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우리 집 철쭉은 해사하게 웃는 얼굴로 피어났다. 그런데 올해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계절을 알리는 전령사였는데, 물기 없는 수피가 까칠하고 버석거렸다. 말라 헐거워진 흙 아래에 묻혀 있는 뿌리에도 물이 사라졌을까, 걱정되었다.
꽃이 피었다가 이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 때 푸른 물 정기를 맘껏 받아들여 연초록 잎을 돋우고 꽃불을 환히 밝혔던 시절을 떠올리니 괜스레 측은했다. 서둘러 화분에 물을 주었다. 몸피 가득 물을 머금어 회생하면 좋으련만.
내가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고 아픔을 살폈어야 했다.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웃자란 부분은 가지를 쳐줬어야 했는데, 한 동안 마음을 쓰지 못했다. 더군다나 다른 화분은 거실에 놓았는데 홀로 햇빛이 들지 않는 현관에 두었다. 나는 혹여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 환하게 밝혀진 꽃등을 보고 감탄하면 신나게 철쭉을 자랑하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꽃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수척한 철쭉의 모습에서 예전에 가르쳤던 제자의 얼굴이 겹쳐졌다. 며칠 전, 부모님과 상의를 하지 않고 대학교를 휴학했단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았다. 선배나 동창들과 부대끼면서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상을 해보았다고 했다. 나는 제자의 속사정을 들어보기 위해 만났다. 제자의 안색이 밝지 않았다. 철쭉이 제자리에 놓이지 못해 야윈 것처럼 제자도 사회에서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지 못할까 걱정하느라 나날이 메말라갔나 보다. 가벼운 바람에도 날아갈듯이 흔들리면서 중심을 잃을 것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제자를 만나고 돌아온 날이었다. 제자의 어머니가 많이 속상하다고 내게 토로했다. 대학 합격만을 바라보며 앞만 보고 성실하게 공부해 왔던 제자가 아니었던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을 했으니 순리대로 학과 공부를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순조로울 것 같던 대학 생활이 삐걱거리자, 그의 어머니는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나는 제자의 어머니 마음도 헤아려졌다.
늦게까지 강의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로 군 입대 신청을 했다는 제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이렇게 성급하게 결정을 했느냐, 부모님과 상의를 하고 내린 결정이었냐, 제자를 향한 내 질문이 쏟아졌다.
현재로서는 생활에 대한 긍정적인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 들어갔어도, 선배들의 전공 취업률이 낮다는 점에서 좌절을 맛보았다고 했다. 불안감이 여러 날에 걸쳐 제자의 온몸을 휘감고 점점 농도 짙게 물들인 탓인지, 자신감이 점차 약해졌나 보다.
어디 제자만의 문제일까?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청년들의 취업 고민이 더욱 가중되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밤이 늘수록 그들의 몸안 깊숙이 외로움이 자리 잡았을 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아프다.
얼마 전부터 철쭉이 새순을 피웠다. 가지 끝에서 손톱만한 연두색 잎들이 돋더니, 어느새 줄기를 다시 내고 꽃대를 밀어 올렸다. 물기 머금은 줄기는 생기가 넘쳤고, 꽃대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애써 담담한 척했으나 철쭉이 끝내 살아나지 못할까봐 그 동안 내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힘을 내어 꽃까지 피우라고, 오며가며 말했더니 기특하게도 꽃망울을 맺었다. 하루아침에 꽃불이 일지는 않겠지만 군데군데 꽃망울이 귀엽게 돋아났다.
생명 있는 것은 누군가의 관심이 있어야 기운을 낸다. 철쭉의 마음을 헤아려 물을 적당히 주고 볕도 알맞게 쬐어주었더니, 화사함을 유지했다. 우리네 인생에서도 상대방의 관심은 무엇보다 긴요하다. 그것은 삶에서 부단히 만나게 되는 가시밭길을 잘 건너가게 도움을 주는 고갱이가 될 수 있으리라.
앞으로는 제자가 소울(疏鬱)할 수 있도록 자주 안부를 물어봐야겠다.