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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3개월만에 확대된 물가… 관리 고삐 더 죄라

10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5.7%를 기록하는 등 물가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10월 들어서는 전달(5.6%)보다 상승폭이 오히려 더 커졌다.한국은행 관계자가 “내년 1분기까지 5%대의 물가 오름세가 이어질 것 같다”는 전망까지 내놓아 서민 살림살이가 얼마나 더 팍팍해질지 걱정이다.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연초 3%대의 국내 소비자 물가가 7월 6.3%를 정점으로 8월 5.7%, 9월 5.6%로 둔화세를 보이다가 10월에 또다시 5.7%를 기록, 상승폭이 3개월만에 확대됐다.그동안 물가상승을 주도해 온 석유류와 농축산물 가격은 한풀 꺾였으나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이 오르면서 물가 상승세를 다시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고물가는 코로나 사태로 힘겹게 지내온 서민 살림살이에 큰 타격을 안겨준다. 고물가를 이유로 당장 금융기관의 대출금리가 7%대까지 치솟아 서민들의 부담이 커졌다. 외식하기도 부담스러워졌다는 사람이 많다. 물가가 오르면 임금이 올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서민들 주머니 사정은 여전히 가벼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문제는 앞으로 당분간 고물가 상황이 이어질 것 같다는 것이다. 정부도, 한은 관계자도 이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또 한번 기준금리를 올리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하니 물가가 언제나 잡힐지 답답할 뿐이다.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 아직도 대외적 불안 요소는 많다. 9월 중 산업활동 동향에서 나타났듯이 국내의 소비, 생산, 투자 등은 트리플 감소세다. 국내 경기회복 흐름이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정부가 나서 산업계의 활동을 독려하고 경기를 진작시켜 경제 흐름을 빨리 정상화 시켜가야 한다. 특히 고물가를 잡는 정부의 특별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지난달 대구는 5.8%, 경북은 6.4%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보여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대구시와 경북도 등 자치단체도 물가를 잡는데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물가상승의 최대 피해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서민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다시 한번 물가 잡는 고삐를 죄어야 한다.

2022-11-03

김소연 변호사의 추도사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의 미래는 물론 젊은이들에게 달려있다. 젊은이들이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을 가질 때 우리나라 미래는 밝을 것이다. 반대로 왜곡되고 편협한 가치관과 역사관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대부분 좌경화되었다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43주기 추도식에서 낭독한 김소연 변호사의 추도사는 그런 현실을 적시하고 있어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저희 세대에게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이미지는 ‘악마’ 그 자체였습니다. 386 운동권들이 차지한 전교조와 학원가 강사들의 재미있는 역사 수업 사이사이에 뿌려지는 충격적인 단어들은 감성이 충만한 사춘기 학생들에게 매우 자극적이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극과 충격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 세뇌된 이미지가 뇌리에 깊이 박혀 대한민국 국민들을 먹여 살린 ‘영웅 박정희’를, 국민들을 핍박한 ‘악마’로 각인시켜왔던 것입니다”김 변호사는 1981년생으로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에 태어난 40대 초반이다. 그의 추도사를 들어보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가, 그 중에서도 40대들이 왜 그토록 좌편향적인지를 알게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 있었던 6·25전쟁의 참화나 새마을운동 따위는 아득한 구시대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들렸고, 반면 386운동권들은 세련되고, 똑똑하고, 요즘 말로 굉장히 힙한, 젊은 삼촌·이모들 같았기에 더욱 친근하고 닮고 싶었던 거라고 했다.“386 운동권 세대의 ‘민주화 운동’은 마치 영웅의 일화 같았고, 폭력과 억압, 최루탄을 뚫고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모습은, 과장되고 미화되어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저희 같은 세대들은 경험해본 적도 없는 최루탄 냄새가 마치 나는 듯했고, 영화 속 동료가 군홧발에 짓밟혀 죽어 나갈 때는 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함께 도피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직접 경험했던 로맨틱한 추억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그러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 거리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얼마나 한심스러웠겠는가. 그 노인네들이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 열사의 나라 건설현장에서, 서독의 탄광에서, 베트남 전쟁터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대가로 최빈국 대한민국이 이만큼 살게 되었다는 것을, “태어나 보니 잘 사는 나라였다”는 세대가 어찌 알 것인가. 오늘날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가 그렇게 비하하고 조롱하고 혐오하는 늙은이들이 피땀으로 심은 나무의 열매라는 것을.그러나 김소연 변호사의 다음과 같은 말은 우리에게 일말의 안도와 기대를 갖게 한다. “여전히 30년이 넘도록 스무 살 캠퍼스 낭만과 최루탄의 향기에 빠져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불행한 세대인, 우리 선배 386 운동권 일부는 정치권에 남아 철 지난 이념선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희 MZ세대가, 이들을, 이 불쌍한 386들을, 스스로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빠져나오고 해방될 수 있도록, 그리고 진정한 민주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2-11-03

축제 속의 질서의식

윤영대 수필가 울긋불긋 화려한 단풍을 보며 축제 분위기의 가을을 즐겨야 할 10월의 마지막 주말, 뜻하지 않은 대규모 인명 사고 소식에 망연자실한 체 우리 사회의 질서의식을 생각해 보았다.10월 29일 밤 10시경, 내가 넓은 영일만 밤바다의 정취를 즐기고 있을 때 서울 이태원에서는 외국풍의 핼러윈 축제의 흥겨운 한때를 즐기려던 많은 젊은이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에게 막히고 밀려 쓰러지고 압사(壓死)당하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동안 코로나로 3년간이나 억눌렸던 마음을 털어내려고 모여들었다가 졸지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국가기념일도 아닌 날에 상업적, 신 문화적인 행사로 정착하며 귀신이나 괴물 분장을 한 채로 돌아다니는 축제로 미국과 일본 등 몇 나라에서만 즐기고 우리에게는 20여 년 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이번 사고의 발단은 ‘노 마스크’의 자유로움으로 약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좁은 언덕 골목길을 통제 없이 쏠려 다닌 탓이다. 사고가 나기 전부터 10여 건의 112신고를 받았다지만 그에 대한 발 빠른 대응이 미흡했고 안전 관리 부실 또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겠다. 예년 많은 인파가 몰려왔다는 사실을 기초로 안전 대책을 세우고 시민의 긴급신고에는 정확한 판단과 함께 대응책을 마련하고 출동하여 구조했어야 했다. ‘압사 될 것 같다’, ‘아수라장이다’라며 경찰의 통제를 요구했던 시민들의 희망도 꺼져갔고 중고생 6명을 포함한 20~30대 젊은이들 154명의 죽음이 참으로 안타깝다.이러한 압사 사건은 외국에서도 일어났었다. 최근 10월 1일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지역에서 벌어진 프로축구장 난동으로 174명이 사망하기도 했고, 작년 4월 이스라엘 종교축제에서 44명이 압사당하기도 했다. 이들처럼 평지에서도 질서가 깨어지면 군중들은 그 파도에 휩쓸리게 된다. 더구나 경사가 있는 폭 4m 길이 40m 정도의 좁은 골목길에서 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아마 세계 기록이겠다. 우리가 자랑스러운 문화와 기술, 경제 대국으로 나아가는데 이러한 어이없는 사고가 났으니 외국 여러 나라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위로를 보내고 있다. 우리도 반성해야 한다. 정부는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며 11월 5일까지를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하고 합동 분향소도 설치하여 추모함과 동시에 사건의 원인을 찾고 있다.이번 사고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 계획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참사가 없도록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안전교육이 필요하겠다. 경찰과 소방대원을 도와 심폐소생술(CPR)을 하거나 환자를 이송하는 등 ‘얼굴 없는 의인들’도 많았다. 항상 준비하는 마음으로 일상생활에서의 사고에 대비하며 살아가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며 사고 난 후의 대책 마련에 핀잔을 주고 있지만, 그래도 외양간을 잘 고쳐서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이미 저질러진 일, 엎질러진 그릇이기는 하지만 희생자에 대해서는 진정한 애도의 마음을 품고 동시에 그들 가족과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가지게 될 트라우마도 잘 치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2022-11-03

전 세계 탄소중립(Net Zero) 전환, 대만도 실행 돌입

린천푸 주한 대만 총영사 전세계의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전환 노력이 시작되었다. ‘파리 협정’은 국제 협력 메커니즘의 혁신적 규범도 점진적으로 발전해야 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모든 국가의 광범위한 협력을 필요로 함을 강조하고 있다. 대만은 국제사회와 협력할 의지와 능력이 있으며,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전세계적인 탄소 중립 전환 노력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대만은 세계 21위의 경제주체로 인도 태평양 지역의 경제적 번영과 안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국제 공급망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신기술을 통해 생산과정에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지속적인 반도체 혁신을 통해 전자 제품의 다양한 스마트 응용 프로그램을 구현해내고, 글로벌 에너지 절약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대만은 탄소 중립 노력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며, 이미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22년 5월까지 재생 에너지의 누적 설치 용량은 12.3GW로, 2016년에 비해 1.6배나 크게 증가했다. 그 결과, 2005년에서 2020년까지 대만의 GDP는 79% 증가한 데 반해 같은 기간 온실 가스 배출 총량은 45% 감소했다. 대만은 경제성장과 온실 가스 배출량이 더 이상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는다.대만 차이잉원 총통은 2021년 4월 22일 지구의 날, ‘2050 탄소중립 전환’ 추진을 발표했다. 곧이어 ‘대만 2050 탄소중립 배출 노선 및 정책’을 공표하고 “에너지, 산업, 생활과 사회” 등 4대 전환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동시에 ‘과학기술 RD’ 및 ‘연관 법안’을 2대 주요 기반으로 풍력/태양열, 수소 에너지, 미래 지향적 에너지, 전력 시스템과 에너지 저장, 에너지 절약 및 탄소 포집 저장 및 활용, 운송수단의 전기화 및 비탄소화, 자원 재활용과 제로 폐기, 천연 탄소 싱크(흡수원), 탄소중립 생활, 녹색 금융 및 공정한 변혁 등 12개 항목의 관련 정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있다.특히 지속가능 에너지, 저탄소, 재활용, 탄소 네거티브, 사회과학 등 5개 분야에서 탄소중립 전환에 필요한 과학기술 연구개발 기반에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기후변화대응법’은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명확하게 설정하여, 기후 관리 효율성을 높이고, 기후변화 적응 전문 대책을 업데이트 및 정보 공개 및 대중 참여 강화해 나갈 것이다.또한, ‘탄소 가격 책정’ 메커니즘을 도입해 경제적 인센티브를 통한 배출 감소 촉진과 저탄소 녹색 성장을 주도하며, 점차적으로 기후에 대한 법적 기반을 완성해 나갈 방침이다. 대만은 2050년 탄소배출 제로 정책을 통해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민간 투자를 독려하며 일자리 창출 및 에너지 자립과 사회 복지를 향상시켜 대만 발전의 새로운 원동력이 되도록 할 것이다.안타까운 것은 대만이 정치적 편견으로 인해 국제기구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대만은 글로벌 기후 문제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따라서 국제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곤란하고, 관련 업무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이는 결과적으로는 전세계 기후 관리의 공백을 초래시킬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실제, 제한된 고유 에너지 보유 및 대외 무역 중심의 경제 시스템을 가진 대만이 만약 ‘파리 협정’과 연계된 국제 협력에 참여할 수 없다면, 향후 대만의 산업 녹색화 프로세스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또 국제 산업의 안정적인 공급망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대만은 국제 감축 메커니즘에 공정하게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글로벌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따르는 위협에도 직면해 있다.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는 대만이 탄소중립 실현 문제로 큰 타격을 입게 되면 이는 국제 협력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세계 경제에도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탄소 중립의 추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집단적, 세대적 책임이다. 국제사회가 함께 협력해야만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지난 2년 코로나19 기간 동안, 대만은 이미 세계적으로 가장 우호적이고 잠재력 있는 나라임을 증명하였다. 대만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협력 메카니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 받아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이러한 노력을 지지해 주기를 당부 드린다. 더 나아가 대만이 국제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공정하고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보장되기를 희망한다.

2022-11-02

심폐소생술

홍석봉정치에디터 심폐소생술(CPR)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이태원 참사가 계기다. 사고 현장에서 심폐소생술로 생명을 건진 이들이 많았던 때문이다. 참사 당시 현장에 CPR 방법을 아는 사람이 많았더라면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에 CPR 방법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사고 당일 서울 이태원의 참사 현장에서 심정지 상태에 빠진 환자 수십 명이 도로 위에서 CPR 조치를 받았다. 다급한 상황 속에 한 명이라도 더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쓴 시민들의 사연이 SNS로 전해졌다. 사고를 목격한 의대생과 간호대생이 사고 현장에서 밤새 CPR을 했다는 글도 있다.이후 SNS와 인터넷에는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과 CPR 방법 게시물이 속속 게시됐다. 응급처치 강습 기관에도 시민 문의가 부쩍 늘었다.현재 초·중·고 학생은 학교에서 CPR을 포함한 응급처치 교육을 배운다. 군과 민방위교육, 산업현장 등에도 단골 프로그램이 됐다.심장마비 환자의 경우 목격자가 즉시 CPR을 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확률이 3배 이상 높다고 한다. CPR은 사람의 생명줄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심폐소생술은 심폐 기능이 정지하거나 호흡이 멎었을 때 사용하는 응급처치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숨이 멎지 않도록 지연시킨다. 심정지가 발생하면 늦어도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을 해야 한다. 병원 치료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그래야 환자를 살릴 수 있다. 일부 논란도 있다. 여성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릴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이뤄진 심폐소생술은 긴급 처치만으로는 강제추행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국민 모두가 심폐소생술을 배워야 할 때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02

문화경쟁력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한민국이 문화로 떴다. K-pop과 한국영화의 성공이 줄을 이었다. 국경과 세대를 넘는 유행이 생겨났고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났다. 한국말 배우기 열풍이 일었으며 한국문화를 모방하려는 외국인들이 적잖이 보였다. 코로나 언덕을 넘으며 관심과 흥미가 더 높아지길 기대한다. 정치와 경제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한국을 바라보는 바깥의 시선에도 변화가 있다. 글로벌시대의 역동성은 무엇이든 때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고 해석한다. 한국과 한국문화는 그간의 긍정적인 이해를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을까. 문화는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우리만의 문화인가. 우리만 할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문화가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가질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콘텐츠를 보여주는가. 문화에 담긴 이야기를 그 곳이 아니면 들을 수 없을 때, 콘텐츠를 장소와 동일시하여 그 스토리를 만나고 경험하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찾는다고 한다.케이컬처(K-culture)가 아니면 느껴보지 못할 감동과 맥락을 전달할 때, 우리 문화의 경쟁력과 영향력은 배가된다. 성공을 경험한 우리의 콘텐츠가 전혀 새로운 감동을 담고 있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문화가 젊어야 한다. 이야기가 세대를 관통하면서도, 특히 ‘다음세대’가 함께 즐기고 누릴 수 있을 때 문화는 경쟁력을 가진다. 전통적인 옛이야기일수록 오늘의 콘텐츠로 새롭게 만들어 전달해야 한다. 우리만의 오래된 이야기가 아무리 많아도,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면 생명을 잃고 가치를 전달할 수 없게 된다.문화적 자긍심은 세대를 넘어 전달이 가능할 때 그 힘을 발휘하게 된다. 문화적 환경이 글로벌하게 펼쳐질수록 콘텐츠를 오늘의 세대와 어울리도록 다시 만들어야 한다. 문화원형의 근원적인 생명력을 되살리기 위해서 젊은 세대와 함께 향유하는 문화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초연결(super-connectedness)이 현실이 되었다. 지구상 어느 곳과도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글로벌세상에서 문화도 그런 환경에 걸맞게 진화해야 한다. 이야기에 실렸을 가치와 내용을 적절하게 전달하고 공유해야 한다. 우리만의 전통과 기준을 고집하기보다 현재적이며 글로벌한 가치를 이끌어낼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세계인과 함께 즐기며 호흡할 콘텐츠를 지향해야 하고 끊임없이 그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술과 방역, 경제와 한류로 쌓아온 나라의 저력을 지속적인 경쟁력으로 승화시키려면 우리의 이야기가 세계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도록 다듬어야 한다.문화의 경쟁력은 그 콘텐츠가 독창적이면서 젊은 세대와 세계인의 감각과 함께 할 때 형성된다. 디지털과 초연결의 새로운 사회환경에도 주목하여 문화적 영향력을 만들고 확장하여 갔으면 한다. 나라의 영향력은 문화의 힘과 비례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케이컬처의 지속적인 성공으로 지지될 터이다. 경제가 바깥의 울타리를 만들어 낸다면, 문화는 속깊은 자긍심의 뿌리를 제공한다.

2022-11-02

봉화광산 매몰자 구조, 왜 이렇게 늦어지나

지난달 26일 봉화 아연광산 붕괴사고로 매몰된 인부 2명(56세, 62세)에 대한 구조작업이 일주일째인 2일 현재에도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지연되고 있어 안타깝다. 소방당국은 지난달 29일부터 시작한 생존확인용 76㎜(천공기) 시추작업이 실패한데 이어, 지난달 30일부터 추가로 98㎜ 시추작업을 계속해 갱도 185m까지 진입했지만, 생존 예상지역에 도달하는 데는 실패했다. 소방당국은 업체측이 가진 도면을 바탕으로 구조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도면은 20여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정확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소방당국은 정부가 지원한 천공기 3대를 추가로 투입해 생존이 확인되면 이 관을 통해 구조 때까지 통신시설, 식품, 의약품 등을 내려보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생존여부 확인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실종자 가족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이번 사고는 갱도하부 46m지점에서 갑자기 밀려들어온 펄(진흙 토사물)이 갱도아래로 수직낙하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모두 7명의 인부가 갱도 안에 갇혔다가 5명은 탈출하거나 구조됐지만 2명은 아직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공포감이 엄습하고 숨이 막힐텐데 어두운 곳에서 어떻게 견딜지 가슴이 먹먹하다”며 국내외 최고전문가들이 현장에 와서 구조작업을 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1일 현장을 방문한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작업자를 구조할 시추 전문가와 설비를 총동원하라”고 관계당국에 주문했다. 경북도는 행정부지사를 반장으로 구조대책반을 가동하고 구조작업과 지원사항을 현장 지휘하고 있다.봉화 아연광산은 갱도를 지탱하는 시설이 부실해 지난 8월에도 동일한 수직갱도에서 붕괴사고가 나 사상자 2명이 발생한 곳이다. 지금은 실종자 구조에 총력을 쏟아야 할 때이지만, 불과 두달전 같은 갱도에서 유사한 매몰사고가 났다면 사전에 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든다. 경찰은 오래된 광산의 붕괴사고 재발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이번 봉화 아연광산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따져야 한다.

2022-11-02

대구~영천 30분 생활권 시대… 기대감 크다

경북도는 대구도시철도 1호선 하양~영천(금호)구간 연장사업이 국토부의 예비타당성 사업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에 신규사업으로 반영된 하양~영천 구간이 국토부 투자심사를 통과하면서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만 통과하면 2026년 공사 시작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 12월 완공 예정인 도시철도 안심~하양 구간과 연결되는 이 사업은 총 5km 구간, 2천52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된다. 이 사업이 완성되면 대구, 경산, 영천을 잇는 광역교통망이 형성돼 이 일대 생활권에 큰 변화는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경북도는 “청년 인재 유입과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등 광역교통의 일대혁명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공사 중인 영천 경마공원과 연결되면서 경북지역 관광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영천~하양 구간 도시철 연장은 지난해 영천시민이 뽑은 시정베스트 1위다. 영천시민은 지역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길 사업으로 손꼽고 있다는 것이다. 영천시도 역세권인 금호읍 중심으로 신도시를 조성하는 등 관련 사업에 속도를 낼 예정이어서 지역민의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새로운 교통망의 신설은 지역 균형발전과 더불어 주민의 생활권을 한곳으로 묶어 동질의 문화를 누리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과거 고속도와 철도망 구축이 그러했고 이제 신공항 건설이 지역발전의 화두로 등장한 시대다. 대구와 경산, 영천를 잇는 광역철도망 구축은 이 지역을 30분 생활권으로 만든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남은 과제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을 통과하는 것이다. 이철우 도지사는 “중앙부처와 정치권과 긴밀히 협의해 사업이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지난 9월 영천행사에 참석해 차질없는 사업 추진 등을 약속한 바 있으며, 이만희 국회의원도 “영천 경마공원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성사돼야 한다”고 밝혔다. 지역사회와 정치권의 합심된 노력으로 마지막 관문 통과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2022-11-02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트라우마의 치유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핼러윈 데이를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밤에 서울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다. 비좁고 비탈진 골목길에 몰려든 대규모의 축제 인파가 넘어지면서 압사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청춘들의 축제는 삽시간에 비극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156명의 사망자 중에는 외국인도 26명 포함돼 있다. 전 세계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에 놀라면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10만여 명의 인파가 쏟아져 나왔지만, 현장에는 200명도 안 되는 경찰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 인력은 현장 통제보다는 범죄 예방에 집중했다고 한다. 보행자들이 몰린 골목길의 안전 관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앞뒤로 꽉 막힌 골목에는 안전도 꽉 막혀 있었다. 결국 사고 사흘 만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정부는 이번 달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했다. 이태원이 속한 용산구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참사를 미연에 막지는 못했지만, 정부 당국은 총력을 기울여 사고를 수습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이번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에게 발생한 트라우마의 치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사고 다음 날 성명서를 냈다. 이번 참사로 사망한 분들의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국민의 큰 충격이 예상된다면서 대규모 정신건강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여과 없이 사고 당시의 영상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주목할 점은 현장 영상이나 뉴스를 반복해서 보는 행동이 스스로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경고했다는 것이다.‘트라우마의 이해와 치유’의 저자인 캐롤린 요더는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사건을 보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트라우마를 겪은 집단은 폭넓은 두려움, 공포, 무기력감, 분노 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건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때 이를 사회적 혹은 집단적 트라우마라고 부를 수 있다.필자는 포항 지진 일주년에 발표했던 연구 보고서에서 집단적 트라우마 체험을 조사한 바 있다. 당시 지진 진앙지와 인접했던 대학교의 학생과 교수를 인터뷰했었는데, 이들에게서 중층적인 트라우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지진으로 인한 일차적 트라우마와 함께 자극적인 언론 보도와 SNS 전파를 통한 이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실제 지진보다 방송에 보도된 내용을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는 교수의 말은 의미심장했다.이번 참사의 경우 참혹한 현장의 모습과 심폐소생술 장면 등이 방송과 SNS를 통해 전 국민에게 전해졌다. 언론에서는 사건 관련 보도를 할 때 유가족들의 심정을 한번 더 헤아려 주기 바란다. 시민들도 SNS를 통해 참사 현장의 모습을 공유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지금은 슬픔을 당한 분들을 위로하며 함께 울어야 할 때이다. 진심으로 서로를 보듬을 때 트라우마로 막혀 있던 마음에 치유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2022-11-02

대한민국은 안전한가

김규인 수필가 SK CC 데이터센터의 화재로 국내 최대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의 서비스는 멈췄다. 5천만 명이 이용하는 카카오톡, 3천700만 명의 카카오페이, 3천만 명의 카카오T 이용자는 일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사거나 점심을 먹고도 식사비를 치르지 못해 애를 먹었다.화재로 카카오톡뿐만 아니라 카카오페이, 카카오택시 등 관련 서비스가 모두 사라졌다. 영업하지 못하는 소상공인은 며칠 동안 빈 점포를 지켜야 했고 택시 기사는 울리지 않는 콜을 기다리며 손님을 찾아 나섰다. 이것도 지쳤는지 그늘에 차를 세워놓고 쉬고 있었다. 쉬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카카오 서비스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의 일상이 멈춰버렸다.집안의 가장인 어린 소녀가 일하다가 기계에 끼어서 죽고 건축공사 현장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오늘도 일어난 교통사고는 내일이면 다시 발생한다. 매일 일어나기에 사고는 일어나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사고를 예측하고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정말 큰 사고가 일어난다.괴산에서 규모 4.1의 지진이 발생했고 핼러윈 축제에 참여한 많은 젊은이를 한순간에 잃었다. 한마디로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우리의 삶이 일시에 멈출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대한민국은 안전한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사태가 테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화재로 인한 것이기에 근심은 더 깊어진다. 대한민국을 혼란스럽게 할 불순한 목적으로 일을 저지른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의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달려들면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는 2층 건물로 1층을 띄워 지어서 아래쪽으로 바람이 통하고, 이중으로 담을 쌓아 사고 바깥을 둘러 산불이 나도 건물 안쪽으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 지붕은 크게 지어서 비가 와도 건물 안으로 들이치지 못했다. 창문도 비를 막기 위해 처마 위쪽으로 바짝 높여 냈으며, 아래쪽에도 창문을 만들어 통풍이 잘되게 하였다. 멀리 떨어진 곳에 여러 개의 사고를 지어 실록을 보관했다.궤짝 안에 보관하는 실록도 기름종이로 덮고 오랜 보관으로 붙는 것을 막으려고 책과 책 사이는 질 좋은 종이를 끼워 뒀다. 약재를 넣어 벌레 침입을 막았으며 악귀를 쫓기 위해 붉은 보자기로 싸고 궤짝을 자물쇠로 채웠다. 기록의 나라 조선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준비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그러한 우리 민족의 철두철미한 유전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비용을 줄이고자 당연히 갖추어야 할 것을 미루고 독촉에 쫓겨 안전은 자꾸 뒤로 밀린다.까탈스러울 정도로 일을 처리하던 우리의 철저한 정신은 어디로 갔을까. 안전을 무시한 가운데 세계 일류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높이 올라가는 첨단의 기술일수록 그 토대는 튼튼해야 한다. 안전과 기술의 균형을 맞추고 서로를 위한 배려의 손길이 더해질 때 가능하다.

2022-11-02

솜사탕과 풍선

배문경 수필가 하늘엔 솜사탕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있다. 그 아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십여 미터씩 줄지어 서 있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나는 표정이다. 어른들도 옛 생각에 젖어 있다.신라문화제의 일환으로 각 기관이 행사를 진행했다. 경주문인협회에서는 향가 시 낭송대회와 독서삼품과 백일장을 개최했다. 가을이라 여기저기 놀이도 많고 볼거리도 많다 보니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할 행사로 성공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솜사탕과 풍선아트였다. 무료라는 배너를 설치하고 두 사람이 열심히 솜사탕 부스에서 분홍 설탕, 노랑 설탕, 보라 설탕을 넣고 동그란 솜사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엄마 손을 이끌고 와서는 하나씩 손에 쥐고는 달콤한 세상을 맛본다. 연인들의 표정도 달짝지근하다.하늘은 푸르고 아이들의 싱싱한 웃음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여기저기 장난치며 뛰노는 아이들이 있으니 대회는 사람들로 붐볐다. 긴 풍선에 기계로 바람을 넣자 길게 부풀어 올랐다. 순식간에 귀여운 푸들이 되고 해맑은 해바라기가 되었다. 천막 곳곳에 붙어있는 여러 모양의 풍선 모양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선물을 받으려고 긴 줄이다.어릴 적 운동회가 생각난다.나는 달리기 선수였다. 파란색 체육복을 입고 만국기가 휘날리는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면 축제 분위기였다. 학교 입구 쪽은 커다란 가마솥에서 벌건 기름기가 도는 육개장이 김을 내며 끓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낮술에 찌든 동네 아저씨 서넛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만국기가 운동장의 담장과 건물 기둥에 대각선으로 연결되어 펄럭였다. 나는 공책 서너 권을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들떠 있었다. 단거리 육상과 멀리뛰기 선수였기에 운동회 날은 휘파람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특히 바통을 이어받아 운동장을 반 바퀴 도는 릴레이 경기에서 운동회의 승부가 결정되곤 했다. 지고 있을 때 그것을 승리로 이끄는 사람이 결국 그날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슬아슬하게 상대방을 이기고 바통을 넘겨줄 때 숨은 턱에 차고 응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울렸다. 여자아이들보다는 남자아이들이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 때가 많았다.그때도 운동장 한쪽에는 솜사탕을 만들어 팔던 아저씨가 있었다. 설탕을 한 숟가락 넣으면 빙빙 돌아가던 기계는 거미줄 같은 설탕 줄을 대신 내놓았다. 그러면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나무젓가락 끝에 감기 시작했다. 그러면 하얀 솜사탕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서로 기계 옆에 붙어 서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나 사서 베어 물던 아이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한쪽을 떼서 입에 넣으며 약을 올렸다.내가 솜사탕을 먹었을 때는 달라붙던 설탕의 눅진함이 입과 손가락에 쩍쩍 붙었다. 설탕의 달달함이 지금도 느껴지는 듯하다.지나간 시간은 늘 기억에 풍선처럼 부풀려져 있다. 갖가지 색깔의 풍선에는 상상의 바람이 가득했다. 작게 불면 볼품이 없고 크게 아주 크게 불다 보면 제 부피를 넘어서서 ‘펑’하며 터져 조각나 버리던 풍선, 각각의 인생처럼 다양한 색으로 하늘을 수놓듯이 다양한 삶이 인생길을 만든다.부풀어 터질듯했던 유년의 기억 속 편린들이다. 다양한 색의 솜사탕처럼 갖가지 꿈들이 세상에 무지개를 만들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지금의 저 아이들처럼 한껏 아름다운 꿈을 지니고 내달릴 힘들이 넘쳤었다. 달콤하고 향긋한 나이가 있다면 초등학교 때가 아니었을까.그러고 보니 어느 사이 풍선은 힘이 빠져 탄력 없이 손아귀에 쉽게 잡힌다. 솜사탕은 부풀었던 설탕의 꿈들이 녹아 혓바닥과 손가락에서 달짝지근한 맛으로 스며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점차 부피가 줄어드는 것인지 모른다.한때 부풀고 달아올라 뭔가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가슴 벅차던 시절을 지나오니 이젠 바람이 빠져 말랑하다. 편안한 중년의 오후다.

2022-11-02

예측 불가능한 해양생태계

몇 해 전 통영 사량도 앞바다에서 스노클링(물안경과 오리발, 스노클 정도의 간단한 장비들을 이용하여 잠수를 즐기는 스포츠)을 한 적이 있었다.바다 속 해초를 보며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데 갑자기 신기한 물고기 하나가 눈에 띄었다. 꼬리에 형광물질을 묻힌 듯한 모습은 기존 우리가 알던 물고기와 사뭇 달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형형색색의 무리들이 산호와 해초 사이를 유영 중이었다. 백화현상으로 곳곳이 하얗게 변한 바닥과 열대어 모습의 물고기까지 마주하니 묘한 감정이 일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청정해역에서 직시한 바닷속 풍경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변하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가슴 아팠다. 바다사막화와 기후변화, 급격하게 다가오는 우리의 뼈아픈 현실이었다.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해양수산부는 지난 달 ‘기후변화가 바꾼 우리 바닷속 풍경’이라는 제목의 도감을 발간했다. 우리 바다에 살고 있는 대표적인 열대·아열대 해양생물 180종의 생태학적 특징을 담은 도감으로,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그려냈다고 한다. 통영 사량도 일대에서 봤던 어종이 실제 아열대 해양생물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자, 해수온 상승으로 우리 바다 생물들이 북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즉, 열대·아열대 해양생태계의 특성을 알아야 우리 바다의 변화에 대응 가능하다는 부연 설명도 함께였다. 도감에 따르면, 남해안의 대표적인 어패류인 소라는 300km가 떨어진 경북 울진에서도 서식이 가능하며, 기수갈고둥 역시 경북 울진에서 강원도 삼척까지 활동반경을 넓혔다고 한다. 그만큼 바다가 따뜻해지고 그에 맞춰 해양생물들도 이동 중이라는 의미다.기후변화로 인한 해수온과 해류의 변화는 해양생태계의 서식지 이동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예측불가능성을 불러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최근 남해안과 부산에 출몰한 정어리 떼다. 지난달부터 정어리 떼 수만 마리가 마산과 부산 일대에 나타났다. 마산만의 경우 좁은 해역에 정어리 떼가 갑자기 유입돼 산소부족으로 집단 폐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부산에서는 떼 지어 이동하다 다시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원인규명에 나섰지만 아직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과거 개체수가 많았던 정어리 떼가 수십 년째 줄어들다가 최근에 다시 늘어났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이는 최근 동해에서 잡히기 시작한 참치와 비슷한 맥락이다.동해에 참치(참다랑어)가 잡히기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다.열대·온대성 기후에 사는 참치는 원양어업의 대표적인 어종으로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온 상승으로 참치 떼가 한반도까지 이동하면서 정치망(자루 모양의 그물에 테와 깔때기 장치를 한 어구로, 대상 생물이 들어가기는 쉬우나 되돌아 나오기 어렵도록 장치한 그물)에 걸리기 시작했고 어민들은 이를 어판장에 내다 팔았다.하지만 국제적인 쿼터에 묶여 있는 참치를 모두 처분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랐다. 결국 어민들은 그물에 걸린 참치를 먼 바다에 버리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그 사체들이 해류에 떠밀려 동해안 해수욕장을 덮치는 일까지 발생했다. 지금도 동해어민들이 쿼터제를 폐지해달라고 시위하는 이유다.기후변화로 해양생태계가 변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다. 그래서 어족자원이 고갈되거나 어종이 다변화하는 등의 생태계 흐름에 능동적인 대응이 어렵다. 원인을 찾고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에 걸맞은 제도를 개선하는 등의 후속조치가 따를 뿐이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예측불확실성은 불안을 낳는다. 생태계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해양생태계의 이상 현상은 우리가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촉발시키고 이를 반복할 확률이 높다. 원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인과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현미 작가 당장 참치 쿼터제를 풀면 갑자기 늘어난 어족자원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어민 뿐만 아니라 소비자 역시 고급어종의 횟감을 즐길 수 있다. 다만 마구잡이 참치어업으로 멸종위기에 처했던 전철을 또다시 밟을 수 있을 것이다. 참치는 쿼터제 덕분에 다시 개체수가 늘었다는 가설이 현재 가장 설득력 있다. 동시에 참치의 증가로 다른 어종에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태계의 오묘한 균형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해양생태계의 예측불가능성은 앞으로 더 자주, 더 많은 어종에서 발생할 것이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모든 가능성을 현재의 기술로 예측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자정능력 역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한 이유이자 기후변화를 늦춰야 하는 당위다.빠른 시일 내에 정어리 떼가 출몰한 이유를 알아내고 열대어종 180종이 아닌, 더 많은 어종의 도감이 계속 발간되길 기대해본다.

2022-11-02

욕망만 간단히

몇 해 전, 2학기 첫 수업에서 동급생들보다 예닐곱 살 많은 한 학생이 재직증명서를 내밀며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어 출석이 어렵다고, 대신 매주 과제를 성실히 제출하겠다며 출석에 관한 양해를 부탁했다. 취업자의 대체 출석을 조건부 허용하는 학칙도 있고 해서 ‘성실한 과제 제출’을 전제로 허락했다. 매 학기마다 1주차에는 수업 소개, 진도 및 평가 계획, 목표 등을 안내하고, 표절, 무단인용, 중복제출 등 창작물과 과제물에 대한 창작윤리를 강조한다.이스마일 카다레의 ‘꿈의 궁전’을 읽고 어느 부분이 매혹적인 판타지로 다가왔는지를 짧게 써 내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출석 인정을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메일에 첨부된 과제물을 열어보았다. 어느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책 리뷰를 그대로 긁어서는 종결어미와 부사만 슬쩍 바꿔 자기 글인 양 제출한 것이었다. 2주차 수업에서 출석을 부르며 한 사람씩 과제 피드백을 해줬는데, 자리에 없는 그 학생 순서에서 “(책을) 안 읽고 쓴 것 같아요… 짜깁기한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내가 한 이야기가 그 학생에게 전해졌는지 수업 이틀 뒤 “제가 없는 자리에서 제 이야기를 나쁘게 하셨다면서요? 직접 연락해 말씀하셔야지, 그렇게 뒷담화하시니까 불쾌하네요” 하는 장문의 항의 문자를 받았다.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한 건 불쾌할 수 있겠다 싶어 그 부분을 사과했다. 또 한 번 날이 선, 나를 훈계하는 투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답을 하려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관뒀다. 울릉도 도동 터미널에서 포항으로 가는 여객선을 기다리던 환한 가을날이었다.불쾌하긴 했지만 금방 잊어버렸다. 행여나 감정적으로 불이익을 준다고 여길까봐 그 학생의 과제물과 시험답안은 객관적으로, 아니 더 너그럽게 평가했다. 학칙은 취업 학생에게 줄 수 있는 점수를 제한하고 있는데, 그 범위 안에서 최고점을 줬다.그리고 1년쯤 지난 어느 날, 그 학생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미리보기 화면에는 “선생님, ㅇㅇㅇ입니다. 이번에 제 책이 나왔습니다”까지 적혀 있어 내게 책을 보내주려 주소를 묻는 건줄 알았다. 메시지를 열어보니 온라인 서점 구매 링크와 함께 “관심 부탁드립니다”라고 써져 있었다. 인사말 같은 건 없었다. 씁쓸했다.지난 학기 성적 입력을 마치고, 한 학생으로부터 성적 정정 요청 메일을 받았다. 아주 길게 써내려 간 장문에는 수업에 대한 칭찬, 감사 인사와 함께 자신이 왜 A+를 받지 못했는지 의아하다는 질문, 자신이 얼마나 성실하고 뛰어난 학생인지 설득하려는 주장, “교수님의 강의가 제 인생에서 큰 깨달음을 준 수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디 그 기억이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기억되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귀여운 협박(?)까지 담겨 있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다음날,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담아 답메일을 보냈다. 그 학생 성적을 올려주면, 다른 학생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성적은 정정할 수 없지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내가 쓴 책들을 보내주고 싶었다. 혹시라도 받길 원한다면 주소를 남겨달라고 했다. 메일을 보냄과 거의 동시에 ‘수신확인’ 상태가 ‘읽음’이 되었다. 아마 정정 요청이 받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빠뜨린 내용이 있어 10여분 뒤 메일을 하나 더 보냈다. 마음이 몹시 상했는지 나중에 보낸 메일은 내내 읽지 않다가 닷새쯤 지나서야 읽었다. 두 개의 메일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자기 필요에 의해 할 말을 했고,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으므로 더는 용건 없다는 것일 테다. 이 학생에게 주려고 포장해놓은 책 꾸러미를 풀었다. 씁쓸했다.요즘 학생들이 생각하는 ‘용건만 간단히’의 의미가 이런 것일까? 요즘 세대는 더 이상 예의를 배우지 않는다. 나도 아직 30대이고 미혼이지만, 3040 부모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우리 애한테 왜 그래요”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영 마뜩찮다. 부모의 훈육 탓만은 아니다. 각자도생의 이기적 사회 풍조에서 젊은 세대가 배울 만한 어른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점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은 사라지고 ‘욕망’만 남는 듯하다. MZ세대의 ‘용건만 간단히’는 어쩌면 ‘욕망만 간단히’가 아닐까? 씁쓸하다.

2022-11-01

마라탕의 인기는 어디까지?

최근 집근처에서 산책을 하다 깜짝 놀랐다. 최근 2-3년 사이에 마라탕 가게가 부쩍 늘었다는 게 확연히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마라탕은 2010년대 중국인과 유학생을 대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특히 최근 3-4년부터 마라탕 열풍이 지속되며 약 32개의 마라탕 브랜드가 국내에 생겨났다. 그 중 일부는 100개 이상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펼칠 정도로 활발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마라탕이란 중국 쓰촨을 기반으로 하여 둥베이 지방을 거쳐 만들어진 중국 요리다. 한자로 마(痲)는 저리다 혹은 마비 라는 뜻을 지녔고, 라(辣)는 맵다, 탕(71D9)은 뜨겁다는 뜻을 지녔다. 초피나 팔각, 정향 등 다양한 향신료를 가열해 향을 낸 기름에 육수를 부은 다음 채소나 고기, 버섯, 두부 등의 식재료를 넣고 끓이는 탕요리다.마라탕의 유행은 계속되고 있다. 네이버 기준 검색량 키워드를 조회해보았을 때 ‘마라탕’의 월간 검색량 조회수는 총 40만건으로 나타났다. 연령별 검색 비율은 10대 27.7%로 가장 높게 나왔고, 그 다음은 20대 27.6%로 나왔다. 더 재미있는 건 여성의 비율과 남성의 비율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점이었는데, 여성은 73.0%, 남성은 26.9%로 조사되었다. 10대 대표 간식이라 불리는 ‘떡볶이’의 월간 검색량은 월 24만 8천건이었다. 떡볶이의 24만 보다 훨씬 높은 40만 건이라는 검색량은 마라탕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해볼 수 있었다.또한 마라탕 선호가 성별과 연령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22년 7월 기준으로 한 카드 회사가 체크카드를 발급한 회원의 ‘음식점 이용금액’ 소비 패턴을 분석했더니, 중·고등학생 여학생의 마라/샹궈 음식점 이용금액이 3위를 차지했다. 4위는 떡볶이가 뒤따랐다. 반면 중고등 남학생은 1위 배달/야식, 2위 햄버거, 3위 커피전문점으로 마라/샹궈 음식점에서의 이용금액은 순위에 없을 정도로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다.이렇게 Z세대 여학생 사이에서 마라탕이 유행한 이유는 뭘까? 알싸하고 자극적이라 국물조차 먹지 않는다는 중국 마라탕과는 달리, 한국 마라탕은 대부분 사골 국물을 주로 쓴다. 매운 국물에 푹 절여진 야채와 고기 그리고 어묵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어 국밥만큼이나 든든한 한끼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한국 특유의 달거나 시원한 매운 맛이 아닌, ‘알싸하고 얼얼한 매움’은 마라탕에서만 즐길 수 있는 낯설고 이국적인 맛을 지녀 더욱 중독성을 지닌다.또한 마라탕은 내가 원하는 재료를 마음껏 커스터마이징해서 먹을 수 있단 특징이 있다. 먹고 싶은 채소와 고기, 어묵, 해산물 등 수십 가지 재료를 취향대로 담아 카운터에 내면 무게에 따라 가격을 책정한 뒤 주방에서 조리를 한 다음 내어준다. 금액 또한 저렴하다. 기성세대는 이러한 주문 방식이 다소 번잡하고 귀찮게 느껴질 수 있지만 Z세대는 자신의 입맛과 취향, 그리고 개성을 반영하는 과정을 즐기고 소비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마라탕의 유행 덕분에 인터넷뿐만 아니라 마트나 슈퍼에서도 마라탕 소스나 각종 향신료, 재료 등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 대형 식품회사에서 한국인 입맛에 맞추어 자극적인 향신료를 빼고 사골 육수를 사용한 마라 소스를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어, 기호대로 선택할 수 있단 이점이 있다. 또한 하이디라오나 라오간마 등의 중국 현지에서도 유명한 브랜드 상품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요리 과정 또한 쉽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직접 마라탕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유튜브에선 이미 마라탕 먹방(마라탕 만들기)’ 영상이 조회수 964만회를 기록하고 있고, ‘야식으론 절대 먹지 마라 마라탕’이란 제목을 가진 동영상은 약 734만회라는 조회수를 지니고 있을 정도다.이젠 길거리를 걷다보면 마라탕 외에도 마라 국밥이나 마라 떡볶이, 마라 라면, 마라 부대찌개, 마라 치킨 등 마라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이 출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마라탕은 나트륨이 많은 음식이라 자주 먹게 된다면 고혈압이나 심혈관 질환 같은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되도록 국물을 마시는 건 자제해야 한다고 하지만, 입이 얼어붙은 듯한 마라의 얼얼한 중독성에 빠지게 되면 국물을 참을 수 없게 된다. 특히 날이 쌀쌀해진 저녁엔 각종 채소를 넣은 마라탕이 생각난다. 맛있는 음식으로 오늘의 스트레스를 잠시 잊을 수 있다니, 단순하고 가벼운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가을날이다.

2022-11-01

1만가구 넘은 대구 미분양… 특단 대책 나와야

대구지역 미분양아파트가 1만가구를 돌파했다. 11년만에 최대 물량이다. 수도권 전체 미분양주택 물량보다 더 많은 물량이 대구지역에 깔려 지금 대구는 부동산 빙하기를 맞고 있다. 국토부 통계에 의하면 9월 중 대구지역의 미분양 공동주택은 1만539가구로 한달사이 2천237가구가 증가했다. 전국 미분양 물량의 25.3%로, 작년 같은 달 2천93가구와 비교하면 무려 5배나 늘었다.지난주 윤석열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회의에서 부동산 규제지역의 추가 해제, 무주택. 1주택자에 대한 담보인정비율(LTV) 일괄 50% 완화, 새 아파트 중도금 대출보증도 분양가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리는 조치를 내놓았지만 시장에서 약발은 잘 먹히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시절 내놓은 반시장적 규제를 풀면서 시기를 놓친 감이 없지 않다. 부동산경기 침체가 이미 본격화된 데다 주택담보 대출금리가 7%까지 치솟으면서 집을 사겠다는 심리적 수요가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특히 대구의 부동산경기는 본격적인 침체기에 접어들어 지난 9월 규제지역 해제에도 미분양 물량은 더 늘어나는 추세다. 11월 들어 정부의 부동산 규제완화 추가조치가 발표되나 그 내용이 수도권 중심에 치우쳐 지역실정에는 맞지 않다는 여론이 많다. 부동산 관련한 규제를 지방 차원에서 지역실정에 맞도록 조정하는 기능이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전국을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지금의 규제방식으로는 지역사정이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지금 대구는 부동산 거래가 끊어지면서 신규로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이 기존주택이 팔리지 않아 이사를 못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집값은 폭락하고 거래는 끊겨 진퇴양난에 몰린 사람들이 아우성이다.미분양 아파트 1만가구가 넘어선 지금 상황을 관계당국이 그냥 바라만볼 수는 없다. 대구시와 정부가 특단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미분양 물량이 많이 쌓이면 건설사의 유동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주택가격은 너무 올라도 문제지만 지금처럼 거래가 올스톱되는 것도 시중경기를 어렵게하는 요인이다. 거래 정상화를 위한 당국의 대책이 서둘러 나와야 한다.

2022-11-01

국가애도기간

우정구 논설위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자 영국 정부는 장례식이 있는 날까지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고 애도와 관련한 지침을 발표했다.“행사 및 스포츠 경기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것을 고려할 수는 있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개별조직의 재량에 달렸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단체가 애도지침을 수용하고 여왕의 국가공헌을 기리고 존경의 뜻을 표시했다. 영국의 가장 전통있는 백화점 중 하나는 그날 매장을 닫았다.또 노동계는 파업을 중단하고, 일부 금융기관은 금리 인상을 일주일 연기하는 결정도 했다.국가애도기간은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사망했거나 많은 희생자를 낸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가가 그들을 애도하고 추도하기 위해 정한 날이다.우리나라는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46명의 용사가 순직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애도기간을 정한 바 있다.155명의 희생자와 152명의 부상자를 낸 이태원 핼로윈 참사와 관련해 정부는 오는 5일까지 애도기간으로 정했다. 이 기간 동안 관공서는 조기를 게양하고 공무원은 근조리본을 달고 근무하며 그들의 희생을 애도한다.우리 역시 강제된 요구는 없다. 그럼에도 각종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 내지 연기되었다. 방송의 주말 연예프로그램도 결방하고 연예인의 팬미팅조차도 연기가 되는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애도기간 동안 국민 모두는 숙연한 마음가짐으로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의 시간을 갖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특히 꽃다운 젊은이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한 기성세대는 그 책임을 통감하고 통렬한 반성의 시간을 갖는 기간이어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1-01

지금은 政爭·혐오 발언 자제할 때다

심충택 논설위원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여야가 지난달 31일 정쟁을 중단하자고 뜻을 같이했지만 그야말로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사고 직후 의원들에게 지역구 활동을 포함한 모든 정치·체육활동을 중단하라는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당 지도부가 보낸 공문에는 언행 주의, 불필요한 공개 활동·사적 모임 자제, 음주 행위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 자제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더불어민주당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이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다. 이재명 대표는 “무엇보다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해야 할 때다. 정부의 사고 수습과 치유를 위한 노력에 초당적으로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은 당 대표실 뒤에 걸린 ‘야당탄압 규탄! 보복수사 중단!’ 문구를 하얀색 천으로 가리기도 했으며, 주호영 대표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했다.그렇지만 정치인들의 자제는 여기까지였다. 청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듯한 조짐이 민주당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현 정부를 겨냥해 “일방통행 조치만 있었어도, 안전 요원을 배치만 했어도, 인파의 흐름을 모니터링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을 사고였다. 정부와 서울시는 주최 측이 없는 행사였다고 말하지 말라”며 정부·지자체 책임론을 제기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서울시에서 관리하고 있는 서울교통공사에서 지하철 무정차 통과를 시켰을 법도 한데 이것도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방송인 김어준씨도 “이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데, 아니다. 이건 정치 문제가 맞다”며 끼어들었다.우리 국민 모두에겐 지난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아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 당시 정치권이 앞장서 진행한 극단적인 진영싸움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앞으로 이태원 참사의 충격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청년들의 허망한 죽음을 슬퍼하는 국민들 앞에서 정치권이 이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듯한 언행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표적으로 참사가 발생하자마자 민주당 민주연구원의 남영희 부원장이 윤석열 대통령 하야를 주장한 것은 사회혼란만 부추기지 사고수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판이다. 남 부원장 발언 이후 약속이나 한 듯이 SNS나 각종 댓글에서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등의 정치적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온라인에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각종 유언비어와 가짜뉴스가 번지고 있다. 특히 희생자를 조롱하거나 혐오하는 내용의 게시물도 올라와 유가족들의 슬픔을 가중시키고 있다.지금 우리가 할 일은 희생자 명복을 빌고 그 가족의 슬픔을 나누는 것이다.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정부의 사고 수습과 원인 규명, 지원책 마련을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 근본적으로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를 따져보고 또 대책을 마련해서 두 번 다시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국가애도기간을 일주일 간으로 정한 것이 아니겠는가.

2022-11-01

선제대응지역 지정… 포항산업계 활력 찾길

태풍 ‘힌남노’로 아직 유례없는 경제위기를 겪는 포항시의 재해복구를 위해 정부가 지난달 31일 포항시를 2년간(10월 31일~2024년 10월 30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했다. 포항시는 이 제도 시행 이후 혜택을 받는 첫 지자체다. 이강덕 포항시장과 포항출신 김정재·김병욱 국회의원은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추경호 경제부총리, 이종섭 국방부장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만나 포항의 태풍재해 현황을 설명하고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했다. 정부는 지난 9월 28일 “태풍피해로 인한 국가 기반산업의 위기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포항시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하기 위해 현장실사를 했었다. 현재 포항 철강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기업들은 지난 9월 6일 엄습한 태풍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봤음에도 재난지원금 지급을 비롯한 직접적 피해 지원이 없어 경영위기가 심각한 실정이다. 태풍으로 포항에서는 포항제철소를 비롯해 현대제철 포항공장 등 400여 개 기업이 침수, 건물 파손, 토사 유출 등의 피해를 봤다.정부의 선제대응지역 지정으로 포항시는 향후 피해기업 설비 복구비, 경영안전자금, 산업단지 기반 재정비, 철강산단 구조전환 촉진 등 17개 사업에 6천396억원의 지원을 받게된다. 이와함께 기업들도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 대출 만기 연장, 상환 유예 등 금융도움을 받을 길이 생겼다. 정부는 철강산단의 전반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예산은 별도로 마련해 보겠다는 생각이다.포항시가 정부에 요구한 예산이 많이 삭감되긴 했지만, 정치권과 힘을 합쳐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받은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예산은 국회심의 중에 증액될 여지는 있다. 아직 포스코 포항제철소 조업이 정상화 안돼 협력업체와 관련 중소기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포항시는 이번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을 계기로 기간산업인 철강업계가 태풍피해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정부와 긴밀히 협조해 예산 확보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2022-11-01

공정하다는 착각

조현태수필가 마이클 샌델의 저서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카지노 업계의 대부인 억만장자 셀던 에이들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세계 최고 부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간호사나 의사보다 수천 배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카지노 시장과 보건 시장이 모두 완전경쟁 시장이라고 할지라도 그 시장 가치가 그들의 사회 기여도를 나타내는 진실한 척도라고 볼 까닭은 없다. 그들이 소비자 수요에 얼마나 부응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의 도덕적 가치에 기여도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슬롯머신을 즐기고 싶어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일보다 더 큰 도덕적 중요성을 갖는다.(‘공정하다는 착각’p.223)운수와 선택을 비교하자면 능력과 자격의 판단이 불가피해진다. 도박에서 져야 마땅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질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짊어진 도박사는 졌을 때 사회에 그의 판돈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그의 불운은 자업자득이다.물론 어떤 경우는 과연 무엇을 ‘선택’으로 볼 것인지 모호해진다. 어떤 도박사들은 도박중독에 빠져있다. 슬롯머신은 도박사들이 노름을 끊지 못할 만큼씩만 이기도록 승률이 조작되어 있다. 이런 경우 도박은 선택이라기보다 약자를 이용해 먹는 강압의 결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런 리스크를 걸머지는 한, 행운 평등주의자들은 그들이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그들은 자기 운명을 책임져야 마땅하다. 적어도 그런 일에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줘야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무엇이 진정 자발적인 선택인가에 대한 친숙한 논쟁을 넘어서, 운수와 선택의 구분은 또 다른 고려 때문에 모호해진다. 보험의 가능성이다. 만약 내 집이 불타버렸다면 분명 그것은 운이 나쁜 것이다. 그러나 내가 화재보험을 들 수도 있었는데 들지 않았다면 ‘설마 불이 나겠어’라는 생각을 하며 매년 쓸데없이 보험금 내기를 아까워했다면? 화재 자체는 ‘눈먼 운’이라도, 보험을 들지 않은 나의 선택은 나의 불운을 ‘선택 운’으로 바꿔 놓는다. 보험에 들지 않기로 선택함으로써 나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며 납세자들에게 내 집의 손상을 보상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p.237)도박에서 잃은 판돈을 사회에 요구할 권리나, 화재보험에 들지 않고 불탄 손해를 보상해 달라는 요구는 마땅히 거부당해도 불평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마약에 중독된 자가 마약을 구하지 못하면 곧 죽을 지경이어도 구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제한한 것을 불법이라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공정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방편임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그렇듯이 일부 고위층이 직위나 욕심을 보전하기 위해 사회적 물의에 마약처럼 중독되어 있는 듯하다. 그런 사람일수록 공정한 고유 업무에 충실한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떡고물이라도 얻으려고 그 주변을 맴돌며 열띤 응원까지 하는 모습도 보인다.이 현실을 두고 누가 책임질 것이며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끝판 왕 보험사는 없을까.

2022-11-01

‘퇴비장’을 ‘토양장’이란 용어로 하면서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우리나라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2007년 개정)에 따르면 사망한 사람을 ‘자연장’으로 치를 수 있는데, 자연장이란 화장한 유골의 골분(骨粉)을 흙과 섞어 용기사용 없이 또는 생화학적으로 분해 가능한 용기에 담아 수목·화초·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법률 제2조). 이 장례 방법은 넓이는 가로세로 50센티미터 이하 그리고 깊이는 30센티미터 이상 땅을 파서 골분을 묻으면서 분묘를 만들지 않고 유골을 묻은 자리에 석물 등을 설치할 수 없으므로 아주 자연친화적이다. 초기엔 거부 반응도 많았으나 지금은 자연장법을 따르는 사례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최근 신문기사에 의하면 미국에선 ‘퇴비장’이란 장사 방법이 시행되고 있다는데 이는 시신을, 전통적 매장이나 화장이 아니라 거름용 흙으로 만들어 처리하는 ‘인간 퇴비화 매장’(Human Composting Burial) 방식이며 이용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 방식은 시신을 철제 용기에 담아 풀과 꽃, 나무 조각, 짚 등 생분해 원료를 더한 뒤 6~8주간 바람을 통하게 하여 미생물과 박테리아가 시신을 천천히 자연 분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매장은 시신 처리부터 관 제작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데다 생분해에 오랜 시간이 걸리며, 화장도 목재·연료 등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데, 그에 비하여 퇴비장은 환경오염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일부 시민들은 퇴비장이 고인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불경스러운 장례법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며, 가톨릭 교계 등에선 인간을 일회용품으로 만드는 행위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편으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육신의 부활을 믿기 때문에 퇴비장의 합법화에 반발한다고 한다. 하지만 성서의 창세기에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와 “하나님은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다”는 구절이 있으니 가톨릭 교계에서도 생각을 조금만 달리한다면 퇴비장에 대해 반대할 사항이 아니라고 본다.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점은 미국에서는 어떻게 하든, ‘퇴비장’이란 용어를 ‘토양장’으로 바꾸어서 우리나라 자연장법에도 이 방법을 도입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낙엽이나 풀이 말라서 쌓이고 그것을 온갖 생물들이 이용하고 마지막에는 미생물까지 가세하면서 긴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토양’이다. 토양은 우리 인간에게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물과 함께 꼭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퇴비’라고 하면 옛 농사법에서 풀, 짚 등과 가축의 똥, 오줌 또는 그 밖의 잡살뱅이를 섞어서 만든 거름을 연상하게 되어 기분이나 느낌이 좋지 않을 것이나, ‘토양’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가장 소중한 요소인 흙이니 ‘토양장’이라 부른다면 부정적 생각이나 이미지는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토양장으로 만들어진 토양을 고인이 좋아했던 장소 등에 뿌리거나 유족들의 뜻에 따라서는 집안의 나무나 화단에 뿌려서 유해를 가족 곁에 두며 고인의 모습을 기리는 것도 의미 있는 장례법일 것이다.

2022-11-01

초기 기독교미술의 앱스 모자이크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밀라노 칙령이 발효되면서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허용했다. 기독교도들은 바실리카라고 불리는 로마의 공공건물 구조를 모방해 교회를 지었고 벽면을 그림으로 장식했다.초기기독교 시기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벽화기법은 모자이크였다. 모자이크는 아주 오래된 기법으로 작은 크기의 돌 조각이나 유리에 색을 입히고 그것을 배열해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섬세한 묘사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관리가 용이하고 보존력이 탁월하며 무엇보다 빛을 받아 반짝이면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교회가 지어지고 그곳을 그림으로 장식해야 했던 기술자들은 난생 처음 기독교라는 신생 종교의 가르침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야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이들은 아직 창작하는 미술가가 아니라 제작하는 기술자였다. 재료를 능숙하게 다루어 형상을 만드는 일은 육체노동으로 여겨졌다. 교회를 장식해야하는 임무가 떨어졌을 때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이미지에 기독교적인 내용을 입히는 것이었다. 로마의 산타 푸덴치아나(Santa Pudenziana) 교회 앱스 모자이크는 그 당시 기술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교회건축에서 앱스(apse)는 제단이 놓인 뒤쪽 공간의 끝 쪽 벽면을 가리킨다. 앱스의 상단 부분은 움푹 들어간 반구형으로 마무리되어 있으며 많은 경우 모자이크나 프레스코 장식이 들어간다. 산타 푸덴치아나의 앱스 모자이크는 420년경에 제작이 되었다. 로마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초기기독교 시기의 모자이크 작품이다.모자이크에는 옥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덥수룩한 수염의 중년으로 그려진 그리스도를 비롯해 모자이크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모두 고대 로마의 의상인 토가(Toga)를 입고 있다.황금색의 화려한 토가는 그리스도의 위엄과 고귀함 그리고 성스러움을 드러낸다.값진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황금 보좌에 앉은 그리스도는 오른팔을 넓게 펼치며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왼손으로 펼쳐 보이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문구가 쓰여 있다. “Dominus conservator ecclesiae Pudentianae”, 번역하면 “주님이 푸덴치아나 교회의 보호자이시다”라는 뜻이다. 이 문구만 아니라면 모자이크가 묘사하는 장면을 로마의 어느 철학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장면이라 해석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모자이크의 후경에는 견고하게 세워진 건축물들이 그려져 있다.흔히 천국을 상징하는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해석된다. 짙은 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무언가 신비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로 거대한 황금 십자가가 세속적 시공을 초월한 듯 하늘에 떠 있다. 십자가의 의미는 공공연하다. 인류의 타락, 죄와 심판,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구원이라는 기독교 핵심교리를 함축해 상징하는 것이 십자가다.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귀한 죽음을 상징하는 십자가 좌우로 실체를 알 수 없는 날개 달린 생명체가 보인다.십자가 주변에 떠있는 생명체들은 신약성서의 4복음서를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 대한 상징이다.사람은 마태를, 사자는 마가를, 황소는 누가를, 독수리는 요한을 상징한다. 이 같은 상징의 성서적 근거는 요한계시록 4장에서 찾을 수 있다. 산타 푸덴치아나 앱스 모자이크에 묘사된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4복음서자들의 상징은 ‘영광의 그리스도(Majestas Domini)’라고 하는 독립된 도상으로 발전해 중세미술에 나타난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2-10-31

바닥에는 검은 진흙이 <Ⅶ>

간혹 출근 시간 필립은 회사 사옥의 소나무 앞에서 소나무를 바라보며 서 있기도 했다. 어깨를 낮추어 뒤로 제치고, 턱을 아래로 당겨 내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필립을 보며 직원들은 만식에 대한 그리움이라 여겼지만 필립은 만식을 그리워한 적 없었다. 말하고 싶었다. 이 일은 이렇게 할 것이고 저것은 저렇게 처리할 것입니다. 듣고 싶었다. 나무 아래 만식의 대답을. 해답은 네가 알지. 나는 들어주기만 할 뿐이지. 만식은 생전에 이렇게 말해준 적 한 번도 없었다.필립이 늦은 퇴근을 하는 날이면 소나무는 회사를 나서는 필립의 등 뒤로 선선한 바람을 불어주었다. 겨울이 오면 세찬 바람을 막아 줄 소나무였다.필립은 소나무를 지나치며 혼잣말을 하곤 했다. 이제야 아버지로 오셨군요.-이제 다시 편해지셔야지요. 저도 이제 상황 파악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아버님이 작은아버님과 함께 하신 일이 제법 되던데. 이제 제가 집행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필립의 말에 영권이 웃었다. 크게.-우리 조카님이 아버님의 유지를 받든다 하니 이제야 내 마음이 편해지네.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맙네. 고마워. 그래 그 젊은 아가씨 뱃속의 아이는 어떻게 하기로 했나?-제 동생입니다. 아버님이 생전에 말씀하신 것도 있고.변호사에게 맡겨놓았거나 금고에 보관해 둔 유언장은 없었다. 만식이 필립을 만나 안나의 뱃속 아이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유언이 되었다.필립은 만식의 부탁 중 가능한 것들은 모두 들어 줄 생각이었다. 필립은 아이가 건강하고 똑바르게 자라도록 도와야 했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노마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부탁과 약속은 그것들을 행하는 자의 의지에 기댄 것들이다.아이가 건강하고 똑바르게 자라 무엇을 하게 될지는 나중의 문제다. 그것 또한 필립에게 달려 있었다.-한번 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필립이 회전의자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봐야지. 어디서 볼까? 나야 조카님이 편한 시간, 편한 장소면 다 좋아. 요즘 의회 일정도 없고.-다음 달 십오 일부터 이십이 일 사이에 편하신 시간을 말씀 주시면 그에 따르겠습니다. 저는 십육 일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선물 준비하는 시간이 좀 필요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렇습니다. 수행원 없이 만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요즘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그래야겠지. 어디 보자. 그러면 내가 일정을 한번 확인하고 다시 말씀을 드리겠네. 뭐 특별한 일은 없을 거야. 어디서 볼까? 공이나 한번 칠까? 아니야. 조카가 공은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더라고. 술은 어때? 술 좋아하나?-작은님 뜻하시는 대로 다 따르겠습니다만, 수행원 없이 만나려면 이번에는 특별한 일정은 안 만드시는 것이.-듣고 보니 그렇군. 알겠네.필립과 영권은 서로 전화를 먼저 끊으라며 실랑이를 했다. 결국 영권이 전화를 먼저 끊었다.영권과 통화를 끝낸 필립은 다시 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나야. 날짜를 잡았어. 먼저 말했던 대로 십육 일 만나기로 했어. 내용은 이전과 비슷하니까 모두 같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너에게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 굳이 듣고 굳이 알아서 좋을 건 없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을게. 넌 어때? 진행해도 되겠어?-네. 이미 마음먹은 일인걸요. 형님도 감당하셨잖아요.-그래, 그러면 러시아 가기 전에 들러서 얼굴이나 한번 뵙고 가도록 해. 어찌되었건 할 건 해야지.영산에서 아드님이 올라왔습니다.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모니터에 메시지가 올라왔다.들어오라 해.인호가 방으로 들어와 영권 앞에 섰다. 영권이 고개를 들어 인호의 얼굴을 보았다.-살이 좀 빠졌나 보다. 얼굴의 턱 선이 보이는 구나-요 며칠 동안 잠을 설쳐서 그렇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인호는 자신의 턱을 손으로 만지며 대답했다.-그래 무슨 일이냐?영권이 인호에게 물었다. 약속이나 전화 없이 영산시를 벗어나 영권의 사무실까지 오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이틀 뒤 러시아에 갑니다. 영산시 시의원들 연수에 동행하기로 했습니다.-벌써 시간이 그리되었나? 십오 일인가?영권은 책상 달력을 보며 말했다.-네. 일주일 일정입니다. 인천공항으로 출국하는 거라서 조금 일찍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출발하기 전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새삼스럽구나. 최 회장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십육 일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혹시 같이 보겠느냐? 수행원 없이 만나기로 했지만, 너는 내 아들이니. 러시아 가는 것 취소하고. 연수 동행이야 한 번쯤 빠져도 되잖아?-아닙니다. 아버님 혼자 만나십시오. 필요 이상으로 깊이 알고 싶지 않습니다./김강 소설가

2022-10-31

대구-안동 맑은물 협약, 도시상생의 모범되길

대구시와 안동시가 2일 안동댐에서 낙동강 상류댐 물을 대구 식수원으로 활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안동·임하댐 맑은물 공급과 상생발전을 위한 협약’을 체결한다. 이번 협약으로 대구시는 지역의 숙원인 대구취수원 다변화 문제의 해결점을 찾고자 하며, 안동은 대구시의 협력으로 신공항 산단 유치 등 지역발전의 새로운 모티브를 모색하고자 한다.협약안에는 △안동시는 대구시에 맑은물 공급 적극 지원 △대구시는 안동시에 국비 등 기금 지원과 안동 농특산물의 구매 △국가 상수도 계획 반영에 상호협력 △안동·임하댐 수질 개선 및 수변관광 활성화 등에 상호협력 △신공항 연계 산업단지 조성 계획에 안동시가 포함될 수 있게 노력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대구시민에 대한 맑은물 공급은 1991년 낙동강 페놀유출 사건 이후 30년 넘게 끌어온 대구시 숙원사업이다. 전 정부에서 구미 해평취수장을 공동 취수장으로 활용하자는 것을 요지로 해결책으로 제시했으나 구미시의 반대로 지금은 원점 상태다.홍 시장이 취임하면서 안동 임하댐 물을 상수원으로 하겠다는 제안을 하고 안동시장이 전격 수용하면서 이 문제는 지자체간 상생협력 차원에서 해결점을 모색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양 도시가 상호협력을 통해 각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어서 색다른 의미가 있다. 안동시는 지난 수십년동안 지역민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힌 안동·임하댐을 수자원으로 활용해 도시의 경제적 기반을 일으키고자 하고, 대구는 댐을 통해 보다 맑은물을 식수로 공급받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두 도시의 협약으로 안동·임하댐 물의 활용에 관한 합의는 도출됐으나 국가 차원의 정책 반영과 예산확보 등 추가적 난제도 적지는 않다. 그러나 두 도시의 상호협력과 상생의 정신이 뒷받침되면 이런 문제도 충분히 풀어갈 수 있다.날로 치열해지는 도시경쟁 사회에서 지자체간 상생협력은 새로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대구와 안동의 협약이 두 도시 발전에 기여하는 성공한 협약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2022-10-31

메멘토 모리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철학의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인생도 가을을 맞으면 생각이 깊어진다. 권력·재산·명예도 모두 한 때일 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우리의 삶도 끝없는 세월의 변화 속에 존재하는 찰나(刹那)에 불과하다. 젊은 시절에 외면했던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야 철이 드는 모양이다.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이 라틴어 격언은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고대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고, 중세의 수도사들은 만날 때 마다 서로 나누는 인사말이 ‘메멘토 모리’였다. 승리의 환희 속에서도 죽음을 기억하고, 수행의 성찰 속에서도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이처럼 우리는 왜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실존적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이다.하이데거(M. Heidegger)는 “죽음이 삶의 본래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죽음은 삶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삶과 동시에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어간다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은 삶의 가장 절실한 친구이자 삶의 일부이다. 때문에 삶과 죽음은 ‘모순(contradiction)이 아니라 역설(paradox)’로 이해되어야 한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이 삶에 말하는 충고’이다. 죽음을 기억할 때 비로소 ‘삶의 본래성’을 회복함으로써 거짓된 삶으로부터 진정한 삶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메멘토 모리는 우리에게 생명과 능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언제나 겸손하라고 가르친다. 절정의 순간을 맞이한 개선장군의 뒤에서 노예가 ‘죽음을 기억하라’고 외친 까닭은 무엇인가? 너도 언젠가 죽음을 맞을 것이니 승리에 우쭐대지 말라는 것이다.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그럼에도 정치권력·자본권력·언론권력 등 권력을 가진 자들은 오만과 독선에 빠져있으니 메멘토 모리의 가르침을 잊은 것 같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그러니 모두 목에 힘을 빼고 겸손하라.메멘토 모리는 ‘삶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삶에 대한 몰입’을 증대시킨다. 죽음을 외면한 삶은 온전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톨스토이(L. Tolstoy)는 “죽음을 대면하고 살아갈 때 삶의 성장과 초월이 일어난다”고 했다. 우리가 죽음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면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숙고하게 된다. 메멘토 모리가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되면 누구나 추구하는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것을 찾게 됨으로써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듯이 인생의 겨울도 피할 수 없다. 죽음을 기억하며 사느냐, 죽음을 망각하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진다.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는 인생은 불행하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하며, 잘 산다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의 문제다. 죽음 앞에서도 후회하지 않는 삶의 철학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2022-10-31

경북이 배터리·원전 기술 투자의 최적지

포항·경주·영덕·울진 등 경북 동해안 지역의 핵심산업인 이차전지(배터리)와 차세대 원전기술이 ‘국가전략기술’로 선정돼 앞으로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진다. 정부는 지난 주말(10월 28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열고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첨단 모빌리티, 차세대 원자력 기술 등 ‘12개 분야 전략기술’을 선정해 향후 5년간 25조원 이상을 신규투자하기로 했다.12개 분야 전략기술에는 포항시와 경주시가 핵심기술로 연구하고 있는 이차전지·원전 기술이 포함돼 있다. 포항에는 현재 에코프로, 포스코케미칼, GS건설 등이 국내 자동차 배터리 산업을 견인하고 있으며, ‘포항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는 전국 29개 특구 중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면서 3년 연속 우수특구로 지정됐다.차세대 원전산업 역시 경북도가 미래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경북도는 최근 소형모듈원자로(SMR) 국가산단을 경주에 유치하기 위해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전력기술, 포스텍(포항공대)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경주에 SMR 국가산단이 조성될 경우 기술개발과 건설, 운영, 해체에 이르기까지 원전 전주기를 갖추게 된다.정부는 12개 분야 전략기술 예산 배분 등 프로젝트 전반을 민간 전문가에게 맡긴다고 하는데, 이렇게 할 경우 국가전략기술 예산 역시 수도권 RD 기관에 집중돼 국가균형발전을 더 후퇴시킬 가능성이 크다. SMR이나 이차전지 산업 같은 시급성이 높은 산업의 기술개발은 이미 관련기업 생태계가 형성돼 있는 현장에 신규투자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적재적소의 인재를 확보하고 산·학·연 협력을 강화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포항에는 포스텍(전문연구인력 양성), 방사광가속기 연구소(배터리 소재 RD 기관), RIST 이차전지소재연구센터, 나노융합기술원 등 배터리산업의 인프라가 이미 구축돼 있고, 경주에도 원전관련 산·학·연 기관들이 집적돼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지역에 RD 투자를 집중할 경우 글로벌 기술주도권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

2022-10-31

헌화(獻花)

홍석봉 정치에디터 대한민국이 충격에 빠졌다. 국민들은 비통하고 참담함에 말을 잊었다. 채 꽃 피워보지도 못한 젊음이 거리에서 스러졌다. 즐거운 핼러윈 축제가 비극이 됐다. 희생자들이 전하는 사연마다 아픔이 절절히 배어 있다. 어떻게 이런 비극이 자꾸 되풀이 되는가.정부는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두 번째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청춘이 짓밟혀도 국가는 없었다. 안전과 보호는 오간데 없었다.참사 현장에 헌화와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위로하는 시민들의 가슴 아픈 애도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헌화와 추모글이 줄을 잇는다.헌화는 죽은 자에 대한 추모 의식이다. 동서양이 모두 비슷하다.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 고대의 종교 의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죽은 자를 위해 꽃이나 풀을 부적으로 사용했다.고대 로마인들은 묘지 주변에 장미를 심어 영원한 봄을 기원했다. 장미 헌화는 중세까지 이어져왔다.동양에서는 국화를 헌화에 사용한다. 국화는 조의의 꽃말을 가졌다. 흰 국화는 서양에서 죽음을 의미한다. 개화기 때 들어온 헌화 풍습은 흰색을 선호하는 우리의 관례에서 비롯됐다. 장례식이나 추모행사 때 흰 국화를 사용하는 것은 망자의 안식과 영생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우리나라에서 국화는 청순, 정조, 절개, 고결함을 상징한다. 국화의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높이 기렸다. 서리가 내린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를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 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문화는 차이가 있지만 고인을 추모하는 염원은 동서양이 같다. 그래서 시들지 않은 생화를 사용한다. 국화의 계절에 흰 국화를 그대들에게 바치는 이 안타까움을 그대들은 아는가./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0-31

낭송으로 피는 詩香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잎들이 곱게 물들며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푸르기만 하던 숲에는 어느새 하늘빛 그리움이 내려앉아 잎새들은 저마다의 감성으로 노란빛을 띠거나 홍조(紅潮)의 가슴으로 땅을 향한 연서(戀書)를 쓰고 있다. 이른 홍엽(紅葉)들은 벌써 땅 위로 떨어지며 포도(鋪道) 위를 뒹구는 몸짓으로 가을의 서정을 노래하고 있고, 길섶의 들국화는 서리를 맞을수록 외려 꼿꼿하게 제 멋 떨구는 자태로 만추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빛과 색의 향연이 풍엽(楓葉)으로 펼쳐지는 들길이나 숲길에 들면, 가을의 소리가 잔잔히 들리는 것 같고 계절의 시가 저절로 흐르는 듯하다.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미틈달 11월은 시의 날(11월1일)로 시작된다. 언어의 다양성 확보, 인간의 내면 정화, 청소년 교육, 문화 교류의 수단 등 시의 다양한 역할을 알리고 시를 보호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시의 날’은 매년 3월 21일이지만, 우리나라는 한국 최초의 신체시인 최남선의 ‘海에게서 少年에게’가 한국 최초의 월간지인 ‘소년’ 창간호에 발표된 1908년 11월 1일을 ‘시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시의 보존과 확장을 위해 시와 음악·미술·영화·연극 등 예술분야 간의 접목, 시 낭송회 개최, 홍보를 통한 시의 현대적 이미지 구축, 젊은 시인을 위한 중소 출판사업 등을 장려하고 있다.결실과 수확의 계절 답게 시의 날을 전후해서 포항지역에서는 시낭송회 등이 풍성하게 열리고 있어서 한결 넉넉하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안도의 가슴으로 시를 읽고 감상하며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의 여유와 시의 힘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한 편의 시에서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우칠 수 있고, 고뇌와 애환의 그루터기를 가늠하며 공감과 감정의 정화작용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가슴에 품은 시를 목소리에 담아 낭송으로 울림을 주면 시의 향기가 세상에 널리 홀씨처럼 퍼지게 될 것이다.지난 주말, 구룡포를 사랑한 시인들과 시낭송가들이 구룡포수협 창립 100주년 및 마을시집 발간기념으로 흥취로운 시낭송 마당을 펼쳐서 고무적이었다. ‘漁花滿代 구룡포, 詩가 되다’를 주제로 시낭송, 시극, 시노래, 참여시인 낭송 등으로 시종 다채롭게 열려 구룡포 일대가 온통 시의 꽃으로 피어나는 듯했다. 또한 이번 주말, 포항시낭송회에서 주최하는 제1회 정기 시낭송 발표회는 오낙률 시인의 근작시를 ‘포항 12경, 四季로 만나다’로 각색해 시낭송과 영상, 성악과의 콜라보 등으로 이색적으로 펼쳐질 예정이라서 사뭇 기대되기도 한다.이러한 시낭송의 다양한 레퍼토리는 시를 낭송으로 승화시키는 언어예술로, 영혼을 맑게 하고 심금을 울려주며 힘겨움을 완화시키는 위안과 치유에 도움을 줄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감동과 행복으로 피어나게 하는 시낭송 문화가 풍요로운 가을의 서정을 한결 섬세하고 정갈하게 수놓아 줄 것이다.

2022-10-31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세심한 배려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핑거볼(손가락을 씻는 작은 물그릇)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중국 고위 관리들을 초대하여 정찬(正餐)을 나눌 때이다. 서양식 식사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손님들은 핑거볼에 담긴 물이 손 닦는 물인지 모르고 마시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이때 여왕은 손님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자신도 그 물을 마셨던 것이다. 이 사건은 지금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상징하는 이야기로 유명하다.나중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배려 행동에 대해 듣고는 중국 고위 관리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배려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중요한 덕목이라 하겠다.배려하는 삶에 대해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듣고 배우지만 막상 몸소 실천하기는 쉽지가 않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의식적인 또다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각만 가지고는 어렵다. 특히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현재 시점에 서로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더욱 절실한 때라고 본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기업 경영에서 ‘배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배려에 대해 LG그룹의 임원 교육 내용을 보면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드는 첫걸음이 바로 배려라고 했다. 배려의 출발점은 높은 사람일수록 먼저 눈높이를 맞춰야 하고, ‘임원이 먼저 부하 직원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사가 개인적인 상황에 대해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면 감사한 마음이 들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더욱 일에 몰입하게 된다는 논리다.혼다클리오 자동차 대리점 화장실에는 고객에 대한 세심한 배려 사례가 곳곳에 있다. 어항을 아름답게 꾸며서 분주한 세상을 잠시 잊도록 한 사례, 정성스럽게 포장된 기저귀가 있어서 드물지만 꼭 필요한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사례 등으로 일본 내 고객 만족도 1등 기업이 되기도 했다.사장은 ‘화장실은 그냥 볼일 보는 곳이면 되지’라는 생각을 한다면 서비스 산업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세심한 배려없이 마케팅을 하지 마라. 서비스 산업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런 것까지 신경 쓰다니’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 고객은 감동과 감사의 마음을 느끼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인간관계의 최고의 책으로 꼽히는 논어(論語)에 보면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며,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깨지지 않고 하나가 되며, 장애물을 굽히고 적응함으로써 결국 바다에 이른다. 물처럼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고 배려하는 것을 배우라고 했다.이번 칼럼에서 배려와 관련하여 직장 상사의 행동은 드라마틱하고 영웅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성공한 리더가 되는 길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비스 경쟁력이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에 물처럼 세심한 배려로 성공하는 리더가 되길 기대해 본다.

2022-10-31

과거 청산, 오래 끌지 마라

정치가 얼어붙었다. 여야 협조를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듯하다. 검찰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을 거침없이 몰아가고 있다. 민주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야당탄압, 보복 수사 중단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민주 정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이다. 민주당은 국회 의석 299석 가운데 169석을 차지한 절대다수 정당이다. 민주당 협조가 없으면 임기 절반을 허송세월할 수도 있다. 대통령으로선 어떻게든 여야 관계를 풀어야 할 처지다. 그렇다고 이미 드러난 혐의를 덮으라고 하는 것도 부당한 수사 개입이다. 윤 대통령이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률이 6주 만에 30%를 넘었다. 아직 지지율이 심각하게 바닥이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회복 조짐을 보이는 건 윤 대통령에게 고무적이다. 지지 이유에 대해 ‘국방·안보’(10%) 외에 ‘공정·정의·원칙’(9%)과 ‘부정부패·비리 척결’(5%) 등을 꼽았고, ‘공정·정의·원칙’은 지난주보다 6%포인트나 올랐다. 특히 보수층에서 지지가 오른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수사를 지지한 결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윤 대통령이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국민의 기대다. 그는 검사 이외에 다른 경험이라고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총장에 임명할 때도 외골수라며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정치력이 없다는 말이다. 좋게 보면 수사에 내 편, 네 편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잘하는 것은 바로 이 범죄 수사다. 그를 선택한 사람들이 기대한 것도 그것이다.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맡아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근혜·최순실 사건 수사팀장도 맡았다. 문재인 정부에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비리 수사로 정권과 부딪쳐 검찰총장에서 쫓겨났다. 이 바람에 이념과 관계없이 수사에 엄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평가가 대선 당시 국민의 불만과 맞아떨어졌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조국의 강’을 건너지 못해 정권을 내놨다고 뒤늦게 반성했다. 그만큼 ‘내로남불’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컸다. 공정사회에 대한 열망이다. 그게 윤 대통령에게 맡겨진 소명이다. 경제나 다른 분야는 전문가에게 맡기더라도 그 일은 잘할 것이라는 기대다. 물론 다른 분야를 맡긴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 권력자가 겸손해야 하고, 제대로 된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정적을 수사한다고 무조건 정치보복은 아니다. 이재명 대표의 혐의는 민주당 내부에서 먼저 제기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법을 정치 탄압 수단으로 이용했다. 정치자금도 집권 세력이 독점했다. 그러나 이제 다르다. 정치인 범죄라고 눈 감으면 권력형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진실을 밝혀야 정치보복인지 가릴 수 있다. 지금 거론되는 혐의들만 보면 지방정부의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다. 여야를 떠나 척결해야 할 대상이다.대통령 중심제에서 임기 초는 중요하다. 이때를 놓치면 어려운 일을 처리하기 힘들다. 그 황금기를 여야 대치로 허비하고 있다. 그 힘을 국가 비전이 아니라 과거 청산에 쏟는 것도 안타깝다. 굳이 피할 수 없는 수사라면 속전속결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빨리 반전을 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혐의가 명확한 것만 손대는 게 옳다. 사소한 트집 잡기나 부풀리기, 견강부회는 피해야 한다. 대통령이 하지 않아도 될 정치권 논란까지 끼어들거나, 전선을 확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내년 경제가 매우 어둡다. 야당 협조가 없으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어차피 지지율이 바닥이니 눈치 보지 말고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내년 총선까지 수사를 끌고 가자는 유혹도 있다. 국민이 바보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계산하는 순간 수사는 역풍을 맞는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계속된 ‘적폐 청산’만으로도 지겹다. 확실하게 혐의가 입증되는 것만으로 빨리 끝내지 않으면 박수가 야유로 변할 수 있다. 김진국 고문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2-10-30

신재생에너지 정책, 독일에서 배우자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미국의 뉴욕 주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70%로 늘리고 2040년에 100% 달성하기 위해 캐나다 퀘벡 주로부터 신재생에너지를 수입한다는 내용이 최근 언론에 보도됐다.545km에 이르는 송전망 건립에만 45억달러(6조5천억 원)가 투입된다고 한다. 뉴욕의 환경운동가들은 “탄소중립을 일찍 시작했더라면 더 안전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고 당면한 문제인 만큼 최대한 빨리, 확실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탄소중립 대비는 늦으면 늦을수록 더 큰 대가와 비용이 따른다는 교훈이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당시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는 등 탄소중립 시대정신을 역행하다 지금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뉴욕주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우리나라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우리 나라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은 지난해말 현재 7.2~8.1% 정도다. OECD 38개국(평균 28.0%) 중 꼴찌다. 반면 우리나라는 반도체(삼성·SK), 자동차(현대), 철강(포스코), 조선 등 세계 굴지의 제조업체들이 즐비해 있어 전력소비는 세계 8위에 랭크돼 있다.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즉 신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이루어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정부와 산업계의 대응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탄소중립 정책과 관련한 우리나라 정책은 어지러울 정도로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 2017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발표 때는 2030년 발전비중을 20%로 제시했었다. 그 뒤 2021년 NDC 발표 때는 30.2%로 상향했다가 2022년 다시 21.5%로 낮춰 잡았다.산업계에선 2021년 발표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에 대해서는 ‘현실을 무시한 불가능한 목표치’라고 했다가, 올해 정부가 목표치를 낮추자 이번에는 “2030년 40% 이상은 돼야한다”며 롤러코스터식 반응을 보이고 있다.우리와 비슷한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독일은 지난 2016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29.3%였지만 2021년에는 40%를 상회했다.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35년에는 55~60%, 2050년에는 80%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2050년 목표치를 100%로 늘렸다. 에너지 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전쟁과정에서 뼈저리게 터득했기 때문이다.독일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1990년까지만 해도 0%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난 2009년과 2014년 재생에너지 실행계획과 재생에너지법 제정을 통해 2050년 ‘탄소배출 제로’ 계획을 세운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9월 5일 삼성전자가 RE100 가입을 선언한 만큼 앞으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기업들은 곧 공급망을 포함해 RE100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무역장벽에 부딪히게 된다.만약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한계점에 달하게 되면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떠나야 할 상황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 SK, 현대, 기아자동차가 앞다퉈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이유 중에는 신재생에너지 100% 공급이 가능한 새로운 산업생태계의 필요성도 포함돼 있다. 일본 소니사가 지난 202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늘려주지 않으면 일본을 떠나겠다고 경고한 뒤, 일본정부가 부랴부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목표를 20%대에서 38%로 상향한 것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기업이 필요로 하는 신재생에너지를 충분히 제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련 법안 제정이 시급하다. 규제 위주로 제정된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정비도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태양광과 풍력 설비를 할 때마다 야기되는 민원 해소를 위해 ‘주민주도형’ 발전사업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독일의 경우 지난 2009년과 2014년 재생에너지 실행계획과 재생에너지법 제정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이 활성화되도록 했다. 재생에너지법에 의해 독일의 태양광발전시설(600만개 이상) 대다수는 개인이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발전사업자가 지주들이 토지를 임대해 발전소를 운영하기 때문에 수많은 민원이 제기된다. 태양광발전사업자들이 금융기관 대출로 대규모 토지를 임대해서 사업을 하다 보니 대출 비리, 민원쇄도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발전사업을 주민주도형(지주, 기업, 금융기관, 시공사 참여)으로 하면 민원문제 해결, 과다대출에 따른 부작용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을단위 발전사업(한 마을에 최소 10MW 이상 30MW 정도)에 따른 규모의 경제도 실현된다. 마을단위 발전사업을 할 경우, 관리인력 일자리(1MW당 3명 정도)와 발전수익(논농사의 20배 이상 수익 기대)으로 농촌의 소멸을 막아낼 수 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신재생에너지 생산도 물론 가능하다.

2022-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