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갑자 중 서른세 번째는 병신(丙申)이다. 천간(天干)의 병화(丙火)는 태양, 지지(地支)의 신금(申金)은 큰 바위 또는 바위산이다. 큰 바위에 햇볕이 내리쬐는 모습이다. 동물로는 영리한 붉은 원숭이다.
병신일주는 화(火)가 오행 가운데 예(禮)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깍듯하게 예의를 잘 지킨다. 상대방의 허물을 잘 보며, 활력이 넘치고 열정적이다. 자기주장과 고집이 강하고, 끊고 맺음이 분명하다. 추진력이 있어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이런 분들에게 친근감의 표시로 함부로 반말하면 큰일 날 수도 있다. 욱하는 성질이 있지만, 뒤 끝이 없는 것이 큰 장점이다.
양(陽) 기운이 넘쳐 사회활동과 결실의 힘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리더십이 있다. 남의 눈길을 끌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서 겉모습을 꾸미는데 관심이 많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외모도 훤칠하며, 솔직담백하므로 비밀이 없다. 남자나 여자나 잘 생겼다. 자칫 사치에 빠질 가능성도 있으며, 결과를 너무 과시하면서 생색내다가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다.
병신(丙申)은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철광석을 녹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으로 창조성이 뛰어나다. 다방면에 재주가 많고 잡기에도 능하다. 원칙과 소신 있게 행동하지만, 여연살(女戀殺)이 있어 남자의 경우는 배우자 몰래 애인을 숨겨둘 여지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병신일주를 풍수를 보는 지관의 사주라고 했다. 지관들이 풍수를 보기 위해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역마) 머무는 마을마다 여자와 인연이 생겨 숨겨둔 자식이 있다고 했다. 또한 ‘병신 육갑한다’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장님이나 장애인들이 점보는 일을 많이 했다. 특히 병신일주 사람들이 역학에 소질이 많아 육십갑자를 더하여 ‘병신이 육갑한다’라는 의미다. 그러나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키듯이, ‘병신자식 효도한다’라는 속담도 있다.
병신의 신금(申金)은 원숭이다. 옛날에는 ‘잔나비 띠’라고 불렀다. 재주가 많고 활동성도 강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어디든지 다녀야 직성이 풀린다고 보면 되겠다. 병신일주는 재주 있고 똑똑하며 호탕하고 원만한 성품으로 솔선수범하고 융통성이 있으며 빼어난 말솜씨로 사회생활에 지극히 잘 어울리는 성향을 갖고 있다. 공직생활에는 외교관, 회사생활에는 무역부서에서 일하면 재능을 발휘해 쉽게 인정받고 높은 자리로 승진하는 기운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단점으로는 지나친 활동성과 성과에 집착하는 공명심이 있다. 빨리 남에게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부하직원이나 주변사람을 닦달하는 성향이 있다. 뻐기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외부로 향한 관심을 내면으로 돌려 부실함을 채우고, 결과 및 인정욕구에 연연해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로부터 동국무원(東國無猿)이라 하여 조선에서는 원숭이가 살지 않았다. 주로 불교국가에서 원숭이 이야기가 많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보물 제178호)에 가면 네 귀퉁이의 처마 밑에 원숭이가 연화받침 위에 무릎을 세우고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모습이 있다. 두 귀를 막고 있는 것도 있고, 한쪽 귀를 막고 있는 것도 있다. 세상에 떠도는 말에 괴로워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여겨진다.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불경 ‘육도집경’에 따르면 부처님이 전생에 500마리 원숭이의 왕이 되어 원숭이 무리를 죽음으로부터 살려내고, 자신은 국왕에게 잡혀 “벌레 같은 몸뚱이의 썩어질 살이니 가히 왕에게 바치면 하루아침의 반찬이 될까합니다”하여 국왕을 감동시킨 이야기다. 지붕을 받들고 있는 원숭이 모습은 가히 일품이다. 원숭이들은 부처님에 대한 끝없는 공경을 나타내어 감동을 주며, 도편수의 창의성이 돋보인다.
병신일주는 재물을 깔고 있으니 기본적으로 재물에 대한 욕심이 많다. 문창귀인이 있어 문필에 탁월한 재능이 있어 창의성을 발휘하여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가 1866년 중편소설 ‘도박꾼’을 발표했다. 거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그는 낭비벽과 도박으로 늘 빚에 시달린 생활을 이어갔고 죽은 형의 빚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때 출판업자가 혜성같이 나타나 매력적인 제안을 했다. 새 소설의 원고를 1866년 11월 1일까지 넘겨주면 3천루블을 지불한다. 그렇지 못하면 저작권을 포기하는 조건이다. 생각하고 말고도 없이 수락했다. 받은 돈 대부분은 형의 빚을 갚았고, 남은 돈은 유럽의 도박판에 가서 신나게 날려버렸다.
날짜는 다가오는데 속수무책이었다. 아무리 졸속으로 쓴다 해도 한 달 안에 원고지 1천500매를 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친구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속기사를 추천해 주었다. 속기사는 건전하고 젊은 상식적인 여자였다. 10월 4일부터 그는 구술했고 속기사는 속기로 적은 뒤 집으로 돌아가서 정서해 가져왔다. 이런 식으로 10월 29일에 마쳤다. 26일 만에 소설이 완성되었다.
소설 ‘도박꾼’은 도박판의 탐욕과 공포, 도박꾼들의 흥분과 좌절과 긴장을 완벽하리만큼 실감나게 써냈다. 도박꾼 작가의 체험이 그대로 소설화된 것이다. 게임의 흥분과 스릴 추구는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다. 그는 생존을 위해 도박을 했고, 또한 생존하기 위해 글을 썼던 것이다.
계약 이행보다 더욱 값진 성과는 속기사와의 결혼이다. 두 사람은 작업 과정에서 가까워졌고, 25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했다. 그녀는 초인적인 인내심과 사랑으로 남편이 도박에서 벗어나게 하고 책을 직접 파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빚을 청산함으로써 비교적 안정된 만년을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작품이 1880년 11월 탄생됐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그는 이듬해인 1881년 1월 28일 폐동맥 파열로 사망했다.
타고난 재능을 믿고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는 수긍할 만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함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소홀히 대하지 않기 위함이다. 전력을 쏟지 않고 얕은꾀를 부리는 것,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 방관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바보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도 의미도 부여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을 서서히 죽이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