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이 되자 농구화를 신고 등교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스포츠는 단연 농구였다. ‘슬램덩크’와 ‘마지막 승부’, 그리고 기아자동차, 연세대, 고려대 등이 활약하던 농구대잔치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NBA(북미 프로농구 리그)의 인기 때문이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 가면 NBA 스티커와 수집책을 팔았다. 밀봉된 팩에 NBA 선수 스티커가 무작위로 들어 있고, 그것을 수집책에 붙여서 모을 수 있었다. 그 조잡한 인쇄 품질로 미루어 볼 때 정식 발매된 것이 아니라 이문에 밝은 누군가가 해적판으로 만들어 유통시켰던 것 같다. 수집책에는 선수 이름과 빈 칸이 있어서 모든 스티커를 모으면 이동식 농구대를 받을 수 있었다. 농구대를 놓을 만큼 넓은 마당을 가진 아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우리는 그 스티커 모으기에 열광했다. 샤킬 오닐, 찰스 바클리, 하킴 올라주원처럼 유명한 선수들의 스티커는 희귀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것은 마이클 조던이었다. 마이클 조던 단 한 명을 채우지 못해 매일같이 문방구를 들락거리며 용돈을 탕진하는 아이가 한둘이 아니었고, 나 또한 그중 하나였다.
중학생이 된 기념으로 외할머니가 ‘에어 조단’ 농구화를 사 주셨다. 그때는 ‘조던’이 아니라 ‘조단’이라고 불렀다.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아티스’ 운동화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나이키 농구화는 유년기에서 청소년기로 넘어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그렇게 재미있던 미니카와 팽이치기가 점차 시들해지고, 빈 농구대를 찾아 이 학교에서 저 학교로, 이 공원에서 저 공원으로 방황하는 날이 늘어났다. 물론 ‘에어 조단’이 마이클 조던의 농구 실력까지 부여해주는 것은 아니라서 내 슛은 림을 빗나가기 일쑤였다.
최근 개봉한 영화 ‘에어’는 나이키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농구화인 ‘에어 조던’ 시리즈의 탄생과정을 다룬다. 1984년, 업계 최하위였던 나이키는 브랜드를 대표할 새 모델을 찾는 과정에서 NBA 루키였던 마이클 조던을 주목한다. 예산 부족으로 경쟁 업체들에 밀리는 상황이었지만, 나이키의 스카우터는 조던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단 한 명의 선수를 위한 농구화 라인업을 제안해 계약을 성사시킨다.
이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1980년대 미국발 대중문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당대의 다채로운 풍경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하나의 상품에 불과한 농구화에 스토리를 부여하여 레거시(legacy·유산)로 만들어 내는 미국 문화의 힘이 경이롭기도 하다. 스카우터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 분)를 중심으로 한 ‘에어 조던’ 팀의 활약상도 흥미롭다. 영화가 재현하는 나이키의 개방적인 기업 문화는 모든 직장인들의 꿈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있어 이 영화는 ‘에어 조단’을 신고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기억을 소환하게 해 주었다. 우리는 나이키 농구화처럼 현대적인 것들이 신화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독자 여러분의 ‘현대의 신화’는 어떤 것들인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