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 이현길은 춤추는 선생님이다. 혼자서만 추는 것은 아니고 아이들과 같이 춘다. 그는 교사 생활 17년 차로, 그동안 계속 아이들과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런데 작년에 특별히 뜻깊은 졸업식을 만들어 주기 위해 무대를 만들어 SNS에 올리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그가 올린 영상마다 이런 활동이 얼마나 어려운지 공감하는 현직, 퇴직 교사들의 감동 댓글이 줄을 잇는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이유는 그저 아이들에게 오래 기억되고 싶어서라고 한다. ‘기억’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돋보인다.
지난주에, 암 투병 중이신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을 동창과 함께 만나고 왔다. 헤어질 때 선생님이 한 말씀 하신다. 지금도 내 눈에는 너그들 고등학교 때 모습이 눈에 선하다. 너네는 내 맘 모를끼다. 그렇지 않다. 선생님의 기억과 다르기는 하겠지만, 우리 역시 그때를 눈에 선하게 기억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인간의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뇌과학자 조지프 르두는 ‘우리 인간의 깊은 역사’를 통해 인간의 뇌가 발달해온 과정을 설명해준다. 새로운 상황에서 자신의 반응을 선택하여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행동적 유연성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억을 바탕으로 영장류는 숙고할 수 있게 되었는데, 특히 언어를 가진 인간은 그냥 숙고보다 뛰어난 심사숙고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어서 그는, 인간은 심사숙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에서 목표의 가치를 저장할 수 있고, 이것을 이용하여 미래에 더 새롭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좋은 경험은 삶의 활력소가 되기에 그런 일을 기억하는 것은 즐겁고 자연스럽다. 반면 나쁜 경험은 고통을 수반하기도 하고 비용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지 잊고 싶은 사람, 잊으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심한 경우, 나쁜 경험을 기억하는 사람을 조롱하기도 한다. 학폭을 오래전 장난으로 치부하거나 학폭 당한 일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그런 걸 여태 기억하느냐고 비웃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기억하는 것이다.
4월은 기억해야 할 역사적 기념일이 많다. 조금 멀리는 1960년에 일어난 4·19 혁명 기념일이 있고, 가까이는 9년 전, 4·16 세월호 참사가 있다. 그러나 이 기억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치 있게 저장되어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던 신동엽의 마음을 우리는 이미 잊은 지 오래되었고, 4·16 참사의 기억 역시 기억의 저편으로 넘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하고 심사숙고할 줄 아는 인간이다. 나쁜 경험이라도 미래의 행복을 만들기 위해서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좋은 경험으로 기억되는 데는 대화가 있다. 아이들은 이한결 선생님과 춤을 추면서 대화했고,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은 수업과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5분 스피치 기회를 주었다. 4월의 경험에서 알맹이만 남기고 미래의 유익한 결과를 선택하는 심사숙고 과정에서도 우리는 더 많이 기억하고 대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