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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을 뽑다

등록일 2023-04-19 20:06 게재일 2023-04-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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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봄 되자 제 먼저 알고 새싹으로 내민 풀들이 마당 여기저기 그득했다. 쑥, 민들레, 봄까치꽃, 광대나물, 냉이, 망초대…. 풀을 뽑으며 풀이름을 검색해서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더 이상 잡초는 아니었다. 이 풀들은 나물이기도 하고 약초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제멋대로 자라게 해두기엔 사람 사는 집꼴이 아니었다. 작년 여름 사람을 사서 두어 번 풀을 베었어도 돌아서면 또다시 무성히 자란 풀들이었다. 예초기도 샀지만 자랄 때마다 베기엔 너무 번거롭고 성가실 것이다. 어떤 이는 제초제를 뿌리라고 했으나 손주들이 와서 놀 집인데 싶어 꺼림칙했다. 크게 자라기 전 어린싹일 때 뽑으면 쉬울 거라 생각했다. 풀 없는 너른 옆마당에 백일홍씨를 잔뜩 뿌려 한여름 내내, 최소 100일을 꽃대궐로 만들고 싶은 열망도 컸다. 환상이고 오산이었다.

이틀을 작정하고 풀뽑기에 들어갔다. 앉아서 호미로 파내기도 하고, 서서 쇠스랑으로 찍어내 보기도 했지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김매듯 고랑을 만들며 앞으로 또는 뒤로 자세를 바꾸어도 보면서 풀을 뽑았다. 어린 풀들은 완강히 버텼다. 어린 풀이지만 그 뿌리는 깊고 힘셌다. 하기야 몇 년째 그 자리에서 견고하게 뿌리 내리고 줄기 뽑아 꽃 피우고 온 마당과 길섶에 마음대로 씨를 흩날려 퍼트렸던 풀들이 아닌가.

망초대가 정말 가당찮았다. 망초대는 얕되 넓게 뿌리 내리는 풀이다. 가는 실뭉치가 엉긴 것 같은 뿌리는 질기고 견고했다. 뿌리를 뽑으면 묵직한 흙덩이가 딸려 나온다. 풀을 뽑는 게 아니라 땅의 거죽을 벗긴다고 할 정도였다. 망초대를 캐낸 곳엔 영락없이 움푹 팬 구덩이가 생겼다. 흙을 털어 던져 무더기를 이룬 곳에서 또 연노란 싹을 올리는 질긴 생명력이란...

나는 각색 풀들과 타협하기로 했다. 쑥과 민들레의 뿌리는 깊고 길었다. 파내기가 쉽잖았다. 쑥은 캐어 쑥국을 끓여먹으리라 생각하며 뽑았다. 며칠 후 쑥은 또 무성히 자랐지만 좀 쉽게 뽑혔다. 뿌리 깊고 튼튼한 민들레는 벌써 노란꽃을 피워대고 있었다. 나비도 이따금 앉는 걸 캐내기 안쓰러웠다. 담 밑 한 귀퉁이에 모아주었더니 더욱 샛노란 빛으로 민들레밭을 이룬다, 살려두면 홀씨 날려 마당 어디든지 퍼트릴 텐데 싶어도 우선은 살려두자.

뒷담벼락 따라 제법 예쁜 자줏빛 꽃을 피우는 광대나물은 과감하게 캐냈다. 예쁜 꽃이라며 남편이 몇 삽 떠서 화분에 심길래 미안함을 덜었다. 이른 봄부터 연보라색 작은 꽃을 피운 봄까치꽃도 이곳저곳 만만찮게 많다. 뽑아도 뽑아도 끝없어서 이 역시 담벼락 한켠에 흙 묻은 채로 던져 모아주었더니 생글거리며 또 연보라꽃을 피운다. 수돗가에 잔뜩 모여 잘디잔 흰 꽃을 피워낸 냉이는 캐지 않고 냉이꽃밭으로 두기로 했다. 여러 날 걸친 풀뽑기가 힘에 부치기도 하려니와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사흘에 걸쳐 풀을 뽑았다. 아니 풀들을 재배치했다는 게 옳다. 그러고도 풀들이 내어 준 너른 빈터엔 백일홍씨를 잔뜩 뿌려 주었다. 꽃대궐이 환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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