 선출되기를 많은 시민들이 바랄 것이다.그동안 경주발전을 위해 쏟은 많은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경주가 그 어느 도시 보다도 행복하고 잘 사는 누구나 살고 싶은 경주가 되기를 희망하지 않는 시민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경주가 앞으로 새롭게 변화하고 여러 가지 역경을 이겨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다. 가정에도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식구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가장의 역할이듯이 우리 시민들이, 우리 경주가 힘들 때 과감하면서도 강한 추진력으로 잘 마무리 하는 것이 시장의 역할이다. 이런 결실을 얻으려면 그에 응당한 사람을 우리 손으로 뽑아야 되며 이것이 우리 시민들이 해야 할 책무이다.4년이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 그래서 경주가 꼭 필요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능력없는 사람을 뽑으면 그 4년은 우리 모두에게 지겹고 힘든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다. 지금 경주가, 그리고 미래의 밝은 경주를 위해서는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는 유권자들은 깊은 고민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시민들은 소중한 한 표가 앞으로 4년을 넘어 희망 가득한 미래경주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2022-05-22

보물 하나를 보태다

고래불에 처음 간 날, 바람이 몹시 불었다. 하늘로 오르려는 모양의 전망대로 향하는 우리 일행을 휘감았다. 바람 혼자였다면 뚫고 지났을 텐데, 하얀 모래가 덩달아 신이 나서 방파제를 오르고 있어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명사 이십 리에 가득한 모래가 하도 고아서 바람을 타고 얕은 담을 넘어 배가 정박한 항구의 영역을 침범했다. 다른 날 또 오리라 다짐하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얼마 후, 대학 동기 언니들이 동해를 따라 드라이브하자고 해서 나섰다. 그 말에 바람이 길을 막던 고래불부터 들르자 했다. 날이 좋아서 입구의 구멍 숭숭 뚫린 고래 조형물 위에 사람이 함께 유영하듯 매달렸다. 누가 봐도 고래불 해수욕장이라는 안내문 같다.전망대를 보러 방파제로 향했다. 바닥에 물 위에 햇살이 일렁이는 무늬가 그려져 파란 바다 위를 걷는 듯하다. 그 위에 지난 바람에 슬쩍 담을 넘은 모래가 둔덕처럼 쌓였다. 가만히 보니 바닷가에 오래 살았던 바람이 솜씨를 부려 모래에도 바다의 물결을 그대로 그려 놓았다. 모래에서 샤라락 파도 소리가 들릴까 싶어 몸을 낮춰 사진을 찍었다.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고래 전망대에 올랐다. 빙글빙글 계단을 오르자니 내부 벽에 귀신고래와 망치고래를 그려 놓았다. 몇 발짝 더 오르니 밍크고래가 보이고 범고래도 곧 물을 내 뿜으며 숨을 내쉴 품새다. 향유고래 이름과 설명을 읽다 보니 꼭대기에 다다랐다.고래불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둥그런 모래사장 뒤로 소나무 숲이 검게 보였다. 그 모양이 낮게 엎드린 고래 모습이다. 고려의 학자 목은 이색이 상대산에 올라 고래가 뛰노는 것을 보고 경정이라 하였다. 경정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고래가 뛰노는 벌이다. 고려인의 눈이 되어 바다를 보자니 햇살이 눈이 부셔 손차양을 하고 휘 돌아보니 맞은 편에 빨간 등대가 섰다. 병곡 방파제 테트라포드는 회색 시멘트색인 다른 곳과 달리 빨강 파랑이 뒤섞여 독특했다.조선의 실학자 이규경은 글에 고래가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만 산모에게 미역을 먹도록 하는 이유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전한다. 바닷가에서 한 사람이 헤엄을 치다가 갓 새끼를 낳은 어미 고래가 숨을 들이쉴 때 고래 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고래 뱃속에 미역이 가득 붙어 있고 장부의 좋지 않은 피가 녹아서 물이 되고 있음을 보았다. 간신히 고래 뱃속에서 나와 고래가 미역으로 산후의 보양 삼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렸다. 사람들도 비로소 그 좋은 효험을 알아 이후 산후에 미역국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첫아이를 낳고 삼 칠 동안 친정엄마가 끓여주시는 미역국을 하루 네다섯 끼를 먹었다. 많이 먹어야 회복이 빠르다고 배가 꺼지기도 전에 상을 내 앞에 밀었다. 옛 어른들 말이 틀린 게 없다며 오래 끓여 깊은 맛이 나는 국물을 들이켰더랬다. 태어나서 엄마 젖을 통해 그렇게 먹었던 미역국을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먹는다. 고래에게 배운 깊은 깨달음을 먹는 것이다.고래불은 영해면 대진해수욕장과 이웃한 해수욕장이다. 울창한 송림에 에워싸여 있으며, 금빛 모래는 몸에 붙지 않아 예로부터 여기서 찜질을 하면 심장 및 순환기 계통 질환에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해변 길이가 8km에 이르고, 동해인데도 얕은 수심이라 아이들과 헤엄치기 안성맞춤이다.고래불 가까이 일곱 개의 보물을 간직한 칠보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찾아가는 길이 구불구불 소나무 가득한 숲길이다. 따로 예약하지 않았기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로를 따라 오른다. 여러 코스가 있지만 우리는 전망대까지 걸었다. 시인들의 시를 한 편씩 읽다 보니 정자가 나타났다. 날이 좋아서 푸른 능선 너머로 고래불이 보였다. 하~ 좋다. 밤을 휴양림에서 보낸 사람들은 푸른 고래불에서 뜨는 붉은 일출을 보겠지. 칠보산의 일곱 개 보물에 숲에서 보는 바다라는 풍경 하나를 더해 팔보산이라 이름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김순희(수필가)

2022-05-22

대통령 취임사, 자유주의의 주적인 반지성주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5월 9일 국회의사당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윤 대통령은 내외 귀빈과 4만여 명의 축하객 앞에서 16분의 취임사를 하였다.취임사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비전을 볼 수 있어 국민적인 관심을 끈다. 취임사 초안은 정치 철학 전공의 윤모가 교수가 작성한다고 알려졌으나 언론은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보도하였다.이 취임사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라는 단어를 35회나 반복함으로써 자유를 국정의 핵심지표로 삼겠다는 뜻으로 비쳤다. 이와 함께 자유의 주적이며 장애물인 ‘반지성주의’를 강력히 질타하였다.취임사의 핵심인 자유주의와 반지성주의는 일반 국민들이 알아 듣기에 상당히 무거운 개념이다. 정치학을 전공한 필자도 무척 생소한 개념으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의 상임고문인 어느 원로 정치인도 대통령 취임사는 논문을 대하는 것처럼 너무 추상적이라고 비판하였다.취임사의 키워드인 자유부터 살펴보자.우리가 흔히 쓰는 자유는 그리 간단치 않은 복합적 개념이다. 자유는 평등이 전제되어야하는 상보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결국 민주주의가 추구해온 최고의 가치이며 자유의 역사는 바로 민주주의의 쟁취사이다.취임사에서 대통령의 ‘자유’ 강조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자유 과잉이나 일탈을 비판한 것이며, 자유주의를 재건하겠다는 의지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결국 취임사의 자유는 시카고 대학 교수 출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M. Freedman)의 자유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듯하다. 1979년 프리드먼의 명저 ‘선택된 자유’를 윤대통령은 선물로 받아 읽었다는 소식도 있다.프리드먼은 저서에서 정부의 권력을 최소화하고 분산시키는 것만이 자유를 유지하는 원천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자유의 확산과 발전을 위해 ‘큰 정부’를 ‘작은 정부’로 어떻게 바꿀 지는 미지수다.취임사에서 대통령은 자유, 인권, 공정, 연대를 국정의 지표로 제시하였다. 전자인 자유와 인권 보장이 궁극적 목표라면 공정과 연대는 방법론적 가치이다.이번 취임사에서 등장한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m)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이 용어는 1963년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사용했던 개념이다. 객관적으로 증명된 이론이나 진실이 어떻든 간에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는 잘못된 사상풍조이다. 흔히 집단의 정체성을 내세워 지성을 배제하고 상대를 적대화 하고 악마화 하려는 그릇된 사회적 풍조를 일컫는다.취임사에서 이를 강조한 것은 다수가 상대를 억압하고 비판하는 우리의 포퓰리즘적 정치 현실을 비판하기 위함일 것이다. 한국의 양극화된 정치 풍토 역시 반지성주의적 소산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반지성주의는 어느 한쪽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세칭 촛불세력도 태극기 세력도 양측 모두 자유를 남용한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우리 사회의 보수 측은 ‘자유민주주의’(liberal domocracy)를 민주의의의 핵심적 이념으로 여기고 사회민주주의는 철저히 비판 배격한다. 사실 자유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 보장을 최고의 가치로 두면서 이를 보장하기 위한 방식이나 제도의 차이에서 구분되는 개념이다. 정의를 위한 자유주의와 공동체 주의의 대립과 마찬가지인 것이다.혹자는 참된 민주주의를 위해 민주주의의 형용사나 수식어를 없애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전체주의를 민주주의로 위장하고 유신 독재로 둔갑한 ‘한국적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한국의 보수우파 측은 자유민주주의를 자신들의 전유물로만 착각해서는 안 된다. 양심적인 진보 측은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폐기하고 자유민주적 질서를 옹호한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우리 사회는 새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아직도 대선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대선이 끝났지만 6·1 지방선거가 반지성주의 프레임 정쟁을 격발시키고 있다. 지층과 반대층은 서로 상대를 반지성주의로 매도하고 있다. 서로 상대를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로 구분해 싸우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하루 빨리 찾아야 한다. 이 나라 정치에서는 참된 보수와 진보는 사라지고 사이비 보수와 진보끼리의 분별없는 대립과 갈등만 계속될 뿐이다. 이번 대통령 취임사에서 자유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한국 보수 우파 정당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기 위함일 것이다.이런 위기적 상황에서 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메시지는 제시할 수는 없었을까. 대통령 취임사에서 협치와 화합의 메시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자유의 적인 반지성주의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정치 보복이라는 단어는 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야권의 각성도 중요하지만 정권을 가진 자들의 양보의 미덕을 보여야 할 시점이다.

2022-05-22

‘다이옥신’(dioxine)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쓰레기 소각장이나 발전소가 들어서는 지역에서 반대하는 이유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발암 물질이 있다. 미국환경보호청(EPA) 조차도 ‘발암성 물질 중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독성’ ‘청산가리보다 더한 독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독성 화학물질이 바로 다이옥신이다.열을 이용하는 시설인 철강업체 전기로, 제지공장, 자동차 폐윤활유, 석탄 연료, 도시폐기물 소각로, 시멘트공장 소성로 등에서 주로 배출된다. 극히 미량이라도 장기간 섭취하면 피부병에 이어 간을 손상시키고 심장 기능을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심지어 기형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고 한다.환경부는 2018년 11월 29일 다이옥신을 토양환경보전법상 토양오염물질로 지정했다. 기존 토양오염물질(22가지)에 추가한 23번째였다. 올해 1월 21일에는 토양환경보전법 제4조 2항, 토양환경보전법 시행규칙 제1조 5항에 규정한 물질에 포함돼 오는 7월부터 법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토양 오염물질의 거동특성과 토양오염에 대한 이해도를 갖추고 토양오염물질 22가지를 분석하던 기존 토양 전문기관들은 측정 장비가 없고 숙련된 전문 인력이 부족해 다이옥신을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고 한다.다이옥신이 토양오염물질로 지정됐지만, 다른 토양오염물질과 달리 토양환경보전법의 토양오염공정시험기준에 다이옥신에 대한 분석법이 전혀 등록돼 있지 않다. 이로 인해 다이옥신과 관련한 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 신뢰성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논란만 가중시킬 우려를 낳고 있다.환경부는 토양환경보전법의 토양오염물질로 새로 규정된 물질에 대해 기존 토양오염에 대한 조사·분석을 수행하던 업체들을 배제하고, 잔류성오염물질분석(POPs) 업체 12곳에서만 분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토양오염조사에 대해 인력과 검사장비 등이 부족하고, 토양조사에 대한 이해력도 낮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렇듯 특정 유해물질을 특정 업체만 분석할 수 있도록 한데 이어 역량도 떨어진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데, 다이옥신 관리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이에 대해 환경부는 다이옥신은 물질의 특성상 안정화돼 있어 위험하지 않고 오염 예상 지역 조사에서도 수치가 낮아 문제가 없으며, 앞으로도 토양분석 수요가 미미할 것이란 이유로 12곳 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위험하지도 않고 오염도가 낮은 상황이며 토양분석 수요가 거의 없는 물질을 왜 토양오염물질로 등록했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어 규제물질로 실컷 등록해 놓고선 저감 등 관리업무엔 손을 놓고 있는 건 직무유기에 가깝다. 왜 갑자기 다이옥신에 대해서만 이런 상황이 생긴 것인지에 대해서도 환경부의 설명이 필요하다.현재 토양오염은 날로 대형화하고 그 오염의 심각성과 복합성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토양오염조사의 난이도 또한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런데 토양오염조사에 대해 관리 감독하는 환경부의 접근 방식은 너무 안일하다. 우리 주변의 산업단지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4만3천 가지 이상 달하고 있는 상황이고 매년 400~500가지가 더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는 미비하고, 측정 장비나 측정·분석기관이 없는 화학물질도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오고 있는 필자로선 다이옥신에 대한 환경부의 정책은 너무 우려스럽다.ESG 경영의 확대로 기업의 환경윤리 측면이 강조되고 있어 앞으로 토양오염조사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생활주변에서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측정·분석기관 및 전문 인력의 확보는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때문에 환경부는 이에 대한 방향 설정을 보다 정교하게 해야 한다. 환경부는 여태껏 수질오염과 대기오염에 대한 대응 실패를 토양에선 절대 반복해선 안 된다.규제가 시작되면 예상하지 못한 분야에서 부하가 발생할 것이다. 이를 대비해 측정 기관과 인력 확보를 위한 대책과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오염물질 배출업체의 서류조작과 측정 내역 조작 사건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었다. 이런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환경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낙동강에서 1.4-다이옥산 수질 사고가 발생했을 때 환경부에 배출허용기준 설정을 요구했더니, 일부 지역에서 배출되는 물질을 환경법상 규제하기가 어렵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 전국 산업단지를 조사한 결과 모든 산업단지에서 1.4-다이옥산을 배출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환경부의 전형적인 복지부동을 확인하는 대목이다.이후 환경부에 재요구한 끝에 배출허용기준을 제정하게 돼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전히 지금도 1.4-다이옥산의 배출허용기준이 턱없이 높아 실효성은 떨어진다. 다이옥신도 지금부터라도 장단기 계획을 수립해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지름길이다.

2022-05-22

이제는 추첨 민주주의다

유영희 작가 6월 1일 8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투표 당선자가 18일 기준으로 전국에서 502명이라고 한다. 서울의 경우 구의원 373명 중 107명이 무투표 당선이다. 투표가 이루어지는 지역도 경쟁률이 전국은 1.8 대 1, 서울은 1.4 대 1이라 하니, 시민들의 무력감이 심하다.지방의회는 일제 강점기 때 시작되었으나, 박정희 정권 때 없어졌다가 1991년 재도입되었다. 처음에는 무보수로 시작했지만 2006년 보수를 책정한 데다 정당 공천도 받게 되니, 이제는 지방 선거가 중앙 선거의 축소판이 되어 버렸다.이렇게 선출된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에 대한 신뢰도도 높지 않다. 7회 지방선거 당선자 중에도 2019년 대구 시장 선거를 둘러싸고 당선 무효 된 의원이 5명이 나왔고, 작년에는 영천시 의원이 음주운전으로 당선 무효 되었다. 이번 8회 무투표 당선자 중에도 30%가 전과가 있거나 지난 8년간 내부에서 징계받았던 후보자도 있다.그런데도 의원들에게 지급되는 보수는 만만치 않다. 자치단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월정 보수는 1년에 5천만 원에서 7천만 원을 웃돈다. 거기에 회의 수당과 의정 활동비도 별도로 나온다. 그런데도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존재감은 없으니, 세금 도둑이니 돈 먹는 하마니 하는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그렇다고 시대를 역행하여 지방자치를 폐지할 수는 없다. 지방 자치는 시민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추첨제는 어떨까? 우리는 교육 수준도 높고 민주화 경험도 있어서 추첨제를 할 만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4,5년 전 어느 생협의 임원 선출위원으로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참석한 사람들 모두 연장자를 뽑아야 한다는 관습의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눈치가 보였지만 추첨 방식을 제안해보았는데, 열렬한 호응을 받으면서 실현되었다. 생협 활동 역사상 최초여서 더 뜻깊었다.이런 작은 위원회의 경험을 지방선거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민활동가이며 정치학자인 이지문의 저서 ‘추첨 민주주의의 이론과 실제’에는 이런 꿈이 구체적으로 제안되어 있다. 여기에는 고대 아테네에서 공직자를 추첨으로 선출했던 기록부터 외국의 추첨 민주주의의 역사가 나와 있다. 여기에 덧붙여 저자는 의원 1명에 시민의원단 49명을 뽑아 의원이 의원단과 소통하면서 정책을 제안하자고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참여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셈이다. 생각만 해도 설렌다.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어렵겠지만, 지방선거, 그중에도 기초의원 정도는 지금 당장 시도해볼 만하다. 월정 보수는 없애고 회기에 회의 참석비와 의정 활동에 필요한 경비만 지급한다면 뜻있는 지역주민이 참여할 것이다.추첨을 하면 세금도 절감될 뿐 아니라 뜻있는 시민이 정치 참여가 활성화될 것이고, 지역 자치를 위해 제대로 일할 의원이 선출될 것이다. 허황하다 손사래 치지 말고, 일상의 작은 모임부터 시도해보자. 그렇게 살맛 나는 참여민주주의를 만들어 보자.

2022-05-22

씀바귀, 도심에 살다

강길수 수필가 보도 가에 흐드러진 붉은 장미꽃이 사람 마음을 흔든다. 뉘라서 저 장미꽃들의 향연에 취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내 시선은, 낮은 곳 구석진 곳에서 또 다른 오월을 밝히고 있는 쪼그만 노랑 꽃에 더 머문다.내일이면 생명 찬란한 5월도 하순으로 접어든다. 한낮의 햇빛이 따갑다. 보도 곁 잔디잎들은 절반쯤 누렇다. 가뭄 타나 보다. 그런데 잔디 사이에서, 이 목마름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 노란 꽃들이 활짝 웃고 있다. 바로 씀바귀꽃이다. 잔디밭에 더부살이하면서도, 씀바귀는 움츠러들거나 가물 타지도 않고 해맑은 얼굴로 모두를 반긴다. 잔디도 씀바귀를 한 식구로 받아들여 사는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저리도 다정하게 보일 수 있겠는가.그뿐 아니다. 도심의 씀바귀는 정원에서, 보도와 담벼락 사이에서, 보도블록 사이 틈에서, 심지어 슬래브 집 옥상 구석 등 척박한 곳에서도 잘 살아내며 꽃피우고 있다. 겉보기에는 잎과 줄기와 꽃도 부드럽고 연약하기만 하다. 하지만, 강인하다. 저 강인한 생명력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씀바귀의 잎과 줄기 뿌리까지 모두 다 식용으로 또는, 약재로 쓰는가 보다.씀바귀는 흰 꽃이 피는 종 등 비슷한 몇 가지가 있으나, 모두 같은 용도로 쓰인다. 사람이 먹으면 혈관 건강, 항암효과, 간 기능개선, 면역력 강화, 노화 지연 작용을 한단다. 또 골다공증 예방, 빈혈 방지, 위장 건강, 당뇨 예방, 신경안정 같은 역할도 한다고 한다. 만병통치약 같다. 알고 보니, 씀바귀는 사람에게 무척 이로운 보물이었다.어느 날, 꽃 지고 여문 씀바귀 씨앗은 갓털 비행기에 타고 바람 따라 도심까지 날아왔으리라. 바람과 땅, 건물과 가로수, 풀, 도로 등 도시의 온갖 것과 합심하여 흙이나 먼지가 있는 틈과 공간에 착륙했을 터이다. 절망스러운 도심의 척박한 환경을 꿋꿋이 이기며 싹터 자라나, 앙증스러운 노란 꽃을 많이도 피워낸 씀바귀….씀바귀는 어찌하여 도시로 분가했을까. 푸른 산과 들, 냇가, 강가 다 두고 깡마른 도시의 구석구석으로 와 정착한 이유는 뭘까. 단순히 바람 타고 날아와 물리력으로 내려앉은 게 전부일까. 그렇지 않으리라. 자연현상 하나도 그 원인과 과정, 결과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메시지를 지니게 마련이니 말이다. 하면, 도심 곳곳 하찮게 보이는 장소에 퍼져 나지막하게 자라는 씀바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2022 지방선거 공식 운동 기간이다. 선거를 앞둔 기간에, 웬일로 눈길이 자꾸 노란 씀바귀꽃에 가는 걸까. 도시의 낮은 곳, 구석진 곳 혹은, 다른 풀, 나무들과 어우러져야만 살 수 있는 곳에 태어나 자라나서 촛불처럼 어둠을 비추는 얼굴들. 연약해 보이는 몸으로 척박한 환경 이겨내고 꽃피워 5월을 밝히는 씀바귀. 태생이 사람이나 초식동물을 위해 온몸을 바쳐 희생하여 자기를 먹는 자를 살리는 존재….문득, 노란 씀바귀꽃 얼굴이 바람에 나부끼며 수줍은 아이처럼 무슨 말을 하는 것만 같다.“그래요. 풀뿌리 민주주의의 일꾼들은 우리 씀바귀 같아야만 해요”라고….

2022-05-22

풀뿌리 민주주의

우정구 논설위원 풀뿌리 민주주의란 의회제에 의한 간접 민주주의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주민이 직접 정치에 관여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뜻한다. 1935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이 말이 처음 사용됐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기초로서 지방자치를 의미하는 뜻으로 주로 사용된다.우리나라는 1952년 지방자치를 처음으로 시작했으나 5·16 군사정변으로 중단됐다. 이후 30년만인 1991년 군의회와 시도의원에 대한 선거가 다시 시작됐고, 1995년부터는 기초단체장, 시장·도지사 선거가 시작되면서 전면적 지방자치가 부활했다.6·1 지방선거가 9일 앞으로 다가왔다. 전국에서 17명의 광역단체장 및 교육감, 기초단체장 226명, 광역의원 779명, 기초의원 2천602명을 뽑게 된다. 그야말로 지방의 살림살이를 맡게 될 지역일꾼에 대한 지역민의 선택이 있을 예정이다. 새롭게 뽑힐 지역일꾼들이 지역을 위해 어떻게 일하느냐에 따라 지역의 미래도 달라질 수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방선거가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전례없이 무투표 당선자가 많이 나와 김빠진 선거가 됐다. 대구와 경북에서도 3명의 기초장과 40곳의 시도 광역의원이 무투표 당선됐다. 그들의 공약이나 자질을 검증할 여지조차 없어 풀뿌리 민주주의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는 평가도 나온다.특히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80여일 만에 열리는 지방선거가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동시에 실시됨으로써 대선 연장전 성격마저 짙어 지방선거의 참뜻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지역주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칠 풀뿌리 민주주의의 참뜻을 살릴 지역민 현명한 선택이 있어야 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5-22

포항에 다녀와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 살다 보면 의지와 무관하게 일이 겹치는 수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중얼거린다. 참, 재미있네. 그런 유쾌한 일이 지난주와 그 전주에 있었다. 2주 전 금요일 오후에 포항으로 승용차를 몰았다. 30년 인연을 맺어오는 졸업생을 찾아가는 길이다. 바다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 집을 구한 그가 집을 말끔하게 수리하고 난 다음 나를 초대한 것이다.나는 가끔 내 집을 찾아오는 그와 늦은 시각까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이번에는 내가 그의 집을 찾아간 게다. 그가 안내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식탁에서 예의 정담을 이어간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행복한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좋은 사람과 늦은 시각까지 격의 없이 대화하면서 마음을 나누는 일은 얼마나 우리를 평온하게 하는가?!지난주 금요일에는 다섯 사람이 포항에 간다. 집에서 10미터 떨어진 곳에 바다가 자리하고 있는 해변이다. 죽도시장에서 준비한 광어회와 멍게, 전복이 돼지고기와 더불어 차례로 상에 오르고, 선선한 바닷바람이 운치를 돋군다. 흉중에는 사심이 없고, 대화는 미리 설정한 방향 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오랜만의 양주가 내장을 간질이고, 바다 건너에서 반짝이는 등불이 언젠가의 은성(殷盛)한 추억을 소환한다.옥상에서 거실로 자리를 옮긴 그들이 노래를 청한다. ‘그래, 대구에서 가져온 기타와 노래책이 있었지.’ 악보대(樂譜臺)가 없어 종이상자로 대신하고, 슬로우 고고와 트로트, 왈츠, 스윙을 곁들여 가면서 예전 노래들을 하나둘 불러낸다.어떤 노래는 다 함께 부르기도 하고, 어떤 노래에는 내 경험에 기초한 작은 이야기가 덧대지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이 시나브로 흐르고, 우리는 세월과 인생과 술로 마음을 주고받는다.하필 금요일 오후와 밤에 포항에서 사람들과 인연과 추억과 시간을 함께한 것일까, 하는 생각에 잠시 포항을 더듬는다. 열일곱 살 고교 수학여행에서 처음으로 만난 바다는 해병대 일일 입소(入所)에서였다.짠 남새가 넘치고, 가슴에 들이닥치는 바닷바람이 그렇게 상큼할 수 없었다. 얼마나 짠지 조금 먹어본 바닷물의 맛은 여전히 기억에 있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을 연신 되풀이하면서 우리에게 담배를 권했던 까만 얼굴의 병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한다.일일 입소를 마친 이튿날 우리를 태우러 포항제철에서 15대의 버스를 해병대로 보내왔다. 고교 선배 한 분이 버스 한 대에 분승하여 포철을 돌면서 설명해주었던 놀라운 시간대가 핑, 하니 사라져간다.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 포철에 오면, 저기 서 있는 캐비닛 크기의 쇳덩어리를 주마. 얼만지 알아?! 삼백만 원이야.” 당시 고등학교 석 달 등록금은 6천 원이었다. 그런 추억을 안겨준 포항의 추억을 지난주에 새삼 돌이킨 것이다.세상의 인연은 의지만으로 엮이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처럼 누가 나에게 다가오는 게다. 그리하여 두 눈이 서로 마주치면서 인연은 시작된다. 포항의 낮은 속삭임이다.

2022-05-22

‘한·미 원전 동맹’이 경북미래의 動力 되길

경북도는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에서 원전산업에 대한 공동 협력방안이 합의된 것에 대해 기대가 크다. ‘한·미 원전동맹’은 경북도 원전산업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국 원전산업의 경제성은 세계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2030년까지 해외원전 10기 이상을 수주한다는 계획이다. 한·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해외원전시장 공동진출, SMR 공동개발협력 등을 합의했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의 원자로,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같은 주요 기기를 하나의 용기에 일체화한 소형 원자로다. 안정성이 높고 도서·산간 지역에도 건설할 수 있다. 경북도는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한국원자력연구원, 현대엔지니어링, 한동대,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대학교 등 7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연구개발을 서두르고 있다.미국은 세계 최고의 원전기술을 보유했지만 자국 내 원전건설 중단으로 시공 능력이 상실됐고, 한국은 세계적 시공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한·미가 협력하면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세계 원전 수출 시장은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문재인 정부 이전 우리나라는 ‘한국형 경수로 원전’을 아랍에미레이트(UAE)에 수출하는 등 세계적인 원전 기술 강국으로 정평 나 있었다. 한국이 원전 생태계 복원을 통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국내 원전 집적지인 경북의 원전 산업 활성화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경북은 원전산업의 최대 피해지역이었다.정상회담 합의문대로 양국의 원전 수출 협력기반이 만들어지면 경북 원전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에 경북도의 최대현안인 울진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와 SMR 개발 등을 포함시켰다. 경북도는 철저한 준비를 통해 한·미 원전동맹이 지역경제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미래 에너지 시장의 유력한 대체재로 꼽히는 SMR 시장은 경북도가 반드시 선점해야 한다.

2022-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